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즈쇼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10월
평점 :
품절


   김영하의 소설을 많이 읽지는 않았지만, 그의 소설이 관통하는 어떤 공통점을 알아내기란 어렵지 않다. 그의 소설은 현실과 환상이 뒤섞인다. 그 뒤섞임은 혼란을 가져오기 보다는 주인공과 읽는이의 상태를 몽롱하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주인공이자 화자인 이민수는 어려서부터 외할머니 손에 자랐다. 아버지는 누군지도 모르고 어머니는 일찍 죽었다. 할머니마저 죽고 혼자 남은 민수는 할머니가 유산대신 남겨놓은 빚 때문에 집을 빼앗기고 작은 고시원에서 산다. 그 좁은 공간안에서 인터넷 채팅 퀴즈방에서 시간을 보내던 민수는 우연찮은 기회로 텔레비전 퀴즈쇼에 참가하게 된다. 그리고 그것을 계기로 그는 새로운 세상과 조우하게 된다. 

   이 책은 수많은 알레고리가 들어있지만, 그것을 알레고리로 읽어야 할지 머뭇거리는 순간들이 많이 있다. 주인공 민수를 88만원 세대를 대표하는 인물이라고 설정하면, 책을 읽기는 편하지만, 민수가 그 대표성을 지니고 있을지 잘 모르겠다. '지식 룸펜' 정도의 대표성을 지니고 있을까? 그런데 민수는 아버지가 누구인지 모르고 어머니는 일찍 죽은 고아이자 사생아이다. 점점 더 위치시키기가 어렵다. 차라리 이 소설은 민수가 얘기한 대로 지금 2006년 한국의 '오뒷세이아 이야기'라고 보는 편이 더 쉽게 읽힌다. 저 옛날의 오뒷세이아가 그리스로 돌아오기 위해 숱한 모험을 겪었듯이 민수 역시 지금껏 회피한 현실로 돌아오기 위해 숱한 모험을 겪는다. 

   소설에서 민수는 다섯 명의 여자를 겪는다. 첫 번째, 외할머니는 민수의 어머니 역할을 한다. 후에 민수가 그 사실을 알았을 때 그녀는 '이모'라고 부르라 한다. 민수는 그녀를 '최여사'라 지칭한다. 최여사는 민수를 키워줌과 동시에 앞으로의 고난을 마련해준다. 그녀의 빚때문에 민수는 세상으로 나아가야만 한다. 절대 피할 수 없는 운명. 이 모든 사건, 아니 민수의 운명은 최여사가 직조한 것 처럼 보인다. 

   두 번째, '빛나'는 철저히 '현실세계'를 대변하는 여자다. 그녀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민수를 쥐락펴락 한다. 빛나의 사랑은 사랑이라기보다는 철저한 계산이다. 민수의 현재 상태를 냉정하리만큼 평가한다. '최여사'의 장례식에 가서 민수의 뒷수발을 들기보다는 자신의 대학원 발표가 훨씬 그녀에게 크다. 빛나는 인정보다는 계산이 우선된, 현실세계의 여자다. 

   세 번째, 민수와 같은 고시원에서 지내는 '숙희'는 더 이상 내려갈 수 없는 삶의 밑바닥을 대변한다. 민수와 숙희의 만남은 많지 않다. 그는 그저 체한 그녀를 위해 약국에서 소화제를 사다주고, 답례로 고시원 옥상에서 삼겹살을 구워 먹고 그녀에게 이십만원의 돈을 빌렸을 뿐이다. 그녀가 도움을 요청할 때, 민수는 그런 그녀를 외면한다. 그에게는 그녀가 외면하고 싶은 자신의 현실이었을 것이다. 

   네 번째, '지원'은 '이상'이다. 그녀는 방송국의 구성 작가이자, 평창동의 '성'에서 살고 있다. 그녀의 '방' 안에(!)있는 '서고'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한 번 쯤 꿈꾸었을' 곳이다. 그녀는 민수와 인터넷 퀴즈방에서 만났다. 그녀의 아이디는 '벽속의 요정'이다. ID는 이드, 즉 자아를 나타낸다. 그녀는 벽속에 갇혀있는 존재다. 그런 그녀를 현실로 이끌어줄 수 있는 사람은 현실에 살고 있는 민수뿐이다. '이상'은 현실에서 실현되어야 빛을 발한다. 하지만 민수는 그녀를 현실로 데려오기에 준비가 아직 안됐다. 

   다섯 번째, 퀴즈쇼에서 만난 이춘성의 소개로 그는 '회사'에 들어간다. 이 회사는 일반 회사가 아닌, 전국에서 불법으로 벌어지는 퀴즈쇼에 출연할 선수들을 키워내는 회사다. 그곳에서 민수는 '메두사'를 만난다. 장군, 메두사, 탱고, 유리라는 별명으로 불리워지는 이들은 유사 가족처럼 보인다. 민수는 '롱맨'이라는 이름으로 이들 유사 가족으로 편입된다. 회사에서는 현실을 살아가는 사회성을 죽이고 지식, 아니 잡학으로 머리를 채운다. 지식의 늘어남과 승리의 쾌감, 이런 것들이 그들을 고양시키는 계기가 되기도 하지만, 그들을 파괴시키기도 한다. 민수가 현실에 두고 온 것들을 잃어버리고 '회사'에서의 생활이 현실이 되어갈 때 '메두사'는 유일하게 민수의 이야기를 듣는 존재다. 그러나 민수는 '어머니이자, 누이이자, 여자친구'인 메두사를 버리고 현실 세계로 돌아온다. 

   다시 현실세계로 돌아온 민수는 더이상 현실을 회피하지 않고 현실을 살아가기 시작한다. 그가 새로 둥지를 튼 곳은 헌책방이다. 헌책방은 헌책을 파는 곳이다. 헌책은 제품의 기능이 멈춘, 지식의유통기한이 다 된 것이기도 하지만, 종류에 따라 보물이 될 수 있다. 주인은 옆 건물을 신간을 팔 서점으로 만들 계획을 짜고 있다. 앞으로 민수는 이곳에서 헌책과 새책을 팔기 시작할 것이다. 지식이 유희가 아닌, 삶이 되는 현실을 살 것이다. 그가 거쳐온 사람들과 함께 그리고 그의 '이상'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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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뮤지컬『퀴즈쇼』환상적 무대!!
    from 내가 읽은 책과 세상 2010-01-02 14:10 
       "근데 사실 세계의 어떤 작품이건 원작을 먼저 읽고 영화를 보면 영화가 허술해 보여요. 왜냐하면 활자는 디테일을 꼼꼼히 담아낼 수 있는데, 영화는 뭉텅뭉텅 이미지로 보여주어야 하니까요. 거꾸로 영화를 보고 원작을 보면 굉장히 지루해요. 이미지를 보며 감정을 이미 느꼈는데 활자로 일일이 그걸 묘사하고 있으니까 뻔해 보이는 거죠. 장르별 특색이라고 봐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