영화 본지 한참 되었다. 리뷰를 절반쯤 쓰다 팽개쳐 두었는데, 오늘 생각나서 조금 정리해 올린다.

세 사람이 있다. 이들의 삶은 모두 고달파 보인다. 잭(베니치오 델 토로)은 어려서부터 교도소를 들락날락하다 2년 전에야 마음을 잡았다. 이제 그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하느님이다. 그분의 뜻에 따라, 뺨을 때리는 사람이 있으면 다른 뺨마저 내밀며 살아가고자 한다. 설령 아내가, 예전의 모습이 더 당신답고 좋아,라고 쏟아부어도 그런 망나니 시절의 자신의 모습을 지우려고 한다.
크리스티나(나오미 와츠)는 남편과 두 딸과 행복하지만 아직 약물 중독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약물 중독자 모임에 나가면서 자신의 행복이 어디에서 비롯되는지, 가족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자각하려고 애쓴다.
폴(숀 펜)은 아내를 버려두고 이 여자 저 여자를 전전했다. 그러다 심장병에 걸리고,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상태에서야 아내에게 돌아왔다. 아내는 그런 남편을 받아주었고, 인공수정으로 아이를 갖겠다고 한다. 그로서는 내키지 않지만 아내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주고자 한다.

새 삶을 시작한 두 사람과 삶의 끝으로 다가가는 한 사람. 이들의 삶을 바꿔놓은 것은 불의의 사고였다. 길가로 갑자기 뛰어든 크리스티나의 아이들과 남편, 미처 브레이크를 밟지 못한 잭. 크리스티나는 남편의 심장을 기증하고, 그 심장은 폴에게 이식된다.
하느님의 뜻으로 살고자 한 내게 주어진 이 시련은 하나님의 의지일까, 단순한 사고일까. 머리카락 한 올의 떨림조차 아는 당신께서 이 사고를 의도하지 않았다는 게 말이 되는가. 하나님은 왜 나를 내치려는 걸까.
이제야 제대로 된 엄마와 아내 노릇을 하려고 했는데, 어째서 이들이 한꺼번에 사라졌을까. 삶의 의미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라는 말은 전혀 위안이 되지 못한다.
눈 앞까지 다가왔던 죽음이 등을 돌려 가버렸다. 내게 주어진 새로운 생명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알고 싶다. 그것이 내 삶의 이유다.
‘삶은 계속된다’는 대사가 두 번 나온다. 어떤 상황에서도, 살아남은 자에게 삶은 계속된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도, 돌이킬 수 없는 죄를 지었어도 내게 주어진 삶은 아랑곳없이 내 앞에 놓여 있다. 어쩌면 그것이 더 끔찍할지 모른다.
21그램은 사람이 숨을 거두는 순간 줄어드는 무게라고 한다. 어느 경우에도 예외는 없단다. 잭, 크리스티나, 폴처럼, 흠집이 난 사람들에게도 동일하다. 삶과 죽음의 무게가 어느 누구에겐들 더 무겁거나 가벼워질 수 있으랴.

감독은 전혀 친절하지 않다. 세 사람의 이야기는 토막토막 난 채 몇 분 단위로 뒤죽박죽 섞여있다. 교회에서 아이와 얘기하는 잭, 아내와 통화하는 크리스티나의 남편, 폴과 친구들의 식사, 약물을 복용하는 크리스티나, 잭의 생일 파티, 크리스티나를 쫓아다니는 폴, 침대에 누워있는 폴… 처음 얼마간은 내용을 파악하기가 쉽지 않지만 금세 익숙해진다. 이런 구성의 장점은 짤막한 장면 안에서 인물들의 감정이 극대화되어 드러난다는 점이다. 온 신경을 화면에 집중하다 보니 배우들이 보여주는 미세한 감정의 떨림조차도 확연하게 느낄 수 있다. 게다가 배우들의 연기는 뭐라 말할 수 없이 훌륭하다. 주인공 세 명은 물론이거니와 결국 남편에게 버림받는 폴의 아내와, 잭을 포기하지 못하는 잭의 아내 역의 배우들도 그 이상을 바랄 수 없을 정도다.
확실히 추천할만한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