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중심, 하리야마 씨 1
나리타 료우고 지음, 민유선 옮김, 야스다 스즈히토 외 그림 / 대원씨아이(단행본) / 2008년 8월
평점 :
절판


세계의 중심, 하리야마 씨


                                                                                     ― 이것이 나리타 료우고 퀄리티!


  몇 년 전, 당시 라이트노벨은 대원에서 내는 NT노벨 밖에 없던 시절, 한 친구는 매달 NT노벨에서 나오는 책을 전부 구입하고 있었다. 내가 대단하다고 놀라자, 자기는 남들이 화장품에 쓰거나 다른 거 안 사고 그 돈으로 모으는 거라고 말하기도 한 친구였다. 어쨌든 간에, 그 친구가 어느 날 내게 이런 말을 했었다. 『바카노!』 읽었니? 라고. 이미 이름은 몇 번 들어본 책이었지만, 아직 안 읽었다고 대답했다. 추천 평은 몇 번 봤지만, 제목도 끌리지 않았고, 소재도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아 구입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뒤에 나는 나리타 료우고의 『바카노!』를 구입했다. 당시 NT노벨을 모조리 보고 있던 친구의 입에서 나온 한 권의 책 제목이 인상에 남았기 때문이었다.

  『바카노!』를 처음에 읽고 참신하다고 느꼈다. 티 없이 맑고 순수해서 오히려 강렬한 캐릭터 성을 띤 매력적인 바보 커플을 비롯해서 강인하지만 단순하고 올곧음으로 무장한 수많은 캐릭터들. 한 권이라는 분량 내에서 무리다 싶을 정도로 많은 캐릭터들이 쏟아져 나옴에도 불구하고 이야기는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특히, 다른 라이트노벨에서는 보기 힘든 구성을 사용해서 구조에서 오는 재미가 뛰어났다. 그렇게 이 작가, 보통이 아니구나, 기대할 만하구나, 라는 느낌을 가지고 2권을 펼쳐 들자,


  숨 막힐 듯한 재미가 덮쳐왔다.


  1권에서의 플롯 구조는 몸풀기에 불과했다는 듯이, 2권과 3권을 이용한 이중 구성은 혀를 내두를 지경이었다. 한 권을 읽으면 사건의 전말을 알 수 없다. 3권까지 읽어야 사건의 모든 내막을 알게 되고 진정한 재미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구성만이 『바카노』의 재미를 모두 설명하지는 않는다. 어디까지나 『바카노!』 시리즈는, 아니 나리타 료우고의 작품은 캐릭터의 매력이 빛을 발한다. 아무리 뛰어난 구성이라도, 캐릭터가 살아있지 않으면 작위적인 장치로만 남아 위화감만 조성할 뿐이다. 그러나 나리타 료우고의 작품 속 캐릭터들은 과장되면서도 올곧음을 끝까지 밀고 나가는 캐릭터들이라,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감정 이입을 하거나, 동정을 하거나, 연민을 느끼거나, 애정을 느끼는 게 아니라, 너 정말 멋진 녀석이구나! 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고 할까. 그리고 그 수많은 캐릭터들 중 단연 돋보이는 캐릭터는 바로 레일 트레이서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캐릭터다. 2권에서 처음 등장한 레일 트레이서, 비노는 그야말로 엄청난 임팩트와 카리스마를 보여준다. 『바카노』 시리즈는 연금술사들이 악마를 소환해 내어 불사의 술을 만들어 낸 것이 중심축이 되는 이야기로 특히 불사인들이 많이 나오는 이야기다. 그러나 비노는 불사인이 아닌 순수한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바카노』 이야기 속 그 누구보다도 강렬한 카리스마를 선보인다. 불사인이나 다른 악역들도 압도해버리는 그의 존재감은 소설 속 악마보다도 더 큰 인상을 심어준다. 그 때문에 구성과 캐릭터의 매력으로 만들어진 나리타 료우고의 작품들 중 가장 인상적인 작품을 꼽자면, 역시 레일 트레이서가 등장한 『바카노』 2, 3권을 빼놓을 수가 없다. 아직도 그 파워풀한 전투씬이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는 것이다. 수많은 이능력자들을 순수한 인간이 이렇게 압도해버리다니. 정말이지 감탄 밖에 나오지 않는 강렬한 캐릭터다.

  이 후, 『바카노!』 뿐만 아니라, 나리타 료우고의 모든 작품을 나오는 대로 사서 읽었다. 웬만한 작가라면 작품마다 편차가 있기 마련이다. 나리타 료우고도 이점에서는 당연히 그런 게 있을 수밖에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일정 수준 이상의 퀄리티를 보여준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소설들은, 내용을 보고 구입하는 게 아니다. 오로지 작가의 이름 하나만 보고 구입하게 된다. 현재 국내에서 나오는 나리타 료우고의 작품들은 일본에서 발매된 순서 그대로 나오고 있고 이는 작가가 요청한 것이라고 한다. 그것은 그만큼 작품들이 연결되어 있기도 하고 또한 일본과 동일한 발매 순서대로 독자가 읽어주기를 원하는 마음에서일 것이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그것만이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자신감이 그만큼 뛰어난 것도 있지 않을까. 내 작품 중에 독자들 마음에 차지 않을 만큼 수준 낮은 작품은 없다. 그러니 내 작품 전부를 차례대로 발매하라고 말이다.

  마치 내 이름을 믿어라, 그러면 최고의 엔터테인먼트를 보여줄 테니, 라고 선언 하듯이.

  그 리고 최근에 나리타 료우고의 이름을 달고 나온 『세계의 중심, 하리야마 씨』가 출간되었다. 그 동안 나온 『바카노!』 시리즈도 아니고 『뱀프!』 시리즈나 『듀라라라!』, 『바우와우!』 등의 장편 시리즈가 아니다. 이것은 후속권이 있긴 하나, 단편들이 모인 옴니버스 형식의 단 권이다. 출판사도 그런 까닭 때문에 기존 성격과 맞지 않고 판매량이 떨어질 듯한 이 작품의 출간을 고민하기도 했지만, 작가의 의지대로 출판을 감행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결과 읽고 나서 느낀 점은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이렇다.


  이것이 나리타 료우고다.


  이 책은, 역시 나리타 료우고 퀄리티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작품 중 하나다. 만약, 나오지 않았다면 크게 안타까워했을 것이다. 이것은 나리타 료우고의 수많은 장점이 집약된 작품이다. 발매 순서대로 나온 덕분에 처음부터 괴물 같은 작가이긴 했어도, 또 다른 성장한 모습을 어렴풋이나마 느끼게 된다고 할까.

  이 책은 크게 4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도시 레전드」, 「마법소녀 893호」, 「친애하는 빛의 용사님」, 「기적의 중심, 하리야마 씨」


  각각의 단편들은 각기 다른 장르를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괴담》,《꼬마 마녀》,《전설의 용사》,《메들리》다.


  일단, 첫 번째 「도시 레전드」부터 살펴보자면.


  우리에게도 아주 익숙한 도시전설, 도시 괴담을 가지고 이야기를 시작한다.


  바로 괴담 「침대 밑의 도끼남」이다.


 

  어떤 남자가 자신의 집에 애인을 데리고 온 날 밤의 일이다.

  침대와 바닥에 각각 드러누워 평소대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 그녀가 별안간 묘한 말을 꺼냈다.

  “자기야, 나 아이스크림 먹고 싶어.”

  남자가 냉장고에서 아이스크림을 꺼내려 하자 그녀는 더 비싼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다고말했다.

  “편의점 가서 사 오자. 응?”

  남자는 귀찮게 여기면서도 그녀의 말이라 마지못해 편의점에 가기로 했다.

  그런데 집에서 나온 그녀는 갑자기 굳어진 얼굴로 편의점과는 반대 방향―파출소를 향해 냅다 달리는 것이 아닌가.

  영문을 모른 사내가 묻자 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대답했다.

  “자기 침대 밑에 피투성이 도끼를 든 남자가 숨어 있는 걸 봤단 말이야…!”


  ― 옛날부터 유명한 괴담 중에서


  한국에서도 유명한 도시전설로 몇 년 전에 실화라며 많이 들었던(비슷한 기사가 사실 몇 차례 떴던 것 같다) 이야기다. 이 유명한 괴담을 어떻게 변주할 것인가. 뻔히 알고 있는 이야기를 가지고 전혀 다른 이야기로 만드는 작가의 솜씨는 뛰어났다. 이 이야기는 일단 나리타 료우고답게 구성부터 범상치 않은데, A사이드와 B사이드 두 가지 시선에서 이야기가 그려진다. 즉, A사이드를 읽으면서 도끼남 괴담 속에 처한 한 인물의 심리 묘사와 거기에 얽힌 새로운 반전 등으로 독자의 시선을 뺏는다면, B사이드에서는 도끼남의 시선으로 숨겨진 내막을 밝혀주는 것이다. 이런 구성은 독자에게 더 큰 재미를 가져다주고 이야기를 복잡하고 풍부하게 만들어 준다. 이 단편은 괴담 속에서도 한 청춘남녀의 마음이 변화하는 것을 그려주고 있기도 하는 것이다.


  그 다음 이야기 「마법소녀 893호」는 장르가 《꼬마 마녀》라고 나와 있듯이, 애니메이션 등으로 유명한 마법소녀물을 다룬 이야기다. 그러나 이 역시 평범한 마법소녀물이 아니고 작가가 새롭게 창조한 변형된 마법소녀물인 것이다.

  마 법소녀라지만, 실상은 마법소녀가 아니다. 아니 ‘진짜’ 마력을 가진 마법을 사용하는 소녀이지만, 실제로 우리가 생각하는 마법소녀는 아닌 소녀가 벌이는 이야기다. 여기서 앞에서는 잠깐 언급되고 끝난 하리야마 씨가 좀 더 많이 등장한다.

  이 작품의 매력은 무엇보다도 성장 소설이라는 점에 있을 것이다. ‘마법 소녀’ 만화에 감화된 마법을 가진 소녀가, 마침내 진짜 마법이란 무엇인지 알아가고 성장해나가는 모습이 너무나 재미있게 그려져 있다.


  허나 마법소녀는 기뻐하며 받을 수가 없었다.

  스킨헤드나 다른 조직원들로부터 이곳 아미다파의 힘든 경영 상태를 들었기 때문이다.

  “저, 저어… 조직 분들이 돈에 쪼들리고 있는데 저만 이런 걸 받을 수는 없어요.”

  “인마, 어린애는 그런 거 신경 쓰는 게 아냐.”

  “그, 그치만…, 아 맞다! 제 마버―.”

  “마법으로 돈을 낸다고 해도 안 받을 거야. 아, 그런 녀석은 없을 거라곤 생각하지만 조직의 젊은 녀석들이 부탁해도 절대로 돈 같은 걸 만들어주면 안 돼. 그런 짓을 했다간 바로 내쫓을 테니 그리 알아.”

  “아으….”

  앞을 꿰뚫어보는 발언에 893호는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마법 나라에 있던 무렵의 자신이라면 왜 받지 않는 건지 이해하지 못했으리라.

  허나 지금의 그녀는 왠지는 몰라도 그것을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했다.

  말로는 잘 표현할 수 없지만 자신의 사고에 알 수 없는 위화감이 느껴졌다.

  “가, 감사합니다.”


  ― 『세상의 중심, 하리야마 씨』, 나리타 료우고, 대원씨아이, 127쪽


  어렸을 때 텔레비전에서 보던 《뾰로롱 꼬마 마녀》를 생각하게 하는 부분들도 있고, 유쾌한 부분들과 나리타 료우고 특유의 느낌, 내용, 캐릭터들이 인상적이다. 기존에 『뱀프!』 등에서 느꼈던 주제와 캐릭터를 다루고 있지만, 약간은 다른 캐릭터들이 엇갈리고 다른 배경, 다른 조건에서 다른 감상을 전해주기도 한다. 이 작품에 인상적인 캐릭터는 역시 ‘긴지마’이다.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서도 역시 인간 중에서 가장 고도의 경지에 오른 듯한 묘사는 치열한 전투 장면을 연출하지 않고도 적절한 분위기와 몇 개의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특히, 이후에 모든 이야기가 종합되는 ≪메들리≫에서 그의 존재감은 더욱 드러난다.


  그 다음 단편은, 「친애하는 빛의 용사님」이 다. 《전설의 용사》라는 장르로 독특한 이야기를 펼쳐 보이고 있다. 여태까지 나리타 료우고의 작품들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분위기를 내는 작품이다. 게다가 결말까지 암울한 베드엔딩으로 써져 있어서 이게 정말 나리타 료우고의 작품이란 말인가, 라는 생각마저 든다. 작가 후기를 보면, 나리타 료우고 역시 처음으로 써 본 베드엔딩으로, 자기도 이런 것을 쓸 수 있다고 말하고 싶었다고 한다.

  이야기의 시작은 소꿉친구인 여자아이에게 불려나간 남자아이의 시점으로 시작된다. 고백이라도 받을 줄 알았던 남자아이는 여자아이에서 나온 말에 당황한다.


  “나 실은 용사야.”


  고백이 아닌 생뚱맞은 한 마디. 이어지는 이야기는 더 황당하다. 자신이 다른 세계에서 환생한 용사로 이제 악을 물리치러 섬을 떠나야 한다고 한다. 여기서는 무언가 굉장히 유쾌한 이야기가 펼쳐질 줄만 알았다. 머릿속에서는 혹시 ‘마을 사람A'도 있고 뭐도 있고 그런 건 아닐까, 라는 수많은 이야기가 마구 파생되기도 했는데, 정작 본편의 이야기는 마구잡이로 확대해나가는 이야기로 호러틱한 분위기까지 띄며 굉장히 잔인하기까지 하다. 섬에는 점점 여자아이와 같은 소리를 하는 사람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서로를 죽고 죽이는 일까지 벌어진다. 마침내 주인공은 한 가지 결심을 하게 된다.

  단 편이라는 정해진 분량 안에서 계속 몇 번이나 생각한 범위를 벗어나는 사고의 전환과 급격히 전환되는 이야기, 그리고 가슴 싸한 결말까지 근사한 작품이었다. 자신이 가지고 있던 틀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때론 실패할 수도 있지만, 한계를 뛰어넘는 발전의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이 작품은 나리타 료우고의 전환점이 될 만한 작품은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 단편은 「기적의 중심, 하리야마 씨」로 앞서 나온 세 편의 글을 메들리 형식으로 종합한 단편이다. 각각의 단편들은 각기 다른 형식의 플롯과 이야기를 담고 있었지만, 여기서는 그 모든 서로 다른 장르들이 하나로 합쳐진다. 그로 인해서 재미도 배가 되고, 각 장르의 충돌에서 벌어지는 묘한 느낌의 색다른 재미도 느낄 수 있다. 그야말로 나리타 료우고 표 종합 선물 세트라고 할까. 수많은 개성 많은 캐릭터들을 다루는 솜씨는 이미 어느 정도 경지에 오른 듯한 나리타 료우고가 각기 다른 사고를 가지고 다른 상황에 다른 능력을 가진 캐릭터들을 한 자리에 몰아놓고 펼치는 활극은 보는 이로 하여금 크나큰 재미를 느끼게 해준다. 게다가 표제에도 등장하고 간혹 얼굴을 내비치기는 했지만 자세히 나오지는 않은 ‘하리야마 씨’의 출연 분량도 많이 늘어난 글이기도 하다. 그의 대사나 행동은 소시민과 다를 바 없어 보이지만 그의 친화력이나 사고관은 아무런 능력도 없는, 우리들과 같은 사람이 이런 능력자들이 판치는 세계에서 얼마나 대단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지를 보여준다. 지금까지 나리타 료우고의 많은 작품들이 물론 정신력이 뛰어났지만 그와 함께 육체적인 능력도 뛰어난 무투가적인 캐릭터들이 난무했다. 그렇기에 ‘하리야마’라는 캐릭터는 독특하다. 어떠한 신체적인 장점도 없는 이 캐릭터가 이렇게 자연스럽게 이야기에 끼어들고 오히려 이야기를 정리하는 능력을 가진다는 것은 나리타 료우고의 또 다른 능력을 본 것 같다고 할까.


  길게 적었지만, 요약하자면 앞에서 말한 것처럼 나리타 료우고의 장점이 집약되어 있는 재미로 무장한 단편집이었다. 아직 나리타 료우고를 접하지 않은 독자라면, 권수가 많은 장편들보다 이 단편으로 처음 접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런 다음에 마음에 들면 발매 순서대로 읽어 보는 것을 권한다.

  나리타 료우고의 세계는 바보처럼 단순하면서도 자신을 믿고 강인한 신념을 가진 황당한 캐릭터들이 날뛰고, 아무리 잔혹하고 처참한 피가 튀는 이야기일지라도 끝에는 결국 웃음을 짓게 만든다. 그야 말로 정신없이 페이지를 넘기게 되는 빨려 들어가는 재미를 얻고 싶은 독자라면 나리타 료우고는 충분한 재미를 느끼게 해줄 것이다. 플롯을 제대로 가지고 노는 작가라, 플롯과 이야기가 어떤 식으로 재미를 줄 것인지 제대로 연출할 줄 알고 있다.

  재미의 중심, 그곳에는 나리타 료우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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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전쟁 - NT Novel 라이트 노벨 도서관 시리즈
아리카와 히로 지음, 민용식 옮김, 아다바나 스쿠모 그림 / 대원씨아이(만화)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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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전쟁


  - 도서관의 자유를 침해당했을 때 우리들은 단결해서 끝까지 자유를 지킨다.


  도서관.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도서관’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기분이 좋아질 것이다. ‘도서관’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수많은 책들, 책 냄새 가득한 서가, 고요한 분위기 등이 자동으로 연상되니까. 독서를 즐기는 사람에게 도서관은 마력을 품고 있는 단어다.

  그 때문일까. 도서관이란 신비로운 장소다. 그곳은 셀 수도 없는 이야기와 지식이 담겨 있다. 언제든 기묘한 일이 일어난다고 해도 그곳이 도서관이라면 전혀 이상하지 않을 것 같다. 무한히 확장되는 도서관 속에 갇힌 소녀를 만나거나, 체셔 고양이의 안내를 따라, 세상에서 잊히거나 출간되지 못한 도서관을 방문하는 것도 쉽게 납득이 갈 것만 같다.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마법서가 한 권 있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고, 세계를 멸망에 구렁텅이로 밀어 넣을 고서가 있다고 해도 오히려 흥분이 되는 기분이랄까.

  이런 도서관의 매력 때문인지, 처음에 『도서관 전쟁』이라는 제목을 알게 되었을 때, 설레임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이 책은 결코 놓칠 수 없어. 그리고 이제 막 『도서관 전쟁』을 다 읽었다. 결과는? 예상을 뛰어넘는 재미를 가진 충분히 만족스러운 작품이었다.

  하드커버로 출간되었지만 라이트노벨 출신 작가의 라이트노벨로 분류되곤 하는 『도서관 전쟁』은 최고의 라이트노벨 중 한 작품으로 손꼽아도 무리가 없다. 이건 일종의 취향이 적중했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이 작품이 보편적이고 대중적인 재미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 주요했다고 생각한다. 재미있고 즐거운 작품이며, 라이트노벨을 즐기지 않는 독자라도 무리 없게 읽을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이 작품에 대한 소개는 크로이츠님의 블로그에서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라이트노벨과 일반문학 사이의 벽을 허물려는 전격문고의 시도는 거슬러 올라가면 제11회 전격소설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했던 아리카와 히로에게서 그 원점을 찾을 수 있다. 수상작이자 데뷔작이었던 『소금의 도시 wish on my precious』는 찬반양론이 존재했던 소설이었으나, 전격의 하드커버 시리즈의 첫 타자로서 나온 『하늘 속』은 예상 이상의 호평을 받아 미디어웍스의 하드커버 전략에 박차를 가하게 되었다. 특히 3번째 하드커버 단행본인 『도서관 전쟁』은 『책의 잡지』에서 2006년 상반기 엔터테이먼트 부분 1위에 선정되고 5만부 이상 팔리면 대형히트작인 하드커버시장에서 11만부의 판매량을 기록(2007년 1월 기준)하는 등 높은 인기를 누려 시리즈화 되었으며, 아리카와 히로 자신도 청년대상의 문학잡지 『야성시대』에 특집이 실릴 정도로 주목받는 작가가 되어 미디어웍스 이외의 출판사에서도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라이트노벨과 일반문학, 그 경계에서」, http://tale.egloos.com/3140681,  크로이츠, 2007.02.25

 



  2008년 현재 『도서관 전쟁』은 상당한 호평을 받으면서 현지에서 애니메이션으로 방영되었다. 애니메이션은 깔끔한 작화와 안정적인 전개로 좋은 평가를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

  그리고 2008년 8월 23~24일 개최된 일본 SF대회에서 39회 성운상 수상작이 『도서관 전쟁』으로 결정됐다. 일본 SF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인 성운상(星雲賞)의 일본장편부문을 수상한 것이다. 이에 관련되어서는 일본은 물론이고 이글루스에서도 긴 논쟁이 있었지만, 아무튼 SF의 한 장르인 대체역사이자 디스토피아물이라고 할 수 있는 『도서관 전쟁』은 일본 SF대회에 참석하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충분히 SF소설로 보일만 하다.(작가가 그 전에 SF 성향의 작품을 발표해왔으니) 참가자들의 투표로 뽑기 때문에 본격SF가 아니라 사회학을 다룬 디스토피아물이라 심사를 배제하고 그러는 게 있을 리도 없고, 독자들이 볼 때 노미네이트 된 작품 중에서 가장 만족스럽게 읽은 SF라고 생각했으리라. 그렇게 성운상을 수상할 만큼 이 작품은 대중적인 인지도를 가졌고 뛰어난 완성도를 가진 멋진 소설이었다.


 “저보다 키가 상당히 작으신데요? 제 안깃까지 제대로 손은 닿으시나요?” 

  도발할 속셈으로 내뱉은 말에도 도조의 표정은 꿈쩍도 않았다.

  시작, 도조가 개시를 알린 뒤 이쿠와 나란히 섰다.

  우와, 이게 뭐야, 단단하잖아!

  여태껏 여자와만 짝을 이루었던 이쿠의 입장에서는 힘이 부칠만한 도조의 몸은 손맛이 단단했다. 근육의 질이 근본부터 다르다는 사실을 한순간에 깨달았다.

  곤란해…, 지겠다 ―고 생각한 순간 세계가 빙글 돌아갔다. 숨이 막힌다. 등부터 정확하게 내던져졌다. 도조의 얼굴이 바로 위에 보인다.

  도조가 도복 매무새를 고치며 한 마디.

  “낙법 정도는 제대로 구사할 수 있게 된 뒤부터 그렇게 말하시지.”

  도발은 제대로 먹혀들었던 모양이다. 실력행사로 되갚아주다니 어른스럽지 않아, 자신이 한 짓에 대해서는 일단 모른 체하고 이쿠는 이를 악물었다.

  “나보다 키가 상당히 큰 모양인데, 한 번 정도는 바닥에 쓰러뜨려줄 수 있을 테지?”

  그 말은 그 뜻이냐. 나한테 싸움 거는 거야? 싸움 거는 거지?! 좋았어, 받아들이겠어!


  ― 『도서관 전쟁』, 아리카와 히로, 대원씨아이, 22~23쪽.



  일단 처음에 눈에 들어오는 것은 주인공인 ‘카사하라 이쿠’다. 이 소설은 플롯이 정교하게 잘 짜인 작품이고, 안정적인 문장과 지루하지 않게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사건 연결 등이 잘 되어 있는 작품이나 가장 눈에 띄는 점은 캐릭터의 매력에 있었다. 1인칭 시점은 아니지만, ‘카사하라 이쿠’의 시점으로 볼 때 웃음이 나는 장면들이 많아 즐거웠고, 밝고 당돌하며 말괄량이지만 때론 여린 모습도 보여주는 그야 말로 생동감 넘치고 귀여운 이 아가씨의 매력이 이 소설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그 외에도 미인 룸메이트이며 조언이나 도움을 잘 주는 시바사키라든지 카사하라 이쿠와 매일 다투는 것 같지만 배려가 곳곳에서 엿보이는 도조 그리고 동료이자 엘리트면서 처음에는 부딪치다가 중반부에는 커다란 긴장감을 불러 넣기도 한 테즈카 등 다양한 캐릭터들의 매력이 살아있는 소설이었다. 이 소설이 연애에 방점이 있다는 이야기를 미리 듣고 읽었는데, 후속권은 모르겠지만 일단 이번 권에서는 그런 요소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적절한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인간들과의 관계나 그런 것들은 그런 연애적인 것이 긴장감을 불러일으키고 있지만, 그것에만 매달리거나 주가 되는 작품은 아니라고 할까. 그렇지만 이 소설 전체적으로 달달한 분위기가 마지막까지 감싸고 있기도 하다. 실제로 감정이 소통하고 연인들이 나오는 게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런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는 게 신기할 정도다. 오히려 웬만한 러브코미디물보다도 더 낯간지럽고 즐거운 작품인지도 모르겠다.


 

  한편 미디어 양화위원회에 유일하게 대항할 수 있는 근거법을 가진 도서관도 요 30년 사이에 그 모습을 대폭 바꾸었다. 

  검열을 반대하며 온갖 미디어 작품을 자유로이 수집하고 또한 그 자료들을 시민에게 제공하는 권리를 갖춘 공공도서관은 미디어 양화위원회에 있어 거의 유일하게 경계해야 할 ‘적’이 되었다.

  검열에 있어 양화특무기관의 시위 행동은 비탈길을 구르듯이 점점 강화되었고 또 그에 대항하는 도서관도 방위력을 추구해 전국의 주요 공공도서관은 경비대를 가지기에 이르렀다.

  결과적으로 양화특무기관과 도서관의 항쟁은 격해지게 되었다. 항쟁의 역사는 두 조직의 무장화 역사이기도 했다. 화기 도입은 상당히 이른 단계에서 이루어졌다. 다만 도서관은 전수방위를 기본자세로 취하고 있어 항쟁의 격화를 이끈 쪽은 양화위원회 진영이었다.

  미디어 양화위원회와 도서관 모두 그 근거법을 확대해석해, 지금은 두 조직의 항쟁 그 자체가 초법규적 성질을 지닌 탓에 항쟁이 공공물 및 개인의 생명과 재산을 침해하지 않는 한 사법권은 개입하지 않는다.


  ― 『도서관 전쟁』, 아리카와 히로, 대원씨아이, 17쪽.


  캐릭터의 매력도 매력이지만 제목과 연관된 이 작품이 다루고 있는 세계관도 무척 흥미롭다. 이 작품 속 세계는 ‘미디어 양화법’이라는 법이 세워져 각종 도서에 대한 초법규적인 검열이 행해지는 세계이다. 이는 현실에서는 절대 일어나기 힘든 일이겠지만, 이 소설에서 이런 법이 통과가 된 이유로 사람들이 정치에 무관심하기 때문이라고 들었는데, 굉장히 타당성 있고 납득이 가기도 했다. 나날이 낮아지고 있는 우리나라의 투표 참가율만 봐도 사람들이 정치에 얼마나 관심이 없는지 알 수 있으니까. 우습게도 그 근거 하나로 굉장한 설득력을 가지고 있달까. 어느 나라든 사람들이 정치에 무관심한 것은 참 공통적인 정서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안타까운 일이기도 하고. 정치에 무관심하면 어떻게 되는지, 우리도 실시간으로 겪고 있지만, 『도서관 전쟁』 속 세계도 정말 치열하다. 무차별적인 검열에 맞서기 위한 방법으로 도서관은 검열에서 책을 구해내기 위해 자체적인 ‘도서대’라는 무장 부대를 갖추기까지 한다. 카사하라 이쿠는 고등학교 때 10년 만에 나온 읽고 싶은 동화 책을 읽으려고 서점에 가지만 그때 갑작스런 불시 검열이 이루어진다. 가슴에 숨겼던 책을 억지로 뺏기는 상황에 처하는 순간, 한 도서대 대원이 나타나 카사하라 이쿠를 도와준다. 카사하라 이쿠는 바로 이 일을 계기로 도서대에 동경을 하고 부모님 몰래 관동 도서대에 지원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 작품은 이러한 배경 세계관에서 많은 공감과 흥미를 느끼게 된다.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얼마 전 『GOTH』의 판금 조치가 내려졌던 일들이 떠오르는 것은 당연하다. 다행히 19금으로 바뀌었지만, 지금처럼 검열 기준 등이 명확히 세워지지 않은 상태에서는 여러 가지 불만이 생길 수밖에 없다. 또한, 어떤 범죄가 일어나면 항상 게임이나 소설 등 어떤 매체로 문제의 원인을 찾고 뒤집어씌우려는 미디어의 행위에 답답했던 사람들이라면 이 책을 읽고 가슴 시원해질 구석이 많다.


 “호러로 살인범이 늘어난다면 13일의 금요일에는 도쿄 구석구석에 제이슨이 돌아다니는 사태가 벌어질걸.” 

  이쿠는 요 몇 년 리바이벌 붐이 닥친 호러 영화 시리즈를 거론했다. 첫 붐 때에 이상범죄가 늘어났다는 이야기는 들은 바 없다.

  “미디어 작품이 범죄를 조장한다면 남자는 어리든 늙었든 죄다 성범죄자 예비군이야, AV니 에로책이니 조교물이니 능욕물이니, 성범죄 지망의 온퍼레이드잖아. 미디어를 흉내 내서 범죄가 일어난다면 제일 먼저 여자에게 총기 휴대를 허가해야 할 걸.”

  “시, 시바시키, 너무 멀리 갔어….”

  이쿠는 저도 모르게 얼굴을 붉혔다. 시바사키의 말투는 때로 지나치게 노골적이었다. “어머, 미안”이라면서도 시바사키는 별로 당황한 기색은 없었다.

  “결국은 뭔가의 탓으로 돌려서 진정하고 싶은 거지. 범인은 그 책 때문에 비뚤어졌다, 이 영화의 영향을 받고 범행을 저질렀다고 말이야. 이유를 붙여서 원인을 제거하고 나면 어린이를 감독하는 쪽은 안심할 수 있다는 논리잖아. 그 심정을 모르는 바도 아니지만.”


  ― 『도서관 전쟁』, 아리카와 히로, 대원씨아이, 164~165쪽.


  이 뿐만 아니라 제목에 걸맞게 이 책은 도서관과 검열에 관한 주제와 메시지에 집중하고 있는데, 관련된 에피소드는 시원하고 통쾌한 부분들이 많아서 재미있다. 십대 청소년에 의한 연쇄 살인사건이 일어나고 이는 다양한 갈등을 야기한다. 도서관은 이용자의 비밀을 지킨다는 원칙을 고수하는 도서관과 범죄자가 어떤 책을 읽었는지 정보를 제공해달라는 경찰의 요구가 맞서고 찬반양론이 갈린다. 그 다음 장에서는 그런 범죄 때문에 학교 문고에서는 이미 <어린이의 건전한 성장을 생각하는 모임>이 개입해서 학교의 오락 계열 책을 대량으로 처분한다. 학생들의 의사를 묻지도 않고 학부모들이 자기 기준대로 보호한다는 명분아래 미디어 양화법에도 걸리지 않는 도서를 또다시 자체 검열하는 짓을 하는 것이다.


 “도서실 책이 규제되어 우리들이 독서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곳은 이미 공공도서관뿐입니다. <생각하는 모임>이 도서관의 자유마저도 유린하려 든다면 그런 사태를 간과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들은 어린이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모임>에 항의하고, 도서관의 자유를 지원하기 위해 행동해야만 한다고 여겨서….” 

  “그 거창한 생각의 결과가 로켓 불꽃이냐.”

  도조가 무감동한 어조로 말을 자르자 따박따박 떠들고 있던 키무라 유마가 말을 멈추었다.

  “도서관의 자유를 지원한다고. 쓸데없는 짓을 했군.”

  와아, 거침없어라. 남의 일인데도 이쿠까지 어색해질 정도로 도조의 목소리는 노골적으로 귀찮다는 빛을 띠고 있었다. 이 말을 듣는다고 생각하니 등줄기가 서늘하다.


  ― 『도서관 전쟁』, 아리카와 히로, 대원씨아이, 256~257쪽.


  책에 애정을 가진 사람이 이 책을 읽으면 이렇게 즐겁게 읽을 요소들이 산재해 있다. 도서관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책에 대한 애정이 가득한 사람들이 책을 지키기 위해 싸운다는 설정은 정말 멋질 수밖에 없다. 모든 부당한 검열에 반대하고, 소중한 책들을 지키기 위한 고군분투기는 이것저것 터지는 갖가지 사건들로 인해 더욱 흥미롭게 짜여져 있다. 텐션이 굉장히 높은데, 대사를 주고받는 것도 톡톡 튀고 인상적일 뿐 아니라 캐릭터들의 개성이나 성격도 잘 그러져 있다. 각 캐릭터들의 위치나 행동이 자연스럽고 이야기에 잘 얽혀 들어가며 본선이나 암시도 곳곳에 잘 배치되어 있다.

  곳곳에 적절한 유머도 배치되어 있어서 지루하지 않고, 작품의 전체적인 구성도 뛰어나다. 한 마디로 굉장히 모범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엔터테인먼트 소설로서 취향이 어긋나지만 않다면 거의 완벽에 가까운 재미를 보장하는 소설이라고 할까. 라이트노벨을 즐겨 읽는 독자나, 혹은 전혀 접하지 않았던 독자라도 기회가 되면 꼭 한 번 읽어보라고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캐릭터, 플롯, 스토리가 모두 충실하게 조화롭게 구성된 작품으로 인물의 매력, 이야기의 매력을 물씬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작가 후기를 보면 이 작품이 떠오른 계기는 근처 도서관에 걸려 있던 ‘도서관의 자유에 관한 선언’의 간판이라고 한다. “한번 깨닫고 보니 이 선언 상당히 용맹스럽잖아 하고 묘하게 신경이 쓰여서 이것저것 알아보는 사이에 이런 설정이 나오게 되었습니다.”(408쪽) 도서관에서 본 하나의 문구에서 시작한 상상이 어떻게 멋진 스토리로 완성되는지 직접 작품을 읽어보고 확인하길 바란다.

  부당한 검열 앞에서 당신은 어떤 행동을 취할 것인가. 가만히 모든 것을 수긍할 것인가. 아니면, 검열에 맞서 자유를 지켜낼 것인가. 이 책을 펼치는 순간, 눈을 떼기 힘든 전쟁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이다. 순식간에 페이지가 넘어가는 흡인력 속에 보기만 해도 즐거워지는 밝고 강인한 주인공과 정이 가는 다양한 캐릭터들이 나온다. 이들과 우리에겐 책을 사랑한다는 공통점이 있지 않을까. 현실과 접점이 있는 예리한 풍자들은 이야기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면서 공감대를 형성한다. 매력적인 소재와 근사한 글이 만난 결과물이고 별점을 매기자면 오락소설로서 만점을 주고 싶은 글이다. 오래간만에 정말 만족스러운 이야기를 읽은 기분이다. 책을 사랑하고, 이야기를 즐기는 사람이라면 부디 이 전쟁을 지나치지 않기를.■

  

  도서관의 자유에 관한 선언


  1. 도서관은 자료수집의 자유를 가진다.

  2. 도서관은 자료제공의 자유를 가진다.

  3. 도서관은 이용자의 비밀을 지킨다.

  4. 도서관은 모든 부당한 검열을 반대한다.


  도서관의 자유를 침해당했을 때 우리들은 단결해서 끝까지 자유를 지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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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한가 2 - Seed Novel
나승규 지음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08년 9월
평점 :
절판


해안가 2권


  - 우리 주위에는 얼마나 많은 거미가 있을까.


  시드노벨은 한국 작가의 라이트노벨을 출간하는 브랜드다. 이제 막 1년이 지났을 따름이고 역사나 시장 크기에서 확연히 차이가 보이는 일본과는 아직 비교할 수준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라이트노벨을 읽고 눈이 높아진 한국 독자들에게는 시드노벨에 기대하는 바가 컸다. 일본 라이트노벨을 넘어 한국적인 라이트노벨이라는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은 새로운 글을 보여주길 원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런 글이 나왔다고 판단하는 사람도 없었고 눈에 띄는 작품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러나 이번에 출간된 『해한가』 2권은 상당히 호평을 받았고 시드노벨 중에서 가장 높은 평가를 받는 작품 중 하나가 되었다. 『해한가』는 1권이 나왔을 당시부터 좋은 평을 받았던 작품이다. 비록 많이 팔리거나 화제가 된 것은 아니지만, 꽤 호의적인 평가가 많았던 것은 그만큼 기본적으로 문장이 안정감 있고,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게 차분히 잘 이루었기 때문이다. 또한 무엇보다 눈에 띄었던 것은 일본 라이트노벨을 일방적으로 답습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현재 국내에서 라이트노벨이라고 하면, 일종의 고정관념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한 번도 안 읽어보았다가 한두 권 읽고 라이트노벨을 다 알았다는 듯이 대충 이러이러한 게 라이트노벨이 아니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라이트노벨은 일정한 경향성을 띄고 있고, 그러한 말들이 틀린 것은 아니다. 그러나 라이트노벨 브랜드로 출간된 소설은 몇 백 권을 넘어갈 정도로 많고 어떤 작품이 그 장르의 대표가 되기는 힘들다. 단순히 만화적이고 열혈적인 캐릭터가 등장하고, 귀여운 여자아이가 등장하고, 비일상에서 능력자배틀물이 펼쳐지는 그런 이야기가 라이트노벨의 전부는 아니고, 그런 것만을 라이트노벨이라고 판단할 수는 없다.

  하지만 라이트노벨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 대부분이 그러한 작품들을 라이트노벨을 대표하는 성격으로 보고 있다. 이는 라이트노벨 작가 지망생들도 상당수는 그러한 작품만을 쓰고 있는 것으로도 알 수 있다. 몇 가지 코드가 집약된 그런 작품들이 현재 가장 많이 팔리고 있으며, 애니메이션으로 미디어 믹스가 잘 되는 작품들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런 류의 작품군들만 나오는 게 대다수의 독자들을 만족시킬 수 있지는 않을 것이다. 이건 마치 판타지 소설 시장에서 한 때 퓨젼이 유행할 때 퓨젼만 나오고, 게임 판타지가 유행할 때는 게임 판타지만 읽고 쓰는 것과 유사하다. 그러면서도 작품의 퀄리티는 일본의 라이트노벨보다도 더 떨어지는 경우가 대다수라는 점이 문제다. 이미 일본 라이트노벨로 눈이 높아진 독자들에게는 한국 신인 작가들의 작품이 쉽게 성이 찰 리가 없다. 일본에서 인정받은 작품만 국내에 들여오는 경우와 달리 국내 라이트노벨은 처음 시도되고 있고, 시장이나 작가진 역시 충분하지 않다. 따라서 현재까지는 일본 라이트노벨을 어설프게 모방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는 작품이 많아 보이는 것이다.

  『해한가』는 이런 코드에 치중된 작품들과는 다른 길을 걸은 작품이다. 그리고 안정적인 이야기 전개와 맞물려 독자들에게 충분히 만족스러운 재미를 주는 작품이 되었다. 이런 까닭에 한국 작가의 좋은 라이트노벨을 원하는 독자들에게 추천할 만한 작품으로 떠오른 것이다. 분명 『해한가』 2권은 그런 독자들의 욕구를 충족시켜주었기에 꽤 많은 추천과 호평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해한가』 2권은 1권에서 많은 점이 발전했다. 1권에서 가장 크게 지적된 것은 스토리의 설득력이 떨어지고, 따라서 독자들이 쉽게 이야기에 몰입하지 못한다는 점 등을 들 수 있다. 이야기의 반전이 맥이 없다고 할까. 장편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단편으로 압축했으면 더 좋았을 뻔한 이야기였으며, 이왕 장편으로 늘린 이상 이야기가 힘을 가져야 하는데, 독자는 초반부를 읽으면서 이미 주인공들이 갖는 ‘한’에 대해서 공감을 하기가 힘들다. 일부러 구성한 작위적인 연출은 무척 뛰어났으나, 이야기의 매력이 지나치게 부실했기 때문에, 주제나 끝마무리가 만족감을 주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점 때문에 상당히 아쉬운 작품이 되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권을 읽으면서 이 작가의 2권을 기대하게 되었다. 그런 단점을 제외하고는 흠을 잡기 힘들 정도로 잘 쓰인 작품이었다. 캐릭터도 잘 묘사했고 상황이나 감정 묘사도 적절했고 글의 구성도 잘 짜여져 있었다. 본편의 이야기가 끝나고 들어간 두 편의 단편도 잘 쓰였기 때문에 더욱 기대가 됐다. 이 작가가 뭔가를 보여주는 것은 다음 권에 기대해 볼만 하다는 인상을 가진 것이다. 그리고 나온 2권은 확실히 1권 보다 더 진일보한 작품이다.

  2권이 1권보다 더욱 나아진 작품이라는 것은 독자들의 평을 봐도 느껴진다. 1권의 평은 대부분 한국형 라이트노벨(개인적으로 이런 표현을 좋아하거나 동의하지는 않지만)의 가능성이 있다면 『해한가』라는 평을 받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런 기대 섞인 평이 아니라 이야기 자체로 재미있고 몰입감이 뛰어났다는 추천평이 곳곳에서 올라왔다. 왜 이런 차이점이 있는 것일까. 일단 2권은 이야기에 흥미를 불러일으키는데 성공했고, 스토리도 1권보다 설득력이 있고 주제의식이 명확하다.

  여기서 한 가지 작품 외적인 불만을 하자면 1권과 마찬가지로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나오는 많은 오타들이 글의 몰입을 방해한다. 시드노벨에서 나오는 모든 작품이 그렇게 오타가 많은 것도 아닌데 유독 이 『해한가』에만 오타가 많은 것 같다. 이는 작가와 편집자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 몇 번씩 교정을 하여 최대한 완벽한 상태로 책을 선보여야 할 텐데 그렇지 못한 것이다. 단순히 맞춤법 검사기만 돌려도 잡을 수 있는 오타들이 눈에 보일 때 독자는 실망을 금할 수 없다. 다른 출판사처럼 독자 교정자를 모집해서 마지막까지 확인하고 신중을 기하는 것까지 바라지는 않는다. 그저 작가와 편집자가 최소한 한 번씩만 더 교정을 봤더라도 이 정도의 오타가 보이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다시 내용으로 돌아가서 이 작품에 대한 본격적인 내용에 대한 감상으로 들어가겠다. 일단 이 작품에서 눈에 띄는 부분은 캐릭터보다도 구성에 먼저 눈길이 간다. 1권에서도 세 명의 시점을 번갈아가면서 쓰는 구성이 눈에 띄었던 작품이기는 하다. 꽤 효율적으로 쓰였고 플롯을 짜는데 능숙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이번에도 그런 기질이 드러난다. 이런 식의 플롯을 구성하는 것은 그만큼 작가가 많은 것을 준비하고 작품의 재미를 배가시키기 위해서 노력했다는 것이다. 라이트 노벨은 이야기의 재미에도 충실하고, 매력적인 캐릭터들을 등장시키는데 주안점을 주지만, 또한 엔터테인먼트 문학으로서 플롯을 구성하는데도 공을 들이고, 이것으로 반전과 재미와 감동을 전해주는 장치로 많이 활용한다. 대표적인 예로 『부기팝은 웃지 않는다』 등 부기팝 시리즈는 다양한 시점 변화와 권 수가 거듭 될수록 같은 시간대와 세계에서 교차되는 수많은 캐릭터들을 묘사하여 글을 읽는 재미를 더해주고 있다. 작품의 재미가 캐릭터와 세계관은 물론 구성도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또한 나리타 료우고의 『바카노』 시리즈도 마찬가지다. 개성이 넘치고 활달하고 밝은 캐릭터를 잔뜩 등장시키는 이 작가는 구성이야 말로 이 작품의 백미라고 외치는 듯이 매 권마다 놀라운 구성을 선보이곤 했다. 이런 구성은 독자의 흥미를 더해주고, 이야기에 몰입하게 도와준다.

  『해한가』 2권에서는 주요 캐릭터는 네 명의 소녀들이다. 이 소녀들은 각기 혈액형으로 성격이 표현되어 있는데, 이런 식의 설정은 혈액형을 믿는 한국과 일본이 아니면 불가능할 것이다. 혈액형 성격은 국내에서는 굉장히 널리 퍼져 있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캐릭터의 성격을 단순한 알파벳으로 바로 규정짓고 넘어갈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작가는 이러한 점과 함께 나중에 나오는 반전의 복선으로 혈액형별 성격을 활용했다.

  구성은 처음에 상처 입은 한 소녀가 해한가의 집으로 찾아오는 <순례>로 시작한다. 이야기의 프롤로그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다음에는 <고뇌>, <원죄>, <심판>, <종말> 등으로 이어지고 마지막에 <구원>의 장이 있는 형식이다. 이는 발단, 전개, 위기, 절정, 결말의 플롯으로 치환될 수 있다. 다른 것은 한 장마다 한 명의 시점에서 진행되며 장이 바뀌어 다른 시점으로 진행될수록 시간과 이야기는 더해간다는 것이다. 즉, 시선을 변화해가면서 이야기의 진행을 해나가는 터라 각각의 캐릭터는 단편적인 정보만 얻지만, 독자는 정보가 쌓이면서 소설 전체의 얼개가 그려지는 구성이다. 이런 방식의 대표작은 앞에서 말한 『부기팝은 웃지 않는다』 등에서 쓰였고, 『카미스 레이나는 여기에 있다』 같은 작품도 비슷한 구성이다.

  이것은 기존에 국내 판타지 소설은 여러 권으로 이루어지는 장편이기 때문에 시도하지 못한 형식이기도 하고, 이렇듯 단 권 내에서 에피소드가 종결되는 최근의 라이트노벨의 형식 안에서 작품을 재미있게 구성할 수 있는 방식이다.


  여기서 잠시 라이트노벨로 인해 구성이 다양해지는 것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을 풀자면 다음과 같다.

  라이트노벨이 전혀 다른 생소한 장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기존에 국내에서 출간되었던 판타지 소설들도 코드가 맞다면 라이트노벨로 포함될 수 있다. 물론 동일하게 취급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국내에서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던 것은 판타지 소설이었다.


  이와 같이 당초부터 일본에서 넓은 토양을 갖고 있던 SF, 미스터리, 판타지 등의 ‘장르소설’에, 만화와 애니메이션적 상상력이 결합되면서 등장한 것이 ‘라이트 노벨’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일본에서 ‘라이트 노벨에 해당하는 장르가 한국에도 있는지’에 관한 질문을 간혹 받았는데, 지금까지 일관되게 ‘일본의 라이트 노벨과 완벽하게 동일한 장르는 없다고 해야 할 것이고, 굳이 비교하자면 과거에는 무협 소설이, 현재에는 판타지 소설과 무협 소설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고 답변해왔다. ― 『파우스트 vol. 1』, 선정우, 학산문화사, 「일본 라이트 노벨의 개관과 <파우스트>」, 450쪽


  문고본이 아니고 삽화가 없는 등 포맷이 달랐지만, 『슬레이어즈』나 『마술사 오펜』처럼 검과 마법이 나오는 판타지도 일본에서는 라이트노벨로 출간되었다.(물론 단권 내 에피소드 완결 등 라이트노벨 형식상의 차이점이 존재한다.) 그런 판타지 소설이 국내에서는 신국판으로 나왔을 따름이라고(국내에서도 라이트노벨과 마찬가지의 이야기 특성과 형식을 갖춘, 즉 라이트노벨 코드가 일치하는 소설들도 있었으나 라이트노벨 브랜드가 없었기 때문에 삽화가 없이 일반적인 신국판으로 출간되었다.) 볼 수 있기도 하다. 이렇듯 라이트노벨과의 차이점을 포맷에 중점을 두는 안에 기본적으로 찬성하는 편이다. 그렇기 보기 때문에 국내에 대원에서 라이트노벨을 번역해 출간할 때, 삽화가 있고 문고본 형식에 검과 마법은 물론 현대적인 배경이나 SF, 학원물, 러브코미디, 미스터리까지 그야 말로 소재의 제한이 없는 라이트노벨 출현이 반가웠다.

  독자 입장에서 출간되는 라이트노벨마다 기존에 판에 박힌 이야기 아니라 새로운 소재 활용과 색다른 이야기 전개를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국내 작가들에게도 이러한 형식으로 글을 쓸 수 있는 장을 마련해 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져보았다. 대여점용으로 소재가 한정되어버린 작가들에게(실제로 당시에 현대물은 출간되기 어려운 등 국내에서는 대여점에 걸맞는 소재 위주로 제한되어 있었다.) 이런 라이트노벨은 자유로운 소재의 작품을 쓸 수 있게 해줄 것이고 독자는 삽화까지 들어간 값싼 문고본 작품을 읽을 수 있게 되니 일석이조라고 생각한 것이다. 물론 라이트노벨은 대여점 시장이 아니고 서점 시장이기 때문에 독자들이 구매력이 있다는 점도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하리라 생각했고, 그 때문에 더욱 한국 작가의 라이트노벨이 기다려졌다. 즉, 대여점으로 무너진 장르 시장을 다시 작가가 올바른 수입을 얻을 수 있는 시스템으로 바꿀 수 있는 기회라고 본 것이다. (최근 반재원 작가의 『초인동맹에 어서오세요!』와 오트슨 작가의 『미얄의 추천』은 1권이 각각 5쇄를 찍었다.) 그리고 마침내 시드노벨이라는 이름 아래 디앤씨미디어에서 첫 타자를 끊음으로써 한국 작가의 라이트노벨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해한가』는 라이트노벨의 내부적 및 외부적 형태를 따르면서 동시에 작품 본연의 재미와 완성도를 획득하는데 성공한 작품이며, 자기 색깔을 가진 유일한 작품이기도 하다.(시드노벨을 전부 읽은 게 아니고 개인적으로 읽은 작품 중에서 그렇다는 소리다.) 2권은 구성을 절묘하게 잘 사용했고 거기서 얻을 수 있는 재미를 잘 구현해냈다. 동시에 작가가 하고 싶은 메시지를 잘 전달할 수 있었다. 몇몇 시드노벨 작품이 한두 가지의 장점을 보이나 결국 기본적인 문장이나 작품의 구성 등 완성도에서 많은 문제점을 노출해 작품의 재미를 전혀 느낄 수 없었던 것과는 차별화 된다. 이 작품은 작가가 뭘 쓰고자 했는지 확실히 정하고 썼다는 느낌이 강하다. 그만큼 플롯에 묶여 있어 인위적인 느낌을 벗어날 순 없지만, 작품 구조미와 결말에서 그려지는 따스한 느낌은 독자에게 하나의 이야기를 충분히 잘 들었다는 만족감을 전해준다.


  ※ 내용에 대한 약간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작품의 이야기는 강렬한 소재이면서 꺼려질 수 있는 민감한 부분을 건드리고 있다. 여기에 나오는 소녀들은 남들의 비밀을 조사하고 그걸 통해서 협박을 하고 즐긴다. 그러나 그 중에는 성에 의해 상처 입은 소녀가 있었다. 표지부터 일러스트마다 보이는 거미줄은 이 소설의 핵심 키워드 중 하나인 ‘거미’를 연상시킨다. 또한 거미줄은 깨진 거울을 상징하기도 한다. 소녀들은 하나씩 죽어가고 모두 거미에 잡혀 먹는다고 말한다. 거미는 누구일까? 이 작품에서 나오는 거미의 정체는 소설을 재미있게 읽게 만드는 요소 중 하나이다. 이런 수수께끼는 소설을 읽는 동안 독자와 게임을 벌이게 한다. 네 명의 소녀 중 한 명일까? 아니면 소녀에게 상처를 입힌 그일까? 비단, 거미줄에 걸려 있는 건 이 소녀들뿐이 아닐 것이다. 포탈에 뜬 뉴스만 검색해도 이 소설에 나오는 소녀보다 더 비참하고 참혹한 사건들이 연일 보도되고 있다. 무서운 세상이다. 결국 이 세상 전체가 커다란 거미줄 같이 연상된다. 그 사건들을 무심히 넘겨버리고 한 번 리플을 달고 관심을 끊는 우리들이 또 다른 거미일지도 모른다. 거미와 거미줄이라는 어찌 보면 평범한 비유를 깔아두었지만, 소설 속에서는 꽤 긴장감 있게 그려진다. 이는 분명 작가가 글의 텐션을 잃지 않도록 많은 장치를 깔아두었기 때문이다. 네 명의 소녀들은 차례로 죽음을 맞이하고, 상처를 입고, 번민하고, 충격적인 진실들은 다음 장을 넘길수록 하나씩 드러난다. 처음에 읽었을 때는 공감이 가지 않던 절박감도 이후에 갈수록 흥미로워진다. 반전이나 전체적인 플롯이 완전히 새롭다고 할 수는 없다. (사실 이제는 수많은 소설들이 이미 나온 터라 그런 새로움을 추구할 수도 없다고 보지만.) 하지만 작가는 충분히 주어진 환경 아래서 독자를 잘 몰입시켰고, 이야기의 매력을 끌어올렸다. 라이트노벨의 특성에 맞는 새로운 시도도 눈에 띄었다. 마지막에 일러스트를 이용한 연출은 나리타 료우고의 『듀라라라!』나 『바카노!』 7권 등에서 쓰인 기법인데 이 소설에서는 특히 더 과감한 방식을 사용했고 인상적이었다. 충분히 멋진 아이디어였다고 할까. 마음에 들었다.

  캐릭터에 관해서 이야기를 해보자면 이 작품의 실질적인 주인공인 소녀들은 물론 영화로 치자면 안정적인 연기를 펼쳤지만, 주어진 배역 안에서 그것을 소화할 뿐 배역을 뛰어넘는 연기를 보이지는 않았다. 다시 말하자면 캐릭터들은 작가가 설정한 플롯 안에서 정교하게 움직였기 때문에 인위적인 느낌이 강하게 났다는 것이다. 이는 단점이 될 수도 있지만, 이렇게 플롯이 중시되는 이야기일 경우에는 필연적이다. 꽉 짜여진 길대로 흘러간다는 느낌이 들었으나 페이지를 넘기는 속도에 가속도가 붙는 이야기 형식인지라 그리 해가 되진 않았다. 다른 캐릭터를 살펴보자면, 이 소설에서 가장 핵심적인 요소인 ‘해한가’ 씨와 그리고 ‘채민’이 있다. 둘 다 전 권인 1권에 등장했던 인물이며 이 중 ‘채민’을 주인공으로 이야기가 진행되었고 천재 의사 유천과 변호사 재영도 함께 등장했다. 그런데 이번 권에서는 전 권에서 나온 유천과 재영이 등장하지 않았다. 이 네 명이 한 팀인데도 불구하고 이런 식으로 배제하고 넘어가는 이야기가 앞으로도 나온다면, 결국 네 명이 팀을 이룬 게 조금 아쉽게 느껴질 것도 같다. 1권을 읽고 나서 생각한 것은 이 네 사람이 중요하게 행동하고 각자의 능력들을 발휘해서 무언가를 하는 것을 기대한 것도 있는 것이다. 남은 권에서 그런 것이 활용될지 모르겠다. 1권에서도 그렇고 2권에서도 ‘해한가’는 별다른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외적인 캐릭터의 개성은 존재하지만, 내면에서 독자가 감정 이입을 할 여지는 전혀 없다. 더군다나 그는 기계장치의 신처럼 보여 지기 때문에 이야기에 겉도는 느낌이 강하다. 이것이 앞으로 차츰 비밀들이 풀려나가면서 중요 스토리와 함께 해소가 될지, 아니면 이대로 유지가 될지 궁금한 부분이기도 했다. 이 소설에서도 음악이 또한 주요 키워드로 작용하긴 하지만 밴드가 어떤 음악적인 역할을 하는 이야기도 기대해본다. 1권에서 그런 식으로 이야기를 마무리를 맺었으면 언젠가는 중요한 역할이 주어져야 하지 않나 싶기도 한 것이다. 물론 이야기에 걸맞게 들어가야 위화감이 없겠지만 말이다.

  1권에서도 그랬지만 이 작품의 장르는 ‘전기 드라마 픽션’이다. 현대를 다루면서도 비일상적인 사건과 능력이 나오는 라이트노벨 특유의 세계관과 함께 드라마가 강조된 이야기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1권에서도 그랬듯이 이 작품에서 비일상적인 요소가 그렇게 눈에 두드러지게 나타나지 않는다. 물론 그러한 능력이 있어야 성립되는 이야기이긴 하지만, 그것이 주가 아니라 부가적인 느낌이 들고 드라마에 더 집중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한’이라는 소재를 갖고 있는 이 작품의 특성일 것이며 마음에 드는 부분이기도 하다. 물론 한편으로는 이런 능력으로 인한 이야기가 발생되는 것이 더 주가 되는 것을 보고 싶은 부분도 있다. 2권을 읽을 때도 벌써 채민이가 어떠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는지 잊은 지 오래였다. 그만큼 그것이 부각이 되지 않고 전체 스토리에 잘 조화가 되지 않는 느낌이기도 했다.


  리뷰를 마치며


  『해한가』 2권은 분명 1권보다 더 나아진 완성도를 선보인 작품이다. 1권에서 실망했다던 독자들도 2권에서는 꽤 만족스럽게 읽었다는 감상평이 많다. 그만큼 발전하는 작가라고 기대해본다면, 다음 작품을 빨리 읽고 싶기도 하다. 이 작품이 어떤 식의 이야기를 품고 있을지 아직까지는 예측불가능이기 때문이다. 시드노벨은 분명 걸출한 작품을 내놓았다. 『해한가』 2권은 라이트노벨 독자가 아닌 독자들까지 권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라이트노벨 독자에게는 얼마든지 추천을 할 수 있는 책이다. 뛰어난 흡인력이 보여주는 몰입감과 흥미를 끄는 전개, 멋진 구성과 따뜻한 결말에 이르기까지. 개인적으로는 이런 우수한 퀄리티를 보여주는 한국 작가의 라이트노벨이 많이 팔려야 또 이런 작가와 작품들이 등장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망설이는 독자들이라도 이번 기회에 『해한가』를 한 번 접해보라고 말하고 싶다. 읽고 나면, 이 작가를 꾸준히 기대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 것이다.

  이번에는 1권과 달리 후기가 있는데 후기에 적혀진 대로 작가는 작품 안에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적어놓았다고 생각한다. 글도 세상을 구원할 거라 믿는 작가. 글이 세상을 구하려면 분명 재미를 담고 있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 작가는 점점 재미있는 글쓰기를 하고 있다. 또 다른 한을 풀어줄 다음 노래가 기다려지기 시작한다.■


   내 탓이다. 이렇게 된 것은 모두 내 탓이다.

  하지만 더 이상 가슴을 두드리고만 있을 순 없었다. 더 이상 내 친구들이 죽어 가는 걸 바라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거미는 '절대로 말해서는 안 되는 비밀'들을 말해 주었어요."

  "어떤?"

  "상대방을 사회적으로 죽일 수 있는 비밀들."

  그래, 거기서 그만뒀어야 했다. 거기서 도망쳤어야 했다. 지금도, 도망쳐야 옳은 걸지도 몰랐다.

  "그 비밀들은 우리들에게 부담이 되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너무도 재미있었군요."

  "네."


  ― 『해한가』 2권, 나승규, 시드노벨(디앤씨미디어), 3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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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크리모사 Nobless Club 3
윤현승 지음 / 로크미디어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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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크리모사

  ― 세계의 종말을 앞두고 도서관에서 벌어지는 이야기.

  윤형승 작가는 엄청난 권수를 자랑하는 『다크문』으로 처음 접하게 된 작가다. 이후, 다양한 작품을 발표하며 지금까지 꾸준히 책을 내는 몇 안 되는 작가 중에 한 사람이다. 특히 이 작가의 작품성이 많은 독자들에게 인정받고 인기를 얻은 것은 장편 판타지 소설 『하얀 늑대들』을 통해서이다. 그 뒤에 『흑호』의 리메이크판인 『뫼신 사냥꾼』을 대원에서 출간하고 로크미디어의 노블레스 클럽에서 『라크리모사』를 출간했다. 『라크리모사』는 작가가 발표한 기존의 작품들과는 그 색이 전혀 다르다. 『다크문』, 『하얀 늑대들』은 전형적인 중세 판타지 배경이 사용된 판타지 소설이었다. 대원에서 출간된 『뫼신 사냥꾼』은 국내에서 몇 안 되는 한국적인 배경과 어휘를 사용한 작품으로 한국형 판타지 소설의 대표적인 작품 중 하나로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라크리모사』는 이런 전통적인 판타지 소설과는 다르다. 노블레스 클럽이 지향하는 경계소설에 걸 맞는 이야기인 것이다. 이는 새로운 이야기를 원하는 독자들에게는 더없이 매력적이나, 국내에서는 이런 형식의 작품이 거의 없었다는 점을 상기할 때 좋은 작품을 발견하기는 힘든 노릇이다. 어느 작가든 자신이 평소에 쓰던 장르가 아닌 다른 장르에 도전할 때는 시행착오를 겪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크리모사』는 흠을 찾기 힘들 정도로 깔끔하게 잘 쓰인 글이다. 한국이 배경이 아니고 한국인이 등장하지 않는데도 이야기의 위화감이 상당히 적다. 물론 아예 없다고는 할 수 없다. 작가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 때문에 가지는 고정관념인지, 작품에서 어쩔 수 없이 나타나는 분위기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마치 천명관 작가의 단편집 『유쾌한 하녀 마리사』에서 「유쾌한 하녀 마리사」와 「프랑스혁명사-제인 웰시의 간절한 부탁」 등 외국을 배경으로 한 작품에서 나타나는 느낌과 유사한 느낌이 이 작품에서도 느껴지고 있다.

  배경은 이탈리아의 한적한 마을이다. 어느 한적한 마을 언덕 끝에 위치한 조용한 도서관이 이 소설의 주요 배경인 것이다. 세상이 멸망하는 이야기가 이토록 알려지지 않은 시골 마을의 도서관에서 시작된다는 설정부터가 흥미롭고 재미를 유발한다.

  주인공은 딸을 사랑하는 도서관 사서 루카르도이다. 그는 지나치게 평범한 인간이다. 딸을 사랑하고 일탈을 꿈꾸지 않는 소시민에 불과하다. 그런 그가 거대한 세상의 위기에 직면한다. 무엇보다도 그의 정신을 뺏는 것은 딸의 행방이다. 침착하게 생각할 틈이 없다. 이 소설에서 독자가 감정을 이입하는 부분은 누구나 갖고 있는 가족의 대한 애정이며, 이는 루카르도가 딸을 아끼는 심정으로 나타난다. 루카르도가 그냥 도망치지 않고 끊임없이 움직이고 활동하는 근원은 오직 딸에게 있다.

  전체적인 이 책의 흡인력은 상당하다. 한 번 손에 잡으면 마지막 페이지까지 술술 넘기는 힘을 가지고 있다. 이는 작가가 이미 많은 사람에게 인정받은 스토리텔러라는 점도 작용했겠지만, 작품의 모순이 없도록 논리적으로 잘 짜여진 작품 구성이 한몫을 하고 있다.

  갑자기 주인공에게 연쇄살인마로 지목된 도서관 관장을 피해 달아나라는 경찰의 전화가 오고, 곧바로 낯선 여인이 절대로 도서관에서 벗어나지 마세요! 라고 전화가 온 순간부터 이 소설은 흥미를 유발하기 시작한다. 소위 말하는 소설의 끊는 점은 바로 이 부분부터일 것이다. 그 뒤부터 정신없이 몰아치기 시작하는데 독자는 상황을 파악할 틈도 없이 이야기에 끌려가기 시작한다. 닫힌 서고에 얽힌 비밀과 진실의 원 속에 갇힌 악마 레오나르의 존재는 무엇인가. 악마와 세 번의 거래를 통해 얻게 되는 건 과연 구원인가, 파멸인가.

  앞에서 말했듯이 이 소설은 작품 구성이 뛰어나고, 이 소설의 백미는 캐릭터나 배경과 세계관이 아니라 바로 이 구성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소설에서 느끼는 재미는 바로 이 구성에 있으며, 이야기를 다 읽고 나면 지금까지 이해가 가지 않았던 등장인물들의 모든 행동이 이해가 가고, 전체적인 시간 구성을 다시 머릿속에서 재구성함으로써 퍼즐을 맞추는 쾌감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의미가 없는 듯이 툭툭 뱉어졌던 대사들 속에 숨겨진 의미가 드러나는 순간, 이 소설의 본연의 재미가 느껴진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착착 맞아떨어져가는 이야기 구성은 감탄을 불러일으키고, 독자에게 충분한 만족감을 준다.

  작가 윤현승의 다른 작품을 보고 팬이 된 독자라면 결코 이 작품을 놓치지 마라. 이 책 『라크리모사』는 그동안 작가가 보여준 게 전부가 아님을 말해주고 있다. 매 작품을 발표할 때마다 기존 작품과 다른 색깔을 보여주고 새로운 이야기를 하는 작가다. 이 작가가 앞으로 또 어떤 놀라운 이야기를 전해줄 지 기대가 된다. 그동안 개인적으로 국내 장르 작가 중 이름만 보고 사는 작가는 몇 되지 않았다. 여기에 윤현승이라는 이야기꾼의 이름도 필히 들어가리라. 이제 이 작가의 다음 이야기를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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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테르의 시계 Nobless Club 4
강다임 지음 / 로크미디어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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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테르의 시계

  ― 노블레스 클럽에서만 선보일 수 있는 시간 이야기

  처음 제목을 접했을 때부터 국내 소설에서는 보기 힘든 이야기라는 것을 깨달았다. 『볼테르의 시계』. 실제 역사 속에 존재한 유명한 인물인 프랑스의 사상가 ‘볼테르’를 주인공으로 하여, 시간이동이라는 소재를 결합해 만든 소설. 여태껏 국내 장르소설 중에서 이런 소재로 쓴 소설은 찾기 힘들다. 경계소설을 지향하고 서점에서 독자가 직접 구입을 하는 시장을 목표로 만들어진 노블레스 클럽이 아니라면, 이렇게 신선하고 자유로운 소재로 책 한 권이 출간될 수 없었을 것이다. 노블레스 클럽이 가지고 있는 의의는 이렇게 장편 한 권에 겨우 몇 달이 아니라 1년이라는 시간을 투자해서 구상과 조사를 하고 집필을 하는 노작이 나올 수 있는 환경을 제공했다는 점에 있을 것이다.

  책을 처음 받았을 때 인상적인 것은 표지이다. 시계를 변형한 표지는 이 소설이 시간이동을 소재로 했다는 점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으며 깔끔하고 고급스러운 인상을 준다. 겉표지를 벗기면 연보라빛 표지와 달리 연갈색 표지가 나타나는데 이쪽도 훌륭하다. 이렇듯 책의 외형이나 편집 상태가 잘 되어 있어 소장가치를 높이기 위해서 노력한 면이 돋보인다.

  내용으로 들어가서 이 소설의 매력은 일단 주인공 볼테르의 캐릭터일 것이다. 굉장히 재기 넘치고 용기 있고 불의를 참지 못하며 지식이 풍부한 캐릭터를 그려내는 데 성공했다. 이 소설에서는 세 번에 걸친 과거로의 시간이동을 함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인 캐릭터 수는 분량에 비해 꽤 적은 편인데 그 중 볼테르가 가진 캐릭터성이 단연 눈에 띈다. 이것은 볼테르의 시점에서 주로 쓰여 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작가가 볼테르라는 캐릭터에 애정을 가지고 많은 조사와 노력으로 캐릭터를 구상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은 볼테르가 귀족과 다툼이 일어나서 숨게 되고 그 와중에 절대 이성이 있다는 내기를 하게 되면서 3번의 시간 이동을 통해 이를 증명하려고 한다는 이야기다. 시간 이동이 단지 우발적이거나 개인의 사적인 이유가 아니라 절대 이성이라는 것을 찾기 위한 여행이라는 점이 흥미로웠다. 또한 소설은 시간이동물이 가지고 있는 재미도 충분히 전해주고 있다. 낯선 시간대로의 이동, 거기서 겪는 이야기들과 위험한 순간 급박하게 돌아오는 긴장감까지. 그리고 과거로의 시간 이동이 결국 현재에 자신에게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구성까지 시간이동물의 매력을 제대로 구현하고 있었다.

  이야기는 잘 구성되어 있고 독자는 몰입해서 읽을 수 있었다. 흥미진진한 스토리에 몰입하다보면 나중에는 절대 이성에 대해서는 생각이 나지 않을 정도였다. 특히 가장 인상적인 것은 장르 월간지 《판타스틱》 인터뷰에서도 적혀 있듯이 촛불집회가 연상되는 장면들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촛불집회가 있기도 전에 쓰인 작품이라고 하니 더욱 흥미로웠다. 아버지와의 정치 토론이 이 소설을 쓰게 된 배경이라고 하니 그런 장면이 연출된 것은 필연적인 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재미있게 읽었지만 다 읽고 나서는 조금 아쉬운 기분이 들기도 하는 작품이다. 이야기가 급박하게 몰아치다가 에필로그에 와서는 너무 쉽게 늘어지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후의 행적들을 단편적으로 언급해주고 있는데 이게 커다란 반전이나 놀라운 사실들이 있는 게 아니라 지극히 평이한 전개로 이어지고 있다. 오히려 사족 같은 느낌이 들었다고 할까. 역사와 결부시키려는 노력이 지나치게 많았다고 할까. 특히 여주인공과는 감동적인 연출과 여운을 주는 장면 등이 있었으면 작품이 더욱 살아났을 텐데, 사실적인 역사에만 묶인 탓인지, 무심한 듯 열정적인 두 사람의 관계를 작가가 형상화하려고 의도한 탓인지 장르 소설에서 기대할 수 있는 두 연인의 극적인 재회와 멋있는 연출, 감동이 보이지 않아서 아쉬웠다. 개인적으로는 이 점이 충족되었다면 상당히 만족스러운 작품이 되었을 것이다. 책을 읽는 내내 기다린 것은 그렇게 감동적인 피날레가 아니었나 싶다.

  노블레스 클럽은 지금도 계속 신간을 출간하고 있다. 그러나 소장가치를 높여 새로운 소재와 1권 분량의 완결을 가진 장편을 출간한다고 해도 모든 소설이 독자들에게 인정을 받고 작품 수준이 고른 것은 아니다. 실망이 많은 작품도 있고, 또 충분히 구입한 가치를 하는 소설도 혼재해 있다. 이 책은 그 중에서도 책값을 하는 쪽에 속해 있다. 작가가 정성스럽게 쓴 티가 나고, 소재나 이야기도 매력적이다. 강다임 작가는 이전에도 판타지 소설을 낸 경력이 있지만 역시 신예에 속하는 작가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 작품 이후에 선보일 이야기에도 관심이 간다. 현재 다른 작품을 집필 중에 있다고 하니 또 잘 만든 작품 한 편을 기대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전에 아직 이 책을 읽지 않은 독자라면, 또 시간이동에 관련된 이야기에 흥미가 있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노블레스 클럽이 아니면 보기 힘든 국내 장르 소설의 매력을 맛보고 싶다면 『볼테르의 시계』가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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