셜록 홈즈 : 실크 하우스의 비밀 앤터니 호로비츠 셜록 홈즈
앤터니 호로비츠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11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이 리뷰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그렇다. 저기 그가 파이프를 손에 들고 서 있다. 그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그러고는 미소를 짓는다. “사냥이 시작되었네…….””(17쪽)

 

 

셜록 홈즈가 돌아왔다. 이미 작가가 죽은 지 오래인데 어떻게 새 소설이 출간될 수 있는가? [셜록 홈즈 – 실크 하우스의 비밀]은 물론 코난 도일이 쓴 셜록 홈즈 시리즈가 아니다. 다른 작가가 쓴 ‘셜록 홈즈’다. 이런 종류의 소설들은 워낙 많이 출간되었다. 그러나 이 소설이 기존에 다른 셜록 홈즈 팬픽들과의 차이점은 바로 코난 도일 재단에서 처음으로 공식 인정한 소설이라는 점이다. 작가인 앤터니 호로비츠는 국내에는 잘 소개되지 않아 낯설지만 현지에서는 2007년 영국 출판업계 시상식에서 올해의 작가로 선정된 소설가이자 각본가라고 한다.
대표작 「알렉스 라이더 시리즈」는 전 세계적으로 1200만부나 팔렸다고 하니, 얼마나 유명한 작가인지 알 수 있다. 그런 앤터니 호로비츠가 쓴 [셜록 홈즈 – 실크 하우스의 비밀]은 결코 가볍게 쓴 작품이 아니다. 작가의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작가는 무려 8년 동안 자료조사와 인터뷰를 통해 작품을 준비했다.

 

 

“지금 쓰고 있는 이야기의 배경인 1890년도에는 런던 광역시 자치구라 불리는 4만 7000여 평의 지역에 약 550만 명의 주민들이 거주했고, 늘 그래왔듯 부유층과 빈곤층이라는 영원한 이웃이 아슬아슬하게 나란히 살고 있었다.”(107쪽)

 

 

코난 도일 재단이 공식 인정한 소설이라고 해서 마치 코난 도일이 되살아나서 쓴 듯한 ‘셜록 홈즈’ 시리즈를 기대한다면 실망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작품은 설정부터 원작을 이어쓴 작품이 아니라, 원작을 존경하면서 새롭게 쓴 오마쥬한 작품임을 드러내고 있다. 즉, 코난 도일이 쓴 원작과 함께 꽂아놓을 만큼 완벽히 같은 작품이라는 느낌보다는 코난 도일을 존경하는 후세의 작가가 썼다는 사실을 처음부터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이 소설의 얼개는 ‘납작 모자를 쓴 사나이’와 ‘실크 하우스’ 두 개의 사건이 섞인 장편인데, 이 소설의 허구적 설정 안에서는 사건 당시에 발표하지 않았다. 두 개의 사건이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에 개별적으로 발표할 수 없었으며, 워낙 충격적인 사건이기 때문에 사회 분위기상 출간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왓슨은 말한다.

 

 

“내가 그만한 여력이 될지 모르겠지만 집필이 끝나면 원고를 봉투에 넣어 채링 크로스에 있는 콕스 사로 보내 내 개인적인 서류를 보관한 금고에 넣어 달라고 할 것이다. 향후 100년 동안 봉투를 개봉하면 안 된다는 당부 사항도 첨부할 것이다. 100년 뒤에는 세상이 어떤 모습이고 얼마만큼 발전했을지 상상이 안 되지만, 미래의 독자들은 현재의 독자들에 비해 추문과 타락상에 좀 더 면역이 되어 있을지 모른다. 나는 그들에게 지금까지 본 적 없는 관점에서 그린 셜록 홈즈의 마지막 초상을 유품으로 남긴다.”(16~17쪽)

 

 

따라서 소설 속 화자인 왓슨은 서류를 금고에 넣어서 향후 100년 동안 개봉하면 안 된다는 사항을 첨부한다고 밝힌다. 즉, 왓슨이 사건 당시에는 공개할 수 없었던 충격적인 셜록 홈즈 사건 하나를 100년 후에 공개하는 조건으로 금고에 넣은 서류가 바로 독자가 읽게 되는 책인 것이다. 작가는 능청스럽게 100년 뒤에 세상이 어떤 모습이고 얼마만큼 발전했을지 상상이 안 간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추문과 타락상에 좀 더 면역이 되어 있을 것이라고 한다. 확실히 100년 뒤의 지금이기 때문에 작가는 더 충격적인 소재의 셜록 홈즈를 썼으리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작가의 치밀한 조사만큼 원전의 분위기를 잘 살렸다. 그러나 원전과 다른 점도 많이 존재하는데 이것은 이 작품을 쓰는 왓슨의 시점이 원전보다 시간이 지난 뒤라는 설정 때문에 가능하다.

 

 

“둘이서 주로 셜록 홈즈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대도 독자 여러분들은 그러려니 할 텐데, 나는 레스트레이드에게 사과하고 싶은 부분이 두 가지 있었다. 첫째로 나는 책을 쓰면서 그를 이른바 극찬한 적이 한 번도 없다. 지금 생각해도 퍼뜩 떠오르는 표현이 ‘쥐처럼 생겼다’고 한 것과 ‘흰 담비 같다’고 한 것이다. 그런데 잔인한 표현이기는 해도 틀린 말이 아닌 것이, 레스트레이드조차 조물주는 그에게 경찰이 아니라 범죄자의 얼굴을 부여했다고, 그쪽을 직업으로 선택했더라면 훨씬 더 돈을 많이 벌었을지도 모른다고 농담처럼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중략…) 하지만 내가 레스트레이드에게 지적 능력이나 수사력 나부랭이는 아예 있지도 않은 것처럼 간주한 것은 너무한 처사였다.”(94~95쪽)

 

 

작가는 이 설정을 살려서 원전에서 묘사된 허드슨 부인이나, 레스트레이드 경 같은 인물들의 다른 관점을 왓슨을 통해서 드러낸다. 이것은 원전의 느낌이 아니라, 21세기에 읽는 셜록 홈즈라는 것을 물씬 느끼게 한다. 원전을 잘 살린 부분은 작가가 얼마나 많은 조사를 했는지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셜록 홈즈가 상대방이 말하지도 않았는데 말이나 옷차림에서 모든 것을 추리하는 모습이나, 사건의 전개 과정 등에서 원전의 향기를 맡을 수 있어서 특히 좋았다.
차별화된 지점에서는 작가가 자기만의 해석이나 색채를 부여하려고 노력한 점이 또한 좋았다. 원전의 단순한 시각을 후세의 작가가 보완하고 풍성하게 만든 것이다. 셜록 홈즈가 죽고 나서 집필한 왓슨의 유품이라는 설정이 이를 가능케 했다. 원전의 캐릭터들에게 입체감을 부여하며, 이 작품이 셜록 홈즈 시리즈이면서 또 다른 개성과 의의를 지닌 독립적인 작품이 되게 한다. 독자들을 이 작품을 통해 원전에서 단순하게 비친 인물들을 다시 그대로 만나는 게 아니라 앤터니 호로비츠가 재해석한 인물들을 만나면서 원전을 새롭게 보는 시각을 갖게 되는 것이다. 이런 점이 원전이 있는 작품의 매력이 아닐까 싶다. 원전의 분위기를 잇는 것에만 급급한 게 아니라,(어설프게 흉내를 내느니 차라리 새롭게 재해석하는 것이 의미가 있을지 모른다.) 작가가 독자에게 “내 생각에 왓슨이 늙어서 이렇게 후회할 것 같은데 어때?”라며 묻는 듯하다.
작품의 또 다른 기본 설정인 충격적이기 때문에 공개하지 않았다는 점은 이 작품이 원전과 차별점을 가진다. 원전에서는 다루지 않은 충격적인 소재를 사용함으로써 차별화에 성공했고, 독자를 강렬한 이야기 속으로 끌어들인다. 이미 충격적이라는 암시가 있었기 때문에 읽으면서 사건의 내막을 미리 짐작할 수 있다는 점은 아쉬우나, 셜록 홈즈가 이런 사회적으로 심각한 사건에도 끼어들었을 경우에는 어떻게 될 것인가를 잘 풀어냈다는 느낌을 받았다.
물론, 원전의 이미지를 갖고 있는 독자들에게는 맞지 않을 수 있다. 왓슨의 관점 변화나 충격적인 소재 등이 이질감을 줄 수도 있다. 또한, 몇몇 이 작가가 넣은 설정이 재미를 주면서도 개연성을 해치는 지점이 있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예를 들면 소설 중간에 왓슨이 모리아티 교수와 만났다는 설정은 작가의 욕심으로 보이기도 한다.

 

 

“약속 하나 해주십시오, 왓슨 박사님. 오늘 이 만남은 홈즈 씨에게도, 어느 누구에게도 비밀로 하겠다고 소중한 모든 것을 걸고 맹세해 주십시오. 책에다 써서도 안 됩니다. 언급해서도 안 됩니다. 내 이름을 어디에서 접하더라도 처음 듣는 이름인 것처럼, 전혀 모르는 사람인 것처럼 해야 합니다.”(268쪽)

 

 

이는 충분히 팬픽으로서는 재미있는 설정이지만, 원전과 연결해서 생각하면 왓슨이 끝까지 모리아티를 미리 만났다는 사실을 영원한 비밀로 품고 태연한 척을 했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아무리 허구라고 해도 상식에 비추어 일어나기 어려운 일은 독자가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셜록 홈즈 – 실크 하우스의 비밀]은 지금까지 나온 다른 작가가 쓴 셜록 홈즈 소설들과 견주어도 상당히 잘 쓴 작품이다. 원전 그대로의 셜록 홈즈와 왓슨을 만날 수는 없지만, 다른 기반 설정 하에 재해석된 셜록 홈즈와 왓슨을 만날 수 있으며, 이들이 해결하는 새로운 사건이 충분히 독자의 두뇌를 자극한다. 두 개의 사건이 씨줄과 날줄처럼 엮이면서 독자를 혼란케 하고, 속속 밝혀지는 사건의 진상은 독자를 충격에 빠트리며 그 과정에서 홈즈는 누명을 쓰고 구치소에 갇히기도 한다. 추리와 모험이 적절하게 녹아들어 있으며 셜록 홈즈 시리즈 본연의 매력도 잘 깃들어 있다.
‘셜록 홈즈’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영화화된 가공의 인물이며, 탐정의 아이콘이자, 추리소설의 가장 대표적인 시리즈다. 그만큼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지속적으로 사랑받아온 캐릭터라고 할 수 있다. 코난 도일은 이제 없지만 앞으로도 셜록 홈즈 시리즈는 계속 나올 것이다. 그리고 그 중에서 [셜록 홈즈 – 실크 하우스의 비밀]은 원전과 함께 앞으로도 계속 회자될 또 다른 셜록 홈즈로 기억될 듯하다.
최근 영화 [셜록 홈즈 : 그림자 게임]의 개봉이나 BBC 드라마 [셜록] 시즌2의 방영으로 다시 한 번 ‘셜록 홈즈’에 대한 관심이 증폭된 상태에서 ‘셜록 홈즈’의 또 다른 사건 이야기는 셜록 홈즈를 활자로 더 만나고 싶은 독자들에게 좋은 선택이 되리라 생각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