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412 #시라는별 27
꽃 대 꽃
- 행복한책읽기
엄마 이것 좀 보세요
우리 집 앞에 꽃이 폈어요
엄마가 좋아하는 보라색 꽃이에요
그렇구나
참 예쁘구나 참 신기하구나
단단한 시멘트 바닥을 뚫고 피었구나
엄마 나두 얘랑 같이 사진 찍을래요
딸아 그거 아니
너는 저보다 단단한 구멍을 뚫고
피어난 장한 꽃이란다
저 보라색 꽃도 참 예쁘고 기특하지만
그런 꽃 눈 밝게 발견하고
맘 곱게 반길 줄 아는
네가 더 예쁘고 기특하구나
그 눈 그 맘
네 생애 내내 간직하고 살려무나
이것은 2013년 4월에 쓴 시다. 시라고 말하기 어쭙잖지만 어쨌든 나로서는 시였다. 어린이집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일곱 살 딸이 발견한 꽃이었다. 키가 작은 아이들은 바닥에 피는 풀꽃들을 어른들보다 더 잘 알아본다. 일곱 살 딸은 내 키를 넘는 중딩이 되더니 바닥꽃들을 들여다보지 않고, 나는 키가 점점 작아지는지 내 어린 딸처럼 땅을 자꾸 내려다본다. 위로 솟구친 나무들의 꽃잎이 하나둘 지기 시작하자 흙밭에서 혹은 시멘트 바닥에서 풀꽃들이 너도나도 얼굴을 내민다.
포도송이처럼 알알이 달린 청보라꽃이 하도 예뻐 사진을 찍고 있으니 지나가는 아주머니가 물었다.
ㅡ 그 꽃 이름이 뭐래요?
ㅡ 저도 몰라요. 그냥 예뻐서요.
ㅡ 그죠. 아유. 나도 얼마나 예쁜지.
ㅡ 이름이 뭔지 알아봐 드릴게요.
나는 내 손안의 식물도감 ‘모야모‘ 앱을 켜 꽃 이름을 물었다. ‘무스카리‘였다. 백합과에 속하는 다년생초로 꽃의 형태가 포도송이와 비슷해서 ‘그레이프 히야신스 Grape-Hyacinth‘ 라고 불린다고 한다. 꽃말은 화려하고 탐스러운 모습과 달리 실의, 실망이다. 그런 꽃말이 붙게
된 데는 태양의 신 아폴론과 소년 히야킨토스의 슬픈 사랑 때문이다.
꽃이 예뻐 보이면 그때부터 나이가 든 거라고들 한다지. 그럼 어떠랴. 꽃을 볼 줄 아는 눈이 못 보고 가는 눈보다 낫지 않은가. 봄이면 수필가 윤오영 선생이 <<문장의 향기>>에서 말한 구절이 떠오른다. ˝젊은이의 봄은 기쁨으로 차 있는 홑겹의 봄이지만, 늙은이의 봄은 기쁨과 슬픔을 아울러 지닌 겹겹의 봄이다.˝
윤오영 선생의 말대로 앞으로 봄을 더 못 볼까 슬퍼하는 대신 또 한 번의 화사한 봄을 ‘눈 밝게, 맘 곱게‘ 볼 수 있는 것에 감사하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