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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 제2차 세계대전 만화 1권
굽시니스트 지음 / 애니북스 / 2008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나도 이제 나이가 든 것일까? 아니면 세상의 흐름에서 조금씩 밀려나는 것일까? 요즘들어 읽는 책들은 왠지 세월의 흐름을 느끼게 하는 책들이 유독 많은 것 같다. 굽시니스트의 『본격 제2차 세계대전 만화』또한 그 목록에 추가시켜야 할 작품이다.
일단 이 책의 위치 선정이 애매하다. 교양만화라 하기에는 너무 많은 패러디로 이야기를 이어간다. 아마도 이 만화가 디시 카툰 갤러리에서 연재되었기 때문에, '변방문화(오타쿠, sub culture)'에 익숙한 세대들에게 '2차 세계대전사'를 이야기하기 위해선 그 변방문화를 이용한 패러디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만화가 화제가 됐고, 책으로도 나올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문제는, 그 문화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겐 상당히 불편한 책으로 다가올 수 있는 것이다. 2차 세계대전을 이 책으로 처음 접하는 사람들에겐, 2차 세계대전사에 대한 지식과 그 이야기를 풀어가는 수많은 패러디까지 알고 있어야 이 만화를 읽을 수 있다. 그런 수고를 덜기 위해서 각 장(章) 말미마다 패러디에 대한 해설을 달고 있지만, 편하게 읽기에는 조금 벅차다.
『본격 제2차 세계대전 만화』는 모르는 것을 친절히 알려주기 보다는, 아는 만큼 킬킬거리며 즐길 수 있는 책이다. 이 책은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 최규석의 『100도씨』와 같은 궤를 하기 보다는, 최의민의 「불암콩콩코믹스」, 이말년의 「이말년씨리즈」와 같은 궤를 한다.
최의민의 「불암콩콩코믹스」 전선을 가다 中, 그리고 밑에 달린 '해설' 베플. 그냥 읽어도 재미 있지만, 밑에 깔린 사실들을 이해할 때, 그 재미는 걷잡을 수 없어진다.
이말년의 「이말년씨리즈」 65화 동물의 읍내 中. 동물의 '왕국'을 패러디한 제목부터, 한참 문제시되는 학생들의 '빵셔틀', 김성모 만화, 꿀벅지, 속담, 명견 실버까지. 이말년의 패러디는 한계가 없다. 때문에 그의 작품은 독자들이 느끼는 기복이 심한 편이다.
그러나 패러디만 일삼는다고 만화 자체의 매력이 없는 것은 아니다. 2장 [폴란드 기병대의 영광]에서는 전쟁 역사속에서 인간과 함께한 말(馬)이 화자로 나와 독일군과 폴란드 기병대간의 전투를 서술, 인간, 가족으로서 겪는 전쟁의 고통을 말의 관점에서 이야기한다. 12장 [레닌그라드, 가족]에서는 블라디미르 블라디미로비치 푸틴의 가족사를 들어, 전쟁이 개인에게 가혹한 운명을 주지만, 그 운명을 바꿀 수 있는 것 또한 개인이라는 사실을 이야기한다. 패러디부분 또한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부분 한에서 배꼽을 쥐며 낄낄거렸고. (개인적으론 스탈린-라이토 『데스노트』 패러디가 가장 웃겼다.)
리뷰가 갈팡질팡했는데, 지금도 갈팡질팡하다. 교양만화로써 이 책을 선택한다면 비추한다. 그러나 2차세계대전사와 지금 10, 20대들의 관심사와 변방문화(오타쿠, sub culture)를 함께 이해하고 싶으면 이 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