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政治
[명사]나라를 다스리는 일. 국가의 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하며 행사하는 활동으로, 국민들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상호 간의 이해를 조정하며, 사회 질서를 바로잡는 따위의 역할을 한다. - 네이버 국어 사전
그러니까, 명색이 국어사전에 실린 단어정의가 저 따위니 나라 꼴이 이 모양인지도 모르겠다.
가장 가까운 뜻의 영어 단어라고 할 수 있는 Politics 의 Wikipedia 정의를 보자.
Politics (from Greek πολιτικος, [politikós]: «citizen», «civilian»), is a process by which groups of people make collective decisions. 정치는 일군의 사람들이 집합적 의사결정을 내리는 과정이다.
좀 더 풀어 설명하면, 정치란 서로 다른 이해관계가 충돌할 때 그것을 조율하여 공통의 합의를 도출해내는 과정 전체를 통칭한다. 위의 네이버 사전에 있는 설명은 정치가 아닌 "통치"의 정의에 가깝다. 본래의 정치(Politics)가 이해 당사자들의 수평적 관계를 전제하고 있다면, 통치는 행위의 주체인 통치자와 행위의 대상인 피통치자 간의 수직적 관계를 전제한다는 점에서 서로 완전히 다른 개념이라고 보아야 한다.
넓게든 좁게든 인간 사회는 무수히 많은 주체들로 구성되어 있고, 그 주체들은 저마다의 이해 관계를 가지고 있게 마련이다. 따라서 이해관계 간의 충돌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며, 이러한 충돌이 그 사회의 파국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조율하는 과정이 바로 '정치'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 조율의 과정에는 다양한 판단의 근거들이 복합적으로 개입되어야 한다. 한 편의 일방적인 희생 역시 공동체로부터의 이탈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지양되어야 할 선택이다. 그렇다고 적당히 양쪽을 절충하는 절충주의로 흘러가지 않기 위해서는 정치적 판단의 근거와 합리성을 뒷받침할 수 있는 인문학적/철학적 사유가 뒷받침 되어야만 한다. 다시 말해, 정치는 시민사회의 덕목이자 가장 고차원의 사회적 행위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묻자. 과연 오늘의 한국 사회에 정치란 존재하는가? 근래 한국 사회의 여러 사건들을 관통하는 하나의 키워드는 바로 '정치의 부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를 들어 지난해 초의 용산참사는 우리사회에 만연한 "정치의 부재"가 극명하게 드러난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이해 당사자 간의 조율 과정의 부재, 합리적 조율을 돕는 정치/시민사회의 부재, 여기에 '정치'에는 무지하고 오직 '통치'라는 측면에서만 사건에 접근한 - 그래서 주민들의 저항을 '진압'의 대상으로 판단한 - 정권의 공권력 행사가 결정타로 작용하면서 비극으로 치닫지 않았던가.
북한의 연평도 공격도 마찬가지다. 분명 민간 거주 지역을 포함해 직접적인 공격을 자행한 북한의 행위는 그 자체로 비난받아야 마땅하다. 하지만, 북한은 북한일 뿐이다. 북한은 결코 우리 사회가 직접적으로 통제 혹은 통치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 또 하나의 이해 당사자다. 그렇다면 북한이 저런 극단적 행위에 돌입할 때까지 우리는 북한과, 그리고 한반도를 둘러싼 국가들과 뭘 하고 있었는지를 따져봐야 하지 않을까. 그게 바로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치이고 외교다. 그리고 이번 사건을 통해 여실히 드러나는 것은 바로 한반도 정세를 둘러싼 현 정부의 총체적 무능, 정치와 외교의 부재라고 말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북한은 이번 공격으로 잃을 것이 없다. 남북관계는 차갑게 식어버린지 오래고, 미국과의 관계는 잘 풀리지 않은 채 마땅한 협상 테이블조차 마련하고 있지 못하다. 한반도에서의 전쟁은 미국이 결코 원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어차피 국지적 충돌 이상으로 확대될 가능성도 없다.(경제에 미칠 타격으로 인해 이는 남한 지배층도 결코 원치 않는다) 이를 거꾸로 말하면, 우리 정부로서는 북한의 일탈행위(?)를 막거나 처벌할 수 있는 어떤 수단도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뜻이다. 햇볕정책은 국내 정치용으로 중단한지 이미 오래고, 중국이나 러시아와의 긴밀한 외교적 관계를 통해 북한을 압박할 능력도 되지 못한다. 그러니 "단호한 대처" 같은 국내용 립서비스 외에는 어버버 하면서 아무런 조처도 내놓을 수 없는 것이 현 정부의 수준이란 말이다. 하긴, 국내에서도 "정치"라는 것을 해 본 적이 없는 이들이니 더 복잡하고 미묘한 국제 "정치"라는 것은 상상이나 해 봤을 리가 없다.
정치가 부재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상대를 동등한 이해 당사자로 보지 않기 때문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정치는 수평적 차원의 개념이다. 하지만 상대를 정복 혹은 무력화 함으로써 자신의 이해관계를 일방적으로 관철하고자 하는 순간 정치는 사라진다. 노조를 깨부수려는 회사, 세입자들을 내쫓으려는 지주, 시위 자체를 막으려는 경찰 등 이해 관계의 충돌을 조율하는 노력은 없고, 권력 관계의 일방적 관철만이 횡행한다. 힘의 논리만이 통용되는 사회는 문명이 아닌 야만일 따름이다.
문제는, 정치의 부재 역시 정치적 판단의 결과라는 점이다. 그들이 정치의 부재를 선호하는 까닭은 힘의 논리에 편승하는 편이 자신에게 유리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모른척하면 경찰이 세입자들을 쫓아내 줄 것이라는 믿음, 버티다보면 지친 노동자들이 알아서 떨어져 나갈 것이라는 믿음, 힘 센 미국과만 잘 지내면 북한이 알아서 길 것이라는 믿음이 정치 자체를 부정하게 만드는 힘인 셈이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껏 보아 왔듯, 상황을 타개할 아무런 수단도 남아 있지 않다는 무력감은 극단적 선택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그 극단적 선택에 책임이 있는 이들은 바로 정치를 부정한 바로 그들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지금 손쉽게 '전쟁 불사'를 외치는 그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들은 단 한 번이라도 북한을 동등한 이해 당사자로 인정한 적이 있는가를. 아니, 조금 더 일반적으로 말해, 이해관계의 충돌과 조율을, 다시 말해 정치를 중요한 덕목으로 인식하고 그를 위해 노력한 적이 있는가를 말이다. 오직 힘의 논리를 숭배하고 그 힘의 논리에 편승해 자신의 이해만을 추구해 온 이들이 누군가의 극단적 선택만을 비난하는 것은 책임 회피에 지나지 않는다. 또 다른 극단적 선택, 또 다른 비극을 막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상대를 동등한 이해 당사자로 인식하는 것, 그래서 정치를 복원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자기 반성 없는 비난은 악순환의 반복에 지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