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나의 한순간도 길이다
20210405 #시라는별 25
숭어
- 안도현
숭어가 연락도 하지 않고
뛰어오른다 불쑥불쑥, 숭어는 왜 뛰어오르는가
이 일없는 저녁바다의 수면 위로
뛰어오르며 숭어는
바다가 차갑게 펼쳐놓는 적막의 치맛자락을 짖어보자는 것인가
저렇게 숭엄한 하늘의 구름장과 노을에다
수직의 칼금이라도 내보겠다는 것인가
보이지 않는 바다의 뱃속은
이 세상처럼 짜고, 끓는 찌개냄비처럼 뜨거울 수도 있겠다
평평하고 멀리까지 뻗어 눈에 가물가물해야 길인가
숭어가 뛰어오르는 저,
저 찰나의 한순간도 찬란하고 서늘한 길이 아닌가
봄비가 종일 내리는 날, 안도현 시인의 <<간절하게 참 철없이>>를 제3부를 오래 읽었다. 오감을 자극하고 기억을 소환하는 2부 음식 시편이 이 시집의 백미인가 했더니, 웬걸 3부는 더 좋았다. 1부에서 ˝바라보는 일이 직업인˝ ˝저 구름의 독거를 사랑할 수밖에 없다˝고 고백했던 시인은 3부에서 바라봄의 진수를 보여준다. 시인이 오다가다 만나는 식물들, 나무들, 꽃들, 물고기들 그리고 사람들을 찬찬히 들여다보고 그네들의 특징을 화폭에 담듯 글자로 그려낸다.
시마다 몸에 새기고 싶은 시구들로 가득하다. 할 수만 있다면 모조리 암기하고 싶지만 급히 먹는 밥이 체한다고 하지 않는가. 오늘은 이 시구만 기억하겠다.
숭어가 뛰어오르는 저,
저 찰나의 한순간도 찬란하고 서늘한 길이 아닌가.
숭어는 왜 뛰어오르나. 우리가 숭어가 아닌 다음에야 그 까닭을 어찌 알까.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유에 대한 답이 아니다.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은 ˝치맛자락˝ 같은 차갑고 적막한 바다 위로, 구름과 노을이 어우러진 ˝숭엄한 하늘˝ 위로 ˝수직의 칼금˝을 긋기라도 할 듯
뛰어오르는 숭어이다. 문을 박차고 나오듯 물 밖으로 튀어올랐다. 시인이 묻는다. 왜 그러니? 물속이 짜니? 물속이 뜨겁니? 짜서 따갑고 끓어 아프니? 시인의 눈은 우리 대다수의 눈이 보지 못하는 숭어의 내밀한 세계, 물속 다툼과 고통에 천착한다. 어쩌면 숭어는 숱한 몸부림 끝에 시리디 시린 바닷물을 뚫고 올라 왔을지 모른다. 그렇기에 그 ˝찰나의 한순간˝이 눈이 부시게 ˝찬란하고 서늘한 길˝이 아니겠는가.
우리 모두의 길도 그렇다. 순간순간이 모여 길을 이룬다. 어떤 길은 선명하고, 어떤 길은 흐릿하고, 어떤 길은 가려지고, 어떤 길은 지워진다. 시인은 가려지고 지워진 길에 다시 길을 내어 보여주는 자가 아닐까.
봄비가 땅을 적시듯 시들이 나를 적셨다. 시적 감성이 풀처럼 자라리.
문학동네가 1985년에 나온 시인의 첫 시집 <<서울로 가는 전봉준>> 개정판을 출간했다. 안도현의 문장들 <<고백>>이 모악에서 4월에 출간된다. 다음은 안도현 시인이 트위터에 올린 글이다.
˝모든 문장은 후회와 반성의 흔적이다. 고쳐 쓰지 않아도 될 것 같은 문장들을 골라 <고백>이라는 제목으로 한 권의 책을 낸다. 겨우 4년 글 쓴 것 같은데 40년이라니! 이 책에 실린 사진은 한승훈(@kookok789)이 포착한 것들이다. 그의 아름다운 사진은 넋 놓고 보기 좋다.˝ (https://t.co/K8gOA7H5hQ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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