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416 안도현의 문장들

예약을 걸어둔 안도현 시인의《고백》이 도착했다.

기다림은 설레임을 안긴다.
설레임은 반가움이 되었다.
작가의 말이 추억을 부른다.
작가의 스무 살. 나의 스무 살.
혼자서. 아무 것도 가진 것 없이.
아니. 그 시절 내겐
뭣도 겁나지 않는 패기가 있었다.
지금은. . . . . .
나의 스물을 회상하며 읽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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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1-04-16 17:1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장 그르니에♡ 안도현 작가님의 말 읽어보니 저의 스무 살에게도 뭔가 말좀 해주고 싶네요.ㅋㅋㅋㅋ

행복한책읽기 2021-04-16 23:52   좋아요 2 | URL
네. 그래서 우리의 스무 살에게 쓰는 편지로 안도현의 문장들을 매일 올려볼까 생각 중이요. ^^

새파랑 2021-04-16 17:3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책을 기다리는 기분이란 ^^
˝나의 스무살에게 이 책을 건넨다˝ 멋진 문장이네요. 읽어보고 싶은~!!

행복한책읽기 2021-04-16 23:55   좋아요 2 | URL
책이 너~~~~무 예뻐요. 사진과 문장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책이에요. 청년 시절처럼 품에 안고 다니고 싶은 그런 책이에요.^^

scott 2021-04-16 20:2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우와 작가의 말 완벽하지 않은 인생의 스무살을 위한 글귀네요.

행복한책읽기 2021-04-16 23:56   좋아요 3 | URL
아. 역시 scott님 댓글은. ˝완벽하지 않은 인생의 스무 살.˝ 저는 저때 완전 쉰나 죽을 거라는 맘으로 낯선 도시에 발을 디뎠는데, 아, 현실은 제 맘 같지 않았다는요.^^;;;;
 

20210415 #시라는별 28 

이 봄의 이름을 찾지 못하고 있다 
- 김선우 

믿기지 않았다. 사고 소식이 들려온 그 아침만 해도 
구조될 줄 알았다. 어디 먼 망망한 대해도 아니고 
여기는 코앞의 우리 바다. 
어리고 푸른 봄들이 눈앞에서 차갑게 식어가는 동안 
생명을 보듬을 진심도 능력도 없는 자들이 
사방에서 자동인형처럼 말한다. 
가만히 있으라, 시키는 대로 하라, 지시를 기다리라. 

가만히 기다린 봄이 얼어붙은 시신으로 올라오고 있다. 
욕되고 부끄럽다, 이 참담한 땅의 어른이라는 것이. 
만족을 모르는 자본과 가식에 찌든 권력, 
가슴의 소리를 듣지 못하는 무능과 오만이 참혹하다. 
미안하다, 반성 없이 미쳐가는 얼음 나라, 
너희는 못 쉬는 숨을 여기서 쉰다. 
너희가 못 먹는 밥을 여기서 먹는다. 

환멸과 분노 사이에서 울음이 터지다가 
길 잃은 울음을 그러모아 다시 생각한다. 
기억하겠다, 너희가 못 피운 꽃을. 
잊지 않겠다, 이 욕됨과 슬픔을. 
환멸에 기울어 무능한 땅을 냉담하기엔 
이 땅에서 살아남은 어른들의 죄가 너무 크다. 
너희에게 갚아야 할 숙제가 너무 많다. 

마지막까지 너희는 이 땅의 어른들을 향해 
사랑한다, 사랑한다고 말한다. 
차갑게 식은 봄을 안고 잿더미가 된 가슴으로 운다. 
잠들지 마라, 부디 친구들과 손잡고 있어라. 
돌아올 때까지 너희의 이름을 부르겠다. 
살아 있으라, 제발 살아 있으라. ​


세월호 7주기가 내일이다. 만화가 김홍모의 어느 세월호 생존자 이야기 <홀> 을 연신 눈물콧물 흘리며 읽었다. 먹먹해졌다. 세월호는 눈물 없이 말을 할 수가 없다. 분노 없이 말을 할 수가 없다. 의문 없이 말을 할 수가 없다. 시간이 이만큼이나 흘렀는데 도대체 왜???

진실 인양에 기한은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결코 잊지 않는 것. 감히 그만 하라 말하지 않는 것. 관심과 연대의 끈을 놓지 않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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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22598 2021-04-15 06:1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단원고 학생들 가족을 다룬 ebs 다큐를 본 이후로..전 사실 관련된 영상을 잘 보지 못하겠더라고요....ㅠㅠㅠㅠ 너무 슬퍼서..슬픔을 넘어 고통스럽더라고요ㅠ. 책은 그나마 조금 나은데..그래도 너무 힘들어요. 하지만 우리가 잊지 않고 기억해야죠.

행복한책읽기 2021-04-15 11:36   좋아요 2 | URL
네. 세월호는 가까이 마주하기 참 버거운 일이에요. 그래서 언제나 마음을 다잡으려 애써요. 외면하면 안 돼, 외면하면 한 돼. 주문도 외워요.

새파랑 2021-04-15 08:2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벌써 7주기네요. 정말 오랜시간이 흘러도 잊혀지면 안되는 일이 있습니다.

행복한책읽기 2021-04-15 11:37   좋아요 2 | URL
그니까요. 7주기라니. 근데 속 시원히 밝혀진 것이 없어 느무느무 속상하고 화가 나요. ㅠㅠ

청아 2021-04-15 12:5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결국 제대로 된 처벌도 명확한 진상규명도 없이 지겹다는, 그만하라는 등 수많은 막말로 덮여버린 시간이었네요. 울어주는 것밖에 할 수 없던 무기력하고 참담한 기억이었어요. 노란 꽃이 곱고 슬프네요. 생각하면 그냥 멍해집니다...편히 쉬기를!

행복한책읽기 2021-04-16 23:59   좋아요 1 | URL
<홀>을 구매해주세요. 무력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중 하나 같아요. 아직 뭘 모르는 아들을 제외하고 온 식구가 이 책을 봤답니다.
 
부끄러움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아니 에르노 지음, 이재룡 옮김 / 비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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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14 부끄러움의 뿌리는 어디일까 

내가 읽은 아니 에르노의 세 번째 작품. <<남자의 자리>>와 <<한 여자>>가 아버지와 어머니의 삶을 전기 형식으로 재현한 것이라면, <<부끄러움>>은 저자 자신에 관한 인류학적 보고서다. ​나는 아니 에르노의 작법이 참 마음에 든다. "경험하지 않은 것은 쓰지 않는다." 원칙 아래 소설과 자전의 경계가 모호한 글쓰기를 지향하는 작가. 그의 글은 단순하고 꾸밈이 없다. 수사는 꺼져! 라고 외치는 건조한 문장들로 가득하다. 그러니까 일체의 수사를 배제한 채 사실을 충실히 따라가는 딱딱한 문체이다. 그래서 날카롭고 그래서 아프다. 거칠게 때론 묘하게. 

<<부끄러움>> 은 1940년생인 저자가 열두 살에 겪은 한 사건을 계기로 불쑥 찾아든 '부끄러움'이라는 감정의 자취를 따라가는 이야기다. 첫문장이 무섭게 강렬하다. 

"6월 어느 일요일 정오가 지났을 무렵, 아버지는 어머니를 죽이려고 했다."(23)

어두컴컴한 지하실. 아버지가 엄마의 어깨인지 목덜미를 움켜쥔 채 낫을 쳐들고 있다. 이어진 것은 지하실에 쩌렁쩌렁 울펴 퍼지는 비명소리와 울음소리. 이 장면과 소리는 저자에게 '지금까지의 나'와 '앞으로의 나'를 분명하게 가르게 만든 일대 사건이다. 이 일이 얼마나 충격적이고 공포스러웠던지, 저자는 46년이라는 세월이 흘러서야 일기에도 쓰지 못한 이야기를 처음으로 글로 옮긴다고 말한다. 그런데 털어놓고 보니, 자신이 겪은 이 극적인 사건이 자신의 가정만이 아니라 의외로 "자주 다른 가정에서도 벌어지는 평범한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든다."(27) ​

그렇다. 나는 아니 에르노의 <<한 여자>>를 읽었을 때 이국만리의 낯선 엄마가 아닌 나와 몇십 년을 동고동락한 내 어미를 대하는 듯한 기시감을 무시로 느꼈다. <<아버지의 자리>>를 읽을 때는, 내 아비가 살아서 나와 같이 지냈다면 겪고 느꼈을 법한 감정, 혹은 내 딸이 제 아빠에게 느끼고 있고 앞으로 느낄지 모를 감정을 상상하고 이해할 수 있었다. <<부끄러움>>도 마찬가지였다. 

"그 일요일은 나와 이전의 나에 대한 모든 것 사이를 가르는 어떤 장막처럼 남게 되었다."(29)

열두 살의 저자는 이 사건으로 엄청난 도덕적 혼란을 겪는다. "나를 사랑하는 아버지가 나를 사랑하는 어머니를 제거하려" 했다니.(29) 제 두 눈으로 보았지만 도무지 믿을 수가 없고 믿고 싶지 않은 일이다. 그날의 경악은 수시로 가슴을 짓누른다. 나를 더 답답하게 만드는 것은 이 일을 누구에게도, 심지어 자신에게조차 말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나에게 진짜 비밀이 생겼다. 그럴 때 찾아드는 감정, 그 마음도 부끄러움이 아닐까. 

내 경우에는 엄마의 직업이 나를 가장 부끄럽게 만드는 것이었다. 학년초면 실시되는 가정환경 조사에서 답을 쓰기 어려운 칸이 직업칸이었고, 친구 부모님을 만났을 때 얼굴을 화끈거리게 하는 질문이 '너그 엄마 뭐하시노?'였다. 나는 나를 '거짓말을 하게 만드는 사람'으로 몰고가는 엄마가 정말 미웠다. 이 엄마는 내가 원하지 않는 엄마였고, 저자의 표현대로 나의 "불행을 벌어"놓는 자였다.(25) 그런 감정을 느끼고 그런 인지를 하게 된 시점이 내 경우에도 열두 살 즈음이었다. 

열두 살. 사춘기가 시작되는 시기. 내가 누구인지를 묻게 되는 시기. 나를 둘러싼 세계가 어떤 곳인지 보게 되는 시기. 내가 자리한 세상이 내가 꿈꾸고 바라는 세상이 아니라고 여겨질 때 우리는 대개 탈출을 꿈꾼다. 속으로 주문처럼 되뇌인다. 나는 절대로 엄마아빠같이 살지 않을 거야! 나는 당신들보다 더 나은 세계로 진출해 더 나은 삶을 살 거야! 다행히 저자가 살았던 1950년대, 내가 살았던 1980년대에는 그 탈출이 가능했다.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있던 시절이었다. 다행히 저자는 똑똑한 유전자를 물려받아 자신이 잘하는 '공부'로 그 탈출을 도모할 수 있었다. 그러나 . . . . . . 

'나'에게 학교를 다닌다는 것은 하층 노동계급의 주택과 언어, 그 관습으로부터 벗어나 중상층 부르주아의 세계로의 편입을 의미하는 것에 다름 아니었던 것이다. / 아니 에르노는 이 편입이 자신에게 '부끄러움'이라는 감정을 가져다주었다고 회상한다. . . . . 사립학교를 '우리'로 인식하는 순간, '나'는 자신이 거처해온 '우리 동네'와 자신의 존재의 기원인 '우리 가족'을 다시는 '우리'로 받아들이지 못하게 된다. . . . . . 그것은 비로소 자신을 둘러싼 친숙했던 세계가 '천박함'이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세계에 불과했음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라고 할 만하다. 그 순간 "우리 존재의 모든 것이 부끄러움의 표식"으로 변한다. . . . . . . '부끄러움'은 이런 식의 계급적 인식과 더불어 찾아온다. '나'는 이제 '부끄러움'이라는 감정의 동요 없이는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지 못하는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다.(15-6쪽 문학평론가 신수정의 <작품 소개>  중) 

그랬기에 아니 에르노는 자신의 '부끄러움'을 추적한다. "나 자신의 인류학자"(48)가 되어 1952년의 6월의 그 일요일로 돌아가 "활자화된 글로"(40) 자신의 삶을 복원한다. 이런 시도는 저자의 말대로 "단숨에 모든 것을 노출하는 위험을 무릅썼다는"(40) 의미이다. 저자에겐 위험한 시도였으나 독자에겐 고마운 시도였다. 에르노는 자신을 둘러싸고 있었던 장소의 말들을 되살려 그가 산 세상을 보여준다. 어떤 언어를 사용하느냐가 그 사람이 사는 세계, 그의 생활수준을 짐작할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

1950년대 프랑스 소도시 노동계급의 생활상과 인간 군상은 내가 살던 1980년대 대한민국 지방 소도시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니, 다르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너무나 흡사해서 깜짝 놀랄 정도였다. 더욱 놀라운 지점은 '그때 그들'의 관습과 대화를 이 시대에도 어디에서나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남의 행동거지를 관찰하고 숨겨져 있는 아주 조그만 습성을 분석했고, 그런 것들을 모아 해석을 붙이면서 한 사람의 역사가 만들어졌다. 그것은 각자가 조그만 말 한마디씩 덧붙여서 만들어지는 집단 소설 같은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가게나 술집에 모여 앉아 "그자는 쓸 만한 사람이야"라든지 "그 여자는 싸구려야"라는 식으로 요약을 하곤 했다."(70) 

참으로 익숙한 풍경이지 않은가. 일명 뒷담화가 만들어내던 거짓 역사가 지금은 뉴스와 각종 SNS가 만들어내는 가짜 역사로 이전되었을 뿐이다. 에르노의 이 인류학 보고서에 등장하는 이런 류의 시시콜콜한 재현들은 사람 사는 거, 참, 거기서 거기네 하는 동질감을 느끼게 한다. 연민을 거둬낸 거리 두기 작법이 아이러니하게도 보잘것없는 인간들에 대한 짙은 연민을 불러일으킨다. 세상 모든 없이 사는 사람들, 소외 당하며 사는 이들의 고독과 고통과 슬픔을 아픔을 돌아보고 공감하게 만든다. 내가 에르노의 글을 좋아하는 지점이고, 그의 책을 찾아 읽는 이유이다. 

'부끄러움' 보고서를 작성하기 전 아니 에르노는 자신에게 글쓰기가 무엇인지를 이렇게 정의한다.

"내게 글쓰기는 헌신이었다. 나는 글을 쓰면서 많은 것을 잃었다. 하지만 글쓰기가 없다면, 실존은 공허하다. 만일 책을 쓰지 않았다면 죄책감을 느꼈을 것이다." (21)

이 보고서 덕에 저자는 죄책감을 덜어냈을 것이다. 내가 궁금한 대목은 이것이다. 열두 살의 그 일요일 이후 부끄러움이 삶의 방식으로 장착돼 몸에 배어버렸다고 말한 저자가 이 책을 쓰는 동안 '부끄러움'에서 놓여 났는지 말이다. 

나? 나는 어떨까. 너무 창피하고 수치스러워 차마 입에 담지 못했던 엄마의 직업을 10년의 침묵을 깨고 공개적으로 말했던 그 순간, 나는 '부끄러움'에서 해방되었고 안도감을 느꼈다. 그때 내가 느낀 또하나의 감정은, 말을 하면 무겁다고만 느껴지던 일이 가벼워진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별 거 아닐 수 있구나 하는 가벼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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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1-04-14 15:4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안그래도 아니 에르노 언젠가 읽어야지×30 했었는데 솔깃하네요!
학교에서도 심지어 이력서에도 왜들 부모님 학교,직업이 그리 궁금한지..요즘엔 거의 안그런다는데 참.. 쓸때마다 ˝왜 궁금해 어디 쓸껀데?˝ 혼자 이러고 질문했어요.ㅋㅋㅋㅋ

행복한책읽기 2021-04-15 00:03   좋아요 2 | URL
이 작가에 대한 미미님의 리뷰 궁금함요. 이 분 책은 짧아서 날 잡아 몇 권 몰아쳐 읽을 수도 있어요. ˝왜 궁금해 어디 쓸껀데?˝ ㅋㅋㅋㅋ 학창시절에 미미님 같은 친구 있었음 엄청 든든했을 것 같아요. ^^

scott 2021-04-14 16:5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니 에르노의 글쓰기는 단순한 자전적 서사를 넘어서는 존재론적 고민까지 담은 한인간의 내밀 보고서,,
나를 낳아준 부모라는 존재를 부정 할 수 없듯이
인정 하고 싶지 않은 존재가 결국에는 내 자신이라는것

행복한 책읽기님
맞습니다 별거 아닌것

이런저런것 꼬치꼬치 캐묻는 인간들
당신부터 말하시오 ㅎㅎ

행복한책읽기 2021-04-15 00:09   좋아요 2 | URL
˝존재론적 고민까지 담은 한 인간의 내밀 보고서˝ 역쉬 scott님. 아니 에르노도 이미 섭렵하셨군요. 저는 올해 이 작가를 만나 참 좋아요. 북플 친구들 덕에 알게 된 작가였음요. scott님도 학창시절 제 친구였음 한층 따봉이었겠어요. 미니님과 더불어 좌청룡우백호^^

희선 2021-04-15 01:0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니 에르노 이름은 알아도 책은 한권도 못 봤네요 자신한테 일어난 일만 쓴다고 해서 그런 건지... 저는 그런 거 안 쓰고 싶기 때문에... 말하지 않아서 무거운 것보다 말해서 가벼운 게 더 좋을지, 어쩌면 자신은 못해도 아니 에르노가 대신 말해줘서 좋아하는 사람도 있겠습니다


희선

행복한책읽기 2021-04-15 11:46   좋아요 0 | URL
자신에게 일어난 일 뿐 아니라 저자가 살았던 시대상도 잘 보여주어요. 사는 모습이 우리나라와 별 다르지 않아 재밌어요. 사람들 뒷담화 하는 모습도 진짜 비슷해요. 다 그런 건 아니지만, 말로 털어버려 가벼워지는 게 있어요. 희선님도 경험해 보시면 좋겠네요.^^
 
호모 데우스 - 미래의 역사 인류 3부작 시리즈
유발 하라리 지음, 김명주 옮김 / 김영사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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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13 호모데우스 읽기 끝 

매일 인증 프로젝트 네 번째 책이자 유발 하라리 읽기 첫 번째 책인 <호모데우스>를 30일만에 다 읽었다. 책을 읽는 동안에도 다 읽은 후에도 든 첫 번째 생각은 나의 호불호와 상관없이 이 책은 필독서구나 하는 것이다. 왜 다들 '하라리, 하라리' 하는지 이유를 알겠더라. 

기아, 역병, 전쟁이 물러난(크게 보았을 때) 시대에 인류의 다음 목표는 무엇이 될 것인라는 질문에서 이 책은 시작되었다고 하라리는 말한다. 

"이 책은 21세기에 인간이 불멸, 행복, 신성을 추구할 거라는 예측으로 시작되었다. 이 예측은 그리 독창적인 것도 대단한 선견지명도 아니다. 그저 자유주의적 인본주의의 전통적 이상들을 반영한 것일 뿐이다."(381)

이것은 하라리가 자신의 글에 내린 냉정한 평가이다. 자기와의 거리 두기가 가능한 저자인 만큼 그의 글은 감상은 배제하고 사실에 근거한 분석적이고 논리적인 서술로 일관한다. 이 부분은 정말 탁월하다. 

"하라리는 탁월한 이야기꾼이며 편집의 힘을 아는 영리한 작가다."(옮긴이의 말 중) 


그렇다. 이 책을 읽으면 느껴진다. 유발 하라리가 탁월하고 영리한 저자라는 것이. 방대한 인류사를 옆으로 새지도 않고 어쩜 이리도 반듯반듯하게 잘도 길을 닦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나는 하라리라 "탁월한 이야기꾼"이라는 데는 선뜻 고개가 끄덕여지지 않는다.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분명 의미가 있었지만 솔직히 나로서는 겁나 재미있지는 않았다. 첫 번째 이유는 하라리 말대로 크게 새롭지 않았기 때문이고, 두 번째 이유는 머리를 쾅쾅 쳐주는 도끼질이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별 하나를 빼는 것은 이것 때문이다.

그럼에도 하라리의 책은 읽어볼 필요성만큼은 엄지 척이다. 일단 글이 어렵지 않다. 시원시원하다. 일목요연하다. 술술 읽힌다. 한 권으로 읽는 인류세 이야기로 짱이다. 어디서든 역사 좀 아는 척하기 좋다. 물론 머리에 저장을 해두어야 가능한 일이지만. ^^

하라리는 이 책의 마지막에 다음과 같은 소망을 독자들에게 전한다. 

당신들이 이 책을 덮은 뒤에도 이 질문들이 오랫동안 당신의 마음속에 남아 있기를 바란다.

1. 유기체는 단지 알고리즘이고, 생명은 실제로 데이터 처리 과정에 불과할까? 

2. 지능과 의식 중에 무엇이 더 가치 있을까? 

3. 의식은 없지만 지능이 매우 높은 알고리즘이 우리보다 우리 자신을 더 잘 알게 되면 사회, 정치, 일상에 어떤 일이 일어날까?(544쪽) 

그의 소망은 이미 이루어지고 있다. 

"신은 인간 상상력의 산물이지만, 인간 상상력은 생화학적 알고리즘의 산물이다." 18세기에 인본주의는 신 중심적 세계관에서 인간 중심적 세계관으로 이동함으로써 신을 밀어냈다. 21세기에 데이터교는 인간 중심적 세계관에서 데이터 중심적 세계관으로 이동함으로써 인간을 밀어낼 것이다. - P534

인본주의의 계명이 "네 감정에 귀 기울여라!" 였다면, 데이터교의 계명은 "알고리즘에 귀 기울여라!"이다. - P537

세계는 전보다 빠르게 변하고 있고, 우리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데이터, 개념, 약속, 위협이 밀려들고 있다. 인간이 자유시장, 집단지성, 외부 알고리즘에 권한을 양도하는 것은 우리가 데이터의 홍수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과거에 검열은 정보의 흐름을 차단하는 방식으로 작동했다. 그런데 21세기의 검열은 사람들에게 관계 없는 정보들을 쏟아붓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사람들은 무엇에 집중해야 하는지 모르고, 그래서 중요하지 않은 쟁점에 대해 조사하고 논쟁하느라 시간을 보내기 일쑤이다. 고대에는 힘이 있다는 것은 곧 데이터에 접근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오늘날 힘이 있다는 것은 무엇을 무시해도 되는지 안다는 뜻이다. 그러면 이 혼돈의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 가운데 우리는 무엇에 초점을 맞춰야 할까? - P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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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4-13 11:0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와 30일만에 완독하셨다니 고생하셨습니다^^ 유명한 책인데 안읽어봐서 이번기회에 읽어볼까? 생각이드네요ㅎㅎ

행복한책읽기 2021-04-13 11:50   좋아요 4 | URL
네에. 하라리는 한 권은 읽어봄이 좋다는 느낌이 들게 한 작가였어요. 저는 내쳐 사피엔스도 읽을라구요 ㅋ

scott 2021-04-13 11:1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행복한 책읽기님 말씀에 동감~
머리를 꽝 때리는 한방이 없음 ㅎㅎ
코로나 시기에 하라리에 시각 논리도 그다지 먹히질 않는것 같네요.

행복한책읽기 2021-04-13 11:51   좋아요 4 | URL
아. 이 공감에 기분 으쓱. ‘쾅‘ 한방 없음 ㅋㅋ

청아 2021-04-13 11:4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사피엔스>가 저는 이런 느낌이었어요.ㅋㅋㅋ<총균쇠>먼저 읽고 얼마뒤에 바로 봐서 그런지 그저 ‘인류사에 관해 심플하게 잘 정리했다‘는 정도? 여성문제에 관한 시각은 그래도 의미있어 보였고 암튼 <총균쇠>가 더 디테일하고 놀랍다는 생각.
이 책 그래도 저번 올리신 글 때문에 궁금해요. ‘영혼이 없다던‘
부분. 어떤 내용이 담겼을지!🧐🤔

행복한책읽기 2021-04-13 11:56   좋아요 3 | URL
아. 총균쇠. 글쿤요. 어떡하나. 사피엔스 같이 읽기로 했는데, 총균쇠 읽자고 할걸 하는 후회가 ^^;;;; 영혼이 없다는 . . . 뇌도 결국 알고리즘으로 돌아간다는 얘긴데. 전 영혼은 몰겠고, 인간의 자의식은 알고리즘만으로 설명이 안 된다고 여겨져요.^^

희선 2021-04-15 01:0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사피엔스》를 좀 더 재미있게 봤습니다 다른 책은 거의 본 적 없어서 유발 하라리가 쓴 사피엔스 역사 재미있었습니다 생각해 본 적 없는 것도 있기도 했어요 이 책은 보기는 했는데 그것보다 잘 못 봤네요 유발 하라리 책은 두권밖에 못 봤습니다


희선

행복한책읽기 2021-04-15 11:41   좋아요 0 | URL
하라리 책 두 권은 다른 책 대여섯 건 수준이잖아요. 사피엔스를 좀 더 잼나게 보셨다니 오호, 오늘부터 읽기 시작하는데 참고가 됩니다. 고마워요. ^^
 

20210412 #시라는별 27

꽃 대 꽃 
- 행복한책읽기 

엄마 이것 좀 보세요 
우리 집 앞에 꽃이 폈어요
엄마가 좋아하는 보라색 꽃이에요

그렇구나
참 예쁘구나 참 신기하구나 
단단한 시멘트 바닥을 뚫고 피었구나

엄마 나두 얘랑 같이 사진 찍을래요

딸아 그거 아니 
너는 저보다 단단한 구멍을 뚫고
피어난 장한 꽃이란다

저 보라색 꽃도 참 예쁘고 기특하지만 
그런 꽃 눈 밝게 발견하고 
맘 곱게 반길 줄 아는
네가 더 예쁘고 기특하구나 

그 눈 그 맘
네 생애 내내 간직하고 살려무나


이것은 2013년 4월에 쓴 시다. 시라고 말하기 어쭙잖지만 어쨌든 나로서는 시였다. 어린이집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일곱 살 딸이 발견한 꽃이었다. 키가 작은 아이들은 바닥에 피는 풀꽃들을 어른들보다 더 잘 알아본다. 일곱 살 딸은 내 키를 넘는 중딩이 되더니 바닥꽃들을 들여다보지 않고, 나는 키가 점점 작아지는지 내 어린 딸처럼 땅을 자꾸 내려다본다. 위로 솟구친 나무들의 꽃잎이 하나둘 지기 시작하자 흙밭에서 혹은 시멘트 바닥에서 풀꽃들이 너도나도 얼굴을 내민다.

포도송이처럼 알알이 달린 청보라꽃이 하도 예뻐 사진을 찍고 있으니 지나가는 아주머니가 물었다.

ㅡ 그 꽃 이름이 뭐래요?
ㅡ 저도 몰라요. 그냥 예뻐서요.
ㅡ 그죠. 아유. 나도 얼마나 예쁜지.
ㅡ 이름이 뭔지 알아봐 드릴게요. 

나는 내 손안의 식물도감 ‘모야모‘ 앱을 켜 꽃 이름을 물었다. ‘무스카리‘였다. 백합과에 속하는 다년생초로 꽃의 형태가 포도송이와 비슷해서 ‘그레이프 히야신스 Grape-Hyacinth‘ 라고 불린다고 한다. 꽃말은 화려하고 탐스러운 모습과 달리 실의, 실망이다. 그런 꽃말이 붙게
된 데는 태양의 신 아폴론과 소년 히야킨토스의 슬픈 사랑 때문이다.

꽃이 예뻐 보이면 그때부터 나이가 든 거라고들 한다지. 그럼 어떠랴. 꽃을 볼 줄 아는 눈이 못 보고 가는 눈보다 낫지 않은가. 봄이면 수필가 윤오영 선생이 <<문장의 향기>>에서 말한 구절이 떠오른다. ˝젊은이의 봄은 기쁨으로 차 있는 홑겹의 봄이지만, 늙은이의 봄은 기쁨과 슬픔을 아울러 지닌 겹겹의 봄이다.˝

윤오영 선생의 말대로 앞으로 봄을 더 못 볼까 슬퍼하는 대신 또 한 번의 화사한 봄을 ‘눈 밝게, 맘 곱게‘ 볼 수 있는 것에 감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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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4-12 07:0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책읽기님의 시 멋있어요. 혹시 시인이신가요? 히야신스 사진 잘 봤습니다^^

행복한책읽기 2021-04-12 23:51   좋아요 1 | URL
시인들이 말하시길 우리 모두 시인이라고. 다만 안 쓴다고. 하시지만, 실은 못 쓰는 거겠죠.^^;;

청아 2021-04-12 09:2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와 ‘꽃 대 꽃‘ 너무 예쁜 시 예요!!
눈 밝게, 맘 곱게 볼 수 있는 화사한 봄. 책읽기님 보면서 소소한 것에도 감사할 줄 알아야 시인이 되겠구나 느껴요. 😉
그나저나 저 중학교때 부터 꽃이 예뻤는데 어쩌죠? 헉..ㅋㅋㅋ

행복한책읽기 2021-04-12 23:52   좋아요 1 | URL
ㅋㅋㅋ 중학교. 미미님은 오래전부터 겹겹의 봄을 누리고 산 걸로. 아. 배 아파라. ^^

scott 2021-04-12 11:0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 눈 그 맘
네 생애 내내 간직하고 살려무나]

행복한 책읽기님 시인의 눈으로 이렇게 멋진 꽃사진을!
별빛을 품은 꽃망울처럼 시어를 빚는!!

행복한 책읽기님은
새벽 이슬과 별빛을 품은 시인이쉼

행복한책읽기 2021-04-12 23:54   좋아요 2 | URL
아놔. 어쩌면. scott님 찬사에 몸둘 바를. 별빛 품은 꽃망울. 캬!!! scott님이 진정 시인이십니다^^

희선 2021-04-12 23:5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어릴 때 일을 이렇게 시로 남겨둬서 좋을 듯합니다 나중에 이 시 따님한테 써서 주세요 그러면 아주 좋아할 거예요 벌써 봤을지... 꽃은 나무에도 피지만 땅에서도 피는군요 그런 것도 잘 보면 좋겠습니다


희선

행복한책읽기 2021-04-13 00:00   좋아요 2 | URL
네. 안 그래도 애들 크면 제가 저네들에 대해 쓴 글들 모아 주려구요. 애들 어릴 땐 뭐라도 잘 써지던데 좀 크니 안 써져요. 말을 안 들어서 그런가봐요 ^^;;

라로 2021-04-13 01:5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책님 너무 멋진 엄마세요!!! 아이들의 감수성이 막 들리는 것 같아요. ^^

행복한책읽기 2021-04-13 15:04   좋아요 1 | URL
히히히. 저희 애들이 감수성은 좀 있습니다. 저 좋은 엄마이고 싶었는데 자꾸 버럭 엄마가 되어가고. 요즘은 딸에게 욕쟁이 엄마라는 말까지 듣습니다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