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13시간 정도 더 일 했고, 이번주도 여러가지로 직장에 할 일이 많다. 더구나 오늘은 아침부터 컨퍼런스 콜을 하느라 거의 4시간 정도 전화기를 붙잡고 있었더니 갑자기 피곤이 밀려왔다.
사장님과 미팅을 마치고 오늘부터 금요일까지 일찍 집에 가겠다고 말했더니 지난주 고생 많았으니 맘대로 하라고 했다. 3시에 집으로 운전을 하면서 오는데 너무 피곤했다. 4시쯤 집에 도착하자마자 침대에 뻗었다.
자다가 덥기도 했지만, 해든이가 아빠에게 어두워지기 전에 스쿠터를 타야겠으니 빨리 같이 나가자며 조르는 소리에 잠이 깼다. 잠이 깨서도 한 10분 정도 가만히 누워있다가 밖으로 나왔다. 남편은 정원에 물을 주고 있고, 해든이는 형아의 헬멧을 쓰고 누나때부터 사용하던 스쿠터를 멋지게 타면서 집 앞을 빙빙 돌고 있더니 나를 보자마자 쌩하고 스쿠터를 타고 달려왔다.
자기랑 강까지 같이 가잔다. 실제 강은 없고 우리 집을 들어서는 골목(?)에 비가 많이 오면 물을 빠지게 길을 좀 더 깊게 판 곳이 두 곳 정도 있는데 그걸 말하는 것 같다.;;;;
그동안 옆집 소년 찰리에게 스쿠터 타기를 배웠지만, 할머니(시어머니)가 브레이크 밟는 방법과 천천히 멈추는 방법을 가르쳐주셨다며 자랑한다. 해든이는 스쿠터를 타고 가니까 너무 빠른데 나는 걸어가니까 거리가 점점 멀어졌다. 결국엔 아이가 안 보여서 큰 소리로 이름을 불렀더니 어느새 다시 내 곁으로 왔다. 아이에게 이제 방향을 바꿔 집으로 가자고 했다. 처음 아이는 천천히 나와 보조를 맞춰 가더니 답답했는지 ˝I`lll meet you at home.˝이라는 말을 남기고 가버린다. 그 순간 여러 복잡한 감정이 엉켜 뭔가 불쑥 이상한 모습으로 내 앞에 나타날 것 같았지만, 그런 일은 없었고,,,,조그맣게 멀어져가는 아이의 모습을 보면서 멋진 남자가 되겠다는 팔불출같은 생각으로 복잡한 감정이 정리됐다는. ㅎ
이미 저녁을 만들 시점이 아니어서 해든이 학교 맞은 편에 있는 멕시칸 식당에서 이것저것 잔뜩 사와서 arrow를 보면서 먹었다. 설거지 할 것도 없으니 좋긴 하지만 쓰레기를 많이 만든 것에 대해 반성.
딸아이는 유타주에 친구들과 여행을 갔다. 태너라는 성을 가진 사람의 집에서 묶고 있는데 집이 너무 좋단다. 우리 동네 집들도 다 좋고 더구나 일요일마다 궁전같은 집에 성경공부하러 가는데도 좋은 집이라고 하는 걸 보니 정말 궁금하다. 암튼 그런 아이에게 집에서처럼 행동하지 말고 정리정돈 잘 하고, 행동거지 조심하라는 문자를 보냈더니 집 사진 보내준다더니 안 보낸다. 삐졌나??
요즘 친구랑 거의 매일 밤마다 어딜 가는지 모르지만 나가서 늦게 들어오는지라 어젯밤에는 장영희 선생님의 책에서 읽은 바이런경의 시를 사진을 찍어서 보내줬다.(3번 사진) 운전을 하고 다니게 되어 그런가 겁도 없고 시간이 얼마나 빨리 가는지도 모르는 것 같고. 안 자고 기다릴 거라고 하니까 그래도 11시 이전에는 들어 오지만 대학 가서는 기다리는 부모가 없으니....
고대하던 Y대에 떨어져서 내 상심이 컸지만(아이는 쿨하게 신경 안 쓰는?) 오늘은 오히려 잘 됐다는 생각이 든다. Y대가 아니면 B대를 가는 게 좋다는 합의가 한달 전에 가족들 사이에 이루어졌지만, 오늘 생각하면 할 수록 잘 된 일 같다. Y대를 위해 받아 논 장학금이 물거품이 된 건 안타깝지만. ㅠㅠ
N군은 내가 식당으로 음식을 가지러 갔을 때 전화를 했다. 봄방학이니 친한 친구 두 명과 이틀 동안 우리 집에서 자도 되냐고. 이틀 동안 자는 건 좋지만 아침, 점심, 저녁 챙길 일이 까마득해서 하루만 자는 걸로 합의를 봤다. 내일 친구들이 우리 집으로 올 거다. 무슨 음식을 해줄지 메뉴를 짜고 있다. 사장님에게 일찍 집에 가겠다고 했을 때는 좀 쉬려는 의도였는데 아드님 덕분에 다른집 아들들까지 뒷바라지 하게 생겼다. 이런 게 인생이지 뭐.
내일도 막대한 시간과 에너지로 아들의 친구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주고(더 강한 에너지가 있는 남편이 어쩌면 만들지도 모른다;;) 보고싶은 딸아이에게 문자 보내고, 멋진 소년이 되어 가는 해든이가 스쿠터를 탈 때 종종 걸음으로 에너지를 발산하며 따라가야지.
밑줄 긋기는 다 읽고 아쉬워 하고 있는 [사랑할 시간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에 나오는 구절 중 오늘 내 스토리와 부합하는 듯 한 부분.
사진은,
1. 베트남에서 산 나전칠기(방식의) 쟁반을 외삼촌 내외에게 선물 했더니 오늘 카톡에 사진을 보내 주셨다.
2. 신데렐라를 보러 갔을 때 남편과 해든이는 home을 봤다. 큰 아이들은 저 요커트를 몰래 영화관에 가져 갔다는. 영화 보면서 맛있는 거 먹는 버릇은 내가 가르친 건가?( ˝)
3. 늦게 들어오는 딸아이에게 보낸 바이런의 시. 그거 보고 좀 일찍 들어왔다. 어젯밤.
4. 미술 시간에 눈사람이랑 뭐랑 만드는 거라는데 과학 실험하듯 심각한 표정. ㅋ 친구 엄마가 찍어서 반모임에 올린 사진.
사랑하는 일은 막대한 시간과 에너지를 요한다. 누군가를 좋아하고 항상 배려하는 마음, 그 사람이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궁금한 마음, 너무나 보고 싶은 마음--어떤 행동이나 말을 해도 항상 의식의 언저리에 있는 그 사람의 지배를 받는 것은 대단한 영혼의 에너지를 요한다. 그런데도 우리는 고작 차 한두 대 굴리는 석유나 석탄 같은, 눈이 보이는 에너지는 아까워하면서, 막상 이 우주를 움직이는 사랑이라는 에너지는 그저 무심히 흘려보내기 일쑤다. --p.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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