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urious Incident of the Dog in the Night-Time (Paperback) - 『한밤중에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원서
마크 해던 지음 / Vintage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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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글이 아니라는, 제 2외국어로서의 그 불리한 입장과 불편함 -예를 들자면, 불청객 처럼 찾아오는 맥을 끊고마는 알수없는 단어의 끝없는 출현으로 인한 사전을 구비해 둬야 하는 번거로움 이라든가 심지어 단어의 뜻을 찾아봤는데도 이해되지 않는 낭패로 인한 지적 좌절감- 을 감안해야 하기에 영문 소설은 우리글 소설을 읽을 때보다 훨씬 더 신중을 기해야 실패(?) 하지 않는 법이다. 

   이름을 날리는 작가의 작품이라는 이유만으로 혹은 수세기를 거쳐 명작으로 회자되는 클래식을 영문으로 읽어 줘야 이 시대의 진정한 지식인이 아닐까 하는 막연한 지적욕구에대한 부응으로, 또는 영화화 된 스토리에 감동한 나머지 덥석 구매 버튼을 클릭하게 된다면 설레임과 기대로 과감하게 시작한 reading이 유종의 미는 고사하고 용두사미로 끝날 가능성이 마계의 칠흙 어둠보다 더 농후해질 수 있다.  

   외서를, 특히 영문 원서의 팬시함을 즐겨보고 싶은 소망으로 수많은 영어책을 구매한 전력이 있는 당신이라면 -당연 그러하기에 류마티스 관절염처럼 뻣뻣하게 생긴 이 후기에 당신의 영롱한 눈동자를 돌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찬찬히 책꽂이에 걸려있는 책들을 살펴보시라. 의지와 신념으로 무장한 채, 겨우 몇십 페이지의 전선을 거듭 넘지 못한채 "다음 기회"를 운운하며 덮어둔 채로 한자리를 수 년째 혹은 그 이상 버젓이 차지하고 있는 몇 권의 책들과 지난날의 자신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 시행착오를 거친 후에 터득한 영문 소설을 고를 때의 기준 중의 하나가 "타이틀"이다. 창해일속, 바다에 던져진 좁쌀 한 톨을 찾는 마음으로 우리는 수많은 책들을 답사, 제목에서 암시하는 함축적인 의미에 대한 신뢰는 개인마다 다를 수 있는 취향이나 성향에 좌우 된다. 책과의 만남도 사람과 사람의 그것처럼, 일종의 느낌, 소위 말하는 "필"을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우선 책을 펴고 싶은 흥미로움을 느끼게 해주는 책이라야 수많은 난관을 거쳐내며 끝까지 읽겠다는 의지를 유지할 수 있는게 아닌가.  

   개인적으로 그런 면에서 Mark Haddon의 『The Curious incident of the Dog in the Night-Time』은 나의 동공 확대를 야기했다. "한밤" 중에 "흥미로운" 그것도 "개"에 관한 "사건" 이라니, 어찌 이끌리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책 제목이 마음을 이끈다면 직접 서점에가서 훑어 봐야 하는 과정만이 남아 있다. 대략 읽어도 좋고 집에서 읽을 때처럼 천천히 정독을 해도 좋다. 다만 여기에서 몇가지 사항을 숙지하며 읽는 것이 좋을 듯하다. 

   그 중 첫 번째는 모르는 단어, 뜻을 모르는 단어가 한 페이지에 10단어 이상이면 필시 읽는 동안 번거로움을 피할 수 없다는 게 개인적인 생각이다. 물론 완벽주의에 가까운 성실함을 갖추고 있다면 문제될 것은 없지만 페이지당 10단어 이상을 모르면 짜증이 밀려 오기 시작한다. 다만 모르는 단어를 만나도 계속 문맥을 이어갈 수 있다면 단어의 뜻에 크게 연연할 필요는 없다. 책을 읽으면서 문장과 문맥에서 새로운 단어를 습득하는 것이 단어장을 달달히 외우는 것보다 학습효과가 훨씬 높다. 

   책의 두께(페이지 수)나 활자의 크기 등도 확인해봄직 하다. 이 책의 경우 우선 굵기가 얇아서 좋았다. 우리나라 서적과 달리, 활자가 좀 작은 편이었지만 재활용지의 가벼움과 한손에 딱맞게 들어오는 책의 크기와 굵기가 휴대성을 증폭시켜주었으며 비교적 편리하게 짧은 시간동안 책을 섭렵하는데 한 몫을 했다.   

   Mark Haddon이 영국 작가임에도 미국식 영어에 그나마 기생하고 있는 나의 영어 실력으로 도전해 볼 만한 이해하기 쉬운 간결하고 명료한 표현과 대화는 사회적 상호작용과 소통양상에서 지극히 제한적이거나 상반된 양상을 보이는 주인공의 자폐성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본다. 일기가 아님에도 평이한 문장과 그림과 수학공식, 표, 도식, 지도들로 꾸며진 소년의 책을 읽다보면 어느새 소년이 직면한 일상의 단면들과 익숙하게 마주한다. 

   정형적인 반복적 활동에 흥미를 보이며 나름의 논리와 원칙이 존재하는 자신만의 세계속에 있던 소년이 외부세계와 조우하는 열린 접점을 통과하는 모습을 지켜보노라면 더 이상 애처롭지도 안타깝지도 않은 행복을 맛볼 것이다. 소설속의 여느 캐릭터들처럼 우리가 사는 세상의 일원처럼 익숙하고, 혹은 그보다 훨씬 더 친근하고 사랑스럽고 심지어 자랑스럽기까지한 우리의 Christopher가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제목으로 일궈진 씨앗이 탄탄하게 내린 뿌리 생장점 -"개 사건의 미스터리" 프로젝트 해결- 이후에도 독자들에게 15살짜리 주인공 Christopher에게 닥쳐오는 모험의 줄기, 잎과 꽃을 피우는 과정을 마지막 페이지까지 집중할 수 있게 하는 재미를 즐기게 될 것이다. 

  

 

* 덧붙임  

1. 이 책을 읽은 후, Mark Haddon의 『Spot of Bother』를 읽었는데, 여전히 재밌었습니다. 다음 작품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는데 왜 이리 더딘 것인지 그저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2. 최신작 『Boom!』이 2010년 5월 11일에 출간될 예정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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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라임오렌지나무
이희재 지음 / 청년사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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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제 다섯살인 어린애가 '죽는 것'이 소원이라면, 그 아이의 삶은 어떤 것일까? 

   난 바스콘셀러스의 원작을 아직까지 읽어보지 않았다. 언젠간 꼭 원작을 찾아서 읽어볼 생각이지만 당분간은 없다. 왜냐하면 이희재가 그린 이 만화의 감흥이 아직까지 잊혀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희재의 만화는 항상 시대의 비루한 면을 그려왔다. 그를 위대한 작가의 반열에 오르게 한 『간판스타』는 물론이고, 명랑만화인 『악동이』조차 우리가 사는 시대를 배경으로 했다. 그의 만화는 다른 만화에서 찾아볼 수 있는 현실도피적인 요소가 하나도 없었다. 그는 그저 지금 우리땅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그렸다. 이런 것은 『나의 라임오렌지나무』에서도 마찬가지다. 

   겉보기에 제제는 대책없는 말성꾸러기일 뿐이지만, 그는 자신만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능력을 지니고 있으며, 또 집안 구성원 그 누구보다도 사려깊은 존재다. 그저 어린애이기에 특별한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한 장난질이 좀 심할 뿐이다. 그러나 집안에서는 툭하면 손찌검이다. 그것은 가난으로 비롯되는 집안 환경 때문만은 아니다. 제제의 식구들은 가족들간의 사랑이 거세되어 있다. 그들은 가족이라기 보다는 동거인에 가깝다. 

   그런 제제에게 두 명의 친구가 있다. 하나는 집 뒤뜰에 있는 라임오렌지나무이고, 다른 하나는 '뽀루뚜까 아저씨'다. 사랑을 받아야 할 가족들에게 폭력과 야유와 멸시를 받아 '죽음'을 생각하는 제제. 그런 가족의 자리를 대신해주는 라임오렌지나무와 뽀루뚜까는 제제가 계속 살아갈 힘이 된다. 제제만의 상상속 친구와 실재 친구인 그 둘이 있어, 제제는 이 지옥같은 삶을 살아갈 위안을 얻지만, 그 둘은 제제에게서 떠나간다. 

   뽀루뚜까의 죽음과 라임오렌지나무와의 (꿈속에서의) 작별로 제제의 유년기는 끝난다. 제제가 친구들과의 작별로 얻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결국 철이 든다는 것은 사랑이 가득찬 세상과 작별을 하고 비루한 현실로 들어온다는 것이 아닐까? 그런 점에서 『나의 라임오렌지나무』는 참혹한 성장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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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김훈, 독자와의 만남] 잘 다녀왔습니다.
공무도하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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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공무도하』를 읽었을 때의 느낌은 그의 처녀작인 『빗살무늬토기의 추억』의 대구 소설이 아닌가 싶었다. 『빗살무늬토기의 추억』은 바람이 불어오는 것으로 시작하고 『공무도하』에서는 장마전선이 형성되는 것으로 시작한다. 바람과 아직 형성되어 있지 않은 물의 이미지는 우리가 그 존재는 알고 있으나 잡을 수 없는 아득한 것이다. 마치 우륵의 음률이나 타이웨이 교수의 저작처럼. 혹은 매번 돌아오는 끼니나 종묘와 사직처럼. 김훈은 이번 작 『공무도하』에서도 실재하는 관념 혹은 관념적인 실재를 다룬다.

   소설의 한 축은 신문기자 문정수가 취재하는 '물'과 관련된 사건이고, 다른 한축은 편집자 노목희가 진행하는 타이웨이 교수의 저작 '『시간 너머로』'와 관련된 일이다. 이 두가지 이야기가 교차되면서 소설이 진행된다. 기자는 사건에 개입을 하지 않는다. (사람들에게 사건을 전달하기 위해) 관찰할 뿐이다. 편집자는 저작물을 창작하지 않는다. 저작물을 대중에게 드러내기 위해 노력할 뿐이다. 문정수와 노목희는 그저 바라볼 뿐, 개입하지는 않는다. 

   노동운동가였지만 변절한 장철수, 훌륭한 소방수였지만 화재현장에서 장물을 훔친 박옥출, 아들이 개에게 물려죽도록 방치한 오금자, 공사현장에서 무한궤도에 깔려죽은 방미호, 그 아버지 방기남, 그리고 베트남에서 '팔려'왔다 도망친 후에. 이들의 이야기가 신문기사처럼 감정없이 나열되다가 해망이란 지역에서 이들이 모이게 된다. 비루하고 치사하고 던적스러운 인간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살아나가야 한다. 바다밑에 깔린 포탄 고철을 건져서라도, 아이가 죽어서 받은 성금/합의금을 받아서라도. 인간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이 이다지도 힘들고 슬픈 일인지...  

   김훈은 이상을 꿈꾸지 않는다. 그는 이 현실이, 이 세계가 어떤 곳인지 알고 있다. 비루하고 치사하고 던적스러운 인간들이 살고 있는 이곳은 오염한 곳이다. 이 오염한 곳을 벗어나는 방법은, 강을 건너는 것. "시간 너머"의 세계, 죽음이다. 죽음만이 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수 있다. 죽음만이 인간을 해방시켜 줄 수 있다. 그러나 김훈은 "다 같이 죽자"고 선동하지 않는다. 그는 강을 건너지 말고 함께 살아가자 제안한다. 문정수가 장난식으로 타이웨이 교수에게 해망에 와서 해망에 관한 글을 쓰는 게 어떻겠냐고 했을 때 노목희가 무섭게 쳐다본 이유는 바로 그들이 서 있는 공간이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현실주의자와 이상주의자의 차이.

   이 모든 사건을 취재한 문정수는 이 세계에 남았다. 반면 "시간 너머"의 세계에 친착한 노목희는 떠난다. 문정수는 오늘도 인간세계의 던적스러움을 취재할 것이다. 公無渡河. 김훈이 '물을 건너지 말라'는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을 같이 살아가자는 것이 아닐까. 김훈의 『공무도하』는 '시간 너머' 피안의 세계에 도달하지 못한, 강을 건너지 못한, 아니 건넌다는 생각조차 못하는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바치는 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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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공무도하』장철수의 모습에서 다산의 치욕을 보다
    from 이번 크리스마스에 눈이 올까요? 2009-12-04 09:18 
       요즘들어 김훈의 책을 '과하다'싶을 정도로 많이 읽었다. [작가와의 만남]에 다녀오면 좀 그 양이 줄어들 줄 알았는데 어찌된 게 더 늘어났다. 10대 초반에는 이문열(이게 다 『삼국지』 때문이다), 중반에는 이현세, 10대에서 20대를 관통하는 조정래. 20대 초중반의 하루끼. 20대 말의 이토 준지와 고우영 그리고 30대에 만난 박민규, 성석제. 그 외에는 이렇게 전작을 파고든 작가는 없는 것
 
 
톨트 2009-11-12 1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책을 참 부지런하게 읽으시는군요. 공무도하에 관련된 페이퍼들을 찾아 읽다가 여기까지 왔습니다. 좋은 글이네요.

Tomek 2009-11-12 12:25   좋아요 0 | URL
허섭한 글을 좋은 글이라고 칭찬해주시니 몸둘바를 모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무한동력 1
주호민 글.그림 / 상상공방(동양문고)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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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한동력>은 녹록치 않은 우리네 현실을 과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담담히 그려낸 만화다. 때론 등장인물들이 찌질하고 궁상맞은 모습들을 보이지만, 그 또한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모습이기에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물론 극 사실주의로 풀어냈으면 가슴 먹먹한 이야기가 되었겠지만(영화에 비유하자면, <마이 제네레이션>이나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와 비슷한 느낌이 되지 않았을까?) 인물들과 이야기에 유머와 따스함이 있어 충분히 읽을만하다. 

   대학을 졸업해서도 도대체 무엇을 하면서 살아야 할지, 자신의 적성이 무엇인지에 대해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해본적 없는 우리 세대들에게 <무한동력>은 "꿈을 찾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야기의 마지막, 주인공 선재가 두화증권에 취업이 된 것인지 안 된 것인지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선재가 하숙집에 있었던 약 1년간의 기간에서 선재는 삶의 목적이 아닌, 삶의 태도를 배운 셈이니까. 선재, 기한, 솔, 하숙집 아저씨 등 등장인물들의 모습을 통해 자기 자신을 비춰볼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 같다. 취업대란, 금융위기 속에서 점점 삶의 가치가 땅에 떨어지고 있는 이 때에 삶에 대해 한 번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는 것을 참으로 값진 일이 아닌가 생각한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야후 연재 시에 있었던 2편의 무한동력 설정집 그리고 에필로그가 빠져있는 점이다. 작품의 연속성과는 관계 없는 에피소드이지만, 초기의 설정에서 등장인물의 모습이 어떻게 변했는지, 주제가 어떻가 변했는지에 대한 것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그 부분이 빠져서 아쉽다. 에필로그 부분 역시 아쉬운 것은 매한가지. 책에서는 이들 3가지를 한데 묶어 작가 후기를 구성했는데, 원래의 흥이 느껴지지 않아 아쉬움이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한동력>은 우리가 잠깐 잊고 있었던 "꿈"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준 고마운 책이다. 대기업에 시원한 연봉도 좋지만, 그것이 목적이 될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꿈을 향해 다가가는 것, 아니 꿈이라도 꿔본다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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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짬』'군대'마저도 긍정하는 주호민의 힘
    from 이번 크리스마스에 눈이 올까요? 2009-12-04 10:25 
       남자들에게 있어 군대는 폭력에 길들여지고, 그 길들여지는 것을 시스템으로 익히는 사회의 훈련장이다. 사회의 작동 원리는 직접적인 폭력은 없으나, 그보다 더 정교한 방법으로 시스템을 이루고 있다. 막내일때는 죽을듯한 폭력에 길들여지고, 그 폭력에 길들여진 막내가 고참이 되어서는 그 길들여진 폭력을 이용해 그 시스템을 존속시키는, 돌고 도는 영겁의 관계가 존속된다. 그렇기 때문에 일반적인 '우리'가 군대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내가
 
 
 
드래곤 헤드 1
모치즈키 미네타로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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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갑작스레 눈을 뜬다. 주위는 어둡고 사물을 분별하기는 힘들다. 역한 비린내가 코를 쑤신다. 익숙치않은 어둠을 이기고 주위를 둘러보니 자신의 친구들이 끔찍한 상태로 죽어있다. 살아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것은 꿈이다. 꿈이다.. 꿈이다... 꿈.... 

   모치즈키 미네타로의 <드래곤헤드>는 이와 같은 황당함(혹은 상상하기 싫은 가장 끔찍한 공포)으로 시작한다. 불과 몇 분전까지만 해도 평범한 일상이었다. 교토에서 도쿄로 돌아오는 수학여행 귀경길. 서로 CD를 바꿔들으면서 그리고 정말 재수 없는 선생(뭐 흔히들 게쉬타포라 불리는 선생은 어느 학교에든지 꼭 있지 않은가)을 씹으면서 돌아오는 길에 갑작스레 '어떤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여기서 '어떤 사고'는 무엇인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화산이 폭발했는지 아니면 핵전쟁이 일어났는지에 대한 해답은 6권에서야 밝혀진다). 문제는 갑자기 어떤 충격으로 인해 정신을 잃고, 다시 정신을 차리니 살아있는 사람은 자신밖에 없다는 일이다. 나머지 생존자 두 명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자신이 믿기 힘든 일이 눈앞에 벌어지고 나서 주인공인 테루가 정신을 수습하기에는 꽤 긴 시간이 흐른다. 신간선 열차의 유일한 생존자인(아직까지는) 테루가 주위를 둘러보고 나서 자신은 이 열차의 유일한 생존자이며 이 열차에 타고 있던 승객 전원과 자신은 매몰된 터널에 갇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혹시나 하는 생존자를 찾던 도중 세토라는 여자아이와 노부오라는 남자아이를 발견한다. 더 이상의 생존자는 없으며 어둠과 죽음만이 존재하는 매몰된 터널 안에서 이들은 정신적 패닉상태에 빠진다. 이들 셋이 망가지는 과정은 이들의 현실에서의 삶과 연관되어 망가진다. 

  

테루와 세토 

   테루는 이들 셋 중 살아야 할 목적의식이 가장 투철하다. 자신이 매몰되었음을 가장 먼저 알아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구를 찾는데 가장 적극적이다(게다가 가장 덜 망가진다). 테루는 너무나 단란한 가정이 있고, 학교에서의 생활도 별 문제가 없어 보인다. 그는 이 끔찍한 상황을 벗어나야 한다. 이 안에 있으면 그는 잃을 게 많기 때문이다. 

   반면에 노부오는 지옥과도 같은 이곳을 빠져나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이곳은 말그대로 지옥이다. 친구들과 선생님의 시체는 이상열기로 부패하고 있는 상태고 음식물도 남은 게 거의 없는 상태다. 주위는 온통 어둠으로 둘러쌓여 있는데도 노부오는 붕괴된 터널 안에서 그보다 더 작은 공간인 시체들이 즐비한 객차 안으로 들어간다. 노부오는 왕따 학생이었(던 것 같)다. 그에게는 친구가 없었다. 선생님이건 학우들이건 그는 언제나 놀림감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바꾸었다. 노부오를 놀리던 이들은 다 죽어버렸다. 이제 노부오만이 절대적인 권력을 휘두를 수 있게 되었다. 자신을 우습게 봤던 모든 이들은 이제 노부오의 지배권 하에 있었다. 시체를 태우건 쑤시건간에 노부오 맘대로다. 단, 살아있는 두 사람만 빼고는... 

   이들 서로의 긴장 관계는 권력 쪽으로 흐른다. 남아있으려는 노부오와 탈출구를 찾으려는 테루 사이에서 세토는 갈등하게 된다. 세토는 이 곳을 떠나고 싶은 마음은 없어 보인다. 단지, 이 상황을 벗어나고 싶어하는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세토는 테루처럼 돌아갈 곳이 없기 때문이다.(그녀의 부모님은 돌아가셨다)  

   노부오는 점점 공포에 잠식된다. 그래서 (아프리카의 어느 부족들처럼)자신의 몸에 문양을 그려 자신을 숨기기 시작한다. 객차가 자신의 통제권 안에 있다 하더라도 그는 불과 17살(이 만화에서는 나이는 명시되지 않았지만 수학여행은 대개 고 1때 갔다오니까 그쯤 되지 않았을까?)이다. 수많은 시체더미(게다가 이상열기로 부패가 급속도로 진전되고 있는 상황)안에서 그는 방향을 상실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앞서 얘기했던 정말 재수 없던 선생('미니라'라는 '괴수'이름으로 불리는)의 시체를 끌고와 왕좌에 앉힌다. 그라면 이러한 모든 상황을 통제할 수 있을 것 같기에.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부오는 점점 더 공포에 잠식된다. 눈에 보이지 않는 그 어떤 것, 그 무엇이 자신을 조여오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노부오  

"난 왕따여서 알 수 있어... 무서운 것은... 없애버리던지 아님 친구가 되어버리던지 둘 중 하나라는 거야." 

   결국 그는 어둠과 친구가 되는 조건으로 미니라를 제물로 바친다. 어둠은 그 댓가로 노부오를 어둠속으로 끌고 들어간다. 

   인간은 모든 것을 자신의 눈으로 확인하고 싶은 존재다. 처음의 테루와 노부오도 그랬고, 나중에 테루와 세토가 동경으로 가는 까닭은 '자신의 눈으로 이 모든 소문의 진위를 확인해보고 싶어서'이다. 계속되는 공포를 피하고 싶어서 더 큰 공포를 만든다(이건 이토 준지의 만화에서도 다루고 있는 주제이다). 자신의 눈으로 확인하고 싶은 행동은 대개가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한 무모한 행동이다. 우리는 공포영화에서 그런 것을 많이 보아왔다.(지하실에서 소리나는 그 무언가를 보기 위해서 일행과 떨어지는 인물들같은 경우) 그들 모두가 죽는 것을 알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직접 확인한다. 이건 이성의 힘이 아니다. 그저 본능이다. 그렇다면 이성의 힘이 발휘되는 것은 어떤 상황에서일까? 

   눈에 보이는 공포와 눈에 보이지 않는 공포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폴 바호벤이 감독한 <스타쉽 트루퍼즈>와 <할로우 맨>을 예로 들어보자. <스타쉽 트루퍼즈>는 벌레와 인간의 싸움이다. 엄청난 떼로 몰려드는 벌레에게 사지가 절단되고, 목이 날라가고 다리가 갉아먹히고 내장이 튀어나오고 피가 사방에 흩날리는 지옥도와 같은 풍경이 펼쳐지지만, 관객은 그것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거짓이기 때문에. 분명히 우리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긴 하지만, 그것은 허구이고 더구나 관객의 시선은 모든 것을 구경하는 구경꾼의 시선이기 때문에 공포가 개입될 여지가 없다. 반면에 <할로우 맨>은 투명인간이라는 대상은 영화속 등장인물들뿐만 아니라 우리 눈에도 보이지 않는다. 투명인간이 된 세바스찬이 그의 동료들을 죽일 때 눈에 보이지 않는 적을 향해 맞서는 인물들을 보면서 우리는 그들과 같은 공포를 느끼게 된다.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으니까. 우리가 파악할 수 없는 존재니까. 

   투명인간은 영어로 'Invisible Man'이다. 그런데 폴 바호벤 감독은 왜 'Hallow(속이 텅 빈) man'이라 했을까. 플라톤은 <국가론> 2권에서 투명인간의 예를 들었다. 한 남자가 투명인간이 되는 반지를 줍자 그는 그 반지를 껴서 투명인간이 된 후 궁전에 들어가 왕비를 탐하고 왕을 죽이고 그 나라의 왕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즉 인간이 내적인 도덕률 때문에 올바르고 겸손하게 사는게 아니라 사회의 구속력에 어쩔 수 없이 순종하기 때문에 그런 것처럼 보이는 것일 뿐이라는 얘기다. 만일 그러한 구속력이 다 제거된다면 과연 인간은 어떻게 변할 것인가? <할로우 맨>은 이러한 물음에 끔찍하게 대답한다. 말 그대로 투명인간이 된 인간을 그 자신의 외적인 모습뿐만 아니라 그 자신의 내면까지도 텅 비게 만든 것이다. 우리가 지금껏 배워오고 반복학습하며 믿고있는 최소한의 양심이라는 것이 우리를 구속하는 그 모든 것이 사라진다면 전혀 쓸모 없는 것이 되어버린다는 것. 그 자체가 공포가 아닐런지.  

   노부오는 자신을 구속하는 모든 것이 사라지자 인간이라고는 믿기 힘든 모습을 보여주었다.(어쩌면 그것이 인간의 본 모습일지도 모른다) 친구와 선생님의 시체를 능욕하는 것과 죽음에 임박했다는 것을 느끼며 세토를 강간(성공은 못했지만)하는 것은 옳고 그른 잣대를 댈 일이 아니다. 그는 자신의 분별력으로 판단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해있고 그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구속력은 사라져 버렸다. 

   터널 안은 이성은 사라지고 본능만이 남은 세계이다. 테루, 노부오, 세토 이들 셋은 각기 방법은 다르지만 서로 살려고 한다. 자신에게 방해가 되면 가차없이 죽이려 한다. 모든 것을 자신의 눈으로 확인하려 한다. 이상한 소문은 믿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그러한 소문들을 직접 확인하고 싶어한다. 모든 것이 꿈일 것이라 생각하지만 눈을 뜨면 여전히 끔찍한 현실이다. 이성은 꿈속에서만 발휘되고 현실에서는 본능만이 있다. 살아야 한다. 

   그 끔찍한 지옥에서 벗어난 테루와 세토는 여러가지 사건을 겪고 마침대 도쿄에 도착하고 그곳에서 이상한 집단과 마주치게 된다. 그들은 목이 (반쯤)베어져 있거나 팔 혹은 다리가 잘리거나 상처를 입었다. 그들은 스스로를 자해한 집단이다. 언제부터 시작되어진지도 잊어버린 끔찍한 공포속에 머물러있다 보니 감각 자체를 잊어버린 것이다. 그들은 감각을 찾기 위해서 스스로를 자해한 것이다. 그리고 구조활동을 벌이는 구조대를 사냥(!)해서 목을 베고 불을 피우며 구조대를 공포에 떨게한다. 공포에서 벗어나는 길은 더 큰 공포뿐이라면서. 

   마침내 테루는 집에 도착한다. 자신의 눈으로, 파괴된 자신의 집을 확인한다. 결국 테루는 모든 것을 다 확인했다. 어쩌면 제일 무서운 상황은 이것이 아닐까. 모든 상황을 다 헤집고 결국 살아남아 확인했을 때, 그나마 어렴풋하게 가지고 있던 기대가 완전히 박살나는 상황. 만화나 영화야 이런 상황에서 THE END하면서 상황종료 하면 되지만, 그것이 만일 현실이라면 그 상황을 짊어매야하는 주인공의 심정은 '공포 그 자체'가  아닐까. 

   이 걸작이 절판인 상태로 머물러 있다는 것은 참으로 아쉬운 일이다. 그렇다고 애장판이나 완전판이 나오기에는 주제가 너무나 무겁고 심각해 잘 팔리지 않을 것 같기도 하고. 재판본으로 다시 감상할 수 있을 기회가 있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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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ngda 2009-11-07 0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제 책장에도 꽂혀있는데... 예전에 재밌게 봐서 헌책방에서 샀는데 다시 보진 않아서 글도 보진 않았어요~

Tomek 2009-11-07 12:01   좋아요 0 | URL
제 리뷰는 읽지 않으시더라도, 책은 꼭 다시 읽어 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