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의 디시플린 Side 1 (노트 포함)
카도노 코우헤이 지음, 김영종 옮김, 오가타 코우지 그림 / 대원씨아이(단행본) / 2006년 8월
평점 :
절판


  비트의 디시플린! 예전에 부기팝에 대한 관심 때문에 부기팝 홈페이지에서 봤던 책이다. 그러나 그 때는 부기팝에만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별다른 생각이 없었다. '그저 제목이 이상하네?' 라는 생각 정도.
  그런데 세월이 어느덧 빠르게 흘러 부기팝 시리즈는 국내에 13권 까지 나왔고 이제는 '비트의 디시플린'까지 출간이 되었다. 부기팝이 없는 세계에서 비트라는 합성인간은 시련을 맞게 된다. 과연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재미있는 설정이라고는 생각했다. 그러나 부기팝에서는 부기팝의 존재감만이 소설 전체 축을 담당하고 있기에(책 읽는 내내 부기팝이 언제 나오는 지에만 관심의 초점이 맞춰진다.) 부기팝이 없다면, 김이 빠지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막상 읽어보니 달랐다. 부기팝은 나오지 않음에도 기존 부기팝 시리즈에 나왔던 인물들이 나오면서 이야기의 흥미는 증가했고, 비트라는 합성인간의 생존기도 재미있었으며 무엇보다도 아사쿠라 아사코의 존재가 빛이 났다. 마치 더블 브리드의 토라지와 안도 노조미 양이 생각났다. 그래서 재미있었다. 토라지와 안도 노조미. 둘의 관계 만큼 어둡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앞으로 더 읽고 싶은 것도 비트와 아사코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부기팝은 정말 10권 이내에 끝을 맺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부기팝의 재미는 갈수록 떨어지고 있으며, 오히려 부기팝이 없는 세계에서의 비트 이야기가 훨씬 나를 끌어들이지 않는가! 뭐, 작가의 선택에 따를 수밖에 없겠지만.
  아무튼 비트의 디시플린은 마음에 든다. 부기팝과 같은 절대적인 존재(마치 기계장치의 신 같은)가 없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더욱 감정이입이 잘 되고 몰입되는 것 같다. 우리들이 사는 세계에도 부기팝은 없지 않은가.
  비트가 어떻게 시련을 이겨낼 것인지, 계속 지켜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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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또 읽고

국내 유일의 단편 중심의 환상문학웹진인 거울에서

두 번째 소재별 앤솔러지를 발간하더군요.

처음 뱀파이어를 소재로한 단편들을 모은 <혈중환상농도 13%>에 이어

이번에는 외계인을 소재로 한 단편들이 모여 있는 <제15종 근접조우>입니다.

관심있으신 분들은 예약해서 구매하시길.

예약하실 분들은 여기를 눌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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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무슨 책 읽고 계세요?
Fantastique 판타스틱 2007.6 - Vol.2
판타스틱 편집부 엮음 / 페이퍼하우스(월간지) / 2007년 5월
평점 :
품절


 

[리뷰] 판타스틱 2호를 읽으며


  장르문학은 어디로 가는가?


  국내에서 장르문학이 태동한지 오랜 시간이 지났다. PC통신 등을 기반으로 발전한 장르문학은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아직까지 매니아 층이 꾸준히 존재하고 있다. 그렇다고 시장의 질이 좋아지거나 인구가 확대된 것은 아니지만. 하여간, 생존해 있던 장르문학이 2007년 5월 커다란 변화를 맞이했다. 장르문학 전문 잡지가 탄생한 것이다. 그 이름 하여, 판타스틱! 판타지, SF, 미스터리, 호러를 다루는 이 장르 잡지는 무려 매달 출간되는 월간지다. 대부분의 순수문학 문예지들도 판매량이 저조하여 폐간하거나 계간지로 근근이 나오고 있는 와중에 그리고 수많은 잡지들이 사라져간 한국 출판 시장에서 독자층이 한정되어 있는 장르문학의 월간지가 출간된다는 것은 놀라운 사건이었다. 지금껏 웹진으로는 여러 번 존재했었지만, 오프라인으로 국내에 장르문학 잡지가 정식으로 출간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것은 장르 소식을 매달 독자들이 교류할 수 있고, 새로운 작가를 발굴할 수도 있으며 기존의 작가들에게 지면을 할애하는 효과를 가져 온다. 장르문학 전체의 퀄리티 상승을 꾀할 수 있고, 다양한 광고 효과를 누릴 수 있다. 시장 확대의 측면도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 출간되기 직전까지도 필자는 걱정이 먼저 앞섰다. 과연 판타스틱이 성공할 수 있을 것인가? 현재 출간되고 있는 SF나 판타지 소설 중에서 안정적인 판매량을 보이는 작품은 몇 되지 않는다. 그렇게 네임벨류가 있는 작가의 소설도 그러할 진대, 이제 막 출간되는 판타스틱이 과연 얼마만큼의 인지도를 얻고 사람들에게 어필할 수 있을 것인가? 제대로 모습을 선보이지도 못하고 시장에 묻혀 버리는 것은 아닌가? 이런 걱정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5월 창간호가 발간되고 내 걱정은 기우에 지나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판타스틱 창간호는 출간된 지 보름도 지나지 않아 구하기 힘들 정도로 매진이 되어버리고 온라인 서점 등에서는 잡지 통합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기염을 토한다. 그동안 장르문학 잡지를 원하던 독자층이 얼마나 많았던 것인가를 확인할 수 있다.

  그럼 그들은 그 간절한 기다림 끝에 만난 판타스틱에 만족했을까?

  이제 6월호를 만나보도록 하자.

 

  6월호, 2호가 나오다!


  소설

이영도/팀프랫/조지마틴/박형서/폴 윌슨/복거일/루이스캐럴

순간이동의 의미에 관해서 - 이영도

  이영도의 두 번째 SF단편이다. 웹진 크로스로드(http://crossroads.apctp.org/ )에 실린 “카이와판돔의 번역에 관하여” 이후, 이영도의 두 번째 SF단편을 접할 수 있어서 반가웠다.   내용은 제목 그대로 순간이동의 의미에 관해서 고찰하게 만드는 단편이다. 다른 갈등이나 캐릭터가 부각되지 않는다. 그 때문에 실망한 독자들도 많이 보이는 것 같지만, 모든 단편이 같은 구조와 같은 장점을 가지는 건 아니다. 이 단편은 어디까지나 의도한 바가 독자에게 오히려 질문을 던짐으로써 그 목적이 있는 것 같아 보인다. 그렇게 때문에 오히려 흥미로웠다. 사실 예전에 단편 키메라 같은 경우도 마지막에 이해 안가는 부분을 나중에 인터넷의 해설을 통해서야 이해가 갔는데, 이 단편 역시 그런 경우가 아닐까 싶다. 그보다는 더 철학적이고 어려운 것 같아 보이지만 말이다. 순간이동에서 공간을 제하면 그것은 곧 영생이라는 의미 해석이 나오지만 그것은 기각 당한다. 그보다 더 진정한 순간이동의 의미란 무엇인가. 읽던 도중 박민규의 핑퐁에 나오는 한 구절이 떠오르기도 했다.


 왜 우리는 그 자체로 존재할 수 없을까? 왜 우리는 반드시 생존(生存)해야만 하는 걸까? 어떤 우연이 우릴 그렇게 고안한 걸까? 인체를 통해 태어나고 길러져야만 인간일까? 반드시 그래야만 인간으로 볼 수 있을까? 영문도 모른 채 남아서 뭘 하려는 걸까? 이렇게나 멀리 떨어진 곳에서 보이지도 않는 곳에서 말이야.


- 핑퐁, page 172 中


  순간이동은 인간을 그 자체로 존재하게 만들 수 있다. 아아, 그래도 아직도 고민을 해봐야 할듯하다.


판타지 단편 - 팀 프랫/ 작은 신들

예전에 환상문학웹진 거울에 실렸던 단편인데 그때 읽어보지 못했다. 판타스틱을 통해 읽었는데 가슴이 따뜻해지는 글이었다. 재미있고 인상적이었다.


호러 중편 연재 - 조지 마틴 / 샌드킹<1>

얼음과 불의 노래로 유명한 조지 레이먼드 리처드 마틴의 작품. HBO에서 얼음과 불의 노래가 미니 시리즈로 만들어진다고 해서 기대 중이다. 판타스틱에 실린 단편 <샌드킹>은 1979년 <Omni>지에 8월호에 게재되었고, 같은 해 휴고상과 네뷸러상을 수상한 마틴의 대표작이라고 한다. 전형적인 호러소설의 설정을 바탕으로 SF의 소도구를 깔끔하게 활용한 이 작품은 젤라즈니 이래 최고의 스타일리스트라는 찬사를 받은 마틴의 작품 세계를 잘 보여주는 LDG 시절의 걸작이며, 1995년에 TV 시리즈인 <The Outer Limits>에서 영상화 되었다고 한다. 정말 호러 소설을 보는 듯한 긴장감과 SF의 느낌이 잘 섞여 있는 뛰어난 작품이다. 어서 다음 내용을 읽고 싶다. 이런 몰입감이라니!


판타지 초단편 - 박형서 / 냄새가 나요, 가족의 기원

박형서의 글은 이걸로 처음 읽는 거지만 만족스러웠다. 이토록 짧은 분량에 이렇게 선명한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다니.


SF 중편 연재 - 폴 윌슨 / 다이디타운 - 거짓말<2>

‘거짓말’이라는 제목이 그런 의미가 있었구나! 끝이 깔끔하고 멋졌다. 정말 매력적인 글이다. 이런 연재물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이 판타스틱의 장점일 것이다.


SF 장편 연재 - 복거일 / 역사 속의 나그네<2>

역시 창간호와 같은 이유로 읽지 않았다. 언젠가 완결되고 책으로 나오면 읽고 싶다.


판타지 장편 연재 - 루이스 캐럴 / 실비와 브루노 <1>

  창간호의 서문이 끝나고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는데 언어유희가 많아서 읽기가 좀 힘들었다. 주석을 봐야만 이해하고 웃을 수 있으니 말이다. 그래도 아직 초반인 만큼 루이스 캐럴이 보여줄 환상 세계가 기대된다.



만화

단편 - 박도빈 / 로스트 앤 파운드

로스트 앤 파운드라는 SF단편을 만화로 옮겼다. 예전에 워터가이드에 번역본이 올라왔었고, 플래시 애니로 많이 퍼졌다는데, 필자는 아마도 플래시 애니로 접했었던 것 같다. 다시 봐도, 감동적이고 눈물이 나왔다. 좋은 만화다. 언제 봐도 좋을.

연재 - WAL / 돌아오지 않는 남자

재미있다. 마지 폴 윌슨의 다이디타운처럼 의뢰를 받고 사건을 해결해나가는 형사의 이미지는 언제 봐도 즐거운 것 같다. 연재물이라 다음 편이 더욱 기대 된다. 몬타나존스처럼 동물들이 주 그림체가 되는 것도 마음에 든다.



특집 기획

Kurt Vonnegut Jr 1922-2007

트랄파마도어로 떠난 거장

커트 보네거트


  - 그의 작품은 아직 하나도 읽지 못했다. 국내에는 다섯권이 나왔다니, 차근차근 읽어봐야겠다. 이런 정보를 얻는 것만으로도 참 좋은 것 같다.


그녀의 마음을 훔치는 판타스틱 BGM

- 유쾌했다. 언제 음악들을 다 찾아 들어볼지.


인터뷰

2000년대 한국 소설의 최고 기대주

박형서


- 역시 그의 작품은 하나도 읽지 않았다. 인터뷰는 재미있었다. 그의 장편이 기대된다고 할까? 판타스틱에 실린 두 편의 짧은 단편도 좋았고. 지금 나에게는 박형서의 두 번째 단편집인 자정의 픽션이 있다. 이번 주가 가기 전에 다 읽을 수 있으면 좋겠다.


기획연재

장르 토착화/한국 판타지 10년을 돌아본다

한국 판타지는 다양한 사건 사고도 많았고, 짚어볼만한 책도 무수히 많다. 역사는 짧다 할 수 있겠지만, 그래도 그 안에는 정말 오만가지 사건들이 다 있었던 것 같다. 너무 겉핥기  식으로 되지 않고 좀 더 풍부한 정보가 담기기를 소망해 본다. 연재물이므로 다음호를 기대해보고 싶다.


  그 외에 칼럼이나 트렌드 기사 등도 역시 재미있게 읽었다. 잡지의 느낌을 살려주는 것은 역시 이런 기사들일 것이다. 장르 인사이드에서 장르의 개척자 - 올라프 스태플든을 소개해준 것은 흥미로웠다. 철학적인 SF의 스승이라 할 수 있는데, 제대로 된 번역본이 아직은 없어서 아쉬웠다.


  리뷰를 마치며


  이제 고작 2호가 나왔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족스럽다. 이런 잡지가 출간된 것만으로도 반드시 사야한다고 느끼는 장르 독자라서 그럴까. 아직 시작임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만족스러운 잡지다. 디자인도 페이지마다 잘 되어 있고 - 창간호에서 지적된 가독성 문제도 수정되고 있고 - 다양한 기사들과 광고가 정취가 있다. 예전에 마이컴이라는 컴퓨터 잡지를 매달 사본 적이 있었다. 그때 기사들도 물론 재미있었지만, 광고 보는 재미도 있었던 것 같다. 잡지의 재미 중 하나랄까. 판타스틱도 많은 판매량만큼이나 광고도 다양하게 많이 싣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다. 더욱 번창하기를.

  호러, 미스터리, SF, 판타지를 다 다룬다는 게 좋기도 하지만 제대로 분배 하지 못하면 독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시간이 지날수록 해결될 문제이다. 아무쪼록 꾸준히 살 테니 꾸준히 나왔으면 좋겠다. 예전에 내가 보던 마이컴이 재미있어 보인다고 정기구독을 신청한 친척이 있었다. 그 친척이 입금하자마자 마이컴이 망했던 기억이 있다. 판타스틱은 부디 십 년, 이 십 년 한국 장르 문학의 토대가 되어주었으면 좋겠다.

  장르 소설들의 출간물 광고나 공모전 광고가 있어서 반갑다. 이런 지면이 있다는 게 역시 좋은 듯하다. 동호회 소식란에 JOYSF의 회지 소식이나 환상문학웹진 거울(http:/mirror.pe.kr )의 소재별 앤솔러지 시리즈 두 번째인 외계인을 소재로 한 <<제15종 근접조우>>의 홍보를 해준 것도 좋아 보였다. 이런 식으로 웹진이든 월간지이든 서로 도와가면서 장르 문학의 발전을 이끈다면 앞으로 더 좋은 작품과 작가가 우리들 앞에 나타날 것이다.

  앞으로 장르문학이 어디로 가는지, 그 해답을 알 수 없다. 하지만 이 판타스틱이 망망대해의 하나의 이정표가 될 수 있을 거란 기대가 든다. 꾸준히 따라가야겠다. 아직 망설이는 독자가 있다면 이 글이 도움이 되어서 구입할 수 있으면 좋겠다. 2호는 아직 매진되지 않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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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퐁
박민규 지음 / 창비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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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퐁


  탁구를 쳐본 적이 있다. 물론 충분하게 쳐봤다는 건 아니다. 한 시간도 채 안 될 정도다. 제대로 자세를 배우고 기술을 익힐 시간은 없었다. 하지만 탁구는 뭔가 매력적인 스포츠임에는 틀림없다. 그 매력은 무엇일까? 우선 복잡한 규칙이 존재하지 않다는 것. 즉, 누구나 쉽게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 굉장히 쉬워 보인다. 쉽게 시작할 수 있다. 그래서 매력적이다. 자기도 선수처럼 잘 할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에. 하지만 막상 시도해 보면 공을 제대로 주고받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배드민턴과 비슷하지만 그보다는 훨씬 어려운 느낌이라는 것이다. 몸은 덜 움직이는데도!

  글을 쓰는 것도 비슷한 게 아닐까? 겉으로 보기에는 쉬워 보이지만 막상 자신이 직접 글을 쓰려면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게다가 따라 쓰는 게 아니라 자기만의 글을 창조해 낸다는 것은 더욱이 어렵다. 핑! 퐁! 선수들의 랠리는 보기에 즐겁지만 그들은 그 몇 시간을 위해 수천 시간을 연습했을 것이다. 그리고 쉽게 쓰인 듯한 독특한 문체가 특징인 박민규의 소설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박민규의 장편은 이번이 세 번째이다. 앞의 두 작품은 소외된 - 혹은 『핑퐁』의 본문을 상기하자면 배제된 - 사람들을 그리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면서도 따뜻한 웃음이 묻어나는 글들이었다. 야구 다음에는 탁구일까? 이번에는 또 어떤 인물들이 어떤 이야기를 할까? 기대감을 가지고 책을 펼쳤다. 그러나 막상 펼쳐진 세계의 이야기는 그렇게 따뜻하지만은 않았다.


  다들 잘 하고 있습니까?


  소설 속에서 작가는 계속 되묻고 있다. 다들 잘 하고 있는 거냐고. 『핑퐁』은 일단 우주와 인류가 중심인 소설이다. 리얼리즘 문학에서는 잘 보지 못했던 소재가 중심인 것이다. 일상에서도 인류라는 말은 낯선 편이 아닌가. 그러나 이 소설에서는 ‘인류’라는 단어가 마치 친구처럼 불린다. 생각해 보니, 인류는 매우 친한 녀석인데, 아주 나쁜 녀석이다. 왜 사는지 이유도 알지 못한 채 공간만 축내고 있다. 게다가 살인까지 쉬지 않고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도무지 살 가치가 있는 건지 의심스러운 녀석이다. 주인공으로 나오는 못과 모아이는 세계가 깜빡한 존재들이다. 세계가 깜빡하다니. 그런 일이 실제로 곳곳에서 벌이지는 것이다. 중학교에서 왕따란 이제 흔한 사회 현상이 되었다. 옛 고대 석상을 닮은 모아이와 두개골까지 금이 간적이 있는 못. 별다른 이유 없이 치수라는 아이에게 찍혀서 반에서 따를 당하고 매일 폭력에 시달린다. 돈을 바치고 심부름을 한다. 삶은 폭력적이고 또한 지루하며 비루하다. 그저 어떻게든 살아있는 것일 뿐이다. 그런 그들이 세계를 언인스톨하냐, 마냐라는 중요한 결정을 내리게 된다. 그들의 결론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결말이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소설은 계속 이 세계를 질린 듯이 묘사한다. 더 이상 어찌할 수 없는 세계라는 듯이. 학살과 봉사가 연이어 세계의 듀스 포인트를 만들고 있지만, 그것뿐이다. 단지 그렇게 버텨나가는 것만이 다인 것이다. 작가는 우리가 생존이 아니라 잔존하고 있다고 말한다. 단지 살아있다는 것.

  소설의 스케일은 작으면서도 크다. 학교 폭력에 시달리는 두 왕따 소년을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소설이 계속 말하는 것은 인류의 운명이다. 그 둘은 세계가 깜빡한 존재이면서 동시에 인류의 대표이다. 또 다른 인류의 대표는 과로사했다. 그만큼 인류는 바쁘게 맹목적으로 살아왔다. 주어진 대로 교육받고 오로지 교육받은 대로만 움직이는 두 동물이 인류의 대표였던 것은, 인류의 모습이 그렇기 때문일 것이다. 스스로 존재하지 못하고, 스스로 목적을 가지지 못한다. 삶의 목적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렇게 인간은 무의미한, 혹은 무가치한 학살만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인류사를 통틀어 전쟁이 없는 기간은 한 달도 되지 못한 다는 것을 생각하면, 인류의 존재가치란 정말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소설에서는 탁구를 통해, 인류의 운명을 결정지었지만, 미국 드라마 『배틀스타 갤럭티카』는 사일런이라는 인류가 만든 로봇이 인류를 언인스톨한다. 그 드라마에서도 똑같은 질문이 제기된다. 지금 인류는 과연 살아갈 가치가 있냐고. 국경과 인종을 넘어 소설가든 드라마 작가든 똑같은 질문을 작품 속에서 던지고 있는 것이다. 아니, 이것은 그 동안 수많은 작품들 속에서 반복된 영원한 테마일지도 모른다. 다들 잘 하고 있습니까? 여기에 당당하게 무언가를 답할 수 있을까?

  답은 쉽게 알 수 없다. 우리는 그저 우리의 자세를 우주 너머로 보낼 뿐이다. 언젠가 답이 올 것이다. 리씨브가 올 것이다. 나는 그 대답이 못내 궁금하지만, 조급한 마음을 가지려 하진 않는다. 무슨 일이든 쉽게 되는 것은 없다. 라켓을 쥐고, 하나하나 자세를 익혀야 하는 탁구처럼 말이다.


  안심해


  『핑퐁』은 굉장히 무거운 내용을 다루고 있다. 인류의 운명이라니. 게다가 인류는 학살을 저지르는 종이며 어디까지나 잔존해 왔다. 사실 가망이 없다. 그걸 세계가 깜빡한 두 중학생이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이런 세계 인식이 불편하기 보다는 너무나도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소설이 술술 읽히는 것이다. 그래, 맞아. 이 세계, 인류는, 더 이상은 안 돼. 사람보다 낙지가 불쌍하다고 중얼거리는 못의 말이 공감이 가는 것은 그런 이유일 것이다. 죽은 남자가, 갇힌 여자가 불쌍하지 않다. 갑자기 낯선 환경에 떨어져 버리고 갇힌 여자에게 비명을 들은 낙지가 불쌍한 것이다. 철저한 인류 불신.

  그렇지만, 항상 세계는 폭력 속에 있고, 학살을 자행하는 인류가 지구를 점령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한 생존해야 하는 이유도 어딘가에는 있지 않을까. 실버스프링의 핑퐁맨처럼. 건강하게 탁구를 치면서 생존해야 할지도 모르는 것이다. 그것이 듀스 포인트를 만들 수 있는, 인류의 죄를 만회할 수 있는 방법일 것이다.

  『핑퐁』은 분량이 짧은 편이다. 만약 소설 속에서 모아이가 존 메이슨의 소설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면 분량은 훨씬 줄어들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단편 정도로도 충분히 스토리는 진행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존 메이슨의 소설들이 없었다면 『핑퐁』은 작품의 힘을 잃었음이 분명하다. 작품을 진행하는데 내용과 결말이 없어 보이는 존 메이슨의 소설들이 중요하게 작용한다. 마치 마누엘 푸익의 『거미여인의 키스』처럼 소설 속 화자의 이야기가 현실과 기묘하게 연관되어 있는 것이다. 아무튼 간에 작품의 재미 면에서도 필자는 존 메이슨의 소설 이야기에 깊게 빨려 들어갔다. 항상 마지막에 어이없는 결말은, 진지한 이야기들을 조롱하는 듯한 부조리한 매력이 있다. 그리고 어쩌면 핑퐁의 결말 역시 존 메이슨의 소설 결말과 비슷하다. 그들은 언인스톨을 선택했고, 서로 하고 싶은 걸 하기 위해서 헤어진다. 그걸로 그냥 끝이 난다. 무거운 선택, 그 때문에 독자의 마음은 무거워지지만 소설은 더 이상의 해답을 내놓지 않는 것이다. 그저 무책임하게 중학생인 두 소년에게 세계의 운명을 맡기고 또 그들은 세계를 언인스톨 시켜버리는 것이다. 그렇게 소설 속에서 우리들, 인류는 멸망을 맞이했다. 맞이하고 있거나. 혹은 지금 우리 인류도 마찬가지일 지도 모른다. 어디선가 이미 두 명의 중학생이 세계를 언인스톨 하기로 결정했고, 그건 아주 천천히 일어날 뿐인 건지도 모른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무도 아직은 이유를 찾지 못하고 존재하고 있다. 사람들에게 있어서, 세계는 언제나 말세이다. 그러나, 그렇기에 작가는 차례보다 앞선 페이지에서 ‘안심해, 안심해도 좋아.’라고 말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소년들은 스푼을 구부리고, 학교를 가고, 작가는 가까운 탁구장을 찾으며 독자들에게 권유했을 지도 모른다. 탁구는 혼자 치는 게 아닙니다. 먼 우주 저편 너머의 대답을 기다리다간 늙어 죽기 십상이니, 일단 가까운 탁구장의 상대를 찾아보죠. 라는 의미는 아닐까나? 탁구를 치며 상쾌한 땀을 흘리고 누군가와 얼굴을 장시간 마주보며 서 있다. 탁구라는 스포츠의 두 번째 매력이 바로 이것일 것이다.


  다시 핑! 다시 퐁!


  사실 가까운 탁구장이 어디 있는지 모른다. 아직도 탁구장 같은 곳이 남아있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마치 스키너 동물들처럼 끝없는 교육과 일에 시달리며 살아가는 필자가 탁구를 칠 여유를 만들 수 있을지 모르겠다. 작가가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에서 이야기한 삼미 정신을 지킬 여력이 없는 것이다. 물론 이건 생각의 차이일 것이다. 『모모』에서 나온 회색인간이 다녀간 것일지도 모른다. 생각만 바꾸면 가능한데도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는 것일 게다. 뭐, 아무튼 모두 다 제멋대로 살려고 애쓰는 거다. 왜 사는가, 는 영원히 풀리지 않는 난제일지라도 제 멋에 사는 것은 당장 실천 가능한 주제가 아니겠는가. 시간이 되고, 기회가 되면 아마도 탁구를 쳐볼 것이다. 부디 이 소설 때문만이 아니라 이전에도 매력적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러나 치면서 이전과는 다른 느낌을 갖게 될는지도 모른다. 이미 『핑퐁』을 읽어버렸기 때문에.

  처음 내 기대와 어긋나버린 무겁고 진중한 내용. 우주와 인류. 우리는 왜 사는가. 살만한 가치가 있는가. 왜 이렇게 존재하는가. 왜 하필 인간인가. 대답 없는 공허한 질문들. 언인스톨 해버리고 싶은 욕망. 그래도 그보다는 스푼을 구부리고 탁구를 치고 싶다. 못이 그랬던 것처럼 학살을 보지 않고 학교를 향하게 된다. 일단, 잔존이 아닌 생존을 목표로 하자. 세상은 다수결로 움직인다. 소수는 배제된다. 핑퐁은 그것을 강조하고 있고, 탁구는 점점 소수의 몫이 되어버리는 것 같다. 소설을 읽는 것도 그런 게 아닐까. 하지만 다수는 거짓이며 허상이다. 60억 명의 사람들이 모두 같은 생각을 갖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한 권의 책을 읽으면 60억 개의 감상이 존재할 뿐이다. 모두 다수인 척 살고 있는 세계라고 못은 말한다. 인류와 다수결 그리고 시스템을 비판하고 혐오한다. 그럼에도 외로움과 연민 그리고 따뜻함이 있다. 화자인 못의 시선에는 분명 그런 따뜻함이 있었다. 우울하고 절망적이면서도 책을 덮지 않을 수 있었다. 그리고 다음 작품을 기다리게 된다. 쿨 앤 더 갱의 쎌러브레이션을 들으면서. 컴온, 쎌러브레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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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를 주도할 젊은 신인 작가들의 파격적인 소설들. 더 이상 지루하고 재미없다는 한국 문학의 이미지를 깨끗하게 씻어버릴 환상적이고 유쾌한 소설의 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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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비닛- 제12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김언수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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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제 괴물 같은 작가를 갖게 되었다. 나는 그가 항상 자신을 깨고 새로운 소설을 가져다 줄 것을 믿는다. 캐비닛은 시작에 불과하다.
낭만적 사랑과 사회
정이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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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서 결혼이 사랑의 결과물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2000년대적인 문학의 시작을 알리는 멋진 단편집. 여자 작가가 쓴 여자 주인공들의 이야기가 왠지 흥미를 불러일으켰다.
최순덕 성령충만기
이기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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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지금껏 못보던 소설들! 파격적인 소설이란 무엇인가?! 성경이 쓰여진 방식을 그대로 패러디해 써내려간 최순덕 성령충만기부터 랩가사 형식으로 쓴 버니 등. 기발한 형식 실험. 그리고 또 놀라운 환상성! 강력 추천작!
고래- 제10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천명관 지음 / 문학동네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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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소설이 이토록 멋진 세계를 선보일 수 있다니! 환상적이면서 텁텁하고 차분하면서도 화려한 이야기가 여기 있다! 한국 문학의 새로운 힘! 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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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 2007-07-13 1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는 작가 층도 너무 얇고 별로 읽히지도 않아서 주요작을 제외하면 별로 손이 가지 않았는데, 요즘 들어서는 좋은 작가들도 꽤 보이고.. 좋은 작품들도 많이 나오는 것 같네요. 우리 소설계도 슬슬 달릴 준비를 하는 모양입니다. 아... 이 중 제가 읽은 책은 절반도 안되는 것 같네요. 더 더 좋은 우리 문학 작품을 만나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읽어대야 되겠습니다.

twinpix 2007-07-15 14:10   좋아요 0 | URL
네, 정말 좋은 신인들이 많이 나왔죠. 박민규가 한국 문학은 진화해야 한다고 하는데, 그럴 역량을 가진 작가들이 많이 보여서 기대가 됩니다. 요즘 잘팔리는 작품들 중 상당수가 책 몇 권을 안 낸 신인작가들이라는 점을 생각해 보면, 앞으로 한국문학의 미래가 결코 어둡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요.^^

Ruth 2007-07-23 2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캐비닛>의 엉뚱하고 기발한 상상력이 제일 기억에 남아요...<펭귄뉴스>도 독특했구요.거대하고 묵직한 주제와 거리가 먼 듯 눙치고 있지만, 자꾸 곱씹다 보면 다양한 풍미가 느껴져요. <자정의 픽션>도 좋았어요.^^

twinpix 2007-07-25 23:01   좋아요 0 | URL
캐비닛의 작가는 참 기대돼요. 자정의 픽션 읽었는데 재미있더라고요. 작가의 첫번째 소설집도 찾아 읽어보려고 하고 있습니다. 나중에 장편을 쓸 생각이라는데 기대가 되더군요.^^ 펭귄뉴스는 읽어보려고 책은 지금 책상에 항상 놓여 있는데, 아직 시간을 못 내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