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즈쇼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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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하의 소설을 많이 읽지는 않았지만, 그의 소설이 관통하는 어떤 공통점을 알아내기란 어렵지 않다. 그의 소설은 현실과 환상이 뒤섞인다. 그 뒤섞임은 혼란을 가져오기 보다는 주인공과 읽는이의 상태를 몽롱하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주인공이자 화자인 이민수는 어려서부터 외할머니 손에 자랐다. 아버지는 누군지도 모르고 어머니는 일찍 죽었다. 할머니마저 죽고 혼자 남은 민수는 할머니가 유산대신 남겨놓은 빚 때문에 집을 빼앗기고 작은 고시원에서 산다. 그 좁은 공간안에서 인터넷 채팅 퀴즈방에서 시간을 보내던 민수는 우연찮은 기회로 텔레비전 퀴즈쇼에 참가하게 된다. 그리고 그것을 계기로 그는 새로운 세상과 조우하게 된다. 

   이 책은 수많은 알레고리가 들어있지만, 그것을 알레고리로 읽어야 할지 머뭇거리는 순간들이 많이 있다. 주인공 민수를 88만원 세대를 대표하는 인물이라고 설정하면, 책을 읽기는 편하지만, 민수가 그 대표성을 지니고 있을지 잘 모르겠다. '지식 룸펜' 정도의 대표성을 지니고 있을까? 그런데 민수는 아버지가 누구인지 모르고 어머니는 일찍 죽은 고아이자 사생아이다. 점점 더 위치시키기가 어렵다. 차라리 이 소설은 민수가 얘기한 대로 지금 2006년 한국의 '오뒷세이아 이야기'라고 보는 편이 더 쉽게 읽힌다. 저 옛날의 오뒷세이아가 그리스로 돌아오기 위해 숱한 모험을 겪었듯이 민수 역시 지금껏 회피한 현실로 돌아오기 위해 숱한 모험을 겪는다. 

   소설에서 민수는 다섯 명의 여자를 겪는다. 첫 번째, 외할머니는 민수의 어머니 역할을 한다. 후에 민수가 그 사실을 알았을 때 그녀는 '이모'라고 부르라 한다. 민수는 그녀를 '최여사'라 지칭한다. 최여사는 민수를 키워줌과 동시에 앞으로의 고난을 마련해준다. 그녀의 빚때문에 민수는 세상으로 나아가야만 한다. 절대 피할 수 없는 운명. 이 모든 사건, 아니 민수의 운명은 최여사가 직조한 것 처럼 보인다. 

   두 번째, '빛나'는 철저히 '현실세계'를 대변하는 여자다. 그녀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민수를 쥐락펴락 한다. 빛나의 사랑은 사랑이라기보다는 철저한 계산이다. 민수의 현재 상태를 냉정하리만큼 평가한다. '최여사'의 장례식에 가서 민수의 뒷수발을 들기보다는 자신의 대학원 발표가 훨씬 그녀에게 크다. 빛나는 인정보다는 계산이 우선된, 현실세계의 여자다. 

   세 번째, 민수와 같은 고시원에서 지내는 '숙희'는 더 이상 내려갈 수 없는 삶의 밑바닥을 대변한다. 민수와 숙희의 만남은 많지 않다. 그는 그저 체한 그녀를 위해 약국에서 소화제를 사다주고, 답례로 고시원 옥상에서 삼겹살을 구워 먹고 그녀에게 이십만원의 돈을 빌렸을 뿐이다. 그녀가 도움을 요청할 때, 민수는 그런 그녀를 외면한다. 그에게는 그녀가 외면하고 싶은 자신의 현실이었을 것이다. 

   네 번째, '지원'은 '이상'이다. 그녀는 방송국의 구성 작가이자, 평창동의 '성'에서 살고 있다. 그녀의 '방' 안에(!)있는 '서고'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한 번 쯤 꿈꾸었을' 곳이다. 그녀는 민수와 인터넷 퀴즈방에서 만났다. 그녀의 아이디는 '벽속의 요정'이다. ID는 이드, 즉 자아를 나타낸다. 그녀는 벽속에 갇혀있는 존재다. 그런 그녀를 현실로 이끌어줄 수 있는 사람은 현실에 살고 있는 민수뿐이다. '이상'은 현실에서 실현되어야 빛을 발한다. 하지만 민수는 그녀를 현실로 데려오기에 준비가 아직 안됐다. 

   다섯 번째, 퀴즈쇼에서 만난 이춘성의 소개로 그는 '회사'에 들어간다. 이 회사는 일반 회사가 아닌, 전국에서 불법으로 벌어지는 퀴즈쇼에 출연할 선수들을 키워내는 회사다. 그곳에서 민수는 '메두사'를 만난다. 장군, 메두사, 탱고, 유리라는 별명으로 불리워지는 이들은 유사 가족처럼 보인다. 민수는 '롱맨'이라는 이름으로 이들 유사 가족으로 편입된다. 회사에서는 현실을 살아가는 사회성을 죽이고 지식, 아니 잡학으로 머리를 채운다. 지식의 늘어남과 승리의 쾌감, 이런 것들이 그들을 고양시키는 계기가 되기도 하지만, 그들을 파괴시키기도 한다. 민수가 현실에 두고 온 것들을 잃어버리고 '회사'에서의 생활이 현실이 되어갈 때 '메두사'는 유일하게 민수의 이야기를 듣는 존재다. 그러나 민수는 '어머니이자, 누이이자, 여자친구'인 메두사를 버리고 현실 세계로 돌아온다. 

   다시 현실세계로 돌아온 민수는 더이상 현실을 회피하지 않고 현실을 살아가기 시작한다. 그가 새로 둥지를 튼 곳은 헌책방이다. 헌책방은 헌책을 파는 곳이다. 헌책은 제품의 기능이 멈춘, 지식의유통기한이 다 된 것이기도 하지만, 종류에 따라 보물이 될 수 있다. 주인은 옆 건물을 신간을 팔 서점으로 만들 계획을 짜고 있다. 앞으로 민수는 이곳에서 헌책과 새책을 팔기 시작할 것이다. 지식이 유희가 아닌, 삶이 되는 현실을 살 것이다. 그가 거쳐온 사람들과 함께 그리고 그의 '이상'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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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뮤지컬『퀴즈쇼』환상적 무대!!
    from 내가 읽은 책과 세상 2010-01-02 14:10 
       "근데 사실 세계의 어떤 작품이건 원작을 먼저 읽고 영화를 보면 영화가 허술해 보여요. 왜냐하면 활자는 디테일을 꼼꼼히 담아낼 수 있는데, 영화는 뭉텅뭉텅 이미지로 보여주어야 하니까요. 거꾸로 영화를 보고 원작을 보면 굉장히 지루해요. 이미지를 보며 감정을 이미 느꼈는데 활자로 일일이 그걸 묘사하고 있으니까 뻔해 보이는 거죠. 장르별 특색이라고 봐야죠."       
 
 
 
꿈이 없는 시대에 꿈을 꾼다는 것
- 솔직 담백 군대 이야기
주호민 지음 / 상상공방(동양문고)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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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자들에게 있어 군대는 폭력에 길들여지고, 그 길들여지는 것을 시스템으로 익히는 사회의 훈련장이다. 사회의 작동 원리는 직접적인 폭력은 없으나, 그보다 더 정교한 방법으로 시스템을 이루고 있다. 막내일때는 죽을듯한 폭력에 길들여지고, 그 폭력에 길들여진 막내가 고참이 되어서는 그 길들여진 폭력을 이용해 그 시스템을 존속시키는, 돌고 도는 영겁의 관계가 존속된다. 그렇기 때문에 일반적인 '우리'가 군대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내가 당한 폭력에 대한) '분노'와 (그 폭력을 이용해 지위를 누린) '죄책감'이다. 이 분노와 죄책감이 서로 뒤엉켜 있기 때문에 남자들은 군대에 입대하는 꿈을 자주 꾼다. 그 내용은 대동소이하다. '나는 군대를 제대했는데, 병무청에서 전산착오가 있으니 다시 가라고한다. 울며겨자먹기로 군대에 가니 그곳에는 내 옛 고참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아마 대부분의 군대를 다녀온 남자들이 몸상태가 안좋을 때 꾸는 꿈 내용일 것이다.  

   매체에서 군대 이야기를 다루지 않은 이유를 난 이렇게 생각한다. '분노'를 이야기하기엔 한쪽에 자리잡고 있는 '죄의식'이 같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당한 분노를 이야기하려면 내가 저지른 죄의식도 같이 고해성사해야 한다. 그럴바에야 차라리 잊고 지내는 편이 낫다고 아마 대다수의 남자들은 생각하는 것 같다. 나 역시도 그랬으니까. 분노가 아닌 죄의식으로써 군대를 다룬 최초의 작품은 아마도 윤종빈 감독의 『용서받지 못한자』일 것이다. 

   만화가 지망생 주호민을 일약 '스타 작가'로 만든 『짬』은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매우 어정쩡하고 독특한 위치에 있는 만화다. 그는 이 지옥같은 군대생활을 '아~ 군대 한 번 더 가보고 싶다'는 말도 안 돼는 생각이 잠깐 들게 할 정도로 재밌고 따듯하게 그려냈다. 아무리 요즘 군대가 신체적인 폭력이 없어졌다고 해도(정말 그렇게 됐다고 믿고 싶다!!) 인간적 수치심을 불러 일으킬 언어 얼차려는 분명 존재할 것이고, 자신의 편함을 위해 수많은 자기 합리화와 떠넘김이 이루어지는 곳이 군대일 텐데, 그의 작품에서는 이런 것들을 발견할 수 없다. 

   군대가 편해졌기 때문에 주호민이 이렇게 그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그와 나의 군입대 기간은 겨우 5~6년 정도의 차이뿐이다. 우리는 같은 시대에 군대를 체험했다). 아무리 편해져도 군대는 군대다. 시스템이 바뀌지 않는 한, 군대는 시지프스의 돌처럼 계속 그 자리에 맴돌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짬』이 따듯한 이유는 작가 주호민의 천성 때문이다. 그는 천성이 따듯한 사람이다. 그의 최신작 『무한동력』을 보면 그가 얼마나 따스하고, 애정이 많은지 알 수 있다. 그는 차가운 '오늘의 현실'과, 기성 세대들에게 '88만원 세대'로 개념화된 그의 친구들을 더없이 따스하게 안는다. 목표가 꿈이 되고, 꿈이 현실이 되어 방황하는 그의 친구들을, 그리고 그들을 방황시키는 이 사회를, 그는 욕하거나 부정하지 않고, 같이 '꿈을 갖고' 살아가자고, 웃으면서 긍정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그의 자전적인 만화 『짬』에서 그의 군생활을 긍정할 수 있었다. 웃으면서 긍정하기. 이것이 주호민 작품의 가장 큰 힘이고 미덕이다. 

   분노와 죄의식으로 점철된 군대 생활을 너무 나이브하게 그려낸 것 아닌가 하는 비판을 할 수도 있지만, 이렇게 세상을 긍정하는 작품을 난 아직 많이 보지 못한 것 같다. 이런 작품이 많이 나오고 난 후에, 그 때가 되면 이 작품을 비판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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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짬 시즌2』 여전히 따스한 그의 시선
    from 내가 읽은 책과 세상 2010-07-10 08:01 
    남자들에게, 아니 군필자들에게 있어 군대란 기억은 거의 대부분이 악몽으로 자리 잡고 있다. 난 분명 전역을 했는데 전상상의 실수로 다시 군대를 다녀와야 한다는 절망적인 통보와 우여곡절 끝에 다시 군대에 가니 그 지옥 같던 선임들이 날 기다리고 있더라는 꿈은, 정말이지 아마 대부분 꿔봤을 것이다.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시대와 공간과 사람이 전부 다른 개별적인 경험이 어떻게 똑같은 트라우마를 가지게 되는지.   원경험에서 2차로 각색된
 
 
 
리뷰의 허망함
자전거 여행 2
김훈 지음, 이강빈 사진 / 생각의나무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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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작 『자전거 여행』이 한강 하류, 조강에서 자전거 페달을 밟는 것을 멈추었다면, 이번 『자전거 여행 2』에서는 바로 그 조강에서 페달을 밟기 시작한다.  

   김훈의 기행문은 여타의 기행문과 다르다. 일반적인 기행문들이 그 지역의 정보와 풍경에 대해서 설명한다면, 김훈은 그가 바라본 풍경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말한다. 그는 눈에 보이는 것만을 보고 말한다. 하지만 그가 말하는 것은 그가 본 것 그 너머의 것들이다. 그렇기때문에 굳이 그의 글을 분류해야 한다면, 기행'산문'집이 될 것이다.

   광릉의 숲에서 그는 숲과 나무를 통해 생명체로서의 '완성체'를 바라본다. 노동으로 음식을 섭취해 삶의 동력을 만들어내는 비루한 인간은, 물과 햇빛만으로 스스로의 동력을 만들어내는 나무에 무한히 감동한다. 그가 바라는, 가장 최소한의 외부 요인으로 연명하는 생명체의 가장 이상적인 형태이다. 

   역사속에 박제된 남한산성에서 살기 위해 감수해야하는 삶의 치욕을 바라본다. 양수리 두물머리에서 다산 정약용의 치욕과, 그 치욕을 감내하는 삶을 바라본다. 살기위해 감내해야 하는 그 치욕의 크기가 얼마한지는 알 수 없으나, 김훈은 그들의 '그 어쩔 수 없는' 선택을 긍정한다.

   선재도 갯벌에서 어민들이 꼬막을 캐가는 것을 보고 선사시대부터 지속되어온 원시적인 삶의 역동성을 바라본다. 꼬막 캐기의 일관성은 선사시대와 현재를 이어주는 고결한 노동이다. 그는 이런 노동을 바라보면서, 앞으로 나아가기만 하는 시간을 이렇게 과거와 현재로 잇대어주기도 한다.  

   경기만 등대와 고속도로에 막힌 차들로 장관을 이루는 미등의 물결을 바라보며 시간속에서 지속되는 빛의 신호와 이끌어줌의 고마움을 느낀다. 이렇듯 김훈이 자전거를 타고 바라보는 풍경은, 지금 살아가는 현재의 풍경을 통해서 그 풍경속에서 살아간 사람들을 바라보는 것이다. 

   그의 첫 산문집『풍경과 상처』에서 그는 자신의 내면에 있는 '상처'를 통해 풍경을 바라보았다. 그 후 10년, 그는 자신 내면의 상처의 범주에서 벗어난, 우리 '인간 내면'의 상처를 통해 풍경을 바라보았다. 그래서 이후에 그는 3인칭의 문장을 쓸 수 있었을까? 

   김훈의 소설, 특히 『칼의 노래』, 『현의 노래』, 『남한산성』과 같은 '역사 소설'만 읽은 독자들에게 이 책은 상당히 어렵게 다가갈 책이다. 하나의 풍경을 바라보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 아니 그 풍경의 본질과 원형으로 다가가려는 그 치열한 사유의 과정이 읽는 이의 진을 빼기 때문이다. 위의 역사소설에서도 물론 치열한 사유의 과정이 있으나, 그나마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라는 서사가 읽는 이의 나침반 구실을 해주지만, 생경한 풍경과 생경한 김훈의 사유 속에서 처음 길을 찾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그 길을 찾게 된다면, 김훈의 이 책은 더할나위 없는 축복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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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공무도하』장철수의 모습에서 다산의 치욕을 보다
    from 이번 크리스마스에 눈이 올까요? 2009-12-04 09:18 
       요즘들어 김훈의 책을 '과하다'싶을 정도로 많이 읽었다. [작가와의 만남]에 다녀오면 좀 그 양이 줄어들 줄 알았는데 어찌된 게 더 늘어났다. 10대 초반에는 이문열(이게 다 『삼국지』 때문이다), 중반에는 이현세, 10대에서 20대를 관통하는 조정래. 20대 초중반의 하루끼. 20대 말의 이토 준지와 고우영 그리고 30대에 만난 박민규, 성석제. 그 외에는 이렇게 전작을 파고든 작가는 없는 것
 
 
 
[작가 김훈, 독자와의 만남] 잘 다녀왔습니다.
리뷰의 허망함
- 내 가난한 발바닥의 기록
김훈 지음 / 푸른숲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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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훈의 문장은 냉엄하고 엄정하다. 1인칭 시점의 글이건, 3인칭 시점의 글이건 간에, 그는 냉엄하고 엄정한 관찰자의 시점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런 기본 조건이야말로 그가 기자시절부터 단련해 온,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일 것이다. 

   그런 그도 피곤했던 것일까? 늘 세상과의 거리를 두고 있던 그의 시선이 『개』에서는 더할나위 없이 아름답고 아련하게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 이것은 아마도 그가 인간이 아닌 개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았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중략) ...개에 대한 관심이 생겨 도감을 찾아보니, 개의 시각과 청각, 후각이 인간보다 월등히 뛰어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렇게 뛰어난 감각을 지니고 있다면, 개가 느끼는 것은 인간이 느끼는 것 이상의 것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떤 삶의 뛰어난 원형질을 지닌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내가 그 삶의 뛰어난 원형질을 지닌 개가 되어 이 세상을 바라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집필을 시작했습니다.  

   인간의 삶은 삶을 삶 자체로 느끼지 못합니다. 글자, 매체, 이런 것들이 우리의 삶 사이에 부당하게 개입하고 우리의 삶을 차단합니다. 우리가 우리 몸으로 직접 개입하고 느낄 수 없습니다. 하지만 개는 직접 몸으로 부딪히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개를 통해 우리에게 부당하게 개입하는 것에서 벗어나 세상을 직접 느끼는 것을 집필 의도로 삼았었는데, 그게 잘 표현됐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작가 김훈, 독자와의 대화 中)

 
   

   그의 말대로 우리는 삶을 삶 자체로 느끼지 못한다. 인간은 하루 하루 살면서 겪는 현상이나 느낌을 개념화된 언어로 정리한다. 그렇지 않으면 불안하다고 느끼거나 (혹은) 뒤쳐진다고 느낀다. 이것은 실체가 없는 불안함이고, 대상이 없는 뒤쳐짐이다. 늘 이렇게 살아왔기 때문에, 그렇게 해야 안심하고 살아가는 것이다. 하지만 개는 그렇지 않다. 개에게는 언어가 없다. 개는 온 몸으로, 모든 감각으로 세상을 익힌다. 개 발바닥에 있는 굳은살의 정도가 개가 느끼고, 경험한 세상을 나타낸다.  

   『빗살무늬토기의 추억』, 『칼의 노래』, 『현의 노래』를 통해 인간 삶에 대해, 역사에 대해, 민족과 국가에 대해, 예술에 대해 고민한 김훈은 더 큰 인간 삶의 원형질에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바로 그 '개'를 주인공으로, 그 '개'가 바라본 세상을 '개'의 시선으로 글을 썼다. 그가 '개'가 된 덕분에, 그는 인간으로서 지닌 냉엄하고 엄정한 시선 대신 감각만으로 느끼는 따스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봤다. 덕분에 소설은 다른 소설들과 달리 아름다운 문장으로 넘쳐난다. 

   소설은 4부로 나뉘어 있다. 1부에서는 '보리'와 그의 형제들, 어미 개에 대한 이야기와, 그들을 키우는 할아버지, 할머니, 댐 때문에 곧 수몰될 그들의 고향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고, 2부에서는 새로 이사간 어촌 마을의 일상, 3부에서는 '보리' 주인과의 끈끈한 정과 다른 개들과의 만남, 4부에서는 '소멸'에 대해 이야기한다.

   개는 인간 삶에 개입하지 않는다(혹은 할 수 없다). 개는 인간과는 다르게 세상을 바라보고 삶을 경험한다. 개의 삶은 인간의 윤리나 지식으로 재단될 수 없다. 개는 체념하지 않고, 묵묵히 살아간다. 김훈은 어쩌면 개의 삶에서 인간 삶의 최정점을 보았는지 모른다. 인간을 속박하는 것에서 벗어나 인간 삶을 삶 그대로 느끼는 긍정적인 삶. 

   어쩌면 김훈은 다시는 이런 류의 소설을 쓰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개』이후, 그는 『강산무진』, 『남한산성』,『공무도하』의 무력감과 허무함에 진득히 빠진 '어찌할 수 없는' 인간 세계로 돌아왔다. 아마도 이 소설은 그의 독자와 작가 스스로에게 준 작은 '위로'일런지도...

 

   쓰지 않고 혼자만 간직하려 했으나, 소설의 잔향이 계속 남아 있어 다른 책을 읽기 힘들다. 간직한 느낌을 끄집어내어 '보리'에게 작별을 고한다.  

   인간의 마을마다 서럽고 용맹한 개들이 살아남아서 짖고 또 짖으리. 개들아 죽지 마라. 

  

 

*덧붙임 

   이 책을 읽고 나서 갑자기 홍상수 감독의 『해변의 여인』이 떠올랐습니다. 영화속에서도 '보리'와 같은 진돗개가 나오지요. 허문영 영화평론가가 『해변의 여인』을 평할 때, 이 개에 대해 언급을 했었습니다. 같이 읽어볼 의미가 있을 것 같아 조금 옮겨 봅니다. 전문을 읽으실 분들은 아래 제목을 클릭하시기 바랍니다.   

 

홍상수식 구원의 기적 <해변의 여인> 
글 : 허문영 (영화평론가) | 2006.09.20   

   하얀 진돗개가 잘 차려입은 부부와 함께 봄의 해변을 거닐고 있다. 남자가 얼굴 나이에 비해 머리숱이 적고 둘 다 우울한 말투를 지녔으며 해변의 여행객들이 돌이를 예뻐하는 걸 귀찮아하는 기색이긴 하지만 부부는 기품이 있어 보인다. 해변에는 고즈넉한 평화가 깃들어 있고, 오후의 햇살은 화사하며, 개의 털은 햇살로 더욱 새하얗다. 그러나 개는 자신에게 닥쳐올 운명을 알지 못한다. 그의 이름은 ‘돌이’다.  

   돌이는 해변에서 한번 더 비슷한 모습으로 나타난 뒤, 부부에 의해 버려진다. 돌이를 내버려두고 기품있던 부부가 낡은 프라이드 승용차를 타고 떠나버리자, 버림받은 돌이는 프라이드 뒤를 있는 힘을 다해 아스팔트길을 따라 달려간다. 며칠 뒤, 돌이는 펜션 종업원이자 펜션 주인의 조카에 이끌려 다시 해변에 나타난다. “삼촌이 키우기로 했다”고 그는 말한다. 여행객이 “차라리 잘됐다”고 말한다.  

    홍상수의 일곱 번째 영화 <해변의 여인>은 개의 영화는 아니지만, 어쨌든 이 개가 중요한 영화다. 돌이는 자주 나오진 않지만 이 영화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역정을 겪는다. 인간들이 모텔과 횟집과 해변에서 짝짓기 수작을 벌이고 있는 동안, 그는 주인과 함께 우아하게 해변의 걷다가 다음날 주인에게 버려져 생사의 갈림길에 섰고 며칠 뒤 새로운 주인을 만나 다시 평화를 찾는다. 그 사이에 그의 이름은 ‘돌이’에서 ‘똘이’ 혹은 ‘똘’로 오인돼 불렸고, 그의 이름을 모르는 새 주인에게 ‘바다’로 명명된다.  

   돌이는 인간의 서사를 옹호하거나 보충하기 위해 혹은 비난하기 위해 이 자리에 와 있는 게 아니다. 그는 다만 자신의 시간을 살고 있다. 어떤 이름으로 불리든 누가 주인 행세를 하든 그는 살아간다. 우리는 그 개를 알지 못한다. 진돗개이긴 하지만(주인은 “진돗개라서 이발하지 않는다”고 이상하게 말한다), 그가 순종인지 잡종인지, 어떤 짝을 만나왔는지, 게다가 수컷인지 암컷인지도 알지 못한다(돌이는 대개 수컷의 이름이지만 바다는 대개 암컷의 이름이다). 또 그의 전 주인이 부유한지 가난한지 혹은 병들었는지 건강한지 알지 못하며, 주인 부부가 그를 왜 버렸는지 알지 못한다. 그리고 그가 위험한 아스팔트길을 달리다가 어떻게 바다로 돌아왔는지 알지 못한다. 다만 그는 죽음 같은 시간을 거쳐 다시 바다로 와 있다. 개가 자신의 시간을 살아간다는 것, 그리고 그의 시간이 홍상수 영화에서 마련된다는 건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중략) 

   “바람은 딴 데서 오고 구원은 예기치 않은 순간에”(김수영, <절망>) 온다. 그것이 기적이다. 그 기적은 누구도 모르게 돌이가 바다로 돌아왔을 때 이미 이루어졌고, 돌이는 이미 바다가 되어 자신의 시간을 살아가고 있다. 홍상수 영화는 그렇게 넓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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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트 2009-11-27 16: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는 김훈 작가가 긴장감을 풀고 여유롭게 쓴 것 같다는 느낌이 잔뜩 묻어나지요. 홍상수 영화와 연결되는 부분이 재미있네요.

Tomek 2009-11-28 08:03   좋아요 0 | URL
저도 굉장히 편하게 읽었습니다. 다음엔 혹시 '새'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을 쓰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

홍상수 감독의 영화에서 '개'는 꽤 많이 나오는 편입니다. 『생활의 발견』,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해변의 여인』, 『밤과 낮』, 『첩첩산중』에서 다 의미있는 존재로 나오지요. 언제 기회가 되면 홍상수 영화에 나오는 개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
 
매니악한 너무나 매니악한
본격 제2차 세계대전 만화 2권
굽시니스트 지음 / 애니북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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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는 구분되어지지 않고 흐르는 것처럼, 『본격 제 2차 세계대전 만화』 1권과 2권을 따로 떨어뜨려놓고 설명할 수 없다. 하지만, 이 책에 대한 리뷰는 이미 1권에서 거의 했고, 책의 형식 또한 1권의 틀 안에서 진행되어지기 때문에 똑같은 말을 할 수 없다. 대신 작가가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본격 2차 세계대전 만화2권 내고 변명하는 만화」를 올린다. 이 만화를 읽으면 -역시 굽본좌!! 숭배하던가 아니면, 뭐 이런시키가!! 불쾌해하던가- 구매의사가 확실히 갈릴 것이라 생각한다. 

http://ww2comic.egloos.com/1768295
 

 

   그래도 조금 몇 마디 붙인다면, (작가도 언급했지만) 많은 양을 다루려 해서인지 글자 폰트가 줄어들어 읽기에 좀 벅차다. 하지만 불편한 정도는 아니다. 그리고 1권에 비해 패러디 해설의 양이 줄었다. 패러디가 줄었다기 보다는 일부러 해설을 자제한 것 같은데, 블로그에 가보니, 아예 『해설서』를 준비 중인 것 같았다.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으나, 여하튼 기대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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