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426 #시라는별 31 

비켜준다는 것 
- 안도현 

둥글레 새싹이 
새싹의 대가리 힘으로 
땅을 뚫고 밖으로 고개를 내민 게 아니다 

땅이 제 몸 거죽을 열어 비켜주었으므로 
저렇드키, 저렇드키 
연두가 태어난 것 

땅이 비켜준 자리 
누구도 구멍이라 말하지 않는데 
둥글레는 미안해서 초록을 펼쳐 가린다


안도현 시인의 <<북항>>에 들어 있는 시다. 얼어붙어 땅이 따스한 기운에 속살을 들썩이는 초봄에 올렸으면 더 좋았을 시다. 둥글레 새싹이 ˝땅을 뚫고 밖으로 고개를 내민˝ 것은 ˝땅이 제 몸 거죽을 열어˝ 길을 터 주었기 때문이라고 시인은 말한다. 나는 이 시를 이렇게 읽었다. 밀어올리는 힘과 열어주는 힘이 만나 ˝연두˝를 태어나게 하고 ˝초록˝을 키웠다고. 두 힘이 합쳐져 보이지 않던 것을 보이게 했다고. 순우리말로 본다는 뜻의 봄을 열어보였다고.

며칠 전 책의 날이 결혼기념일이었다. 내가 열어준 길 따라 자기네 힘 닿는 데까지 대가리를 밀어올려 내 몸 거죽을 뚫고 세상 밖으로 나온 우리집 두 연두는 파릇파릇한 초록이 되었다. 내게 난 구멍을, 요즘 들어 바람 숭숭 드는 그 구멍을 두 초록이 따로또같이 바람 들지 않게 자신들의 푸름으로 가려준다. 물론 이따금씩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네 바퀴로 굴러가는 가족 자동차의 앞바퀴 두 개가 점점 닳고 있다는 것. 뒷바퀴 두 개에 자리를 비켜줄 날이 언제고 도래하리라는 것. 그렇다 해도 아직은, 언제나 봄날 같기만 한 아이들이어서 내게는 봄이 조금 더 오래 머물겠구나.

둥글레의 어린 새싹은 나물을 해먹기도 한단다. 신선과 선녀가 먹었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젊음과 아름다움을 유지하게 해준다고. 새싹은 이미 먹기 글렀으니 둥글레차라도 마셔 볼까.(첫 사진)

내가 찍은 사진은 광대나물과 꽃잔디다. 광대가 분장을 한 꽃 같다 해서 광대나물이고 꽃이 땅을 뒤덮듯이 피는 꽃이라 꽃잔디 혹은 지편 패랭이꽃이라고 한다.


댓글(8)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새파랑 2021-04-26 06:5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조금 지난 결혼기념을 축하드려요 ^^ 땅이 제 몸을 열어 길을 터 주었다는 시각은 너무 신선하고 좋네요. 봄을 열어준 거라니~

행복한책읽기 2021-04-27 12:46   좋아요 1 | URL
고마워요~~~~ 그죠. 시인의 감각은 정말 다르다는 걸 또 느꼈어요.^^

붕붕툐툐 2021-04-26 23:0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결혼기념일 축하드려요~ 좋은 날 결혼하셨네요!
둥글레가 저렇게 생겼는지 처음 알았어요!!
꽃이름을 잘 아는 사람들 참 부러워요!!

행복한책읽기 2021-04-27 12:48   좋아요 2 | URL
툐툐님 고마워요. 저도 꽃이름 전혀 몰라요. 산책 하다 보니 봄이라 야생화들이 자꾸 올라와서 식물앱에 이름 물어보고 구글이나 네이버에 검색해요.^^

scott 2021-04-26 23:4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행복한 책읽기님에 어여쁜 새싹 둘!에게
사랑을 ˛ε♡з¸
점점 닳고 있는 행복한 책읽기님 자동차 앞바퀴에
안전 핀을 Ƹ̵Ӝ̵Ʒ
4월 만물의 화려함이 화알짝
행복한 책읽기님
가정에 웃음꽃이 만발 하기를 바래요 !!
💐

행복한책읽기 2021-04-27 12:50   좋아요 3 | URL
와우. 안전핀!!! scott님 감솨. 당분간 잘 굴러가게 되었네요. scott님 덕에 웃음꽃 만발하겠음.^^

희선 2021-04-27 01:0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새싹이 땅을 뚫고 나온다고만 생각했는데 땅이 비켜주기도 하는 거였군요 아기도 엄마가 밀기도 하고 자기 스스로 나오려고 한다늘 말 본 적 있어요 아기도 나오느라 고생하겠지요 그런 아이들이 많이 자라서 좋고 그런 모습을 지켜봐서 좋을 듯합니다 책의 날 언제 정했는지 모르겠지만, 뜻있는 날이 결혼기념일이어서 좋으시겠습니다 지났지만 축하합니다 앞으로도 네 식구 건강하게 즐겁게 사시기 바랍니다


희선

행복한책읽기 2021-04-27 12:52   좋아요 2 | URL
고마워요 희선님. 결혼기념일은 맛난 거 먹은 날로 기억될 듯요. 사실 늘 사는 거라 기념일이 뭐 대수인가 싶답니다.^^;;; 희선님도 건강하게, 즐겁게 지내면 좋겠어요.^^
 
연년세세 - 황정은 연작소설
황정은 지음 / 창비 / 2020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무도 아닌》만큼은 아니지만 황정은 글은 역시 좋다. 폐부를 찌르는 것이 여전하다. 아무리 붙어사는 가족이어도 그 속은 아무도 모른다. 어쩌면 속속들이 모르는 편이 나을지 모른다. 다만 다가갈 뿐. 곁에 있을 뿐. 아무것도 아닌 일 같지만 그건 굉장히 중요한 일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섯째 아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7
도리스 레싱 지음, 정덕애 옮김 / 민음사 / 1999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읽는 내내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소설. 머리털이 쭈뼛쭈뼛 서는 섬뜩함. 심장을 쥐어짜거나 쿡쿡 찌르는 불편하기 짝이 없는 리얼함. 문을 닫지 않은 결말. 행복이란? 정상이란? 가족이란? 무서운 건 아이보다 그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었다. 강추!!

댓글(9)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초딩 2021-04-24 19:25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옷 뭔가 재미있을 것 같아요~~

행복한책읽기 2021-04-25 12:16   좋아요 1 | URL
재밌으면서 무서워요. 도리스 레싱은 우리가 보고 싶지 않은 면을 그려내는 작가 같아요.^^

얄라알라 2021-04-24 20:1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요새 알라딘 대세 소설이네요^^ 추천이 쌓이는데 읽지 않고 있을 때의 가벼운 죄책감이라니!

행복한책읽기 2021-04-25 12:18   좋아요 2 | URL
대세인가요? 저는 새파랑님 올린 글보고 급 땡겨서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었어요. 북사랑님 추천 <두 늙은 여자>도 대출했어요. ㅋ 우리 죄책감은 내려놓아요^^

붕붕툐툐 2021-04-24 21:0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행책님! 강추하시고서 별 하나 뺀 이유가 궁금합니다!!ㅎㅎ

행복한책읽기 2021-04-25 12:21   좋아요 2 | URL
별 하나 뺀 건 제가 원하는 태도가 없었거든요. 잘쓴 리얼이나 또다른 긍정적 리얼 없이 암담하기만 해서요.^^;;

새파랑 2021-04-24 22:13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저도 최근에 읽어봐서 책읽기님의 기분을 알 것 같아요ㅎㅎ 섬뜩섬뜩~!

행복한책읽기 2021-04-25 12:24   좋아요 3 | URL
새파랑님 덕분에 넘 잘 읽었어요. 도리스 레싱은 불편한 작가네요. 계속 도끼질 해대는 느낌이었어요. 아주 좋아요. ㅋ 이 책이 레싱으로 가는 발판이 되었어요. 감솨!!!^^

scott 2021-04-25 17:3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도리스 레싱 황금 노트북 사알짝 추천하고 감~(◍˃̶ᗜ˂̶◍)ノ”
 

20210422 #시라는별 30 

일기 
- 안도현 

오전에 깡마른 국화꽃 웃자란 눈썹을 가위로 잘랐다
오후에는 지난여름 마루 끝에 다녀간 사슴벌레에게 엽서를 써서 보내고 
고장 난 감나무를 고쳐주러 온 의원에게 감나무 그들의 수리도 부탁하였다 
추녀 끝으로 줄지어 스며드는 기러기 일흔세 마리까지 세다가 그만두었다 
저녁이 부엌으로 사무치게 왔으나 불빛 죽이고 두어 가지 찬에다 밥을 먹었다 

그렇다고 해도 이것 말고 무엇이 더 중요하다는 말인가 


2012년 봄에 출간된 <<북항>>은 안도현 시인의 열 번째 시집이다. <<간절하게 참 철없이>>가 너무 좋아 내쳐 <<북항>>과 안도현의 문장들 <<고백>>까지 조금씩 아껴가며 읽고 있다.

2012년 문화웹진 <채널예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안도현 시인은 지난 시간을 돌아봤을 때 기억에 남는 사건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특별한 사건이 있다기 보다는 매순간 만나는 것들, 아주 작은 경험들이 모두 크고 작은 사건이죠. 문학이라는 것은 작은 경험들을 의미 있게 만드는 것인데, 제 경우는 어쩌면 큰 사건 없이 너무 평이하게 살아온 게 약점이라면 약점이 아닐까 싶네요.˝

˝아주 작은 경험들을 의미 있게 만드는˝ 작업. 그 작업을 잘도 그려냈구나 싶은 시가 이 시집의 첫 시<일기>였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별거 없는 하루 일과를 줄줄이 늘어놓고는 마지막 행에서 시인이 외치는 소리.

그렇다고 해도 이것 말고 무엇이 더 중요하다는 말인가

나를 이루는 것은 크고 굵직한 사건들보다 소소한 일상들이 아닐까. 날마다 반복되는, 고만고만하고 밋밋한 일상이 ˝부엌으로 사무치게˝ 찾아드는 저녁처럼 내 마음에 깊이 스며들어 나를 만드는 것이 아닐까.

사진은 늦은 오후 산책길에 만난 작은 봄꽃들, 죽단화와 콩제비꽃이다. 


댓글(12)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새파랑 2021-04-22 08:1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행복한책읽기님어 올려주신 이 시도 너무 좋네요~ 안도현 시인 책 꼭 읽어봐야겠습니다 ^^ 사진도 너무 봄 느낌이 나요~

행복한책읽기 2021-04-25 12:26   좋아요 1 | URL
안도현 한 권을 권한다면 이 시집보다 <간절하게 참 철없이>요^^

scott 2021-04-22 12:0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행복한 책읽기님이 포착한 죽단화와 콩제비꽃
이라는 이름 알려주시지 않았다면 죽을떄까지 몰랐을 꽃이름
[.....그렇다고 해도 이것 말고 무엇이 더 중요하다는 말인가...]



안도현 시인은 시를 짓고
행복한 책읽기님은 생명의 움틈을 포착~

좋아요 하트 백만개 눌러요!!

.。.:*・゚♡★♡゚.。.:*・゚♡★♡゚・*:.。 。.:*・゚♡★♡゚・*:.。 。.:*・゚♡★♡゚・*:.。 。.:*・゚♡★♡゚*・゚♡★♡゚・*:.。 。.:*・゚♡★♡゚・.。.:*・゚♡★♡゚・*:.。 。.:*・゚♡★♡゚・*:.。 。.:*・゚♡★♡゚・*:.。 。.:*・゚♡★♡゚♡★♡゚

행복한책읽기 2021-04-25 12:27   좋아요 2 | URL
scott님 하트 백만 개!! 세상 첨 받아보는 백만 하트. ㅋ 감솨감솨^^

청아 2021-04-22 12:5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아 찜합니다~♡ 일상의 작은 것들로 부터 도를 깨우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면에서 일기만큼 좋은 도구도 없을것 같구요. 시는 그야말로 궁극이죠!
안도현 시인은 역시 그 둘을 다 알고 계시네요. 박준님 다음은 안도현시인 읽음 되네요ㅎㅎ
사진도 너무 훌륭해요.🙆‍♀️

행복한책읽기 2021-04-25 12:28   좋아요 2 | URL
미미님께도 역시 <간절하게 참 철없이>를 먼저 권함요^^

라로 2021-04-22 14:5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국단화와 콩제비꽃!! 어쩜 이름을 보고 꽃을 보니까 딱 맞는 이름 같아요!!! 이뿌다요.

행복한책읽기 2021-04-25 12:26   좋아요 2 | URL
그죠. 저도 사물이랑 이름 매치가 절묘하다 했어요^^

붕붕툐툐 2021-04-22 20:5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웅~ 시 너무 좋네요! 꽃사진도 예쁘고요! 저도 죽단화와 콩제비꽃이란 이름 첨 들었어요. 또 하나 배워가네요. 꽃이름도 참 예뻐요~

행복한책읽기 2021-04-25 12:30   좋아요 3 | URL
저도 이름은 이번에 첨 알았어요. 식물앱이 있으니 전국 아마 전문가들이 알려주시네요. ^^

희선 2021-04-25 01:3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별 일 없는 일상이어도 거기에서 다른 걸 보여주는 게 시군요 일상을 반짝이게 한다고 해야 할까 저는 황매화라는 것만 알았는데 죽단화라고도 하는군요 그냥 황매화도 있고 저건 겹황매화라 하네요


희선

행복한책읽기 2021-04-25 12:31   좋아요 4 | URL
오호. 희선님 황매화를 알고 있었군요. 죽단화 황매화 이름과 차이를 저도 이번에 알았어요. ‘일상을 반짝이게 한다‘ 맞아요. 맞아^^
 
기록하기로 했습니다. - 잊지 않으려고 시작한 매일의 습관, 자기만의 방
김신지 지음 / 휴머니스트 / 2021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무엇을 어떻게 기록해야 할지 막막한 이들이 읽으면 좋은 책 같다. 저자의 시선이 따스하다. ˝모든 삶은 기록될 가치가˝ 있고 ˝내가 나로 살아서 할 수 있는 기록˝이 분명 있지만, 요즘 내가 원하는 삶은 물 흐르듯 흘려보내는 삶인지라, 많은 걸 흘려보냈음.^^

댓글(3)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청아 2021-04-20 16:4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읽고 싶던 책인데 저번에 다른 분도 그랬고 평점이 낮네요ㅋㅋㅋ많이 흘려 보내셨다니..🙄

행복한책읽기 2021-04-20 16:4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ㅋㅋ 나쁘지 않은데 깊이가 좀 없어서. 구매를 권하고 싶지 않다는^^;;;

희선 2021-04-21 03: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기록하고 그걸 기억하면 좋겠지만, 물 흐르듯 흘려보내는 것도 좋겠습니다 자신이 한 기록은 자신밖에 안 볼 수도 있지만, 그것도 그렇게 나쁘지 않겠지요


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