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크리모사 Nobless Club 3
윤현승 지음 / 로크미디어 / 2008년 4월
평점 :
품절


 

라크리모사

  ― 세계의 종말을 앞두고 도서관에서 벌어지는 이야기.

  윤형승 작가는 엄청난 권수를 자랑하는 『다크문』으로 처음 접하게 된 작가다. 이후, 다양한 작품을 발표하며 지금까지 꾸준히 책을 내는 몇 안 되는 작가 중에 한 사람이다. 특히 이 작가의 작품성이 많은 독자들에게 인정받고 인기를 얻은 것은 장편 판타지 소설 『하얀 늑대들』을 통해서이다. 그 뒤에 『흑호』의 리메이크판인 『뫼신 사냥꾼』을 대원에서 출간하고 로크미디어의 노블레스 클럽에서 『라크리모사』를 출간했다. 『라크리모사』는 작가가 발표한 기존의 작품들과는 그 색이 전혀 다르다. 『다크문』, 『하얀 늑대들』은 전형적인 중세 판타지 배경이 사용된 판타지 소설이었다. 대원에서 출간된 『뫼신 사냥꾼』은 국내에서 몇 안 되는 한국적인 배경과 어휘를 사용한 작품으로 한국형 판타지 소설의 대표적인 작품 중 하나로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라크리모사』는 이런 전통적인 판타지 소설과는 다르다. 노블레스 클럽이 지향하는 경계소설에 걸 맞는 이야기인 것이다. 이는 새로운 이야기를 원하는 독자들에게는 더없이 매력적이나, 국내에서는 이런 형식의 작품이 거의 없었다는 점을 상기할 때 좋은 작품을 발견하기는 힘든 노릇이다. 어느 작가든 자신이 평소에 쓰던 장르가 아닌 다른 장르에 도전할 때는 시행착오를 겪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크리모사』는 흠을 찾기 힘들 정도로 깔끔하게 잘 쓰인 글이다. 한국이 배경이 아니고 한국인이 등장하지 않는데도 이야기의 위화감이 상당히 적다. 물론 아예 없다고는 할 수 없다. 작가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 때문에 가지는 고정관념인지, 작품에서 어쩔 수 없이 나타나는 분위기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마치 천명관 작가의 단편집 『유쾌한 하녀 마리사』에서 「유쾌한 하녀 마리사」와 「프랑스혁명사-제인 웰시의 간절한 부탁」 등 외국을 배경으로 한 작품에서 나타나는 느낌과 유사한 느낌이 이 작품에서도 느껴지고 있다.

  배경은 이탈리아의 한적한 마을이다. 어느 한적한 마을 언덕 끝에 위치한 조용한 도서관이 이 소설의 주요 배경인 것이다. 세상이 멸망하는 이야기가 이토록 알려지지 않은 시골 마을의 도서관에서 시작된다는 설정부터가 흥미롭고 재미를 유발한다.

  주인공은 딸을 사랑하는 도서관 사서 루카르도이다. 그는 지나치게 평범한 인간이다. 딸을 사랑하고 일탈을 꿈꾸지 않는 소시민에 불과하다. 그런 그가 거대한 세상의 위기에 직면한다. 무엇보다도 그의 정신을 뺏는 것은 딸의 행방이다. 침착하게 생각할 틈이 없다. 이 소설에서 독자가 감정을 이입하는 부분은 누구나 갖고 있는 가족의 대한 애정이며, 이는 루카르도가 딸을 아끼는 심정으로 나타난다. 루카르도가 그냥 도망치지 않고 끊임없이 움직이고 활동하는 근원은 오직 딸에게 있다.

  전체적인 이 책의 흡인력은 상당하다. 한 번 손에 잡으면 마지막 페이지까지 술술 넘기는 힘을 가지고 있다. 이는 작가가 이미 많은 사람에게 인정받은 스토리텔러라는 점도 작용했겠지만, 작품의 모순이 없도록 논리적으로 잘 짜여진 작품 구성이 한몫을 하고 있다.

  갑자기 주인공에게 연쇄살인마로 지목된 도서관 관장을 피해 달아나라는 경찰의 전화가 오고, 곧바로 낯선 여인이 절대로 도서관에서 벗어나지 마세요! 라고 전화가 온 순간부터 이 소설은 흥미를 유발하기 시작한다. 소위 말하는 소설의 끊는 점은 바로 이 부분부터일 것이다. 그 뒤부터 정신없이 몰아치기 시작하는데 독자는 상황을 파악할 틈도 없이 이야기에 끌려가기 시작한다. 닫힌 서고에 얽힌 비밀과 진실의 원 속에 갇힌 악마 레오나르의 존재는 무엇인가. 악마와 세 번의 거래를 통해 얻게 되는 건 과연 구원인가, 파멸인가.

  앞에서 말했듯이 이 소설은 작품 구성이 뛰어나고, 이 소설의 백미는 캐릭터나 배경과 세계관이 아니라 바로 이 구성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소설에서 느끼는 재미는 바로 이 구성에 있으며, 이야기를 다 읽고 나면 지금까지 이해가 가지 않았던 등장인물들의 모든 행동이 이해가 가고, 전체적인 시간 구성을 다시 머릿속에서 재구성함으로써 퍼즐을 맞추는 쾌감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의미가 없는 듯이 툭툭 뱉어졌던 대사들 속에 숨겨진 의미가 드러나는 순간, 이 소설의 본연의 재미가 느껴진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착착 맞아떨어져가는 이야기 구성은 감탄을 불러일으키고, 독자에게 충분한 만족감을 준다.

  작가 윤현승의 다른 작품을 보고 팬이 된 독자라면 결코 이 작품을 놓치지 마라. 이 책 『라크리모사』는 그동안 작가가 보여준 게 전부가 아님을 말해주고 있다. 매 작품을 발표할 때마다 기존 작품과 다른 색깔을 보여주고 새로운 이야기를 하는 작가다. 이 작가가 앞으로 또 어떤 놀라운 이야기를 전해줄 지 기대가 된다. 그동안 개인적으로 국내 장르 작가 중 이름만 보고 사는 작가는 몇 되지 않았다. 여기에 윤현승이라는 이야기꾼의 이름도 필히 들어가리라. 이제 이 작가의 다음 이야기를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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