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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술사 오펜 20 (노트 포함) - 나의 성역으로 열리라 문 -하
아키타 요시노부 지음, 하성호 옮김, 쿠사카 유우야 그림 / 대원씨아이(단행본) / 2006년 8월
평점 :
절판
* 경고 : 내용 누설(네타바레, 미리니름, 천기누설, 스포일러) 있습니다.
1. 어긋난 여행이 끝나다.
마술사 오펜. 정겨운 이름입니다. 고등학교 때 구판으로 처음 접했던 이름이지요. 그때 1권을 읽지 못하고 3권인가 부터 읽었는데도 왜 이리 재미있던지! 처음으로 접한 라이트 노벨이 아니었나 싶다. 아무튼 인상에 깊이 남아있다 못해, 친구에게 받아서 돌려주지도 않고 계속 가지고 있었다. 나중에 돌려줬지만, 그 전까지 집에 매일 꽂아놓고 틈만 나면 꺼내다 읽곤 했다.
난 왜 오펜에 빠져들었는가?
1권을 읽지 않아도 친구의 설명과 책에서 자주 언급되는 것으로 내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오펜에서 가장 매력적이었던 부분은 무엇인가? 오펜이라는 개성 강한 캐릭터. 암살자, 마술사, 그리고 사채업자? 아무튼 오펜이라는 캐릭터성은 이 소설의 중심축이라 할 수 있다. 슬레이어즈와 함께 일본 판타지 소설의 양대산맥이었던 오펜은 역시 리나 인버스 처럼 강력한 캐릭터 성을 가지고 있다.
클리오와 매지크. 이 둘도 빼놓을 수 없는 캐릭터다. 스승과 제자라는 멋진 관계 설정은 오펜의 또 다른 장점. 매지크는 정말 여러모로 정이 가는 캐릭터가 아닐 수 없다. 나약한 듯 하면서도 마술사에 대해서 고민하고 발전하려고 하는 매지크의 모습은 소설에 대한 흥미를 계속 유지시켰다. 클리오는 파티에 여성 캐릭터로서 자리를 잡았다. 때론 민폐 캐릭터인 면이 있지만, 활발하고 말괄량이 같은 캐릭터는 극의 분위기를 밝게 유지시켜주는 요소였다. 여자가 빠지면 얼마나 밋밋하고 어둡고 재미없었겠는가. 완벽하지 않고 부족한 캐릭터가 성장해나가는 모습도 좋았다.
허나, 오펜의 가장 큰 매력 중 하나는 캐릭터와 비견될 만큼 멋지고 독창적인 세계관이다. 오펜의 세계관은 독특하다. 중세 판타지 배경이 아니라, 오펜 만의 독특한 역사와 문화를 만들었다. 지인이라는 설정과 마술사 그리고 교사, 키무라크 교회, 운명의 3여신 등등. 송고니탑의 오펜. 송곳니탑의 문장을 목에 걸고 있는 오펜이야 말로, 마술사 오펜의 많은 것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마지막 권에서 오펜이 두 개의 목걸이를 목에 걸었을 때, 이것이 진정 마지막 권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드래곤이라는 종족은 판타지 세계에서는 다 똑같다. 비만 도마뱀이라고 할 수 있는 거대한 드래곤들. 그러나 오펜의 드래곤들은 다르다. 드래곤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여섯 개의 다른 종족으로 구분된다. 인간을 초월하는 힘과 지능을 가졌지만, 신들에게 마법을 빼앗고 육체를 가진 신들에게 쫓기는 신세가 되었다. 그들의 죄는 인간에게까지 영향을 미친다. 이외에도 세계관들은 참으로 매력적이고 이색적이었다. 그동안 읽었던 판타지 소설에서는 볼 수 없었던 독특한 세계관이었기 때문에 빠져들었으며, 그 세계관을 보고 싶은 마음에, 더 알고 싶은 마음에 다음 권을 읽고, 또 이전에 읽었던 것을 다시 읽곤 하였다.
그리고 오펜은 암시와 복선의 사용도 뛰어나다. 7권에서 나온 이야기가 마지막 권을 읽을 때 왜 다시 들쳐읽고 싶어지는가? 그만큼 20권이라는 방대한 분량 속에서 다양한 암시와 복선이 사용되었기 때문에 모든 권을 조합해서야 퍼즐이 맞춰지는 구조이다. 완결을 읽은 지금, 다시 처음 부터 어긋난 여행을 떠나고 싶은 마음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2. 여행은 끝나고.
오펜이 드디어 끝났다. 대장정이었다. 나에게도 7년 가까이 함께 한 여행이었다. 그만큼 감회가 새롭다. 오펜과 함께 한 여행들이 떠오른다. 어긋난 여행이었지만, 그 여행은 많은 것을 가져다 주었다. 결국 오펜은 가장 올바른 정답을 내놓았다. 그건 오펜만이 내릴 수 있는 정답이었을 것이다. 오펜이 그 많은 여행을 하지 않았다면, 클리오와 매지크와 함께 여행을 하지 않았다면, 진정 후계자가 될 수 없었을 것이다. 차일드맨은 오펜이 후계자가 될 줄 알았을까? 내심 속으로 믿었을 것 같다. 왠지 오펜은 누구에게나 믿음을 갖게 만드는 사람 같다. 소설 속에서 사람들은 누구나 오펜을 찾게 된다. 오펜이라면 할 수 있을 것 같다라는 마음일까? 독자 또한 마찬가지. 물론 오펜은 초인이 아니며, 초인이 된 순간에도 초인이 세계를 구할 수 없다고 못 박는다. 그런 결말이 더욱 마음에 와 닿는다. 왠지 마지막 결정은 드래곤 라자의 끝을 연상시키기도 했다. 여신을 보내버린 오펜과 드래곤을 보내버린 후치과 겹친다. 재미있는 점이다. 두 작가가 통했나?
긴 여정의 끝이라고 보기에는 마지막 권에는 허전함이 든 것도 사실이다. 반지의 제왕 3편 왕의 귀환에서는 에필로그를 길게 잡아서 여운을 남겼지만, 오펜은 그런 방식을 사용하지 않았다. 에필로그가 정말 짧다. 그것도 오펜과 매지크 그리고 클리오만 보여준다. 독자들에게는 아쉬움을 느끼게 하는 대목일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모습을 비쳐주었다면 더 좋은 평가를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작가는 빨리 끝내고 싶은 마음이라도 있는지, 아니면 간결하게 짧게 끝내고 싶던 의도가 있었는지 오펜의 끝을 깔끔하게 마무리 한다. 나 역시 아쉬움은 있지만, 이것도 이것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됐다. 처음부터 어긋난 여행이었으니까, 이런 끝맺음이 맞는 게 아닐까?
의외였던건 클리오와 매지크. 클리오와 오펜의 지지도가 낮아서 내심 응원하는 마음이 있었는데, 아니게 되어서 의외였다. 그렇다면 오펜의 반려자는 누가 되는 거지? 모르겠다. 예전에 후기에 나왔던 그 딸의 어머니는 과연 누구란 말씀? 레티샤는 안 될까?
여행은 결국 희생으로 끝났다. 마지막에 오펜은 희생을 딛고, 결정을 냈다. 코르곤은 내릴 수 없는 결정이었다. 코르곤은 좀 코믹하게 갑작스럽게 퇴장당하긴 했지만, 거기서 결투가 나오는 것도 진부하며 역시 마지막에 와서 의미없는 결투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전에 매지크의 멋진 클리오 제지하기, 그리고 고백 방법. 사실 난 충격을 받았다. 계속 클리오와 오펜이 이어질 줄 알았기 때문에. 매지크는 당황하게 만들기 위한 방법이었다지만, 마음을 고백한 듯 보인다. 다른 감상에서도 의외라는 반응들이 있고, 어디 블로그에서는 작가 인터뷰를 증거로 내놓기도 했고 말이다. 아무튼 마지막까지 클리오는 민폐라는 사람도 있었지만, 나는 오히려 인상 깊었다. 그 전까지 생각이라곤 하지 않던 클리오가 생각을 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클리오 본인도 인정한 사실인데, 아무튼 이것이 성장이 아닐까, 생각했다. 사실 클리오는 거의 백치미 가깝게 나오던 게 사실이다. 그게 매력이기도 했지만, 막무가내 캐릭터였고, 한계가 있기도 했다. 아무튼 클리오 나름대로 마지막 권을 멋지게 장식했다. 무거운 이야기의 중심부에 끼어드는 건 민폐든 아니든 아무 캐릭터나 할 수 있는 위치가 아니니까.
매지크는 의외로 활약이 내내 없었다고 생각했는데, 다른 분의 이글루에서 보니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차일드맨과 오펜이 각자 이스타시바와 아자리를 막지 못했던 일을 매지크는 결국 해냈던 것이다. 두 사람의 숙원을 결국 해낸 매지크는 정말 대단한 녀석인 것 같다. 멋진 녀석. 이제 대마술사가 되는 일만 남았구나.
3. 다시 떠나는 여행.
아무리 작가 본인이 글을 쓴다고 해도 오펜 같은 작품은 나오지 않을 것이다. 엔젤 하울링을 읽으며 든 생각이랄까? 엔젤 하울링은 그다지 재미있지 않다. 거의 타성에 의해 보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오펜 작가의 작품이니까, 라는 생각으로 말이다.
많이 그리울 것 같다. 오펜과 오펜의 일행들. 이제 다시는 그런 여행을 떠나지 못할 테니까. 멋진 여행을 선사해 주었다. 앞으로 시간날 때 종종 들춰보겠지.
오펜은 오펜이다. 다른 누구로도 대체할 수 없고, 다른 누구의 작품으로 대체할 수 없다. 유니크하다.
오펜 수고했어. 혼자 떠나는 여행, 또 많은 일을 겪겠지. 이젠 클리오와 매지크처럼 나도 네 여행에 같이 할 수 없지만, 그래도 그 동안의 여행을 추억삼아 또 멋진 추억 쌓기를.
나도 이제 새로운 곳,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추억을 쌓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