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담이 아니라 진짜 6개월에 한번씩 글을 쓰게 되네 -_-;


2012년 독서 추이 그래프


회사 업무에서 일련의 변화들이 생겨나면서 하반기에는 야근이 줄고 좀 더 규칙적인 일상을 영위할 수 있었다. 덕분에 하반기 독서는 좀 더 꾸준해진 모양을 보인다. 물론 공부하면서 읽은 책들도 좀 포함되어 있기는 하지만, 추세는 나쁘지 않아 보이네.


13년째 계속되어 오던 월급쟁이 신분을 올해 말까지만 유지하기로 했다. 1월부터는 자칭 self-employed employee 가 되어 재택 근무로 전환. 직장생활이라는 관성에서 벗어냐려다보니, 세상에는 정말 배워야 할 것들이 많고, 공부해야 할 것들이 많다는걸 새삼 느끼고 있다. 내년에는 더 많이 읽고, 더 많이 생각하고, 더 많이 고민해야 하는 한 해가 되도록 해야지. 책은 언제나 가장 가까운 친구이자 스승이 될 것이다.


언제나처럼 간단 요약으로 정리해보는 나의 하반기 독서 기록이다. 별점은 여전히 후함.


꽃으로 말해줘 (07.01 ~ 07.11)

- 버네사 디펜보 지음 / 이진 옮김 / 노블마인 / ★★★★★


사실, 신인작가의 한계가 보여 별 넷과 별 다섯 사이에서 갈등을 좀 했다만, 꽃말을 통한 상징 주고받기는 소재의 참신함과 foster child 들에 대한 이해를 넓힌다는 점을 참작해 다섯으로 확정(나는 관대하다). 역시 필력이라는건 메인 theme 을 일부러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얼마나 일관성 있게 유지할 수 있는지, 그리고 긴장 관계의 전개와 해소의 템포 조절을 통해 독자들을 들었다 놨다 할 수 있는지에서 드러나는게 아닐까 싶다.



몰락 선진국, 쿠바가 옳았다 (07.12 ~ 07.23)

- 요시다 타로 지음 / 송제훈 옮김 / 서해문집 / ★★★★★


임박한 파국이라는 전망에는 크게 동의하지 않지만(자본주의란 생각보다 훨씬 유연하고 끈질긴 체제임이 증명되지 않았는가), 쿠바가 가고 있는 "다른" 길에서는 분명 본받을 점이 참 많다. 무엇보다 "이윤"에 의해 추동되지 않는 사회만이 가질 수 있는 건강함과 헌신은, 서로 물어 뜯으며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좋은 거울이 되어 준다. 내 쿠바 여행의 꿈은 언제쯤이나 현실이 되려나.



나사의 회전 (07.24 ~ 07.30)

- 헨리 제임스 지음 / 이승은 옮김 / 열린책들 / ★★★★


이젠 고전이 된 책인지라 내가 딱히 뭐 더 평하고 말고 할 것도 없었지만, 역자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번역이 참 매끄럽지 못해 계속 걸그적 거렸다. 다른 출판사에서 나온 버전은 어떨지 모르겠네.


 

Griffin & Sabine (08.07 ~ 08.08)

- Nick Bantock 지음 / Chronicle Books / ★★★★★


서간체 문학의 마지막 진화 단계가 아닐까. Griffin 과 Sabine 가 주고받는 엽서와 편지를 그대로 묶어 놓은 형식이다. 몽환적이고 약간은 기괴하기도 한 엽서의 그림들이 책 자체의 미스테리와 잘 어우러진다. 읽는 즐거움과 보는 즐거움이 공존하는 책이다.



Point Omega (08.01 ~ 08.11)

- Don DeLillo 지음 / Scribner / ★★★


[화이트 노이즈]의 돈 드릴로의 최근작. 128 페이지 밖에 되지 않는 얇은 책인데, 내용이 난해하여 읽는게 쉽지 않았다. 작가가 나이가 들어가면서 점점 철학적이 되어 가는건 이해는 간다만, 너무 많은 이야기를 너무 압축된 형태로 던져놓으면 독자들이 따라가기엔 좀 버겁지 않을까.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기법은 참신했다.



바람의 그림자 1, 2 (08.12 ~ 08.23)

-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 지음 / 정동섭 옮김 / 문학동네 / ★★★★★


명성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는데, 속편인 [Prisoner of Heaven] 을 읽기 위해 부랴부랴 구입. 여러 장르를 압축해 놓은 종합 선물 세트 같은 책이다. 즐겁게 읽었다.




The Prisoner of Heaven (08.23 ~ 09.05)

- Carlos Ruiz Zafon 지음 / Harper / ★★★★


전작 [바람의 그림자] 이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 뭐랄까 헐리웃 영화들의 속편이 망하는 것과 비슷한 이유로 망가지지 않았나 싶다. 물론 기본적으로 재미있는 소설임에는 분명하지만(별 네개 구실은 한다는 뜻), "사실은 이게 이런 거였어" 식으로 사후적으로 드러내는 비밀들은 어딘지 작위적인 구석이 많기 마련이다. 게다가 마지막에 또 속편을 예고하는 식의 마무리는 너무 상투적이어서 손발이 오그라들 정도였다.



정의란 무엇인가 (09.05 ~ 09.18)

- 마이클 센델 지음 / 이창신 옮김 / 김영사 / ★★★★★


읽는 내내 머리속으로 저자와 논쟁을 해가며 읽었다. 각론으로 들어가기 이전에 총론 수준에서 이미 "정의"의 범위를 지나치게 한정시켜 버린다는게 가장 큰 한계로 다가왔는데, 그 한계로 인해 각론에 이르러서도 좀 더 과감한 논의로 나아가지 못하는 제약이 느껴졌다. 하지만 다수를 대상으로 한 교양 강의를 책으로 묶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할 것이고, 무엇보다 이렇게라도 "정의"라는 화두를 던질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책의 가치는 충분히 높다고 보여진다.



고래 (09.19 ~ 09.22)

- 천명관 지음 / 문학동네 / ★★★★


재밌게는 읽었다. 저자의 입담은 걸쭉하며 막힘이 없었으나, 나는 이 이야기가 뜻하고자 하는 바를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그냥 재능 있는 입담꾼과 함께 한 거나한 술자리 같은 기분. 유쾌했으나, 다음날 해장국과 함께 미련 없이 비워버릴 기억이 된 셈이다.



인공호흡 (09.23 ~ 10.06)

- 리카르도 피글리아 지음 / 엄지영 옮김 / 문학동네 / ★★★★★


별 다섯개에도 불구하고, 나는 사실 이 책의 절반도 이해하지 못했다. 아르헨티나의 현실과 역사를 먼저 이해하지 않고서야 불가능한 독해다. 그러나 분명한건, 이 책은 엄혹한 시대의 문학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문학이 무엇인지 혹은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생각하며 따라가다 보니, 마찬가지로 엄혹했던 시절에 이 땅의 작가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가 궁금해졌다. 그리고, 지금 이 시절의 작가들은 무엇을 이야기 하고 있는가도.



The Mousedriver Chronicles (08.09 ~ 10.10)

- John Lusk, Kyle Harrison 지음 / Basic Books / ★★★★★


그러니까 이 책은, 현대의 모험담이다. 홀로 집을 떠나 온갖 시련을 거쳐 일가를 이루게 된 고전적 의미의 모험담을 대신하여, 홀로 회사를 차려 온갖 시련을 거쳐 일가는 못 이뤘지만 나름의 작은 비지니스를 이룬 두 청년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거창한 성공담과는 거리가 멀지만, 무언가를 직접 만들어 본 이들만이 느낄 수 있는 희열을 느끼게 해 준다.



선택의 논리학 (10.10 ~ 10.26)

- 디트리히 되르너 지음 / 이덕임 옮김 / 프로네시스 / ★★★★


부제를 "왜 우리는 잘못된 선택을 하는가" 달아도 좋을 듯 하다. 여러 실패 사례들을 보여주며 분석하는 과정은 꽤 찔리는 내용들이 많았다. 정보의 부재, 관성, 자만, 책임 회피 등은 내 머리 속에서도 수도 없이 일어나는 반복되는 잘못들이다. 흥미로운 내용이었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중언부언하는 경향이 커지면서 몰입도가 크게 떨어지는게 단점이다.



Sabine's Notebook (10.26 ~ 10.27)

- Nick Bantock 지음 / Chronicle Books / ★★★★★


앞서 읽은 Griffin & Sabine 의 속편이다. 같은 양식의 책이고, 여전히 다채로운 엽서와 그림들은 보는 눈을 즐겁게 해 준다. 이번에는 Griffin 과 Sabine 가 엇갈려 서로의 장소에서 서로를 그리워한다.



This is How You Lose Her (10.27 ~ 11.11)

- Junot Diaz 지음 / Riverhead / ★★★★★


[오스카 와오..] 의 저자 주노 디아즈의 신작. 단편의 형식을 취하고는 있지만 전체적으로 서로 연결되는 이야기이다. 제목에서 짐작하듯, 이것은 헤어짐에 관한 책이다. 그녀뿐 아니라 사랑하던, 가깝던 이들을 잃어가는 과정들을 보여주는 이야기들인데, 그 복잡미묘한 심정들을 잘 잡아내고 있다. 재밌는건, 대부분 화자(아마도 저자 자신)가 잘못한 이야기들이라는 점. 전체적인 감정선이 쓸쓸하면서도 자조적인 느낌이 강한 것도 그 때문이리라.



아우라 (11.11 ~ 11.13)

- 카를로스 푸엔테스 지음 / 송상기 옮김 / 민음사 / ★★★★


이야기 자체는 좋다. 다소 섬뜩한 몽환적인 이야기로, 그 자체로는 별 다섯개 줘도 무방하다. 다만, 고작 106 페이지짜리 책을 절반은 작품 해석으로 채워서 팔어먹는건 좀 심하지 않나.





화성의 인류학자 (11.14 ~ 11.25)

- 올리버 색스 지음 / 이은선 옮김 / 바다출판사 / ★★★★★


대학 때, 푸코의 [광기의 역사]와 영화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를 묶어서 세미나를 했던 기억이 살짝 났다. 사실 세미나의 포인트는 광인 자체라기보단 광인이라는 담론의 역할이었지만, 어쨌던 광인은 이질적인 존재로 흥미로운 관찰 대상임에는 틀림이 없다. 이 책이 출간되고 또 잘 팔린 이유도 거기 있지 않을까. 광인들을 통해 간접적으로 드러나는 뇌의 기능을 이해한다는 것이 주된 명분이긴 하겠지만, 아무래도 우리 같은 범인들에겐 그보다는 "신기한" 증세를 보는 재미가 주임을 부정할 수 없다.



The Golden Mean (11.25 ~ 11.26)

- Nick Bantock 지음 / Chronicle Books / ★★★★


앞서 Griffin & Sabine 와 Sabine's Notebook 에 이어지는 삼부작의 마지막 권. 연작들은 참 끝까지 맘에 들기가 힘들다는 생각이 든다. 잔뜩 벌여둔 미스테리를 전혀 풀지 않고 이리 어정쩡하게 마무리를 져 놓으면 도대체 어쩌란 말인가. 응?



미생 1,2,3 (12.01 ~ 12.03)

- 윤태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


요즘 내가 가장 사랑하는 웹툰. 그 자체로 소장 가치는 충분하다만, 책에서만 만날 수 있는 별도의 컨텐츠가 없는 것은 조금 아쉽다. 그래도 미생이니까.



The Yellow Birds (11.26 ~ 12.14)

- Kevin Powers 지음 / Little Brown / ★★★★


NY Times Books 에서 "감히" [The Things They Carried]에 비견될만 하다는 리뷰를 읽고 냉큼 사서 읽었다. 이라크전 참전 병사의 이야기이다. 결론적으로, 스토리 자체의 힘은 훌륭하나, 문장에 너무 멋을 부렸다. 부분적으로는 결정적 순간에서 주인공은 그렇다쳐도 Sterling 이 왜 주인공의 생각을 따랐는지는 잘 이해가 되지 않기도 하고. 주목할만한 신인임은 분명해 보인다.



미사고의 숲 (12.14 ~ 12.24)

- 로버트 홀드스톡 지음 / 김상훈 옮김 / 열린책들 / ★★★★★


목가적인 잔잔한 소설을 기대하고 시작했는데, 판타지 스펙터클 액션 소설이어서 좀 당황했다 ㅋ 북유럽, 켈트족 신화에 대한 이해가 있으면 좀 더 풍부하게 읽을 수 있을 듯 하다. 얼마 전 애니메이션 "Brave"가 나온 덕에 기네스가 어떤 모습일지는 좀 더 쉽게 상상이 가긴 했지만 :)



엘러건트 유니버스 (12.27 ~ )

- 브라이언 그린 지음, 박병철 옮김 / 승산


그리고, 올해의 마지막을 초끈이론과 함께 우주의 원리를 이해하려 애쓰고 있다. 1월 중에는... 다 읽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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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oshot 2012-12-29 2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러권 장바구니에 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

turnleft 2013-01-01 07:24   좋아요 0 | URL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saint236 2012-12-30 1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오랫만에 글을 쓰셨네요. 건강하시죠?

turnleft 2013-01-01 07:25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글을 쓰고 싶다는 욕구는 가끔 드는데, 막상 각 잡고 쓰려면 엄두가 안 나서요;;

다락방 2012-12-30 2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을때는 정말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다 읽고나서 시간이 좀 지난 뒤에 생각하면 그렇게까지 좋은 책은 아니었던것 같다, 라는 생각이 드는 책이 있잖아요. 저한테는 [꽃으로 말해줘]가 좀 그런 책인것 같아요. 아름다웠는데, 그래서 책장에 꽂아 두고 싶어 꽂아뒀는데, 요즘엔 책장에서 그 책의 책등을 보면 이 책을 다시 꺼내 읽어볼 것 같진 않구나, 하는 마음이 들어요.

[미사고의 숲]은 저는 옛날 표지로 가지고 있는데요 책 표지가 되게 읽기 싫게 생겼거든요. 그래서 미루고 미루다가 읽었는데 오, 예상외로 재미있어서 깜짝 놀랐어요. ㅎㅎㅎ 그나저나 그리핀 시리즈를 다 읽으셨군요. 저도 조만간 두 번째 시리즈 읽어야겠어요. 막 읽고 싶다가 미뤄두고 싶다가 그래요. 그런데 '엇갈린다'니. 하아..읽지말까 싶기도 하고..흐음. 날도 추운데 엇갈리고 그리워하는 이야기라니. 여름으로 미룰까봐요. 어쩌지. 그나저나 주노 디아스의 저 책이 얼른 번역되었으면 좋겠어요.


재택 근무 하실거면 좀 더 자주 페이퍼 좀 써주고 그러실겁니까? 네?

turnleft 2013-01-01 07:27   좋아요 0 | URL
저도 [미사고의 숲] 처음 본게 2000년대 초반이었어요. 열린책들에서 막 하드커버 책들 쏟아내고 있을 때 서점에서 몇 번 만지작 거렸는데, 어쩌다보니 이제서야 읽게 되었네요 ㅋ 암튼 재밌었어요.

재택근무 시작하면 사실 한동안은 엄청 바쁠거에요 ㅠ_ㅠ 3~4개월 지나면 여유가 좀 생기니 그 때쯤 페이퍼도 생각해보죠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