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결혼식 날짜를 잡으셨다. 벌써 한 달쯤 되어간다. 이제 예식장을 정해야 하는데, 귀찮아 죽겠다. 이사할 때 가구며 그릇이며 보러 다닌 건 그렇게까지 귀찮지 않았는데 이건 왜 이리 하기 싫은지. 당장 쓸 살림살이 장만하는 것과 그닥 필요하지 않은 듯한 일을 준비하는 것 사이의 차이인가.
실은 결혼식을 안 했으면 좋겠다. 그냥 신혼 여행만 갔으면 싶다. 엄마는 결혼식 안 하고 살면 나중에 후회할거라고, 웨딩드레스 입고 싶지 않냐고 말씀하신다. TV에 나오는, 결혼식 못 올리고 산 사람들이 그렇게 얘기하는 걸 너무 많이 보신 탓이다.
나로 말하자면 웨딩드레스를 입고 싶었던 적이 한 번도 없다.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결혼을 하면 그냥 원피스를 입으리라 생각했다. <섹스 앤 더 시티>에서 미란다가 결혼할 때 웨딩드레스를 고르러 다니는데, 흰색이나 순결한 이미지를 강조하는 건 안 된다고 딱 잘라 말한다. 결국 보라색 이브닝 드레스 같은 걸 입는다. 그걸 보면서 혼자 “내 말이…” 이러고 중얼거렸다. 그 순백의 치렁한 드레스로 신부의 순수함(이라고 하지만 결국 처녀성)을 만천하에 드러낸다는 것인데, 그걸 입고 ‘전 순수하고 아름다운 신부에요.’ 이러는 건, 별로다. (그렇다고 남들이 웨딩드레스 입고 결혼하는 걸 폄훼하겠다는 의도는 아니다. 웨딩드레스 입은 신부들 보면 예쁘다고 생각하긴 한다. 다만 내가 입고 싶지 않은 것 뿐.)
어쨌든, 결혼식을 하긴 해야 한다. 우리 엄마도 애인네 부모님도 그 정도는 필요하다. 어른들은 가끔 예식장 알아보고 있냐고 물으시고, 주변 사람들도 빨리 예식장을 잡아야 한다고 충고한다. 올해 쌍춘년이니 뭐니 해서 장소 구하기가 어렵다나 어쨌다나. 하지만 무엇보다 귀찮고, 애인도 주말마다 바쁘고 하여 아직 시작도 안 하고 있는 참이다. 누군가는 그러다가 식장 못 구해서 결혼식 안 하길 바라는 거 아니냐고 농을 던지지만 설마 그렇게까지야.
내가 비교적 느긋한 건 예식장을 이용하지 않을 계획이기 때문이다. 웨딩드레스 입는 것 뿐만 아니라 30분만에 후다닥 해치워야 하는 예식장의 어수선함도 싫고 아무도 듣지 않는 주례사도 싫다. 하여 생각한 건 전통 혼례. 웨딩드레스 안 입어도 되고, 하는 사람이 많지 않을 테니 장소도 여유 있게 구할 수 있을 것 같다. 주변에 전통 혼례를 한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 재미도 있을 것 같고.
그나 저나 말이지, 그것도 알아봐야지. 이러고 생각만 하고 있으면 누가 대신 해 준다냐. 아우, 그래도 귀찮아. 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