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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하느님
조정래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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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사극에서 부패한 관리를 쳐부수는 의적들과 그에 맞서는 관리들의 활극을 무심히 보다가  사또나 장군들 밑에서 창과 칼을 들어야 하는 군졸들의 입장이 어떠했을까 궁금한 적이 있었다.

중간급 관리 이상이야 이해된다고 해도 말단 병사들의 정치사회적 위치야 쳐들어오는 임꺽정류의 의적들과 별반 틀린 게 없을 것 같은데 도대체 그네들은 무슨 생각을 가지고 전투에 임했을까?

 국가의 운명을 건 전쟁은 중요하지만 왕과 장군이 아닌 참전하는 일반 필부의 입장에서야 영화 ‘황산벌’의 마지막 장면에서와 같이 살아 남는다는 것, 살아남아서 홀로 남은 어머니, 혹은 처자식을 다시 볼 수 있다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한 가치가 아니였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점령국 일본과 식민지조선, 2차 세계대전이라는 개인 삶의 행복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역사의 무거운 수레바퀴 아래에서 식민지 청년이 겪어야 했던 기구한 삶의 여정을 그리고 있다.

개인적으로 몇 백만 아니 몇 천만의 죽음이라는 텍스트 속에 자칫 무감각해지는 전쟁속의 개인과 삶, 죽음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을 갖게 했다.

전쟁은 궁극적으로 인간을 죽여야 하는 목표를 가진 국가적 집단적 행위이기 때문에 인간 개개인에게는 필연적으로 비극적이다. 또한 국가로 대표되는 집단이 개인에게 가할 수 있는 폭압적 억압의 모든 것을 보여 줄 수 있다는 점에서 비극의 종합선물셋트라고 불릴 수 있을 것이다.

식민지청년에서 일본군, 소련군으로, 소련군에서 다시 독일군, 미군포로로 이어지는 식민지 청년의 기구한 삶에서 민족적 ‘울분’보다는 주인공인 신길만이 그의 부모로부터 배워 위험한 순간마다 되뇌었던 ‘관세음보살’ ‘호랑이한테 열두 번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라는 주문(?)의 반복에서와 같이 살아야 한다는 인간 본연의 의지를 이 책에서 읽었다고 하면 내 시각이 너무 개인적인 것일까?

 

많지 않은 분량의 소설이지만 많은 생각을 갖게 만드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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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울 2007-04-09 1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돈, 무한경쟁에 몰려, 이리저리 쓸려다니는 작금의 현실도 그러한 것 같아, 역시 비극의 종합선물세트로 몰리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인간을 공포, 이겨야 한다는 강박으로 내모는 것이 국가의 집단적 행위이기때문에 인간 개개인에게는 필연적으로 비극이다.

필부의 삶은 넘 고달픈데... ...
 
책만 보는 바보 진경문고 6
안소영 지음 / 보림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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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읽은 책 중에 가장 인상 깊었던 책 몇 권을 고르라면 그 중에 꼭 넣고 싶은 책 중의 하나가 이 책 ‘책만 보는 바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나로서는 학창시절 조선후기 실학을 여러 갈래에서 꽃피웠던 - 그래서 시험공부를 위해 저자와 그가 지은 책의 앞 글자만 따서 외우기도 했던- 박제가, 유득공, 이덕무가 ‘서자’라는 시대의 장벽에 가로 막힌 인물들이었다는 것과 ‘원각사 십층석탑- 백탑’을 지근거리에 둔 이웃이었다는 점은 뭔가 드라마틱한 느낌마저 들게 했다.

책만 보는 바보... 처음 이 책의 제목을 접했을 때는 책만 그저 좋아 했던 책상물림의 서생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했지만 실제 책의 내용은 서자의 운명으로 태어나 돈을 벌수도 없고, 그렇다고 벼슬길에 나 갈수도 없는 半양반 신세로서 그야 말로 책만 볼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바보 아닌 바보가 될 수밖에 없었던 이야기에는 가슴이 아려왔다.

하지만 그런 시대의 벽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책을 읽고 세상에 대해, 학문에 대해 교류하였던 친구들과 그런 그들을 편견 없이 지켜보며 흔쾌히 인생의 선배와 스승의 역할을 담당해 주었던 홍대용, 박지원은 교과서와 활자 속에서 걸어 나와 참 스승, 훌륭한 인간의 면모로 새롭게 다가왔다.

배고픔과 추위 속에서도 책을 읽는 이덕무의 모습을 어이 없기까지 했지만 묘사가 실감나고 또 구체적이어서 그랬는지 나까지 공연히 배가 고프고 추워지는 느낌이었다.


얼마 전 모 신문에서 우리사회가 이렇게 까지 힘들어 진 이유의 하나로 ‘연대의 실종’을 들었던 것에 대해 무척 공감했었다.

80년의 광주, 87년 민주 항쟁 때와 같이 역사의 고비마다 우리는 학생과 노동자, 넥타이 부대, 자영업자들이 하나의 목표를 위해 격의 없이 어깨동무를 했었다. 하지만 요즈음 사회적 현안에 대해서는 수많은 대책위원회는 많이 만들어지지만 사람과 사람, 단체와 단체 사이의 실질적인 연대는 쉽지 않은 것 같다.


250여년전에 대사동(大寺洞) 백탑아래에서의 눈물겨운 우정과 사람과 사람사이의 연대가 마냥 부럽기도 하고 존경스럽기도 하다.


* 이덕무가 쓴 <간서치전 看書痴傳-책만 보는 바보이야기>에 살을 보태 이렇게 동화 같은 이야기를 만들어 낸 저자 안소영씨는 남민전, 구국전위 사건으로 삶의 오랜 시간을 감옥에서 보낸 수학자 안재구선생의 따님이라고 한다. 엄혹한 군사정권 시절에 사상범 아버지를 감옥에 둔 딸의 심정과 서자 이덕무의 마음이 통하여 이런 글을 낳게 된 것은 아니었는지 주제넘은 상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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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탈로니아 찬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6
조지 오웰 지음, 정영목 옮김 / 민음사 / 200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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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은 ‘찬가’이지만 찬가의 이미지에 맞는 내용은 책의 초입부분을 제외하고는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조지오웰은 처음 스페인을 찾았을 때 전쟁에 참여할 생각은 없었지만, 카탈로니아에서 만난 이상적인 분위기에 압도되어 전쟁에 자원입대하게 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무엇이 서른을 넘긴 유부남을 다른 것도 아닌 ‘전쟁’의 한가운데로 뛰어들게 했을까?

세계사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을 것 같은 군대에서 마저 상하 구분이 없고, 너와 내가 아닌 우리라는 분위기, 노동계급이 실질적이고 주체적인 역사의 주인공으로 나섰던 내전 초기 아나키즘의 카탈로니아 묘사는 흥미롭고, 마치 따사로운 봄 햇살이 내리쬐는 초원을 연상시키듯이 평화롭고 상큼했다.

오웰 자신이 변변한 전쟁은 치러보지 못했다고 밝히고 있지만 생생한 전쟁터의 묘사마저도 전쟁이라기보다는 한가한 시골 기행문을 읽는 느낌이 났던 것은 스페인 내전에 공화파로 참가한 이 들의 역사적 정당성에 기인한 ‘정의로운 안도감’ 같은 것은 아니었을까?

물론 후반부에 나오는 이른바 1937년 5월 사태의 시가전과 그로 인한 도망, 은폐 등의 묘사는 마치 다큐멘터리 필름을 보는 듯이 급박하게 그려진다.


고등학교때 읽었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의 기억과 ‘스페인 프로축구’의 범상치 않은 지역주의와 클럽문화와 함께 맛 본 스페인 내전에서의 공화파의 정체성은 이 책에서 서술한  분열과 반목을 접하고 나서는 더 이상 그리 정의롭게만 다가오지 않는다.

이 책이 처음 출간 될 때의 상황은 조지오웰이 따로 부록과 같은 5장과 11장을 쓸 수밖에 없을 정도로 오웰의 생각과는 많이 다른 스페인 내전에 대한 경향과 조류가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다른 무엇보다도 확실한 것은 내전 당시 공화파는 분열했고, 스페인 내전의 승리는 파시스트 프랑코에게 돌아가고 말았다는 사실이다.

분열한 당시의 정파들마다, 제 각기 스스로에게 아니면 다른 정파에게 변명과 공격을 할 수 있겠지만 오웰이 분명하게 이 책을 통하여 밝히고 있는 것은 바르셀로나에서 노동자 자치와, 혁명의 분위기 스스로를 거두어들인 것은 다름 아닌 소련의 입장을 대변한 ‘공산당’이었다는 사실이다.

아나키스트 '바쿠닌'과 '푸르동'이 격렬한 맑스 비판을 통해 주장한 ‘공산주의자들의 인민국가’의 위험성을 몇 십년 뒤에 무너져 버린 소련이 아닌 스페인 내전을 통해 먼저 보여주었던 것은 아닐까?


*나처럼 스페인 내전에 대해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었던 사람이라면 책 마지막의 ‘옮긴이의 말’을 먼저 읽고 스페인 내전의 대강의 역사를 이해한다면 훨씬 책 내용을 파악하기기 쉬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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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패배자 - 한 권으로 읽는 인간 패배의 역사
볼프 슈나이더 지음, 박종대 옮김 / 을유문화사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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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배한 인생’의 정의는 무엇일까? 실패한 인생도 아니고 패배한 인생이 있다면 당연히 ‘승리한 인생’도 그 옆자리 어딘가에 있어야 하지 않을까?

이 책 ‘위대한 패배자’는 그 제목에서 보여 주듯이 단순한 패배자의 이야기를 다룬 책은 아니다. 물론 ‘비참한 패배자들’과 ‘끝없이 추락한 패배자들’이란 소제목속의 몇몇 인간군상은 안타까울 정도로 패배의 늪으로 곤두박질 쳤지만 대부분은 ‘천재’ 혹은 부단한 노력으로 인생의 정상 언저리를 밟아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러기에 필부인 나의 눈으로 보기에 과연 이 책에 나오는 사람들에게 ‘패배자’란 말을 -비록 ‘위대한’이란 수식어가 있지만- 붙이는 것이 합당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무엇이 한 때 성공의 언저리에 있던 사람들의 삶을 패배로 이르게 하는 것일까?

이 책에서는 그 이유를 자기 자신의 지나친 자신감과 열정, 주변사람들(친구, 가족, 라이벌), 또는 시대를 타고 나지 못한 불운, 혹은 개인의 아둔함 등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이 패배한 인생을 다루고 있다고 해서 서술 분위기가 어두운 것은 아니며, 오히려 정상에 올라서기까지의 과정도 함께 다루고 있어서 흥미롭기까지 하다.

개인적으로 우리나라의 김대중 대통령과 비슷한 인생역정을 가졌던 라이너 바르첼(바르첼은 끝까지 집권하지 못했지만...), 아들에게 명성을 뺏긴 요한 스트라우스, 마르크스에게 부당하게 배척받은 라살 등의 삶의 이야기는 처음 접하기도 해서 인상 깊게 남는다.


언젠가 모 대기업 광고에서 역사는 2등을 기억하지 않는다는 카피가 논란이 일었던 적이 있었다.

역사는 과연 2등을 기억하지 않을까? 패배자를 기억해 주지 않을까?

학창시절 뭘 해도 10등 안에 들지 못했던 인생으로서는 잘 이해가 되지 않지만 이 책을 읽음으로서 한 가지 확실한 것은 1등, 혹은 승리한 인생역시 한때 패배자였었고 패배한 삶의 조력이 있었기에 승리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그런데 2등이 패배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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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울 2007-01-19 1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왜, 이 사회는, 전기들은 사회와 개인의 관계로만 설정하고 기술하는 것일까? 협잡한 것도 아닐텐데. 황량하기만 한 사회란 야생속에 홀홀단신 헤쳐나가는 환상을 불러 일으키고 그 구도 속에 넣으려고만 하는 것일까? '우리'는 어디에 있을까? 보이지 않는 묵직한 '우리'는 어디에 있을까? '우리'라는 자양분 속에 1,2,3등이 있을터인데. 인생을 개인의 실패-성공으로 구분하는 것은 또 다른 '아둔함'은 아닐까? 그 많은 성공의 그늘에 '우리'는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우리'의 명예회복을 꿈꾸며... 9할이상은 '우리'가 개입되어 있을터인데... '우리'의 시선으로 지난 사건들의 복원을 꿈꾸며...별네개씩이나 준데대해 공개적 반대의사 표시하며...!!!
 
임종국 평전 - 벼락이 떨어져도 나는 내 서재를 뜰 수가 없다
정운현 지음 / 시대의창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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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종국’이란 이름은 그 전에도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구체적으로 알게 된 것 순전히 조정래씨의 소설 ‘한강’속에 나오는 실명의 이름을 접하고 나서였던 것 같다.
한 평생 역사학계의 아웃사이더로 살아온 고집쟁이 영감님의 이미지를 가지고 접했던 책이지만 의외로 이 책에서 밝혀진 임종국 선생님은 조지훈의 추천으로 등단한 시인이자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이상전집’을 집필한 문학도이셨고, 불의한 세상에 항거하는 방법으로 한 때 사법고시에도 도전한 적도 있었던 누구보다 뜨거운 가슴을 가졌던 분이셨던 것 같다. 하긴 그러했기 때문에 선생님만의 깊고 치밀한 친일파연구가 가능 하셨던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이 책은 임종국 선생님의 업적뿐만 아니라 선생님 개인의 방황하는 청년기, 결혼, 이혼, 가족사에 이르기 까지 글자 그대로 발가벗겨진(?) 선생님의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는 말 그대로의 ‘평전’이다. 그렇기 때문에 책의 처음에 나와 있는 선생님의 의외의 모습에 약간 당황스러웠던 적도 있었지만 이 모든 것은 친일파 연구에 대한 임종국선생님의 불굴의 의지에 다 녹아버리고도 남음이 있었던 것 같다.
특별히 선생이 하는 작업의 중요함을 알고 선생님이 타계하기 마지막 5년을 곁에서 시봉했던 ‘김대기’란 분에 대해서는 참 고마운 마음이 절로 우러나왔다.

또한 이 책을 쓴 정운현씨 역시 임종국 선생님의 평전을 쓸 수 있는 자격을 갖춘 분임을 알기에 기꺼운 마음으로 책장을 넘겼음은 물론이다.                                                                                                 


재단 같은데서 경제적 도움을 받아 보라는 지인들의 권유에 "그러면 붓 끝이 떨려서 글을 쓸 수 없다"며 한사코 거절했던 사람...


선생께서 죽음이 거의 가까워 왔을 때쯤 나오지 않는 목소리 대신 이런 글을 써서 담당 의사에게 전했다고 하는 대목에서는 눈시울이 뜨거워 졌다.


“나를 좀 살려 달라. 아직 할 일이 많이 남았다. 살아서 나가면 내가 쓴 책을 다 드리겠다.”


지금도 임종국 선생님의 친일파 연구를 뛰어넘는 후학들이 나오지 않고 있고, 오히려 비슷한 연구들이 선생님의 연구를 바탕으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하니 그 당시 친일파 연구는 선생님이 아니면 끝낼 수 없었다는 것을 알고 계셨던 통한의 외침이 아니었을가?


*친일파에 대해 좀 더 알고자 한다면 이 책보다는 임종국 선생님의 저서를 읽는 것이 나을 것 같다. 대신 누구보다 뜨거운 가슴과 책임감으로 자기 자신을 불태워 간 한 인간의 삶에 감동받고자 한다면 이 책을 권해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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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울 2007-01-17 1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드뎌 마을에 마실 나오셨구랴~. 추천 꾸욱!

고니 2007-01-18 15: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데뷔 축하 축하 이벤트는 언제 하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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