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은 홍영녀 할머니와 그분의 따님 황안나씨의 책인 <엄마, 나 또 올게>에서 가져왔다.
어젯밤 새 뒤척이느라 잠을 못 잔데다 아침 일찍 일어나 수영장 갔다가 아이들 가르치고 집에 오자마자 잠이 쏟아져서 한 시간 정도를 자고 일어났더니 눈이 말똥거린다. 엄밀히 말하면 잠 못 이루는 밤이 아니라 잠 안 오는 밤 되시겠다.ㅠㅠ
해든이 재우고 컴퓨터를 켜서 박태환 선수 경기 모습을 보고 있자니 너무 오래 있지 말라는 한마디를 하고 남편은 자러 들어 갔다.
아흔여섯의 홍영녀할머니에 대해서는 이 책을 발견하면서 처음 알게 되었다.
집에 TV가 없다 보니 해마다 케이블에서 재방송해 준다는 할머니가 출연하신 인간극장도 금시초문이었다.
너무 미래에 대해 생각을 하고 사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지만 요즘 나의 화두는 '어떻게 늙어 갈까?'이다.
그러다 보니 나이 든 분들이 나이 듦에 대해서 쓴 글들에 눈이 간다. 그래서 이 책과 함께 산 책이 올해 99세가 되신 작가 시바타 도요 할머니의 글을 모은 책 <약해지지 마>이다. 누군가에게 칭찬받고 싶어서 97세의 나이에도 화장했다는 시바타 할머니와는 달리 홍영녀 할머니는 늘 자식 걱정을 하는 외로운 어머니였다.
알라딘 책 소개에 보면
질곡 많은 한 여성의 삶이자, 우리 모두의 어머니 이야기이며, 언젠가는 노년의 삶을 살게 될 우리들 자신의 모습을 담고 있다. 또한 부모님의 삶과 노년의 삶에 대해 깊이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되어주며, 유명 작가의 유려한 문장보다 일반인의 진솔한 이야기가 훨씬 더 힘이 세다는 사실을 다시금 느끼게 해준다.
라고 나와 있지만, 우리의 노년은 어쩌면 홍영녀할머니보다는 사바타 도요 할머니와 좀 더 닮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본다.
이해인 수녀님의 글에서처럼 홍영녀할머니의
풍부한 감수성과 시적인 표현을 따라가면서 놀라움에 읽던 시를 돌아가 다시 읽어 본다. 정규 교육을 전혀 받지 않았고, 더구나 70세가 다 되어 독학으로 깨우치셨다고 한다. 정말 놀랍다!!
교육을 받아야만 좋은 글을 쓸 수 있다는 나의 고정관념이 마구마구 부끄러워지는 순간이다!!
아직 이 책을 다 읽지는 않았지만, 아니 활자도 커서 빨리 읽을 수 있는 책이지만 일부러 되새김질까지 하면서 천천히 읽는다.
외로운 들창에 흔들리는 나무 그림자,
돌아 눕는 어깨가 시리다. p.30
강물이 흘러 흘러가는 곳이 어디인가.
인생살이 속절없이 흘러간다.
가슴에 손을 얹고 조용히 생각하면
작별의 설움이 빗물처럼 고인다. p.40
아아, 눈물 속에 봄비가 내리네.
두 뺨에 흘러내리는 것은 빗물인가.
계절은 봄인데 내 마음은 쓸쓸하다.
마음은 허전해도 남 보기엔 만족한 듯
서운함을 감추고 살아간다.
해가 지면 밤인가 하고, 해가 뜨면 날이 새었나 하며 산다.
내 생활은 그날이 그날이다. p.41
겨울밤에 내리는 눈은 그대 편지,
무슨 사연 그리 많아 밤새도록 내리는가.
겨울밤에 내리는 눈은 그대 안부,
혼자 누운 들창 밑에 건강하냐 잘 자느냐 묻는 소리.
그대 안부. p.66 ~ 67
살아 있는 동안에 보람 있는 일을 하자, 올바르게 살자,
그리고 아름답게 살자고 다짐했다.
자식들에게 밝은 빛을 주고 내 분수를 지킨다.
허영된 마음을 뿌리치고 진실되게 살리라.
얼마 남지 않은 내 인생을 소중히 여기며 사랑해야지.
살림에 부딪히고 찬 마음에 부딪힌 마음,
쌓이고 쌓인 푸념들은 다 바람에 날려 보내고,
앞으로는 남은 여생을 웃으며 살리라. p.127
하늘은 높음을 자랑하고 바닷물은 깊음을 자랑한다.
땅은 넓고 포근하여 온갖 것을 다 품어준다.
우리 인생길 바람이 몰아쳐도 꿋꿋하게 버팀을 자랑하자.
용기내서 살아보자.
힘내서 살아보자. p.129
인간은 외롭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곁에 있어도,
좋아하는 이들이 옆에 있어도,
그것은 영원하지 못한 한순간의 존재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외롭기 마련이다. p.137
창밖에 부는 바람,
죽음의 신음 소리도 들었을 것이고
갓 태어난 아기의 숨소리도 거쳐 왔을 것이다.
잠 못 이루는 이 밤,
바람에게 많은 사연을 듣는다. p.141
저 푸른 하늘에 높이 뜬 새들아,
어서어서 힘차게 훨훨 날아라.
늙으면 마음뿐 후회한다.
늦기 전에 어서어서 힘차게 부지런히 하늘 높이 날아라.
인생이든 무엇이든 모든 것이 다
늙어 후회한들 아무 소용이 없다. p.178
옮겨 적고 싶은 글이 많지만 이 정도로 그치자.
그래야 다른 사람들이 책을 사서 읽지.ㅎㅎㅎ
홍영녀 할머니는 책의 여는 글에 이렇게 적고 계신다.
세상에 태어나 글을 모른다는 게 얼마나 답답한 일인지 모른다. 이렇게나마 잠 안 오는 밤에 끄적끄적 몇 마디 남길 수 있게 되었으니 더 바랄 게 없다. 말벗이 없어도 종이에다 내 생각을 옮기니 좋다.
자식을 낳으면, 굶더라도 공부만은 꼭 시킬 일이다.
사는 게 여유 있던 친정아버님께서 딸자식이라고 예뻐는 해주셨지만, 공부를 시키지 않으셨다고 하는데 책에 공부를 시켜주지 않으셨던 아버지에 대한 원망을 드러내셨다. p.178에도 쓰셨듯이 늙어 후회하면 아무 소용 없으니 무엇이든 마음먹었을 때 할 일이다.
글도 배웠고, 컴퓨터로 자판도 칠 수 있고, 허접하긴 해도 내 생각을 올릴 수 있는 블로그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더구나 내 글을 읽어주고 따뜻한 댓글을 달아주는 서재 이웃들까지!!새삼 고맙다.
오늘 신문을 보니 지난 24일 서울대 키팅 교수라고 불리는 신광현 영문과 교수가 위암 투병 5개월 만에 50세의 나이로 저 세상으로 떠났다고 한다. 예전엔 50세라는 나이가 한 참 멀게 느껴졌는데 요즘 내가 50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가서 그런가 무척 젊은 나이에 떠났다는 생각이 들면서 안타까웠다.
<죽은 시인의 사회>
에서 로빈 윌리암스가 분한 바로 그 키팅교수 같은 분이었나보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한 차례 비가 쏟아졌어도 후덥지근한 여름 밤,
키팅 선생님과 홍영녀 할머니가 들려주시는
카르페 디엠이라는 한 마디가 등 줄기를 서늘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