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한가 2 - Seed Novel
나승규 지음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08년 9월
평점 :
절판


해안가 2권


  - 우리 주위에는 얼마나 많은 거미가 있을까.


  시드노벨은 한국 작가의 라이트노벨을 출간하는 브랜드다. 이제 막 1년이 지났을 따름이고 역사나 시장 크기에서 확연히 차이가 보이는 일본과는 아직 비교할 수준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라이트노벨을 읽고 눈이 높아진 한국 독자들에게는 시드노벨에 기대하는 바가 컸다. 일본 라이트노벨을 넘어 한국적인 라이트노벨이라는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은 새로운 글을 보여주길 원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런 글이 나왔다고 판단하는 사람도 없었고 눈에 띄는 작품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러나 이번에 출간된 『해한가』 2권은 상당히 호평을 받았고 시드노벨 중에서 가장 높은 평가를 받는 작품 중 하나가 되었다. 『해한가』는 1권이 나왔을 당시부터 좋은 평을 받았던 작품이다. 비록 많이 팔리거나 화제가 된 것은 아니지만, 꽤 호의적인 평가가 많았던 것은 그만큼 기본적으로 문장이 안정감 있고,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게 차분히 잘 이루었기 때문이다. 또한 무엇보다 눈에 띄었던 것은 일본 라이트노벨을 일방적으로 답습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현재 국내에서 라이트노벨이라고 하면, 일종의 고정관념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한 번도 안 읽어보았다가 한두 권 읽고 라이트노벨을 다 알았다는 듯이 대충 이러이러한 게 라이트노벨이 아니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라이트노벨은 일정한 경향성을 띄고 있고, 그러한 말들이 틀린 것은 아니다. 그러나 라이트노벨 브랜드로 출간된 소설은 몇 백 권을 넘어갈 정도로 많고 어떤 작품이 그 장르의 대표가 되기는 힘들다. 단순히 만화적이고 열혈적인 캐릭터가 등장하고, 귀여운 여자아이가 등장하고, 비일상에서 능력자배틀물이 펼쳐지는 그런 이야기가 라이트노벨의 전부는 아니고, 그런 것만을 라이트노벨이라고 판단할 수는 없다.

  하지만 라이트노벨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 대부분이 그러한 작품들을 라이트노벨을 대표하는 성격으로 보고 있다. 이는 라이트노벨 작가 지망생들도 상당수는 그러한 작품만을 쓰고 있는 것으로도 알 수 있다. 몇 가지 코드가 집약된 그런 작품들이 현재 가장 많이 팔리고 있으며, 애니메이션으로 미디어 믹스가 잘 되는 작품들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런 류의 작품군들만 나오는 게 대다수의 독자들을 만족시킬 수 있지는 않을 것이다. 이건 마치 판타지 소설 시장에서 한 때 퓨젼이 유행할 때 퓨젼만 나오고, 게임 판타지가 유행할 때는 게임 판타지만 읽고 쓰는 것과 유사하다. 그러면서도 작품의 퀄리티는 일본의 라이트노벨보다도 더 떨어지는 경우가 대다수라는 점이 문제다. 이미 일본 라이트노벨로 눈이 높아진 독자들에게는 한국 신인 작가들의 작품이 쉽게 성이 찰 리가 없다. 일본에서 인정받은 작품만 국내에 들여오는 경우와 달리 국내 라이트노벨은 처음 시도되고 있고, 시장이나 작가진 역시 충분하지 않다. 따라서 현재까지는 일본 라이트노벨을 어설프게 모방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는 작품이 많아 보이는 것이다.

  『해한가』는 이런 코드에 치중된 작품들과는 다른 길을 걸은 작품이다. 그리고 안정적인 이야기 전개와 맞물려 독자들에게 충분히 만족스러운 재미를 주는 작품이 되었다. 이런 까닭에 한국 작가의 좋은 라이트노벨을 원하는 독자들에게 추천할 만한 작품으로 떠오른 것이다. 분명 『해한가』 2권은 그런 독자들의 욕구를 충족시켜주었기에 꽤 많은 추천과 호평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해한가』 2권은 1권에서 많은 점이 발전했다. 1권에서 가장 크게 지적된 것은 스토리의 설득력이 떨어지고, 따라서 독자들이 쉽게 이야기에 몰입하지 못한다는 점 등을 들 수 있다. 이야기의 반전이 맥이 없다고 할까. 장편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단편으로 압축했으면 더 좋았을 뻔한 이야기였으며, 이왕 장편으로 늘린 이상 이야기가 힘을 가져야 하는데, 독자는 초반부를 읽으면서 이미 주인공들이 갖는 ‘한’에 대해서 공감을 하기가 힘들다. 일부러 구성한 작위적인 연출은 무척 뛰어났으나, 이야기의 매력이 지나치게 부실했기 때문에, 주제나 끝마무리가 만족감을 주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점 때문에 상당히 아쉬운 작품이 되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권을 읽으면서 이 작가의 2권을 기대하게 되었다. 그런 단점을 제외하고는 흠을 잡기 힘들 정도로 잘 쓰인 작품이었다. 캐릭터도 잘 묘사했고 상황이나 감정 묘사도 적절했고 글의 구성도 잘 짜여져 있었다. 본편의 이야기가 끝나고 들어간 두 편의 단편도 잘 쓰였기 때문에 더욱 기대가 됐다. 이 작가가 뭔가를 보여주는 것은 다음 권에 기대해 볼만 하다는 인상을 가진 것이다. 그리고 나온 2권은 확실히 1권 보다 더 진일보한 작품이다.

  2권이 1권보다 더욱 나아진 작품이라는 것은 독자들의 평을 봐도 느껴진다. 1권의 평은 대부분 한국형 라이트노벨(개인적으로 이런 표현을 좋아하거나 동의하지는 않지만)의 가능성이 있다면 『해한가』라는 평을 받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런 기대 섞인 평이 아니라 이야기 자체로 재미있고 몰입감이 뛰어났다는 추천평이 곳곳에서 올라왔다. 왜 이런 차이점이 있는 것일까. 일단 2권은 이야기에 흥미를 불러일으키는데 성공했고, 스토리도 1권보다 설득력이 있고 주제의식이 명확하다.

  여기서 한 가지 작품 외적인 불만을 하자면 1권과 마찬가지로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나오는 많은 오타들이 글의 몰입을 방해한다. 시드노벨에서 나오는 모든 작품이 그렇게 오타가 많은 것도 아닌데 유독 이 『해한가』에만 오타가 많은 것 같다. 이는 작가와 편집자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 몇 번씩 교정을 하여 최대한 완벽한 상태로 책을 선보여야 할 텐데 그렇지 못한 것이다. 단순히 맞춤법 검사기만 돌려도 잡을 수 있는 오타들이 눈에 보일 때 독자는 실망을 금할 수 없다. 다른 출판사처럼 독자 교정자를 모집해서 마지막까지 확인하고 신중을 기하는 것까지 바라지는 않는다. 그저 작가와 편집자가 최소한 한 번씩만 더 교정을 봤더라도 이 정도의 오타가 보이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다시 내용으로 돌아가서 이 작품에 대한 본격적인 내용에 대한 감상으로 들어가겠다. 일단 이 작품에서 눈에 띄는 부분은 캐릭터보다도 구성에 먼저 눈길이 간다. 1권에서도 세 명의 시점을 번갈아가면서 쓰는 구성이 눈에 띄었던 작품이기는 하다. 꽤 효율적으로 쓰였고 플롯을 짜는데 능숙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이번에도 그런 기질이 드러난다. 이런 식의 플롯을 구성하는 것은 그만큼 작가가 많은 것을 준비하고 작품의 재미를 배가시키기 위해서 노력했다는 것이다. 라이트 노벨은 이야기의 재미에도 충실하고, 매력적인 캐릭터들을 등장시키는데 주안점을 주지만, 또한 엔터테인먼트 문학으로서 플롯을 구성하는데도 공을 들이고, 이것으로 반전과 재미와 감동을 전해주는 장치로 많이 활용한다. 대표적인 예로 『부기팝은 웃지 않는다』 등 부기팝 시리즈는 다양한 시점 변화와 권 수가 거듭 될수록 같은 시간대와 세계에서 교차되는 수많은 캐릭터들을 묘사하여 글을 읽는 재미를 더해주고 있다. 작품의 재미가 캐릭터와 세계관은 물론 구성도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또한 나리타 료우고의 『바카노』 시리즈도 마찬가지다. 개성이 넘치고 활달하고 밝은 캐릭터를 잔뜩 등장시키는 이 작가는 구성이야 말로 이 작품의 백미라고 외치는 듯이 매 권마다 놀라운 구성을 선보이곤 했다. 이런 구성은 독자의 흥미를 더해주고, 이야기에 몰입하게 도와준다.

  『해한가』 2권에서는 주요 캐릭터는 네 명의 소녀들이다. 이 소녀들은 각기 혈액형으로 성격이 표현되어 있는데, 이런 식의 설정은 혈액형을 믿는 한국과 일본이 아니면 불가능할 것이다. 혈액형 성격은 국내에서는 굉장히 널리 퍼져 있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캐릭터의 성격을 단순한 알파벳으로 바로 규정짓고 넘어갈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작가는 이러한 점과 함께 나중에 나오는 반전의 복선으로 혈액형별 성격을 활용했다.

  구성은 처음에 상처 입은 한 소녀가 해한가의 집으로 찾아오는 <순례>로 시작한다. 이야기의 프롤로그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다음에는 <고뇌>, <원죄>, <심판>, <종말> 등으로 이어지고 마지막에 <구원>의 장이 있는 형식이다. 이는 발단, 전개, 위기, 절정, 결말의 플롯으로 치환될 수 있다. 다른 것은 한 장마다 한 명의 시점에서 진행되며 장이 바뀌어 다른 시점으로 진행될수록 시간과 이야기는 더해간다는 것이다. 즉, 시선을 변화해가면서 이야기의 진행을 해나가는 터라 각각의 캐릭터는 단편적인 정보만 얻지만, 독자는 정보가 쌓이면서 소설 전체의 얼개가 그려지는 구성이다. 이런 방식의 대표작은 앞에서 말한 『부기팝은 웃지 않는다』 등에서 쓰였고, 『카미스 레이나는 여기에 있다』 같은 작품도 비슷한 구성이다.

  이것은 기존에 국내 판타지 소설은 여러 권으로 이루어지는 장편이기 때문에 시도하지 못한 형식이기도 하고, 이렇듯 단 권 내에서 에피소드가 종결되는 최근의 라이트노벨의 형식 안에서 작품을 재미있게 구성할 수 있는 방식이다.


  여기서 잠시 라이트노벨로 인해 구성이 다양해지는 것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을 풀자면 다음과 같다.

  라이트노벨이 전혀 다른 생소한 장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기존에 국내에서 출간되었던 판타지 소설들도 코드가 맞다면 라이트노벨로 포함될 수 있다. 물론 동일하게 취급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국내에서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던 것은 판타지 소설이었다.


  이와 같이 당초부터 일본에서 넓은 토양을 갖고 있던 SF, 미스터리, 판타지 등의 ‘장르소설’에, 만화와 애니메이션적 상상력이 결합되면서 등장한 것이 ‘라이트 노벨’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일본에서 ‘라이트 노벨에 해당하는 장르가 한국에도 있는지’에 관한 질문을 간혹 받았는데, 지금까지 일관되게 ‘일본의 라이트 노벨과 완벽하게 동일한 장르는 없다고 해야 할 것이고, 굳이 비교하자면 과거에는 무협 소설이, 현재에는 판타지 소설과 무협 소설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고 답변해왔다. ― 『파우스트 vol. 1』, 선정우, 학산문화사, 「일본 라이트 노벨의 개관과 <파우스트>」, 450쪽


  문고본이 아니고 삽화가 없는 등 포맷이 달랐지만, 『슬레이어즈』나 『마술사 오펜』처럼 검과 마법이 나오는 판타지도 일본에서는 라이트노벨로 출간되었다.(물론 단권 내 에피소드 완결 등 라이트노벨 형식상의 차이점이 존재한다.) 그런 판타지 소설이 국내에서는 신국판으로 나왔을 따름이라고(국내에서도 라이트노벨과 마찬가지의 이야기 특성과 형식을 갖춘, 즉 라이트노벨 코드가 일치하는 소설들도 있었으나 라이트노벨 브랜드가 없었기 때문에 삽화가 없이 일반적인 신국판으로 출간되었다.) 볼 수 있기도 하다. 이렇듯 라이트노벨과의 차이점을 포맷에 중점을 두는 안에 기본적으로 찬성하는 편이다. 그렇기 보기 때문에 국내에 대원에서 라이트노벨을 번역해 출간할 때, 삽화가 있고 문고본 형식에 검과 마법은 물론 현대적인 배경이나 SF, 학원물, 러브코미디, 미스터리까지 그야 말로 소재의 제한이 없는 라이트노벨 출현이 반가웠다.

  독자 입장에서 출간되는 라이트노벨마다 기존에 판에 박힌 이야기 아니라 새로운 소재 활용과 색다른 이야기 전개를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국내 작가들에게도 이러한 형식으로 글을 쓸 수 있는 장을 마련해 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져보았다. 대여점용으로 소재가 한정되어버린 작가들에게(실제로 당시에 현대물은 출간되기 어려운 등 국내에서는 대여점에 걸맞는 소재 위주로 제한되어 있었다.) 이런 라이트노벨은 자유로운 소재의 작품을 쓸 수 있게 해줄 것이고 독자는 삽화까지 들어간 값싼 문고본 작품을 읽을 수 있게 되니 일석이조라고 생각한 것이다. 물론 라이트노벨은 대여점 시장이 아니고 서점 시장이기 때문에 독자들이 구매력이 있다는 점도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하리라 생각했고, 그 때문에 더욱 한국 작가의 라이트노벨이 기다려졌다. 즉, 대여점으로 무너진 장르 시장을 다시 작가가 올바른 수입을 얻을 수 있는 시스템으로 바꿀 수 있는 기회라고 본 것이다. (최근 반재원 작가의 『초인동맹에 어서오세요!』와 오트슨 작가의 『미얄의 추천』은 1권이 각각 5쇄를 찍었다.) 그리고 마침내 시드노벨이라는 이름 아래 디앤씨미디어에서 첫 타자를 끊음으로써 한국 작가의 라이트노벨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해한가』는 라이트노벨의 내부적 및 외부적 형태를 따르면서 동시에 작품 본연의 재미와 완성도를 획득하는데 성공한 작품이며, 자기 색깔을 가진 유일한 작품이기도 하다.(시드노벨을 전부 읽은 게 아니고 개인적으로 읽은 작품 중에서 그렇다는 소리다.) 2권은 구성을 절묘하게 잘 사용했고 거기서 얻을 수 있는 재미를 잘 구현해냈다. 동시에 작가가 하고 싶은 메시지를 잘 전달할 수 있었다. 몇몇 시드노벨 작품이 한두 가지의 장점을 보이나 결국 기본적인 문장이나 작품의 구성 등 완성도에서 많은 문제점을 노출해 작품의 재미를 전혀 느낄 수 없었던 것과는 차별화 된다. 이 작품은 작가가 뭘 쓰고자 했는지 확실히 정하고 썼다는 느낌이 강하다. 그만큼 플롯에 묶여 있어 인위적인 느낌을 벗어날 순 없지만, 작품 구조미와 결말에서 그려지는 따스한 느낌은 독자에게 하나의 이야기를 충분히 잘 들었다는 만족감을 전해준다.


  ※ 내용에 대한 약간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작품의 이야기는 강렬한 소재이면서 꺼려질 수 있는 민감한 부분을 건드리고 있다. 여기에 나오는 소녀들은 남들의 비밀을 조사하고 그걸 통해서 협박을 하고 즐긴다. 그러나 그 중에는 성에 의해 상처 입은 소녀가 있었다. 표지부터 일러스트마다 보이는 거미줄은 이 소설의 핵심 키워드 중 하나인 ‘거미’를 연상시킨다. 또한 거미줄은 깨진 거울을 상징하기도 한다. 소녀들은 하나씩 죽어가고 모두 거미에 잡혀 먹는다고 말한다. 거미는 누구일까? 이 작품에서 나오는 거미의 정체는 소설을 재미있게 읽게 만드는 요소 중 하나이다. 이런 수수께끼는 소설을 읽는 동안 독자와 게임을 벌이게 한다. 네 명의 소녀 중 한 명일까? 아니면 소녀에게 상처를 입힌 그일까? 비단, 거미줄에 걸려 있는 건 이 소녀들뿐이 아닐 것이다. 포탈에 뜬 뉴스만 검색해도 이 소설에 나오는 소녀보다 더 비참하고 참혹한 사건들이 연일 보도되고 있다. 무서운 세상이다. 결국 이 세상 전체가 커다란 거미줄 같이 연상된다. 그 사건들을 무심히 넘겨버리고 한 번 리플을 달고 관심을 끊는 우리들이 또 다른 거미일지도 모른다. 거미와 거미줄이라는 어찌 보면 평범한 비유를 깔아두었지만, 소설 속에서는 꽤 긴장감 있게 그려진다. 이는 분명 작가가 글의 텐션을 잃지 않도록 많은 장치를 깔아두었기 때문이다. 네 명의 소녀들은 차례로 죽음을 맞이하고, 상처를 입고, 번민하고, 충격적인 진실들은 다음 장을 넘길수록 하나씩 드러난다. 처음에 읽었을 때는 공감이 가지 않던 절박감도 이후에 갈수록 흥미로워진다. 반전이나 전체적인 플롯이 완전히 새롭다고 할 수는 없다. (사실 이제는 수많은 소설들이 이미 나온 터라 그런 새로움을 추구할 수도 없다고 보지만.) 하지만 작가는 충분히 주어진 환경 아래서 독자를 잘 몰입시켰고, 이야기의 매력을 끌어올렸다. 라이트노벨의 특성에 맞는 새로운 시도도 눈에 띄었다. 마지막에 일러스트를 이용한 연출은 나리타 료우고의 『듀라라라!』나 『바카노!』 7권 등에서 쓰인 기법인데 이 소설에서는 특히 더 과감한 방식을 사용했고 인상적이었다. 충분히 멋진 아이디어였다고 할까. 마음에 들었다.

  캐릭터에 관해서 이야기를 해보자면 이 작품의 실질적인 주인공인 소녀들은 물론 영화로 치자면 안정적인 연기를 펼쳤지만, 주어진 배역 안에서 그것을 소화할 뿐 배역을 뛰어넘는 연기를 보이지는 않았다. 다시 말하자면 캐릭터들은 작가가 설정한 플롯 안에서 정교하게 움직였기 때문에 인위적인 느낌이 강하게 났다는 것이다. 이는 단점이 될 수도 있지만, 이렇게 플롯이 중시되는 이야기일 경우에는 필연적이다. 꽉 짜여진 길대로 흘러간다는 느낌이 들었으나 페이지를 넘기는 속도에 가속도가 붙는 이야기 형식인지라 그리 해가 되진 않았다. 다른 캐릭터를 살펴보자면, 이 소설에서 가장 핵심적인 요소인 ‘해한가’ 씨와 그리고 ‘채민’이 있다. 둘 다 전 권인 1권에 등장했던 인물이며 이 중 ‘채민’을 주인공으로 이야기가 진행되었고 천재 의사 유천과 변호사 재영도 함께 등장했다. 그런데 이번 권에서는 전 권에서 나온 유천과 재영이 등장하지 않았다. 이 네 명이 한 팀인데도 불구하고 이런 식으로 배제하고 넘어가는 이야기가 앞으로도 나온다면, 결국 네 명이 팀을 이룬 게 조금 아쉽게 느껴질 것도 같다. 1권을 읽고 나서 생각한 것은 이 네 사람이 중요하게 행동하고 각자의 능력들을 발휘해서 무언가를 하는 것을 기대한 것도 있는 것이다. 남은 권에서 그런 것이 활용될지 모르겠다. 1권에서도 그렇고 2권에서도 ‘해한가’는 별다른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외적인 캐릭터의 개성은 존재하지만, 내면에서 독자가 감정 이입을 할 여지는 전혀 없다. 더군다나 그는 기계장치의 신처럼 보여 지기 때문에 이야기에 겉도는 느낌이 강하다. 이것이 앞으로 차츰 비밀들이 풀려나가면서 중요 스토리와 함께 해소가 될지, 아니면 이대로 유지가 될지 궁금한 부분이기도 했다. 이 소설에서도 음악이 또한 주요 키워드로 작용하긴 하지만 밴드가 어떤 음악적인 역할을 하는 이야기도 기대해본다. 1권에서 그런 식으로 이야기를 마무리를 맺었으면 언젠가는 중요한 역할이 주어져야 하지 않나 싶기도 한 것이다. 물론 이야기에 걸맞게 들어가야 위화감이 없겠지만 말이다.

  1권에서도 그랬지만 이 작품의 장르는 ‘전기 드라마 픽션’이다. 현대를 다루면서도 비일상적인 사건과 능력이 나오는 라이트노벨 특유의 세계관과 함께 드라마가 강조된 이야기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1권에서도 그랬듯이 이 작품에서 비일상적인 요소가 그렇게 눈에 두드러지게 나타나지 않는다. 물론 그러한 능력이 있어야 성립되는 이야기이긴 하지만, 그것이 주가 아니라 부가적인 느낌이 들고 드라마에 더 집중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한’이라는 소재를 갖고 있는 이 작품의 특성일 것이며 마음에 드는 부분이기도 하다. 물론 한편으로는 이런 능력으로 인한 이야기가 발생되는 것이 더 주가 되는 것을 보고 싶은 부분도 있다. 2권을 읽을 때도 벌써 채민이가 어떠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는지 잊은 지 오래였다. 그만큼 그것이 부각이 되지 않고 전체 스토리에 잘 조화가 되지 않는 느낌이기도 했다.


  리뷰를 마치며


  『해한가』 2권은 분명 1권보다 더 나아진 완성도를 선보인 작품이다. 1권에서 실망했다던 독자들도 2권에서는 꽤 만족스럽게 읽었다는 감상평이 많다. 그만큼 발전하는 작가라고 기대해본다면, 다음 작품을 빨리 읽고 싶기도 하다. 이 작품이 어떤 식의 이야기를 품고 있을지 아직까지는 예측불가능이기 때문이다. 시드노벨은 분명 걸출한 작품을 내놓았다. 『해한가』 2권은 라이트노벨 독자가 아닌 독자들까지 권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라이트노벨 독자에게는 얼마든지 추천을 할 수 있는 책이다. 뛰어난 흡인력이 보여주는 몰입감과 흥미를 끄는 전개, 멋진 구성과 따뜻한 결말에 이르기까지. 개인적으로는 이런 우수한 퀄리티를 보여주는 한국 작가의 라이트노벨이 많이 팔려야 또 이런 작가와 작품들이 등장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망설이는 독자들이라도 이번 기회에 『해한가』를 한 번 접해보라고 말하고 싶다. 읽고 나면, 이 작가를 꾸준히 기대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 것이다.

  이번에는 1권과 달리 후기가 있는데 후기에 적혀진 대로 작가는 작품 안에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적어놓았다고 생각한다. 글도 세상을 구원할 거라 믿는 작가. 글이 세상을 구하려면 분명 재미를 담고 있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 작가는 점점 재미있는 글쓰기를 하고 있다. 또 다른 한을 풀어줄 다음 노래가 기다려지기 시작한다.■


   내 탓이다. 이렇게 된 것은 모두 내 탓이다.

  하지만 더 이상 가슴을 두드리고만 있을 순 없었다. 더 이상 내 친구들이 죽어 가는 걸 바라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거미는 '절대로 말해서는 안 되는 비밀'들을 말해 주었어요."

  "어떤?"

  "상대방을 사회적으로 죽일 수 있는 비밀들."

  그래, 거기서 그만뒀어야 했다. 거기서 도망쳤어야 했다. 지금도, 도망쳐야 옳은 걸지도 몰랐다.

  "그 비밀들은 우리들에게 부담이 되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너무도 재미있었군요."

  "네."


  ― 『해한가』 2권, 나승규, 시드노벨(디앤씨미디어), 3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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