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바느질 수다 에디션L 1
천승희 지음 / 궁리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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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늘과 실로 날마다 ‘사랑해‘를 쓰다

​이 리뷰는 사심이 들어간 리뷰임을 밝힌다. 왜냐. 내가 이 저자와 알고 지낸 지 20년이 되는 사이이기 때문이다. 솔직히 나 자신도 놀랐다. 알고 지낸 지 그렇게 오래 된 것에 우선 놀랐고, 책을 읽으면서 알고 지낸 지 그렇게 오래 됐는데도 내가 몰랐던 그 사람이 많아서 또 놀랐다. 글이란 말로는 잘 표현할 수 없는 내밀한 속을 열어 보이는 힘이 있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다시 한 번 느꼈다. 

​책 출간과 동시에 저자의 손편지가 담긴 책을 받았다. 나는 단숨에 후루루 읽고 100자평을 올린 후 옆지기와 중딩 딸에게 일독을 강요했다. 옆지기의 평, ˝천승희씨는 현모양처네.˝ 딸의 평, ˝엄마는 왜 이모처럼 바느질을 못 해?˝ 고로 이 책은 나를 ˝바느질 못하는 악처˝로 내동댕이쳤다. 꺼이~~

​삶과 글이 일치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이 저자는 그렇다. 나는 다시 책을 펼쳐 저자가 한 땀 한 땀 천천히 바느질을 한 것처럼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읽어 내려갔다. 글 속에는 내가 아는 그녀와 내가 모르는 그녀가 공존해 있었지만, 분명한 사실 하나는 내가 몰랐던 그녀 역시 내가 알던 그녀와 다르지 않게 더없이 따뜻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녀가 정성스럽게 짓는 누비 이불처럼 말이다. 

​˝바늘과 실로 날마다 아이들에게 ‘사랑해‘라고 쓰던 날들이었어요.˝(26) 

​​부자를 나누는 기준이 ‘세상에 하나뿐인 것‘이라고 한다면 저자의 집은 대한민국에서 상위 몇 퍼센트 안에 들 것이다. 이 집에는 세상에 하나뿐인 것들이 드글드글하다. 이불, 드레스, 한복, 모자, 셔츠, 가방, 머리끈, 인형 세트, 테이블보, 손수건, 콩주머니, 컵받침대, 행주, 생리대까지. 아홉 살 때 처음 바늘과 실을 잡고 엄마에게 배운 바느질을 저자는 두 딸을 낳은 후 저자의 표현대로 정말 ˝야무지게˝ 써먹고 있다. 아마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잘하고, 프로라고 하기에는 살짝 어설픈 솜씨지만, 적어도 가족과 지인들 사이에선 그녀는 항상 최고다. 책은 읽는 동안, 나는 진심 이런 엄마를 둔 저자의 두 딸들이 부럽기까지 했다. 그러니 내 딸이야 오죽 했을까.

바느질에 얽힌 이야기들로 가득한 이 책은 무슨 심오한 담론이나 화려한 미사여구는 없지만, 우리네 일상에서 우러나는 생각과 감정을 정직하게 썼기에 때로 저릿하고 때로 뭉클하고 때로 감동이다. 우리네 일상에 자리한 ˝작고 사소한 것들˝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를 깨닫게 해준다. 무엇보다 내가 100자평에도 쓴 것처럼 사람을 마구 따뜻따뜻, 다정다정, 포근포근하게 만들어준다.  문득 궁금해졌다. 내가 저자를 알기 때문에, 이런 느낌을 받는 걸까? 다른 독자들도 나처럼 느낄까? 그랬으면 정말 좋겠다고.

​책에도 등장하지만, 이 저자는 자신이 가진 재능을 나눌 줄 아는 사람이다. 나는 저자가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넘어 동네 엄마들과 독서 모임을 가지고 마을 사업을 벌이고 책이라면 진저리 치는 학생들에게 책을 읽어 주는 그 모든 과정을 멀리서 지켜본 사람이다. 나도 초등학생들에게 방과 후 책놀이 봉사를 해본 적이 있다. 지루해하는 아이들, 장난 치는 아이들, 소리 치는 아이들을 보며 이것은 봉사가 아니야, 할 게 못 돼 라며 한 학기만에 접었다. 저자는 나와 결이 다른 사람이었다. 

​˝지난해에는 육학년 아이들하고 한 달에 한 번 만나 책을 읽기도 하였습니다. 거칠고 뾰족뾰족하고 마음이 아파 보이는 아이들도 만나게 됩니다. 아이들 말에 상처를 받고 집에 와 끙끙 앓기도 했지요. 아무리 애를 써도 아이들이 책을 읽지 않아 안타깝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저는 어른이니 오래 화를낼 수없지요. / 그 아이들이 잘못되지 않고 잘 자랐으면 하고 간절히 바랍니다. 그래서 저는 동네에서 오가며 아이들을 지켜보는 눈이 되고 싶습니다.˝(175) 

​마을의 등대 같은 어른. 이 저자가 꾸는 꿈은 이런 것이다. 바느질처럼 ˝느리더라도 정성스럽게˝ 모든 일을 하려는 사람. 저자가 하는 말을 듣고 있노라면 나도 같은 마음으로 같은 길에 서 있고 싶어진다. 적어도 내게는 그랬다. 나와 같은 마음을 품는 사람들이 늘어나게 이 책이 느리더라도 꾸준히 읽혔으면 좋겠다. 아니아니. 나의 더 정직한 마음은 이 책이 불티나게 팔려 아끼는 동생이 ˝언니들, 어쩌죠. 저 유명해져 버렸어요˝하고 말하는 것이다. 그런 날이여 오라~~~~^^

​˝가만히 생각해보니 저는 손으로 바느질하는 것처럼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큼직하고 시원스런 계획을 세우기보다 하루하루를 한 땀 한 땀 채워가는 것에 더 열중하지요. 모든 일들을 좀 느리더라도 정성스럽게 해내며 살고 싶습니다.˝(196) ​

사진은 중딩 딸이 쓴 독자평이다. 딸의 허락을 얻어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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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21-01-05 08: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고 책 님 때문에 이 책 관심가는데 전자책으로 안 나왔더라고요. ㅠㅠ 언제 꼭 읽어보겠어요. 그런데 중학생 따님이 엄마 닮아서 그런가? 글을 조리있게 잘 쓰네요. 저보다 낫다는!!👍😅

행복한책읽기 2021-01-05 09:52   좋아요 0 | URL
전자책 나옴 라로님께 쏴드릴게요. 부웅~~~~^^ 라로님 감성이랑 잘 맞을 것 같아요. 중딩딸은 엄마의 강압으로 책읽고 글쓰기를 매주 한 번 해요. 요약하기 핵심짚기를 제법 해서 저도 가끔 깜놀한답니다. 라로님 칭찬을 딸에게 전달했습니다요. 감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