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130 매일 시읽기 93일겨울 꿈 - 이규리 언제 어디서나 가능한 불가능 언제 어디서나 불가능한 가능 갈 수 없어요 가고 싶어요 안녕 용기를 내어 죽자사자 뛰어왔는데 여보 이건 꽃이 아니잖아 그토록 아무것도 아니었던 의문들 이 간결한 근심들 눈알을 버린다면 그때 꽃을 볼 수 있을 거라는데 미안해 당신을 버릴래 부질없음을 부질없어하는 회오리 꽃은 처음부터 있지 않았어 그리고 쏜살같이 먼 풍경이 되고 마는 북서풍 2020년을 이틀, 더 정확하게는 하루하고 두어 시간을 남겨둔 12월 30일 수요일. 밤 아홉 시 30분. 내가 사는 곳 현재 기온 영하 11도. 한파가 몰려든 겨울밤 눈과 마음을 사로잡은 시는 이규리 시인의 <겨울 꿈>.<겨울 꿈>은 첫 두 행이 시의 묘미를 여실히 보여준다. 압축과 응축의 미학. ˝언제 언디서나 가능한 불가능 / 언제 어디서나 불가능한 가능˝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곳. 나에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지나온 날들이다. 물론 그 날들로 절실히 가고 싶지는 않고, 어떤 날들은 절대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꽃인 줄 알고 ˝죽자사자 뛰어왔는데˝ 꽃이 아니었어 라고 해서 무릎이 꺾였다. 궁금해 미칠 것 같았던 ˝의문들˝과 속이 타들어가도록 애태우던 ˝근심들˝이 그저 ˝간결한˝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들이었노라 해서 또 다시 무릎이 꺾였다. 허무하고 허무한데 ˝부질없음˝조차 ˝부질없˝다 해서 꺾인 무릎이 또 꺾여 철퍼덕 주저앉고 말았다. ˝꽃은 처음부터˝ 없었고, 손에 잡힐 듯 가까워진 듯한 ˝북서풍˝은 내 손에 잡히지도 못한 채 떠난 화살처럼 ˝먼 풍경˝으로 물러났다. 허무하고 또 허무해라.한 해가 저문다. 올해 나는 무슨 꿈을 꾸었지. 꿈을 꾸기는 했던가. 생각해 보니 내가 꾸는 꿈은 꾸어봤자 이룰 수 없는 꿈임을 깨닫고 언젠가부터 꿈을 꾸는 것조차 하지 않고 살아온 듯하다. 그래도 살더라. 꿈을 꾸어도 살고, 꿈을 꾸지 않아도 산다면, 어느 쪽을 택해서 살까. 시를 읽고 긁적이기 시작한지 93일째. 이 모든 행위도 ˝부질없음˝의 회오리로 날아올라 아주 ˝먼 풍경˝으로 자리하다 기억 속에서조차 잊힐지 모른다. 그럼 어떤가. ˝부질없음을 부질없어하는 회오리,˝ 부질없음을 전복시키는 역설의 마음을 품을 수 있다면 꺾였던 무릎 우두둑우두둑 곧추 세울 수도 있지 않겠는가. 삐거덕거려도 길을 가야지. 꿈은 걷는 자만이 이룰 수 있는 것이니.겨울 꿈이 시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