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 샤라쿠
김재희 지음 / 레드박스 / 2008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도슈샤이 샤라쿠는 조선의 신윤복이다?"

'김홍도가 아니고 신윤복이 샤라쿠? 어떻게 신윤복이 샤라쿠일 수 있다는 거야?' <색, 샤라쿠>(레드박스 펴냄)를 향해 물었다. 책의 띠지에 '도슈샤이 샤라쿠는 조선의 신윤복이다?'라고 쓰여 있었기 때문이다. 

'도슈샤이 샤라쿠(이하 샤라쿠)'는 일본 '에도(현재 도쿄)에서 1794년에 활동한 화가다. 그의 종적이란 에도에서의 10개월이 전부, 활활 타올라 걷잡을 수 없는 불꽃처럼 활동하다가 어느 날 연기처럼 사라져버린 전설의 화가다.

1년이 채 안 되는 짧은 기간에 샤라쿠가 남긴 작품은 140여 점. 샤라쿠가 종적을 감춘 이후 200여 년 동안 마네, 모네, 드가, 고흐 등 서양의 수많은 화가들이 샤라쿠의 영향을 받는다.

당시 일본에는 가부키(일종의 연극)가 성행했다. 가부키 배우들의 그림을 판화로 찍어 판매하는 전문 출판업자까지 있었다. 어린 소년들부터 나이든 사람까지,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가부키 배우들의 그림을 구매하고 좋아했다.

그런데 대부분 화가들이 가부키 배우들을 단지 '예쁘고 멋있게'만 그렸다. 이런 와중에 갑자기 나타난 샤라쿠는 인물의 성격과 특징을 묘사해 그림만으로도 그 사람의 성격과 배역을 연상할 수 있게 했다. 

불꽃처럼 활동하다 연기처럼 사라져버린 전설의 화가

샤라쿠의 인물 목판화는 이제까지 일본의 어떤 화가도 그려내지 못한 그런 인물화였다. 

일본은 그동안 샤라쿠를 주목해 연구했다. 연구서만도 100여 종이 출판될 정도였다. 하지만 여전히 출신지와 생몰연대 등은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샤라쿠의 정체'에 대해 가장 믿을 만한 근거를 제시하는 사람이 나타난다. 한일 사학자 이영희 교수다.

이영희 교수는 <또 한사람의 샤라쿠>(1998)라는 책에서 당시 정조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고 있던 김홍도가 일본에 첩자로 건너가 화가로 위장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 책에서 김홍도가 샤라쿠였을 근거들을 조목조목 제시했다.

하지만, <색, 샤라쿠>는 '김홍도가 아닌 신윤복이 샤라쿠'라고 가정한다. 많은 이들이 공공연히 김홍도가 샤라쿠라고 알고 있는데 저자는 감히 신윤복이 샤라쿠라고 가정한 것이다. 대체 어떻게?

"처음에는 단원이 연풍현감 재임 당시 일본에 건너가 샤라쿠라는 풍속화가로 활동했다는 가설을 토대로 소설을 쓸 작정이었다. 하지만 단원과 관련된 자료들을 연구하다 보니 이미 50대에 접어든 그가 그처럼 떠들썩하게 활동하면서 과연 의심받지 않을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혜원 신윤복이 단원의 그림을 굉장히 많이 모사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기록에는 없지만 사제지간이었음이 분명했다. 게다가 혜원이야말로 샤라쿠와 그림의 성향이나 소재가 비슷해보였다. 나는 혜원이 샤라쿠일지 모른다고 생각했고, 이 생각은 여러 미술 사학자들에게 자문을 구하면서 확신으로 굳어졌다." - 저자의 말

가권(신윤복)은 도화서 화사로서 어진을 그리는 자리에 나가게 되는데 출세를 염두에 두고 왕의 눈에 띄고자 전전긍긍하던 중 무례한 죄를 짓고 김홍도가 현감으로 있는 연풍현으로 보내진다. 뛰어난 화공이자 연풍 현감인 김홍도는 정조의 밀명을 받아 연풍의 지리를 이용해 일본으로 보낼 간자들을 양성하던 중이었다.

당시 일왕은 도쿠가와 막부에 의해 무기력한 존재가 되고 무사들이 사회를 쥐락 펴락했다. 가뭄과 기근으로 농민 반란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등 일본 사회는 극도로 혼란스러웠다. 이에 일본은 통신사를 중단하는 등의 쇄국정책을 편다. 

반면, 조선은 안정되어 있었다. 임진왜란의 치욕을 씻고자 일본을 정복하려는 정조의 꿈도 착착 진행되고 있었다. 정조는 어떤 외침도 막아낼 수 있는 화성 행궁을 건설하는 한편 화공들을 간자로 키워 일본에 보낸다. 일본 각지의 지도와 정보가 많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김홍도, 신윤복을 간자로 키워 일본에 보내

 김홍도는 그림과 여자, 술에만 환장했던 철없는 사내 가권을 간자로 키워 일본에 보낸다. 그의 임무는 일본 무사들에게 빼앗긴 일왕의 밀서를 찾는 것.

<색, 샤라쿠>의 많은 부분은 가권, 즉 신윤복이 조선의 간자로 일본에 스며들어 불꽃같은 예술 활동과 냉혹하고 철두철미한 첩자 활동을 하는 에도가 배경이다.

당시 에도는 도쿠가와 막부의 중심가로 인구 100만이 넘는 향락과 사치의 도시였다. 저자는 가권과 함께 에도의 거리를 걷는 듯 에도의 화려한 밤거리와 그 속의 사람들 이야기를 생생하게 묘사한다. 

그 생생한 현장감이라니, 책을 읽는 내내 자지러질듯 교태어린 게이샤의 웃음과 샤라쿠의 그림을 사려고 몰려든 아이들의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고 할까? 

정조 시대를 배경으로 한 가상 역사 추리소설인 <색, 샤라쿠>의 또 다른 즐거움은, 여러 장르의 장점과 재미를 찰지게 반죽하여 적당하게 발효시킨 듯 흥미롭고 스릴있게 펼쳐지는 퓨전 팩션이라는 점이다.

첩자와 닌자들의 냉혹하고 살벌한 세계, 화가들의 예술세계, 에도 시대의 독특한 풍속과 풍물, 무사들의 냉혹함, 사회 혼란을 틈타 끊임없이 일어나는 섬뜩한 연쇄살인 사건 등이  긴박감 있게 그려진다. 특수한 기녀인 '오이란'의 세계도 색다른 즐거움이었다.

저자 김재희는 <훈민정음 암살사건> <백제 결사단> 등 민족적 자긍심이 강한 작품들을 주로 써왔다고 한다. <색, 샤라쿠>에서도 저자의 역사인식과 민족적 자긍심은 민중의 마음으로 그려진다. 저자의 이런 마음이 잘 드러나 있는, 마음에 쏙 드는 한 단락.

"멀리서 소쩍새가 울고 있다. 시어머니의  계략으로 굶어죽은 며느리가 환생했다는 새. 어쩌면 우리 백성은 소쩍새 전설에 나오는 그 며느리 신세인지도 모른다. 아무리 열심히 일하고, 허리띠를 졸라도 배를 채울 밥은 늘 모자란다. 솥의 크기를 속이는 세력이 있기 때문이다. 모두가 밥을 해 먹을 수 있는 큰 솥은 뒤로 감추고, 작은 솥만 내밀며 이것이 최선이라고 순진한 마음들을 속인다.

 하지만 백성은 소쩍새가 아니다. 힘없이 굶어 죽어 전설처럼 슬픈 노래나 부르는 무기력한 존재가 아니다. 솥이 적으면 그것을 녹여 곡식을 벨 낫을 만들리라. 적을 벨 검을 만들리라. 그리하여 큰 솥을 숨긴 자를 벌하리라. 주상은 그 백성의 마음까지 헤아리시고 큰 솥을 준비하시는 것이다. 만백성이 넉넉하게 밥을 나눌 수 있는 크고 든든한 솥을…, 그리고 나는 그 솥에 부어지는 쇳물이 되리라. - 책 속 '가권'의 고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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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8-09-09 2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책 관심도서인데 아직 못 봤어요. 님의 리뷰로 분위기 파악하고 갑니다. 감사^^

필터 2008-09-10 10:25   좋아요 0 | URL
지난해 가을에 어떤 책에서 김홍도가 샤라쿠였다는 관련글을 읽은적이 있습니다. 때문에 이 책 대충 설명을 보면서 '신윤복이 어떻게 샤라쿠라는거야? 억지주장 아냐?'의 반감도 없잖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책을 읽기시작한지 얼마 안되어 김홍도가 아닌 신윤복이 샤라쿠일지도 모른다는 강한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가까이 살면 빌려드릴 수 있을텐데....
 
화장품, 얼굴에 독을 발라라
오자와 다카하루 지음, 홍성민 옮김 / 미토스 / 2006년 8월
평점 :
절판


최근 고민되는 책 한 권을 읽게 됐다. 바로 오자와 다카하루의 <화장품, 얼굴에 독을 발라라>(미토스)로 화장품의 실체를 밝히는 책이다.

'화장품, 계속 발라야 하는 걸까?' '어떤 화장품을 믿어야 할까?' 20년 넘게 화장품을 써 온 나로서는 여간 고민스러운 선택이 아니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 알게 된 화장품의 실태, 그 놀라움도 나에게는 여전히 고민스럽다.

석유에서 뽑아낸 '합성계면활성제'가 화장품의 주원료라고? '합성폴리머'까지? 비누로 잘 지워지지 않는 화장품을 지워내는 클렌징 오일은 합성계면활성제의 함량만 다를 뿐 주방세제와 별반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주방세제로도 얼굴을 닦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 아닌가? 주방세제는 합성계면활성제 30~40%를 물에 녹인 것이오, 클렌징 오일은 합성계면활성제 10~20%를 물에 녹인 것이라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최근 몇 년 동안 화장품의 공해와 독성에 대해 조금씩 밝혀지면서 조금이나마 안정적인 화장품을 쓰고 싶어 하는 소비자들이 믿고 선호하는 '무첨가' 화장품의 실체는 어떤가!

"화장품, 특히 영양크림은 물과 기름을 유화시켜 만든다. 기름은 산화되고 냄새도 난다. 따라서 화장품에는 방부제와 향료 등이 첨가되어야 하는데 '자연=무첨가' '무첨가·무향료=안전'이라는 등식은 화장품 첨가물을 기피하게 만들었다. 그 결과 화장품에 변질되지 않고 썩지 않는 원료가 쓰이게 되었다. 여기서 합성폴리머가 등장, 합성 폴리머로 에센스와 로션을 만들고, 식염수로 스킨의 점성도를 조절해 '무첨가' '무향료'라고 하거나...." - 책 속에서

넣을 것 다 넣은 무첨가 화장품? 게다가 합성폴리머까지? 기저귀, 생리대, 습기제거제 등에 쓰이는 '합성폴리머'는 1970년대에 폭발적으로 개발됐다. 수용성 합성수지, 합성고무, 합성 셀룰로오스 등이 모두 합성 폴리머다. 에센스와 로션뿐일까. 특별한 효과를 자랑하는 기능성 화장품일수록 합성폴리머는 많이 첨가된다. 무첨가 화장품은 물론 다양한 화장품에 합성폴리머가 쓰인다는 것은 아무래도 충격이다.

주름개선화장품은 사기?

미용과학평론가요 화장품 전문가인 오자와 다카하루는 이 책에서 '주름개선제는 사기'이며 '바보가 쓰는 화장품'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주름개선제의 진실을 보자.

신진대사가 빠른 표피의 세포 재생은 한 달 정도. 중장년층은 2~3개월 가량 걸리는데 화장품 하나로 1~2주 만에 주름이 펴지고 어떤 제품은 하룻밤 사이에 주름살이 펴진다니 아무래도 이상하다. 며칠 만에 진피까지 재생, 촉촉한 피부로 사라진 젊음을 되찾을 수 있다니 죽는 날까지 불로장생을 찾아 헤맨 진시황이 알면 살아 일어나 땅을 치고 통곡할 법하지 않은가!

"피부가 젊어져 보이게 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피부에 물을 넣으면 되는 것이다. 우선 화장품에 들어있는 합성계면활성제가 피부장벽을 파괴하고, 파괴된 피부장벽을 통해 합성계면활성제가 포함된 수면이 들어간다. 이 단계에서 피부는 부풀어 불룩해지고, 주름이 사라진 것처럼 보인다.

주름개선제는 합성계면활성제와 합성 폴리머가 주원료인 서양식 보습화장품을 모방한 것이다. 수분은 피부에 흡수되지만 합성폴리머는 거대분자이기 때문에 피부에 흡수되지 않고 약간의 물기를 가지고 피부표면에 남는다. 그리고 서서히 물기는 증발해 생고무 같은 (매끈한) 피막이 되고, 이 피막이 피부 속에 있는 수분 증발을 막는 것이다."
- 책 속에서

이런 원리에 의해 합성폴리머 피막으로 표면은 매끈하고, 합성계면활성제 수용액으로 안쪽은 팽팽해져 주름이 일시적으로 사라진 것으로 보이게 된다. 이때 합성계면활성제의 농도에 따라 효과가 다르게 나타난다. 합성계면활성제 농도가 진할수록 효과는 빨리, 눈에 띄도록 확실하게 나타나기 때문에 주름개선제의 원리를 전혀 모르는 소비자 입장에서 합성계면활성제가 많이 들어간 제품일수록 그 효과를 인정하게 되는 것이다.

의약부외품화에 이용당하는 미백화장품

이 정도의 사실만으로도 이 책은 충격이랄 수 있다. 그런데 이 책이 파헤치고 있는 화장품의 실태는 이 정도로 그치지 않는다. 로션, 에센스, 미백화장품, 클렌징 오일, 염색약 등의 실체와 제조현실을 알려주고 있다. 저자는 일본인, 일본의 현실일 뿐이라고? 글쎄 그럴까?

<화장품, 얼굴에 독을 발라라>는 화장품의 실태를 고발하는 책이다. 몇 년 전부터 기초화장만이 아닌 색조화장을 하는 남성들도 많아지는 현실이고 보면 화장품은 이제 생활필수품이나 다름없다. 우리 생활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화장품. 그러나 정작 우리는 화장품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 이 책은 화장품의 실체는 물론 화장품에 대한 바람직한 관심과 역할을 충분하게 제시하고 있는 책이다.

<화장품, 얼굴에 독을 발라라>는 다 읽은 후에도 마음이 자꾸 쓰이고 고민하게 한다. 이 책을 통해 건강한 피부와 바람직한 화장품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아울러 우리가 이 책을 통해 관심 두어야 하는 것이 있다. 몇 년 동안 미루어 오다가 2006년 1월에 시행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아직까지 시행되고 있지 않는 (우리나라의) 전성분표시제가 그것.

전성분표시제는 화장품에 들어가는 성분을 표시하는 것으로 바람직한 화장품제조와 직접 연관이 있다. 책에서는 일본의 전성분표시제와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우리에게는 아직 낯선 단어지만 소비의 주체자로서 꼭 알아야 하는 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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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중일기 - 최인호 선답 에세이
최인호 지음, 백종하 사진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4월
평점 :
품절


'최인호 선답 에세이? 이런저런 매체들에 기고했던 글들을 모아 유명세를 팔아먹자는 얄팍한 계산의 책은 아닐까?' 

거의 매일 들락거리는 인터넷 서점에서 <산중일기>(랜덤하우스코리아 펴냄)를 만난 순간 들었던 반감이다. 유명한 소설가, 유명한 시인이 쓴 수필이라 믿고 샀지만, 그다지 특별할 것 없는 아니 세상에 떠도는 좋은 말들을 적당히 짜깁기해 실망했던 책들이 순간 생각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어쭙잖은 선입견이 참으로 부끄럽게(!)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은 더 가까워지는 법이다'란 첫 번째 글을 읽으며 공감했고, 세 번째, '깨깨 씻어라. 인호야' 편을 읽다가는 연민으로 결국 눈시울이 붉어지고 말았다.

삶과 가족이라는 세상 가장 숭고한 종교에 합장

 "목욕 한 번 가려면 어머니는 북만주로 이주를 떠나는 유랑민처럼 세숫대야에 비누, 수건들을 가득 담아 집을 나서곤 하셨다.…(중략) 번번히 창피를 당하거나 들키곤 했다. 그런데도 어머니는 목욕탕에 가실 때마다 여전히 빨랫감들을 암시장에 나가는 쌀장수처럼 몰래 숨겨갖고 들어가시곤 하셨다. 남의 눈치가 보이면 내게 옷을 대 여섯 개 껴입게 하셨는데... 목욕탕에 갈 때면 으레 대여섯 개의 윗도리에다 대여섯 개의 바지와 내복을 껴입어야 했다."

이렇게 어머니와 목욕탕 앞에 이르러 주인이 "몇 살이냐?"고 물으면 어머니의 완고한 다짐대로 "아홉 살이에요" 혹은 "3학년"이라고 어김없이 대답한다. 

주인의 눈을 무사히 통과하면 목욕탕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은 수많은 여인들의 무서운 눈초리와 직감적인 나이 구별. 하지만 어머니의 굽힘 없는 억척으로 중 1때까지 '아홉 살 인호'였다.

좀 더 자라 처음으로 어머니와 헤어져 목욕탕에 들어가던 날, 어머니는 남탕과 여탕을 구분한 칸막이 너머로 소리소리 질러 잔소리를 한다. 

"깨깨(사투리) 씻어라 인호야!" "뜨거운 물에는 들어갔느냐?" "머리는 세 번 감았느냐?"

옆에서 천 번까지 세며 참고 참던 어떤 할아버지가 "극성스럽기도 하구나. 지독한 어미로군!"이라고 핀잔을 할 만큼.

어머니의 속마음이야 어떻든 나이 대접을 제대로 받고 싶은 소년의 우쭐한 마음. 작가는 "나는 참 치사했다"는 말과 함께 그토록 억척스럽게 아들을 여탕으로 끌고 다니던 어머니를 그리워한다.

저자의 대중 목욕탕 이야기는 한편으로 아기자기하게 재미있고 한편으론 가슴 찡하다. 그래서 재미있게 빠져들어 읽다가 나이를 속여서라도 언제까지든 곁에 두고 때를 씻기고 싶은, 아들을 항상 품에 품고 싶은 어머니의 애잔한 사랑. 그 연민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가톨릭 신자인 작가 최인호의 '절간과의 인연'

1부는 주로 저자의 일상 이야기다. 환갑을 넘긴 나이에 "늙어가는 아내가 마음 아프다"는 작가의 일상인으로서, 문학인으로서 소소한 일상에서 얻는 깨달음에 관한 글들이다. 그래서 부제는 '산으로 내가 갈 수 없으면 산이 내게 오게 할 수밖에'.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은 더 가까워지는 법이다' '나는 <가족> 안에서 풍요로웠고 <가족> 안에서 스승과 부처를 만났다' '남에게 자비를 베푼 사람은 결국 자신에게 자비를 베푼 것이다', '결국 온전히 버려지는 시간이란 없다' 등의 17편.

제목만으로도 선(문)답이 느껴지는 이 글들에서 <가족> <별들의 고향> <잃어버린 왕국> <길 없는 길> <상도> <해신> <유림> 등 그간 우리에게 워낙 좋은 작품을 많이 안겨준 작가 최인호의 삶과 가치관, 문학세계와 작품이 가능했던 인연 등을 만날 수 있다.

작가의 수많은 작품 중 내게는 <샘터>에 연재했던 <가족>과 경허 스님의 무애행과 스님의 제자인 만공 스님을 만나게 해준 <길 없는 길>이 가장 인상 깊었다. 내가 불자인지라 가톨릭 신자인 저자의 불교적 냄새가 그윽한 <길 없는 길>의 사소한 이야기들은 특히 궁금했다. 

마침내 까마득하게 잊고 있던 궁금함을 어느 정도는 풀 수 있어서 좋았다. 또한 다음호가 나오기를 기다릴 만큼 기다려 읽었던 <샘터>와 <가족>의 감동을 다시 만나 좋았다.

<산중일기>로 만나는 작품은 모두 45편, 작가의 집필도 45년이란다. 그동안 작가의 작품을 좋아했던 사람들, 나처럼 <길 없는 길>이나 <가족>에 특별한 감동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작가의 작품이 가능했던 인연들을 만날 수 있는 에세이다.

당뇨병이 있어서 건강을 위해 경허 스님이 출가한 청계사가 있는 청계산에 자주 오르는 작가는 어느 날  약수터 옆 소나무 등걸에 붙여진 어떤  글을 만난다.

'감사합니다. 저는 지난 6월 X일 오후 X시경 청계산 산행을 하던 중 갑자기 고통을 느끼고 쓰러져 여러 등산객들의 고마우신 도움으로 신속하게 병원으로 옮겨져서 치료를 받고 마침내 쾌차하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여러분의 덕분입니다. 고마우신 여러분의 댁내에 만복이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어쩔 수 없이 불시에 겪는 고통을 누군가의 도움으로 무사히 넘긴 어떤 사람의 답례의 글이란다. 아름답고 소중한 어떤 장면이 떠올라 가슴 뭉클하게 읽었다. 

산으로 내가 갈 수 없으면 산이 내게 오게 할 수밖에

<산중일기>에는 이처럼 가슴 뭉클한 감동도, 불가와 선승들의 깨우침과 같은 등골 서늘해지는 글들도 많다. 산에 가고 싶지만 시간이 없어서 산에 갈 수 없다는 누군가에게, 책 한권 읽을 여유 없이 바쁘게 살아가는 내 친구들에게, 누군가에게든 꼭 전하고 싶은 그런 말.

"도대체 나에게 있어 나는 누구인가"

"심청전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나야말로 심 봉사란 생각이 든다. 내 앞에 심청이가 아침  저녁 수발을 들고 오가는데도, 나는 공양미 300석을 따로 구하고 있다는 생각이."

"이 세상의 모든 일들은 어느 것 하나 그대로 사라져 버리는 것이 없다. 나쁜 말 한마디도 그대로 사라지는 법이 없이 어디론가 날아가 나쁜 결과를 맺으며 좋은 인연도 그대로 사라지는 법 없이 어디엔가 씨앗으로 떨어져 좋은 열매를 맺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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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다면? 없다면! 생각이 자라는 나무 12
꿈꾸는과학.정재승 지음, 정훈이 그림 / 푸른숲주니어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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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을 타려고 계단을 올라가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보고 뒤따라 올라가다가, 한꺼번에 많이 보이는 엉덩이들을 보면서 '방귀에 색깔이 있다면?'하고 엉뚱한 상상을 해 본 적은 혹시 없는지? 그러다가 노랗고 빨갛고 파란 방귀가 구름처럼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상상 때문에 혼자 슬며시 웃고 만 기억은 혹시 없는지?

대변이나 소변처럼 방귀로도 건강 상태를 판단할 수 있다? 방귀가 구린 것은 소화불량, 구릴수록 속이 안 좋다? "요즘에 방귀를 한 번도 뀌지 않았다"고 말하는 사람들? 과연 진실일까?

<정재승의 과학콘서트>(동아시아 펴냄, 2001년)로 '과학은 과학자들만의 것이 아닌 대중들의 것, 얼마든지 쉽고 재미있고 유쾌하다'를 직접 느끼게 해준(내게는 그랬다) 정재승의 지극히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대답은 "모두 거짓!"

"본인이 느끼지 못해서 그렇지 정상적인 소화 기관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하루에 콜라 1.5L 페트병만큼의 방귀를 뀌며 살고 있다. 적게는 450ml, 많게는 2000ml의 생체 가스가 우리도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 열 번에서 열다섯 번 정도로 나뉘어 엉덩이 사이로 빠져 나간다. 심지어 죽고 난 직후에도 사람의 몸에 아직 남아 있던 방귀는 밖으로 빠져 나온다.   이런 사실을 잘 모르는 이유는 영리한 방귀가 사람들이 자기 냄새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몸에서 빠져나오는 즉시 스리슬쩍 주변의 공기로 숨어버려서다. 잠시 주위를 둘러보시라. 지금도 옆 사람의 엉덩이에서 방귀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 책속에서

단지 구리고 교양없는 방귀? 만약 방귀에 색깔이 있다면?

방귀에 색깔이 있다면? 왜 어떤 날은 방귀가 참을 수 없을 만큼 구리고 어떤 날은 구수한 걸까? 왜 어떤 사람의 방귀는 더욱더 구리고 (그는) 유독 방귀를 잘 뀌는 걸까? 우리들 방귀의 성분은? 몸의 이상도 알려주지 못하는 방귀, 단지 구리고 교양 없는 것에 불과할까?

방귀의 성분은 질소, 산소, 이산화탄소, 수소, 메탄가스 등이며 가장 많은 성분은 수소다. 이중 질소, 산소, 이산화탄소는 공기와 함께 유입된 것이고, 수소와 메탄가스는 장내 세균들이 음식물을 먹고 뱉어낸 것이다. 흔히, 방귀와 메탄가스를 연관시키는데 우리의 상식과는 달리 메탄가스가 포함된 방귀를 뀌는 사람은 전 세계 인구 3분의 1가량이란다.

사람들이 싫어하는 방귀 특유의 구린내는 장내 세균이 만들어내는 황화수소물(SH) 때문이다. 따라서 황성분이 많이 함유된 브로콜리, 달걀, 소고기를 많이 먹었을 경우 방귀 냄새가 지독해진다. 즉, 질환이나 병 때문에 방귀가 구려지는 것이 아닌, 무엇을 먹었는지에 따라 구린내의 정도가 달라지는 것이다.

사람마다 장속에 다른 종류의 세균을 지니고 산다. 대부분의 장내 세균은 장속에서 터줏대감 노릇을 하며 음식물 찌꺼기들을 먹고 수소를 배출하는데, 이 수소를 마시고 메탄가스를 배출하는 세균들이 지독한 방귀의 주범이다. 이처럼 냄새를 결정하는 방귀 성분들은 그러나 색깔 결정에는 전혀 관여하지 못한다. 그래서 우리의 방귀엔 색깔이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색깔 있는 방귀는 전혀 불가능? 아니, 특정 성분의 알약을 먹어 방귀의 성분에 색을 혼합하여 어느 정도 조정할 수도 있지 않을까? 이런 노력으로 위장 기관의 상태에 따라 색깔이 다른 성분의 방귀가 배출된다면 내시경 검사로나 진단이 가능했던 병과 질환들을 일반인들도 쉽게 판단할 수 있어 위암으로 인한 사망을 훨씬 줄일 수도 있지 않을까?

'만약 방귀에 색깔이 있다면?' 이 엉뚱한 호기심은, 구리지만 절대로 부끄럽지 않는, 우리들과 평생 동고동락하는 방귀의 진실들을 알려주고 있다. 미항공우주국이 방귀 연구를 했다는 사실이나 가축의 방귀 그 진실과 활용법은 방귀의 과학적 접근이다.

저자가 상상해 내는 색깔 있는 방귀의 세계, 그 형형색색의 방귀 세계에 맘껏 빠져들면서 별의별 상상을 하였다. 20여 년 전 어느 날 지하철 을지로 3가역 계단을 올라가면서 '방귀에 색깔이 있다면?'이란 호기심이 갑자기 일었고, 결국 모락모락 방귀들이 피어오르는 모습을 상상하며 웃었던 기억도 떠올라 더욱더 흥미롭게 읽었던 부분이다.

이 책을 읽는 청소년 중 누군가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여 방귀에 색깔을 입혀 의학사에 굵은 획을 그을지도 모른다는 기대와 함께 말이다. 우리가 지금 당연한 듯 누리고 사는 것들도 예전에는 전혀 불가능했거나 황당하고 엉뚱한 것이 아니었는가!

사람의 혀가 두배로 길어진다면?…, 엉뚱한 호기심들, 하지만 재미있는 과학! 

<있다면? 없다면!>은 17개의 굵직한 주제와 관련된 이야기들을 여러 개의 작은 주제로 묶어 '딱딱하고 어렵다.' '과학을 전공한 사람들, 우수한 두뇌를 가진 사람들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하기 쉬운 과학을 쉽고 재미있게, 흥미롭고 유쾌하게 들려준다.   한마디로 이 책은 황당하고 엉뚱한 호기심으로 과학 지식과 상식들을 쉽게 알려주는 그런 책이라고 할까? 주제들도 우리 몸이나 생활과 직접 관계되는 것들이어서 훨씬 설득력 있고 유용하다고 할까?

'만약 아기가 나무에서 열린다면?'편의 이야기들은 인공자궁, 양수, 임신과 여성의 신체구조, 임신과 사회 등에 관한 이야기다. 여기에는 1990년 일본 동경대학교 교수 요시노리 쿠와바라 박사가 최초로 인공자궁을 실현해냈다는 것과 2004년 9월에 우리나라에서도 인공자궁을 만들어 냈다는 놀라운 사실도 있다.

사람의 혀가 두 배로 길어진다면? 혀가 길면 영어 발음이 좋다? 세상에서 혀가 제일 긴 사람은? 사람의 얼굴이 음각이라면 범인도 친구도 알아볼 수 없다? 만약 손가락이 사라진다면 인간의 얼굴이 개나 늑대처럼 길쭉해질지도 모른다? 등의 이야기들은 사람이 이렇게 생길 수밖에 없는 이유를 그 어떤 과학책보다 쉽고 재미있게 말해준다. '못생겼어도 이렇게 생긴 것만으로도 감사해!'라며 우리 몸에 고마워해야 할 그런.

정재승과 '꿈꾸는 과학'의 상상력 프로젝트 '있다면? 없다면!'

이 책의 저자는 정재승과 '꿈꾸는 과학'이다. 정재승은 2003년 5월 25일에 '과학의 대중적 글쓰기에 뜻이 있는 대학생을 모집한다'라고 공고했다. 이렇게 모여든 이공계 대학생은 28명이었다. 이들은 '꿈꾸는 과학'이란 이름으로 매주 만나 과학 책을 읽고 논쟁적인 과학주제를 토론해 '있다면? 없다면!'이란 프로젝트를 진행했단다. 그리하여 몇 년 동안 토론과 글쓰기를 진행하며 고치고 거듭 고치기를 반복해 그 결과물로 이 책을 내게 됐다.

과학 대중화의 대명사인 정재승과 '꿈꾸는 과학'은 청소년들에게 이렇게 당부한다.

"세상을 뒤흔들어 놓을 새로운 과학은 항상 '당연하다고 믿는 상식을 비판적으로 따져 보고, 근거 있는 상상력으로 뒤집어 보는 데'에서 시작된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 역시, 엉뚱한 상상을 상상으로만 그치지 않고 치밀한 과학으로 되짚어 봄으로써 누구나 과학적 상상력으로 충만해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 머리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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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의 앵무새 루이지토
수산나 타마로 지음, 이현경 옮김 / 레드박스 / 2008년 4월
평점 :
절판


주인공 안셀마는 퇴직교사이다. 수업시간에 성행위를 묘사하며 자신을 조롱하는 학생의 따귀를 때린 일로, 용감하고 자부심 강한(교사로서) 그녀는 결국 퇴직서를 내고 말았다. 학생의 부모가 그녀를 비난하자 교장이 퇴직을 권고했으니 "퇴직 당했다"가 맞겠다.

이런 그녀에게 "학교에서 강제로 쫒겨난…"란 표현으로 조롱하는 남편도 있었다. 그러니 그녀의 결혼생활도 불행하기는 마찬가지.

"파병되어 조국을 위해 싸우다 한쪽 발을 절게 되었다"는 남편의 명예스런 부상은 알고 보니 음주운전 때문이었고, 청혼하면서 내밀었던, 그리하여 그녀에게 "시가 없는 생활은 있을 수 없어"라고 말하게 했던 남편의 '자필 시집'은 알고 보니 남의 작품을 토씨하나 빠뜨리지 않고 베낀 것이었다.

이런 남편은  뻔뻔스럽게도 죽기 직전까지 어떤 젊은 여자를 유혹하고자 그 시들을 다시 베껴 쓰고 있었다. 이처럼 인생의 가장 중요한 일인 '결혼'과 '일'에서 뼈아픈 실패를 한 안셀마는 그리하여 쓸쓸한 노년을 보내고 있었다.

아들과 딸이 있지만, 남편의 뻔뻔스런 유전자가 승리하는 바람에(안셀마의 표현대로라면) 남편의 성격까지 꼭 빼닮은 아이들은 쓸쓸하게 살아가는 엄마에게는 냉담하지만 죽은 아버지를 그리워하였다. 손자들도 무례하기는 마찬가지.

"감정이라는 환상은 그녀의 인생에서 서서히 사라져갔다. 여러 해 동안 그녀는 공포 영화의 등장인물처럼 살았다. 겉으로는 살아 있었지만 안으로는 죽은 것이나 다름없었다.…"-책속에서

이처럼 인생의 패배자로, 껍데기처럼 살아가던 안셀마는 어느 날 쓰레기통에서 누군가 버린 무지갯빛 앵무새 한 마리를 줍게 된다.

동병상련이라 했던가. 버림받은 자신과 같은 처지인, 검은 봉지에 담겨 쓰레기통에 내동댕이쳐진 앵무새 한 마리에 대한 안셀마의 사소한 동정은 꽁꽁 얼어붙은 그녀의 감정을 녹이고, 회색이던 그녀의 삶을 바꿔놓기 시작한다.

안셀마는 몇 년 전에 암으로 죽은 친구 '루이지타'의 이름을 따서 앵무새에게 '루이지토'란 이름을 붙여준다. 부모 말 잘 듣고 소심한 그녀의 어린 시절, 삶의 의미를 가르쳐줬던 친구 '루이지타'는 그녀의 삶에서 가장 빛나는 존재였던 것이다.

루이지타라도 있었다면 안셀마의 삶은 지금처럼 수분도 모두 빠져나가고 바짝 말라버려 쪼그라든 잎, 그리하여 누군가 조금이라도 힘을 주어 쥐면 산산조각 나고 말 것처럼 위태롭고 건조하지는 않았으리라.

"그래. 지금 내가 제일 하고 싶은 게 바로 그거야. 그렇지만 할 수가 없단다. 어른들의 세상에서는 법이 사랑보다 더 중요하거든."- 책 속에서

안셀마는 루이지토와의 교감으로 예전의 활기를 되찾고 세상과의 화해를 시도하지만, 안셀마가 세상으로 다시 나오길 원치 않는 듯 세상은 그녀와 앵무새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준다. 이 정도가 <마법의 앵무새, 루이지토>의 대략적인 줄거리다.

인적이 거의 없는 시간에 쓰레기를 버리러 나온 안셀마가 앵무새 한 마리를 쓰레기통에서 발견하는 장면부터 시작, 루이지토와의 교감을 통해 지난 세월을 회상하는 전체적인 내용도 짧아 한두 시간 읽으면 될 만큼 짧은 이야기다.

그래서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이야기? 아니다. 아니었다. 이 책은 결코 가볍고 쉽게만 읽혀지지 않았다. 앵무새와 안셀마의 상처는, 우리 사회 우리들의 끊임없는 고민이자 무거운 숙제였기 때문이었다.

'살아있는 어린왕자 수산나 타마로'의 짧고 강한 메시지, 그 울림

'실패한 결혼', '뛰어넘을 수 없는 자녀와의 세대차이', '와해된 가족', '이웃과의 단절', '물질주의에 짓밟힌 정신적인 것들', '교권상실', '버려지는 노인들', '살아있는 생명을 함부로 하거나 버리는' 등이 이 짧은 어른동화에 압축되어 있었다.

인간의 말을 흉내 낼 수 있는 앵무새, 때문에 사랑받다가 어느 날 폐기처분되는 물건처럼 검은 비닐봉지에 넣어져 쓰레기통에 내팽개쳐진 앵무새 루이지토를 통해 작가 수산나 타마로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걸까?

"나는 동물을 사랑한다. 또한 어린이들도 사랑한다. 신비하기도하고 끔찍하기도 한 삶 자체를 사랑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리고'가 아니라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고 분류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렇게 분류헤서 사랑하는 것이 무슨 사랑인가? 분명히 말하지만 그런 도덕주의자들은 내 농장에 절대 들어올 수 없다."-수산나 타마로

'살아있는 어린왕자'란 별칭이 붙은 수산나 타마로는 신문도 텔레비전도 없는, 그리하여 흡사 동물원을 방불케 하는 시골의 한 농장에서 수많은 동물들과 어울려 산다고 한다.

그녀가 함께 살고 있는 동물들 중에는 <마법의 앵무새, 루이지토>처럼 쓰레기통에 버려진 것을 주워온 것들도 많다고 한다. 이렇게 살고 있는 그녀가 자신이 함께 살고 있는 동물들, 앵무새를 오래 지켜보고 나눈 교감을 바탕으로 이 작품을 썼다고 한다.

'우리 삶에서 진정으로 가치 있는 것들은? 우리를 사람답게 하는 것들은?' 수많은 사람들이 끊임없이 고민하고 물어왔던 것처럼 우리들 역시 끝없이 고민하고 물을 수밖에 없는 것들이다. 아니, 사람으로 살아가는 한은 결코 끝날 수 없는 문제들일 것이다.

하지만 앵무새 루이지토와 안셀마의 상처를 치유하려는 노력, 얼마든지 줄일 수 있다는 희망과 의지 역시 우리의 몫 아닌가? 안셀마가 어느 날 쓰레기통에서 주운 검은 봉지 속 <마법의 앵무새, 루이지토>와 수산나 타마로와의 만남은 훨씬 의미 있어지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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