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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테르의 시계 ㅣ Nobless Club 4
강다임 지음 / 로크미디어 / 2008년 5월
평점 :
품절
볼테르의 시계
― 노블레스 클럽에서만 선보일 수 있는 시간 이야기
처음 제목을 접했을 때부터 국내 소설에서는 보기 힘든 이야기라는 것을 깨달았다. 『볼테르의 시계』. 실제 역사 속에 존재한 유명한 인물인 프랑스의 사상가 ‘볼테르’를 주인공으로 하여, 시간이동이라는 소재를 결합해 만든 소설. 여태껏 국내 장르소설 중에서 이런 소재로 쓴 소설은 찾기 힘들다. 경계소설을 지향하고 서점에서 독자가 직접 구입을 하는 시장을 목표로 만들어진 노블레스 클럽이 아니라면, 이렇게 신선하고 자유로운 소재로 책 한 권이 출간될 수 없었을 것이다. 노블레스 클럽이 가지고 있는 의의는 이렇게 장편 한 권에 겨우 몇 달이 아니라 1년이라는 시간을 투자해서 구상과 조사를 하고 집필을 하는 노작이 나올 수 있는 환경을 제공했다는 점에 있을 것이다.
책을 처음 받았을 때 인상적인 것은 표지이다. 시계를 변형한 표지는 이 소설이 시간이동을 소재로 했다는 점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으며 깔끔하고 고급스러운 인상을 준다. 겉표지를 벗기면 연보라빛 표지와 달리 연갈색 표지가 나타나는데 이쪽도 훌륭하다. 이렇듯 책의 외형이나 편집 상태가 잘 되어 있어 소장가치를 높이기 위해서 노력한 면이 돋보인다.
내용으로 들어가서 이 소설의 매력은 일단 주인공 볼테르의 캐릭터일 것이다. 굉장히 재기 넘치고 용기 있고 불의를 참지 못하며 지식이 풍부한 캐릭터를 그려내는 데 성공했다. 이 소설에서는 세 번에 걸친 과거로의 시간이동을 함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인 캐릭터 수는 분량에 비해 꽤 적은 편인데 그 중 볼테르가 가진 캐릭터성이 단연 눈에 띈다. 이것은 볼테르의 시점에서 주로 쓰여 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작가가 볼테르라는 캐릭터에 애정을 가지고 많은 조사와 노력으로 캐릭터를 구상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은 볼테르가 귀족과 다툼이 일어나서 숨게 되고 그 와중에 절대 이성이 있다는 내기를 하게 되면서 3번의 시간 이동을 통해 이를 증명하려고 한다는 이야기다. 시간 이동이 단지 우발적이거나 개인의 사적인 이유가 아니라 절대 이성이라는 것을 찾기 위한 여행이라는 점이 흥미로웠다. 또한 소설은 시간이동물이 가지고 있는 재미도 충분히 전해주고 있다. 낯선 시간대로의 이동, 거기서 겪는 이야기들과 위험한 순간 급박하게 돌아오는 긴장감까지. 그리고 과거로의 시간 이동이 결국 현재에 자신에게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구성까지 시간이동물의 매력을 제대로 구현하고 있었다.
이야기는 잘 구성되어 있고 독자는 몰입해서 읽을 수 있었다. 흥미진진한 스토리에 몰입하다보면 나중에는 절대 이성에 대해서는 생각이 나지 않을 정도였다. 특히 가장 인상적인 것은 장르 월간지 《판타스틱》 인터뷰에서도 적혀 있듯이 촛불집회가 연상되는 장면들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촛불집회가 있기도 전에 쓰인 작품이라고 하니 더욱 흥미로웠다. 아버지와의 정치 토론이 이 소설을 쓰게 된 배경이라고 하니 그런 장면이 연출된 것은 필연적인 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재미있게 읽었지만 다 읽고 나서는 조금 아쉬운 기분이 들기도 하는 작품이다. 이야기가 급박하게 몰아치다가 에필로그에 와서는 너무 쉽게 늘어지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후의 행적들을 단편적으로 언급해주고 있는데 이게 커다란 반전이나 놀라운 사실들이 있는 게 아니라 지극히 평이한 전개로 이어지고 있다. 오히려 사족 같은 느낌이 들었다고 할까. 역사와 결부시키려는 노력이 지나치게 많았다고 할까. 특히 여주인공과는 감동적인 연출과 여운을 주는 장면 등이 있었으면 작품이 더욱 살아났을 텐데, 사실적인 역사에만 묶인 탓인지, 무심한 듯 열정적인 두 사람의 관계를 작가가 형상화하려고 의도한 탓인지 장르 소설에서 기대할 수 있는 두 연인의 극적인 재회와 멋있는 연출, 감동이 보이지 않아서 아쉬웠다. 개인적으로는 이 점이 충족되었다면 상당히 만족스러운 작품이 되었을 것이다. 책을 읽는 내내 기다린 것은 그렇게 감동적인 피날레가 아니었나 싶다.
노블레스 클럽은 지금도 계속 신간을 출간하고 있다. 그러나 소장가치를 높여 새로운 소재와 1권 분량의 완결을 가진 장편을 출간한다고 해도 모든 소설이 독자들에게 인정을 받고 작품 수준이 고른 것은 아니다. 실망이 많은 작품도 있고, 또 충분히 구입한 가치를 하는 소설도 혼재해 있다. 이 책은 그 중에서도 책값을 하는 쪽에 속해 있다. 작가가 정성스럽게 쓴 티가 나고, 소재나 이야기도 매력적이다. 강다임 작가는 이전에도 판타지 소설을 낸 경력이 있지만 역시 신예에 속하는 작가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 작품 이후에 선보일 이야기에도 관심이 간다. 현재 다른 작품을 집필 중에 있다고 하니 또 잘 만든 작품 한 편을 기대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전에 아직 이 책을 읽지 않은 독자라면, 또 시간이동에 관련된 이야기에 흥미가 있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노블레스 클럽이 아니면 보기 힘든 국내 장르 소설의 매력을 맛보고 싶다면 『볼테르의 시계』가 도움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