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터스 블랙 로맨스 클럽
리사 프라이스 지음, 박효정 옮김 / 황금가지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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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금가지 블랙 로맨스 클럽의 신간이 출간되었다. 황금가지 블랙 로맨스 클럽은, 브랜드명에서도 알 수 있듯이 ‘로맨스’ 소설이면서 핑크빛이 아닌 검은색 로맨스를 등장시킨다. 기존의 로맨스 소설하면 떠오르는 클리셰로 뒤덮인 소설이 아니라, 신선한 소재와 발상을 결합시킨 독특한 구조의 로맨스 소설인 것이다. 돌연 죽음을 당한 소녀가 자기 죽음의 비밀을 파헤치는 [열일곱, 364일]이나, 좀비와 인간의 사랑을 다룬 [웜 바디스]처럼 오컬트나 좀비 장르를 로맨스와 결합시켜 독특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 열일곱, 364일l 블랙 로맨스 클럽 1
제시카 워먼 (지은이) | 신혜연 (옮긴이) | 황금가지 | 2011-11-18 | 원제 Between (2011년)



△ 웜 바디스l 블랙 로맨스 클럽
아이작 마리온 (지은이) | 박효정 (옮긴이) | 황금가지 | 2011-12-20 | 원제 Warm Bodies (2011년)


 이번에는 근미래 스릴러다. [스타터스]는 지금이 아닌 전쟁 뒤의 근미래를 배경으로 한다. 따라서 미리 알아야할 설정들이랄까, 친숙해져야 할 용어들이 있다. 생물학 전쟁으로 중장년층이 모두 죽고 노인층인 ‘엔더’와 10대의 ‘스타터’로 나뉘어진 사회. ‘스타터스’라는 제목은 바로 이 스타터의 이야기임을 보여준다. 주인공도 스타터이고, 이야기의 핵심도 스타터를 둘러싼 음모다.
 주인공은 보호자가 없이 아픈 동생을 보살피는 ‘캘리’다. 십대 소녀가 음모와 모험에 휘말리면서도 주저앉지 않고 당당하게 맞선다. 장편소설인만큼 캐릭터의 매력이 중요할 터인데, ‘캘리’는 한 권을 이끌어 나갈만큼 충분히 당차고 위트를 곁들인 채 사건을 돌파한다. 독자로서 소설에 금세 몰입할 수 있었던 것은 주인공인 캘리에게 거부감이 들지 않고, 오히려 공감을 하며 함께 사건을 풀어나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복잡한 사건이고, 다양한 인물들이 쉴새없이 나오며 사건 전개 속도가 상당히 빠르지만, 혼란스럽지 않고, 주인공의 발걸음을 차분히 따라갈 수 있다.
 부모가 죽고 난 뒤, 캘리와 동생은 빈집을 전전하며 힘겹게 생활한다. 보호자가 없는 캘리와 동생은 집도, 먹을 것도, 약도 없이 생활해야 하고, 200세를 넘게 사는 ‘엔더’들 때문에 만들어진 미성년자는 취업할 수 없다는 법에 의해 일을 할 수도 없다. 그야말로 절망밖에 없는 상황. 살곳도 없는 처참한 환경속에서 동생까지 아프다면, 캘리가 할 수 있는 행동은 무엇일까.
캘리는 결국 동생과 함께 살 집을 마련하기 위해 ‘바디 뱅크’라는 ‘엔더’들에게 몸을 대여해주는 일을 계약한다. 프라임 데스티네이션이라는 회사는 10대들을 고용해 성형수술로 완벽한 몸을 만든 뒤, 뇌에 칩을 심어 ‘엔더’들이 렌탈한 십대의 몸을 조종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캘리는 세 번의 렌탈을 하기로 했고, 마지막 한 달의 장기 렌탈로 들어간다. 그런데 이상이 발생한다. 만약, 아무 일도 없이 한 달의 렌탈이 자연스럽게 끝났다면 소설은 쓰일 수 없을 것이다. 소설은 갈등이 벌어져야 한다. 캘리는 열흘 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낯선 클럽에서 깨어나고 칩에 문제가 일어나 엔더의 접속이 끊겼음을 깨닫는다. 바로 회사로 돌아가야 할 테지만, 머릿속에서 가지 말라는 경고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캘리는 결국 계약을 이행해 무사히 돈을 받기 위해, 경고의 목소리를 따라 회사로 돌아가지 않는다. 이제 캘리는 ‘엔더’ 행세를 해야 한다. 자기 몸이면서 타인이 대여한 듯이 흉내를 내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상원 의원의 손자인 블레이크와 데이트까지 하게 되는데, 다시 불안정한 엔더의 접속이 반복된다. 그 사이 캘리는 자기를 렌탈한 사람의 이름이 ‘헬레나’라는 것과, 그녀가 자기 몸을 이용해 누군가를 살해하려는 것을 알게 된다. 여기에는 프라임 데스티네이션 회사와 결합된 음모가 있었고, 캘리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한다. 책의 카피처럼 생존은 시작에 불과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는 것이다. 보호받지 못하는 십대들을 구하기 위한 모험이 펼쳐진다.

 [열일곱, 364일]처럼, 이 소설은 십대 소녀를 주인공을 내세웠는데, 두 소설 다 십대 소녀의 심리를 잘 그려내고 있다. 두 소설 모두 청소년 소설이라 할 수 있다.(아마존의 분류도 영 어덜트나 청소년 소설로 되어 있다.) 십대 독자들이 매우 재미있게 읽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영 어덜트(Young Adult)는 최근 출판계의 트렌드다.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 독자를 지칭하는 출판계의 신조어로 '청소년도서'로 뭉뚱그려져 있던 10대 후반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참신한 책들을 내놓으면 20대 초반의 감성 세대까지 노리는 전략이다. [해리포터]의 세계적 성공 이후, [트와일라잇]이 다시 열풍을 몰고 왔고, 이후에 청소년물과 뱀파이어가 결합된 소설들이 쏟아졌다. 최근에는 [점퍼], [견인 도시 연대기], [십 브레이커] 등 영 어덜트 SF도 국내에 많이 소개되고 있으며, 한국 청소년 소설로도 [완득이]의 성공 이후, 판타지물인 [위저드 베이커리], SF인 [싱커] 등 장르와 결합된 청소년 소설의 출간이 이어지고 있다. 즉, 한국과 미국에서 로맨스, 판타지, SF가 결합된 영 어덜트 소설이 각광을 받고 있는 것이다.)

 초반에는 배경 설정이 많아서 설명하는데 시간을 많이 투자한다. 따라서 지루할 수도 있지만, 설정을 다 받아들이고 본격적인 사건이 벌어지는 지점부터는 매우 흥미로운 소설이다. 그러니까, 룬 클럽에서 캘리가 의식을 차리는 순간이 바로 이 소설의 끓는 점이라고 할 수 있다. 캘리가 혼란스러운만큼 독자 역시 온갖 의문이 생기는 지점이면서 동시에 캘리가 어떻게 사람들을 속이고 대처할지 긴장감을 가지고 지켜보게 되는 것이다. 왜 이렇게 접속에 이상이 생겼는지, 머릿속에 들린 목소리는 누구인지,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건지, 캘리는 무슨 행동을 할지. 게다가 빠른 전개로 이야기는 점입가경에 빠진다. 캘리는 암살 도구로 사용되는 중이었기에, 살기 위해서 암살을 막아야 하는데, 그 암살은 사실 ‘스타터’들을 위한 행동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생존을 위해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거대한 음모와 맞닥뜨리게 되고, 이를 막기 위해 다시 고군분투하게 된다.

 [열일곱, 364일]과 비교하자면 퍼즐 같은 구성은 흡사하지만, [스타터스]가 훨씬 전개 속도도 빠르고 긴장감이 있다. 사건의 스케일도 크며, 목적 의식도 더 분명하고, 액션도 많아서 머릿속에 쉽게 영상으로 상상된다. 즉, 영화로 만들어지기 좋은 소설이었다. 1백 만불에 영미 판권이 팔린 이유를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멋진 배우와 괜찮은 각색이 만난다면 좋은 영화가 나올 것이다.

 물론 영화로 만들기 쉽다는 것은 그만큼 익숙한 전개 방식을 취하고 있다는 소리이기도 하다. 설정이 약간 복잡하긴 해도, 이해하는데 어렵지 않고 철학적 문제를 제기하기보다는 스릴과 모험에 초점을 맞췄다. 전개는 빠르고 가볍게 진행된다. 소설적인 특징을 살린 전개이거나, 너무 의외의 방식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면 영화화 하기는 어렵다는 인상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스타터스]는 예견감이 느껴질 정도로 큰 예측을 벗어난 의외의 전개는 나오지 않는다. 그게 익숙한 재미를 주는 한편, 이런 종류의 스릴러를 많이 읽은 독자라면 전개를 예측하기 쉽다는 아쉬움이 있다.(물론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소설이기 때문에 내용이나 깊이가 의도적인 가벼움이 있을 것이다. 게다가 영화 [AI]가 피노키오의 SF판이듯, [스타터스]도 초반부는 신데렐라를 모티브로 했다. 그렇기 때문에 예측된 전개로 나아가지만, 뒷부분은 동화를 벗어나 소설만의 개성과 새로운 전개를 제시한다.) 하지만 이런 점들은 일부 독자에게만 해당할 것이고, 오히려 근미래 스릴러라는 장르가 낯설고 다가가기 어려워하거나 쉽사리 읽으려는 독자가 없을 것이란 우려가 더 크다. 이런 장르에 익숙지 않더라도 이 소설은 어렵지 않고, 완성도 높은 구성과 이야기 전개 그리고 매력적인 주인공으로 인해 충분히 재미있는 소설이라는 말을 하고 싶다.

 다 읽고 나서 충족된 만족감을 느끼지는 못 했는데, 그건 많은 암시와 복선만 깔아놓고 이번 권 내에서 사건이 완벽하게 해결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출판사 홍보 내용을 보면 ‘바디 뱅크’ 시리즈 첫 번째 권이라고 하니, 앞으로도 계속 나올 시리즈에서 해소되기를 바랄 수밖에. 원서를 검색해보면 [엔더스]가 있다. [스타터스]에 이은 [엔더스]의 이야기도 기대가 된다.

 최근 스테프니 메이어의 [트와일라잇] 시리즈, 스콧 웨스터펠드의 [어글리] 시리즈. L.J. 스미스의 [뱀파이어 다이어리], 스콜피어 리첼 미드의 [뱀파이어 아카데미], 제프리 디버의 [문 콜드](머시 톰슨 시리즈), 샬레인 해리스의 [수키 스택하우스] 시리즈, 수잔 콜린스의 [헝거 게임] 시리즈, 제시카 워먼의 [열일곱, 364일] 등 영 어덜트, 청소년 소설, 강한 여성이 주도하는 장르 소설들이 많이 출간되었다. 그만큼 현재 장르 소설의 트렌드이면서 많은 독자들의 지지를 받는 이야기라는 소리일 것이다. 이런 소설들은 십대 독자와 여성 독자들의 많은 지지를 받는다. 강한 여성 캐릭터가 조력을 받으며 문제를 해결하고 로맨스가 들어가 있으며, 오컬트, SF, 판타지, 스릴러 등 장르 소설의 매력까지 더해져 많은 인기를 얻고 드라마 영화로 영상화도 폭넓게 진행되고 있다. 진부한 로맨스 소설의 틀을 깨고, 새로운 세계관과 색다른 모험 그리고 사건을 주동하는 매력적인 주인공을 등장시켜 소설의 재미를 배가시켰기 때문에 독자들이 많이 찾는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에 리사 프라이스의 [스타터스]는 새로운 매력을 가진 블랙 로맨스로 독자들을 사로잡을 수 있을 것 같다. 바디 뱅크 시리즈가 많은 독자들에게 읽히고 또 멋지게 영상화 되기를 기대하며 이만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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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45678910 2015-05-21 16: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빅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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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수(듀나)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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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 [자음과 모음]에 연재되었을 때부터, 단행본으로 나오기를 기대한 책이었습니다. 드디어 나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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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 홈즈 : 실크 하우스의 비밀 앤터니 호로비츠 셜록 홈즈
앤터니 호로비츠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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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리뷰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그렇다. 저기 그가 파이프를 손에 들고 서 있다. 그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그러고는 미소를 짓는다. “사냥이 시작되었네…….””(17쪽)

 

 

셜록 홈즈가 돌아왔다. 이미 작가가 죽은 지 오래인데 어떻게 새 소설이 출간될 수 있는가? [셜록 홈즈 – 실크 하우스의 비밀]은 물론 코난 도일이 쓴 셜록 홈즈 시리즈가 아니다. 다른 작가가 쓴 ‘셜록 홈즈’다. 이런 종류의 소설들은 워낙 많이 출간되었다. 그러나 이 소설이 기존에 다른 셜록 홈즈 팬픽들과의 차이점은 바로 코난 도일 재단에서 처음으로 공식 인정한 소설이라는 점이다. 작가인 앤터니 호로비츠는 국내에는 잘 소개되지 않아 낯설지만 현지에서는 2007년 영국 출판업계 시상식에서 올해의 작가로 선정된 소설가이자 각본가라고 한다.
대표작 「알렉스 라이더 시리즈」는 전 세계적으로 1200만부나 팔렸다고 하니, 얼마나 유명한 작가인지 알 수 있다. 그런 앤터니 호로비츠가 쓴 [셜록 홈즈 – 실크 하우스의 비밀]은 결코 가볍게 쓴 작품이 아니다. 작가의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작가는 무려 8년 동안 자료조사와 인터뷰를 통해 작품을 준비했다.

 

 

“지금 쓰고 있는 이야기의 배경인 1890년도에는 런던 광역시 자치구라 불리는 4만 7000여 평의 지역에 약 550만 명의 주민들이 거주했고, 늘 그래왔듯 부유층과 빈곤층이라는 영원한 이웃이 아슬아슬하게 나란히 살고 있었다.”(107쪽)

 

 

코난 도일 재단이 공식 인정한 소설이라고 해서 마치 코난 도일이 되살아나서 쓴 듯한 ‘셜록 홈즈’ 시리즈를 기대한다면 실망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작품은 설정부터 원작을 이어쓴 작품이 아니라, 원작을 존경하면서 새롭게 쓴 오마쥬한 작품임을 드러내고 있다. 즉, 코난 도일이 쓴 원작과 함께 꽂아놓을 만큼 완벽히 같은 작품이라는 느낌보다는 코난 도일을 존경하는 후세의 작가가 썼다는 사실을 처음부터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이 소설의 얼개는 ‘납작 모자를 쓴 사나이’와 ‘실크 하우스’ 두 개의 사건이 섞인 장편인데, 이 소설의 허구적 설정 안에서는 사건 당시에 발표하지 않았다. 두 개의 사건이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에 개별적으로 발표할 수 없었으며, 워낙 충격적인 사건이기 때문에 사회 분위기상 출간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왓슨은 말한다.

 

 

“내가 그만한 여력이 될지 모르겠지만 집필이 끝나면 원고를 봉투에 넣어 채링 크로스에 있는 콕스 사로 보내 내 개인적인 서류를 보관한 금고에 넣어 달라고 할 것이다. 향후 100년 동안 봉투를 개봉하면 안 된다는 당부 사항도 첨부할 것이다. 100년 뒤에는 세상이 어떤 모습이고 얼마만큼 발전했을지 상상이 안 되지만, 미래의 독자들은 현재의 독자들에 비해 추문과 타락상에 좀 더 면역이 되어 있을지 모른다. 나는 그들에게 지금까지 본 적 없는 관점에서 그린 셜록 홈즈의 마지막 초상을 유품으로 남긴다.”(16~17쪽)

 

 

따라서 소설 속 화자인 왓슨은 서류를 금고에 넣어서 향후 100년 동안 개봉하면 안 된다는 사항을 첨부한다고 밝힌다. 즉, 왓슨이 사건 당시에는 공개할 수 없었던 충격적인 셜록 홈즈 사건 하나를 100년 후에 공개하는 조건으로 금고에 넣은 서류가 바로 독자가 읽게 되는 책인 것이다. 작가는 능청스럽게 100년 뒤에 세상이 어떤 모습이고 얼마만큼 발전했을지 상상이 안 간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추문과 타락상에 좀 더 면역이 되어 있을 것이라고 한다. 확실히 100년 뒤의 지금이기 때문에 작가는 더 충격적인 소재의 셜록 홈즈를 썼으리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작가의 치밀한 조사만큼 원전의 분위기를 잘 살렸다. 그러나 원전과 다른 점도 많이 존재하는데 이것은 이 작품을 쓰는 왓슨의 시점이 원전보다 시간이 지난 뒤라는 설정 때문에 가능하다.

 

 

“둘이서 주로 셜록 홈즈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대도 독자 여러분들은 그러려니 할 텐데, 나는 레스트레이드에게 사과하고 싶은 부분이 두 가지 있었다. 첫째로 나는 책을 쓰면서 그를 이른바 극찬한 적이 한 번도 없다. 지금 생각해도 퍼뜩 떠오르는 표현이 ‘쥐처럼 생겼다’고 한 것과 ‘흰 담비 같다’고 한 것이다. 그런데 잔인한 표현이기는 해도 틀린 말이 아닌 것이, 레스트레이드조차 조물주는 그에게 경찰이 아니라 범죄자의 얼굴을 부여했다고, 그쪽을 직업으로 선택했더라면 훨씬 더 돈을 많이 벌었을지도 모른다고 농담처럼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중략…) 하지만 내가 레스트레이드에게 지적 능력이나 수사력 나부랭이는 아예 있지도 않은 것처럼 간주한 것은 너무한 처사였다.”(94~95쪽)

 

 

작가는 이 설정을 살려서 원전에서 묘사된 허드슨 부인이나, 레스트레이드 경 같은 인물들의 다른 관점을 왓슨을 통해서 드러낸다. 이것은 원전의 느낌이 아니라, 21세기에 읽는 셜록 홈즈라는 것을 물씬 느끼게 한다. 원전을 잘 살린 부분은 작가가 얼마나 많은 조사를 했는지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셜록 홈즈가 상대방이 말하지도 않았는데 말이나 옷차림에서 모든 것을 추리하는 모습이나, 사건의 전개 과정 등에서 원전의 향기를 맡을 수 있어서 특히 좋았다.
차별화된 지점에서는 작가가 자기만의 해석이나 색채를 부여하려고 노력한 점이 또한 좋았다. 원전의 단순한 시각을 후세의 작가가 보완하고 풍성하게 만든 것이다. 셜록 홈즈가 죽고 나서 집필한 왓슨의 유품이라는 설정이 이를 가능케 했다. 원전의 캐릭터들에게 입체감을 부여하며, 이 작품이 셜록 홈즈 시리즈이면서 또 다른 개성과 의의를 지닌 독립적인 작품이 되게 한다. 독자들을 이 작품을 통해 원전에서 단순하게 비친 인물들을 다시 그대로 만나는 게 아니라 앤터니 호로비츠가 재해석한 인물들을 만나면서 원전을 새롭게 보는 시각을 갖게 되는 것이다. 이런 점이 원전이 있는 작품의 매력이 아닐까 싶다. 원전의 분위기를 잇는 것에만 급급한 게 아니라,(어설프게 흉내를 내느니 차라리 새롭게 재해석하는 것이 의미가 있을지 모른다.) 작가가 독자에게 “내 생각에 왓슨이 늙어서 이렇게 후회할 것 같은데 어때?”라며 묻는 듯하다.
작품의 또 다른 기본 설정인 충격적이기 때문에 공개하지 않았다는 점은 이 작품이 원전과 차별점을 가진다. 원전에서는 다루지 않은 충격적인 소재를 사용함으로써 차별화에 성공했고, 독자를 강렬한 이야기 속으로 끌어들인다. 이미 충격적이라는 암시가 있었기 때문에 읽으면서 사건의 내막을 미리 짐작할 수 있다는 점은 아쉬우나, 셜록 홈즈가 이런 사회적으로 심각한 사건에도 끼어들었을 경우에는 어떻게 될 것인가를 잘 풀어냈다는 느낌을 받았다.
물론, 원전의 이미지를 갖고 있는 독자들에게는 맞지 않을 수 있다. 왓슨의 관점 변화나 충격적인 소재 등이 이질감을 줄 수도 있다. 또한, 몇몇 이 작가가 넣은 설정이 재미를 주면서도 개연성을 해치는 지점이 있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예를 들면 소설 중간에 왓슨이 모리아티 교수와 만났다는 설정은 작가의 욕심으로 보이기도 한다.

 

 

“약속 하나 해주십시오, 왓슨 박사님. 오늘 이 만남은 홈즈 씨에게도, 어느 누구에게도 비밀로 하겠다고 소중한 모든 것을 걸고 맹세해 주십시오. 책에다 써서도 안 됩니다. 언급해서도 안 됩니다. 내 이름을 어디에서 접하더라도 처음 듣는 이름인 것처럼, 전혀 모르는 사람인 것처럼 해야 합니다.”(268쪽)

 

 

이는 충분히 팬픽으로서는 재미있는 설정이지만, 원전과 연결해서 생각하면 왓슨이 끝까지 모리아티를 미리 만났다는 사실을 영원한 비밀로 품고 태연한 척을 했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아무리 허구라고 해도 상식에 비추어 일어나기 어려운 일은 독자가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셜록 홈즈 – 실크 하우스의 비밀]은 지금까지 나온 다른 작가가 쓴 셜록 홈즈 소설들과 견주어도 상당히 잘 쓴 작품이다. 원전 그대로의 셜록 홈즈와 왓슨을 만날 수는 없지만, 다른 기반 설정 하에 재해석된 셜록 홈즈와 왓슨을 만날 수 있으며, 이들이 해결하는 새로운 사건이 충분히 독자의 두뇌를 자극한다. 두 개의 사건이 씨줄과 날줄처럼 엮이면서 독자를 혼란케 하고, 속속 밝혀지는 사건의 진상은 독자를 충격에 빠트리며 그 과정에서 홈즈는 누명을 쓰고 구치소에 갇히기도 한다. 추리와 모험이 적절하게 녹아들어 있으며 셜록 홈즈 시리즈 본연의 매력도 잘 깃들어 있다.
‘셜록 홈즈’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영화화된 가공의 인물이며, 탐정의 아이콘이자, 추리소설의 가장 대표적인 시리즈다. 그만큼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지속적으로 사랑받아온 캐릭터라고 할 수 있다. 코난 도일은 이제 없지만 앞으로도 셜록 홈즈 시리즈는 계속 나올 것이다. 그리고 그 중에서 [셜록 홈즈 – 실크 하우스의 비밀]은 원전과 함께 앞으로도 계속 회자될 또 다른 셜록 홈즈로 기억될 듯하다.
최근 영화 [셜록 홈즈 : 그림자 게임]의 개봉이나 BBC 드라마 [셜록] 시즌2의 방영으로 다시 한 번 ‘셜록 홈즈’에 대한 관심이 증폭된 상태에서 ‘셜록 홈즈’의 또 다른 사건 이야기는 셜록 홈즈를 활자로 더 만나고 싶은 독자들에게 좋은 선택이 되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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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과 천주교
김인섭 지음 / 보고사 / 2002년 4월
11,000원 → 10,450원(5%할인) / 마일리지 5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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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아무것도 아닌 햄버거의 역사
조현 지음 / 민음사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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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세지략 2
조성기 / 아침나라(둥지) / 199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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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세지략 1
조성기 / 아침나라(둥지) / 199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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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내리는 산장의 살인
구라치 준 지음, 김은모 옮김 / 검은숲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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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내리는 산장의 살인 : 본격 미스터리의 논리

 

 

 본격 미스터리라는 편협한 장르 속에서 걸작이 탄생하는 것은 기적에 가깝다. 하지만 그 기적이 지금 이렇게 독자의 눈앞에 있다. 이것이 진정한 행복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 니시자와 야스히코(작가)

 

 검은숲에서 구라치 준의 추리 소설 [별 내리는 산장의 살인]이 출간되었다. 국내에 첫 소개되는 작가인데 2001[항아리 속의 천국]이라는 작품으로 제1회 본격 미스터리 대상을 수상한 작가이다. [별 내리는 산장의 살인]1996년에 발표하여 제50회 일본 추리 작가 협회상 장편 부문 후보에 오른 작품이다. 검은숲 브랜드에서는 꾸준히 아직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재미있는 추리소설들은 소개하고 있다. 특히 성분 함량표라고 해서 고전의 반열, 대반전, 속도감, 캐릭터, 논리정연, 선정성 등 6개의 항목의 5점 만점으로 점수를 채점한다는 것이다. 처음 열어보는 색지에 적혀 있는데, 이것은 독자가 이 작품이 어느 지점에 중점을 두고 있다는 것을 미리 알고 읽을 수 있다. 혹은 서점에서 이 성분 함량표를 보고 작품을 살지 말지를 정할 수 있다. 이 작품은 대반전에 4.5점을, 캐릭터에 4, 논리정연에 5점 만점을 넘게 받았다.(무려 물음표로 표기되었는데, 이 성분 함량표는 독자들에게 강력한 추천의 역할도 함을 알 수 있다.) 그만큼 논리적인 해결이 뛰어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SF에서 하드 SF가 과학과 기술에 초점을 맞추고 엄밀한 과학적 이론과 원칙에 입각하여 적힌 가장 SF다운 SF라고 한다면 본격 미스터리는 수수께끼 풀이와 논리에 집중하는, 말 그대로 미스터리의 핵심, 가장 미스터리다운 미스터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작품은 그런 본격 미스터리를 맛볼 수 있는 작품이다. 물론 90년대에 나온 작품인 만큼 기존 본격 미스터리의 영향을 받으면서 또한 다르게 변주한 지점도 분명히 가지고 있다.

 [별 내리는 산장]은 눈 내리는 산장이라는 클로즈드 서클을 소재로 한 본격 미스터리다. 폐쇄된 산장, 그 안에 고립된 아홉 명의 사람들, 바로 전날까지 웃고 이야기하던 사람이 다음날 변사체로 발견되고 연쇄 살인이 일어나고 경찰이 해결해줄 수 없는 상황. 그야말로 추리 소설하면 바로 떠올릴 수 있는 기본적인 설정임에도 불구하고 진부하다거나 뻔하지 않고 오히려 독자를 매혹적으로 끌어들인다. 그만큼 탄탄한 이야기 전개 실력과 이야기를 전개하는 화자의 캐릭터를 친숙하게 그렸기 때문일 것이다.

 본격 미스터리에서 중요한 것은 치밀한 논리로 사건을 해결하는 것이다. 이 작품은 후반부의 뛰어난 논리 전개를 볼 수 있다. 그 전에 이 작품은 [일흔 다섯 마리의 까마귀]라는 쓰즈키 미치오라는 대가가 한 것처럼 각 챕터마다 작가가 독자에게 보내는 말이 적혀 있다. 이 말들은 정확히 사실만을 말하면서 독자를 안내하는 듯이 보이면서 한편으로는 오히려 이런 친절이 독자를 방심하게 만드는 역할도 하고 있다. 다 읽고 나서도 챕터마다 적혀 있는 글들이 모두 사실이며 동시에 그러면서 독자를 혼란케 할 수 있다는 사실에 작가의 능력에 감탄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홉 명이 산장에 갇힌다. 희생자는 두 명이고, 탐정은 한 명이며, 이야기를 관찰하는 주인공은 바로 탐정의 조수이다. 소거법을 적용하면 다섯 명 중에 한 명은 반드시 범인이다. 과연 범인은 누구일까. 본격 미스터리의 장점이라면 독자가 충분한 힌트를 제공받고 탐정보다 먼저 사건을 해결할 수도 있다는 점일 것이다. 정정당당하게 탐정과 혹은 작가와 게임을 하듯 대결을 하는 재미가 있다. 개인적으로는 작가에게 기분좋게 당했고 그 당함 덕분에 더욱 만족스럽고 재미있었던 독서가 되었다. 오랜만에 본격 미스터리를 읽고 본격 미스터리에서만 얻을 수 있는 재미를 느꼈다고 할까. 처음에는 눈 내리는 산장에 아홉 명이 갇히고 그 중 두 명이 연쇄적으로 살인된다는 정보를 접했을 때는, 너무 뻔한 설정에다가 맥없이 범인이 밝혀지는 게 아닐까 싶었지만, 이 소설은 그렇게 만만치 않았으며 놀라운 흡인력을 가지고 있었다. 하루만에 금세 읽어내려 갈 수 있는 소설이었고 논리도 탄탄했고 사건이 해결되는 순간에는 카타르시스를 느낄 만큼 재미있었다. 미스터리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한 번쯤 읽어보기를 추천하는 책이다. 국내에 소개가 안 된 작가인 만큼 과작이라고는 하나 이 작가의 다른 책들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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