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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을 싫어하고 그래서 그만큼의 문화를 이룬 일본이란 나라의 어떤 일면의 대표적 인물이라 생각이 드는 '마루야마 겐지'의 신작이 나왔다. 요즘 젊은이들에게 유행처럼 부는 현상들 가운데 문제가 될 수 있는 면들을 작가가 작정하고 일침을 놓는다. 이를테면 잘 알지도 못하면서 막연한 기대를 갖는 순진한 긍정성, 낭만으로 치부하려는 시각을 경계하라고 쓴 여러 에세이 가운데 하나인 것이다. 마루야마 겐지의 입에서라면 이런 책이 잇다르게 출간되고 있는 사실이 무조건 반갑기만 하다. 

경계해야 하는 태도와 같은 맥락을 이루는 그의 문체 역시 날카롭고 응석은 통하지 않을 한 개인의 빳빳한 의식들이 느껴진다. 그야말로 통렬한 비판의식으로 목소리를 들려주니 진정 어른이란 생각이 드는 작가가 아닌가 싶다. 

그는 도시 생활을 접고 거의 한평생을 시골 생활을 해 온 경험으로 <시골은 그런 것이 아니다>를 펴내며 요목조목 참으로 다양하고 디테일한 면을 드러내면서 순진한 생각을 버리고 현실을 직시하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런 그에게 이번에는 '정원'이 눈에 띄인 모양이다. 주변을 가꾸면서 일어나는 자연과의 여러 소통의 감각들을 담아 내는데에 우리는 또 어떤 모습을 감화받게 될까. 사랑으로 가꾸되 그 안에서 벌어지는 자연의 어떤 엄격한 질서들을 어떠한 식으로 보고 또 우리에게 뭐라고 전할지 기대가 되는 책이다. 






그의 첫 장편소설을 읽게 되면서 자연히 주목하게 된 이래 빠짐없이 작품들을 기대하게 되는 손홍규 작가의 산문이다. 

언제나 보여주는 작가의 소설 속 인물들은 아플만큼 사랑스럽고 아름다워서 헤어지는 것이 아쉽게 느껴지질만큼 그 세계를 완벽히 구축한 진짜 사람들이 사는 세상을 말한다. 가장 변두리에서 소외된 자들의 찬 손을 매만져주는 참으로 다정한 손길을 가진 작가만의 독특한 시선들이 있다. 손홍규 작가의 개성은 늘 이런 식으로 좀 서늘한 기운에서 온기처럼 퍼져나가는 아픔과 희망이 공존해 있는 삶의 진한 기운이 어린 글로 기억되곤 한다. 

<다정한 편견>은 작가의 매체로 연재된 여러 편의 산문 가운데 선별과정을 거친 작품으로 작가의 사적 경험 등 소설 밖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한다. 손홍규작가의 좀 더 사적인 말이 궁금한 독자라면 무척 흥미로운 면을 발견할 수 있으리란 기대가 드는 작품이다. 








김도언의 산문을 읽고 있으면 그가 완전하게 소설가구나 하는 생각이 들곤 했다. 소설을 쓰지 않았다면 버티지 못했을 사람이라고 감히 생각해 본적이 있다. 사회와 주변의 내면에 깊이 개입하는 남다름이 보인다거나, 깊이 침잠해서 골몰하는 그의 태도가 어떨 때는 심하게 외로워 보여서 그는 정말 괜찮을까 하는 아슬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다행히 소설을 사랑해서 꿈꿀 수 있는 천직의 소설가라는 직업을 가지고 분투하는 그의 모습을 여러번 상상하고 또 안심했다. 물론 책을 출간해내는 소설가 이외의 직업이 따로 있기도 하지만 김도언에게 소설은 따로 떨어져 생각할 수 없는 완벽한 일치의 면이 있다. 

이번 산문집은 신문에 2년간이나 연재한 글을 묶어낸 책으로 그 주제와 관심사의 폭넓은 저변의 이야깃거리를 담고 있다 한다. 소설가에게는 어떤 열정의 소산으로서의 관심일수도, 에피소드나, 단순한 관찰일 수도, 때로 어떤 변명에 지나지 않을 주장일 수 있다고 전한다. 세상에 대해서 말하는 소설가의 다양한 형태의 이야기들이 작가가 독자에게 바라는 어떤 추궁으로 내게 물음표와 느낌표로 전해질 수 있길 바라본다.    






이 책은 이명세 감독과, 시인 채호기 두 사람에게서 오간 편지를 엮어 낸 책이다. 시인과 감독의 만남이라면 직업적 기질만으로 그 간극이 커 보이기 때문일까 이색적인 이야기가 많이 오갔을 것 같아 흥미롭다. 감독이란 자리는 협업이 가장 핵심이고 시인은 혼자 치열하게 겨루는 특징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명세 감독은 워낙 영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으로 유명하고, 문학으로 말하자면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시처럼 축약된 미를 보인다는 면에서 채호기 시인과의 동질성을 기대하게 되기도 한다. 영화에 대해, 시인의 시에 대해 이야기되는 좀 더 개인적인 사담을 듣게 될 생각을 하니 궁금증이 크게 인다. 









사물들에 대한 애정을 담은 여러 책들을 봐왔지만, 이 책은 여자 시인들만으로 이루어진 편애에 얽힌 사물들이란 점에서 흥미롭다. 남자 시인이든, 여자 시인이든 그 섬세함을 말하는데 있어서 구분이 없다고 생각하는 편이라 그냥 이 책은 시인들의 시선이란 면으로 생각해도 무방할 듯 하다. 어쨌든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것의 이야기일 수도 혹은 내 주변에서 보던 흔한 사물일수도 있고 시인 각자가 이야기하는 경험과 자기만의 것들에 대한 애정을 살필 재미있는 시간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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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도에 관하여 - 나를 살아가게 하는 가치들
임경선 지음 / 한겨레출판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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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임경선 작가의 신작이 <태도에 관하여>라는 표제라는 걸 알게 된 순간부터 이 책을 사랑하게 될 줄 알았다. 당연한 기대는 그녀의 심사숙고한 언행들을 믿어왔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내 한창의 고민인 태도에 관한이야기를 내밀하게 들추고 또 털어버릴 수 있으리란 기대 때문일 것이다. 



생각해보면 보편적인 멋을 추구해 본적이 없는 나같은 사람에게 그나마 관심이 생겨 따르고 싶다란 생각이 들게 하는 면은 너무나도 소중하다. 예를 들면 어떤 특정한 태도를 포착했을 때, 희열과 대면한 순간과 같은 것이다. 마음에 드는 특정한 사람에게서 보는 거의 모든 태도일 수도 있지만, 은은히 풍겨오는 어떤 공손함과 같은 단일한 것일 수도 있다. 이러한 면을 긍정하게 되면 정념에 가까운 지지가 생기기도 한다.



내가 본 임경선 작가에게서 가장 주목하는 태도는 용기와 긍정이다. 사람들의 고민을 듣는 작가에게서 언제라도 기대할 수 있는 면은 아주 구체적이고도 집중된 조명을 밝혀주는 시야의 확보이다. 그것이 옳은 길을 비추어 주기때문이 아니라 한 면의 제시정도로 다가와서는 상대의 고민하는 가장 못난 밑둥을 건드려 주는 헤아림이 있고, 무엇보다 갈피를 못잡고 흔들리는 사람에게 그 중심에 서라는 고요 즉 시간을 선사하는 면이 있다. 자신을 한번더 들여다보고 스스로를 긍정할 수 있게 밝혀주는 덕분에 결국 스스로에게 용기를 부여하는 손길로 느껴지게 된다.



이 책에서 언급되는 아주 소중한 태도의 다섯 가지 면들을 천천히 들어보면서 역시 타자에게서 찾을 수 있는 관계와의 배려들을 살피게 되었다.

뭐라도 해야 시작되고, 현실을 직시하며 부딪치고 자극을 받게 될 때 사람은 한걸음 더 성장한다. 가만히 있으면서 어떤 운좋은 기회가 오지 않을까, 왜 내 주위에는 마음에 드는 사람이 없나 생각해본 적 있던 내 못난 면을 정확히 보게 되었다. 좀 더 단단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우리는 시련에 맞서며 그 시련의 아픔을 아는 사람이 되고, 또 이런 이유때문에 타인의 고통에도 동조하며 배려하고 같이 나아가는 연대의 길도 열리게 된다. 이런 사람들에게만이 그와 비슷한 환경에 놓이게 될 것이다. 



이 책의 태도에 관한 이야기를 길게 전해 들으면서 흥미롭게 다가온 점은 그 구체적 감정들이 남녀 간의 사랑에 견주어 비어져 나온다는 점이었다. 연예 칼럼을 많이 써온 작가인만큼 결국 남녀 간의 사랑 문제에서 벌어지는 많은 점들을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수많은 태도의 문제와 맞닿는 지점들로 비유된다

과연 그렇다. 우리는 서로 결국 자기가 중심일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다. 그러면서도 타인 역시 자신을 중심으로 생각한다는 걸 쉽게 망각해버린다. 아주 많은 이야기를 전하는 듯하지만 소통이 원활하지 않은 이유는 단지 내 말만 전달하는데 생각이 머물러지기 때문인 것 같다

인간이란 결코 진실하지 않은 존재이지만 끊임없이 상대의 기대와 긍정을 얻기 위해 구애를 갈망한다. 인정 욕구, 안정에 대한 강조 때문에 때로 서툰 거짓말이라도 하게 되지만 결국 우리는 스스로를 위해 또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보다 나은 결단력을 필요로 한다. 시행착오는 있더라도 조금씩 배우고 나아가는 지점이 있어야 상대의 마음도 헤아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가장 사랑하는 내 자신과, 그 다음으로 사랑하는 나의 연인과의 내밀한 관계에서 우리는 인간의 가장 중요한 문제들을 배워나간다. 이런 가장 가까운 관계에서부터 알고 배우며 확장되는 면이 확실히 생긴다.



그리고 좀 더 관계를 확장해 보면 가령 이러한 문제들이 있을 수 있다. 우리는 어른들에게서 타인의 고통을 외면해서는 안된다라는 문제를 놓고 이야기를 나눠본 일이 있는가를 떠올려 보자. 옆의 누군가가 아니라 모르는 누군가의 고통을 보게 될 때 자연히 흘러나오는 관심, 미약한 힘이나마 보태주는 믿음에의 지지는 왜 필요한가를 생각해 본 일이 딱히 있을까. 귀찮기도 하고 선뜻 부리기 어려운 일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기꺼이 타인의 고통에 참여해야만 하는가를 배울 기회는 좀처럼 없는 게 현실이다. 우리가 서로를 위해 사회적 책무를 다할 수 있을 때 자신의 양심과 싸워야 하는 당위에 힘을 보태 헤쳐나갈 수 있는 저력이 생길텐데 말이다. 학교에서나 가정에서 어른들이 하는 말이란 대게 윤리적인 수준의 차원 그 이상과 이하로 드나드는 법이 드물다. 헤아리는 관심과 고민의 과정 보다는 오히려 참여를 하게 됐을 때 오는 불이익과 불필요한 낙인이란 부정적인 면에 더 많은 개입이 되고 만다

우리 사회는 깊이 고민하기를 교육하기 보다는 눈앞의 현실을 외면하거나 부당하더라도 체념하게 돼는 쪽을 평탄하게만 이어가라고 암묵적 합의라도 본 듯 하다. 이렇게 오기까지 수없이도 많은 이유들이 붙어 버리고 타당이 확보되어 왔기에 이제는 마치 어디까지나 다양성의 자유 범주 안에 잘 안착된 태도처럼 잘도 포장되어 버렸다. 타자에 대한 고통을 외면해선 안되는 가장 기본적인 가치라는 걸 더 이상 가르치지 않는 사회는 과연 옳게 흘러갈 수나 있을까. 약자의 고통에 무감한 집단의 무지가 깊이 뿌리를 내리고 그 나름의 당위까지 만들어진 마당에 그 어떤 가치들이 날개를 달고 넓게 흩어질 수 있을지 생각하면 할수록 씁쓸해진다



결국 우리 모두는 타인이라는 면에서 같은 처지들이다. 이 책에 나오는 다섯 가지의 태도들은 모두 옳고 엄정한 것이어서 일종의 스타일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작가가 구체적 이야기로 들려주는 개인들의 민낯은 마치 우리의 거울처럼 느껴져 도저히 나를 대입시키지 않기는 힘들게 만든다. 모든 기반을 성숙한 인격의 발현인 동시에 내가 내 인격의 수준에 맞추어 나가야할 내면의 성숙을 기반으로 한다는 걸 보여준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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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내가 사는 게 재미있는 이유 - 30년간 정신과 의사로 일하고 15년간 파킨슨병을 앓으며 비로소 깨달은 인생의 지혜 42
김혜남 지음 / 갤리온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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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그야말로 멘토의 시대이다. 한치 앞도 알 수 없는 게 인생이란 걸 잘 알아도 필요한 순간에 가장 쉽고 안전한 구호가 있을 수 있다면 손을 내밀 수밖에 없는 것이 미약한 인간의 본성이리라. 그간 명사나 스승, 선배, 책의 가르침 등 멘토의 개념이 없지도 않았지만 근래 부상된 주목할 만한 현상 중 하나가 젊은이들에게서 부는 멘토 열풍이었다. 청년들이 당면한 여러 문제들 가운데의 대부분이 개인의 문제라기보다 사회 문제들이기 때문인지 이 어쩔 수 없음에 대한 답답한 마음이라도 헤아려주는 구원자가 필요했는지도 모르겠다.

좀 심하게 말해서 약을 파는 사람도 없지 않았지만 적잖게 시대에 부합하는 진단과 대안들로 그 기능에 적절하게 의미를 부여해주는 등대와 같았다란 생각이 든다. 멘토들의 인생의 지침서와 같은 말들을 새겨 듣다보면 내 안의 강박이나 갈피를 못 잡고 헤매는 진흙탕 길에 작은 등불이 생기기도 한다.

그러나 주지하듯이 등대가 항로를 밝혀주는 존재인 것은 아니다. 우리가 인생을 항해 할 때 그 이정표로 인도되는 길이란 각자의 마음속에서 그려지는 무엇이지 멘토가 비추는 둘레를 하염없이 돌 수는 없는 노릇이다. 등대는 인생의 어둠을 비추는 따뜻함 정도로 느껴지면 그만이다. 이걸 아는 수준의 의미 정도를 영양소로 흡수하면 그럭저럭 괜찮아질 것이다. 단지 위로만이라도 되어주는게 어디란 말인가.

궁극으로는 내가 지금 듣고 싶은 말을 해주는 존재일 수도 있겠지만 정반대의 의미도 개진될 수 있는 시야를 넓혀주는 존재일 수 있을 때 더욱 그 멘토의 의미가 확장된다. 인생의 대부분은 답이 없는 문제여서, 도전하며 그 과정을 즐기는 것이 최선의 선택일 수 있겠다.




언설이 길었는데 김혜남 작가의 <오늘 내가 사는 게 재미있는 이유>를 읽고 든 생각을 두 가지로 축약했을 때 꼽을 수 있던 것이 멘토의 위로고통의 극복이란 의미들이었다.

작가에게 닥친 예기치 못한 불행이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컸기 때문에, 덩달아 인생의 무심함에 분노로 잠식해버릴 것 같았지만 작가는 결국 극복이란 여정을 밟아간다

그 과정을 순차적으로 담고 있기 때문인지 그녀의 생은 마치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마법을 보는 것 같았다. 고통을 먼저 감내한 인생의 선배로서 어떻게 이 시간을 지나가게 되는지 귀한 시간의 결정체를 보는 일이 미안할 정도로 고맙다는 생각을 들게 한다.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는 이유가 행복을 위한 것이라는 말을 흔히 하지만 구체적으로는 불행을 피하기 위해서 살아가는 여정에 가깝다는 생각을 해본다. 불행이 닥칠 것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한숨이 나오고 진력날 듯 하지만 막상 불행한 일이 닥치면 우리는 또 그 나름의 대처를 해나가는 저력을 발휘하곤 한다. 미리 걱정하고 고통스러워하던 것 보다 훨씬 더 잘 헤쳐나가는 나를 발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인생의 좋은 면이든 싫은 면이든 양면에는 곧 면역이란 게 개입되고 만다. 좋은 것도 계속 주어지면 그 소중함을 모르는 법이고, 불행이 연속으로 닥쳐도 그 충격을 헤어 나올 수 있는 것은 또 이전의 경험으로부터 생긴 면역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언제나 그 다음을 대비할 수 있는 에너지를 인생의 경험이란 누적계를 통해 부여받는다. 불행을 이길 힘은 내 마음이 부린 지혜에서 나온다는 것, 즉 이러저러한 궁리와 합리,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나의 긍정에서 이 세상을 살아가기 위한 성숙한 힘이 나온다는 것이다.




작가는 자신에게 닥친 시련의 크기를 억누르기 위해 오랜 과정을 자신이 발휘할 수 있는 재능으로 한껏 펼쳐 멋진 결과물로 전한다. 특히 정신적인 면으로서의 내밀한 상처의 낱낱의 표정으로 그것을 아프게 감지하게 하는 면은 아주 크게 다가온다. 그 인식의 변화 과정에서 비로소 나를 긍정하게 되고 이에 내려진 답으로서 삶의 요체일 수 있는 믿음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특히 딸에게 전하는 사랑의 크기만큼이나 <오늘 내가 사는 게 재미있는 이유>는 제 상처에 깊이 함몰된 사람들이거나 사랑이 결핍되어 못난 생각에 젖은 사람들에게 좋은 멘토와 같은 책이고, 상처로부터 한발 벗어나게 하는 힘을 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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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프 앤턴 - 살만 루슈디 자서전
살만 루슈디 지음, 김진준.김한영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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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란 본디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고귀한 가치라는 데 딱히 소명을 밝힐 이유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는 인간의 자유에 대해서 말해야 하고 충분히 보장되지 않는 하는 이 시대, 사회적 맥락의 현실을 그저 답답하게 견디고 있다

더 소유하기 위해 빼앗고 빼앗기는 전쟁의 시대가 지나고 나니 더 나은 세상을 맞게 되리라 기대했지만 아직은 기대한 만큼의 성숙한 사회란 요원한 듯하다. 어떤 식으로든 자유라는 기본적인 가치조차 보장하기 힘든, 그야말로 보이지 않는 전쟁을 치르는 우를 범하고 있기 때문이다. 관계의 성숙은 새로운 사회를 요구하는 만큼 성장해온 것이 사실이지만, 버젓이 자행되어 온 억압이 도처에 있다는 걸 외면할 수가 없는 현실이다. 아직도 이 혼미의 시대는 끝나지 않았다.




<조지프 앤턴> 자서전을 보면, 우리가 말할 자유에 대해 언급해야 하는 중요한 가치들을 상기하게 된다읽는 내내 마음 한구석 한국 사회의 언론 환경과 말할 자유그리고 국제뉴스에서 접한 세계 사정들의 일들이 겹쳐져 생각나 불편한 마음이 들었다절묘하게도 현재 우리가 사는 풍경과도 무관하지 않은 메시지를 던져주는 것이었다

이 책의 주인공인 주지프 앤턴은 신성 모독죄라는 오명을 쓰고 종교적 사형선고를 받는 어처구니없는 일의 당사자이면서, 실제 이름 살만 루슈디라 불리우는 소설가이다. 그는 이 책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아주 독특한 형식으로 말하기 시작한다



그는 앞선 저서 <악마의 시>를 발표와 동시에 본국에서 결코 용인되지 못할 분노를 사게 되었고 생존까지 위협당하는 길고 긴 싸움에 돌입한다. 모독의 죄명에 말할 자유는커녕 목숨까지 잃게 되었으나 영국정부의 도움으로 졸지에 난민의 신세가 된다. 타국에서 오랜 세월 견디는 동안 감옥이 따로 없었고 오명이 풀린 오늘에 이르러서도 진정 자유가 보장되는 삶은 영영 없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니 씁쓸했다. 


루슈디는 어째서 아무도 내뱉지 않을 말을 할 수 있었나? 애초 이런 가치관을 가질 수 있었던 이유는 그의 부모의 열린 생각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이 다행스럽다. 어릴 때 영국에서 성장한 배경이 있었기에 다른 렌즈를 얻을 수 있었다. 작가적 숙명으로 타고난 눈이 유별났기 때문이라기보다 보편적 가치에 기인한 문제의식이 들었을 뿐이다. 그래서 그로 하여금 소설로써 말해야겠다고 마음먹게 만들었고, 알다시피 문제는 그 다음에 벌어졌다.

과연 종교란 한 사람의 목숨에 좌지우지할 만큼의 관여가 가능하고 자비와 관용 없이 횡포의 도구가 될 수 있을까? 설사 모독을 했다 하더라도 그렇다면 국가는 왜 합리적 시스템으로 개인의 자유를 보장해 주지 못할까. 아무리 특수한 사회문화와 역사적 상황이 있다 하더라도 이 정도까지의 종교적 침해라면, 섬기는 가치가 어떤 숭고함에 위장된 악이거나 폭력은 아닐지 왜 의심해야 하지 않을까. 종교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면 그것을 멋대로 해석하는 사람들의 잘못은 또 어떤 식으로 심판받을 수 있을지.



단순히 우리가 먹고 사는 문제 때문에 포기해야 하는 자유의 정도라면 유보하되 영원히 포기되는 일은 아니지만 루슈디에게 자유란 강제로 포기돼야만 하는 것, 그렇기 때문에 어디서든 꼭 지켜내야 하는 것으로 필사적인 것이 되었다. 루슈디의 이 필사적인 생존기가 지금 이 시대에 정말 많은 의미들을 던져줄 수밖에 없는 이유는 세계적 상황들이 여전한 문제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르면 저절로 나아지는 일들이 있지만 권력을 가진 자들의 억압과 횡포를 어쩔 수 없다는 말로 굴복하는 사람들의 문제는 회복될 기미가 희미하다. 권력의 힘에 스스로를 합리화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경향들을 문제시하지 않을 수 없다. 인간사는 앞으로도 계속 자유를 빼앗으려는 사람들의 횡포에 취약할 것임을 부정할 수 없다면 우리는 각자 스스로의 선택에 책임질 수 있는 가치를 굳게 품어야 쓰러지지 않을 수 있다

최소한 자신이 말할 자유에 대해서는 그것을 놓치거나 빼앗기게 되었을 때 항거할 수 있는 담대함을 길러야 하는 것이다. 현실의 힘에 굴복하면서 스스로 평범함 속의 비겁함이 모이면 더 비대한 힘을 더 길러내는 원인이 되고 부메랑처럼 내가 맞게 되어 있다. 불행히도 현재의 세계적 흐름이 이 엉성한 힘들이 모인 위협인것만 같아 아슬아슬하다.  



조지프 앤턴의 자서전에서 그는 지극히 평범하고 인간적인 면모로서 자신을 자유롭게 말하는데 온 힘을 바친다. 자서전이면서도 이 책은 마치 소설과 같은 말하는 화자가 존재한다. 객관적으로 보이기 위해서 이런 발화를 선택했다고 하는데, 과하지 않나 싶을 만큼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는 면모가 길고 상세하게 소개된다. 그래서인지 이 책은 아주 긴 소설 속을 헤매는 듯 한 기분마저 준다. 작가이기 때문에 글쓰기에 대한 여러 통찰과 세상에 말하고자 하는 바를 아낌없이 쏟아내는 삶의 위대한 발견의 지점이 흘러나오지만, 이 책의 대부분은 그 자신이 합리화 되는 것을 경계하면서 진술되는 방식이 주를 이룬다. 실제로 그는 사람들이 자신에게 쏟아 붓는 지지와 사랑을 낯설어 하면서 어떤 특정한 상징처럼 보이게 되는 것을 꺼렸다고 고백한다. 말하자면 그의 삶 자체였던 표현의 자유에 대한 문제가 결코 작가만이 실천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듯 항변하는 자세로 일관하는 것이다. 무거운 고뇌를 내뿜는 망령과 같은 영웅이 되는 것 대신에 다만 굴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 삶이 곧 투쟁이란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 그야말로 실존하는 인물이 되고 싶다고 고백하는 장면은 그래서 매우 인상적인 이 책의 핵심으로 보인다.



루슈디가 소설을 통해 말하는 자유와, 실제 살아가는 삶의 이야기를 자서전을 통해 말하는 자유는 두 가지 중요한 메시지를 던진다. 첫 번째로 소설에서 궁극으로 이야기 되는 자유는 우리가 함께 구성원으로서 살아가야 하는 공존의 자유 즉 모두에게 평등할 수 있는 교양을 갖춘 자유이다. 불평등을 수반한 억압의 기제로 사상과 종교가 사용된다면 그 사회의 자유란 말살 된 것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두번째, 루슈디가 자서전에서 밝히는 실제 평범한 삶의 모습에서의 자유는 아무도 나를 구속할 수 없고, 내 마음대로 행동할 수 있다는 자유를 말한다. 불행히도 루슈디는 손님하나 반갑게 맞이하지 못하는 구속된 일생을 보냈지만 이런 우스꽝스런 자신의 모습을 통해 역설로서 자유를 말하고 있다. 우리는 누구나 마음대로 행동할 자유를 누려야만 하는 존재들이라는 것이다.

<조지프 앤턴>은 진정한 행복을 위해 자유를 확대해나가는 과정이 어떻게 만들어질 수 있나 하는 물음을 삶의 언저리에서 던져주는 책이다. 그것은 평범한 우리들의 진일보한 목소리가 모여질 때 더 단단해져가는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거라고, 그런 우리의 내일을 맞자고 말하는 강한 삶이 거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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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괜찮은 하루 (윈터에디션)
구작가 글.그림 / 예담 / 2015년 2월
평점 :
절판


세상으로부터 상처받게 되는 고통, 뜻하지 않은 크고 작은 관계에 의한 시련들, 사람의 일생 전체를 놓고 보면 행복이나 즐거움의 의미 보다는 그 이면의 나날로 기억되는 일이 더 많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밝게 웃는 얼굴로 긍정을 바라며 살아가지만 당신의 일상은 어느 쪽이냐고 굳이 묻는다면 실제로 불행을 더 견디는 삶에 가깝다는 것이다. 인간의 사고가 비관에 더 가까운 존재이기 때문에 그럴까

물론 타고난 성향도 중요하긴 하지만 삶의 방편들을 꾸리는 태도의 문제는 살면서 맞닥뜨리는 환경에 의한 축적이라 말하고 싶어진다. 사회의 엄연한 위계, 평등치 못한 환경, 불합리를 겪는 일의 누적이 삶에 대한 견딤의 태도를 다지게 만든다.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세상에 놓여지는 것 자체가 알 수 없는 외롭고 긴 싸움인 것이다. 더불어 인간이 창조한 위대한 질서와 보이지 않는 좋은 가치들을 만나기도 하면서 삶의 옳은 태도들을 배워가게 된다. 조금 각박하고 힘들더라도 옳다고 믿는 중요한 가치들에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게 되는 힘은 강력한 원천으로 삶을 지배한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작은 만족에도 삶이 그럭저럭 괜찮다고 말할 수 있는 긍정이 생기는게 아닐까 싶다.

그렇더라도 내부로 들어가 보면 인간은 누구나 자신에게 닥친 시련을 가장 큰 불행인 듯이 아파하는 존재일 수밖에 없다. 이는 당연하게도 각자의 감정을 살아낼 수밖에 없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겪는 나의 사소한 불만이라도 온전히 내가 상대해야 몫으로 남겨지기에 손톱 밑의 작은 가시처럼 한시도 거슬리지 않을 수는 없다. 언제고 제대로 제거될 때까지 응어리처럼 남아서 끊임없이 나를 누르고 다른 몰입을 방해하는 걸림돌이 되곤 한다. 감정의 소모는 사람의 인생에서 외면이 불가능한, 한시도 멈추지 않고 요동치는 삶의 리듬이다.




개인적으로 최근 많이 생각해보고 고민하게 된 것이 '관계에 대한 이해'였다. 내 나름의 생각으로는 좋고 그렇지 않음의 구분법이랄지 하는 구분선을 좀 오래 고민해보고 들었던 새삼스런 깨달음이 있다. 이는 상대가 어느 지점에서 평정심을 잃게 되는지, 타인에 대한 매정함이 이해할만한 수준인지 여러 면을 지켜보고 고려한 결과이다. 내게 좋은 사람이란 타인과 함께 살아가려는 배려와 이해, 공감에 능한 사람이라는 결론이다. 조금만 더 자세히 말하면 이런 사람들은 자신의 시련과 고통에 치열한 싸움을 해 본 사람들이며, 발휘할 수 있는 가장 큰 지혜를 베풀 수 있는 아량이 있다. 남이 겪는 고통에도 십분 이해하고 걱정해주는 섬세한 눈빛과 말, 어떤 기운이 절로 우러나오는 특유의 짓이 있다.




<그래도 괜찮은 하루>의 구작가를 보면서 유난히 제 감각을 능하게 사용할 줄 알고 예민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 귀가 번쩍 뜨였다. 사소한 몸짓과 언어로 작지만 소중한 감정들을 이야기할 줄 아는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몇 줄의 언어로도 풍겨 오는 인상이 자신에 대한 긍정과 이해를 깊이 고민해본 사람이라는, 고유의 향기를 뿜는 품위가 느껴졌다.

당연한 얘기지만 그녀에게 닥친 시련과 불행이 남달랐기 때문에 이러한 앎이 저절로 만들어졌을 리는 없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나를 수용하고 이해할 수 있게 된 긴 여정의 시간을 충분히 보낸 치열함이 있었고 그것을 오래 품어왔다. 현재를 수긍하고 긍정하며, 내일의 희망을 말할 수 있게 됐기 때문에 비로소 자신을 사랑하게 된 것 같다. 땅 밑으로 꺼지는 것 같은 깊은 슬픔을 외면할 수 없지만 그래도 세상 밖으로 들어 올리는 강한 힘을 그녀 스스로 만들어 냈다.




이러한 과정을 작가는 작은 토끼 베니로의 투사로 묵묵히 담아낸다. 베니의 눈물, 베니의 외로움, 베니의 투정, 베니의 미소, 베니의 사랑, 베니의 희망, 모든 하루들이 모여 어엿한 어른으로 살아가려는 삶의 태도들이 만들어졌다. 그녀의 버킷리스트의 목록들을 보고 있으니 영락없이 현재를 즐기고 의미를 찾으려는 청춘의 풋풋함이 의기로워 보여 안심이 됐다.

<그래도 괜찮은 하루>는 삶을 어떤 식으로 긍정하고 살아가고 싶은가에 대한 투쟁기이자 다짐서와 같은 책이다. 이 책으로 하여금 온전히 자신의 이야기로서 고백하게 되고 절망에서 건져 올린 긴 시간들을 털어낸 것처럼 보여서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지금 현재의 베니에 집중할 수 있는 이 소중한 시간들을 한권의 책으로 함께 누리게 해주어서 고맙고 기쁘다. 잠시 베니의 귀를 만지작거리면서 그 크고 넓은 귀 속으로 더없이 따뜻한 온기가 전해졌는지 묻고 싶어진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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