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 문학 걸작선 2
제리 올션 외 지음, 존 조지프 애덤스 엮음, 조지훈 옮김 / 황금가지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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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심판 _ 제리 올션





 1권보다 2권이 더 재미있다는 기대를 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2권의 첫 번째 실렸으며, 시작을 여는 단편으로 나쁘지 않다. 발상 자체가 뛰어나기 때문에 다 읽고 나서도 발상은 잊혀지지 않고 기억에 남는다. 그야말로 SF와 종교를 이렇게 매력적으로 결합시킨 작품들은 시간이 지나도 강렬한 인상이 지워지지 않는 것이다.

 이 소설의 발상은 이렇다. 성서에 나오는 최후의 심판이 이미 지구에 일어났다. 그런데 우주에 나가 있었던 우주인들은 그 최후의 심판, 휴거에 속하지 않았다는데서 이야기가 시작한다. 이 발상만으로도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지구에 돌아 왔는데, 사람은 아무도 없고, 남아있는 신문지상에는 그리스도가 부활해서 휴거가 일어났다는 정황 증거뿐이다. 과연 이 우주인들은 어떻게 될 것인가. 텅 비어버린 지구에 남게 된 사람들의 이야기. 아포칼립스 소설로도 어울리며, 종교적 관점으로도 SF적인 관점으로도 여러모로 상상해볼 여지가 많은 이야기였다. 발상만으로도 이미 완벽한 단편이었다.





음소거 _ 진 울프





 종말 이후, 세상에 남겨진 남매의 이야기다. 버스 운전사가 남매를 아빠의 집이라고 내려준다. 버스는 가버리고 남매는 저택 안으로 들어간다. 저택 안에는 TV가 있지만 음소거 상태라 말은 들리지 않는다. 리모컨은 보이지 않아 음소거를 풀 수 없다. 이미지가 강한 소설이고, 서사보다는 남매가 죽은 아버지의 시체를 발견하고 집을 떠나 다른 곳에 머무는 일련의 과정들을 연극적인 분위기로 묘사하고 있다. 처음에는 상황을 파악하기 힘들어서 제대로 이해하기 힘든 소설이고, 지루하고 재미없는 구석이 존재하나 끝까지 읽으면서 그 형성된 분위기를 즐길 여지가 있다.





마비 _ 낸시 크레스





 국내에 많은 글이 소개되지는 않았으나 잡지 판타스틱에 개제되었던 스페인의 거지들로 많은 호평을 받은 작가의 단편이다. 스페인의 거지들은 휴고상과 네뷸러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이 작품 역시 낸시 크레스 특유의 장점들이 잘 녹아있는 글이다. 발상이나 설정에서 인상적인 부분은 없으나, 차분한 이야기 전개와 상황 설명 등은 바로 앞의 음소거를 비롯해 1권에 실린 다수의 이미지 소설들에 비해 선명하게 상황을 그려내어 독자를 편안하게 만든다. 불친절한 소설들이 많은 종말 문학 걸작선단편들 중에서 이렇게 친절한 단편들이 나오면 반가운 것이다. 마비는 설정도 매우 이해하기 쉬울 정도인데 신체를 손상시키는 전염병을 걸린 사람들이 모인 마을의 이야기다. 곧장 나병촌을 떠올리게 하는 이야기인 것이다. 그러면서도 이 병이 서사를 따라가면서 어떤 식으로 작용하고 나중에는 세계에 어떤 역할을 하는지까지 다다르면 소설이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긴 이야기에도 불구하고 강한 흡인력과 재미를 준다.





그리고 깊고 푸른 바다 _ 엘리자베스 베어





 핵으로 종말을 맞은 세상. 한 여자가 오토바이를 타고 도시를 가로질러 의료품을 배달하는 이야기. 포스트 아포칼립스 소설에 적절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서사가 단순한데 비해 길에서 악마가 나타나서 막기 때문에 이미지가 선명하고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인상에 꽤 남는 편이고 재미있게 읽었다. 초반에 여자에게 의뢰를 맡긴 이는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라고 말한다. 그러자 여자는 악마를 만나면 어떻게 하느냐고 묻는다. 그리고 악마와 마주친 여자의 선택이 이 소설의 끝을 장식한다. 서양에서는 악마가 동양의 귀신들처럼 친숙하고 자주 다루어지는 소재일지는 모르나, 개인적으로는 악마라는 소재가 친숙하지는 않다. 이건 마치 스티븐 킹이 오 헨리 문학상을 탄 검은 정장의 악마를 떠올리게 하는데, 악마와 마주친 이야기를 회고조로 하고 있어 마치 미국 설화를 듣는 기분이었다면, 이 글에서는 미래를 배경으로 초자연적인 존재와의 마주침을 그리고 있어 기묘한 느낌을 주는 글이었다.





말과 소리 _ 옥타비아 E. 버틀러





 올해 야생종으로 국내 SF 독자들에게 많은 찬사를 받은 옥타비아 E. 버틀러의 단편이다. 종말 이후에 말이나 글자가 과연 의미를 가질까. 이 소설은 다른 소설들이 다루지 않은 관점에서 이야기를 차분히 전개해나가며 연이은 무자비한 폭력 속에서 주인공인 여자가 어떻게 살아남고, 또 어떤 인연을 만들어나가는지 다루고 있다. 처음에는 상황을 파악하는데 진입장벽이 있었지만, 그 뒤에는 상당히 몰입해서 이야기를 따라가게 만들고 점점 재미있다. 단편으로서 완성도도 뛰어나고 서사가 강렬하다.





킬러 _ 캐럴 앰슈윌러





 이라크 전쟁이 자국 땅에서 벌어지면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한 발상으로 시작한 소설이다. 전쟁 속 한 여인촌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한 여자를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다루고 있는데, 전쟁터로 떠난 오빠를 찾고 있다. 그러던 중에 사람들을 죽이는 상처입은 적군이 집안으로 피신해 온다. 오빠를 연상케하며 또 남자를 원한 주인공은 그를 마을 안으로 편입시키려고 한다. 이야기는 단순하나 심리묘사에 집중한 소설로 후반으로 갈수록 몰입도가 커지고 결말이 특히 인상적인 작품이다.





지니 스위트힙스의 비행 서커스 _ 닐 바렛 주니어





 세상이 종말을 맞이하고 한 서커스 일행이 황무지를 질주한다. 섹스와 타코, 위험한 약을 파는 지니 스위트힙스. 그녀의 동료는 운전사이자 호객꾼인 델, 사격이 뛰어난 경호원 포섬 다크이다. 이들이 어떻게 사람들에게 사기를 치며 돈을 버는지 비밀이 밝혀지면서 점점 이야기는 흥미로워진다. 설정과 인물들이 흥미로운 소설이다.





우리가 아는 바 그대로의 종말 _ 데일 베일리





 앞의 단편들이 모두 1권의 아쉬움을 털어줄 만큼 재미있고 잘 읽혔다면, 이후 마지막 세 편은 조금 아쉬운 단편들이었다. 우리가 아는 바 그대로의 종말의 경우, 종말을 맞은 한 사람의 이야기이면서 곁가지로 역사 속 다양한 종말의 상황들을 병행하며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는데, 이게 밀접하게 잘 녹아있다는 느낌보다는 지루하고 붕뜬 느낌을 받았다. 서사가 흥미롭지도, 캐릭터가 인상적이지도 않았고, 문장이 아름다운 작품도 아니었다. 따라서 겨우 읽어내려간 글이었다.





황혼의 노래 _ 데이비드 그리가





 종말 이후에 살아남은 예술가는 어떻게 견딜까. 흥미로운 발상의 단편이었지만, 이야기는 생각보다 재미있지는 않았다. 상황 설명이 불친절하여 이야기를 따라가기 힘들고, 벌어지는 사건은 소소하고 내면 묘사에 집중하여 재미가 덜하다.





에피소드 7: 보라꽃 왕국의 패거리를 향한 마지막 저항 _ 존 랭건





 마지막에 실린 단편이지만, 가장 잘 안 읽히는 글이었다. 앞의 단편들이 재미있는 작품이 많았음에도 이 단편으로 인해 책 전체의 인상이 흐려지는 느낌을 받았다. 상황설명이 불친절하고 몰입도가 떨어진다. 문단이 거의 나누어져 있지 않아 가독성이 떨어지며, 내면 묘사가 잘 와 닿지 않아 지루하고 재미없게 느껴진다. 플롯이 뛰어나거나 인물이 매력적이지도 않고, 배경 세계관이 흥미를 유발시키지도 않는 글이라 읽기가 힘들었다.





리뷰를 마치며





 전체적으로 종말 문학 걸작선1권보다 2권이 더 읽기 편하고 재미있었다. 약간 더 잘 읽힌다고 할까. , 1권만 읽고 실망한 사람이라면 2권을 읽으면 더 나을 것이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후반부의 단편들은 조금 잘 안 읽혔지만 앞부분에 흥미롭게 읽은 단편들이 있었다. 1, 2권을 통틀어서 마음에 든 단편들을 열거해 보자면 1권에서는 폭력의 종말, 모래와 슬래그의 사람들, 절망은 없다, 아티의 천사들이고, 2권에서는 최후의 심판, 마비, 말과 소리, 킬러, 지니 스위트힙스의 비행 서커스이다.

 종말 소설들을 모았기 때문에 SF 작가들의 작품들이 많다. SF 단편선이라고 할 수 있는데, SF만이 할 수 있는 다양한 종말의 양상들과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인간들의 삶을 그려낸 글들을 접할 수 있었다. 22편의 단편이 실려 있으면서도 같은 식으로 전개되는 글은 찾아볼 수 없었다. 각기 다른 방식의 종말을 맞이했거나, 혹은 다른 식으로 진화하고, 다른 삶을 살아갔다. 인간들은 종말 이후에도 삶을 어떻게든 이어나가며, 우리는 거기서 우리와 공통점을 찾는다. 다양한 상상력과 세계를 접할 수 있었다. 물론 종말을 다루었기 때문에 대체적으로 밝은 소설은 적었고 어둡고 답답한 이야기들이 많았다. 종말이라는 단어에서 느껴지는 막막함과 절망이 소설에 녹아 있었다. 그러나 그 안에서 살아가는 것은 똑같은 인간이다. 인간들의 삶은 여전히 지속되며, 우리에게 이야기의 형태로 전해진다. 흥미로운 사고실험이면서 한편으로는 재미와 감동을 느끼게 만드는 단편들이 실려 있었다.

 이렇게 하나의 테마로 엮인 SF 단편집이 앞으로도 꾸준히 출간되기를 바라면서 이만 리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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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 문학 걸작선 1
스티븐 킹 외 지음, 존 조지프 애덤스 엮음, 조지훈 옮김 / 황금가지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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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 문학 걸작선 1 : 조금 아쉬운 종말 이야기





 황금가지에서는 몇 년마다 가끔씩 장르 단편집을 출간하곤 한다. 해외 장르 단편을 소개한다는 점에서 꾸준히 이어지진 않지만 나올 때마다 반가운 일이다. 플레이보이 SF 걸작선 1, 2(200211), 오늘의 SF 걸작선(20044), 2004 세계 환상 문학 걸작 단편선 1, 2등 일종의 걸작선 시리즈들이다. 이번에 오랜만에 또한 갑작스럽게 종말 문학 걸작선(201110)이 출간되었다. 최근 국내에도 스티븐 킹의 스탠드나 코맥 맥카시의 로드같은 소설이 출간되면서 포스트 아포칼립스 물이 좋은 반응을 일으켰다. 이 외에도 황금가지에서는 나는 전설이다세계대전Z, 1, 2, 하루하루가 세상의 종말 1, 2, 해변에서, , 그리고 좀비등 좀비나 흡혈귀 또는 다른 이유로 세계가 종말을 맞이한 세계를 그린 소설들을 출간해왔다. 이 소설들이 꽤 좋은 반응을 얻었기 때문에 이런 종말 문학 걸작선이라는 종말을 소재로한 단편들을 모은 작품집이 출간될 수 있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스탠드나는 전설이다, 세계대전Z, 하루하루가 세상의 종말, , 그리고 좀비등을 재미있게 읽었기 때문에 당연히 이 종말 문학 걸작선에도 관심이 갔다. 종말을 맞은 이후에도 사람들은 살아가고, 지금 우리와는 전혀 다른 삶을 자아낸다. 그러나 어느 세계든, 어떤 모습이든 사람이 살아간다는 것은 동일하며 거기에서 흥미와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이런 소재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한 번쯤 살펴봐도 좋을 만한 책이다. 물론, 단편집이기 때문에 모든 단편이 만족스러울 수는 없다. 한 작가가 쓴 단편집도 아니고 하나의 테마로 쓰인 단편을 모은 앤솔러지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여기서 빛나는 몇몇 단편들을 만나는 것만으로도 이 책을 읽기 잘했다고 생각할 지도 모른다.

 1권에 실린 단편들에 대한 짧은 느낌을 적자면 다음과 같다.





 【폭력의 종말】 ▄ 스티븐 킹





 스티븐 킹이라는 작가의 이름만으로도 이 단편의 소개는 충분하지 않을까. 딱 스티븐 킹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작품으로, 이 걸작선의 시작을 알리기에 어울린다. 획기적인 발상이나 놀라운 반전이 있는 소설은 아니다.(종말의 원인인 천재 과학자가 발명한 약에서는 브라이언 스테이블포트의 어느 성화학자의 생애가 떠오르기도 한다. 서술에서 일부러 맞춤법이 틀린 것을 그대로 보여주는 기법은 앨런 스틸의 착한 쥐가 떠올랐다.) 그러나 단편이라는 분량 안에서 종말 소설의 기본적인 이야기 전개를 스티븐 킹답게 해나간다.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글을 통해 사건을 고백하는 형식이기 때문에 몰입도가 뛰어나며 독자가 쉽게 내용을 파악하고 따라갈 수 있다.





 【고물수집】 ▄ 올슨 스콧 카드





 『엔더의 게임으로 유명한 올슨 스콧 카드의 단편이다. 원자폭탄이 터지고 문명이 멸망한 세게에서 몰몬 교를 중점으로 그린 단편이다. 몰몬 교에 대한 약간의 지식이 있다면 더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글일 것이다. 형제가 등장하여 물에 잠긴 사원에 들어가는 이야기다. 서사가 특별하다거나 흥미로운 이야기를 갖고 있는 단편은 아니다. 과거 문명 시대와 현재의 삶 그리고 미래에 대한 이야기다. 소설 속에서 계속 과거 문명에 대한 언급이나 과거라는 단어가 반복된다. 주인공인 디버 티그는 고물을 수집하는 일을 하고 있다. 즉 과거의 잔해로 살아가고 있는 인물이다. 그러나 고물 수집이 언제까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과거의 유산으로 살아가지만, 언제까지 과거에 기대지 않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그는 마지막으로 잠수복을 입고 사원에 들어가는데, 거기서 발견한 것은 금이 아니라 소원을 빈 캔 조각들이다. 몰몬 교들은 정기적으로 찾아와 기도문을 남겼지만 아무도 디버 티그에게 말해주지 않은 것이다. 디버가 찾는 건 금으로 상징되는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무언가다. 그런데 거기에 있는 건 다른 사람들의 소원(희망)이 있을 뿐이다. 디버는 이건 여러분들 거예요.”라고 말한다. 디버는 자신만 모르고 모든 사람들이 이 장소를 공유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가 느낀 것은 배신감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아직도 물속에 익사한 도시 속에 살아가며 다시 갈 수 없다는 사실에 아파한다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과거의 도시에 산다면 디버는 미래의 도시에 살았다. 그의 도시는 아직 건설되지 않았고, 아직은 고물을 수집하며 과거에 얽매인 삶이지만, 그는 과거에 속하지 않고 미래로 나아갈 다짐을 한다.

 과거와 미래, 잃어버린 고향과 도착하지 않은 신천지. 두 가치관의 대립을 고물 수집을 하는 티버의 시점에서 소소한 사원 탐사로 그리고 있는 작품이었다. 주로 대사 위주인데, 대사들이 번역의 문제인지 자연스럽거나 매끄럽지 않고 매력적으로 살아나지 않아서 소설 전체의 매력을 죽이고, 티버의 캐릭터가 개성이 적고 이념이나 생각이 단순한 면이 있어서 재미있게 읽기 힘든 글이었다.





 【모래와 슬래그의 사람들】 ▄ 파울로 바시갈루피 





 최근 파울로 바시갈루피의 2010 휴고상, 2009 네뷸러상 수상작인 와인드업 걸이 출간되어서 화제가 되었다. 휴고상과 네뷸러 상을 휩쓴 최신 SF가 출간되는 일은 흔치 않기 때문이다. 이 단편의 배경은 먼 미래다. ‘인간은 이제 우리가 아는 정의와는 전혀 다른 생물체로 진화했다. 종말 소설에서 기대할 수 있는 미래상 중에 하나가 아닐까. 황무지에서 생존을 위해 위빌테크라는 신체 개조를 하여 광물 진흙을 먹고 살며, 피부를 찢어도, 다리를 잘라내도 곧바로 재생하는 진화한 인간들.



 진화하기 전 우리도 오랫동안 저런 식으로 살았다는 게 믿겨져? 다리를 잘라도 재생되지 않았다는 게? 저 개는 바위만큼이나 약해. 한 번 깨지면 영원히 붙지 않으니까.”(115)



 이들이 놀랍게도 탄갱에서 살아있는 를 발견한다. 광물 진흙을 먹고 움직이지 않고 부러지면 재생되지 않는 연약한 옛 생명체. 이제는 동물원이나 실험실에서만 볼 수 있는 살아있는 동물을 발견한 것이다. 지금 우리 세상에서는 흔하게 볼 수 있는 가 이 소설에서는 경이로울 생명체라는 점이 재미있다. 생물학자가 개의 DNA를 추출하고 가버린 뒤, 처음 개를 발견한 세 명은 이 개의 처치를 놓고 고민한다. 이들은 일단 개를 길러보기로 하는데, 여기서 지금 우리와 다르게 진화한 이들이 다시 옛 인류의 모습을 개를 통해서 떠올리게 된다. 인간성이란 무엇인가. 동물과 인간의 유대. 먼 미래에 진화한 인간이 옛 인간을 생각할 것인가. 여러 생각을 하게 만드는 글이다.





 【빵과 폭탄】▄ M. 리케르트





 아이의 시점에서 전쟁으로 바뀐 세상을 묘사하고 있다. 세상은 전쟁으로 황폐해졌고 국적이나 인종에 따라서 서로를 적대하고 믿지 못한다. 신뢰가 사라진 세상에서 아이들은 그런 어른들의 강요를 받는다. 아프가니스탄에 투하하는 식량꾸러미와 폭탄이 같은 색이라 아이들이 폭탄을 식량으로 오인해서 사망한다는 기사에서 시작된 단편답게 서로에 대한 불신을 중요한 테마로 잡고 있다. 이야기가 새롭거나 재미있지는 않아서 몰입도가 낮다. 그러나 문제의식을 공감하기는 쉽다. 설명이 친절하진 않고 상황을 독자가 단번에 파악하기는 어려운 느낌이 있다.





 【마을에 들어갔다 다시 나오는 방법】 ▄ 조나단 레덤





 가상현실을 다룬 단편인데 상당히 긴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불친절하고 재미가 적은 단편이었다. 일단, 가상현실에 대한 상세한 소개나 설명이 없기 때문에 배경을 독자가 이해하기가 어려운 느낌이 있다. 상황이나 배경에 대한 묘사가 적고 인물들의 대한 매력도 적다. 가상현실을 매력적으로 다루거나 암울하게 다루는 게 아니라 비판하는 시각으로 다룬 것은 신선하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잘 와닿지 않았다. 많이 지루한 편이었고 읽고 나서도 인상에 깊게 남지 않은 단편이었다.





 【어둡고 어두운 터널들】 ▄ 조지 R.R. 마틴





 최근 드라마로 방영되어 높은 인기를 얻고 국내에서 출간된 4부는 오역으로 인해 재번역이 진행 중인 화제작 얼음과 불의 노래의 작가 조지 R.R. 마틴의 단편이다. 서사 판타지의 제왕이면서도 샌드킹같은 걸작 SF 단편을 쓴 작가이기도 하다. 따라서 여기에 실린 이 단편도 작가의 이름값 때문에 당연히 매우 기대한 작품이었다. 그러나 작품은 생각보다는 재미있지 않았다. 이 작품 역시 불친절한 면이 있고, 플롯 자체가 재미를 주는 요소가 적었다. 주인공은 그릴이다. 그는 사람들의 정찰자로 터널을 정찰하는 중이다. 지구는 대재앙으로 표현되는 전쟁을 겪으며 문명은 모두 파괴된 상태다. 방사능이 가득한 지구. 지하에 살아남은 인류는 방사능으로 급격한 변화를 겪었다. 그리고 달기지에 있던 인류는 대기근을 이겨내고 지구에 탐사를 시작한다. 지하에 걸맞게 진화한 인류와 달 기지에서 재정비한 인류의 만남. 발상은 흥미로우나 두 개의 시점에 번갈아가면서 나오는 구성이 좀 답답한 느낌을 준다. 대화로 모든 설정을 다 말하려다보니 인위적이고 노골적인 느낌이 강해서 거부감을 준다. 파국을 맞을 것을 예상이 가기 때문에 이야기의 결말도 인상적이지 않다. 두 진영이 만나는 과정을 묘사하기보다는 만난 이후의 시점을 이야기했다면 훨씬 흥미로운 소설이 되었을 것 같았다.





 【제퍼를 기다리며】 ▄ 토비아스 S. 버켈





 화석 원료가 고갈된 시대를 그리는 작품이다.(기름 부족으로 금보다 플라스틱 목걸이가 더 귀해진 시대다.) 배경은 사막. 주인공은 마라. 마라는 열 두 살 때부터 마을을 떠나는 게 꿈이다. 마라는 제퍼를 기다리고 있다. 제퍼란 사막을 가로 지르는 사륜 선박이다. 마라는 마을에 제퍼가 도착하자 떠나는 것을 원치 않는 부모에 의해서 감금당한다. 여기까지 읽었을 때 우리는 이 이야기의 결말이 어디에 이를지 알고 있다. 단편으로 생각할 때 가장 단순한 서사 중 하나이며 다르게 보면 진부하다. 그럼에도 종말 소설이라는 장르 안에서는 눈에 띄게 밝게 채색된 이야기로 의외라는 점에서 신선한 느낌도 준다. 이를 테면 직구인 소설인데, 인상적이지는 않았다.





 【절망은 없다】 ▄ 잭 맥데빗





 세계는 종말을 맞았고, 콘크리트 도로와 몇 십 층의 건물을 지은 건축가들은 로드메이커란 이름으로 신화가 되었다. 주인공인 차카 밀라나는 로드메이커의 비밀을 간직한 장소를 찾기 위해 고향을 떠났다. 그리고 여행 도중에 역사적인 인물의 입체 영상 아바타를 만난다. 바로 윈스턴 처칠이다. 사실 윈스턴 처칠이라는 점이 중요하지는 않다. 과거의 유명 인사가 종말 이후의 인간에게 꿈을 포기하지 말고 계속 희망을 찾으라고 이야기하는 서사에 힘이 있고 감동이 있다. 서로 다른 정보를 갖고 있는 두 인물이 대사를 통해서 정보를 교류하고 이를 제 3자의 입장에서 읽는 독자는 또 다른 재미를 느낀다. 그리고 마지막 결말은 매우 훌륭하며 영화 불을 찾아서의 끝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특별한 행동이 아닌 대사만으로 이루어진 단편임에도 지루하지 않게 내용을 잘 이끌어간 소설이었다.





 【시스템 관리자들이 지구를 다스릴 때】 ▄ 코리 독토로





 2007년 로커스 최우수 단편소설상을 탄 작품이다. 갑작스런 재앙으로 인류가 멸망했을 때, 인터넷은 어떻게 될 것인가. 인터넷을 하다보면 가끔씩 생각해보게 되는 상황이다. 이 단편에서는 네트워크 운영센터의 사람들이 종말을 맞이한 후의 어떻게 행동하는가에 대해서 상세하게 적혀 있다. 일단 이 소설의 장점은 시스템 관리자 출신인 작가가 상세하게 묘사한 네트워크 유지 및 관리 내용이다. 만약, 이쪽 전공이라면 매우 재미있게 읽을 정도로 정확한 용어와 상황 묘사가 뛰어나다. 이 단편집에서 분량이 가장 길어 보이는데 그만큼 세세하게 묘사를 하고 있었다. 따라서 앞에서 상황이나 배경 설명이 부족해 난해하게 느껴진 몇몇 단편들과 달리 아주 세세하게 상황을 설명해서 읽기가 편하고 이해가 쉬운 단편이었다. 다만, 종말을 맞이한 후에 네트워크가 어떻게 될지에 대해 큰 관심이 없다면 지루할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이 들기도 했다. 세세한 묘사를 했지만 서사는 흥미롭지 않기 때문이다. 개연성과 사실성은 상당히 높지만, 이야기의 흥미 요소는 적은 편이었다.





 【O형의 최후】 ▄ 제임스 반 펠트





 이야기는 흥미롭지 않으나, 매력적인 인물이 등장하는 소설이었다. 더 이상 자연스러운 출산이 불가능한 돌연변이만 남은 지구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트레빈은 순회쇼단을 하고 있다. 그리고 두 살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열두살이며, 중년 세무사의 정신세계를 지닌 카프리카와 같이 다닌다. 두 살의 외형과 목소리를 가진 채로 중년 세무사의 말을 하는 카프리카라는 캐릭터는 독특하며 소설의 활력을 불어넣는다. 이야기 자체는 그리 인상에 깊이 남지 않는 작품이다.





 【종말이 있는 정물화】 ▄ 리처드 캐드리





 5쪽 밖에 안 되는 굉장히 짧은 글이다. 그만큼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지는 못하는 글이다. 짧은 만큼 획기적인 발상이나 강렬한 이미지가 있는 글은 아니다. 그냥 종말 소설에서 기대할 수 있는 보통의 이야기를 짧게 담았을 뿐이다.





 【아티의 천사들】 ▄ 캐서린 웰스





 1권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단편으로 아서 왕의 이야기를 종말 소설로 바꿨다. 전설과 신화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그것에 세상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잘 묘사한 소설이다. 주인공은 캔자스 거주지의 방사능 보호구역에 사는 페이. 아서 왕의 누나이자 마법사인 모건 르페이의 이름과 같은 아이다. 페이의 시점으로 회고조로 기록된 이 소설은 흡인력이 있고, 내용을 따라가기 쉽다. 이야기를 더 압축하거나 혹은 늘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단편이다. 약간 분량은 애매하다고 할까. 그럼에도 상황도 잘 그렸고 심리 묘사도 잘 된 작품이라 재미있게 읽은 단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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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에 부는 서늘한 바람 밀리언셀러 클럽 120
돈 윈슬로 지음, 전행선 옮김 / 황금가지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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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밀리언셀러클럽 120번째로 출간된 책이자 닐 캐리 시리즈의 첫 번째 책입니다. 사립 탐정이 나오는 추리소설입니다. 흔히, 추리 소설이라고 하면 살인사건과 밀실 트릭을 먼저 떠올릴 수도 있겠지만, 이 작품에서는 살인사건이 범인을 추리하는 내용은 아닙니다. 이 밖에도 이 소설은 일반적인 추리 소설들과는 다른 점들이 있는데, 이점이 매력적인 요소로 다가옵니다.

 첫째는 이 소설은 실종 사건을 다룬다는 것입니다. 부통령 후보인 하원의원의 딸을 찾는 이야기죠. 마약과 매춘 등의 소재가 등장하기 때문에 선정성이 없지는 않지만, 연쇄 살인이 벌어지지는 않으므로 강력 범죄를 다룬 소설들보다는 소재의 강도는 약합니다.

 둘째는 주인공의 성장담이 같이 들어있다는 점입니다. 주인공은 마약에 빠진 홀어머니 밑에서 소매치기로 살아갔었는데, 소설의 첫 시작에는 대학원에 다니며 교수를 꿈꾸는 청년으로 나옵니다. 이 갭이 소설의 흥미를 불러일으킵니다. 도대체 주인공은 어떤 성장을 거친 것인가. 소설은 실종사건을 메인으로 다루면서도 중간중간 주인공인 닐 캐리를 조명합니다.

 아니, 닐 캐리의 성장소설이자 모험 소설로 봐도 무방할 정도입니다. 특히 실제로 사립탐정을 일을 한 적이 있는 작가가 공들여 쓴 사립탐정으로 훈련받는 장면들은 이 소설의 백미입니다. 마치, 닌자가 되기 위해 수련을 받는 것처럼, 미행을 하는 법, 빈 건물에 숨어드는 법 등을 현실감 있게 배우는 장면들이 인상 깊었습니다. 사립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에 대해 흥미를 가진 분이라면 재미있게 읽을 부분입니다. 주인공은 놀라운 재능을 보이며 사립탐정으로서 훈련을 받지만, 또한 대학교에 들어가고 대학원까지 가면서 교수가 되는 꿈을 갖게 됩니다.

 소매치기라는 범죄자의 신분에서 사립탐정으로 이끈 것은 가문의 친구들이라는 조직입니다. 이름부터 매력을 느낀 설정이었는데, 지방 은행에서 고객들의 문제를 해결해주기 위해 탄생한 조직입니다. 소소한 사건보다는 중요한 고객들의 문제를 처리하며, 은행에서 탄생된 조직이라 자금이 풍부한 점 등이 재미있는 설정이라고 느끼게 만들었습니다.

 18세기 영문학을 공부하는 대학원생이자, 어렸을 때는 소매치기였고 우연히 가문의 친구들에 속한 조 그레이엄의 지갑을 훔치다가, 인연을 맺어 사립 탐정으로 길러지고 그러면서도 교수가 되기를 꿈꾸는 주인공 닐 캐리’. 그는 자신을 가문의 친구들이 맡긴 사건, 상원의원의 문제아 딸 앨리 체이스를 찾기 위해 런던으로 향합니다. 닐이 앨리를 만나는 부분에서는 추리보다 우연과 끈기의 잠복이 더 큰 영향을 끼친 것 같아 아쉬운 점도 있었습니다만, 앨리를 만나고부터는 더 흥미로워지더군요.

 닐이 앨리에게 정체를 밝히지 않고 모임에 녹아든 다음에 모두를 속이는 부분에서는 마치 뛰어난 사기꾼이 등장하는 영화를 보는 듯했고, 쫓기고 숨는 과정에서는 스파이 영화를 보는 듯했습니다. 가장 텐션이 높은 부분이 아닐까 싶습니다. 번역된 책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가독성이 높지는 않지만, 그걸 이기고도 끝까지 읽고 싶게 만드는 책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닐 캐리라는 인물에게 매력을 느껴서 어떻게 될지 궁금했기 때문입니다.

 돈 위슬로 작가의 데뷔작인 이 작품은 첫 작품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안정적이고 매력적인 인물들을 잘 그려낸 작품입니다. 특히 읽고 나서는 빨리 닐 캐리의 다른 사건들도 읽고 싶어져서 안달이 나고, 도무지 머릿속에서 이 특이한 사립탐정이 지워지지 않습니다. 잘 훈련되었고, 침착하며, 빠른 판단력과 행동 그리고 시종일관 어떤 때든 수시로 등장하는 유머감각은 독자에게 읽는 내내 잔잔한 미소를 짓게 만듭니다. 아마도 이 위트 때문에 닐을 더 마음에 든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사건이 벌어지는 내내 좀 더 일처리가 간단히 될 수는 없나, 하는 답답함 마음도 들었지만 다 읽고 난 뒤에는 충분히 재미있었다는 느낌을 받는 책입니다. 사립탐정이 등장하는 모험을 한 편 즐기고 싶다면 좋은 선택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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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키
존 윈덤 지음, 정소연 옮김 / 북폴리오 / 2011년 9월
평점 :
품절


국내에 잘 소개되지 않은 존 윈덤의 작품이 나와서 기대가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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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드업 걸
파올로 바치갈루피 지음, 이원경 옮김 / 다른 / 2011년 9월
평점 :
절판


기대되는 책입니다! 최신 SF가 더 많이 나오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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