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움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아니 에르노 지음, 이재룡 옮김 / 비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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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14 부끄러움의 뿌리는 어디일까 

내가 읽은 아니 에르노의 세 번째 작품. <<남자의 자리>>와 <<한 여자>>가 아버지와 어머니의 삶을 전기 형식으로 재현한 것이라면, <<부끄러움>>은 저자 자신에 관한 인류학적 보고서다. ​나는 아니 에르노의 작법이 참 마음에 든다. "경험하지 않은 것은 쓰지 않는다." 원칙 아래 소설과 자전의 경계가 모호한 글쓰기를 지향하는 작가. 그의 글은 단순하고 꾸밈이 없다. 수사는 꺼져! 라고 외치는 건조한 문장들로 가득하다. 그러니까 일체의 수사를 배제한 채 사실을 충실히 따라가는 딱딱한 문체이다. 그래서 날카롭고 그래서 아프다. 거칠게 때론 묘하게. 

<<부끄러움>> 은 1940년생인 저자가 열두 살에 겪은 한 사건을 계기로 불쑥 찾아든 '부끄러움'이라는 감정의 자취를 따라가는 이야기다. 첫문장이 무섭게 강렬하다. 

"6월 어느 일요일 정오가 지났을 무렵, 아버지는 어머니를 죽이려고 했다."(23)

어두컴컴한 지하실. 아버지가 엄마의 어깨인지 목덜미를 움켜쥔 채 낫을 쳐들고 있다. 이어진 것은 지하실에 쩌렁쩌렁 울펴 퍼지는 비명소리와 울음소리. 이 장면과 소리는 저자에게 '지금까지의 나'와 '앞으로의 나'를 분명하게 가르게 만든 일대 사건이다. 이 일이 얼마나 충격적이고 공포스러웠던지, 저자는 46년이라는 세월이 흘러서야 일기에도 쓰지 못한 이야기를 처음으로 글로 옮긴다고 말한다. 그런데 털어놓고 보니, 자신이 겪은 이 극적인 사건이 자신의 가정만이 아니라 의외로 "자주 다른 가정에서도 벌어지는 평범한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든다."(27) ​

그렇다. 나는 아니 에르노의 <<한 여자>>를 읽었을 때 이국만리의 낯선 엄마가 아닌 나와 몇십 년을 동고동락한 내 어미를 대하는 듯한 기시감을 무시로 느꼈다. <<아버지의 자리>>를 읽을 때는, 내 아비가 살아서 나와 같이 지냈다면 겪고 느꼈을 법한 감정, 혹은 내 딸이 제 아빠에게 느끼고 있고 앞으로 느낄지 모를 감정을 상상하고 이해할 수 있었다. <<부끄러움>>도 마찬가지였다. 

"그 일요일은 나와 이전의 나에 대한 모든 것 사이를 가르는 어떤 장막처럼 남게 되었다."(29)

열두 살의 저자는 이 사건으로 엄청난 도덕적 혼란을 겪는다. "나를 사랑하는 아버지가 나를 사랑하는 어머니를 제거하려" 했다니.(29) 제 두 눈으로 보았지만 도무지 믿을 수가 없고 믿고 싶지 않은 일이다. 그날의 경악은 수시로 가슴을 짓누른다. 나를 더 답답하게 만드는 것은 이 일을 누구에게도, 심지어 자신에게조차 말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나에게 진짜 비밀이 생겼다. 그럴 때 찾아드는 감정, 그 마음도 부끄러움이 아닐까. 

내 경우에는 엄마의 직업이 나를 가장 부끄럽게 만드는 것이었다. 학년초면 실시되는 가정환경 조사에서 답을 쓰기 어려운 칸이 직업칸이었고, 친구 부모님을 만났을 때 얼굴을 화끈거리게 하는 질문이 '너그 엄마 뭐하시노?'였다. 나는 나를 '거짓말을 하게 만드는 사람'으로 몰고가는 엄마가 정말 미웠다. 이 엄마는 내가 원하지 않는 엄마였고, 저자의 표현대로 나의 "불행을 벌어"놓는 자였다.(25) 그런 감정을 느끼고 그런 인지를 하게 된 시점이 내 경우에도 열두 살 즈음이었다. 

열두 살. 사춘기가 시작되는 시기. 내가 누구인지를 묻게 되는 시기. 나를 둘러싼 세계가 어떤 곳인지 보게 되는 시기. 내가 자리한 세상이 내가 꿈꾸고 바라는 세상이 아니라고 여겨질 때 우리는 대개 탈출을 꿈꾼다. 속으로 주문처럼 되뇌인다. 나는 절대로 엄마아빠같이 살지 않을 거야! 나는 당신들보다 더 나은 세계로 진출해 더 나은 삶을 살 거야! 다행히 저자가 살았던 1950년대, 내가 살았던 1980년대에는 그 탈출이 가능했다.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있던 시절이었다. 다행히 저자는 똑똑한 유전자를 물려받아 자신이 잘하는 '공부'로 그 탈출을 도모할 수 있었다. 그러나 . . . . . . 

'나'에게 학교를 다닌다는 것은 하층 노동계급의 주택과 언어, 그 관습으로부터 벗어나 중상층 부르주아의 세계로의 편입을 의미하는 것에 다름 아니었던 것이다. / 아니 에르노는 이 편입이 자신에게 '부끄러움'이라는 감정을 가져다주었다고 회상한다. . . . . 사립학교를 '우리'로 인식하는 순간, '나'는 자신이 거처해온 '우리 동네'와 자신의 존재의 기원인 '우리 가족'을 다시는 '우리'로 받아들이지 못하게 된다. . . . . . 그것은 비로소 자신을 둘러싼 친숙했던 세계가 '천박함'이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세계에 불과했음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라고 할 만하다. 그 순간 "우리 존재의 모든 것이 부끄러움의 표식"으로 변한다. . . . . . . '부끄러움'은 이런 식의 계급적 인식과 더불어 찾아온다. '나'는 이제 '부끄러움'이라는 감정의 동요 없이는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지 못하는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다.(15-6쪽 문학평론가 신수정의 <작품 소개>  중) 

그랬기에 아니 에르노는 자신의 '부끄러움'을 추적한다. "나 자신의 인류학자"(48)가 되어 1952년의 6월의 그 일요일로 돌아가 "활자화된 글로"(40) 자신의 삶을 복원한다. 이런 시도는 저자의 말대로 "단숨에 모든 것을 노출하는 위험을 무릅썼다는"(40) 의미이다. 저자에겐 위험한 시도였으나 독자에겐 고마운 시도였다. 에르노는 자신을 둘러싸고 있었던 장소의 말들을 되살려 그가 산 세상을 보여준다. 어떤 언어를 사용하느냐가 그 사람이 사는 세계, 그의 생활수준을 짐작할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

1950년대 프랑스 소도시 노동계급의 생활상과 인간 군상은 내가 살던 1980년대 대한민국 지방 소도시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니, 다르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너무나 흡사해서 깜짝 놀랄 정도였다. 더욱 놀라운 지점은 '그때 그들'의 관습과 대화를 이 시대에도 어디에서나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남의 행동거지를 관찰하고 숨겨져 있는 아주 조그만 습성을 분석했고, 그런 것들을 모아 해석을 붙이면서 한 사람의 역사가 만들어졌다. 그것은 각자가 조그만 말 한마디씩 덧붙여서 만들어지는 집단 소설 같은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가게나 술집에 모여 앉아 "그자는 쓸 만한 사람이야"라든지 "그 여자는 싸구려야"라는 식으로 요약을 하곤 했다."(70) 

참으로 익숙한 풍경이지 않은가. 일명 뒷담화가 만들어내던 거짓 역사가 지금은 뉴스와 각종 SNS가 만들어내는 가짜 역사로 이전되었을 뿐이다. 에르노의 이 인류학 보고서에 등장하는 이런 류의 시시콜콜한 재현들은 사람 사는 거, 참, 거기서 거기네 하는 동질감을 느끼게 한다. 연민을 거둬낸 거리 두기 작법이 아이러니하게도 보잘것없는 인간들에 대한 짙은 연민을 불러일으킨다. 세상 모든 없이 사는 사람들, 소외 당하며 사는 이들의 고독과 고통과 슬픔을 아픔을 돌아보고 공감하게 만든다. 내가 에르노의 글을 좋아하는 지점이고, 그의 책을 찾아 읽는 이유이다. 

'부끄러움' 보고서를 작성하기 전 아니 에르노는 자신에게 글쓰기가 무엇인지를 이렇게 정의한다.

"내게 글쓰기는 헌신이었다. 나는 글을 쓰면서 많은 것을 잃었다. 하지만 글쓰기가 없다면, 실존은 공허하다. 만일 책을 쓰지 않았다면 죄책감을 느꼈을 것이다." (21)

이 보고서 덕에 저자는 죄책감을 덜어냈을 것이다. 내가 궁금한 대목은 이것이다. 열두 살의 그 일요일 이후 부끄러움이 삶의 방식으로 장착돼 몸에 배어버렸다고 말한 저자가 이 책을 쓰는 동안 '부끄러움'에서 놓여 났는지 말이다. 

나? 나는 어떨까. 너무 창피하고 수치스러워 차마 입에 담지 못했던 엄마의 직업을 10년의 침묵을 깨고 공개적으로 말했던 그 순간, 나는 '부끄러움'에서 해방되었고 안도감을 느꼈다. 그때 내가 느낀 또하나의 감정은, 말을 하면 무겁다고만 느껴지던 일이 가벼워진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별 거 아닐 수 있구나 하는 가벼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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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1-04-14 15:4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안그래도 아니 에르노 언젠가 읽어야지×30 했었는데 솔깃하네요!
학교에서도 심지어 이력서에도 왜들 부모님 학교,직업이 그리 궁금한지..요즘엔 거의 안그런다는데 참.. 쓸때마다 ˝왜 궁금해 어디 쓸껀데?˝ 혼자 이러고 질문했어요.ㅋㅋㅋㅋ

행복한책읽기 2021-04-15 00:03   좋아요 2 | URL
이 작가에 대한 미미님의 리뷰 궁금함요. 이 분 책은 짧아서 날 잡아 몇 권 몰아쳐 읽을 수도 있어요. ˝왜 궁금해 어디 쓸껀데?˝ ㅋㅋㅋㅋ 학창시절에 미미님 같은 친구 있었음 엄청 든든했을 것 같아요. ^^

scott 2021-04-14 16:5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니 에르노의 글쓰기는 단순한 자전적 서사를 넘어서는 존재론적 고민까지 담은 한인간의 내밀 보고서,,
나를 낳아준 부모라는 존재를 부정 할 수 없듯이
인정 하고 싶지 않은 존재가 결국에는 내 자신이라는것

행복한 책읽기님
맞습니다 별거 아닌것

이런저런것 꼬치꼬치 캐묻는 인간들
당신부터 말하시오 ㅎㅎ

행복한책읽기 2021-04-15 00:09   좋아요 2 | URL
˝존재론적 고민까지 담은 한 인간의 내밀 보고서˝ 역쉬 scott님. 아니 에르노도 이미 섭렵하셨군요. 저는 올해 이 작가를 만나 참 좋아요. 북플 친구들 덕에 알게 된 작가였음요. scott님도 학창시절 제 친구였음 한층 따봉이었겠어요. 미니님과 더불어 좌청룡우백호^^

희선 2021-04-15 01:0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니 에르노 이름은 알아도 책은 한권도 못 봤네요 자신한테 일어난 일만 쓴다고 해서 그런 건지... 저는 그런 거 안 쓰고 싶기 때문에... 말하지 않아서 무거운 것보다 말해서 가벼운 게 더 좋을지, 어쩌면 자신은 못해도 아니 에르노가 대신 말해줘서 좋아하는 사람도 있겠습니다


희선

행복한책읽기 2021-04-15 11:46   좋아요 0 | URL
자신에게 일어난 일 뿐 아니라 저자가 살았던 시대상도 잘 보여주어요. 사는 모습이 우리나라와 별 다르지 않아 재밌어요. 사람들 뒷담화 하는 모습도 진짜 비슷해요. 다 그런 건 아니지만, 말로 털어버려 가벼워지는 게 있어요. 희선님도 경험해 보시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