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만에 마눌님께서 스콘을 자시고 싶다고 명하사, 직접 만들어봤다. 스콘은 쿠키에 가깝기 때문에, 홈베이킹이 빵보다는 수월하지만, 그래도 왠만한 빵보다 손이 더 많이 가기 때문에 성가시기는 마찬가지이지만, 어쩌겠나, 하명을 받들어야지.


   재료를 저울에 정확히 계량하고 반죽한 후, 반죽에 어느 정도 윤기가 흐르기 시작할 때 비닐(혹은 랩)에 잘 싸서 냉장실에 1시간 정도 숙성시킨다. 반죽은 두 번에 걸쳐서 하는 데, 처음 버터를 넣을 때는 가루가 고슬고슬하게 만드는 것이 포인트고 두 번째 우유와 계란을 넣을 때는 위에 기술한 대로, 글루텐이 형성될 (윤기가 보이기 시작할) 정도로 쳐주는 게 좋다.





   숙성된 반죽을 꺼낸 후, 성형을 하기 시작한다. 내가 (전에) 배웠을 때, 스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반죽 숙성과 성형이었는데, 홈베이킹의 특성상, 그냥 손가는 대로 만들었다. 이스트가 없어 구울 때 부풀지 않으니, 패닝은 적당한 간격으로 하면 끝. 반죽을 꺼낼 때 오븐을 미리 예열시키는 게 좋다. 마지막으로 오븐에 넣기 전에 계란물을 위에 살짝 발라주면 끝. 귀찮다면 귀찮고, 간단하다면 간단한 스콘 만들기다. (이렇게 대충하면 안되는데... 귀차니즘과 홈베이킹의 어드벤티지라 생각하...)





   이 상태에서 오븐에 넣고 약 15~20분간 구워지기만을 기다리면 된다. 오븐에서 구워지는 스콘이, 가운데 부분이 (마치 조개처럼) 살짝 갈라지면, 반죽이 잘 됐다는 증거다. 당연히 쩍쩍 갈라지기 시작했다. :)





   마눌님 이 모습을 보시고 흐뭇하시어, 남편이 이렇게 제 할일을 하는데, 나도 가만히 있으면 안 되겠다 하시며 냉장고에서 호박을 꺼내 볶음 반찬을 시작하시는데, 고소한 버터향 풍기는 스콘에 얼큰한 새우젓 향이 스며들기 시작, 이 복잡 미묘한 상황을 어떻게 타개해야 할지 남편은 심히 울적했더라. 그렇게 멜랑꼴리한 감성에 빠진 때, 잠깐의 빈틈을 알아차린 스콘들이 스스로 제 몸을 태우니, 아뿔사, 스콘이 타버렸구나. ㅠㅠ





   자세히 보면 맨 위아래 두 개만 좀 탔지 나머지는 그래도 양호한 편이다. :) 음식을 만들고 나면, 손이 먼저 음식을 먹기 때문에, 입은 별로 먹고 싶어하지 않는다. 집사람의 손은 다행이 호박볶음을 먹었기에, 스콘을 무리 없이 먹었다. 난, 탄 거 두 개 먹었고. 평범한 일상도 이렇게 터치를 하니 새롭게 느껴지는 것 같다. 일상에 대한 의미 부여랄까? 그런 것에서 예술이 시작하는 것이겠지.


   오늘의 예술: 음식, 스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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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2일에 송성문 선생이 별세하셨다는 뉴스(클릭)를 늦게나마 보게 됐다. 80이라면 가히 호상이라 부를 수도 있지만, 그거야 죽음을 맞이한 당사자의 가족들을 위로하기 위한 흰소리일 뿐이고. 선생의 죽음은  내가 아무 생각 없이 들락날락하던 내 학창시절이 정말로 과거가 됐다는 당연한 사실을 환기시켜줬다. 그야말로 한 시대의 종언. 

내가 고등학교 시기를 보냈던 1990년대 초중반은 그야말로 복잡한 시기였다. 학력고사가 폐지되고 새로운 시험 형태인 '수능'이 도래하는 시기였다. 명문학교는 미리 준비를 했는지 모르겠으나, 내가 다니던 학교는 평소 그런 것에 별 관심이 없었다. 모의고사를 보면 서울 소재 72개 고등학교 중 71위를 하는 학교였으니. 난 솔직히 72위가 더 궁금하긴 했었다. 선생들은 별 준비 없이 관성적으로 교과서를 가르쳤고, 배우는 우리도 별 생각 없이 관성적으로 수업을 듣고(졸고) 있었다. 특히 영어는, 언제나처럼 문법 위주의 교육이었고, 그런 우리가 관습적으로 선택하는 교재도 성문 시리즈였다. 수학은 정석 시리즈의 대항마로 해법수학이라도 있었지만, 영어는 거의 전무했다. 물론, 이런 호시절도 맨투맨의 아성으로 얼마 못가 흔들리긴 했지만.

중학교 때부터 시작된 성문 영어 오딧세이는 뿌듯함이나 성취감보다는 언제나 좌절만을 가져왔다. 성문 기본영어가 특히 그러했는데, 적당히 얇은 두께는 마음만 먹으면 쉽게 끝낼 수 있을 것 같은 착각만을 가져왔을 뿐, 언제나 명사 부분만 시커멓게 연필칠을 했던 기억만 난다. (정석의 집합 부분도 마찬가지.) 게다가 짧은 독해는 왜 이리 어려운지. 특히 한글로 된 해석을 봐도 도대체 뭔 소리를 해대는지 머리를 싸맨 적이 부지기수 였는데, 그 어려운 글들의 저자가 버틀란트 러셀이라는 철학자라는 것을 알고, 한 때 철학을 저주하기도 했었더랬다. (얄궂어라. 그런데 내가 철학과를 선택할 줄이야.)   

    

 

성문 종합영어는 더욱 할 말이 없게 한 책이다. 내가 이 책으로 공부를 하긴 했었나? 아마 베개로 더 많이 쓰지 않았나 싶다. 두툼한 두께는 학구열보다는 수면욕을 더 일으키게 했으니까. 침으로 부풀어오른 이 책은 한자책인지 영어책인지 도통 모를 고루한 구성과 참으로 불친절한 해설로 많은 악명을 떨친 책이었다. 

그러다 그 해 여름과 겨울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한 해 두 번의 수능이 시행되자, 판이 바뀌기 시작했다. 문법이 100% 차지했던 영어의 영역은 독해가 70%, 듣기가 20%, 나머지 10%를 문법이 차지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학교는, 여전히 학력고사를 대비한 수업을 진행했지만.  

    

 

그 당시 영어 기본서 시장을 양분 한 것은 성문과 맨투 맨이었지만, 맨투맨은 그닥 눈에 들어오지 않았었다. 성문에 비해 조금 친절하게 보일 뿐, 그 내용은 거기서 거기인 것 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책이 분권된 것도 내 취향에 맞지 않았다. 성문은 어렵고, 맨투맨은 싫고. 그 때 내가 찾은 대체 교재가 안현필 선생의 영어실력기초다.  

안현필 선생은, 아버지 세대는 아니고, 삼촌 뻘 되는 세대에 친숙한 이름인데, 서점에서 사온 책을 보고 "영어삼위일체, 그 책 아닌가?" 막내 삼촌이 반색했던 기억이 난다. 성문과 맨투맨이 문장의 형식 또는 명사 파트에서 시작하는 반면, 이 책은 "동사" 파트부터 시작했는데, 영어는 우리말과 체계가 달라, 그네들처럼 명사부터 시작해서는 흥미를 잃기 쉽다며 일갈했던 머리말이 아직도 생생하다. 이 책은 재미있는게, 곳곳에 선생의 잔소리가 메모장 형식으로 붙어 있었는데, 공부에 관한 것 뿐 아니라, 건강(이를테면 선식, 냉수마찰 같은)에 대한 정보도 깨알같이 적어 놓아 '혼자 공부하는' 재미를 일러주기도 했다. 문제는 그 잔소리 부분이 너무 재미있어, 공부보다는 잔소리만 읽게 된다는 것?   

안현필 선생이 건강에 관심을 가진 이유는 한창 때에 암에 걸려 사형선고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 때가 90년대 초반이었나? 어쨌든 선생은 이겨냈고, 그 이후에는 영어 보다는 건강에 관심을 가지게 되어 건강에 대한 책도 여럿 집필하셨다. 하지만, 이 무슨 얄궂은 운명인지. 건강을 되찾은 선생이 교통사고로 유명을 달리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천명(天命)이라는 말이 괜한 말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수능시험이 18년간 지속되면서, 이들 기본서는 점차 사라져갔고, 영어 문법도 이제는 원서에 자리를 밀리게 됐다. 옥스퍼드의 빨간책 파란책 시리즈는, "문법이 재미 있을 수도 있구나!" 하는 당돌한 생각까지 하게 할 정도니까. 수능, 토익, 토플 등으로 시험이 갈리면서, 이들 영어 기본서는 점점 설자리가 없어졌고 지금은 겨우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 나 역시 이 문법책들을 버린지 꽤 오래다. 그 자리는 지금 『Practical English Usage』가 차지하고 있으니, 선생들이 보면 허탈할지도 모르겠다. 성석제의 표현처럼 꿈속에서 놀다보니 (슬픈) 소식을 맞이한 셈이다.  

    

달이 차고 기우는 것처럼, 흥망성쇄는 당연한 자연의 이치건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송성문 선생의 부음에 이렇게 착찹한 마음이 드는 까닭은, 세월의 흐름을 목격하고 있다는 슬프지만 진실인 이 사실을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이 아닐까.   

 

한 시대는 저물고, 그 시대에 발을 담궜던 우리들은, 다른 곳으로 건너간다, 계속.  

RIP. 편히 영면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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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11-09-26 18: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성문기본을 명사부터 공부하는 사람은 거의 없는데 Tomek님은 영어공부는 명사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소신이 강했나 봅니다.저는 그냥 처음부터 읽었어요.

Tomek 2011-09-26 18:31   좋아요 0 | URL
아~ 아뇨. 솔직히 첫번째 챕터가 뭔지 기억이 가물가물해서요. 종합영어는 명사였던 것 같고, 기본영어가 문장의 형식이었나? 아님 기초 영문법이 명사부터였나...

뭐 여튼 학창시절에 공부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방증입니다...
:)

노이에자이트 2011-09-27 19:04   좋아요 0 | URL
성문기본은 부정사부터 시작해서 특이하구나 하고 생각했어요.그런데 위의 글에서 학교에서 성문으로 강의했다는 얘긴가요? 학교에서 수업시간에 그런 특정교재를 대놓고 강의하지 못하게 하는 것으로 압니다만...

Tomek 2011-09-27 18:09   좋아요 0 | URL
학교 수업시간에는 오로지 교과서죠. 가외의 시간에 따로 공부하는 교재를 말했던 거였습니다. 제가 글을 워낙에 두루뭉실하게 써서...

:)

노이에자이트 2011-09-27 19:04   좋아요 0 | URL
아...그런 뜻이었군요.

Tomek 2011-09-29 09:31   좋아요 0 | URL
넵.

:)

cintamani 2015-07-23 16: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성문종합영어 세대입니다

Tomek 2015-07-24 19:14   좋아요 0 | URL
cintamani님, 반갑습니다. :)

- 2020-02-09 09: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 덕분에 잠시나마 예전 추억에 잠겨 봅니다. 당시에는 하루 하루가 지겨웠는데 지나간 과거는 왜 이리 아름다워 보이는지
 

내 손에는 습진이 있다. 근원은 확실치 않으나, 기원은 확실하다. 아마도 고등학교 때부터 발병했던 걸로 기억한다. 그동안 안녕했던 손가락에서 진물이 새어 나오는 것은 그야말로 “깜놀”할만한 일이었으니까. 이 습진은 환절기마다 약하게 발병했는데, 아주 심각해진 것은 (역시나) 군대에서였다. 당시 내 보직은 취사였는데, 기름과 물을 손에서 뗄 수 없었던 상황에서 그간 숨죽여있던 습진균들은 드디어 때를 만난 것처럼 창궐했었다. 마치 자해라도 한 것 같은, 찢어지다 못해 터져 입을 벌린 상처들, 그리고 그 벌린 상처 안에 낀 찌든 기름 때. 확 잘라버렸으면 시원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당시 습진은 엄청난 고통을 가져왔었다. 제대한 후 습진은 많이 나아졌지만, 요즘도 환절기만 되면 손가락이 붓고 진물이 샌다.  

하지만, 습진의 발병보다 더 참기 힘든 것은 가려움이다. 이 가려움은 인간 이성의 제어력이 얼마나 하찮은지를 쉽게 증명하곤 하는데, 벅벅 긁다보면, 진물과 피가 한데 엉겨있는 것을 확인하는 지저분함을 늘 확인하게 된다. 근 10여 년간 몸에 지닌 질병이라, 어느 정도 대처법도 가지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최고는 뜨거운 물에 손가락을 지지는 것이다. 수도꼭지를 틀고 조금씩 뜨거워지기 시작하는 물을 기다리며 손을 대고 있는 그 순간은 곧 닥쳐올 공포와 환희를 기대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물이 적정 온도를 넘어 뜨거워지기 시작하면 손가락에서 시작된 짜릿한 소름이 팔과 어깨를 거쳐 바로 머리로 직행한다. 살이 익는 고통과 잠시나마 가려움에서 해방되는 쾌감! 물론 그 짜릿한 순간은 매우 짧고, 습진과 발진은 더 심해지지만, 환절기가 지속되는 동안에는 난 아마도 그런 미련한 짓을 계속하고 있을 것이다.  

아마도 내 이런 비이성적인 행위들이, 내가 백가흠의 소설을 읽는 것을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백가흠의 소설은, 처음 접하는 사람이라면 읽다가 책을 던져버리는, 늘 확실한 반응을 불러일으킨다. 그의 소설엔 이상한 고통이 있다. 물론 백가흠의 인물들이 겪는 고통은 우리 문학에서 많이 봐 왔던 것들이고, 그보다 더 고통스러움을 감내하는 소설들도 많이 있다. 그런데 유독 백가흠의 소설만 “책을 던져버리게(혹은 덮어버리게) 하는” 힘(?)이 있다. 그의 소설은 읽는 이에게 죄의식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예전에 <시사IN>에서 『조대리의 트렁크』를 언급하면서 김기덕을 이야기했었는데, 이는 (어느 정도는) 맞는 표현이다. 김기덕의 영화와 백가흠의 소설엔 공통점이 있는데, 첫째는 인물들이 하나 같이 모두 우리의 사회적 관계망에서 흔히 볼 수 없는 밑바닥 인생들이라는 점이고, 둘째는 같은 밑바닥 인생들끼리 서로 가학-피학의 관계를 주고받는 것, 그리고 셋째로는 ‘나’와는 상관없는 이들끼리의 행동이 영화를 보는/책을 읽는 ‘나’로 하여금 죄의식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이다. (물론 김기덕은 <빈 집>부터 인물(들)을 중산층 이상으로 설정했다. 그 이유는 인물들의 계급 때문에 자신의 영화가 오해받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서다. 더 자세히 들어가면 글이 산마저 벗어나 다른 행성으로 가버리니 이쯤에서.)  

신문에서 조차도 “추잡하다”고 버릴만한 ‘소재’들을 이 둘은 자신만의 이야기로 가공해서 세상은 실제로 안녕하다고 생각하는 내 눈먼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이것은 언제나 세상(일)에 관찰자인 ‘나’의 위치를 ‘주체’로 돌려놓으려는 행동이다. 그러니까 백가흠의 인물들이 부서지는 모습은, 마치 예수가 십자가를 메고 골고다 언덕을 올라가는 것과 같은 종교적 행위처럼 보인다. (그들의 행위가 순교적이라는 게 아니라, 그저 비유일 뿐이다.) 종교적 행위에서 비롯되는 죄의식. 바로 그 불편함.  

백가흠의 소설들을 분류해보면, “세상에 이런 일이”식의 ‘사회 고발 소설류’(마눌님의 표현대로라면 <긴급 출동 SOS>류 소설들)와 그의 일상을 모사해 낸 듯한 ‘사(私) 소설류’로 나눌 수 있다. 전자가 끔찍하다 못해 진저리친다면, 후자는 의외로 귀여운(?) 느낌이 들 정도로 발랄하다. 전자가 읽는 이의 사회적 위치를 주체로 바꾸는데 노력한다면, 후자는 작가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데 주력한다. 『귀뚜라미가 온다』가 전자에 치중했다면, 『힌트는 도련님』은 후자에 치중했다. 하지만 그렇게 쉽게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어쩌면 그가 계속해서 소설을 써가는 과정이 그 자신이 작가가 되고 싶은 ‘바람’이 아닐는지도 모르겠다.  

『귀뚜라미가 온다』에서는 온갖 끔찍하고 역겹고 (가끔) 섹시한 사건들이 일어난다. 이 기괴한 상상력의 끔직한 사건들을 가지고 백가흠은 서사를 구성하려고 ‘애쓴다.’ 소설들은 그럴듯하지만, 다분히(혹은 당연히) 위악적이고 소재주의적이다. 『귀뚜라미가 온다』만을 읽는다면, 아마도 백가흠이라는 이름은 센세이셔널리즘에 기대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조대리의 트렁크』부터 무언가 달라졌다. 여전히 (그리고 더 지독하게) 끔찍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지만, 그 이야기들은 독자들을 끌어들이기 시작한다. 『귀뚜라미가 온다』의 소설들이 독자들로 하여금 차갑게 ‘바라보게’ 한다면, 『조대리의 트렁크』는 ‘(고개를 들어) 쳐다보게’ 한다. 이런 시도가 가능하게 된 것은 아마도 이 책에 수록된 「장밋빛 발톱」에서부터 시작한 사 소설들 때문일 것이다. 백가흠은 『힌트는 도련님』에 등장하는 ‘소설가 백’, ‘백 도령’, ‘P’를 통해 소설의 인물에 자기 자신을 투영한다. 이 등장인물들은 그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과 같이 ‘욕망’에 집착해있는데, 차이점이 있다면, 이들은 ‘소설의 서사를 완성’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계속 글을 써도 글자가 증발하는, 그래서 자신의 글이 원고지에 ‘새겨지길’ 바라는 소설가 백이나, 자기가 썼던 소설의 주인공에게 ‘그럴 듯한 이야기’를 부탁하지만, “(네가 써왔던 대로) 그냥 몇 죽여”라는 말을 듣는 백 도령, 소설을 쓰기위해 상대방을 압박/협박해 잊(으려 애쓰)고 있던 죄의식을 몽땅 끄집어내 결국 고해성사를 하게 만드는 P, 이들 모두 소설을 완성하지는 못한다. 작가가 되고 싶지만, 결국 되지 못하는, 혹은 탈고된 원고를 결코 보지 못하는, 하지만 독자들은 결국 보게 되는 이 이상야릇한 사 소설들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한다는 것은 너무 과장된 기대일까?  

백가흠의 소설을 처음 읽었을 때, 그는 (적어도 내게는) “앞으로가 기대되는 작가”였다. 이번 『힌트는 도련님』을 읽었을 때 드는 생각 역시 “앞으로가 기대되는 작가”다. 하지만, 단편들만으로는 성이 차지 않는다. 그는 장편 앞에서 머뭇거리는 것 같아 보인다.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 그의 소설들은 그의 작품 안에서 모두 완성되지 못했으니까. 나는 혹시라도 그가, 10년 후에도 “앞으로가 기대되는 작가”로 남게 되는 게 아닐지 걱정이다. 하지만, 그것은 기우임에 분명하다. 그는 소설을 완성하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소설에 대한 “힌트”는 찾았으니까. 그의 다음 작품에서 “글자가 새겨지는” 것을 쳐다볼 수 있기를 진심으로 희망한다.    

 

피부과에 갔더니, 의사 선생님이 손이 이렇게 될 때까지 왜 방치했냐고 야단을 쳤다. “한순간의 짜릿한 쾌감 때문”이라고 차마 말을 못하고 처방과 약을 받았다. 앞으로 나는 내 고통스런 쾌락을 백가흠의 책에서 찾아도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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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amtext 2011-09-01 1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그래도 편혜영보다는 백가흠이다, 라고 생각합니다. 트윈픽스 연재 잘봤어요. 십몇년전쯤, 칭구들하고, 트윈픽스MT라는걸 했습죠. 아침9시에 만나 라면만 먹으며 1박2일동안 비디오 서른몇개 다보기. 토론, 혹은 뒤풀이 따위도 없었습니다. 트윈픽스면 충분하니까. 십몇년만에, 어찌나 우울하던지 다시 트윈픽스를 보기 시작했는데 파일 검색하다가 우연히 연재글을 봤어요. 좋았어요!

Tomek 2011-09-01 15:48   좋아요 0 | URL
제겐 백가흠만으로도 벅찹니다! 제게 있어 여성 작가 중에서는 (아직까지는) 신경숙 작가를 넘어서는 "끔직함"을 보여준 예가 없는 듯해요.

트윈 픽스! 정말 좋죠! 고맙습니다.
:D

iamtext 2011-09-02 14: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제 인생 몇개의 중요 프로젝트 중에 하나가 '신경숙과 그를 둘러싼 운동권 가부장들'연구인데... ㅋㅋ. 지금 당면한 프로젝트는, 둘째 기저귀떼기-_-. 어린이 집에서 젤 나이가 많은데, 기저귀차고 다니니...

Tomek 2011-09-02 16:54   좋아요 0 | URL
신.경.숙. 제겐 정말 무서운 이름입니다!

:)

novio 2011-12-30 2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손은 물론 팔꿈치에 습진이 있습니다. 약을 발라도 계속 낫지 않았는데 올해 큰 맘 먹고 약을 계속 발랐습니다. 올 봄부터 발라서 지금까지 바르고 있는데 이제 조금 습진이 없어지네요. 그래도 재발은 쉽기 때문에 언제나 주의합니다. 겨울 때면 역시나 습진으로 손가락 습진이 갈라져서 고생인데 그런 고약한 습진을 갖고 이렇게 책을 예시하시니 정말 필력 하나는 최고시네요. 부럽습니다^^

Tomek 2012-01-01 06:43   좋아요 0 | URL
병원이 가장 좋은 것 같아요. 전 병원다니고 샴푸와 비누는 모두 끊고 설겆이나 빨래 할 때는 비닐장갑+면장갑+고무장갑끼고 하니까 많이 사라졌어요. 문제는 평생 이러고 살아야 한다는 게 힘이 들지만... 뭐 어쩔 수 없죠. NOVIO님도 약보다는 병원가셔서 진단 받으셔요. 치료 받으시는 게 병을 키우지 않는 가장 좋은 방법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2012년 새해에는 항상 기쁘고 즐거운 일만 일어나길 기원합니다. :)

말랑흰둥 2012-08-22 2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백가흠 작가님 첫 장편소설 <나프탈렌> 낭독회 소식 알려드려요.
9월 1일 (토) EBS라디오연재소설 낭독의 힘!
좋은 정보가 됐으면 좋겠네요. ^^
http://home.ebs.co.kr/radionovel/index.html

Tomek 2012-08-28 13:33   좋아요 0 | URL
신청했습니다!
좋은 정보 고맙습니다.
:)
 

 

이언 플레밍의 007 시리즈 중 『골드핑거』를 펼치면, 맨 첫 장에 세기의 악당 오릭 골드핑거(Auric Goldfinger)의 격언이 있다.   

 

"Once is happenstance. Twice is coincidence. The third time it's enemy action." 

"(일상에서 벌어지는 일 중) 처음엔 그저 그냥 일어나는 일이야. 두 번째는 우연의 일치지. (하지만) 세 번째는, 악의적인 행동이라고 볼 수 밖에 없어." 

 

요즘들어 이 말이 왜 이리 심금을 울리는지 모르겠다. 아! 60년대 악당은 이렇게 근사한 삶의 지혜를 스스로 깨닫기라도 했지! 요즘은 악당만도 못한 놈들이 왜 이리도 많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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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2011-08-12 16: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캬~ 악당도 뭐랄까 레벨이 있는 것 같습니다 :)

Tomek 2011-08-12 18:36   좋아요 0 | URL
그쵸?
근데, 참... 악당이라 낭만이라고 하기에도 뭐하고 좀 그렇습니다.
:D
 

동생이 인도에서 결혼식을 치뤘다. 난생 처음 가보는 인도에서, 난생 처음 겪어보는 인도 전통 혼례. 

보통 인도에서는 5일에서 7일간 혼례를 치룬다고 한다. 식은 신부가 주관하며 지참금을 포함해 어마어마한 돈이 든다고 한다. 하지만, 동생은 종교가 다르고(인도인들은 인종이 다른 것에는 관대한 듯 하나, 대신 종교가 다르면, 결혼하기가 쉽지 않다) 예식도 한국에서 치를 것이기에, (굉장히) 약식으로 치뤘다. 그래도 새벽 6시부터 밤 10시까지 치루는 결혼식은 1시간 결혼에 익숙한 우리 가족들에게는 정말로 벅찬 경험이었다.   

 

신랑 이름과 신부 이름이 써있다. 결혼식은 6월 20일, 월요일, 기도원(사원)에 행했는데, 인도는 평일 결혼이 일반적인 것 같았다. 

 

식장에 들어가기 전에 이런 그림이 그려져 있었는데, 인도에서는 매일 아침마다 집 앞에 이런 그림을 "직접" 그린다고 한다. 가정의 평화를 기원하는 일종의 기복신앙 같은 건데, 식장 앞에도 이런 정성스런 그림을 보니까 왠지 마음이 짠해짐을 느낄 수 있었다. 

 

 

식장에 도착한 시간은 거의 오전 7시 경이었는데, 이미 의식이 행해지고 있었다. 가운데 앉아 있는 분이 식을 진행하셨는데, 정확한 표현을 "듣기는 했는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기독교식으로 표현하자면  목사님정도? 그 옆에 꽃목걸이(이것도 표현을 잊어버렸다)를 걸고 있는 사람이 신랑, 동생의 남편이(된 사람이)다. 

 

이렇게 복잡하고 긴 의식이 3시간 정도 행해지고, 아침 식사를 하고 온 후 2부 예식이 행해지는데, 이 경우에는 야외에서 행해진다. 예배당에서 신부의 오빠가 신부에게 꽃을 걸어주고 손을 잡고 야외로 인도하면 신랑이 신부를 맞이한다. 그리고 주변의 사람들이 신랑과 신부를 번갈아가며 들어주고 꽃그네에 앉은 후 또 여러 의식이 행해진다. 

 

그 와중에 주변에서 결혼을 축하하는 노래를 부르는데, 가수를 섭외하는 게 아니라, 주변의 친지들이 마이크를 들고 신랑신부를 축복해준다.     

 

야외 행사가 끝나면 바로 또 안에서 의식이 시작된다. 신부가 아버지 무릎에 앉아 있으면, 신랑이 다가와 신부를 데려간다. 신부는 웃고 있는데, 아버지 눈빛은 참으로 심란해보인다. 

    

축복하는 의미로 친지들(정확히는 신랑보다 손윗사람들)이 결혼을 축복하는 의미로 곡식을 던진다. 그러면 신랑은 저런 자세로 곡식을 받는다. 우리의 전통 혼례에서 폐백과 거의 흡사하다.   

 

이렇게 불 앞에 절을 드리면서 전통 혼례는 끝이 났다. 물론 아직 끝은 아니지만. 

  

어찌됐든 행복하게 잘 살아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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