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노사이드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김수영 옮김 / 황금가지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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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단 학살(集團虐殺) 또는 제노사이드(genocide)는 그리스어로 민족, 종족, 인종을 뜻하는 Geno와 살인을 뜻하는 Cide를 합친 말이며, 고의적으로 혹은 제도적으로 민족, 종족, 인종, 종교 집단의 전체나 일부를 파괴하는 범죄를 일컫는다." ――― 위키백과

 제노사이드란 집단 학살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이다. 다카노 가즈아키는 바로 이 제노사이드라는 소재에 집중에서 장편을 썼다. 국내에는 [13계단](다카노 가즈아키, 황금가지, 2005년 12월)이라는 사형 제도를 다룬 미스터리 소설로 인기를 모은 작가다. 100권이 넘는 황금가지 밀리언셀러클럽 소설들 중에 높은 판매고를 보인 작품이며, 아직도 꾸준히 추천을 받는 스테디셀러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다카노 가즈아키의 신작이라는 점만으로도 주목을 받은 소설이며 장안의 화제로 떠올랐다. 또한, 책 뒤표지에 실린 수상 기록도 화려하다. ‘일본 서점 대상 2위’,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1위’를 기록했다. 자연스레 독자의 눈이 쏠릴 수밖에 없다. 수상기록 때문인지 대표작이 [13계단]이기 때문인지, 최신작 [제노사이드](다카노 가즈아키, 황금가지, 2012년 6월)를 미스터리라고 기대한 사람도 있었지만, 막상 책을 펼치고 초반만 읽어도 이 책은 미스터리적 요소가 있으나, 본격 미스터리 소설이라기보다는 다른 장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진화한 인류, 초월종의 존재라는 점에서 이를 전 인류적인 재앙으로 다루는 점, 신약을 개발에 관한 다양한 과학적인 조사 등 소재적 측면에서 과학소설이라는 장르로 볼 여지가 많다. 또한, 긴박감 넘치는 상황이 연속으로 펼쳐지면서 액션과 스릴있는 장면 연출이 많아 헐리우드 영화를 떠올리게 한다. 즉, 스릴러 소설의 측면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테크노 스릴러라고 할까. 사실 세세하게 장르를 따지고 들기보다는 작품 그 자체를 보는 게 우선일 것이다. 작가들은 대게 어떤 장르를 써야지 하고 작품을 쓰기보다는 자기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의 적절한 방식을 선택하는 게 대부분이고, 추후에 독자들이 편의를 위해 여러 장르로 구분을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작가가 특정 장르를 목표로 하고 쓴 게 아닌 작품을 가지고 이 작품은 이 장르의 특성에 안 맞기 때문에 문제가 있다, 라는 식의 시선은 무리가 있을 수 있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이다.

 뛰어난 구성과 자료 조사가 돋보이는 작품

 그럼 다시 작품으로 돌아가보자. [제노사이드]는 [13계단]에서 보였던 작가의 탄탄한 구조를 쌓아올리는 장점이 여실히 드러난 작품이다. 게다가 일본으로 한정되었던 [13계단]과 달리 [제노사이드]는 크게 미국 백악관과 아프리카 그리고 일본 등의 여러 지역을 선보이면서도 독자가 집중력을 잃지 않고 작품 속에 빠져들 수 있게 노련하게 독자를 이끌고 있다. 자칫 산만하거나 허황되게 느껴질 배경들을 자연스럽게 통합하는 작업에 성공한 것이다. 얼핏 보기에 이런 작업은 쉬어 보이지만, 이런 식으로 다양한 배경과 인종을 한 권 안에 모두 넣기가 어려우며 이런 방식의 소설을 많이 찾아보기 힘들다는 점을 상기할 때, 이 작품이 매력적인 구조로 작품의 완성도를 높였다. 독자들은 암시와 복선이 배치된 뒤에 이를 체계적으로 회수하는 작품에 구성이 뛰어나고 완성도가 높은 작품이라고 느낀다. [제노사이드]는 획기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안정적이다. 작가의 실력은 독자를 충분히 만족케 할만큼의 탄탄한 구성 능력을 갖추고 있다.
 이 작품의 또 다른 미덕은 충실한 자료조사이다. 이 작품은 여러 소재가 쓰인 만큼 기본적인 자료 조사가 필수인 소설이다. 책 뒤에 실린 감사의 글과 주요 참고 서적 리스트를 보면 이 작가가 이 한 권의 책을 쓰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사전 조사를 했는지 알 수 있다. 그 덕분에 이 소설은 지구적인 스케일을 다룰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렇게 현실을 바탕으로 한 스릴러 소설에서는 엄청난 분량의 자료 조사는 필수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자료 조사가 기반이 되면 소설에 현실감이 부여된다. 첫 장면부터 백악관에서도 대통령의 브리핑 장면으로 대범하게 시작되는데, 이런 장면 역시 조사를 통한 고증이 없으면 상상으로는 집필하기 힘든 부분이다. 그러나 작가는 조사를 통해 이런 장면들을 구현해 냈고 덕분에 독자들은 마치 영화를 보듯이 첫 장면부터 빨려들 수 있다. 상업 영화의 첫 5분이 독자를 끄는 데 중요한 것처럼, 이 소설 역시 그런 법칙에 맞게 초반부터 이 소설이 엄청난 스케일을 자랑하며 흥미로운 이야기를 다루고 있음을 장면으로 보여준다. 따라서 초반부터 놀라운 흡인력으로 독자를 사로잡는 것은 당연하다. 훌륭한 페이지 터너인 셈이다.

 "안녕하십니까, 대통령 각하."
 미리 불러 두었던 새뮤얼 깁슨 해군 중령이 이쪽으로 왔다. 그는 이른 바 '양키 화이트', 즉 국방부의 철저한 신원 조회에서 최고 등급을 받은 군인이었다.
 "잘 잤나, 샘."
 중령이 가방을 받아서 손잡이와 자기 손목에 수갑을 채웠다. 번즈는 그와 함께 아래층으로 내려가서 비밀 검찰국의 경호원과 합류한 뒤 백악관 서관으로 향했다. 도중에 국가 안보국(NSA)의 직원을 만나서 작은 플라스틱 카드를 받았다. 대부분 이 카드를 '비스킷'이라고 불렀다. 카드 표면에는 난수 배열로 이루어진 핵미사일 발사 코드가 인쇄되어 있었다. 이 무작위적인 문자열을 대통령의 승인 하에 '뉴클리어 풋볼'에 장치된 키보드로 입력하면 핵공격이 실행된다. 번즈는 카드를 넣은 지갑을 윗옷 안주머니에 넣었다. ――― 다카노 가즈아키, [제노사이드], 황금가지, 2012년 6월, 8쪽



 작가가 많이 조사한 면이 드러날 수록 독자는 작가를 신뢰하고 이야기를 즐겁게 읽어나가게 된다. 작가가 성의없이 아무렇게나 적은 게 느껴지면 금세 글에 흥미를 잃는 것과 대조적으로.

 '제노사이드'라는 주제에 집중한 소설

 앞에서 말했듯이 [제노사이드]는 다양한 자료 조사가 돋보이는 소설이다. 독자는 소설을 통해서 잡지식이라고 해도 다양한 지식을 훑어보는 재미까지 덤으로 얻게 된다. 그러면서도 작가는 주제를 소흘히 대하지 않는다. 이 소설의 제목이자 중요한 메시지인 제노사이드에 대한 고찰을 내내 집중하는 것이다. 오히려 제노사이드가 지나치게 설명적으로 많이 나오는 나머지 조금은 인위적이고 과도한 느낌까지 줄 정도이다. 그러나 앞에서 말한 자료 조사를 통한 역사적인 제노사이드 사례들은 소설을 읽는 내내 이 작가가 말하려고자 하는 바를 생각하게 한다. 인류는 왜 제노사이드를 벌이는가. 인간의 잔혹성과 어리석음, 잘못된 역사. 이것은 나아가 인류의 운명에 대해서 생각하게 만든다. 동물들을 멸종시키고 인간 스스로 자기들끼리 집단 학살을 자행하는 종족이 과연 지구에 언제까지 지배자로 군림할 수 있을 것인가. 여러 가지 자격과 미래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만드는 것이다. 역사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인류가 자행한 제노사이드를 꿰고 있을 수 있지만, 별로 관심이 없던 독자들에게는 이 책을 통해 지금까지 인류가 벌인 제노사이드를 짚어보면서 인류 자체에 대해서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게 한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서 겐토는 일본인이 저지른 제노사이드를 알고 오싹했다. 관동 대지진 직후 '조센징이 방호를 저지르고 우물에 독을 푼다'와 같은 유언비어가 나돌자 정부와 정치가, 신문사까지 이 근거 없는 소문을 흘리면서 일본인들이 수천 명의 조선 반도 출신 사람들을 말살 하도록 부추겼다. 총이나 일본도, 방망이 따위로 사람들을 가지고 놀다가 살해하는 것으로 모자라 희생자를 땅 위에 눕혀 묶어 놓고 트럭으로 치고 나가는 잔학한 행위까지 벌어졌다. 일본이 조선 반도를 무력으로 식민 지배한 것이 당시의 일본에게는 켕기는 구석이었던 탓에, 보복이 있을 수 있다는 공포가 오히려 흉폭함으로 이어지게 되었다고 했다. 폭력이 한계치까지 달해 조선 반도 출신의 사람으로 착각하고 일본인을 살해한 일도 많았다. 인종 차별주의자인 할아버지와 큰아버지가 현장에 있었다면 틀림없이 대량 학살에 가담했을 것이다. 다른 민족에 대한 차별 감정을 아무렇지도 않게 입에 올리는 사람들은 무언가 계기가 주어지면 그들 안의 잔인한 감정이 폭발하여 살인자로 돌변했다.
 그들의 마음 속에는 어떤 마물이 스며들어 있는 것일까? 살해당한 사람들의 공포와 아픔은 어떤 것일까? 일본인의 무서움을 일본인은 알지 못한다. ――― 다카노 가즈아키, [제노사이드], 황금가지, 2012년 6월, 170~171쪽



 이 책은 기존에 인류가 저지른 제노사이드에 대한 고발을 하는데, 그걸 이끌어내는 것은 사건을 통해서다. 아프리카 오지, 콩고의 피그미족에게서 태어난 초월종 때문에 미국의 대통령은 40명의 피그미 부족 하나와 초월종을 죽이기로 결심한다. 이것은 집단 학살이다. 이를 통해 소설 속 인물들은 그 동안 자행되었던 제노사이드를 떠올린다. 일본인이 저지른 동경 대학살도 같이 언급되어 작가가 정치적으로 공정하게 작품을 집필했음을 보여준다. 자국이 저지른 잘못을 축소하거나 숨기지 않고 오히려 다른 제노사이드와 마찬가지로 다룸으로써 이 소설의 스케일을 실감나게 만들고 있다. 또한, 40명의 피그미족을 죽이지 않게 되더라도 초월종은 죽이려고 하는데, 위험 요소라는 이유만으로 새로운 종을 단번에 멸종시키려는 인간의 오만과 잔학성을 보여준다. 인류 본성의 잘못을 소설 속에서 현재 일어나는 사건을 통해 고발하면서 동시에 과거를 회상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런 구성은 소설 전체가 제노사이드라는 하나의 주제로 묶이게 만든다. 미국이 석유를 얻기 위해 잘못된 정보를 가공해서 벌인 전쟁을 고발하고 그로 인해 벌어진 집단 학살도 소설 속에서 고발된다. 잘못된 전쟁. 포로를 고문하고 살해하는 음지에서 벌어지는 일들까지. 이런 문제 의식들은 공감이 되고 흥미롭게 읽었다. 이런 사회 풍자적인 요소와 영상을 염두에 둔 듯한 스케일이 크고 영화적 연출 장면으로 인해 영미권에 번역되거나 헐리우드 영화로 제작되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주의해 주세요.



 소설 속의 인물들

 이 소설은 크게 중요한 세 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각 진영의 주인공 격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일본에서 활약하는 인물은 돌아가신 아버지의 수수께끼를 해결하려는 약학 대학원생 고가 겐토다. 또한, 불치병에 걸린 아들을 위해 잔혹한 임무를 수행하러 콩고로 잠입한 용병 조너선 예거가 있다. 그리고 이 두 명보다 등장하는 장면이나 비중이 적지만 미국 백악관에서 후반부에 등장해서 활동하는 루벤스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이 세 명은 소설에서 흔히 주인공으로 볼 만한 인물들이다. 그런데 이 소설은 구성이 뛰어난 반면 인물들에게는 아쉬움을 느꼈다.
 고가 겐토는 일본에서 활약하는 대학원생이라는 점에서 가장 주인공 포지션에 잘 맞는 인물들이다. 아무래도 천재로 설정된 루벤스나 용병 조너선 예거보다는 일반적인 독자가 공감할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장 감정이입이 잘 되어야 할 고가 겐토가 의외로 이해하기 힘든 캐릭터로 비쳤다. 일단, 돌아가신 아버지의 수수께끼를 푼다는 설정은 좋았지만, 겐토가 나중에는 심각한 위협에 시달리면서도 기를 쓰고, 모든 걸 걸고 수수께끼를 풀려고 하는 그 동기가 잘 와닿지 않았다. 이로 인해 겐토의 캐릭터는 설득력을 잃고 이상한 인물로 전락해버린 느낌이었다. 왜 겐토는 이렇게 움직이는가에 대해서 잘 와닿지 않다 보니, 계속 미심쩍은 마음이 들었다. 게다가 처음에 한 의심이 커져 급박한 상황 속에서 아버지의 불륜을 의심하고 아니라고 안심하는 장면도 좀 뜬금없고 소설 전체의 흐름을 깨는 느낌도 있었다. 콩고에서는 목숨을 건 전쟁이 벌어지는 중에 일본 쪽으로 화면이 넘어가면 긴장이 깨졌다. 일본에서의 위협은 대비가 커서 겐토는 위험을 쉽게 넘기는 편이었고 위험한 상황에 처할 거란 예상이 안 되어서 긴장이 약했다.
 이에 반해 콩고의 잠입 임무를 맡은 예거는 아들을 향한 부성애가 절절하게 녹아져 있기 때문에 살아있는 느낌이 들었다. 일단, 동기가 단순하면서도 확고하고 의심할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캐릭터가 가장 잘 살았다고 할 수 있다. 총알이 빗발치는 콩고 한 복판에서 이야기가 흐름을 잃지 않았던 것, 일본과 백악관을 오가면서도 소설이 계속 독자의 시선을 붙잡을 수 있었던 것은 예거 덕분이다. 목숨이 얼마 남지 않은 불치병을 앓고 있는 아들의 목숨 때문에 독자는 결국 어떻게 될지 궁금해 하며 작품을 읽어가게 된다. 작가가 어느 쪽이든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초월종을 데리고 임무를 수행하면서 그는 계속 초월종의 시선에 대해 염려한다. 초월종이 구인류를 어떻게 판단내릴지 염려스러운 마음에 선한 인간에 대해서 알려주려고 한다. 무엇보다도 초월종의 시선이 마치 비웃는 것 같았다는 언급을 계속 하면서 속내를 짐작할 수 없는 초월종에 대한 신비롭고 모호하며 때론 섬뜩한 이미지를 심어주는 역할을 맡는다. 이 소설이 흥미로워지는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다.
 루벤스는 후반부에 등장하는 인물로 어리석은 인물들만 있는 듯한 백악관 쪽에서 가장 뛰어난 두뇌와 정상적인 사고를 하는 인물이다. 이 인물이 없었다면 미국 백악관 장면에서는 후반부에는 그냥 악으로만 묘사되고 지루한 파트가 되었을 것이다. 독자들에게 많은 정보를 설명해주는 인물이기도 하다. 속내를 처음부터 많이 설명하면서 등장하기 때문에 독자가 이해하기 쉽고 생동감이 있는 인물 중에 한 명이었다.
 그런데 이런 주요 인물 몇 명을 제외하고 나머지 인물들은 지나치게 평면적이라 소설 전체적으로 아쉬웠다. 물론, 단 권으로 구성된 책에서 모든 인물의 감정과 사고를 묘사하고 독특한 개성을 부여해줄 수는 없다. 그렇지만 미리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인류학자는 지나치게 사고가 나오지 않고 인물에 대한 소개나 행동의 동기가 나오지 않아 잘 와닿지 않는 캐릭터였다. 상황을 전개시키기 위한 수단, 기계적이고 도구적인 인물로 비친 것이다. 이런 인물은 겐토를 돕는 한국인도 마찬가지다. 게다가 중간에 한국인만의 특성이라며 '정'을 설명하는 부분도 오그라드는 부분이도 공감도 가지 않았다. '정'은 어느 나라나 보편적으로 가지고 있는 정서이며 한국인이 특별히 유별난 것도 아니고, 별다를 게 없지 않은가. 순혈과 민족을 따지자면 어떻게 보면 그게 오히려 차별적인 대사가 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오토바이를 몰고 다니며 뛰어난 천재이고, 아무것도 받지 않고 돕는 인물로 설정되었는데, 이는 잔혹한 인간도 있는 만큼 선한 인간도 있다는 작가의 생각을 대변하는 상징적인 캐릭터이지만 그만큼 구성에 맞게 등장했기 때문에 역시 도구적인 느낌이 강하다. 살아있는 인간이라기보다는 인조인간 같은 느낌인 것이다. 따라서 인물의 매력이 살아나지 못했던 것이 많이 아쉬웠다. 좀더 인간다운 면도 부여해주었다면 어땠을까 싶은 것이다. 이런 점들은 완벽한 구성 때문에 캐릭터성이 희생된 면으로 볼 수 있다. 작가가 신처럼 소설 전체를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인물들이 인형처럼 틀에 맞춰져서 살아있는 느낌을 주지 못하는 것이다. 이는 딘 쿤츠의 작법론을 떠올리게 한다. 쿤츠는 플롯을 대단히 중시하는 작가인데, 그 점에서 플롯이 잘 짜여진 다카노 가즈아키의 소설도 유사한 면이 있을 것이다. 쿤츠의 소설에도 완벽한 구성에 비해 몇몇 인물들이 좀 부자연스럽거나 답답한 인상을 주기도 한다. 쿤츠는 플롯을 중시하지 않으면 결말이 지리멸렬하게 될 것이며 그 예로 스티븐 킹의 [스탠드](스티븐 킹, 황금가지, 2007년 10월)를 예로 들었다. 반대로 스티븐 킹은 플롯은 허위라고 말한다. 플롯을 강조하면 너무 거칠어서 작위적으로 보일 수 있다고 말한다. 스티븐 킹은 플롯을 무시하라는 것이 아니라 사건 진행을 적은 스토리를 중시하고 퇴고에 집중하라고 한다. 이렇게 대조적인 작법론을 가지고 있는데 그만큼 [스탠드]는 결말이 아쉬운 반면에 많은 인물에게 애정을 갖고 보게 되며 [스탠드]를 포함한 스티븐 킹의 많은 작품들 속 인물들이 매력적으로 등장하며 읽고 나서도 오래 인물이 기억에 남는다. 각각의 장단점은 있을 것이다. [제노사이드]는 한 편의 잘 짜여진 소설로 암시와 복선을 차례대로 회수하고 깔끔한 결말을 단번에 맺지만, 분량이 더 늘어나더라도 인물에 좀 더 집중했더라면 각각의 매력이 살아나고 다른 느낌의 소설이 되었을 것 같다.(언급한 딘 쿤츠의 작법론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위키 백과를 참조.[클릭])

 초월종에 대해서 - 데우스 엑스 마키나

 SF에서는 예전부터 수없이 초월종, 신인류에 관한 소설이 나왔다. [제노사이드] 역시 그런 작품의 흐름에 포함될 수 있을 것이다. 국내에는 올라프 스태플든의 SF [이상한 존](올라프 스태플든, 오멜라스(웅진), 2008년 7월)이 대표적으로 소개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필립 K. 딕의 단편 {골드맨}도 포함된다.) 여기서 초월종들을 핍박을 받는다. 결국, 오래전부터 지금까지 인간들은 자기보다 뛰어난 존재의 출현에 두려움을 갖는다고 묘사된 셈이다. 그게 어찌보면 자연스러운 예측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제노사이드]에서는 신인류의 지적 능력을 인간이 측정할 수 없는 단계까지 높였다. 이를 통해 인간은 상대적으로 무력한 동물 수준이 되었고 신인류는 인간을 갖고 노는 수준이 된 것이다. 이는 매우 흥미로운 생각을 하게 만든다. 신인류가 구인류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하는 지점이다. 하지만 우리보다 월등히 뛰어난 신인류의 사고를 우리와 동격의 사고 체계를 갖고 있는 작가가 정밀한 묘사를 해낼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작가는 필연적으로 관찰자의 시점에서 신인류를 보여줄 뿐이다. 이는 신인류를 효과적으로 묘사하는 방법이다. 작가는 처음에는 '하이먼즈 리포트'라는 가상의 보고서를 등장시켜 신인류의 등장이 인류 멸종의 한 방법이 될 수 있음을 암시하며 흥미로운 사건을 제시한다. 여기에 신인류는 인간을 월등히 뛰어넘는 종으로 나오는데, 기존에 나온 어떤 소설보다도 현재 과학기술과 접목해서 현실감 있게 그 지력을 보여준다. 현재 최강국인 미국을 정보전으로 압도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무력 시위를 하는 장면은 마치 영화 [엑스맨2](X2, 2003)의 마지막 장면을 떠올리게 하며, 사건 해결 방법도 유사하다.(돌연변이로 일한 특별한 능력을 가진 소수가 다수의 핍박을 받다가 미국 대통령에게 직접 무력 시위로 갈등을 대충 봉합하는 구도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약간은 아쉬운 점이다. 그러나 거기까지 이르기 전에 서서히 신인류의 실체를 보여주는 장면은 미스터리 작가의 뛰어난 장기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신인류의 측정 불가능한 지적 능력에 대한 묘사를 처음에 나뭇잎이 어디로 떨어지는지 예측하는 모습에서 암시하듯이, 모든 인과관계를 꿰뚫어보고, 혼돈 이론을 비롯한 모든 복잡계 이론을 인지한 능력을 차례차례 선보이는데, 이것이 물론 상황으로 체험하게 하면서 인물들과 독자들에게 인식시켜주는 방식은 좋았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소설을 많이 읽은 독자에게는 초반 몇 장면을 보고 나면 이후의 이야기들이 모두 그려진다는 점이 아쉬웠다. 모든 상황을 통제하는 지적인 존재는 사실 인류의 지능을 뛰어넘은 인공지능 등으로도 헐리우드 영화 속에서도 찾아볼 수 있고, 신인류의 전자전은 그러한 행동과 비슷하게 나타나기 때문에 약간은 새롭지 않은 것이다. 물론, '기프트'라는 프로그램을 주어서 이를 통해 신약을 개발하게 하는 과정은 신선한 면이 있었고 흥미를 유발시켰다. 하지만 주인공들을 계속 위험에서 탈출시키는 과정은 반복이 되면서 조금은 무미건조한 느낌을 받는 것도 사실이다. 예지 능력자를 다룬 몇몇 영화들 속 미래 예지나 영화 [이글아이](Eagle Eye, 2008)에서 인공지능 컴퓨터의 모습을 연상시키는 것이다. 교통, 통신... 인류가 구축한 모든 전자 기계적 시스템을 조종할 수 있는 능력이 동일하기 때문에 비슷한 장면 연출이 나온다. 물론 영화와 차별화된 더 나아간 지점도 있다. 그러나 좀 더 다양한 관점에서 신인류를 부각시켰다면 소설이 풍부해지고 읽는 사람도 계속 감탄을 하며 이야기를 읽어나갔으리란 생각이 들었다.(비슷한 패턴이 계속되면 결국 독자에게 읽힌다.) 신인류가 초월적인 능력으로 신과 같은 상황 장악 능력을 보이는 것이 확실시 되는 지점에서는 아예 이 소설에서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 같은 역으로 보였으며 긴장감이 확 떨어졌다. 물론 체계적으로 쌓아올린 구조 속에 개연성을 갖추고 논리적으로 만들어진 신인류의 모습이었지만, 어느 정도 사건의 미스터리가 풀리는 지점에서는 조금 허탈한 느낌을 받게 된다. 결국 모든 게 소설 속 일들이 처음부터 정해져 있는 것이고 경이로운 능력을 선보이는 쇼 같이 느껴지는 면이 있는 것이다. 이 점은 소설을 오히려 더욱 놀라운 사고의 경이로 이끄는 것이 아니라 조금은 소설의 세계관을 축소시키고 이야기의 흥미를 스스로 시시하게 만드는 부분인 것 같아 아쉬웠다. 다루고 있는 소재는 다를 지점까지 더 나아갈 수 있는데도 멈춘 듯한 느낌이었다.

 리뷰를 마치며

 예전에도 몇 번씩이나 반복하는 말이지만, 리뷰를 길게 썼어도 결론은 간단하다. 재미있고 즐거운 소설이었다. 680페이지가 넘는 소설임에도 내내 손에 땀을 쥐며 읽게 만드는 책이다. 어느 정도 재미있는 소설이라고 할지라도 하루만에, 그러니까 몇 시간만에 단숨에 읽게 만드는 책은 많이 없다. 그것도 두께가 만만치 않은데 말이다. 그런데 다카노 가즈아키의 [제노사이드]는 그것을 해냈다. 그렇다면 얼마나 놀라운 흡인력과 재미를 가지고 있는 책인지 더 말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제노사이드와 신인류라는 가볍지 않은 주제를 다루면서도 엄청난 속도감으로 무장한 책이다. 페이지를 넘기는 속도가 빠르고 걸리는 문장이나 지루한 구석이 없다. 사건 전개가 그만큼 세계 곳곳을 오가는데도 숨막히게 빠르고 그러면서도 산만하다는 느낌이 없다. 플롯을 치밀하게 짠 만큼 독자가 적당한 시점에서 사건의 전말을 깨닫게 되며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사건들이 한 곳에 집중된다. 거기서 오는 쾌감도 상당한 소설이다. 소설은 무엇보다도 재미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독자라면 이 책을 놓치지 않을 것이다. 그만큼 이렇게 가독성 높은 소설을 발견하기란 쉽지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이 책이 사고의 지평을 확장하거나 예상치도 못한 반전을 가진 명작의 반열에 속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대중소설로써 높은 완성도와 재미를 가진 소설이다. 머릿속에 내내 헐리우드 영화 속 영상으로 재현되었고, 실제로 영상으로 보고 싶어지는 소설이었다. 제47회 에도가와 란포상을 수상한 [13계단]과 미니 드라마 같은 초능력을 소재로 한 재미있는 단편 연작집인 [6시간 후 너는 죽는다](다카노 가즈아키, 황금가지, 2009년 3월)에 이어 [제노사이드] 역시 충분히 시간을 잘 죽일 수 있는 재미를 준 작가다. 개인적으로 아직 안 읽은 [그레이브 디거](다카노 가즈아키, 황금가지, 2007년 6월)와 책날개에 근간으로 표시된 [K·N의 비극]도 얼른 읽고 싶다. 작가가 앞으로도 충실한 자료조사와 다양한 소재로 즐거운 이야기를 선사해주기를 기대하며 이만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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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임적 리얼리즘의 탄생 - 오타쿠 문학의 가능성을 짚어본다

 [게임적 리얼리즘의 탄생]은 2007년도에 출간된 저서로 국내에는 5년이나 뒤늦게 소개되는 것이다. 아즈마 히로키가 2001년 발표한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은 ‘오타쿠’를 통해서 일본 사회를 짚어보는 글이었다. 그리고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의 후속작인 [게임적 리얼리즘의 탄생]은 ‘오타쿠를 통해 본 일본문학’으로 불릴 책으로 ‘라이트노벨’과 ‘미소녀 게임’을 다룬 책이다. 아즈마 히로키는 오타쿠를 통해 일본문학을 고찰하는 것이 당돌한 주장일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포스트모던화의 발전과 오타쿠의 출현은 시기상 특징상 관계가 있기 때문에 이를 사고해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밝힌다.
 본론으로 들어가서 아즈마 히로키는 ‘제1장 이론’에서 사회학 측면으로 서브컬처를 살펴본다. 아즈마 히로키의 이론에서 먼저 상기할 점은 ‘포스트모던’ 시대라는 것과 ‘데이터베이스 소비’적 환경이라는 것이다.
 포스트모던 시대의 문학 상황을 고찰하기 위해서는 따라서 순수문학이나 일반 소설이 아닌, ‘라이트노벨’을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일반적인 라이트노벨의 정의부터 라이트노벨의 기원까지 먼저 서술한다. 몇 년 전부터 국내에서 라이트노벨을 읽고 관심이 많았던 독자라면 대부분 다 아는 내용을 다시 한 번 정리한 셈이다.
 국내에서도 라이트노벨 붐이 일기 시작하면서, ‘도대체 라이트노벨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이루어졌다. 독자들 사이에서 기준을 세우기도 하고, 위키에 적혀 있는 내용으로 라이트노벨을 정의하고 재단하기도 했다. 아즈마 히로키는 일반적 정의로 만화적이거나 애니메이션적인 일러스트가 더해진, 중고생을 주요 독자층으로 하는 엔터테인먼트 소설이라고 말한다. 여기에 대개 문고판이지만 양장본 출판도 늘고 있다고 말한다. 아리카와 히로의 [도서관 전쟁] 시리즈나 고단샤에서 나오는 책들을 가리키는 듯하다.
 국내나 일본에서 이렇게 라이트노벨에 대한 정의가 문제시 된 것은 라이트노벨이라고 하는 단어가 일반적인 장르소설들의 구분과는 다른 방식으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독자층으로 나뉜다면 아동소설, 청소년 소설, 성인 소설의 분류에서 청소년 소설과 연관이 되며, 소재로 나뉜다면, 라이트노벨 레이블에는 SF, 미스터리, 판타지, 전기, 러브 코미디 등 다양한 소재를 사용한 장르소설의 혼재되어 있기 때문에, 하나의 장르로 묶을 장르 규칙을 발견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아즈마 히로키는 소제목으로 “라이트노벨은 ‘장르 소설’이 아니다”라며 판타지, SF, 미스터리 등의 구분과 동일선상에 라이트노벨이 놓여 있지 않다고 말한다. 미스터리나 SF는 독특한 기준이 있기 때문에 ‘이것은 미스터리가 아니다’, 라거나 ‘이것은 SF가 아니다’라는 논쟁이 일어나지만 라이트노벨에서는 그와 같은 기준이 눈에 띄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라이트노벨이 단순히 독자층 구분으로도 소재별로 구분하는 내적 기준으로도 구분할 수 없다면 외적 요소인 레이블이나 겉 포장으로 결정되는 것인가. 국내에서도 라이틑노벨은 장르가 아니라 특정 레이블, 삽화와 표지, 문고본 형태 등으로 규정되는 ‘포맷’이라는 논의가 있었다. 그러나 앞에서 말한 고단샤 노벨즈나, 고단샤 박스 등은 이런 외적 기준에 어울리지 않는 책들이 많고,(표지에 애니메이션적 필치가 없고, 삽화가 없으며 양장본으로 제작되는 등) 반대로 일본에서는 SF출판사에서 SF 레이블로 출판된 소설이 국내에는 라이트노벨 레이블로 출간되는 경우를 보듯이 외적 기준만으로 라이트노벨을 규정짓는 것은 완벽하게 라이트노벨을 규정짓는다고 볼 수는 없다. 아즈마 히로키는 일본에서 미소녀 게임, 보이스 러브 소설에서부터, 협의의 라이트노벨을 거쳐 미스터리와 SF 같은 장르 소설 그리고 순수문학 일부까지를 포함하는 광범위한 범위 안에 일관되게 유지되는 일정한 감성이 있으며, 이것이야말로 막연하게 ‘라이트노벨’이라 불리는 것이라고 말한다.

 라이트노벨, 데이터베이스 소비로 만들어지는 캐릭터 소설

 저자는 라이트노벨 감성의 정체를 짚어보면서 캐릭터를 이야기한다. 만화, 애니메이션, 게임, 라이트노벨 등의 서브컬처에는 원본의 2차 차작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소비된다. 소비자들은 이같은 ‘캐릭터의 자율화’에 매우 익숙하다고 지적한다. 오타쿠들의 세계에서는 캐릭터가 특정 작가나 작품에 귀속되기보다는 오히려 공유재로 의식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저자는 캐릭터 유형의 유행을 분석하여 캐릭터를 만든다는 것이 작품 제작의 큰 과제가 되고 있음을 말한다. 포스트모던 시대에 큰 이야기의 쇠퇴와 캐릭터의 자율화는 최근의 현상이 아니라 1990년대 후반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최근 10년간 오타쿠들의 작품과 시장을 규정하는 거대한 흐름이라고 한다. 저자는 전작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에서 이야기가 아닌 작품의 구성 요소 그 자체가 소비 대상이 되고 있다는 의미에서 ‘데이터베이스 소비’라고 명명했다는 것이다.

 라이트노벨 작가는 이야기의 양식을 규정하는 장르적 규범의식이 아니라 그 하위에 위치하는 탈장르적 혹은 메타 장르적 데이터베이스에 의거해 소설을 쓰고 있다. 그 때문에 그들은 마찬가지로 ‘라이트노벨적’ 감성에 의거하면서, 독자가 판타지를 원하면 판타지를, SF를 원하면 SF를, 청춘 소설을 원하면 청춘 소설을 유연하게 써내는 것이 가능하다. 신조 가즈마는 이것을 ‘장르를 자유자재로 다룬다’ 혹은 ‘제로 장르’라고 묘사하고 있다. “(라이트노벨은) 구매층의 유행에 대응하는 어떤 것으로, 혹은 읽는 쪽과 쓰는 쪽이 캐치볼을 하고 있는 과정으로 각 장르 픽션을 자유롭게 구사하고 있다.” “라이트노벨은 그 자체가 특정 장르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기 때문에 어떤 장르에도 우위를 두지 않고 모든 장르를 등가로 취급하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취급하는 것이 가능하다.”
아마도 지금 많은 독자들이 ‘라이트노벨적’이라는 말로 지칭하며 때로는 저항감도 표현하는 대상은, 이야기의 내용도 레이블의 특성도 아닌 이러한 상상력의 환경 그 자체가 아닐까.(35-36)



 라이트노벨의 본질, 만화 애니메이션적 리얼리즘

 우리는 여기까지 라이트노벨의 본질이 메타 이야기적이고 캐릭터적인 상상력의 환경에 있다는 것, 그리고 그 환경이 실현되어 이야기가 성립하지 않는 혹은 너무나 쉽게 성립해버리는 상황이 확실히 포스트모던의 문학적 반영으로 다루어진다는 것에 대해 논해왔다.(41)
 (……)
 오쓰카 에이지는 순수문학에서 미스터리와 SF까지 포함하여 라이트노벨 이외의 소설 전부를 현실을 ‘사생’하는 것으로 파악했다. 미스터리나 SF는 비현실적인 사건을 그리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현실의 사생을 전제로 한 다음, 거기에 위화감을 끌고 들어가는 수법이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에 비해 라이트노벨은 “애니메이션이나 코믹이라고 하는 세계 속에 존재하는 허구를 ‘사생寫生’한다”는 점에 특징이 있다. 현실의 사생과 허구의 사생이라는 이 대치를 그는 ‘자연주의적 리얼리즘’과 ‘만화 애니메이션적 리얼리즘’이라는 용어로 표현하고 있다.(42)



 

 따라서 우리는 라이트노벨의 기법(데이터베이스의 참조)을 사용하여 SF, 미스터리, 판타지, 포르노를 쓸 수 있게 된 것처럼, 마찬가지로 자연주의의 기법(현실의 사생)을 사용하여 SF, 미스터리, 판타지, 포르노를 자유롭게 쓸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기보다 바로 그 때문에 근대문학은 지금까지 그 파생형으로써 다양한 장르 소설을 탄생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아마도 순수문학은 원래 자연주의가 가진 이러한 메타 장르성을 가리키는 개념이었을 것이다. 『SF 매거진』에는 SF만이 실리고 『소설추리』에는 미스터리만 게재되지만, ‘문학성이 높다’고 편집자가 판단하기만 하면 『군조』나 『문학계』와 같은 문예지에는 SF도 미스터리도 자유롭게 게재할 수 있다. 적어도 그것이 문예지에 모인 편집자나 평론가의 의식이다. 물론 실제로 현재의 문예지에서는 그러한 자유로움은 거의 사라졌다. 그러나 그 가능성을 생각해보는 것은 나쁘지 않다.(49)



 * 위의 인용에서 한국으로 배경을 바꿔보자면 『미래경』에는 SF만이 실리고, 『계간 미스터리』에는 미스터리만 게재되지만, ‘문학성이 높다’고 편집자가 판단하기만 하면 듀나의 SF 단편이 문학과지성사의 문예지 계간 『문학과 사회』에 게재되고, 배명훈과 김이환의 SF단편이 계간 『문학동네』에 게재되며 이후 ‘제1회 젊은작가상 수상집’과 ‘제2회 젊은작가상 수상집’에 실리는 경우가 연상된다.

 이 도식이 보여주는 상황을 ‘상상력의 이환경화’라고 명명해보자. 이와 같은 관점의 도입은 많은 시사점을 제공해준다. 예를 들어 이 도식은 SF나 미스터리 등 각각의 장르 가운데 자연주의적 리얼리즘과 만화 애니메이션적 리얼리즘의 두 방향성이 분리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51)



 * 이 뒤에 저자는 타니가와 나가루의 소설과 하야카와 서점의 2003년에 만든 ‘J컬렉션’ 시리즈에 수록되어 있는 작품군과 전혀 다른 인상을 준다고 말한다. 이는 J컬렉션 시리즈 작품들이 자연주의적 리얼리즘에 기반을 둔 SF이며 타니가와 나가루 등의 라이트노벨은 만화 애니메이션적 리얼리즘에 기반을 둔 SF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이는 장르 소설을 다루는 커뮤니티에서 주기적으로 나오는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은 SF인가요?’ 라는 질문에 대한 논의에 답으로 볼 수 있다. 즉, [스즈미야 하루히] 시리즈가 SF적인 소재를 사용하는 소설이면서도 아이작 아시모프나 아서 클라크, 테드 창과 같은 작가들의 SF와 같이 묶을 수 없는 이질적인 정서를 자연주의적 리얼리즘과 만화 애니메이션적 리얼리즘의 문학의 두 환경으로 방향성을 나누면서 구분점을 제시하는 것이다.

 현실과 순수문학?

 저자는 캐릭터 소설에 초점을 맞추지만 새삼스럽게 말할 것도 없이 2000년대 중반이 지난 지금도 순수문학은 사회적으로 캐릭터 소설보다 훨씬 큰 존재감을 유지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는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국내에서도 라이트노벨은 안정적인 판매망을 구축했고, 몇몇 라이트노벨은 애니메이션 방영에 힘입어 높은 판매량을 보이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도 서브컬처에 속한 라이트노벨과 달리 주류문학은 바로 문단으로 지칭되는 몇몇 출판사에서 출간되는 문단문학이다. 저자는 이것이 근거 없는 권위화에 의한 것이라고는 말할 수 없으며 주류문학의 독자는 다양한 계층과 연령으로 분산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라이트노벨이 주로 십대 후반의 독자층만이 읽는 것에 반해, 일반 소설은 1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한 계층과 연령의 독자가 있기 때문에 영향력이 다를 수밖에 없다는 소리일 것이다. 그리고 이 다양성은 순수문학이 현실을 그리고 있다는 기대로 지탱되고 있다고 한다.

 미스터리와 공포물은 오락을 목적으로 읽지만, 순수문학은 오락이 아니라 사회를 알기 위해(가령 니트족의 현실, 재일한국인의 현실, 독일 여성의 현실을 알기 위해) 교양으로 읽는다는 전제가 일본에서는 반년 주기로 강화되고 있다. 물론 순수문학에서 다른 가능성을 찾는 독자도 있을 것이고 비평에 친숙한 독자라면 오히려 이와 같은 문학관에 강한 저항을 느낄 것이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의 화제작과 그 작품에 대한 논의를 볼 때 순수문학에 대한 기대와 중심이 그와 같은 소박한 리얼리즘이라는 것은 부정하기 어렵다. 아마 오쓰카 에이지가 순수문학의 창작기법을 ‘자연주의적 리얼리즘’이라고 명명한 것도(문학 연구의 입장에서 볼때는 약간 난폭한 용어일지도 모르겠지만) 이와 같은 상황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58-59)



 * 일본에서 아쿠타가와 수상작을 비롯한 순수문학들이 사회를 읽기 위한 기능으로 독자들에게 읽힌다면 국내에서도 이와 비슷한 흐름은 찾아볼 수 있다. 가령 폭주족의 현실을 그린 김영하의 [너의 목소리가 들려]나 장애인․아동 성범죄 문제를 다룬 공지영의 [도가니], 현대 사회의 어머니라는 존재와 가족을 다룬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 등 국내 소설들 역시 오락이 아니라 사회를 읽기 위한 교양의 성격을 어느 정도 띄고 있다. 물론 다른 가능성을 찾는 독자도 있을 것이라는 문장처럼, 천명관의 [고래]나 김언수의 [캐비닛], 박민규의 소설들 등 반사실주의, 환상성, 장르적 요소가 결합된 소설들도 얼마든지 있고, 한유주, 김태용 작가처럼 소설에서 서사성을 해체하거나 흩트리면서 언어 실험에 집중하는 문학적인 실험 소설도 있다. 한편으로는 ‘소박한 리얼리즘’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소설들도 존재한다. 이렇듯 [게임적 리얼리즘의 탄생]을 읽으면서 구절마다 일본만이 아니라 국내에도 약간은 대입시키면서 읽을 부분들이 있어서 흥미로웠다. 물론 일대일로 대입할 수는 없는 문제이지만, 한국의 실정 역시 다각도로 생각해보게 만든다는 점에서는 흥미로운 책이 아닐 수 없었다.

 새로운 현실에 나타난 새로운 문학이 독해법은?

 저자는 만화 애니메이션적 리얼리즘이 확대되는 한편, 문학과 현실의 연결을 1980년대보다도 훨씬 강하게 믿는 시대에 살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문학이 현실을 묘사하기를 기대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은 라이트노벨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새로운 현실’을 건드리는 ‘새로운 문학’으로 라이트노벨을 독해하는 비평을 기대하고 있다고 말한다. 예로 나카마타 아키오 같은 평론가를 들고 있다. 나카마타 아키오는 라이트노벨에서 ‘굳세디굳센 언어’의 가능성을 보고 있으며, 라이트노벨을 서브컬처보다는 오히려 팝 문학의 흐름 속에 위치시킨다고 한다. 이로써 라이트노벨이 캐릭터 소설로서의 가능성은 없고 오히려 새로운 현실은 그리는 새로운 자연주의 문학으로서의 가능성이 기대된다고 말한다.
 저자는 이 가능성에 맞춘 독해를 ‘라이트노벨의 자연주의적 독해’라고 부르자고 말한다. 현대 사회에 젊은 세대에는 만화나 애니메이션이 고유명이 깊숙이 침입해 있으며 ‘만화적’이고 ‘애니메이션적’이라고 표현하고 싶은 사건도 빈번하게 일어나기 때문에 이 ‘새로운 현실’을 묘사하려면 만화적이고 애니메이션적인 표현이 도입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라이트노벨을 단순히 엔터테인먼트로 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현실을 들여다보는 창으로의 역할을 한다고 지적하는 것이다. 이런 독해에 적당한 작품들도 출현하고 있으며 저자가 주목하는 작가로는 사토 유야, 다키모토 다쓰히코, 사쿠라바 가즈키의 일부 작품이 이와 같은 특징을 보인다고 한다. 그러나 저자가 이 책에서 사유하려는 라이트노벨의 ‘문학적 가능성’은 이런 자연주의적 가능성과는 또 다른 것이라고 한다. 라이트노벨의 대두가 새로운 현실이나 새로운 문학의 출현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문학이 현실을 묘사한다는 전제 그 자체에 감추어져 있는 ‘굴절’을 폭로하는 것이라는 점을 명확하게 하고 싶다고 한다. 그리고 이 굴절의 존재에서 역으로 캐릭터 소설의 문학적 가능성을 보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게임적 리얼리즘

 저자는 앞에서 기존 연구사 검토를 통해 라이트노벨의 기원, 정의부터 시작해서 라이트노벨의 문학성에 대해서 자연주의적 리얼리즘과 만화 애니메이션적 리얼리즘의 개념으로 짚어본다. 라이트노벨이 정체성을 밝히고, 그 특징을 규정하면서 논의를 축소하고 정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여기에 머물지 않고 오쓰카 에이지가 검토하지 못한 ‘게임적 리얼리즘’이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가령 오쓰카 에이지가 만화 애니메이션적 리얼리즘의 과제가 ‘캐릭터에게 피가 흐르게 하는 것의 의미를 소설이 어떻게 회복시킬 수 있을까’에 있다고 기술했다면, 게임적 리얼리즘의 과제는 ‘캐릭터에게 피가 흐르게 하는 것을 통해 플레이어에게 어떻게 피를 흐르게 할 것인가’에 있다고 말할 수도 있다고 한다. 이는 ‘미소녀 게임’이든 ‘라이트노벨’이든 게임과 소설에서 텍스트 안에서 분석을 하는 것이 아니라 아즈마 히로키가 명명한 ‘환경 분석’을 통해 텍스트 너머 플레이어 혹은 독자와의 영향 관계까지 독해를 하는 것이다. 이것은 몇몇 라이트노벨과 미소녀 게임에서 단순히 독해할 수가 없고 메타적인 구조를 취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분석하거나 읽어내기 위해서는 새로운 독해법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저 단순히 즐겁게 게임을 하거나 독서를 하고 만다면 이런 점에 대해서 깊이 생각할 여지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특별히 몇몇 게임이나 소설에서 독특한 느낌을 받았고, 그 감정이 정체나 이 게임이나 소설들에서 공통적인 구조를 읽어내고 싶다면 바로 이 새로운 게임적 리얼리즘을 인식하지 않을 수 없다. 기존에 메타픽션은 포스트모더니즘 문학에서 많이 쓰였고, 연구도 상당 수 되었으나, 여기서 말하는 메타적인 요소는 문학에서 나온 메타픽션과는 다르다. 그야 말로 소설에 대한 소설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독자나 플레이어의 존재를 작품 안에서도 인지하고, 계속 신호를 보내기 때문이다. 이것은 새로운 리얼리즘이고, 기존 독해 방식으로는 발견할 수 없는 것이다. 물론 이런 게임적 리얼리즘은 미소녀 게임에서든 라이트노벨에서든 대세를 이루는 것은 아니다. 아즈마 히로키가 분석한 [올 유 니드 이즈 킬] 같은 경우는 완성도가 있고, 그 구조의 특성상 비평가가 분석하기에 최적이 작품이기 때문에 선정되었으나, 역시 이러한 작품군이 많은 것은 아니다.(구성이 특이하거나 차별화된 요소가 많은 작품일수록 문학 연구가 집중된다.) 그러나 이런 소수의 작품들이 왜 다른 작품들과 차별화되는지, 어떻게 읽어야하는지 이 책은 짚어보고 있는 것이다. 이 책에서 분석하거나 언급되는 책이나 게임들은 대부분 매니아들에게 작품성이 좋다고 인정받았으며 독특한 구조를 취하고 있는 작품들뿐이다. 그만큼 비평할 가치가 있고, 분석하기 좋은 작품이기 때문에 독해가 시도되는 것이다. 이것은 누군가에게는 무의미한 시도일 수 있으나, 작품을 읽고 난 뒤 비평을 원하는 독자들에게는 자신이 읽은 방식이 아닌 새로운 방식을 제안하는 이러한 시도들이 매력적으로 다가올 수 있을 것이다. 비평가는 해답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작가나 독자가 알 수 없었던 제 3의 선택지를 제시하는 존재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아즈마 히로키는 새로운 선택지를 제시했고, 이를 받아들이거나 수정하거나, 다른 길을 찾는 것은 이제 독자의 몫인 것이다. 작품을 가지고 다양한 분석 도구를 갖게 된다는 것은 작품을 일회성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곱씹어 보는 독자들에게는 흥미로운 장난감이 생긴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마치며

 라이트노벨과 미소녀 게임에 대해서 체계적으로 접근한 책이며, 논리정연하고 흥미로운 구절이 많은 책이다. 한편, 모든 문학 연구가 그렇듯이 비약이나 근거가 약한 부분도 엄연히 존재하며 동의할 수 없는 주장도 많이 있다. 그럼에도 이런 연구들이 가치를 가지는 것은 이런 방향을 제시함으로써 반박하거나 새로운 길을 제시할 여지를 만들어준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렇게 논의를 제시하는 글을 시발점으로 시간이 지날수록 연구가 쌓여서 다양한 문학사와 문학 비평 방식이 생겨나는 것이다. 가령, 저자는 1980년대의 무라카미 하루키와 2000년대의 마이조 오타로를 잇는 연속성을 도출하여 ‘완전히 새로운 일본 문학사’를 구체적으로 쓰기 시작할 수 있으리라고 말하지만, 이를 더 전부터 잡거나 무라카미 하루키를 제외하는 다른 축을 통해 문학사를 성립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가 말하는 전통적인 문학평론이 지금까지 전혀 눈길을 주지 않았던 우화적이고 환상적이고 메타 이야기적인 실존 문학의 계보가 쓰일 수도 있겠으나, 그 계보는 결국 상당히 매니악한 계보에 머물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은 결국 대중친화적이지 않으며, 대세를 이루고 있는 라이트노벨 분석을 논하고 있는 책은 아니다. 게임적 리얼리즘에 해당하는 작품군은 완성도와 별개로 어디까지나 소수이고, 이러한 환경 분석이라는 도구를 사용할 작품이 쏟아지는 것도 아니다. 비평이 대중과 괴리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상당히 많은 이론들이 특정한 작품군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으며 이런 소수의 작품들이 가치를 분석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것을 생각할 때, 이 책은 게임적 리얼리즘이라는 개념을 제시하며 특정 작품군을 하나로 묶어서 구조적으로 설명하는데 성공했다. 이런 논의를 바탕으로 라이트노벨이나 미소녀 게임의 비평을 시도하고 싶은 독자나, 새로운 방향으로 연구를 하고 싶은 평론가들에게는 이 책은 지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방향으로 가거나 혹은 완전히 반대 방향으로 갈 수도 있다. 책에서 언급한 대로 일반적인 자연주의적 리얼리즘으로 라이트노벨의 문학성을 타진해볼 수도 있을 것이고, 게임적 리얼리즘이라는 개념에 맞춰 작품을 볼 수도 있을 것이고, 다른 개념을 만들면서 작품을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일본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라이트노벨 붐이 일면서 단순한 작품 소개가 아니라 전문적인 비평을 읽고 싶은 독자층도 소수나마 나타나고 있다. 늦게나마 소개된 이 책이 황무지에 내딛은 첫 발자국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 방향이 맞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렇게 한 걸음만 내딛으면 발자국을 남길 수 있다는 것을 제시하는 책이다. 언젠가는 황무지에 무수한 발자국이 찍혀 수십 갈래의 길이 생길 날이 올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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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주 미야베 월드 2막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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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스피어에서 미야베 미유키의 시대물 [안주](미야베 미유키, 북스피어, 2012년 8월)가 출간되었다. 미야베 미유키는 [모방범](미야베 미유키, 문학동네, 2012년 3월), [화차](미야베 미유키, 문학동네, 2012년 2월), [외딴집](미야베 미유키, 북스피어, 2007년 10월)으로 유명한 사회파 추리소설 작가로 국내에도 많은 팬층을 가지고 있으며 올해 초 영화 [화차]가 개봉함에 따라 인지도가 더 상승한 작가이다. 때마침 북스피어에서는 야심차게 마케팅 비용만을 충당하는 독특한 독자 펀드를 기획하여 열흘 만에 오천 만원이라는 비용을 모았다. 따라서 미야베 미유키의 신간 [안주]가 더욱 주목되는 것은 당연하다.
 [안주]는 올해 3월에 출간되었던 [흑백](미야베 미유키,북스피어, 2012년 3월)의 후속작이다. 즉, 부제로 미야시먀 변조괴담 두 번째 이야기라고 적혀 있다. 그렇지만 [흑백]을 굳이 먼저 읽지 않아도 된다. 소설 자체가 하나의 장편이 아니라 여러 에피소드가 이어져 있는 옴니버스 형식이기 때문이다. [안주]에서는 [흑백]에서 벌어진 사건을 초반에 간략하게 설명해주며, 이야기가 진행되면서도 그때그때 부족한 설명을 보충해주기 때문에 읽는데 무리가 없다.
 이야기는 어떠한가. 이 소설은 괴담을 다루고 있다. 으스스하고 무서운 괴담 이야기가 실려 있지는 않다. 그런데 이것이 단점이라기보다는 장점이다. 개성있고 독특한 괴담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에도 간다에 있는 미야시마라는 장신구와 주머니를 파는 가게가 배경이다. 요즘으로 치자면 악세서리 숍이라고 할까. 이 미야시마 가게에는 주인이 특이한 일을 벌이는데 바로 괴담을 모으는 "괴담 대회"이다. 미시마야 한 켠에는 흑백의 방이라고 불리는 주인이 손님과 바둑을 두는 방이 있는데, 그곳에서 아름다운 조카딸 열일곱 소녀 오치카가 괴담을 들어주는 일을 한다. 이것은 마치 한 예능 프로그램인 힐링캠프를 떠올리게 한다. 누군가 자기가 겪은 힘든 일을 얘기하고 치유를 받는다. 에도 시대의 힐링캠프 같은 흑백의 방에서 오치카와 독자는 함께 기묘한 이야기를 듣는다. 이야기를 하는 자는 누군가에게 가슴 속 깊은 괴이한 이야기를 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위안을 얻기도 한다. 그리고 동시에 오치카와 독자 역시 이야기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반추하며 위안을 얻는다. 그럴 수 있는 것은 괴담이 단순히 무서운 상황 이야기에 급급한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마음, 혹은 사물과 사람, 요괴와 사람 사이의 마음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 때문이다. 결국 살아가는 이야기라는 것. 거기에서 우리는 많은 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다. 마음이라는 것은 누구에게나 같은 울림을 전할 수 있다. 고독한 존재에 대해서 연민을 느끼기도 하고, 시기와 질투로 나타난 현상에 대해서 서늘한 감정을 느끼기도 한다. 미야베 미유키의 뛰어난 필력으로 현장감 있게 묘사된 에도를 배경으로 이야기는 실제 있었던 것처럼 독자에게 다가간다. 아무리 기이한 이야기도 설득력있게 독자를 사로잡는 것이다. 대단한 필력이 아닐 수 없다. 그만큼 공들여 쓴 작품이기도 하거니와, 이야기를 듣고 이해한다는 행위 자체가 주는 공감이 소설을 더욱 매력적으로 만드는 것이리라. 이야기가 치료가 될 수 있고 독서가 치료가 될 수 있듯이.
 첫 번째 실려 있는 {서序 별난 괴담 대회}는 앞선 [흑백]을 안 읽은 독자를 배려한다고 할 수 있다. 짧은 분량의 글인데, [안주]부터 읽는 독자들을 배려하여 간단히 앞의 상황을 소개한다.
 두 번째 {달아나는 물}부터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한 소년 주위에서 물이 달아나는 현상이 일어난다. 화분의 물은 순식간에 마를 정도이고, 우물까지 마르게 한다. 기이하면서도 곤란한 일이다. 어째서일까. 흑백의 방에서 이야기가 펼쳐지기 전까지 소년은 골치거리로 혼만 날뿐, 누구도 소년에게 자세한 사정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 오치카는 소년과 소통하면서 모든 이야기를 듣는다. 인간들에게 도움을 주었다가 배척받는 귀여운 소녀 모습의 산신 이야기를. 이야기 자체도, 등장인물들도, 해결책도 귀엽다.
 세 번째 {덤불 속에서 바늘 천 개}는 앞선 이야기와 다르게 좀 섬뜩하다. 시어머니의 원망에 찬 저주가 등장하고, 죽은 이를 대신해서 만든 인형과 그 인형에 박히는 바늘까지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다. 오치카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위화감을 느끼고 이는 독자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이후에 해석되는 이야기는 사람의 마음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보게 만든다. [흑백]부터 [안주]까지 작가가 줄기차게 말하는 것은 괴담이 아니라 인간의 마음이다. 이 이야기는 그 점을 다시 상기시킨다.(소설 [화차]에서 잠깐의 전화통화 장면에서도 인간의 심리를 잘 짚었던 그 솜씨를 떠올리게 한다.)
 네 번째 {안주}는 표제작이면서 작품을 다 읽고 나서도 가장 인상에 깊이 남고 재미있는 에피소드였다. 왜 이 이야기가 표제작인지 알 수 있다고 할까. {달아나는 물}이 따스하고 귀여운 느낌을 주긴 했지만, 소소하고 평이한 에피소드라는 느낌도 있어서 아쉬웠고, {덤불 속에서 바늘 천 개}도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라는 느낌을 주지는 못했다면, {안주}는 미야베 미유키의 괴담은 이런 것이다, 라고 말해주는 듯하다. 일단 따스하면서도 처연하다. 괴담 역시 평범한 요괴나 귀신을 등장시키는 게 아니라서 새롭다. 저택과 연간되었다는 점 때문에 [흑백]과 대비된 면이 있어서 흥미롭다. [흑백]은 사람을 잡아먹거나 죽고 죽이는 끔찍한 이야기라면 [안주]는 지브리 스튜디오의 애니메이션이 떠오르는 아기자기한 요괴와 괴담으로 채워져 있다.(북트레일러나 다른 리뷰에도 언급되지만, 미야자키 하야오의 세계 속 정령들을 연상케 하는 생물이나 산신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애니메이션을 봤다면 상상이 그쪽을 쏠린다.) 그렇기 때문에 [흑백]과 [안주]는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보인다.
 '수국 저택'이라고 불리는 흉가가 있다. 한 부부가 그곳에 들어가 살게 되고, 곧 기묘한 존재의 인기척을 느낀다. 그건 사람들이 말한 저택에서 죽은 부인의 귀신일까. 아니면 짐승의 원령일까. 인간을 해하는 요괴일까. 너구리일까. 앞서 실린 에피소드에 비해 추리를 하는 재미가 있다. 게다가 관찰을 하고, 실험을 하면서 가설을 세우고 이것이 맞아떨어지는 전개에서는 재미를 느꼈다. 마침내 밝혀지는 진실은 예정된 결말과 절묘하게 이어지면서 독자의 가슴을 저릿하게 한다. 그야말로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 매력적인 미야베 미유키식 괴담이다. 고독한 생물과 타인과 소통하지 않은 인간과의 교류. 거기서 느껴지는 정. 만남으로 변화하는 마음. 그것이 겉으로 눈에 띄지 않아도 마음과 마음의 부딪힘으로 이어져가는 우리의 삶의 모습일 것이다. 그리고 마음은 때론 이야기의 형태로 이어지기도 한다.
 {으르렁거리는 부처}는 고립된 산간 마을에서 벌어지는 참혹한 비극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고립된 산간 마을에는 외부 사람들이 용납할 수 없는, 아니 마을 안의 사람들도 용납해서는 안 되는 관습이 존재한다. 마침내 관습이 비극을 일으키고, 이야기는 파국을 맞는다.
 마지막은 {별난 괴담 대회, 그 후}가 장식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하나의 사건이 벌어지고 이야기는 요란스럽게 끝을 맺는다. 하지만 백 가지 괴담을 들으려고 시작한 괴담 대회인 만큼 고작 몇 개 밖에 듣지 않은 괴담 대회는 계속 이어질 것이다. 작가가 필생의 사업으로 생각한다는 말에 기대를 걸어보면 좋을까. 괴담을 듣는 소녀 오치카가 나이를 먹어도, 흑백의 방에서 그대로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주리란 믿음이 앞으로 나올 책들도 기대하게 만든다. 사람들은 어째서 서로에게 상처를 입힐까.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중요한 것은 그 사실을 인정하고 극복하고 나아가는 것. 그 방법 중 하나는 이야기를 하고 듣고 이해하는 것이다. 이야기하지 않으면 전달되지 않는 사실들이 있다. 또한 상처가 아물 수 없는 법이다.
 [흑백]은 잘 구성된 연작소설답게 에피소드의 연결이 잘 되어 있고 마지막에 하나로 합치는 솜씨도 뛰어났다. 에피소드가 나뉘어져 있지만, 한 편의 장편소설다운 구성을 갖추고 있다. 그에 반해 [안주]는 이야기들이 독립적인 느낌이다. 어떻게 보면 [흑백]이라는 장편소설 다음에 나온 외전 형식 또는 후일담 같은 느낌도 있다. 그만큼 마음 편하게 따스한 괴담이라는 특이한 이야기들을 감상할 수 있다. [흑백]에서 거의 언급되지 않은 '신타' 같은 소년이 부각되고, 주인공인 '오치카'는 [흑백]보다 훨씬 성장해서 강건해지고 밖에도 나가면서 변화된 모습을 선보인다. 새로운 등장인물도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인물들에게 전부 애정이 생긴다. 앞으로도 이 인물들이 얽힌 다양한 괴담을 읽어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혹은 흑과 백으로 나눌 수 없는 수 백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싶은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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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저문 이후 밀리언셀러 클럽 126
스티븐 킹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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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저문 이후(Just After Sunset, 2008) - 현실의 공포가 다가올 때

 스티븐 킹의 신작 단편집이 황금가지에서 출간되었다. 제목은 [해가 저문 이후]. 원서는 2008년도에 출간되었으며, 13편의 단편이 실려있다. 스티븐 킹의 신작 단편을 읽는다는 것은 언제나 흥미롭다. 완숙한 필력과 다채로운 발상, 자유로운 전개가 가득한 단편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 쓰인 단편들 위주로 수록된 [해가 저문 이후]는 역시 거장의 필력을 마음껏 느낄 수 있는 단편들로 채워져 있다. 물론 단편집인 만큼 취향에 맞는 작품이 있는 한편, 소품이나, 지루한 작품이 있을 수도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흡족한 독서였다. 사실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스티븐 킹이라는 이름만으로도 우리는 책을 사고 책장을 넘기게 될 텐데.


※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주의해 주세요.



 윌라
 첫 번째로 실린 단편 [윌라]는 스티븐 킹에게는 의미가 있는 작품이다. 스티븐 킹이 다시 활력을 찾고 옛날 방식으로 글을 쓴 단편이라고 한다. 즉, 다시 단편을 활기차게 쓰이게 해 준 작품이다. 이 책에 실린 단편 대부분은 [윌라] 이후에 쓰여졌다고 한다. 과연 작가에게 사랑스러운 단편이 아닐 수 없다. 독자 입장에서는 마냥 즐거운 작품은 아니었다. 죽었는지 몰랐던 유령들이 정체성을 찾는 이야기라니. 아이디어는 단순했고, 새로운 발상이나 전개는 없었다. 도입부는 산만했고, 본격적으로 이야기가 전개된 후에는 좀 식상한 느낌이 들었다. 놀라운 서사구조와 반전 같은 것을 기대한다면, 닳고 닳은 ‘유령’을 다룬 이 소설이 실망스러울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기대감을 버리고, 가볍게 읽을 소품으로는 충분한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 큰 서사는 없지만 단편에 어울리는 거침없는 전개와 속도감이 있고, 이 소재를 암울하게 다루는 것이 아니라 커플을 등장시켜 긍정적으로 묘사한다. 좌절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이미 죽은 상태라는 현실을 인정하고 사후의 삶을 이어나가는 극복의 의지가 흥미롭다. 개인적인 취향 탓으로 이런 소재를 그리 좋아하지는 않는 편이나 스티븐 킹이 그리는 이 단편은 알 수 없는 활기가 흐르고 있고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낭만적으로 그려낸다.

 진저브래드 걸
 한 여자가 우연찮게 살인마에게 쫓기게 되는 이야기. 이 단편을 한 줄로 간추리자면 이렇게 간단할 것이다. 그러나 이야기는 그렇게 단순하지는 않다. 우리 삶이 그렇게 요약될 수 없듯이 말이다. 단편에서 이런 이야기를 쓰기란 쉽지 않다. 단순한 추격적에 긴장감을 불어넣기 위해서는 주인공에게 독자가 감정을 이입할 여지를 주어야 하며, 배경에 대한 현실성을 불러일으켜야 한다. 이 소설은 스티븐 킹의 능력을 여실히 느낄 수 있는 단편으로, 결코 긴 분량이 아님에도 이 모든 것을 성공했다. 따라서 독자가 몰입할 수 있고, 손에 땀을 쥐는 긴장감을 느끼게 된다. 주인공인 ‘에밀리’는 아이가 죽은 후 달리기를 시작한다. 소설의 첫 문장은 이렇다. “아이가 죽은 후 에밀리는 달리기를 시작했다.”(55) 어떤 죽음을 극복하는 방법으로 운동을 하는 경우는 주위에도 많이 있다. 또한, 소설 [열일곱, 364일] 같은 작품에서도 누군가의 죽음 이후로 달리기에 매진하는 소녀와 소년이 나온다. 영화 [포레스트 검프](Forest Gump, 1994)는 어떤가. 달리기는 우리가 피하고 싶은 것에서 계속 도망치는 이미지를 주면서도 마침내는 모든 것을 초월하는 듯한 인상을 주기도 한다. 달린다는 행위가 갖고 있는 의미와 사실성이 이 소설에서는 효과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결국 달리기란 우리의 삶 그 자체다. 그리고 가끔 멈춰서서 싸워야 할 때도 있다. 스티븐 킹은 이런 인생을 소설 속에 압축해서 그려냈다. 어떤 은유를 자연스럽게 넣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이 소설은 아이를 잃은 슬픔을 간직한 여자가 달리기를 하면서 도피 혹은 극복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여기에 살인마를 마주치게 하면서 달리는 것만이 아니라 싸워야 하는 상황을 제시한다. 이건 여자의 내면을 그려내는 것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우리의 인생을 은유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진저브래드 걸]은 이를 현장감 있는 소설로 탁월하게 형상화해낸 작품이다.
 스티븐 킹은 책 뒤편에 ‘선셋노트’라고 각 작품마다 어떻게 발상을 했고 썼는지 일종의 창작노트를 덧붙여놓았다. 이 작품의 경우 플로리다, 멕시코만의 사주 군도 근처에 있는 그곳의 별장들을 보고 떠올리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텅 빈 해변에서 한 여자가 악당에게 쫓기는 이야기를. 그리고 아무리 빨리 달린다 해도 언젠가는 멈춰 서서 싸워야 하는 이야기를 썼다는 것이다. 그렇다. 우리는 언제까지고 쫓기는 것들에서 도망칠 수는 없다. 거리를 벌릴 수는 있겠지만, 결국 마주쳐야 할 것들이 너무나도 많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우리는 에밀리가 계속 달려서 도망치기를 응원하지만, 진짜 그렇게 된다면 소설은 허무해지고 말 것이다.
 작가는 세세한 묘사에 천착하는 이야기를 선호하는데 이 단편은 그런 묘사들로 충만하다고 말한다. 사실이다. 사실 지나치게 길게 묘사된 장면들이 있는 것이 아닌가 싶었는데, 작품 전체의 완성도를 생각할 때 이런 묘사는 필수가 아니었나 싶다. 생생한 현장감을 주는 묘사가 많을수록 소설은 박진감이 넘친다. 작가는 1년 대부분을 지낸 플로리다의 경험을 갖고 썼기 때문에 생동감 있는 묘사가 가능했고, 이는 독자들이 소설 속의 현실을 진짜처럼 느끼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해변 풍경의 묘사나 텅 빈 별장의 묘사, 멕시코인의 등장 같은 것은 전부 소설의 핍진성을 높인다. 멕시코인 같이 사실성을 높이기 위한 인물 배치를 가지고 인종차별의 해석 우려 때문에 다른 인물을 넣는다면 상세한 배경 설정이 더 필요할 것이며 소설의 구조를 무너뜨릴 것이다. 게다가 도구로 등장한 인물이 다른 방식으로 움직이는 것도 마찬가지다. 소설의 전체 구조와 핍진성 등을 생각하지 않고 작품 해석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며 글을 쓴다면 소설이 엉망이 되었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 소설은 그런 우를 범하지 않고 정해진 분량 안에서 작가의 통제 하에 높은 완성도를 가진 작품이다.

 하비의 꿈
 작가들은 때로는 꿈에서 영감을 얻는다. 스티븐 킹은 이 작품이 꿈을 적은 것에 불과하다고 말하고 있다. 그만큼 이 작품은 단편 소설의 구조적 완성도를 띄고 있는 것은 아니며, 가볍게 읽을 엽편처럼 느껴진다. 분량도 그만큼 작고 이야기도 탄탄한 구조를 갖추고 있는 것이 아니며, 누군가에게 들려주는 기묘한 이야기 같은 느낌을 가진다. 가끔 우리는 꿈이 예지몽처럼 느껴지기는 하는데, 이 소설에서는 그 예지몽이 불길한 미래를 암시하고 있다면 어찌할 것인가를 그리고 있다. 예지몽 혹은 예언처럼 보이는 상황을 다양한 장치로 암시로써 보여주고 독자에게 서늘한 느낌을 주는데 성공한 소품이다.

 휴게소
 작가에게 필명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휴게소는 스티븐 킹이 직접 경험한 것을 토대로 쓴 단편이다. 어느날 휴게소에서 연인이 다투는 소리를 들었고, 스티븐 킹은 폭력 사태가 일어나면 리처드 바크만이라는 자신의 필명의 인격을 가지고 나서리라는 생각을 했다. 실제 폭력 사태가 일어나지는 않았지만, 그때 가진 생각을 바탕으로 소설을 써본 것이다.
 사실 소설가가 자신의 소설 속 인물에 이입해서 인격을 바꾸고 싸우는 이야기라면 좀 단순한 발상이고 식상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소설에서는 흥미롭게도 작가의 필명을 통해서 용기를 내고 여자를 구하기 위해 개입한다. 작가가 사용하는 필명에 다른 인격이 부여되어 있다는 발상은 생각해보지 못한 것이다.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한다. “이름, 이름, 이름에 담긴 게 도대체 뭐길래?”(156)라는 부분은 이 소설에서 본명과 필명에 대해서 다루고 있음을 암시한다. 주인공인 존 다이크스트라는 영어를 가르치는 교사였으나, 1994년 여름 강의를 포기하고 대신 서스펜스 소설을 쓰기로 결심한다. 경험에서 나온 소설인 만큼 스티븐 킹과 유사한 인물인데, 그런 그가 만든 필명이 ‘릭 하딘’이다. 그는 자기 소설 속 인물인 투견으을 소환해내서 끼어들려 했지만, 지금은 현실이고 투견은 상상의 산물이라는 것을 너무나 확실히 인지하고 있다. 그런 그가 깨달은 것은 투견은 소설 속 허구의 인물이지만 ‘릭 하딘’은 자신의 필명으로 현실에 존재하는 자신의 또 다른 이름이라는 사실이다. 그는 ‘릭 하딘’으로써 싸움에 나선다. 이런 생각은 흥미로울 수밖에 없는 소설 속 자신이 만든 인물은 허구라는 것을 인식하지만 자신의 필명은 또 다른 자아를 가진 현실에 존재하는 것으로 생각한다는 점이다. 실제로 ‘릭 하딘’이라는 작가는 그 현실에서 존재하며 책을 내고 인세를 벌고 유명세를 얻었으며 ‘존 다이크스트라’ 보다는 허영심도 있고 더 용기있고 강인한 인물인지도 모른다. 스스로 설정한 그 인물은 또 다른 해리성 자아일 수 있는데, 이는 소설 인물과 달리 현실에 실존한다고 인지한 것이다. 스티븐 킹은 현실에서 필명인 ‘리처드 바크만’이 더 과격하므로 그를 불러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하는데, 필명이 내면의 또 다른 자아로 다른 인격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 점은 실제로 필명을 가지고 다수의 작품을 발표한 스티븐 킹이기에 할 수 있었던 흥미로운 발상으로 보였다.

 헬스 자전거
 헬스 자전거는 여기에 실린 단편들 중에서 꽤나 환상적인 요소가 강한 작품이다. 주인공 리처드 시프키츠는 신체검사를 했고 높은 콜레스테롤 수치를 받는다. 브래디 박사는 왜 살을 빼야 하는지,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춰야 하는지 상세하게 설명한다. 나이가 들수록 신진대사 능력은 떨어질 것이고 지금처럼 먹으면 살이 점점 더 찔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신진대사 과정을 노동자로 비유한다. 주인공인 리처드는 집으로 돌아와서 브래디 박사의 설명에서 비유로 나온 신진대사 노동자를 그림으로 그린다. 그리고 헬스 자전거를 사서 그 그림 앞에서 자전거를 탄다. 신진대사를 노동자로 비유하고 주인공이 그림까지 그리는 장면까지 나오자 당연히 포탈사이트 ‘다음(Daum)’에서 인기리에 연재 중인 웹툰 [다이어터]를 떠올리게 된다. 웹툰 [다이어터]는 여자 주인공이 살을 빼는 과정을 그린 작품인데 중간중간 여자 주인공의 지방과 단백질이 의인화되어서 변화 과정을 우화처럼 보여주고 있다. 현실의 이야기와 내부의 이야기가 동일한 재미를 주고 있어서 작품 전체의 재미를 배가시킨다. 단편, [헬스 자전거]는 바로 이 신진대사가 의인화된 존재들이 현실과 이어지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주인공은 헬스 자전거를 타면서 자신이 직접 그린 그림 속으로 빠져들고 기이한 체험을 하게 되며, 나중에는 현실과 뒤섞이기까지 하는데 이런 상상력은 독특한 정서를 갖고 있다. 윤이형의 단편 [큰 늑대 파랑]에서도 주인공들이 마우스로 그린 ‘늑대’가 이후 좀비들이 출몰하자 현실에 나타나는 것과 비슷하다. 허구와 현실이 맞닿음으로써 재미있는 환상을 자아낸다. 여기에 실린 다른 단편들도 마찬가지지만 특히 [환상특급]이나 [기묘한 이야기]를 떠올리게 하는 단편이다.

 그들이 남긴 것들
 한국에서 ‘용산 참사’가 많은 작가들에게 영향을 끼친 것을 부정할 수 없듯이, 미국의 작가들에게는 ‘9․11’이 심각한 영향을 준 것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작품은 스티븐 킹이 자신이 받은 영향을 소재로 쓴 작품이다. 이야기는 ‘9․11’ 사태가 일어나고, 우연히 살아남은 사람의 죄책감과 상처를 다루고 있다. 작품 제목이 보여주듯이 ‘그들이 남긴 것들’은 주인공에게 죽은 사람들의 물건이 갑자기 나타나는 초현실적인 현상을 그린다. 환상적인 장치로 주인공이 어떤 상처를 갖고 있는지 작가는 다루고 있다. 단편에서는 ‘9․11’ 사태 전체를 조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장편을 써도 부족할 것이다. 단편에서 그릴 수 있는 것은 결국 한 인간의 내면의 풍경 정도일 것이다. 이 작품은 욕심을 부리지 않고 단편이라는 장르 안에서 ‘9․11’ 사태를 환상적인 도구로 다루고 있다. 평론가들은 작가에게 때로 과제를 부여하거나, 자신의 욕심을 투영하기도 하지만, 작가에게는 어떤 소재를 써야한다든가, 특정한 소재나 구조, 전개 방식, 이데올로기를 써야할 어떤 의무도 없다. 작가들은 단지 자신이 다루고 싶은 것을 다룰 수 있는 역량으로 장르에 맞게 쓸 뿐이다. 어떤 의무감이나 책임감으로 소설을 쓰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스티븐 킹은 사람들의 상처를 이해하려고 했고, 이 작품은 그런 시도의 일환이다. 소설을 인간을 그리는 것이고, 스티븐 킹은 큰 사건 자체가 아니라 한 사람을 그리고 있다. 인간이란 존재는 상처투성이다. 소설가는 그 상처를 치료할 수도 없고, 나을 방법을 제시할 수도 없다. 소설가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상처를 어루만지는 것이다.

 졸업식 오후
 작가가 [하비의 꿈]과 마찬가지로 소설이라기보다 꿈을 적은 구술에 가깝다고 말하는 짧은 글이다. 역시 단편이라기보다는 엽편처럼 느껴지는 글이다. 이미지가 주요한 소설인데, 한 젊은 여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데, 일상에 갑작스런 대재앙이 일어나는 것을 묘사했다. 평범한 여자 주인공의 심리가 계속 묘사되다가 갑작스런 멸망의 이미지의 대비되는 지점이 흥미롭다. 스티븐 킹은 항우울제 약을 끊으면서 나타나는 패닝샷에서 이 소설을 쓰게 되었다고 말한다. 작가는 쓰는 동안에는 무수히 많은 영화에서 사용된 이미지라는 것을 몰랐다고 하는데, 독자의 입장에서는 역시 영화에서 본 이미지들이 먼저 떠올라서 아쉬운 글이었다.

 N.
 [진저브래드 걸]과 [아주 비좁은 곳]과 비등한 이 소설집에서 긴 분량을 차지하는 글이다. 긴 분량 만큼 독특한 구성을 취하고 있다. 편지글과 진료 기록들로 구성되었는데, 이는 기이한 사건에 대한 위화감을 덜어주고 기록이라는 형식을 통해 독자가 있을 법한 사건처럼 느끼게 만든다. 이런 장치가 필요할 만큼 이 소설에서 다루고 있는 소재는 환상성이 강하다. 정신분석학의 강박증과 다른 우주의 존재라는 공포를 결합한 소설로 누구나 러브크래프트를 연상시킬 단편이다. 스티븐 킹이 쓴 러브크래프트의 작품의 팬픽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러브크래프트에게 보내는 오마쥬 같은 작품이기도 하다. 숫자 세기에 대한 강박증과 이 세상을 금방이라도 짓눌러버릴 것 같은 초자연적인 존재에 대한 공포를 세세한 서술로 풀어놓는다. 인간은 누구나 강박증을 가지고 있다. 그 강박증이 심화되어 정신을 붕괴시킨다. 그것이 세상의 멸망과 연결되어 있다면? 자칫 지루한 느낌이 들 수도 있는데, 러브크래프트를 연상시키는 작품이면서 다층적인 구성 방식이 진부한 감이 있기 때문에 전개나 결말의 예측이 쉽기 때문이다. 즉, 독자는 예견감이 드는 작품에는 큰 흥미를 느끼지 못 한다. 물론 그 결말에 이르는 과정에서 스티븐 킹의 필력이 자아내는 묘사와 분위기를 감상하는 맛이 있는 글이기도 하다.

 지옥에서 온 고양이
 이 작품집에 실린 글들 중 가장 오래 전에 쓰인 단편이다. 그만큼 다른 단편들과 달리 이질적인 느낌이 드는데, 새로운 요소가 적고 이야기가 단순한 면이 있다. 드로건이라는 노인은 한 고양이를 죽이기 위해서 주인공을 고용한다. 살인청부업자에게 고양이를 죽이라니? 황당한 시작이지만, 그 고양이가 예사롭지 않다는 것이 드로건의 말로 밝혀진다. 이미 세 명을 죽게 만든 고양이인 것이다. 이 작품은 어떤 공포감을 느끼게 만든 글이라기 보다는 일종의 위트를 섞은 느낌이다. 도입부부터 킬러에게 고양이 암살을 맡기는 상황부터가 블랙 코미디처럼 다가오고, 위험한 고양이라는 말을 들었음에도 안이하게 있다가 고양이와 목숨을 건 혈투를 벌이게 되는 킬러의 모습도 진지하게 읽히기보다는 황당한 느낌을 받는다. 제목에서 연상되는 느낌을 그대로 약간은 우스꽝스럽게 그러면서도 잔인하게 그려낸 소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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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행기 사고로 사랑하는 남편을 읽은 주인공. 그런데 죽은 남편에게 전화가 온다. 한없이 슬프고 낭만적인 이야기를 적절한 장난스런 대화와 따스한 감성으로 쓴 작품이다. 단순히 죽은 남편에게 사후에 전화가 왔다는 것만으로 작품을 이끌어갔다면 심심했겠지만, 남편은 사후세계의 시간은 현실과 다르게 흐르기 때문에 훗날 일어날 사건에 대한 암시를 한다. 이것은 이 전화가 여자의 환각이 아니며 실제로 일어났던 일이라는 증거도 된다. 주인공과 독자 모두 실제로 일어난 일이라는 사실에 안심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안도감은 다시 주인공에게 감정 이입을 하게 만들어 이야기가 더 와닿게 만든다. 진부할 수 있는 사후세계를 다루었지만 무난하게 잘 전개해나간 단편이었다.

 벙어리
 한 사내가 성당의 고해부스에서 죄를 고백하면서 이야기가 펼쳐진다. 독자는 고해부스에 있는 신부처럼 사내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사건에 대한 정보를 얻게 된다. 주인공은 길거리에서 벙어리를 태워준다. 그리고 벙어리에게 자기 아내의 불륜과 횡령을 토로한다. 그런데 벙어리는 휴게소에서 사라지고 아내를 죽인다. 주인공은 고해부스에게 이야기를 하듯, 벙어리에게 이야기를 한다는 이중적인 구성이 흥미로운 작품이다. 그렇다면 벙어리는 고해부스 속 신부이면서 또는 그 너머에 있는 신을 은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벙어리가 아니라 처음부터 고해부스에서 신부에게 이야기를 했다면, 신은 과연 그를 불쌍히 여겨서 아내를 죽게 만들었을까? 그게 옳은가? 인간의 윤리와 신의 윤리는 어떻게 다른가? 인간의 의도가 신의 의지를 좌우할 수 있을까?
 여기서는 벙어리가 마치 신의 사자처럼, 혹은 소원을 접수한 악마처럼 주인공이 갖고 있던 고민을 해결해준다. 말을 할 수 없는 벙어리는, 우리에게 직접 말을 건네지 않는 신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신이 실제로 인간사에 개입해서 기도나 고해에 응답하거나, 혹은 살해로 일을 해결할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벙어리는 마치 주인공이 바라는 것을 성취시켰다는 점에서 외부의 악마 혹은 내면의 악을 연상시킨다. 흔한 해석으로는 주인공의 내면의 악의 실체화 같다. 주인공은 신부의 질문처럼 벙어리이지만 귀머거리는 아니다, 라는 것을 무의식 중에 인지하고 있을 수도 있다. 신부는 “당신을 속였다고? 귀머거리가 아닌 줄 알면서도 얘기한 건 아니었소? 내가 보기엔 그게 핵심인 것 같은데?”(437)라고 말하는데 이는 이 소설의 핵심이기도 하다. 이 소설의 핵심은 단순히 우연히 태운 벙어리가 사실은 귀머거리는 아니라는 반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주인공은 그 사실을 알면서도 누군가 자신을 대신해 살인을 저질러 줬으면 하는 인간의 은밀한 욕망을 드러내는 데 있다. 주인공은 누군가 대신해 아내를 벌해주기를 원했다. 그것이 신이든 악마든, 지나가는 히치하이커든 상관 없었을 것이다. 자신이 직접 하기는 싫지만 남이 해주기를 바라는 마음. 그것도 살인이라는 중죄를 대신 해주기를 마음 속으로만 바라는 마음. 그렇기 때문에 주인공은 “아뇨, 신부님.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 친구를 내 차에 태우셨을 가능성도 있나요?”(439)라고 묻는다. 여기에 신부의 속내와 대답은 갈린다. “사제는 마음속으로 ‘그렇다’고 대답했으나 실제로 나온 대답은 달랐다.”(439)라는 진술은 사제가 내면에는 주인공의 은밀한 욕망에 공감함을 보여주나, 나약한 인간의 본성이 드러나는 인간적인 대답이 아니라 딱딱하고 인간이 따르기 힘들며 인간이 성취해야 하는 신학적인 대답을 내놓는다. 그러나 이 소설은 결국 인간이 신에게 바라는 것은 악에게 바라는 것과 다르지 않으며 흔히 신자들이 기도를 하면 자기가 원하는 대로 응답받고 신이 모든 것을 이루어주기를 바라며 우연성이 아닌 신의 의도대로(혹은 자기 의도대로) 세상이 움직이기를 바라는 마음에 대한 문제를 훑는 글이다. ‘벙어리’는 주인공의 은밀한 욕망이면서 동시에 주인공이 바라는 신의 형상이기도 하다. 자신에게 직접 말을 하지 않더라도, 자기 말(기도)을 귀담아 듣고 소원을 성취해주는 숨은 신. 그렇기 때문에 주인공은 ‘벙어리’가 앞으로도 영원히 잡히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다.

 아야나
 키스로 병을 치료하는 기적을 소재로 한 단편인데, 서사는 특별할 게 없고 회고조로 기적을 그리는 단편이다. 잔잔하고 따뜻한 글로 크게 인상에 남지는 않았다. 주인공의 아버지는 아야나라는 흑인 소녀의 키스를 받고 병이 치유된다. 그런데 주인공은 키스를 받지 않았는데도 이후에 마찬가지로 키스로 남을 치료하는 사람이 된다. 이 글은 스티븐 킹이 사고를 겪고 난 뒤에 왜 누구는 죽고, 누구는 사는지, 기적은 무엇인지에 대해서 생각하면서 쓰게 된 작품이라고 한다. 그만큼 이 작품은 기적을 해부하거나 해석하지 않는다. 우리 삶에서 기적이란 설명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기적이니까. 기적의 불가해한 면을 다루면서도 이 소설의 시선은 한없이 따뜻하다. 그건 우리 삶 자체가 기적이기 때문이고, 작가는 그러한 메시지를 던져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따뜻한 글이다. 그만큼 무난하고 달리 할 말이 없는 글이기도 하다.

 아주 비좁은 곳
 이 소설집에 실린 마지막 단편은 [아주 비좁은 곳]이라는 제목으로 간이 화장실에 갇혀 죽을 위기에 처한 남자를 다뤘다. 앞의 [아야나]가 따스하고 밝은 느낌의 글이라면, 이 작품은 아주 잔혹하고 어두운 글이다. 특히, 간이 화장실에 갇힌 남자를 다루기 때문에 똥통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는 세밀한 묘사가 돋보이는 글로 엄청나게 더러운 글이다. 이런 더러움을 견디지 못하는 독자라면 읽기 힘들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의 완성도는 상당히 높기 때문에 어차피 글자로 묘사된 더러움에 영향을 받지 않는 독자라면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구성이 탄탄하고 전개가 안정적인 단편이다. 더러워서 읽기 힘들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묘사도 디테일이 살아있고 집요하다. 아주 비좁은 간이 화장실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사투를 벌이는 장면은 [진저브래드 걸]에서 주인공이 살인마에게 쫓기는 것과 겹쳐 보이기도 한다. 아이를 잃은 슬픔을 달리기로 회피하다가 살인마를 만나고 맞서 싸우게 되며 극복으로 나아가는 것처럼, [아주 비좁은 곳]은 화장실에서의 탈출이 17년간 친구로 지내온 개, 벳시를 잃은 것에 대한 극복과 복수의 과정 자체다. 내면의 감정과 동기를 주인공의 상황으로 형상화하고 서사의 힘을 불어넣는 거장의 실력이 제대로 발휘된 글이다. 그러나 역시 다 읽고 나서도 더러운 묘사에 질리기도 한다. 작가 자신도 쓰면서 약하게 토악질을 했다지 않은가. 좀 과잉되었다는 느낌이고, 묘사 실력을 뽐내는 듯한 거부감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이런 치밀하고 집요한 더러운 묘사로 쓰인 작품 하나쯤은 있을 필요도 있지 않겠는가. 어떤 작가의 작품에서 이런 전개와 묘사를 볼 수 있을까? 스티븐 킹이 아니면 쓸 수 없는 경지의 글이기도 할 것이다.



 리뷰를 마치며

 열 세편의 단편이 실려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글이 길어졌다. 그렇지만 그만큼 다양한 색깔의 스티븐 킹의 단편들을 읽고 회상할 수 있어서 좋았다. 스티븐 킹의 독특한 개성 넘치는 단편을 읽는 시간은 언제나 즐겁다. 그만큼 그가 앞으로도 계속 장편 만이 아닌 단편을 써주기를 바랄 뿐이다. 흔히 단편보다 장편이 재미있고, 더 많이 팔리는 것이 사실이지만, 단편은 단편 나름대로의 미학과 재미를 가지고 있다. 서문을 읽으면서 스티븐 킹이 이 단편집을 통해 다시 단편 쓰기의 감을 되찾고 즐겁게 써내려갔다는 사실이 독자의 입장에서도 반갑고 즐거웠다.
 이 단편집은 예전과 달리 현실과 밀착된 단편들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그리고 문체도 묘사가 늘어나고 내면 심리를 치열하게 드러낸다. 그 동안 작가의 신변에 많은 변화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며, (목숨을 잃을 뻔한 교통 사고와 9․11 사태 등등) 이런 변화하는 점들을 보는 것도 독자들에게는 또다른 재미이기도 하다.
 처음에도 말했지만, 분량에 따라 소재에 따라 개인적 취향에 따라 아무래도 마음에 드는 단편이 갈릴 수밖에 없다. 단편집은 대게 호불호가 많이 갈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한 권으로 다양한 이야기를 접한다는 것 자체가 단편집의 매력이며, 그것이 스티븐 킹의 이야기라는 것만으로도 이 책은 구입해서 읽을 가치가 있다. 스티븐 킹 같은 대중소설가가 있기에 우리는 책을 읽으며 이야기에 몰입하는 경험을 아직도 지속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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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의 힘 2 밀리언셀러 클럽 125
돈 윈슬로 지음, 김경숙 옮김 / 황금가지 / 2012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내 영혼을 칼에서 건지시며 내 유일한 것을 개의 힘에서 구하소서.”
― 시편 22장 20절


 [지하에 부는 서늘한 바람]을 썼던 돈 윈슬로의 [개의 힘](황금가지, 전 2권)이 출간되었다. [지하에 부는 서늘한 바람]은 작가의 사설탐정 경험을 바탕으로, 매력적인 탐정을 등장시켜 흥미로운 이야기를 전개시켜나갔다. 특히, 암시와 복선을 잘 맞춰진 구성은 상당히 근사한 작품이라는 인상을 주었다. 또한, 인물에게 개성을 부여하는 것이나, 대화의 센스도 뛰어나서 한 마디로 읽는 재미가 있는 책이었다.
 [개의 힘]은 그러한 장점들을 그대로 가지고 간 뒤, 긴 세월이 흐르는 동안 펼쳐지는 거대한 스케일의 이야기로 확장시켰다. 멕시코와 미국 등 중남미를 넘나들며 마약 시장을 중점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는 마피아와 마약 단속국, CIA, 정부, 경찰 등 다양한 단체들이 한데 뒤섞이면서 유장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자칫 지루할 수 있는 이야기는 적절한 장면 전환과 감각적인 대사들로 끝없이 긴장감을 느끼게 한다.
 그야 말로 잘 만들어진 대작이다. 수많은 인물들이 쉴새없이 등장하지만, 인물 하나하나마다 개성이 부여되어 있고, 사정없이 배신과 죽음이 펼쳐지면서 독자를 이야기 속으로 빠트린다. 죽음이 너무나도 담담하게 등장하기 때문에 한시도 긴장을 놓치지 않고 이야기에 집중하게 된다. 마지막까지 누가 죽을지, 이야기가 어떤 결말을 맺을지 전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재미있다. 결말까지 신나게 달려나갈 수 있는 책이다.
 돈 윈슬로의 특징은 일단 번역된 글임에도 매우 잘 읽힌다는 점이다. 군더더기가 하나도 없고 이야기에 필요한 문장들이 적재적소에 들어가 있어서 깔끔하게 읽히며 흡인력이 뛰어나다. 뿐만 아니라, 구성도 치밀하게 쌓아올리기 때문에 여러 인물들이 등장하고, 긴 세월을 다루어도 독자가 혼란을 느낄 여지가 거의 없다.
 때로 너무나 장대하고 완벽하기 때문에 영화로 만들기 힘들 것 같은 책이 있다. [개의 힘]이 바로 그렇다. 장면 하나하나가 영상으로 머릿속에 재생되지만, 인물 한 명 한 명마다 묘사되는 심리와 장대한 시간을 영화 한 편으로 담기에는 무리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게다가 어느 장면도 버릴 것이 없어 보이기 때문에 소설이 가장 잘 맞는 매체라고 생각된다. 영화화하기 힘들 정도로 유장하며 근사한 이야기가 [개의 힘]에 담겨 있다. 영화를 보면 되지, 왜 굳이 책을 읽느냐고 할 때, 소설이라는 매체만의 장점을 모두 갖고 있는 작품이다. 우리는 영상화하기 힘든 [개의 힘] 같은 작품이 있기에 텍스트의 재미를 만끽한다.
 [개의 힘]은 ‘마약 전쟁’을 주요 소재로 다루고 있다. 한국에서는 조금은 낯선 소재일 수 있으나, 각종 헐리우드 영화에서 많이 접했기 때문에 금세 빠져들 수 있다.
 중요 인물은 일단 마약 수사 전담반에 ‘아트 켈러’다. CIA 출신인 마약 수사 전담반 요원인 아트 켈러는 처음에는 배치된 곳에서 동료들의 무시를 당하지만, 곧 ‘미겔 앙헬 바레라’(티오)의 도움으로 콘도르 작전을 성공시키며 입지를 쌓는다. 그러나 이 작전은 미겔 앙헬 바레라의 1970년대 마약 카르텔의 보스인 ‘돈 페드로’를 없애고 자신이 모든 마약 조직의 보스로 올라서기 위한 계략이었다.
 ‘아트 켈러’는 자신이 이를 돕는 도구로 사용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미겔 앙헬 바레라’를 독자적으로 수사한다. 이 구도는 마치 만화 [몬스터]를 떠올리게 한다. 한 남자와 아이 중에서 아이의 목숨을 살린 의사가 그 아이가 연쇄살인범이라는 것을 깨닫고 혼자서 추적해 나가는 모습을 연상시켰다.
 이야기는 점점 복잡해진다. ‘아단 바레라’라는 ‘미겔 앙헬 바레라’의 후계자와 반목하게 된다. 아트 켈러는 아트 켈러가 설치한 도청 장치에 의해 내부 배신자가 있다고 의심하게 된 마약 밀매 조직에서는 분열이 일어나고 마침내 아트 켈러의 ‘어니 이달고’를 납치해 고문 끝에 죽이게 되는데, 이것이 아트 켈러가 모든 것을 걸고 평생을 마약 밀매단과의 싸움을 하게 되는 도화선이 된다. 아트 켈러는 국경의 왕이라 불리게 되며 아단 바레라는 하늘의 군주라고 불리게 된다. 국경의 왕과 하늘의 군주의 잔혹한 싸움이 1000페이지 속에서 펼쳐진다. 이 외에도 미국 치미노 조직의 션 칼란은 뉴욕 출신 아일랜드계 10대 소년으로 이야기의 비중으로 세 번째를 차지한다고 할 만한 중요한 인물이다. 냉정하고 대범한 일처리 능력으로 뛰어난 킬러로의 자질을 발휘한다. 이 이야기는 이렇듯 아트 켈러를 중심으로 한 마약 수사 전담반 쪽과 아단 바레를 중심으로 한 바레라 카르텔, 칼란을 중심으로 한 치미노 조직의 세 이야기가 나오며 이 세 인물과 모두 연관을 갖는 노라 헤이든이라는 고급 콜걸이 이야기의 또 다른 축을 차지한다. 결손 가정에서 자란 노라 헤이든은 헤일리의 눈에 띄어 고급 매춘부가 되는데, 각각의 인물들과 연관이 되고 살벌한 소설 속 상황에서도 로맨스 적인 요소까지 넣고 있다. 이 외에 후안 오캄포 파라다라는 가톨릭 신부가 역시 노라 헤이든의 친구이자, 이야기의 중요한 역할로 나온다.
 아트 켈러는 전형적인 이야기의 주인공처럼 비치지만, 그의 뛰어난 능력에 반해 그가 모든 것을 포기하고 마약 수사에 매달리는 이유가 잘 와닿지는 않는다. 마치 운명에 속박된 듯이 보이는데, 동료가 자신 때문에 희생되었다고 해도, '미겔 앙헬 바레라'가 자기 때문에 보스가 되었다고 해도 충분치 않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는 이미 '개의 힘'에 빠졌기 때문이리라.(구약성서에 나오는, 인간을 고통스럽게 하고 고뇌에 빠뜨린다는 악의 상징. 이 표현은 인간이 아무리 애를 써도 몰아낼 수 없는 악과 모두에게 내재된 악의 가능성을 가리킴. 이 소설에 나온 모든 인물은 인간에게 내재된, 선악과를 따 먹었을 때부터 들여다볼 수 있게 된 악의 힘을 표출하고 있다. 성직자인 중요 인물 후안 신부까지도 개의 힘에 마수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기에 이 소설은 인상적인 군상을 보여준다.)
 션 칼란은 냉정한 킬러면서도 신부의 죽음에 크게 마음이 흔들리면서 독자에게 동정심을 느끼게 만든다. 이후 그는 만화속 주인공처럼 빠른 판단과 정의를 돕는 행등으로 멋있는 면모를 보인다.(전형적인 캐릭터이면서도 역시 매력적이다.)
 노라 헤이든은 이 소설에서 유일하게 여성이면서 역할이 부여되어 있고 활약하는 인물이다. 능동적이며 자기 생각이 있고, 이 소설의 전개가 마치 운명의 물살처럼 개인이 어찌할 수 없이 흐르는데도 독자적인 위치를 차지하며 빛난다. 강인하며 매력적이고 감정이입이 되며 애정어린 시선으로 보게 되는 인물이다. 이 소설에 빠질 수 없는 매력을 더하는 핵심 인물이다.
 미 정부의 베트남 전쟁부터, 중남미 마약 정책까지 다양한 정치적인 요소를 소설 속에 녹아냈으며, 멕시코시티 지진이라든가, 정치적 암살, 실존인물을 집어넣어 사실성을 극대화했다. 이 모든 이야기가 마치 실제로 펼쳐진 듯이 몰입하며 읽게 되는 것이다.
 중요인물만 몇 십 명이 되고, 이야기가 여러 지역을 넘나들며 30년이 넘는 세월을 다루기 때문에 자칫 복잡하지만 빠른 전개와 인물들의 연관성을 부각하는 구성이 탁월해서 머릿속에 체계적으로 정리가 되며 재미를 느낄 수 있다. 한국에서 태어나 살아왔기 때문에 마약 전쟁이라는 것은 마치 영화속 일로만 느껴졌으며 깊이 생각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이 재미있는 소설 한 권으로 마치 논픽션을 읽는 듯이 북미와 중남미에 마약이 차지하는 위치, 마피아와 마약 밀매단과 정부가 어떻게 정치적으로 묶여 있는지, 그 속에서 인간들은 어떻게 살아가는지 조금 감을 잡게 되고 흥미를 느끼게 되었다. 여러모로 인상적인 책일 수밖에 없었다.
 하드보일드한 문체와 인물들, 장대한 서사의 힘, 긴박한 스릴감을 모두 느낄 수 있는 소설이다. 물론 아무리 장대한 스케일이라고 하더라도 세세한 부분까지 치밀한 서술은 어렵고 특히 인물들의 실수를 하는 장면들이 개연성이 충분하다고 느껴지지는 않으나, 이런 단점은 거의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캐릭터나 이야기가 강렬한다.
 무서울 정도로 잔혹하고 냉정하며 장대한 범죄 세계 속으로 빠져들고 싶은 독자라면 이 책은 최고의 선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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