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이제는 시간이 점점 가속도를 붙여 가며 지나가고 있는게 느껴진다. 눈 깜짝 했더니 어느새 7월. 일년의 반이 휙 지나갔는데, 그 시간동안 뭐했나 되돌아보면 딱히 기억나는 것도 없다 ㅠ_ㅠ 그나마 가장 확실하게 기록을 남기고 있는게 책이니, 이거라도 정리해야 뭐라도 한 것 같지 않을까 싶네.
업무 관련해서 찝쩍댄 몇몇 책들을 제외하고 상반기 동안 읽은 책은 모두 19권. 이 중 7권이 영어책이고, 나머지가 한글 책이니 얼추 원하는대로 비율을 맞춰가면서 읽은 셈이다. 비문학 or 영어책을 읽고 나면 가볍게 읽을 수 있는 문학(한글) 쪽을 두어권 읽는 식으로 밸런스를 유지한다. 현재까지는 이 방식이 크게 부담 없이 이런저런 분야를 둘러보는데 도움이 되는 것 같아 당분간은 비슷한 패턴을 유지할 듯 하다.
아래 대부분의 간단 리뷰들은 다른 곳에 올린 글을 축약한 것이다.
Just My Type
- Simon Garfield 지음 / Gotham / ★★★★
지난해 말에 읽기 시작해서 올해 초 끝낸 책. 우리가 많이 접하는 글꼴(Font)들에 대한 이야기다. 전반적으로 흥미롭게 읽을 수는 있으나, 딱히 유용하다거나 하기에는 그다지 정리가 잘 되어 있지는 않다. 평소 typography 등에 관심이 많았다면 재미 삼아 읽어 볼만한 정도의 책이라고 보면 된다. (2011.12.18 ~ 2012.01.02)
나는 여기가 좋다
- 한창훈 지음 / 문학동네 / ★★★★★
[인생이 허기질 때 바다로 가라] 도 좋았지만, 한창훈의 진가는 역시 소설에서 드러난다. 어느 단편에서건 지역색과 사투리가 어우러지는 절묘한 글 맛을 느낄 수 있다. (01.03 ~ 01.10)
한글의 탄생
- 노마 히데키 지음 / 김진아 외 옮김 / 돌베개 / ★★★★★
일본인 학자가 쓴, "우리"글이라는 자의식을 배제하고 바라본 한글 창제의 과정을 담은 글이다. 한글이라는 인위적 문자 체계를 만들어내기 위해 세종을 비롯한 당대의 지식인들이 거쳤을 지적 투쟁의 과정을 꼼꼼하게 되짚는다. 그리하여 우리가 알게 되는 한글은 단지 "우리의 글"을 넘어 당대의 언어학적 성취를 한단계 격상시킨 하나의 지적 혁명으로 자리하게 된다. (01.11 ~ 01.20)
칠레의 밤
- 로베르토 볼라뇨 지음 / 우석균 옮김 / 열린책들 / ★★★★
문학과 권력의 결탁이라는 민감한 이슈를 날카로운 유머와 해학으로 풀어낸 책이다. 하지만, 칠레 근현대사에 대한 일정한 지식과 실명으로 등장하는 다양한 작가들에 대한 정보 없이는 제대로 이해하기 힘들다는 점 때문에 한국 독자들에게 깊이 있는 독서가 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남미 포스트 붐 세대의 소설답게 난해한 구조도 한 몫 하고. (01.20 ~ 01.22)
황홀한 밤
- 스티븐 밀하우저 지음 / 윤희기 옮김 / 아침나라 / ★★★★
한밤의 달빛이 만들어내는 마법 같은 작은 이야기들의 향연. 몽환적인 분위기는 인상적이나, 전체적인 임팩트는 약하다. (01.22 ~ 01.26)
All the pretty horses
- Cormac McCarthy 지음 / Vintage / ★★★★★
코맥 매카시의 세계는 극단적이라 할만큼 폭력적인 세계지만, 그 주인공들은 지극히 순수하면서도 강인하다. 이 순수함과 강인함은 서로의 필요충분 조건이라 할 수 있는데, 자신을 둘러싼 세계의 폭력성으로부터 그 순수함을 지키기 위해 주인공은 강인할 수밖에 없으며, 동시에 더 큰 힘 앞에서도 굴하지 않는 강인함은 바로 그 순수함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이다. 우리가 코맥 매카시의 인물들에 매료되는 것은 바로 그러한 공존 때문이리라. (01.26 ~ 03.03)
여섯 살
- 낸시 휴스턴 지음 / 손영미 옮김 / 문학과지성사 / ★★★★
한 아이의 여섯살 시절에서 출발해 그 부모의 여섯살 시절, 그리고 그 부모의 부모의 여서살 시절 식으로 여러 세대의 유년기를 그린다. 불행한 것은 한 개인의 경험과 기억이 다음 세대로 이어질 때 좋은 기억보다는 나쁜 기억들이 더 강한 생명력을 지니며 유전된다는 점이다. 흥미로운 구성이었지만, 유년의 기억과 성인이 된 후의 모습이 연관성이 다소 약하게 느껴진다. 에라를 제외하고는 캐릭터들이 입체적이지 못하다는 것도 큰 단점. (03.03 ~ 03.08)
프리라이더
- 선대인 지음 / 더팩트 / ★★★★★
세금은 눈 먼 돈이 아니어야 하지만, 불행히도 대한민국 세금은 눈 먼 돈이다. 힘 있는 자들은 법의 헛점을 이용하거나 심지어 법을 바꾸어 납세의 의무를 비껴가고, 대다수의 국민들이 성실히 납부한 세금은 엉터리 예산 집행을 통해 다시 힘 있는 자들의 배를 채우는데 사용된다. 제도적 틀을 제시할만큼 깊이 있는 대안이 없는 것은 아쉬우나, 그건 책의 한계라기보다 우리 사회 전체가 안고 있는 한계라고 보여진다. 문제제기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책이다. (03.08 ~ 03.18)
The day before happiness
- Erri DeLuca 지음 / Michael Moore 옮김 / Other Press / ★★★★
표지가 좀 misleading 하는 면이 없지 않은데, 10대 후반 소년의 성장 소설이라고 봐야 한다. 지극히 이탈리아적이라고 할 수 있는 소소한 인물상들은 재미를 주지만, 그런 인물들 이야기가 다소 맥락 없이 등장하며 중반 이후에 조금 산만해지는 경향이 있다. 마지막에 가서 좀 살아나기는 했지만 초반의 흥미로움을 끝까지 이어가지 못하는 것은 단점이다. 한국에는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인데, 다른 작품들을 좀 더 찾아서 읽어볼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03.19 ~ 04.04)
백화점
- 조경란 지음 / 톨 / ★★★★
백화점의 역사나 백화점에 얽힌 개인의 기억, 그리고 그에 따른 사유의 흐름을 잡아내는 글쓰기는 마음에 들었다. 그러나 백화점이라는 공간에서 극대화되어 드러나는, 소비를 위한 소비라는 자본주의적 행동 양식에 대한 고민의 깊이가 충분히 깊지 못해 보이는 점과, 후반으로 갈수록 다소 산만해지며 쓰기 위해 쓰는 글이라는 느낌을 점점 강하게 준다는 점에서 한계가 보인다. 에세이가 흔히 그러하듯 작가의 현재를 그대로 보여주는데, 아직은 충분히 숙성되지 못한 느낌이다. (04.05 ~ 04.19)
시간의 목소리
- 에두아르도 갈레아노 지음 / 김현균 옮김 / 후마니타스 / ★★★★★
놀라운 책이다. 그러니까, 이 책에 실린 글들은 모두 333 꼭지. 대부분의 꼭지들은 한페이지 안에 모두 담겨 있으며, 그나마 지면의 절반 정도만 차지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 작은 글들이 전달하는 이야기의 깊이는 결코 얕지 않다. 그 짧은 글들 하나하나 웃음과 눈물, 분노와 감동 등 진한 삶의 페이소스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라틴 문학 특유의 유머와 과장은 글 자체에 활기를 불어넣어주는 역할도 하지만, 역설적으로 비극을 더욱 비극적으로 만들어 주기도 한다. (04.21 ~ 04.30)
나는 심각하다
- 크리스티네 뇌스틀링거 지음 / 이미화 옮김 / 한겨레틴틴 / ★★★★
한겨레 기사에 혹해서 구입한 책인데, 좀 싱거웠다. 청소년 소설의 한계인지 아니면 작품이 좀 미흡한건지 모르겠지만, 갈등 구조가 지나치게 단선적이다. 인물 간의 갈등이 직접적으로 부딛혀 해소되기보다는 우연, 혹은 인물의 변덕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한 탓으로 보인다. 청소년기의 주인공이 보여주는 사고의 흐름은 어느 정도 흥미롭고 아마도 감정 이입이 가능한 독자도 있겠지만, 그리 많은 영향을 남길 책은 아닌 것 같다. (05.01 ~ 05.03)
Pride & Prejudice
- Jane Austen 지음 / Nancy Butler 그림 / Marvel Enterprises / ★★★★★
마블판 그래픽 노블로 재탄생한 고전 "오만과 편견"이다. 가십 잡지를 패러디한 표지 디자인 센스가 좋다. 책 말미에 보너스로 몇가지 버전이 더 실려 있다. 워낙 유명한 작품인지라 내용 자체에 대한 패스. 다만 영어 표현들이 좀 고풍스러워 읽기가 쉽지만은 않았는데, 그래픽 노블로 만들어진 덕에 그나마 수월하게 읽을 수 있지 않았나 싶다. (05.03 ~ 05.07)
광대한 여행
- 로렌 아이슬리 지음 / 김현구 옮김 / 강 / ★★★★★
기적과 과학은 결코 모순되지 않는다. 오히려 보고 싶은 것만을 보는 사이비 과학의 맹목에서 벗어나면, 과학의 섬세한 시각은 우리로 하려금 우리 주변을 둘러싼 모든 것들 속에 담겨 있는 기적들을 더더욱 분명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그러한 기적들을 깨달을 때, 인간은 자연과 생명 앞에 진심으로 겸허해질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자연과학계의 "월든"이라고 칭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까닭도 거기에 있다. (05.08 ~ 05.16)
A thousand years of good prayers
- Yiyun Li 지음 / Random House Inc / ★★★★
기대보다는 별 볼 일 없었다. Native English speaker 가 아닌 탓에 사용하는 어휘가 단촐하여 읽기는 편했는데, 과연 얼마만큼 본인이 생각하는 이야기의 결을 잘 전달했는가는 의문이다. 내용면에서 봤을 때도, 근현대 중국 사회의 모습을 들여다볼 수 있는 하나의 창이라는 점에서는 유의미했으나, 이것 역시 저자의 시각이 서구적 관점에 너무 오래 노출되어 있었던게 아닐까 하는 의구심도 들었다. 그냥저냥, 별 넷. (05.16 ~ 05.27)
사우스포 킬러
- 미즈하라 슈사쿠 지음 / 이기웅 옮김 / 포레 / ★★★★
별로 추리소설에 익숙한 팬도 아닌데, 대충 어느 순간인가부터 범인이 누구일지가 뻔해 보였다. 마지막 시합 장면은 또 너무 영웅적이어서 살짝 오글거리기까지... 이런건 확실히 경륜 있는 작가들이 밸런스를 잘 맞추는데, 막 아마추어 티를 벗은 신참 작가에게는 좀 무리라고 봐야할까. 추리소설과 스포츠 소설을 섞은 것 자체는 좋은데, 장르물의 공식들이 너무 빤히 보이게 사용되는 것 같다. 야구 좋아하는 독자라면 즐겁게 읽겠지만, 굳이 찾아 읽으라고 할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된다. (05.27 ~ 05.28)
16인의 반란자들
- 사비 아옌 지음 / 킴 만레사 사진 / 정창 옮김 / 스테이지 팩토리 / ★★★★★
나는 사람들이 문학작품들을 좀 더 많이 읽어야 한다고 믿는다. 영화나 드라마 같은 영상매체는 필연적으로 갈등을 시각화 해야 하기 때문에 손쉽게 많은 것들을 단순화해 버린다. 하지만, 책 속에서 케르테스가 말하듯, "우리는 단순주의자가 되어서는 안 되며", 삶에는 수많은 가능성들과 어느 한 쪽으로 손쉽게 단정지을 수 없는 경계지역들이 뒤엉켜 존재한다는 사실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 사실을 가장 잘 이해하는 이들인 작가들이야말로 가장 비타협적으로 불의에 맞섰던 사람들이라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 책에 담긴 16인의 반란자들처럼. (05.29 ~ 06.04)
The beginner's goodbye
- Anne Tyler 지음 / Knopf / ★★★★
앤 타일러의 신작. 주체할 수 없는 삶의 비극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게 해주는, 위로가 되는 책이다. 다만 독자의 흥미를 유발하려는 목적이 분명한 첫번째 챕터가 작품 전체의 완결성을 크게 흔들어 놓는 것은 치명적인 결함으로 보인다. 시간이 지난 후, 작가 스스로가 어떤 평가를 내놓을지가 궁금한 부분이기도 하다. (06.04 ~ 06.11)
Nine algorithms that changed the future
- John MacCormick 지음 / Princeton Univ Press / ★★★★★
거의 Computer Science 개괄서라고 보아도 무방할 듯하다. 구글의 검색 알고리즘부터 시작하여 현재의 정보통신 기술의 근간을 이루는 아홉 가지 기술을 추려서, computer science 에 전혀 문외한도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풀어서 설명하고 있다. 관심을 가질 만한 독자층이 많을 것 같지는 않지만, 일단 읽기 시작하면 기술 발전의 과정에서 직면한 난관들을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해결해 나가는 과정을 꽤 즐겁게 따라갈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06.11 ~ 06.29)
별점들은 여전히... 나는 관대하다.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