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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게 노래
김중혁 지음 / 마음산책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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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혁 작가의 데뷔작 <펭귄 뉴스>를 읽고 나서 소문대로 거대한 신인이 나타났구나 싶었다. 무엇보다 눈에 띄던 것은 무게감이나 비장함 없이도 좋은 문학일 수 있구나, 내 안에 있던 일말의 편견들을 걷어내준 소설이었다. 그것은 흡사 어떤 새로운 세기가 왔구나 싶은 감정을 심어 주었고, 발랄한 젊은 작가의 출현이 읽는 내내 설레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내 모르긴 몰라도 이 소설의 작가가 실제로도 상당히 유머러스하고 다재다능한 사람일거란 기대가 들었다. 알면 알게 될 수록 김중혁이란 사람의 개인적인 호감도도 높아지고 참 매력이 많은 예술가라는 인상을 차기작들을 읽으면서도 계속해서 느끼게 되는 바였다.

김중혁 작가의 글쓰는 재주 외에 관심사는 어느 소설에서든 기발하게 드러났다. 평소 발명을 즐겨 상상하는 편이어서 그런지 세상에 없는 미지의 세계를 그려내는 상상력은 실로 감탄스러웠다. 그 어떤 황당함에 놓여 있더라도 현실처럼 어울리게 펼쳐지는 소설 속 세상은 참으로 다채로웠다. 실제로 존재하지 못할 상황이 주어지더라도 그가 부리는 그럴듯한 세상에 놓이면 아지랑이가 몽실 피어나는 현실이 되고 근사한 판타지로 펼쳐지곤 했다. 그것은 그만이 펼쳐 낼 수 있는 세상의 발명이었다.

 

 

 

 

 

이번 에세이 <모든 게 노래>에서 작가는 자신의 부족함이 세상 사람들을 어떻게 위로할 수 있을까를 고민한 경험을 솔직하게 털어 놓는다. 이점이 어쩌면 그의 작품 세계의 핵심이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작가로 살아가는 것에 어떤 자격이 있다면 자신이 부족한 사람일거라고 스스로 자문한 흔적들은 인간적이고 참 좋다어찌어찌해서 전업 작가로서의 삶을 살아가고 있고 글을 쓰는 것에 여전한 물음표들을 안고 살아간다고 고백하는 것이 그의 글을 더욱 진실되고 빛나게 해준다. 그리하여 세상에는 참으로 다양한 위로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은 전적으로 옳다.

 

 

 

아픔을 아프게 그려냄으로서 위로를 줄 수도 있고, 아니면 정반대의 삶으로 희망을 줄 수도 있을 것이다. 세상으로부터 소외된 자들의 아픔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발현되어 각자의 몫으로 치유되기 마련이다. 작가는 오랜 세월 여러 방면으로 삶의 방법들을 부딪치고 쌓아 오면서 그만의 글쓰기를 완성해 나가는 중인 듯하다. 그의 소설이 언제나 세상의 변방 어딘가를 떠돌게 하는 이국적인 매력을 지닌 것, 고임 보다는 떠돎에 대한 자유분방함을 말해주는 것만으로도 이미 깊이 묻혀 있던 소외의 감정같은 것이 해방되는 느낌이다. 이러한 식으로 세상이 생각보다는 더 재미있고, 전혀 지루하지 않은 세계라는 용기를 준다. 기발한 매력으로서 다른 창을 열어주는 환기의 노릇을 톡톡히 해주는 것처럼 말이다.

 

 

 

 

 

<모든 게 노래>는 김중혁 작가가 오랜 시간 가슴을 뛰게 만든 나만의 플레이리스트를 모은 에세이다. 상황마다 무엇보다 계절마다 어울리는 음악을 추천해주는 것도 물론 좋았지만, 그 시기를 겪어낸 소소한 일상과 추억들을 노래와 엮어 낸 것이 역시 그다운 일상을 만난 것 같아 반가웠다. 여느 작가의 글도 안그렇겠냐만, 김중혁 작가의 글은 특히나 평범한 듯 우리의 일상을 더듬어 주는 매력이 크다. 그의 글을 읽고 주변을 다시 돌아보면 새삼스러워 지는 것들이 참 많다. 

 

 

 

언제 어디에서든 찾게 되는 것이 책보다는 음악이라는 생각을 종종 해왔다. 음악을 듣는 일은 잠시 생각을 내려놓게 되는 ‘일시정지의 순간을 주고, ‘영원의 막연함을 사랑하게 만들어 준다. 그와 함께 흥얼거리게 되는 음악들을 찾아 들으면서, 나만의 시간을 좀 더 근사하게 꾸며줄 어떤 궁리에 대한 생각을 골몰해 보았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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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얼굴]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작가의 얼굴 - 어느 늙은 비평가의 문학 이야기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 지음, 김지선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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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 보편화 된 세상에서 자화상을 남기는 사람은 이제 거의 없어졌지만, 인사동을 지날 때 거리 화가가 그려낸 초상화를 보고 있으면 하나 쯤 남겨도 좋을 것 같다. 아마 사진과는 다른 매력의 내모습을 기대하는 호기심 때문일 텐데, 분명 그림에서의 얼굴을 화가는 어떻게 바라보았는지 궁금해지는 것도 당연한 듯 싶다.

사진은 나와 카메라 사이에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림은 일단 나를 본 화가의 눈’ 즉 3의 존재가 아주 커다랗게 존재하는 예술이다. 남이 본 나는 과연 어떤 특질로서 비춰지는가 이러한 재미 역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일 것이다. 그림에는 단 한가지의 표정만을 담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인물의 개성과 인상의 과장이 절묘하게 남겨진다. 그리는 사람의 기술적 의도가 그 인물의 개성과 버무려져 초상화의 매력을 드높여 준다.

 

 

옛날에는 돈과 권세가 있던 귀족, 양반들에게나 과시의 용도로서 혹은 후세에 남겨둘 목적으로 초상화가 남겨졌다고 하는데, 몇몇 작품들만 봐도 당시의 인물이 어떤 품성이었는지 어떤 위치의 사람이었을지 판가늠 되기도 한다. 물론 그리는 사람은 고객에게 칭찬을 들을 셈으로 미화하거나 과장해서 환경을 묘사해줄 수는 있겠으나 적어도 실제보다 낫게 그렸을 것을 감안 하더라도 작가가 포착해낸 인물의 개성은 고스란히 드러나는걸 알 수 있다.

성격이라던지, 상황, 시대, 이야기들이, 인물이 말하고자 하는 바와 더불어, 화가의 숨은 의도 개성들이 읽혀진다. 초상화는 그 사람을 말해주는 응집된 결과물로서 그 모든 것이라고까지는 못하더라도 중요한 단면을 말해주는 중요한 단서라는 데는 틀림이 없을 것 같다.

 

 

 

만약 한 장의 그림처럼 서사가 담긴 그 무엇을 표현한 장르가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 생각해 보았다. 언뜻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짧고 간결하지만 말하고자 하는 바가 충실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해석자 ’의 개입이 가장 중요한 핵심이라는 걸 생각해보면 분석적인 측면에서 한 편의 비평글’이 떠오른. 초상화는 인물을 개성 있게 담아야 함은 물론이고 한 가지 표정 안에 숨어진 기질까지 담아야 하는 복합적인 작업이다. 그리고 문학 비평가는 작품이 가지는 가장 핵심적이고 특질적인 요소들을 끄집어내고 분석해내는 기술로서 초상화를 만들어내는 화가와 맞닿은 기질이 많아 보인다. 이 책 <작가의 얼굴>을 보고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이 바로 이것이었다.

 

 

 

이 책의 작가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는 신랄한 비평을 한 덕분인지 독일 내에서 유명세를 톡톡히 치르는 비평가라고 한다. 그런데 적어도 이 책에서 만큼은 날 선 분석적인 면을 강조하기 보다는 주로 작가에 대한 사담과 적당의 찬사와 비판을 담고 있다. 물론 아무리 유명작가라도 부풀려진 면이 있다면 과감히 칼을 세우고 제대로 도려내야 더 좋았다라는 아낌없는 비평도 하고 있다. 그런대로 비평가로서의 자질을 면면이 보여주지만 대체로 그것은 수긍할 수 있을 만한 정도로 비춰진다. 그보다 이 책은 작가가 숙명적으로 수집하게 된 초상화’들로 하여금 여러 문호들의 이야기들의 묶어 본 책으로 보는 게 무방할 것 같다. 간추려진 인물들의 목록을 보다보면 무조건 찬미해도 모자랄 위대한 사람만을 담았구나 싶어지지만 그것도 아니었던게 이 책의 또다른 매력이었다.

 

 

어떤 경로로 수집을 하게 됐다던가, 작품세계는 어떻다던가 하는 비평가로서의 평이 주를 이루지만 흥미로운 점은 정작 초상화에 대한 언급이 별로 없다는 점이다. 안하는 건 아니지만 하나하나 분석하고 그림의 어떤 점이 흥미롭다 하는 걸 말하는 대신(물론 미술 평론을 하자는 게 아니니까 그럴 만도 하지만) 독자들이 알지 못할 역사적인 배경지식을 소개하거나 자신만이 생각하는 비평을 쏟아내는 데 더욱 열중하는 글이다. 처음에는 이 부분이 다소 의아했지만 읽다보니, 잘 알지 못했던 작가 부분을 읽을 때 좀 더 자세히 설명을 들을 수 있으니 이해가 쉬웠고, 한 컷의 초상화만으로 작가나 작품을 상상해보는 재미도 있어서 흥미로웠다.

 

 

 

<작가의 얼굴>을 읽다보면 그의 칼날이 결코 쉽게 재단하고 부려지는 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평론가라면 당연한 자질인지도 모르지만, 참 뻔하지 않은 해석을 내놓고 작품 이면의 세상을 들추어낼 줄 아는 진면모를 가진 비평가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이렇게 많은 작가들의 배경을 알고 분석할 수 있었을까 존경심이 일기도 하다가, 종래에는 그에게 그나마 초상화를 모으는 취미가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비평가라는 직업의 특성상 어쩔 수 없이 휘둘려 지는 펜이라는 칼날이 초상화라는 삶의 위트가 함께 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참으로 근사한 조합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의 펜이 조금이라도 더 날서고 무뎌지는 걸 막을 수 있던 삶의 활력소는 한 장의 초상화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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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가는 문 - 이와나미 소년문고를 말하다
미야자키 하야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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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책을 거의 읽지 않는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이, 커서 좋아하게 된 경우는 과연 얼마나 될까? 읽고 싶어도 없어서 못 읽었던 시절이 아니고서야, 아마 별로 없지 않을까 싶다. 주위를 둘러봐도 책 깨나 읽는다는 사람들 얘기는 하나같이 어릴 때는 지금보다 훨씬 더 좋아해서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는 말을 하는데, 심한 과장은 아닐 것 같다. 심지어 책을 몰래 읽다가 선생님이나 부모로부터 꾸지람을 들었을 정도라니 얼마나 읽는게 재미있고 좋았으면 그랬을까, 그 기질이 심히 부럽기만 하다. 아니몰래 볼 게 따로 있지!

 

 

지금은 그런대로 읽는 걸 좋아하게 된 나는 어릴 때는 책을 거의 읽지 않는 아이였다. 학창 시절 내내 주로 독서부에 가입했던 경력으로서 미루어서 의아한 구석이 아닐 수 없는데 어쨌든 대학에 가서야 자진해서 책을 읽게 되었고 어릴 때 습관이 이어진 경우는 분명 아닌 것이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딱히 책을 싫어하던 건 아니었는데 왜 그 지경까지 책과 담을 쌓고 살았나 싶다. 은근히 부모 탓으로 돌리는 말을 시작할 것 같아서 뭣하지만, 역시 환경 탓을 먼저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을 것 같다. 우리 부모가 보기에 내가 너무 공부에 관심이 없어 보여서 그랬던지 아니면 사는데 여유가 없어서였는지 모르지만 여느 집에나 꽂혀 있던 그 흔한 소년 문고 시리즈 하나 없었던 게 담 쌓고 산 이유가 아니었을지 조심스럽게 진단해본다. 집에 있던 책이라고는 고작 이웃이나 친척들이 물려준 곰팡이 그득한 세로쓰기 책들이었으니 손이 갈 리가 없지 않았을까. 지금처럼 동네 도서관이 있던 시절도 아니었고, 교실에 학급문고 몇 권 정도가 고작이었던 시절을 산 나는 읽기보다는 차라리 모래무덤이나 만들며 노는 편이 훨씬 더 재미있었다내 성격을 미루어 볼 때 대관절 내성적인 애가 책도 안 읽고 뭐하고 살았나 싶지만 안 읽은 것 보다는 환경이 그래서 어쩔 수 없었다라는 억지 핑계라도 대고 싶어지는 것이다. 만약 그 시절 책이라도 많이 읽었다면 지금의 내 삶이 조금은 더 밝게 작용하지 않았을까 싶은 아쉬움은 어쩔 수가 없는 것이다.

 

 

 

 

이 책 <책으로 가는 문>을 읽으면서 당연하게도 미야자키 하야오의 서재에는 양질의 책이 그득했기 때문에 뭐라도 됐구나 싶었다. 결국 방 안의 책은 그 사람을 이루는데 아주 중요한 자양분이 된다는 생각이 든다. 어린이를 사랑하고 문학을 아끼는 만큼이나 솎아 낸 몇 편의 소개가 더욱 반가운 것은 이와 같은 환경적 토대를 덩달아 누릴 수 있으리라는 기대 때문인 것 같다. 이 책들을 읽고 어린 시절을 보낼 수많은 어린이들의 그득한 미소가 덩달아 떠올려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책으로 가는 문> 1부에는 미야자키 하야오가 남긴 책에 대한 단상 정도가 담겨 있다. 물론 어린이를 겨냥해서 쓴 소개가 맞지만 어른이 보기에도 유치하지 않을 기대감으로 설명한다. 짧지만 핵심적인 주제와 하야오만의 감상이 지루하지 않게 버무려져서 간결하게 소개되고 있다. 오십 편으로 간추리면서 그만의 특색 있는 기준을 엿보게 되는 것은 무척 흥미로운 부분이다. 읽지 못한 동화는 메모를 해두었다가 찾아보고 싶어지고 그림으로 보는 이야기의 서사도 궁금해진다.

2부에서는 주로 그의 작품 세계의 원작이 되었던 동화나 자전적인 이야기들이 주를 이룬다. 시대을 살아온 역사적인 맥락들, 그의 작품들의 원천이 되는 사상과 철학 등을 엿볼 수 있는 대목들이 많다. 얼마 전 은퇴 선언을 한 배경을 짐작할 때 그가 어떤 세계관, 역사관을 가지고 있나 진지하게 살펴봐야겠다 싶었는데 어릴 때 아버지와 논쟁한 대목만 읽어봐도 그의 진의를 알 수 있었다. 

 

 

 

책에 언급된 바와 같이 그의 작품세계는 굉장히 명확한 세계관으로 그려진 이야기들이다. 어린이만을 위한 쉬운 만화를 그린 것도 아니고, 교훈적이거나, 마냥 밝고 즐거운 삶을 그려낸 것도 아니기 때문에 그렇다. 그의 애니메이션들은 오히려 기괴하고, 말이 적고, 이상한 세상, 기묘한 분위기일 때 훨씬 더 매력적이다. 판타지 그득한 세상에 놓이게 되지만 결코 현실의 고리와, 역사성을 바닥 깔지 않고는 그의 만화를 상상하지 못한다.

그가 태어난 시절의 상황, 어쩔 수 없이 노스탤지어로서의 전쟁이 그려지는 논란이 맞물려 질 수밖에 없는 이유가 실제로 그의 만화 안에 존재한다. 2부에서 다뤄지는 그의 자전적인 이야기들이 주는 메시지들은 결국 소중한 책 한권으로 정립되는 한 사람의 세계관이라는 것일 테다. 그가 인생에서 중요하게 작용한 책들은 그의 직업 특성상 아주 많은 책들에서 비롯될 수밖에 없었다지만, 어떤 이에게 그것은 단 한권의 책일 수도 있다고 조언한다. 마음에 꽂혀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면 그것은 참 다행한 일이 아닐까 하고 말이다.

 

 

하야오는 결국 인생이라는 레일 위를 달릴 때 어떤 시련이 오더라도 극복해 낼 수 있는 작은 힘을 갖게 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해준다. 그 힘은 어릴 때 책에서 본 작은 재생의 힘이 모여 크고 작은 난관을 극복해나갈 수 있는 삶의 자세가 된다는 것이다. 그가 전하는, 책으로 가는 여러 문을 아주 많은 어린이들이 부지런히 드나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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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에서 보내는 시간 - 영혼이 쉴 수 있는 곳을 가꾸다
헤르만 헤세 지음, 두행숙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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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의를 다해 몰두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 날마다 애정을 쏟아넣는 눈동자의 빛은 얼마나 아름다운가작가 헤르만 헤세의 <정원에서 보내는 시간>을 읽으면서 그가 글 쓰는 재주 외에도 그림을 그린다는 것, 정원사이기도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연 친화적인 낱말과 문장으로 본연의 아름다움을 말하는 작품들이 어떻게 탄생할 수 있었는지 짐작케 되는 이력이다. 참으로 다양한 몰입의 즐거움을 알던 삶이었던 듯 싶다.

헤세의 눈동자에는 정원의 그득한 푸름이 머문 또 하나의 자연이자 세상을 한아름 담고 있는 것 같다. 단정히 다문 입, 확고한 고집이 느껴지는 주름, 굳은살 박인 다부진 손, 온 생을 다해 나이테처럼 두른 몸의 단단함은 헤세의 인생을 말해준다.

이 책은 정원에 대한 이야기로 묶여진 산문들이기 때문에 주로 헤세의 소소한 일상에 대한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읽다보면 한 권의 철학서나아포리즘을 읽는 것처럼 마음에 새겨지는 글귀가 많다. 그가 왜 정원을 가꿀 수밖에 없었는가, 자연스럽지만 필연적인 이유들이 내내 실리고, 주변부로 자꾸 이끌어지게 되는 삶이었는가를 정원을 가꾸면서 느낀 일일로 천천히 고백하고 있다.

 

 

 

 

헤세의 행로를 보면 시종일관 인위적인 것들로부터 벗어나고자 한 삶이었다는걸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자연 그대로에 깊이 매료되다 보니 세상이 크게 변화하거나 나아진다라고 하는 의미가 대단히 잘못 이해되고 있음을 성토하듯 일침 한다.

세상의 급변함, 모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에서 벌어진 참담한 전쟁들, 인간성 상실에 대한 극심한 비극들이 벌어질수록 그의 글은 자연 그대로의 삶, 융화의 자세를 더욱 고취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헤세는 가공하는 것, 인위적인 모든 것을 혐오하고 안타까워했지만 정원 역시 자연 그대로라고는 볼 수 없는 최소한의 가꿈으로 만들어진 곳이다하루하루 헤세의 손을 탄 정원의 인위는 그의 세계관이 완벽하게는 빛을 발할 수 없음을 아이러니하게 보여주는 듯 하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헤세가 바라던 세상과는 너무 멀리 와버렸을지 모를 일이나, 영원히 양면의 균형을 이루며 나아가야 함은 자명하기에 이 양면은 함께 간다.

 

 

 

자꾸만 주변부로 밀려나 살 수밖에 없던 작가의 고뇌는 풍성한 정원 안에서 외롭게 서있는 한그루의 소나무 같다. 넉넉한 잎새들이 내미는 손인사에 조용히 다독일줄 아는 독야청청함을 안고 말이다. 헤세의 정원 안에서는 그만의 철학과 사상들로 올 곧게 자라나는 꿀과 나비들이 꿈을 품고 마음껏 자연을 누리며 살아 간다. 그에게 정원은 요새이자 유배지였을까.

자연과 인간이 함께 조화를 이루면서 서로를 잉태할 수 있는 삶으로 좀 더 근사하게만 펼쳐졌으면 싶은 마음이 든다. 그리고 그것이 조금은 헤세의 그것과 닮았으면 좋겠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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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 어느 책방에 머물러 있던 청춘의 글씨들
윤성근 엮음 / 큐리어스(Qrious)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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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쓰는 작가나 뮤지션들이 자신의 작품을 중고거래장에서 보게 된 소회를 담담하게 고백하는 걸 여러 번 본 적이 있다. 헌책과 CD를 모아놓은 공간에 자주 들르는 작가라면 이런 일도 왕왕 있을 법 하다충격이라면 정도의 차이겠지만 대충 배신감과 창피함, 쓸쓸함, 회의감 등 짧지만 모든 부정적 감정들로 착찹한 기분을 말하는 것이었다. 마치 버려진 자식 살피듯 쓸쓸해져서 내가 사버릴까하는 마음이야 왜 안들까. 거기다 반듯한 손 글씨로 쓰인 사인본이라도 발견한다면 서늘해진 마음을 추스르다가 괜히 겸연쩍은 웃음보라도 터질 것 같다.

한 때 본인의 온 것이 담겼을 작품이 누군가에 소중히 간직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라야 작가가 아니어도 헤아릴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책은 내용으로서의 면과, 물건으로서의 이중적인 면을 동시에 가지고 있어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구나 싶어진다. 시간이 흐르면 내용의 의미도 희미해질 일이니 눈앞에서 아예 사라져 버리는 편도 이상한 일은 아닌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더 이상의 소장 가치를 잃고 공간 확보의 의미가 더 중요해진다거나, 다만 몇 장의 화폐로 바뀌면 더 좋을, 그 정도의 쓸모로만 남기도 한다. 버린다는 말의 매정함은 물건으로서 가해진 행위에 지나친 감상적 표현일지도 모르니 말이다. 만들어낸 사람 입장에서야 여기 저기 미아처럼 떠돌 가련한 행방을 염려하는 것이 이해될 노릇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헌책방에라도 부지되는 편이 애타게 찾아온 독자의 편에서는 천운의 기회로 삼아지는 일일지도 모른다.

 

 

 

 

 

이런 저런 이유들로 작가의 마음까지 헤아려 지는 이유는 헌책방에 들르면 어김없이 묘한 사연과 과정의 일들로 생각에 잠기는 일이 잦기 때문에 그렇다. 내 손에 쥔 책의 작가의 마음도 헤아려 보게 되고, 한명 한명 책의 주인이라 이름 불렸을 그들의 감상평도 궁금해지는 것이며, 마음이 동한다면 내가 책의 새 주인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설렘 또한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순간이다.

활자로 어떤 이에게 큰 감흥을 안겨주고, 지식을 전하기도 하는 매개라는 것이 새삼 감탄스럽다가, 하나의 물건으로서 이리저리 찢기거나 상한 데는 없는지 눈요기로서의 면도 여간 신경 쓰이는 것이 아닌 것이 바로 헌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부산스럽거나 채근 대는 마음 없이 오롯이 나와 버려진 책들의 뜨거운 만남이라는 것만 푸근하게 남는 곳, 헌책방은 그런 곳이리라. 버려진, 혹은 누군가 잃어 버렸을, 헌책이란 말의 부정적인 근사함을 생각하게 되는 곳. 누군가를 활활 타오르게 만드는 격정과, 희로애락을 느끼게 해주었을 요란한 역사가 고스란히 세월의 먼지와 더께로 패잔병처럼 누워있는 곳은 어쩐지 특별하지 않을 수 없다. 쓸쓸하지만 다음 생을 기다리는 모양새가 근사하게 메워진 곳 그래서 헌책방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입 모아 특유의 냄새까지 애정한다고 말하는 모양이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워 호스>란 영화를 보면 주인공 소년의 말 조이가 시대의 격정에 휘말려 군마로 끌려가 오랜 세월 전쟁의 소용돌이에 떠돌다가 결국 주인공을 다시 만나게 되는 과정이 그려져 있다. 이탈리아 영화 <레드 바이올린>도 죽은 아내의 피로 색을 칠한 바이올린이 17세기를 거쳐 중국의 문화혁명 이후 소녀의 품에 이르기까지 숱한 사연과 역사의 아픔을 대신해 연주되는 유구함이 그려진다.

헌책을 사게 되면 어김없이 생각나는 영화들인데 그만큼 물건이 내게 이르는 과정, 내용 이외에도 어떤 소장 가치로서의 개인사가 소중히 살아있었겠구나 하는 것들을 생각하게 해주는 것 같다. 찢겨서 더 이상 읽히지 못할 지경에만 이르지 않는다면 수만 수억 개의 헌책들이 나름의 역사를 안고 유구하게 떠돌 낭만은 언제라도 존재할 것이다. 헌책방에 들르면 단순히 책을 사기위한 단계로서의 공간, 그 이상을 상상하게 돼 좋다.

 

 

 

<헌책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는 윤성근 작가의 오랜 헌책에 대한 애정으로 모아진 특별한 책이다. 소중한 사람에게 책을 선물하며 남긴 글, 메모, 전하지 못한 애틋한 마음들 각자의 사정들이 단정한 글씨에 서투르게 담겨 있다. 시대를 걱정하고, 때로는 소소한 우정이나 사랑을 전하며 선물했던 책에 당신이란 사람을 염두해 수줍은 고백을 말하고 있다. '나'와 '너' 를 이어주는 책의 이야기 가 있고, 행간에 읽히는 수많은 고백들이 보는 이로 하여금 저절로 미소를 짓게 해준다. 그렇다면 이제 당신이 좀 더 근사하게 펼쳐 주리라는 기대를 안고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며 내 방에 꽂힌 책들의 다음 이야기는 어떤 이와 어떻게 꾸려지게 될지 왠지 뭉실한 생각들이 넘나들며 이미 헌책이 된 목숨들의 미래를 그려보게 된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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