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불량한 동물원 이야기
최종욱 지음 / 김영사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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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동물들과 부대끼면서 얻은 생생한 감동의 이야기들

얼마 전 우치 동물원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 두 번의 유산 끝에 돼지꼬리원숭이가 새끼를 낳았는데 이제 갓 두 달된 녀석이 위험한 장난을 시작하였다. 사바나에서 사자까지 해치울 정도인 개코원숭이의 새끼가 한달 정도면 어미 품을 벗어나는 것에 비해, 돼지꼬리원숭이는 2~3개월이 지나야 어미 품에서 비로소 벗어날 수 있는데 채 준비되지 못한 녀석이 모험을 시도한 것이다.

원숭이들은 철창을 벗어나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나와 먹을 것을 얻어가기도 하는 등 수시로 철창 밖으로 모험을 시도하는데 미숙한 돼지꼬리원숭이가 시도한 것이다. 녀석은 철창에서 떨어졌지만 집으로 돌아갈 생각조차 못하고 꼼짝 않고 있는 것이 크게 다쳤지 싶었다. 다행히 녀석은 다치지 않았고 사육사가 달려와 철창 안으로 넣어 주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생겼다.

사육사가 새끼를 철창 안으로 넣어주자 아기를 받으러 온 것은 어미가 아니라, 평소 무뚝뚝하기 이를 데 없는 아빠원숭이었다. 사육사에게 재빨리 다가와 새끼를 받아 어미에게 돌려준 수컷은 다짜고짜 암컷을 쥐어박고 꼬집으며 면박을 주기 시작했다. 암컷은 새끼를 제대로 돌보지 못한 잘못을 인정하는 듯 5분 동안 모질게 계속되는 수컷의 잔소리를 군소리 없이 받아내고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드라마에서 보던 부부의 일상 같았다.

새끼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어미원숭이가 죽은 시체를 한참동안 안고 다니다가 슬픔을 참지 못하고 결국 죽는 모습은 우리에게 비교적 많이 알려져 있다. 전문가들도 원숭이를 말할 때 모성을 강조한다.

새끼가 장난을 걸어오면 묵묵히 받아줄 뿐 대부분 수컷들은 새끼를 안아주거나 어루만져주지 않는다고 한다. 이렇듯 워낙 과묵하고 무뚝뚝하기 이를 데 없던 수컷도 새끼가 위급하자 부정을 누르고만 있지 못한 것이다.

저자는 이 모습에서 묵묵한 우리의 아버지들을 생각했다고 한다. 이 책 속에는 저자가 직접 동물들과 부대끼며 나누는 교감을 바탕으로 한 감동어린 이야기들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더욱 더 감동적이다.

사람과 동물 간에도 주고받는 것이 많다

우치 동물원에 '우울증 환자'라고 불릴 만큼 사람과의 접촉을 꺼리고 피하던 침팬지가 있었다. 처음 올 때부터 녀석은 내실 구석진 곳에서 나올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아 오죽하면 청소할 때마다 폭죽을 터뜨려 내쫓아야 할 정도였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녀석은 수시로 나와 일광욕도 즐기는가 하면 자주 만나는 사람에게는 먹을 것을 달라고 손을 내밀며 아양을 부리기도 하였다.

알고 보니 녀석의 마음을 열게 한 것은 매점 아저씨였다. 끊임없는 관심과 애정에 비로소 마음을 열고 사람에게 호감을 보인 것이다. 침팬지뿐이랴. 관람객의 손가락을 물어 화제가 되었던 사나운 하이에나도 사육사 앞에서는 젖 달라고 보채는 아기처럼 먹을 것과 애정을 보챈다고 한다. 어떤 동물들은 좋아하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재주를 넘거나 가슴을 치고 문을 꽝꽝 두드린다고 한다.

사람과 동물과의 진정한 교감을 통하여 저자가 들려주는 감동의 이야기는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저자는 말한다. 사람과 사람은 물론 사람과 동물 간에도 길들여지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관심과 애정으로 서로 길들여지고 나면 많은 것을 주고받는 소중한 친구가 될 수 있다고.

꼬리는 폼으로 달고 있는 게 아니다

<세상에서 가장 불량한 동물원 이야기>는 광주에 있는 우치동물원의 수의사 최종욱씨가 아픈 동물들을 치료하고 보살피는 현장에서 얻은 소중한 이야기들이다. 우치동물원은 예산이 넉넉지 않아 건강이 좋지 않은 동물을 들여오는 방법으로 동물을 확보한다. 개장 이후 동물원이면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코끼리 한 마리 없었다.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불량한 동물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동물원은 국내에서 가장 많은 동물이 태어나는 곳이다. 아픈 동물들을 데려다가 정성으로 보살피고 치료하여 오히려 다른 동물원에 새끼를 보내주는 역할까지 하고 있다. 무엇이 이런 것들을 가능하게 할까?

우리는 동물원에 가면 가장 보편적인 상식으로 동물들을 구경할 뿐이지 관심과 애정의 눈으로 바라보지는 않는다. 이 책은 같은 생명체로서 함께 살아가는 동물들에게 한발짝 더 다가가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

무심히 보았던 동물들의 꼬리 이야기가 나온다. 열대로 갈수록 길어지는 소꼬리, 겨울에 몸을 감는 보온재의 역할이 되는 다람쥐나 여우꼬리, 두발로 설 때 지지대용으로 쓰는 캥거루의 꼬리, 낚시용으로 쓰는 재규어의 꼬리, 유혹하기 위해 쓰는 공작이나 칠면조의 꼬리 등 꼬리마다 나름의 역할이 있다. 정말이지 폼으로 달고 있는 꼬리가 결코 아니었다.

꼬리에 대한 이야기만이 아니라 동물들의 눈이나 초식동물의 위에 대한 이야기 등도 재미있다. 전체적으로 봄, 여름, 가을, 겨울 4장으로, 관련 주제의 글을 59꼭지로 묶어 들려준다. 저자가 현장에서 동물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얻은 교감의 이야기들 못지않게 동물들에 대한 기본적인 이야기들이 많이 실려 있다. 훗날 아이들과 함께 동물원을 찾게 되면 조목조목 알려 주고 싶다.

이 책은 감동의 글 못지않게 감동적인 장면을 담은 화보가 돋보이는 책이다. 저자가 들려주는 이야기뿐만 아니라 많은 화보마다 짧게 정리하여 덧붙여 둔 그 설명만으로도 동물에 대하여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저자의 따뜻한 시선을 통하여 알게 된 동물들 이야기는 물결처럼 일렁이는 감동이었다. 사람마다 존재하는 이유가 있듯 그들 역시 존재할 이유로 늘 우리 옆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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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05-11-26 1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리뷰는 원작이 주는 감동 이상의 것을 읽는 이에게 던져 줍니다. 리뷰는 이렇게 쓰는 거라는 걸 님이 잘 보여주고 계시네요. 맨 마지막 말씀 역시, 다른 데 가서 써먹고 싶네요.
 
하룻밤에 읽는 색의 문화사 - 혁명의 색 빨강부터 이슬람의 녹색까지 세계를 지배한 색 이야기
21세기연구회 지음, 정란희 옮김 / 예담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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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피를 빨아먹은 벼룩의 색이 정말 있다고?

"피를 빨아먹은 벼룩의 색은?" 이렇게 물으면 생뚱맞다고 할까? 그런데 사실 벼룩색이 있다. 피를 빨아 먹은 벼룩색은 물론 여러 종류가 있으며, 그 색이 정식으로 등록된 후 한때 한 사회의 유행과 선망의 색이었다. 벼룩의 색 퓨스(puce)를 좀 더 알아보면 이렇다.

근세 초기까지 왕후의 화려한 치장 뒤로는 벼룩으로 고생한 역사가 있었다. 폭 넓고 주름이 많아 풍성한 왕후나 귀부인들의 드레스 속에서도 벼룩은 기승을 부렸다. 신분에 걸맞은 품위를 지키며 우아하게 미소 짓고 있는 그녀들은 속으로는 끊임없이 벼룩과 치열한 전쟁을 은밀히 치르고 있었던 것이다.

벼룩과의 전쟁이 오죽했으면 드레스 속에 벼룩을 잡는 기구를 밀어 넣는 부인들이 있었을까. 귀부인들만이 아니라 일상에서도 벼룩과의 전쟁이 치열했던 만큼 사람들은 피를 빨아 먹기 전의 벼룩과 피를 빨아 먹은 후의 벼룩을 쉽게 구분해낼 수 있을 정도였다. 피를 빨아 먹기 전 벼룩의 색과 피를 빨아 먹은 후의 벼룩색은 분명 달랐다.

14세기가 되자 프랑스에서 퓨스(puce; 벼룩)라는 새로운 색이 탄생하였다. 사람들은 일상의 큰 골칫거리인 벼룩의 모습을 색에 담아 보는 것으로 벼룩으로 인한 짜증스러움을 해소하려 했던 것이다. 퓨스, 이 색은 피를 빨아 먹은 후의 벼룩색깔로 지금도 쉽게 볼 수 있는 적갈색이며, 영어에도 같은 말로 그 흔적이 남아 있다.

마리 앙뜨와네뜨는 많은 색을 탄생시켰고 유행시킨 장본인이었다.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마리 앙뜨와네뜨의 모든 것은 곧 유행이 되었다. 14세기에 생겨난 퓨스가 18세기에 마리 앙뜨와네뜨에 의해 급속히 유행하였다. 그리하여 왕비가 옷을 맞출 때마다 '벼룩의 배' '빨간 얼굴의 벼룩' 같은 색을 발표하였다. 이렇게 발표한 색들마다 대대적인 유행을 몰고 다녔다.

황태자의 똥(caca dauphin), 솔개의 똥(merde d' ore), 런던의 쓰레기, 슬픈 여자들, 독을 마신 원숭이, 멋쟁이의 내장, 변비 색, 천연두, 살아 돌아 온 죽은 자, 비구니의 아랫배…. 피를 빨아 먹은 벼룩색이 대대적으로 유행했던 당시의 색 이름들이 재밌다. 이렇게 색은 그 사회를 표현해주기도 한다.

재미있고 놀라운 색의 숨겨진 이야기들

<하룻밤에 읽는 색의 문화사>의 제일 마지막 장 '세계를 지배한 색, 그 뒷이야기' 편에 보면 벼룩색은 물론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여러 편 보인다.

내세를 믿은 이집트인들은 3000년 동안 수많은 미라를 만들어 냈다. 그러나 미라는 아주 희귀하여 박물관에서나 전시될 정도다. 중세에는 미라의 가루가 머미(mummy)라는 색의 재료로 사용되었고 때문에 미라를 분말로 만들어 팔아먹는 안료업자가 있었다. 또한 미라가루를 만병통치약으로 팔아먹었는데, 이런 행위는 300여년이나 지속되었다고 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왕이나 황제의 색을 언뜻 금빛으로만 생각하기도 하는데 이 책을 통하여 중국황제의 자금성이나, 로마황제의 상징을 통하여 다시 보는 '자주색'이 새롭다고 할까. 스페인의 붉은 염색과 관련한 이야기, 다양한 낙타색, 오셀로, 퍼플 하트 부대의 전설 등 알고 있으면 다른 사람에게 으스대며 들려줄 수 있는 의외의 이야기들이 재밌다.

색을 통하여 알아가는 수많은 호기심 코드

<하룻밤에 읽는 색의 문화사>는 제목처럼 '한두 시간 집중하여 넘기다보면 책 한 권 쉽게 읽을 수 있다더라' 하는 그런 책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여서 한번 읽고 난 후에 필요에 의해 여러 차례 펼쳐 보게 될 책에 속한다. 색과 관련한 일을 하지 않는 일반인들이 많이 읽기를 바라는 마음에 정한 제목이지 않을까?

다시 몇 번을 펼쳐보며 참고하면 유용할 책이다. 가령 2편에서는 국기에 대한 다양한 시각에 관한 이야기인데 올림픽이나 월드컵을 보면 저마다의 국기들이 상징하는 것이 궁금할 때도 있을 것이다. 이때 국기에 대하여 다양한 시각을 담고 있는 이런 책은 속 시원히 그 궁금함을 풀 것이다(2장 국기 이야기).

종교적인 색도 제법 다양하지 않은가. 크리스마스에 문득 궁금한 산타클로스라면 이 책에서 이미 보았던 내용이 어렴풋이 기억날 것이다. 다시 펼쳐 보면서 '어?, 산타클로스가 코카콜라에서 비롯되었다고?' 이렇게 특정한 순간에 관련한 색에 대해 궁금할 때마다 이 책을 펼쳐 보면 궁금함이 어느 정도 풀린다고 할까(3장 성서이야기).

빨강, 파랑, 노랑, 하양과 검정…. 색의 우두머리랄 수 있는 이런 색에는 또 어떤 이야기가 들어 있을까? 같은 색이지만 어떤 나라에서는 부를 상징하고 어떤 나라에서는 불온하다. 색 하나로 치욕의 역사를 상징하여 그 민족을 융합시키기도 한다. 색마다 상징하는 것들은 저마다 다르다. 어떻게 그런 상징적인 색이 되었는가? 색 하나에 왜 그리 집착하는가?

색을 통하여 보는 세계 여러 나라의 사회나 역사적 이야기들이 색다르고 재밌다. 색에 이렇게 많은 코드가 숨어 있었다니 놀랍다. 전체적으로 9가지 주제를 정하여 색과 관련한 다양한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부록으로 덧붙인 '색의 소사전'도 유용하고 재미있다. '색에 이렇게 풍성한 이야기가 있었다니' 새삼스레 다시 보게 된다.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우연히 접하고 목록에서 '피를 빨아 먹은 벼룩의 색은?'이라는 소제목을 발견하고 망설임 없이 선뜻 선택한 책이었다. 그러나 이 단순한 호기심으로 책을 선택하여 얻어진 것이 의외로 많다. 언제 어디로 튈지 모르는 벼룩의 무한의 그 방향처럼… 두고두고 몇 번을 펼쳐볼까.

손에서 놓기가 아쉬운 책이다. 그러고 보니 '피를 빨아먹은 벼룩의 색 적갈색'이 유행하기 좋은 그런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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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사랑 2005-11-26 04: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흐...피 빨아 먹은 적갈색이 립스틱 색깔로 유행하던 때도 있었죠^^

필터 2005-11-26 1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그렇지요?...^^
사실 제가 참 좋아하는 색입니다.그래서 폰트로도 자주 고르지요.
이 책 참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콧대 높고 자존심 강한 중국사람 요리하기
정허하이 지음, 임희선 옮김 / 가야넷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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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체면이 밥 먹여 주냐?"

실속 없이 남에게 보이는 것에 지나치게 민감한 사람들에게 우리들은 지나가는 말처럼 예사로 체면이 밥 먹여 주느냐고 말한다. 그런데 중국인을 알고 싶은 사람들이라면 이 말 한마디를 다시 한번 유심히 살펴 볼 필요가 있겠다. 더욱이 중국으로 진출을 희망한다거나 중국 사람들과 끊임없는 거래를 해야 한다면, 중국인들의 정신적인 지주랄 수 있는 '체면'을 낱낱이 해부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콧대 높고 자존심 강한 중국사람 요리하기>는 중국인들의 심리 중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체면'을 낱낱이 해부한 책이다. 중국인은 체면 때문에 처자식을 버리기도 했으며, 목숨까지 걸기도 했다. 비단 고전 속의 이야기에 불과할까? 국제 교역이 늘면서 서서히 깨고 있다지만 저자의 이야기들을 따라가다 보면 지금도 여전히 '체면'은 중국인들의 자존심에 강력한 바탕이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중국인들에게 체면이 무엇이기에 체면을 골자로 한 권의 책이 가능할까? 저자가 낱낱이 들려주는 중국인들의 체면을 대충 보면 이렇다.

체면은 중국인들에게 자존심이자 명예며 최고의 선물이랄 수 있다. 사형수도 살려낼 수 있는 것이 체면이요. 운명보다 강한 힘을 가진 것이 바로 이 체면이다. 비록 사소한 말 한마디, 행동 하나마저도 체면이 깎인다 싶으면 물불 가리지 않고 행동하기도 하여 그야말로 눈을 멀게 만들어 버리는 게 체면이다. 체면은 중국인들의 삶의 원천이다. 그러기에 가난할지라도 이 체면만큼은 버리지 못한다. 그러기에 체면이라는 영역은 남이 절대 침범해서는 안 되는 절대적인 운명 같은 것이다.(일부 요약 발췌)

중국인들에게 체면은 절대적이다. 체면이 얼마나 중요한지 먹다가 버릴지라도 일단 음식을 맘껏, 상다리가 부러지도록 시켜야 체면이 선다. 또 아무리 가난한 사람일지라도 식당에서 남긴 음식을 싸서 집으로 가져갈 순 없다. 그야말로 체면이 깎이니까.

생활만이 아니라 국가와 국가 간 외교 협상에도 체면은 절대적으로 작용한다. 지난 일본의 교과서 왜곡 문제만 보아도 그렇다. 일본이 자신들의 체면을 깎았다고 판단을 내려 버린 그들은 집요하고도 끈질기게 일본의 사과를 받아냈다. '체면'이 그것을 가능하게 하였다.

'체면'은 눈에 보이지도 않아 잡아 볼 수도 없다. 그렇지만 중국인들에게 체면은 유전자에 인식되어 무엇이든 판단하고 받아들이는 기준이 되어버린 것으로 우리들의 체면에 대한 의식과는 차이가 있다. 우리에게는 허울 좋은 것에 불과하지만 중국인들에게는 절대적인 이 '체면'이란 것을 어떻게 살려주면서, 혹은 추켜세우면서 중국인들을 요리할 수 있을까? 한편으로는 우리의 체면도 구기지 않으면서 그들을 쥐락펴락하며 이익을 취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상대방의 체면을 살려 주고 내 체면까지 챙기면서 실속까지 챙길 수 있을까?

"중국인들과의 소통(유통)에서 어떻게 하면 우리의 밥그릇(실속)을 확실히 챙길 수 있을까?"

중국 고전을 인용해 '체면'에 대한 다양한 형태를 쉽게 들려줘

이 책은 중국인들의 오랜 정서를 쉽게 파악할 수 있는 4대 고전 '삼국지연의' '서유기' '수호지' '홍루몽' 중에서 동물을 의인화한 서유기를 제외한 3대고전의 주요장면을 인용하여 중국인들의 체면에 대한 다양한 형태를 이해하기 쉽게 들려준다. 중국 고전 작품을 읽다 보면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까지?' 하며 이해되지 않던 장면들이 저자가 말하는 대로 '체면'하나 붙여 보니 '과연 그렇다' 싶다. '천의 얼굴 중국인의 체면'이다.

저자가 비록 중국인이지만 '체면의 허와 실'까지 냉철하게 들려주고 있다. 그들과 만나서 어떻게 대처해야 원활하면서도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것까지 이 책은 싣고 있다. 우리도 이미 많이 읽은 중국 고전의 명장면을 바탕으로 하여 체면을 해부하는 이 책은 중국을, 중국인들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훌륭한 길잡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을 읽는 동안 궁금한 것이 있었다. 저자는 중국인이다. 그것도 현재 중국 방송계에 몸담고 있는 사람이다. 혹시 선수치고 먼저 내미는 배짱인가 싶었다. 말하자면 "우리 중국인들에게 체면 빼면 시체다. 그러니까 이젠 경제적으로도 함부로 무시할 수 없는 우리들을 아쉬운 너희들이 잘 알아서 대접해다오" 가 아닌가 싶기도 했다. 내게 중국은, 중국인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인간폭탄'이란 생각마저 들기 때문이다.

중국인 스스로, 이제 살만큼 살고 있으니 두둑한 배짱인 셈인가, 아니면 뼈아픈 자각인가?

"이 책은 중국에서는 아직 출판되지 않았습니다. 일본에서 먼저 출판되어 일본의 각 기업체에서 단체구입을 많이 하는 책이지요. 중국은, 중국 사람들은 이제 만만한 사람들이 절대 아닙니다. 이 책은 중국 사람들에게 오랜 세월 뿌리박혀 있는 '체면'이란 것을 낱낱이 해부하고 있습니다. <추악한 중국인>의 보양 선생처럼 이 책의 저자 역시 중국인들의 의식의 밑바탕인 '체면'의 쓸데없음을 버리자는 자각이지요. 어쨌든 우리로서는 염두에 두어야만 하는 것이 그들의 체면입니다. 이제 중국은 우리 소비물품마다 박혀 있다시피 합니다. '메이드인 차이나'. 그들 스스로의 자각이지만 우리들은 반대로 그들이 자각한 실체를 파악하여 유리한 협상 테이블을 차지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편집장과의 전화를 요약)

우리나라에서도 출간된 <추악한 중국인>이라는 책이 중국인들을 분노하게 하였다. 보양은 중국문화에 깊이 고여 있는 장독을 낱낱이 해부하고 비판함으로써 새로운 젊은 세대가 그런 '문화의 장독'에서 빠져나오기를 희망했다. 그렇다면 이번에 나온 장허하이의 이 책은 무엇인가. 중국인들의 '정신적인 허영인 체면'을 꼬집는다. 보양이든, 장허하이든 중국인 스스로 자신들의 가장 아픈 곳이며, 그래서 남에게 보여주기 싫은 치부를 낱낱이 드러냄으로써 중국의 진정한 발전을 독려하는 것이다.

중국. 이젠 우리들의 생활에서 중국은 많은 부분을 차지해 뗄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그들 스스로 버려야만 한다고 뼈아픈 자각을 하지만 하루아침에 버려지는 것은 결코 아닐 것이다. 또 스스로 드러내는 자신들의 치부라지만, 반대로 우리 스스로 그들의 코드를 읽어내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백승(百戰百勝)이라지 않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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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 - 말의 가치를 일깨우는 철학 동화
위베르 니생 지음, 크리스틴 르 뵈프 그림, 유정애 옮김 / 현암사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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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의 가치'를 일깨우는 철학동화 한권이 의미 깊다. 세상을 향한 '걸음마'를 배우기 전부터 본능적으로 터득하게 된 '말'이어서 우리들은 당연하고 쉽게 말하며 살아간다. 그런데 우리에게 말은 무엇인가? '세치 혀를 조심하라'고 하였으며,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고 하였다. 그리고 또한 '말이 씨가 된다'던가? '아 다르고 어 다르다?'...

<개미>는 철학동화지만 겨우 80페이지에 불과하다. 그러나 담고 있는 뜻은 살아가는 동안 틈틈이 펼쳐보면서 두곰두곰(두고두고 곰곰이) 되새겨봄직하다. 자신의 삶을 사랑한다면, 세상을 사랑하고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사랑한다면, 그리고 눈빛만으로도 마음이 오고 갈 수 있음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 철학동화 한권은 남다르게 스며들고 오래 남을 듯하다.

<개미>의 줄거리는 이렇다. 열심이 지나쳐 혹독하게 일을 하는 개미들, 초록개미와 파란개미가 있었다. 색깔만 다를 뿐 일반개미나 다름없는 이들은 더듬이로 의사소통을 하고, 냄새로만 내남(나와 너)을 구분하였다.

그런 어느 날 이들에게 '입으로 말하고, 귀로 듣고 손으로 쓰는 인간의 언어'를 쓸 수 있는 기적이 일어났다. 어느 날 찾아 온 이런 기적이 신기하여 개미들은 하루 종일 말만 하며 말의 힘에 심취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개미들이 말을 갖게 된 것은 순전히 요정 '엘로이즈'의 쓸데없는 호기심과 경망스러움에서 비롯된 가볍고 단순한 행동 때문이었다.

천방지축, 사사건건 남의 일에 간섭하기를 좋아하는 엘로이즈는 단순한 호기심으로 사람들이 수다를 떨지 않고는 못 배기게 만들었다. 참으려고 해도 요술봉이 닿는 순간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수다를 떨었다. 그리고 이 말들은 엘로이즈에 의해 이리저리 옮겨지고 혼란스러워졌다. 사람들은 엘로이즈를 피했고, 이때 마침 죽어라 일만 하는 개미가 눈에 들어 온 것이다. 게으르고 무책임하며 쓸데없는 호기심뿐인 엘로이즈에게.

개미들은 기적처럼 다가 온 말에 심취해 일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결국 개미들 스스로 말이란 자신들에게 걱정거리를 안길 수 있는 것이라 결론짓게 되었다. 하지만 이미 말을 갖게 된 개미들에겐 새롭고 강력한 계급이 생겼고, 일개미는 전처럼 슬쩍 빠져나가 나무사이를 놀러 다니는 작고 소소한 여유까지 빼앗기고 말았다.

말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전에는 더듬이나 냄새로 의사소통을 하다보니 일은 해도 해도 끊임없었다. 그러나 이제 말로 의사소통을 하며 그만큼 의사소통이 원활해지고, 따라서 일주일동안 하던 일을 하루면 끝낼 수 있게 되었다. 이젠 남은 여가를 보내야 하는 것이 문제였다. 그래서 극장, 오페라 하우스, 강연회장을 지었고 가수와 소리꾼, 시인, 웅변가, 이야기꾼이 생겨났다.

마침내 이웃한 초록개미와 파란개미 사이에 감정이 격해지기 시작했다. 전에는 서로 아웃으로 살면서 좀 불편해도 넘어 갔는데, 이젠 '말'로 그때그때 바로 표현하다보니 모든 것이 훨씬 더 쉽고 강했다. 추울 때 '나 추워' 하면 더 추운 것처럼. 직접 표현하는 이들의 말은 이젠 단순히 불편한 것이 아니라 점점 더 깊은 감정싸움이 되어가고 있었다.

자부심에 찬 파란개미는 말했다. "파랑은 파릇파릇 귀엽고 팔랑팔랑 친절하며 팔딱 팔딱 싱싱하고 폭신폭신 부드러운 기분 좋고 온갖 것을 가리키는 것이지" 하지만 초록개미들 사이에서 누군가 '파랑'이라고 말하자 파랑개미에게는 '파'괴적이고 '파'르르 성을 잘내고 '팔'푼이인데다 '파'렴치하다는 뜻으로 들렸다. 자부심에 찬 초록개미는 말했다."초록은 초롱초롱 총명하고 출중하고 충성스럽고 침착하고 천재적이고 창의적이라는 뜻으로 들렸지" 하지만 파랑개미 중 누군가 "초록"이라고 말하자 '초'라하고 '촌'스럽고 '촐'싹대고 '초'치기 좋아하는 '천'박한 '철'면피라는 뜻으로 들렸다.-후반부 개미들의 감정싸움 중에서

애초에 색깔개념이 없이 냄새만으로 구분하던 이들은 말이 생기면서 분별력이 생기고, 이렇게 서로가 잘났다고 싸웠다. 이들은 급기야 "우리는 초록색인데 저들은 불쌍하게도 파란색이다" " 파란색으로 태어나느니 차라리 태어나지 않는 게 옳지" "파란개미를 타도하자" "오랑캐 초록개미야 꺼져라" 이렇게 저주를 퍼부어대며 격렬하게 싸웠고, 세상은 파랑색도 아닌, 초록색도 아닌 무채색으로 변해갔다.

요정 엘로이즈가 이들에게 왔을 때 개미들의 목이 잘린 채 나뒹굴고 있었다. 개미들의 잘린 목과 시체는 세상을 뒤덮고 있었다. 파랑이든, 초록이든 아무런 구분도 없이 무채색으로, 모래와 섞인 채 뒹굴고 있는 무수한 개미들의 시체였다. 이렇게 파랑개미와 초록개미는 영영 사라지고 말았다.

작가는 왜 하필 개미를 내세워 우리의 말의 가치를 돌아보게 하는 걸까? 티끌만한 개미 한 마리 한 마리가 모여서 조직적인 개미사회를 이루듯, 우리사회역시 한사람 한사람이 모여서 사회를 이루고, 다시 우리들의 무수한 말과 생각들이 모여서 문화를 이룬다. 초록개미니 파랑개미니 하는 것은 굳이 필요 없을지도 모르는 '이념'이나 '사상'들을 말하는 것 아닐까. 서로의 생각이 다르다고 편을 가르고 적을 만들고 살아가기도 한다.

우리들에게 말은 무엇인가?

처음부터 가지고 있던 우리들의 '말'. 그래서 늘 무심히 쓰기도 하였고, 나의 필요에 의해 빙빙 돌려 말하기도 했다. 또한 상대방의 눈치를 보면서 오해하지 않을 말을 골라 썼으며, 필요에 따라 거짓말도 하였다. 그리고 또 나는 어떤 말을 하고 살았던가. 지나고 보니 별거 아닌데 누군가의 말 한마디를 쉽게 털어내지 못하고 나는 왜 소중한 만남을 단절시키고, 결국 등 돌리고 말았던가…. 나의 말을 살펴보는 계기가 되었다.

비단 입으로 직접 하는 말에 불과할까? 요즘에는 인터넷 공간에서 댓글로 상처받는 사람들도 많은 것 같다. 말로 상처받은 사람, 말로 누군가에게 상처를 준 사람 모두에게 이 책은 남다를 것이다. 철학동화 <어린왕자>를 처음 만났을 때처럼 투명하고 맑으며 깊은 울림으로 다가 온다. 아이들과 함께 언제든 읽어 보고 싶고 누구에게라도 선뜻 권해주고 싶다. 특히 누군가 한마디 말로 상처 받았거나, 말로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어서 괴로워하고 있다면 꼭 전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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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장미 2005-12-11 0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이 책 이번달에 주문합니다. ^-^ 예전에 힘들었던 시기에 이 리뷰를 보고 참 많은 생각을 했었드래요. 으흐흐흐
 
꿈꾸는 죽장수 - 혼을 담은 죽, 본죽 이야기
김철호 지음 / 거름 / 2005년 10월
평점 :
절판


인생에는 참고 버텨내야 할 시기가 있다

'꿈꾸는 죽 장수? 꿈꾸는 죽장수라... 어떤 내용일까?'

다른 책을 읽다가 궁금한 마음에 잠시 훑어나 보자고 펼쳐 들었다가 손에서 놓지 못하고 다 읽고 나니 새벽 3시 20여분이다. 나도 모르게 3시간 동안 정신없이 빠져 들었다. 책을 모두 읽고 나서도 쉽게 잠들지 못했다. 이 책의 무엇이 나를 꼼짝 못하고 책에 빠져들게 했을까?

"... 하지만 나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희망을 믿지 않으면 그것은 영원히 멀어지지만, 희망을 믿고 기다리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기회가 찾아온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나는 포기하지 않은 소망과 꿈은 결국에는 이뤄진다는 것을 좀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이야기하고 싶다. 자의에 의해서든 타의에 의해서든, 침체되어있거나 안타깝게도 절망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나의 경험담이 누구에게도 가능한 희망으로 비춰졌으면 하는 욕심도 내어 본다."
- 책 속에서


때로는 눈시울까지 붉어지면서 한참 동안 읽었다. 힘들고 모진 세월을 살아 내고 있는 나에게 이만한 위안이 없었다. 지금 비록 힘들지만 내가 희망이라 생각하고 있는 것들, 스스로 자신을 버리는 순간 절망이란 시작된다는 것, 내가 희망을 버리지 않는 한 결국 언젠가는 삶의 꽃이 활짝 피어 나리라는 것을 저자가 고스란히 보여 주고 있었다. 지금 참아내고 걸어가는 것이 옳은 길이라고 강하게 믿고 있었지만 모르는 사이에 자꾸 주눅 들고 있던 나의 희망이었다.

지난해 느닷없는 화재로 전소하고 어떻게 살아내고 있는 그간이던가? 나는 위안을 받고 싶었는지도 모르겠고 그 위안을 이 책에서 찾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책을 읽는 동안 몇 번이나 눈시울이 붉어지곤 했다. 한밤중에 몇 시간 동안 정신 없이 빠져 들었던 것은 내가 올바르다고 믿고 있는 것을 저자를 통해 확신했기 때문이다. 그렇다. 인생에는 참고 버텨내야 할 시기가 분명 있는 것이다. 이 책은 며칠 전에 이렇게 만났다.

절망은 운명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다

<꿈꾸는 죽 장수>는 '본죽' 김철호 사장의 성공 스토리다. 무엇이 오늘의 본죽을 가능하게 하는가?

지금 비록 웃고 있지만 저자는 7년 전에 그야말로 잘나가던 목욕용품업체 우신을 정리해야만 하는 절망에 처했다. 주변 사람들은 명의 변경을 해서라도 훗날을 도모하라고 했지만 스스로 나서서 채권을 정리하며 채권단으로부터 "자금을 대줄 테니 다시 시작해 보면 어떠냐?"는 제안까지 받았다고 한다. 아이들 적금까지 털어 모두 정리하고 저자에게 남은 것은 채권단이 딱하다며 준 봉고차 한 대가 전부였다.

그렇지만 그대로 무너질 순 없었다. 재기를 꿈꾸며 요리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공사판에서 벽돌이라도 져날라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만 하는 가장이, 수강비조차 없는 처참한 신세로 요리학원을 다니겠다니 주위 사람들이 욕할 법도 했다. 주위 사람들이 보기에는 무책임한 가장이었다. 가장 대신 집안의 생계를 책임지던 아내가 쓰러지면서 저자는 생계를 위하여 호떡 장사를 했다. 그것도 양복 입은 호떡 장사였다.

양복을 입은 호떡 장사? 스스로에 대한 존중이었다. 언젠가는 반드시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자신에 대한 독려였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 없이 찾아 든 고난이었지만 스스로 절망을 선택하지 않았다. 선택했다면 희망이었다.

친구의 도움으로 음식 장사를 하려는 사람들의 창업컨설팅 회사를 시작했지만 결국 놓아야 하는 어려움이 다시 찾아 들었다. 그리고 남의 창업만 리모델링해 주던 부부가 창업을 하겠다고 하자 많은 사람들이 반가워했다. 그러나 이들 부부가 하겠다는 것은 다름 아닌 '죽'이었다. 3년 전, 당시만 해도 시중의 죽집들은 명색만 겨우 유지하고 있는 정도였다. 그런데 이들이 하필 죽집을 하겠다며 얼마 되지 않는 돈을 무모하게 걸고 있었다.

이뿐이랴. 보증금이 모자라 이들 부부가 선택할 수밖에 없던 점포는 '죽집'으로는 부적합한 이층이었다. 그것도 2년 사이에 4명이나 망해서 나간 점포를, 돈이 모자라 보증금을 깎고 월세를 올려 간신히 계약했다. 돈에 궁한 부부는 죽이라는 고전적인 이미지와는 동떨어진 고급 카페 분위기의 인테리어 공사를 했다. 정말 어이없는 사람들이었다. 이제나 저제나 다시 망해 나갈까? 주변 사람들은 수군거렸다. 이렇게 시작한 것이 바로 본죽이었다.

그런데 3년 만에 '본죽'은 많은 사람들이 주목 받는 고급 브랜드 죽의 대명사가 됐다. 아울러 가맹점 모집 광고 한 번 없이 스스로 찾아든 사람들에 의해 창업 3년 만에 470개의 가맹점이 생겼으며, 이들이 하루 4만 7천 그릇을 팔고 연간 1천 6백억 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7년 전에 아이들 적금까지 털어야 했고 먹고 살기 위해 호떡 장사를 했던 이들에게 어떻게 이것이 가능했을까?

혹자들은 본죽을 홍보하는 책쯤으로만 섣불리 판단할지도 모르겠다. 글쎄? 다 읽고 나서도 그럴까? 책을 읽는 동안 이들 부부의 동반자로서 아름다운 사랑을 보았다. 인간으로서 어떤 경우에도 근본을 저버리지 않으려는 양심도 보았다. 내 것이 아닌 것에는 미련을 두지 않고 다시 털고 일어나 걸을 수 있는 과감한 용기도 보았다.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한다는 음식 장사의 가장 중요한 것도 보았다. 고난 앞에서 사람이 어떻게 헤쳐내야 하는지 또한 유감없이 보았다.

'죽 쒀서 개 준다'는 말이 있다. 형편 없는 상황, 보잘 것 없는 것이 죽이었다. 게다가 노인이나 어린아이, 환자나 먹는 음식 또한 죽이었다. 그러나 한편 약한 사람들의 살이 되고 환자의 생명을 살리는 것이 죽 아니던가?

저자의 희망의 끈은 남들이 미처 보지 못하는 것까지 희망으로, 새로운 삶으로 바꿀 수 있는 가치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저자의 말처럼 어려운 시기에 급하다고 쉬운 길을 택하는 대신 인간의 근본을 저버리지 않으려는 마음가짐이 이런 것들을 가능하게 하지 않았을까?

고난은 원하지 않아도 누구에게나 찾아든다. 절망하고 좌절하느냐 아니면 다른 길을 가느냐, 어차피 선택해야 한다면 희망을 선택하라고. 그것은 자신만이 가능하며 희망은 물론 절망까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이라고. 절망은 자신이 선택하면 찾아드는 것이지 운명으로 찾아드는 것은 아니라고... 저자는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이 책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부디 희망을 얻었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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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사랑 2005-11-26 04: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본죽의 창업 스토리가 이렇게 절절한 이야기였군요. 저도 힘을 얻고 갑니다.

필터 2005-11-26 1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이 책을 읽기전까진 본죽은
한차원 다른 고급 부르주아의 아드님이 뱃속 편하게
창업한 것인 줄 알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