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마장 가는 길 민음사 오늘의 작가 총서 15
하일지 지음 / 민음사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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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주머니네들과 저 이야기가 무슨 상관이 있다고 그렇게 열심히 보고 있데요?"
   R은 깍두기를 버적버적 씹으며 건너편 탁자 앞에 웅크리고 앉아 텔레비전을 쳐다보고 있는 두 여자를 향하여 말했다. 그러자 두 여인 중 하나가 꿈에서 얼핏 깨어난 눈으로 R을 돌아보며
   "그래도 재미있잖아요."
   하고 말했다. 그리고 다시 텔레비전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하일지의 첫 장편 소설 『경마장 가는 길』을 읽으면서 든 느낌은 홍상수 감독의 <강원도의 힘>을 봤을 때와 거의 같다. 매체는 다르지만, 두 작품 모두 삶의 '지리멸렬'함을 다뤘다. 하지만, 내게 다가온 느낌은 그런 추상적인 느낌보다는 조금 더 구체적인 이미지로 다가왔는데, 마치 인물들을 CCTV로 감시한 느낌이었다. <강원도의 힘>이 카메라의 역할이 CCTV와 같은 느낌으로, 인물에 대해 개입하지 않고 항상 일정한 거리에서 인물들의 짓거리를 보여주었다면, 『경마장 가는 길』은 <타인의 삶(Das Leben der Anderen)>에서 비즐러가 드라이만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한 사항을 문서로 작성한 느낌이 들었다. 이 소설은 3인칭 관찰자 시점의 극단을 보여준다. 

   소설의 내용은 정말 간단하다. 프랑스에서 유학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온 R은 시간 강사 자리를 구하고 본가가 있는 대구와 강의를 하는 서울을 왕복한다. R은 프랑스에서 같이 생활한 J와 섹스를 원하지만, J는 계속 거부한다. R은 한국에서의 생활을 힘들어하며, 부인과 이혼을 결심하고 J와 같이 프랑스로 갈 계획을 한다. 그러나 J의 우유부단함으로 R은 J와 함게 프랑스로 떠나지 못하고, 지금까지 겪은 일을 소설로 쓰기 시작한다. J에 대한 이야기- 그녀는 순전히 R 덕분에 박사학위를 땄고, R의 원고로 문학평론가가 됐다. 알다시피 대한민국엔 이런 얼치기들이 교수, 평론가랍시고 위세를 떠는 경우가 꽤 있다 -를 조금 제외한다면, 소설의 내용은 이게 다다. 그런데 이 내용이 무려 680여 페이지에 걸쳐 서술돼 있다. 그런데 더 당황스러운 것은, 이런 일상의 지리멸렬한 묘사가 생각외로 재미있다는 점이다.

   여러 사건이 벌어지지만, 이 소설에서 가장 중심 사건은 R과 J의 이야기다. R은 한국에 돌아오지만, 고향에 돌아왔다는 느낌보다는 어떤 이질감을 느낀다. 프랑스에서는 '치질에 걸렸을 정도로' 논문을 쓰고 출판을 하고 박사학위를 받은 생산적인 활동을 했으나, 한국에 돌아와서는 '시간을 버리는' 행동만 반복하고 있다. 어떤 일말의 불안감이 R을 짓누르고 있다. 그래서 R은 J를 원한다. R의 표현대로 J의 '자궁에 사정을 하길 원'한다. J는 R과 함께 프랑스에 있었고, 오랜 시간을 R과 같이 있었다. R에게 있어 J는 지금의 불안함을 해소시켜줄 존재이다. 그러나 J는 프랑스에서 R과 같이 지냈던 때의 J가 아니다. 그녀는 적당히 '서울'에 적응한 상태다. 조금 길지만, R과 J의 대화를 인용해보기로 한다. 그들은 R이 한국에 들어온 때부터 J와 헤어질 때까지 대화의 소재만 바뀔 뿐, 거의 흡사한 패턴으로 대화를 진행한다. 

   "내가 D 잡지의 이번 호에 난 C 소설가와 대담한 너의 인터뷰 기사를 읽었다. 그리고 내가 거짓말을 하나도 안 보태고 말하는데 그 글의 첫 문장을 열 번은 읽었다. 그런데 내가 양심적으로 말해서 열 번을 주의 깊게 읽었지만 네 글의 그 첫 문장을 나는 끝내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그 문장에서 네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아내지 못했다는 말이다. 물론 그 문장을 내가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그 문장이 통사론적으로 완전히 뒤틀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글의 마지막에 네가 C 씨에가 한 질문 '선생님의 소설들이 십 년 후에도 공인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하는 것도 틀려 있다. 이것은 물론 통사론적으로 틀린 것이 아니라 어휘 선택의 부정확성 때문에 틀린 문장이 되고 말았다. 네가 그 질문에서 C 씨에게 묻고자 하는 것은 C 씨가 그 자신의 소설 작품들이 십 년 후에까지도 독자들에 의해 읽히고 또 평가받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느냐 하는 것이었겠지. 그렇다면 '공인'이라는 말은 부적확한 말이다. 공인이란 말의 뜻은 공식적으로 인정하다라는 뜻일 게다. 그렇다면 네가 한 질문은 '선생님의 소설들이 십 년 후에도 공식적으로 인정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하고 묻는 것이 된다. 그렇지만 소설이라는 게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안 하고 하는 게 어디 있느냐"
   "알아요, 알아! 저도 다 알고 있어요."
   "너도 다 알고 있었느냐? 알고 있으면서 왜 너는 그렇게 썼느냐? 그것도 대외적으로 발표하는 글에? 그게 나한테는 이해가 가지 않는구나. 어쨌든 이번에 네가 발표한 글에서 가장 잘 읽혀 나가는 부분은, 그리고 전혀 문법적으로 하자가 없는 부분은 내 논문의 몇 부분을 베껴 넣은 데더라."
   "알았단 말이에요! 제발 이젠 그만 하세요!"
   J는 다시 히스테릭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러나 R은 개의치 않고 계속했다.
   "이렇듯 너와 대화를 하다 보면 너는 너의 그 이상한 문장들처럼 비논리적이다. 나는 지금 너에게 왜 네가 두 주일 전에는 날 따라 외국에 나가겠다고 해놓고 지금 와서는 그토록 바뀌었는가 하는 것을 묻고 있다. 그런데 너는 '저는 안 가요! 안 간단 말이에요! 안 간다고 하잖아요!'하고 소리소리 질러댄다. 그게 내 질문에 합단한 대답이 되느냐?"
   "그럼 제가 어떻게 말해야 해요?"
   "어떻게 말해야 하느냐고? 그 경우 네가 만약 내가 묻는 말에 대답하기 싫다면 '그건 비밀이에요.' 혹운 '대답하고 싶지 않아요.' 라고 말하거나 아니면 차라리 묵비권을 행사하면 되는 거지. 그렇기는 하지만 원칙으로 말하면, 네가 그토록 가겠다고 약속을 했던 것을 생각하면, 그리고 나와의 인간적이 오랜 정분을 생각하면, 그리고 내가 지금 몹시 피곤해할 수도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너는 성실하게 내 질문에 대답해 주는 것이 더 옳겠지. 이도 저도 아니고 무대까리로 '안 가요! 안 간다고 했잖아요!'하고 소리소리 지르니 내가 널 미쳤다고 할 수밖에."
   J는 웃고 있었다. R은 멀건히 그녀를 쳐다보다가 말했다.
   "너는 웃고 있구나. 너는 어떻게 웃을 수 있니?"
   "미쳤으니까 웃지요."
   "J야, 넌 왜 그렇게 됐지? 프랑스에서는 그러지 않았는데....... 서울 와서 사니까 그렇게 되더냐? 나는 마음속으로 깊이 깊이 슬퍼하고 있다."
   "그럼, 저더러 어떡하란 말이에요?"
 

   J는 아무것도 혼자 결정하지 못한다. 아니, 자신의 생각이 없다고 보는 편이 맞겠다. 그녀는 그저 R의 결정을 따를뿐이다. 아니, R의 비위를 맞춘다는 것이 맞을 것이다. 논리적으로 무장한 R을 상대하기에 J는 무력하다. 그녀는 그저 R과의 상황을 회피할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R과 같이 지내는 것은, R이 그녀의 비밀을 너무 많이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가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은 R과의 섹스를 거부할 때 뿐이지만, 그나마도 그 이유를 설명하지 못한다. 

   "너는 내가 이젠 정말 싫으냐?"
   그녀는 대답은 않고, 그 작은 입을 꼭 다문 채, 머리를 좌우로 두서너 번 저었다.
   "그리고 또 다른 질문이 있다. 너 그사이에 남자가 생겼니?"
   그녀는 아까와 똑같은 자세로 다시 머리를 좌우로 두서너 번 저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질문이 떨어지고 머리를 흔들기까지 약간의 시간적 틈이 있었던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확실하지 않다. R은 계속해서 말했다.
   "그렇다면 왜 그러니?"
   그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그녀는 아무 말 하지 않고 눈도 하나 깜짝하지 않고 꼿꼿하게 앉아만 있었다.
   "너의 이러한 태도의 이데올로기는 뭐니?"

   한국과 J, 그리고 그의 아내에게 시나브로 지쳐가는 R은 문득 자신이 겪는 일이 비현실적으로 느끼기 시작한다. 그는 J에게 자신의 소설론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이것은 R의 입을 빌린 작가 하일지 자신의 소설론이기도 할 것이다.  

   "나는 한국에 돌아온 지 이제 거의 한 달이 됐지. 그동안 나는 흡사 내가 허구의 세계 속에 살고 있다는 생각이 문득문득 들어. 가령 길에서 보는 사람들의 표정 하나하나가. 버스에서 듣는 대화들의 토막들이, 그리고 지금 저기에서 술을 마시고 있는 남자들의 동작 하나하나가 모두 나한테는 허구적으로 보여. 왜냐하면 그런 것들은 모두 그 원인도 결과도 그리고 의미도 알 수 없는 것들이기 때문이지."
   J는 다시 한 번 고개를 돌려 그녀의 뒤를 돌아보았다.
   "이 서울에서는 내가 길을 걸어가거나, 너와 만나 대화를 나누거나, 이렇게 식당에 앉아 식사를 하거나,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 변소로 가 대변을 보거나, 길가에서 오줌을 누거나, 나의 일거수일투족은 모두 허구의 세계에서 기획되어 있는 행동들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 나, R이라는 존재 자체가 어느 소설가에 의해 허구적으로 만들어진 것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나, R이 지금 너, J에게 말하고 있다는 것마저도 현실적인 것이 아니라 어느 소설가에 의해 쓰이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닐까 싶어. 나는 너에게 섹스하기를 요구한다, 그러나 너는 회피한다, 이런 것도 나에게는 너무나 재미있는 서울이라는 거대한 허구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알 수 없는 사건들이라고 생각돼. 나는 이따금 내가 날마다 보고 듣고 느끼고 하는 것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낱낱이 기록해 두면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하나의 소설이 되리라는 생각이 들어. 그걸 있는 그대로 기록해 두면 대단히 신비한 느낌을 자아내게 하는 하나의 거대한 예술 작품이 되리라고 생각해. 물론 그런 유형의 소설이 나오면 무식한 독자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하겠지. 어느 시대든지 참된 소설의 독자는 언제나 무식하게 마련이지."
 

   소설이 거의 끝나갈 때, 나는 두 번의 충격을 받았는데, 하나는 이 소설이 3인칭 관찰자 시점이 아닌, 1인칭 관찰자 시점의 글로도 읽힐 수 있다는 것이었고(그런데 이 소설에서 그 차이는 뭐지? 작가는 '지독한' 관찰자 시점으로 1인칭과 3인칭의 경계를 허물어놓았다), 다른 하나는 마지막에 R이 쓰는 소설이, 화자가 쓴 소설과 맞물려 들어간다는 점이었다. 소설 안의 소설이 소설 밖의 소설과 연계되어 반복되는 윤회구조. 왜 이 지리한 소설이 '한국문학의 포스트 모더니즘을 알린 소설'이라 소개되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물론 생각할만한 것도 많이 있다. 일상의 충실한 복제가 예술의 숭고함을 나타낼 수 있을까?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하지만, 이 지리멸렬한 서술과 반복되는 상황, 그리고 갑자기 돌출되는 극적인 행동들은 우리의 삶을 뒤돌아보게 하는 힘이 있다. 예술이 예술 그 자체로 사람들에게 경외감을 불러 일으키기 보다는, 예술이 그 예술을 향유하는 사람들의 삶을 반추하게 한다. 그 자체로 존재하여 위대한 예술로 여겨지던 소설이, 일상의 시대와 언어를 그대로 담아냄으로써 탈권위적이 되었다고나 할까? 구소련의 해체와 이데올로기의 종언 이후와 맞물린 이 소설의 등장은 그래서 의미심장하게 느껴진다. 

 

 

*덧붙임: 

1. R을 [알]이라 발음해야할지, [아르]라 발음해야할지 난감합니다. 예전에 전 직장에서 국립국어원에 문의한 결과 R의 발음은 [아르]가 맞다고 해서, 수학교과서의 'r은'이 'r는'으로 모두 바뀌는 일이 있었지요. 문자로 표기할 때는 그나마 나은데, 이걸 녹음할 때는 문제가 좀 있었습니다. 성우분께서 한사코 [알은]이라고 발음을 하셔서, 제발 [아르는]이라고 녹음해달라고 했던 해프닝이 기억납니다. 민음사에서는 작가님의 의견을 존중해 R을 [알]이라고 표기한 것 같은데, 어떤 것이 맞는지 전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원문을 따르건 따르지 않건, 117쪽 밑에서 9째 줄, "잔치가 끝나고 R와 R의 어머니와 아버지' 부분은 오타네요. ^.^;

2. 그러고보니 '경마장'에 대한 언급을 하나도 못했군요. 무책임하게 얘기하자면, R이 언급하는 '경마장'은 어떤 '이상향'이나 '도피처'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경마장을 한 번도 가보지 못했는데 갑자기 떠올랐다는 그의 고백에서 어쩌면, 『경마장 가는 길』이란 소설을 쓰는 행위는 그가 한국에 돌아와서 받은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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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경마장 가는 길』영화라는 형식을 무력화시킨 장선우식 농담
    from 내가 읽은 책과 세상 2010-03-25 14:08 
       장선우 감독의 세 번째 영화(선우 완 감독과 공동 연출한 <서울 황제>까지 포함하면 네 번째) <경마장 가는길>은 전적으로 원작자인 하일지 작가에 기대어 있다. 장선우 감독은 이 영화의 각색과 시나리오를 하일지 작가에게 맡겼다. 그래서인지 이 영화의 줄거리는 원작 소설과 거의 똑같다. 심지어 그 지난한 문어체의 대사까지 거의 그대로 진행한다. 장선우 감독은 이 소설을 옆에서 읽어주듯이 정말 그대로 영상화
 
 
 
이토 준지의 고양이일기 욘&무
이토 준지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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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수의 매니아들만 기억하는 괴팍하고 끔찍한 만화를 그려온 이토 준지는 이제 거장이 되었다. <헬 보이>와 <판의 미로>를 감독한 지구 반대편에 살고 있는 멕시코 출신의 기예르모 델 토로 또한 그의 이름을 알고 언급할 정도이니, 그의 영향력은 일본을 넘어 전지구적으로 확대된 상황이다.  

   87년에 「토미에」로 데뷔해 90년대 전성기를 누리고, 2000년대 또한 걸작까지는 아니더라도 꾸준히 수작을 발표하고 있는 이 호러만화가가 이번에는 의외의 작품을 내놓았다. 『이토 준지의 고양이 일기 욘&무』는 그의 일상을 그린 만화다. 물론 그는 여러차례 자신의 일상을 만화로 풀어놓았다. 대부분 '저자 후기'에 2~4 페이지 정도로 짧게 그린 경우지만, 짧은 분량의 단편 또한 풀었었다. 「논논 두목」과 「논논 두목의 숨바꼭질」이라는 작품에서 그는 그 자신과 어머니 그리고 15년을 함께 살아온 논논이라는 이름을 지닌 개에 관한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놓았다. 그 만화를 보면 그가 엉뚱하지만 얼마나 섬세한 사람인지를, 그리고 그와 어머니가 논논을 얼마나 사랑했는지를 알 수 있다. 이 만화는 『이토 준지 공포박물관 9권 오시키리의 괴담 & 프랑켄 슈타인』 제일 마지막에 실려 있다. 

   그런 그가 고양이를 소재로 삼았던 적이 있다. 『어둠의 목소리 궤담』에 실린 「소이치의 애완동물」편에서 고양이가 등장하는데, 고양이의 사랑스러운 면과 공포스러운 면이 다 담겨 있다. 이 작품을 보면서, 아마도 이토 상이 고양이에 관심이 생겼나보다 생각했었는데, 고양이를 키우고 있는줄은 몰랐다. 애정이 있기 때문에 그런 양면을 파악할 수 있는 것이겠지만.

   이 책 『욘&무』는 호러만화가 J와 그의 아내 A코가 친정에서 데려온 욘(四)이라는 고양이와 새로 맞이한 무(六)라는 고양이를 키우는 이야기이다. 굳이 비슷한 형식을 찾자면, 메가쇼킹 작가의 『탐구생활』시리즈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토 준지가 어떤 사람인가. 그는 평범한 일상을 독특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작가다. 그리고 그의 스타일이 어디 가겠는가? 이 만화는 강아지를 사랑하던 평범한(?) 사람이 고양이를 받아들이고 함께 살아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처음 '무'를 만났을 때의 모습. 저 표정이 귀여워서 어쩔줄 모르는 모습이다. ㅡ.ㅡ;;;

 

'욘'의 등에 있는 점. J는 이 모양이 해골을 연상시킨다고 생각해서 욘이 악마의 고양이라 생각한다. 이 만화의 내용은 J와 욘이 서로 가까워지는 과정을 담았다.

 

 

J의 부인인 'A코'의 모습은 상당히 "괴기스럽게" 그렸다. 그녀는 거의 모든 장면에서 눈동자가 없이 흰자위의 모습으로만 나오고 바지는 항상 쫄바지만 입고 나온다. 하여간 악취미다. ^.^; 

 

   이 책의 유일한 단점이라면, 일반 만화책의 절반 정도의 분량밖에 되지 않는데 가격은 1.5배 정도 비싸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토 준지의 팬이라면 뭐 책이 번역되어 출판되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니 뭐 그렇게 억울한 생각은 없다. 

   '고양이'라는 애완동물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라면, 구입할만 하고, 이토 준지의 작품에 관심이 있는 독자들이라면, 당연 구입해야 하고, 이토 준지의 기존 작품에 있는 극단적인 묘사를 감당할 수 없는 독자들이라면, 이 작품을 시작으로 "이토 월드"에 입성할 수 있는 입문서라 할 수 있다. 이토 준지의 본령인 공포와 코미디가 섞여 있으니까. 공포와 웃음이 얼마나 가까운 사이인지를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덧붙임:  

    

1. 볼 때마다 느끼는 건데 두 분 참 닮으셨습니다. ^.^; 

2. 이미지는 구글에서 검색해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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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ptrash 2010-03-20 06: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하하하 --;;;;;;;;;
이토 준지의 고양이 일기라니 어쩐지 웃음이 나는 걸요.

웃다가도 갑자기 이토 준지 컬렉션의 이것저것이 생각나서 등골이 서늘해지긴 하지만...

Tomek 2010-03-20 08:34   좋아요 1 | URL
이거 상당히 귀엽습니다. 너무 짧은 것이 흠이지만... ^.^:

고맙습니다.

-ㅅ- 2010-03-20 10: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이토 월드 입문서'.. ;ㅁ; 우아아아앙.. 넘 웃겨요..마지막에 빵 터지고 말았어요..
글구 마지막 사진.. +_+b 최고에용..

Tomek 2010-03-20 22:22   좋아요 1 | URL
재밌게 읽어주시다니 정말 고맙습니다. ^.^; 마지막 사진은 은근 닮았는데 아무도 언급하지 않아 올려봤습니다. ^.^;
고맙습니다.

LAYLA 2010-03-20 20: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진중권씨 지못미 ㅠㅠㅠㅠㅠㅠ라고 하면 이토준지 팬 분들에게 돌 맞으려나요 하하하하

Tomek 2010-03-20 22:24   좋아요 1 | URL
언젠가 이토 상이 진 교수 이야기를 만화로 그려주길 기다리고 있습니다. 캐릭터는 그대로 쓰면 되고, 진 교수 이야기도 호러와 코미디를 넘나드니 잘 맞을 것 같기도 해요. ^.^;
고맙습니다.
 
<석유종말시계>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석유 종말시계 - '포브스' 수석기자가 전격 공개하는 21세기 충격 리포트
크리스토퍼 스타이너 지음, 박산호 옮김 / 시공사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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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유'는 이미 우리에게 '공기'와 같은 존재가 되었다. 우리는 공기 없이 살 수 없듯이 석유 없는 세상은 상상할 수 없게 되었다. 왜냐하면, 석유는 우리의 삶 전체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었으니까. 석유에 의존한 20세기 문명의 눈부신 발전은, 반대로 얘기하자면, 석유가 없으면 곧 (신기루처럼) 사라질 운명인 셈이다. 그러니까 석유가 고갈된다는 것은 인류에게 있어서 '문명의 끝', 종말인 것이다. 

   이 책, 『석유 종말시계($20 Per Gallon)』는 석유 없는 미국의 변화에 대한 가상 시나리오다. <포브스 매거진>의 수석 보도 기자이자 이 책의 저자인 크리스토퍼 스타이너(Christopher Steiner)는 자신이 다년간 취재해온 자료를 바탕으로 시나리오를 작성했다. "어느날 갑자기 석유가 없어진다면" 이라는 극단적인 상상이 아니라, 글을 쓰기 시작한 2008년의 유가(갤런당 4달러)로부터 시작해, 유가가 갤런당 2달러씩 계속 오르게 되면, 미국인들의 삶이 어떻게 변할지에 대해 조곤조곤 사례를 들어 이야기한다.

   그는 지금 미국인의 삶의 방식이나 태도를 싼 유가 때문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어느 정도 무절제하고 풍족하고 낭비하는 미국인들의 삶은 '갤런당 2달러'라는 저유가에서 비롯되어 왔다. 배기량이 큰 자동차와 값이 싼 비행기, 교외의 넓은 집에서 한적하게 사는 삶. 황무지 복판에 위치한 라스베이거스와 월마트. 이런 것들은 정책적으로 싼 유가 덕분에 미국인들이 누릴 수 있는 삶이자 '아메리칸 드림'으로 불려져 왔다. 저자는 이렇게 싼 유가 덕분에 그들이 풍족한 생활을 누릴 수 있었지만, 이제 오일 피크를 겪게 되면서 유가는 점점 더 오르게 될 것이고, 미국인들의 삶은, 올라가는 유가에 따라 삶의 방식이나 가치가 바뀌게 될 것이라 예견한다. 

   그가 제시하는 비전은 어느정도는 고통스럽고 어느정도는 절망적이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정말이지 '아름답다.' 유가가 갤런당 6달러가 되면 기름을 버려대는 SUV는 사라지게 될 것이고, 결과적으로 매연 배출량이 줄어 대기가 맑아지고, 사람들이 그만큼 움직이게 되어 비만인구가 감소하게 될 것이라 예견하고 있다. 유가가 10달러가 되면, 전기차가 대세가 될 것이고, 그와 관련한 사업이 뜰 것이라 예견한다. 유가가 16달러가 되면 선박에 대는 기름을 감당못해 의미없는 수입과 수출이 줄어들 것이고, (일반적인 의미의) 글로벌 네트워크는 붕괴될 것이며, 결국 자급 자족의 생산과 소비가 일어날 것이라 예견한다. 유통 또한 전국적인 유통보다는 지역대 지역의 규모가 작은 유통이 이뤄질 것이고, 그것은 지금처럼 획일화된 시골이 아닌, 개성있는 소도시로의 면모를 갖출 것이라 얘기한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세상인가! 

   하지만 그의 이 '낙관적인 비전'을 무턱대고 믿어야 할지는 책을 다 읽은 지금까지도 잘 모르겠다. 유가가 계속 오르고 있는 시점에서 하이브리드 차종의 개발이나 항공 산업의 수상찮은 움직임을 판단한 글들은 공감할만 하나,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고유가'의 세계를 바라보는 것은 아닐까. 특히 글을 읽으면 어느정도 저자의 편향된 모습이 언뜻 보이기도 하는데, 인도와 중국의 엄청난 인구와 영향력을 견제하는 것은 어느정도 이해가 가지만, "갤런당 12달러"를 대비하는 새로운 도시의 모델을 "송도신도시" 예로 든 점은 좀 뜨악했다. 아직도 개발중인 이 논란이 많은 도시를 새로운 모델이라 치켜세우는 것은, 글쎄... 혹시 도시 개발에 참여한 미국 기업 '게일 인터내셔널(Gale International)'때문에 예로 든 것은 아니라 믿고 싶다. 

   그리고 이 책은 미국 기자가 미국을 대상으로 쓴 글이기 때문에 우리의 현실과는 상당히 동떨어진 구석이 많이 있다. 일단은 저자가 제시한 갤런당 12달러 도시의 모델 중 하나인 서울은 이미 포화상태인데, 더 이상 어떻게 조밀하게 할 수 있을까. 월마트가 사라지고 도시에 상권이 살아난다고 했지만, 한국의 월마트인 이마트와 롯데마트는 대도시 상권에 깊숙이 들어와 있고, 그것도 모자라 "동네 슈퍼"까지 잡아먹으려 하는데, 이것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유가가 오를 수록 우리의 삶은 고달퍼질 것이다. 중하층은 더 고통스러워 질 것이고, 상류층은 더 살만해질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서처럼 더이상 석유를 못쓰게 되어서 우리의 삶의 속도가 전보다 느려지고, 앞뒤를 돌아보며, 삶의 가치를 느끼고, 맑은 하늘에 건강한 신체를 가지고, 가족과 함께 같은 동네에 살게 된다면, 가난해지고 불편해지더라도 차라리 석유 없는 삶이 더 낫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을 보니 나도 대책없는 낙천가인가 보다. 

 

 

*덧붙임: 

145쪽 밑에서 13째줄 "1987년 필라델피아의 Electric Carriage & Wagon 사는" 부분에서 1987년이 아니라 1907년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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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SHIN 2010-03-17 19: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나, 어느 정도 토메님의 글에 공감합니다.
요즘 하이브리드 차 선전 하던데, 저는 몇 년 전부터 벼르고 있었습니다.
'기름 차'를 끌고 다닐 땐 꼭 지구에 죄 짓는 기분이었죠,늘.

10여년 전인가? 코엑스에서 처음으로 친환경 수소 버스를 보았을 때 감격했었습니다.
그리고 몇 년 후, 그것은 대중화의 현실이 되었죠. 이젠 자동차 시대입니다.
나는 기대하고 있습니다. 세상은 지금보다 더 나아질 것이라고.
일단, 고집센 미국부터 어떻게 했으면 좋겠지만 말입니다.-_-
좋은 책 덕분에 알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Tomek 2010-03-18 09:29   좋아요 0 | URL
세상은 분명 나아질 것 같은데... 문제는 결국 "돈"이더군요. 스타이너 씨가 전망하는 미래 자동차는 "전기차"가 승리할 것이라 예상하지만, 그 가격은 엄청나게 비쌀 것이라 해서요. "리스" 혹은 그나마도 여력이 안 되면 어쩔 수 없이 "대중교통"을 선택하는 시대가 될 것이라 하더군요.
그래도 <매드 맥스2>나 <더 로드> 같은 묵시록적 비전이 아니라 그나마 재미있게 읽은 것 같아요.

고맙습니다. ^.^;

L.SHIN 2010-03-18 10:47   좋아요 0 | URL
전기차...휘발유차랑 가격대비 별 차이 없던데요..
오히려 아직도 휘발유차 중 비싼게 더 많죠.

Tomek 2010-03-18 11:53   좋아요 0 | URL
아, 지금은 유가를 견딜만하니까 전기차량이 괜찮을 것 같아요. 차량 가격이 일반 차량의 두배정도 비싸고, 충전 인프라가 전무해서 지금은 좀 힘들겠지만, 아무래도 휘발유차량 보다는 더 낫겠죠. 10여년 전에 LPG차량이 보급된 것처럼 경쟁력이 있을 것 같습니다.
다만, 스타이너 씨가 책에서 얘기한 것은, 유가가 올라가면, 그만큼 전기값 또한 오를 것이고, 전기차량의 가격과 배터리 교체 비용이 발목을 잡을 거라는 얘기였어요. 그게 유가가 갤런당 10달러일 때로 시작될 일로 예상하고 있으니, 아직은 먼 미래죠. 그 얘기였습니다. ^.^;

카스피 2010-03-18 0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책은 한번 읽어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정보 감사합니다^^

Tomek 2010-03-18 09:31   좋아요 0 | URL
"인문" 서적이라기 보다는 "문학"서에 더 가깝습니다. 그래도 가까운 미래의 이야기라 그런지, 왠만한 소설보다는 흥미진진 하더군요. 감안하시고 읽으시면 재미있으실 거예요.

고맙습니다. ^.^;

LAYLA 2010-03-20 2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날개 작가사진이 훈남이라서 일단 기대하고 있는 책입니다^^*

Tomek 2010-03-20 22:20   좋아요 0 | URL
이번에도 LAYLA님 좋은 글 기대하고 있습니다. ^.^;
 
<과학, 인간의 신비를 재발견하다>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과학, 인간의 신비를 재발견하다 - 진화론에 가로막힌 과학
제임스 르 파누 지음, 안종희 옮김 / 시그마북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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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에 화학을 전공한 친구에게 이런 우스갯소리를 들었다. "뛰어난 과학자일수록 유신론자가 된다". 즉, 인간의 비밀, 우주의 비밀, 원자 원소의 비밀을 알아갈수록, 그 치밀한 질서와 정교함을 증명하지 못해, 인간이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를 '신의 섭리'로 돌린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무능한 과학자의 한탄같은 것으로 생각했었는데, 이 책을 읽고 생각이 바뀌었다. 그들의 푸념은 진짜다. 

   과학의 발전은 굉장히 많은 것을 설명할 수 있게 됐다. 우리는 유전자 지도 정보를 알고 있고, 우리의 뇌가 생각할 때, 말 할 때, 상상할 때 어떤 부분을 사용하는지도 알아냈다. 저 아득한 우주 또한 점점 지도를 넓혀가고 있다. 이 모든 게 과학의 힘이다. 

   그런데... 그게 다다. 과학은 우리가 궁금해했던 현상만을 설명할 뿐, 그 원인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못한다. 저자 제임스 르 파누는 우리가 발전시킨 과학이 이 우주의 신비를 설명하기는 커녕, 더욱 더 미궁에 빠지게 된다고 이야기한다. 그래서 그는 지금의 과학기술로 처음부터 부딪히기 시작한다. 근 100여년간 거의 정설로 굳어온 다윈의 진화론부터, 그 이론이 얼마나 허술한 이론이었는지를 이야기한다. 쉽게 이야기하자면, 다윈은 미시적인 관점으로 종을 관찰한 다음 그 것을 거시적인 관점으로 분류했다는 것이고, 그 과정은 상상력에서 비롯됐다고 설명한다. 저자는 현대의 발달한 과학기술로 진화론의 허구를 공격한다. 그리고 우리가 궁금해한 뇌와 우주의 '설명할 수 없음'을 증명해낸다. 

   어떻게 보면 이 책은 종교서적으로 볼 수도 있다. 인간의 뛰어난 과학으로 우주는 커녕, 인간조차 설명할 수 없다. 그렇게 되면 위에서 말한 우스갯소리처럼, '창조자'라는 결론이 나온다. 하지만, 이책은 "회의적 유신론자"의 책이 아니다. 제임스 르 파루는 지금의 과학이 우주와 생명을 설명할 수 없지만, 언젠가는 설명할 수 있으리라 본다. 그렇기 위해서는 우리가 지금 맹신하고 있는 다윈의 진화론부터 부정하고, 다시 처음부터 새로운 판을 짜야한다고 역설한다. 

   "증명할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한 것을 확인하기 위해 거의 400페이지에 가까운 책을 읽는 것은 허무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책은 우리가 지금까지 의심없이 믿어왔던 이론을 깨뜨리고 새로 생각할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한다. 책에서 다루는 다윈, 뉴턴, 진화론, 물리학, 뇌, 영혼, 언어 능력 등 현대 과학이라는 시선으로 참신하게 바라볼 수 있다. 21세기에 이르러 과학은 어쩌면 다시 시작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책은 그 시작을 이야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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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영희프리즘>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리영희 프리즘 - 우리 시대의 교양
고병권.천정환.김동춘.이찬수.오길영.이대근.안수찬.은수미.한윤형.김현진 지음 / 사계절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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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영희'라는 이름은 이제는 보통명사가 된 느낌이다. 물론 나는 그를 책에서 표현하듯 '사상의 은사'로 모신 그런 70년대 세대는 아니다. 그렇다고 그를 수정주의자라 여기며 극복해야할 대상으로 여긴 80년대 세대도 아니다. 오히려 '리영희'라는 이름을 듣고도 "이게 뭥미?"하고 뜨악하게 쳐다보는 지금의 보통 세대들과 거의 다르지 않은 90년대 세대다. 

   '리영희'라는 이름은 많이 들어왔지만, 정작 그의 저서를 접할 기회는 거의 없었다(놀고 술마시느라 바빴으니 당연하지). 96년 어느날 동아리방에 너덜너덜해진 책 한 권이 있는 것을 발견했는데, 그 책의 제목은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는 제목의 책이었다. 그 책 제목의 계시와도 같은 강렬함에 이끌려 난생 처음으로 책 도둑질을 했다(도둑질할 생각은 아니었는데, 이 책을 빌리고 반납하지 않은지 14년이 다 되어가니 훔친거나 다름없다. 깊이 반성한다...). 국제 정세와 한국 정세를 판단한 그 책은 생각보다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니었으나, 대결의 구도가 아닌 조화의 구도를 그려냈다는 점에서, 그 어떤 문학보다도 감동적으로 다가온 경험이 있다.

   그리고 한동안 잊고 살았다. 선생이 중풍에 쓰려졌다는 소식을 접했을때도, "아, 어쩌나"라는 생각뿐이었고, 구술 자서전 『대화』가 나왔을때도 "아!"라는 감탄뿐이었지, 그의 저작을 찾아볼 생각은 하지 않았다. 세상은 어차피 잘만 돌아가니까. 

   『리영희 프리즘』. 이 책을 읽고나서야 깨달았다. 그가 얼마나 위대한 사람이었는가를. 이 책에 있는 글들은 '리영희'라는 존재를 통해 지금의 대한민국과 지금의 우리들을 바라본다. 어떤 것은 놀랄만한 경탄을 이끄는 글들도 있고, 또 어떤 것은 참신한 시선이라며 무릎을 치게 하는 글들도 있지만, 어떤 것은 "이건 뭥미?"하는 핀트를 벗어난 글도 있다.  

   열 명의 저자들이 얘기하는 담론들- 생각하기, 책 읽기, 전쟁, 기독교, 영어, 지식인, 기자, 사회과학, 청년문화, 자유 -은 지금의 대한민국을 진단할 수 있는 열쇳말이기도 하다. 이 담론들이 '리영희'라는 스펙트럼을 통해 이야기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다. '그의 시대'를 살아온 세대들에겐 당연한 중언부언으로 느껴질지도 모르겠으나, '리영희'라는 인물이 누구인지,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모르는 사람이라면 놀라움과 경의감을 느낄 것이다. 

   홍세화 씨가 서문에 밝혔듯이, 이 책은 '리영희'라는 우상 만들기에 관한 책이 아니다. 우상 파괴를 역설한 사람이 스스로 우상이 되는 것을 어떻게 견디겠는가. 이 책은 이제는 우리가 잊어버린, 그래서 '폐기처분해도 될 것'이라는 생각을 "감히" 지닌 '리영희'라는 인물이, 사상이, 삶이 아직까지 우리 시대에 유효하다는 것을 역설한다. 일제시대와 해방과 분단과 전쟁과 독재와 민주화를 말 그대로 "온몸으로" 견디어낸 인물의 생각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았다. 그는 늙었지만 낡지 않았다. 지금이나마 "선생님"을 알게되어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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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절로 2010-03-11 1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영희씨를 유시민의 청춘의 독서에서 소갤 받았는데, 그때의 울림은 아직도 설명이 안되요.


Tomek 2010-03-12 10:01   좋아요 0 | URL
저는 이 책에서 처음으로 느꼈어요. '정수리에 찬 물을 끼얹은' 느낌까지는 아니지만, 사상과 인물이 이렇게 일치할 수도 있는지 처음 알았습니다. 정말 대단하신 것 같아요.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