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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다면? 없다면! ㅣ 생각이 자라는 나무 12
꿈꾸는과학.정재승 지음, 정훈이 그림 / 푸른숲주니어 / 2008년 6월
평점 :
지하철을 타려고 계단을 올라가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보고 뒤따라 올라가다가, 한꺼번에 많이 보이는 엉덩이들을 보면서 '방귀에 색깔이 있다면?'하고 엉뚱한 상상을 해 본 적은 혹시 없는지? 그러다가 노랗고 빨갛고 파란 방귀가 구름처럼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상상 때문에 혼자 슬며시 웃고 만 기억은 혹시 없는지?
대변이나 소변처럼 방귀로도 건강 상태를 판단할 수 있다? 방귀가 구린 것은 소화불량, 구릴수록 속이 안 좋다? "요즘에 방귀를 한 번도 뀌지 않았다"고 말하는 사람들? 과연 진실일까?
<정재승의 과학콘서트>(동아시아 펴냄, 2001년)로 '과학은 과학자들만의 것이 아닌 대중들의 것, 얼마든지 쉽고 재미있고 유쾌하다'를 직접 느끼게 해준(내게는 그랬다) 정재승의 지극히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대답은 "모두 거짓!"
"본인이 느끼지 못해서 그렇지 정상적인 소화 기관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하루에 콜라 1.5L 페트병만큼의 방귀를 뀌며 살고 있다. 적게는 450ml, 많게는 2000ml의 생체 가스가 우리도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 열 번에서 열다섯 번 정도로 나뉘어 엉덩이 사이로 빠져 나간다. 심지어 죽고 난 직후에도 사람의 몸에 아직 남아 있던 방귀는 밖으로 빠져 나온다. 이런 사실을 잘 모르는 이유는 영리한 방귀가 사람들이 자기 냄새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몸에서 빠져나오는 즉시 스리슬쩍 주변의 공기로 숨어버려서다. 잠시 주위를 둘러보시라. 지금도 옆 사람의 엉덩이에서 방귀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 책속에서
단지 구리고 교양없는 방귀? 만약 방귀에 색깔이 있다면?
방귀에 색깔이 있다면? 왜 어떤 날은 방귀가 참을 수 없을 만큼 구리고 어떤 날은 구수한 걸까? 왜 어떤 사람의 방귀는 더욱더 구리고 (그는) 유독 방귀를 잘 뀌는 걸까? 우리들 방귀의 성분은? 몸의 이상도 알려주지 못하는 방귀, 단지 구리고 교양 없는 것에 불과할까?
방귀의 성분은 질소, 산소, 이산화탄소, 수소, 메탄가스 등이며 가장 많은 성분은 수소다. 이중 질소, 산소, 이산화탄소는 공기와 함께 유입된 것이고, 수소와 메탄가스는 장내 세균들이 음식물을 먹고 뱉어낸 것이다. 흔히, 방귀와 메탄가스를 연관시키는데 우리의 상식과는 달리 메탄가스가 포함된 방귀를 뀌는 사람은 전 세계 인구 3분의 1가량이란다.
사람들이 싫어하는 방귀 특유의 구린내는 장내 세균이 만들어내는 황화수소물(SH) 때문이다. 따라서 황성분이 많이 함유된 브로콜리, 달걀, 소고기를 많이 먹었을 경우 방귀 냄새가 지독해진다. 즉, 질환이나 병 때문에 방귀가 구려지는 것이 아닌, 무엇을 먹었는지에 따라 구린내의 정도가 달라지는 것이다.
사람마다 장속에 다른 종류의 세균을 지니고 산다. 대부분의 장내 세균은 장속에서 터줏대감 노릇을 하며 음식물 찌꺼기들을 먹고 수소를 배출하는데, 이 수소를 마시고 메탄가스를 배출하는 세균들이 지독한 방귀의 주범이다. 이처럼 냄새를 결정하는 방귀 성분들은 그러나 색깔 결정에는 전혀 관여하지 못한다. 그래서 우리의 방귀엔 색깔이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색깔 있는 방귀는 전혀 불가능? 아니, 특정 성분의 알약을 먹어 방귀의 성분에 색을 혼합하여 어느 정도 조정할 수도 있지 않을까? 이런 노력으로 위장 기관의 상태에 따라 색깔이 다른 성분의 방귀가 배출된다면 내시경 검사로나 진단이 가능했던 병과 질환들을 일반인들도 쉽게 판단할 수 있어 위암으로 인한 사망을 훨씬 줄일 수도 있지 않을까?
'만약 방귀에 색깔이 있다면?' 이 엉뚱한 호기심은, 구리지만 절대로 부끄럽지 않는, 우리들과 평생 동고동락하는 방귀의 진실들을 알려주고 있다. 미항공우주국이 방귀 연구를 했다는 사실이나 가축의 방귀 그 진실과 활용법은 방귀의 과학적 접근이다.
저자가 상상해 내는 색깔 있는 방귀의 세계, 그 형형색색의 방귀 세계에 맘껏 빠져들면서 별의별 상상을 하였다. 20여 년 전 어느 날 지하철 을지로 3가역 계단을 올라가면서 '방귀에 색깔이 있다면?'이란 호기심이 갑자기 일었고, 결국 모락모락 방귀들이 피어오르는 모습을 상상하며 웃었던 기억도 떠올라 더욱더 흥미롭게 읽었던 부분이다.
이 책을 읽는 청소년 중 누군가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여 방귀에 색깔을 입혀 의학사에 굵은 획을 그을지도 모른다는 기대와 함께 말이다. 우리가 지금 당연한 듯 누리고 사는 것들도 예전에는 전혀 불가능했거나 황당하고 엉뚱한 것이 아니었는가!
사람의 혀가 두배로 길어진다면?…, 엉뚱한 호기심들, 하지만 재미있는 과학!
<있다면? 없다면!>은 17개의 굵직한 주제와 관련된 이야기들을 여러 개의 작은 주제로 묶어 '딱딱하고 어렵다.' '과학을 전공한 사람들, 우수한 두뇌를 가진 사람들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하기 쉬운 과학을 쉽고 재미있게, 흥미롭고 유쾌하게 들려준다. 한마디로 이 책은 황당하고 엉뚱한 호기심으로 과학 지식과 상식들을 쉽게 알려주는 그런 책이라고 할까? 주제들도 우리 몸이나 생활과 직접 관계되는 것들이어서 훨씬 설득력 있고 유용하다고 할까?
'만약 아기가 나무에서 열린다면?'편의 이야기들은 인공자궁, 양수, 임신과 여성의 신체구조, 임신과 사회 등에 관한 이야기다. 여기에는 1990년 일본 동경대학교 교수 요시노리 쿠와바라 박사가 최초로 인공자궁을 실현해냈다는 것과 2004년 9월에 우리나라에서도 인공자궁을 만들어 냈다는 놀라운 사실도 있다.
사람의 혀가 두 배로 길어진다면? 혀가 길면 영어 발음이 좋다? 세상에서 혀가 제일 긴 사람은? 사람의 얼굴이 음각이라면 범인도 친구도 알아볼 수 없다? 만약 손가락이 사라진다면 인간의 얼굴이 개나 늑대처럼 길쭉해질지도 모른다? 등의 이야기들은 사람이 이렇게 생길 수밖에 없는 이유를 그 어떤 과학책보다 쉽고 재미있게 말해준다. '못생겼어도 이렇게 생긴 것만으로도 감사해!'라며 우리 몸에 고마워해야 할 그런.
정재승과 '꿈꾸는 과학'의 상상력 프로젝트 '있다면? 없다면!'
이 책의 저자는 정재승과 '꿈꾸는 과학'이다. 정재승은 2003년 5월 25일에 '과학의 대중적 글쓰기에 뜻이 있는 대학생을 모집한다'라고 공고했다. 이렇게 모여든 이공계 대학생은 28명이었다. 이들은 '꿈꾸는 과학'이란 이름으로 매주 만나 과학 책을 읽고 논쟁적인 과학주제를 토론해 '있다면? 없다면!'이란 프로젝트를 진행했단다. 그리하여 몇 년 동안 토론과 글쓰기를 진행하며 고치고 거듭 고치기를 반복해 그 결과물로 이 책을 내게 됐다.
과학 대중화의 대명사인 정재승과 '꿈꾸는 과학'은 청소년들에게 이렇게 당부한다.
"세상을 뒤흔들어 놓을 새로운 과학은 항상 '당연하다고 믿는 상식을 비판적으로 따져 보고, 근거 있는 상상력으로 뒤집어 보는 데'에서 시작된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 역시, 엉뚱한 상상을 상상으로만 그치지 않고 치밀한 과학으로 되짚어 봄으로써 누구나 과학적 상상력으로 충만해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 머리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