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 없는 시대에 꿈을 꾼다는 것
- 솔직 담백 군대 이야기
주호민 지음 / 상상공방(동양문고)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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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자들에게 있어 군대는 폭력에 길들여지고, 그 길들여지는 것을 시스템으로 익히는 사회의 훈련장이다. 사회의 작동 원리는 직접적인 폭력은 없으나, 그보다 더 정교한 방법으로 시스템을 이루고 있다. 막내일때는 죽을듯한 폭력에 길들여지고, 그 폭력에 길들여진 막내가 고참이 되어서는 그 길들여진 폭력을 이용해 그 시스템을 존속시키는, 돌고 도는 영겁의 관계가 존속된다. 그렇기 때문에 일반적인 '우리'가 군대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내가 당한 폭력에 대한) '분노'와 (그 폭력을 이용해 지위를 누린) '죄책감'이다. 이 분노와 죄책감이 서로 뒤엉켜 있기 때문에 남자들은 군대에 입대하는 꿈을 자주 꾼다. 그 내용은 대동소이하다. '나는 군대를 제대했는데, 병무청에서 전산착오가 있으니 다시 가라고한다. 울며겨자먹기로 군대에 가니 그곳에는 내 옛 고참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아마 대부분의 군대를 다녀온 남자들이 몸상태가 안좋을 때 꾸는 꿈 내용일 것이다.  

   매체에서 군대 이야기를 다루지 않은 이유를 난 이렇게 생각한다. '분노'를 이야기하기엔 한쪽에 자리잡고 있는 '죄의식'이 같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당한 분노를 이야기하려면 내가 저지른 죄의식도 같이 고해성사해야 한다. 그럴바에야 차라리 잊고 지내는 편이 낫다고 아마 대다수의 남자들은 생각하는 것 같다. 나 역시도 그랬으니까. 분노가 아닌 죄의식으로써 군대를 다룬 최초의 작품은 아마도 윤종빈 감독의 『용서받지 못한자』일 것이다. 

   만화가 지망생 주호민을 일약 '스타 작가'로 만든 『짬』은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매우 어정쩡하고 독특한 위치에 있는 만화다. 그는 이 지옥같은 군대생활을 '아~ 군대 한 번 더 가보고 싶다'는 말도 안 돼는 생각이 잠깐 들게 할 정도로 재밌고 따듯하게 그려냈다. 아무리 요즘 군대가 신체적인 폭력이 없어졌다고 해도(정말 그렇게 됐다고 믿고 싶다!!) 인간적 수치심을 불러 일으킬 언어 얼차려는 분명 존재할 것이고, 자신의 편함을 위해 수많은 자기 합리화와 떠넘김이 이루어지는 곳이 군대일 텐데, 그의 작품에서는 이런 것들을 발견할 수 없다. 

   군대가 편해졌기 때문에 주호민이 이렇게 그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그와 나의 군입대 기간은 겨우 5~6년 정도의 차이뿐이다. 우리는 같은 시대에 군대를 체험했다). 아무리 편해져도 군대는 군대다. 시스템이 바뀌지 않는 한, 군대는 시지프스의 돌처럼 계속 그 자리에 맴돌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짬』이 따듯한 이유는 작가 주호민의 천성 때문이다. 그는 천성이 따듯한 사람이다. 그의 최신작 『무한동력』을 보면 그가 얼마나 따스하고, 애정이 많은지 알 수 있다. 그는 차가운 '오늘의 현실'과, 기성 세대들에게 '88만원 세대'로 개념화된 그의 친구들을 더없이 따스하게 안는다. 목표가 꿈이 되고, 꿈이 현실이 되어 방황하는 그의 친구들을, 그리고 그들을 방황시키는 이 사회를, 그는 욕하거나 부정하지 않고, 같이 '꿈을 갖고' 살아가자고, 웃으면서 긍정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그의 자전적인 만화 『짬』에서 그의 군생활을 긍정할 수 있었다. 웃으면서 긍정하기. 이것이 주호민 작품의 가장 큰 힘이고 미덕이다. 

   분노와 죄의식으로 점철된 군대 생활을 너무 나이브하게 그려낸 것 아닌가 하는 비판을 할 수도 있지만, 이렇게 세상을 긍정하는 작품을 난 아직 많이 보지 못한 것 같다. 이런 작품이 많이 나오고 난 후에, 그 때가 되면 이 작품을 비판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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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짬 시즌2』 여전히 따스한 그의 시선
    from 내가 읽은 책과 세상 2010-07-10 08:01 
    남자들에게, 아니 군필자들에게 있어 군대란 기억은 거의 대부분이 악몽으로 자리 잡고 있다. 난 분명 전역을 했는데 전상상의 실수로 다시 군대를 다녀와야 한다는 절망적인 통보와 우여곡절 끝에 다시 군대에 가니 그 지옥 같던 선임들이 날 기다리고 있더라는 꿈은, 정말이지 아마 대부분 꿔봤을 것이다.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시대와 공간과 사람이 전부 다른 개별적인 경험이 어떻게 똑같은 트라우마를 가지게 되는지.   원경험에서 2차로 각색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