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불량한 동물원 이야기
최종욱 지음 / 김영사 / 2005년 9월
평점 :
절판


동물들과 부대끼면서 얻은 생생한 감동의 이야기들

얼마 전 우치 동물원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 두 번의 유산 끝에 돼지꼬리원숭이가 새끼를 낳았는데 이제 갓 두 달된 녀석이 위험한 장난을 시작하였다. 사바나에서 사자까지 해치울 정도인 개코원숭이의 새끼가 한달 정도면 어미 품을 벗어나는 것에 비해, 돼지꼬리원숭이는 2~3개월이 지나야 어미 품에서 비로소 벗어날 수 있는데 채 준비되지 못한 녀석이 모험을 시도한 것이다.

원숭이들은 철창을 벗어나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나와 먹을 것을 얻어가기도 하는 등 수시로 철창 밖으로 모험을 시도하는데 미숙한 돼지꼬리원숭이가 시도한 것이다. 녀석은 철창에서 떨어졌지만 집으로 돌아갈 생각조차 못하고 꼼짝 않고 있는 것이 크게 다쳤지 싶었다. 다행히 녀석은 다치지 않았고 사육사가 달려와 철창 안으로 넣어 주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생겼다.

사육사가 새끼를 철창 안으로 넣어주자 아기를 받으러 온 것은 어미가 아니라, 평소 무뚝뚝하기 이를 데 없는 아빠원숭이었다. 사육사에게 재빨리 다가와 새끼를 받아 어미에게 돌려준 수컷은 다짜고짜 암컷을 쥐어박고 꼬집으며 면박을 주기 시작했다. 암컷은 새끼를 제대로 돌보지 못한 잘못을 인정하는 듯 5분 동안 모질게 계속되는 수컷의 잔소리를 군소리 없이 받아내고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드라마에서 보던 부부의 일상 같았다.

새끼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어미원숭이가 죽은 시체를 한참동안 안고 다니다가 슬픔을 참지 못하고 결국 죽는 모습은 우리에게 비교적 많이 알려져 있다. 전문가들도 원숭이를 말할 때 모성을 강조한다.

새끼가 장난을 걸어오면 묵묵히 받아줄 뿐 대부분 수컷들은 새끼를 안아주거나 어루만져주지 않는다고 한다. 이렇듯 워낙 과묵하고 무뚝뚝하기 이를 데 없던 수컷도 새끼가 위급하자 부정을 누르고만 있지 못한 것이다.

저자는 이 모습에서 묵묵한 우리의 아버지들을 생각했다고 한다. 이 책 속에는 저자가 직접 동물들과 부대끼며 나누는 교감을 바탕으로 한 감동어린 이야기들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더욱 더 감동적이다.

사람과 동물 간에도 주고받는 것이 많다

우치 동물원에 '우울증 환자'라고 불릴 만큼 사람과의 접촉을 꺼리고 피하던 침팬지가 있었다. 처음 올 때부터 녀석은 내실 구석진 곳에서 나올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아 오죽하면 청소할 때마다 폭죽을 터뜨려 내쫓아야 할 정도였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녀석은 수시로 나와 일광욕도 즐기는가 하면 자주 만나는 사람에게는 먹을 것을 달라고 손을 내밀며 아양을 부리기도 하였다.

알고 보니 녀석의 마음을 열게 한 것은 매점 아저씨였다. 끊임없는 관심과 애정에 비로소 마음을 열고 사람에게 호감을 보인 것이다. 침팬지뿐이랴. 관람객의 손가락을 물어 화제가 되었던 사나운 하이에나도 사육사 앞에서는 젖 달라고 보채는 아기처럼 먹을 것과 애정을 보챈다고 한다. 어떤 동물들은 좋아하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재주를 넘거나 가슴을 치고 문을 꽝꽝 두드린다고 한다.

사람과 동물과의 진정한 교감을 통하여 저자가 들려주는 감동의 이야기는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저자는 말한다. 사람과 사람은 물론 사람과 동물 간에도 길들여지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관심과 애정으로 서로 길들여지고 나면 많은 것을 주고받는 소중한 친구가 될 수 있다고.

꼬리는 폼으로 달고 있는 게 아니다

<세상에서 가장 불량한 동물원 이야기>는 광주에 있는 우치동물원의 수의사 최종욱씨가 아픈 동물들을 치료하고 보살피는 현장에서 얻은 소중한 이야기들이다. 우치동물원은 예산이 넉넉지 않아 건강이 좋지 않은 동물을 들여오는 방법으로 동물을 확보한다. 개장 이후 동물원이면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코끼리 한 마리 없었다.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불량한 동물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동물원은 국내에서 가장 많은 동물이 태어나는 곳이다. 아픈 동물들을 데려다가 정성으로 보살피고 치료하여 오히려 다른 동물원에 새끼를 보내주는 역할까지 하고 있다. 무엇이 이런 것들을 가능하게 할까?

우리는 동물원에 가면 가장 보편적인 상식으로 동물들을 구경할 뿐이지 관심과 애정의 눈으로 바라보지는 않는다. 이 책은 같은 생명체로서 함께 살아가는 동물들에게 한발짝 더 다가가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

무심히 보았던 동물들의 꼬리 이야기가 나온다. 열대로 갈수록 길어지는 소꼬리, 겨울에 몸을 감는 보온재의 역할이 되는 다람쥐나 여우꼬리, 두발로 설 때 지지대용으로 쓰는 캥거루의 꼬리, 낚시용으로 쓰는 재규어의 꼬리, 유혹하기 위해 쓰는 공작이나 칠면조의 꼬리 등 꼬리마다 나름의 역할이 있다. 정말이지 폼으로 달고 있는 꼬리가 결코 아니었다.

꼬리에 대한 이야기만이 아니라 동물들의 눈이나 초식동물의 위에 대한 이야기 등도 재미있다. 전체적으로 봄, 여름, 가을, 겨울 4장으로, 관련 주제의 글을 59꼭지로 묶어 들려준다. 저자가 현장에서 동물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얻은 교감의 이야기들 못지않게 동물들에 대한 기본적인 이야기들이 많이 실려 있다. 훗날 아이들과 함께 동물원을 찾게 되면 조목조목 알려 주고 싶다.

이 책은 감동의 글 못지않게 감동적인 장면을 담은 화보가 돋보이는 책이다. 저자가 들려주는 이야기뿐만 아니라 많은 화보마다 짧게 정리하여 덧붙여 둔 그 설명만으로도 동물에 대하여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저자의 따뜻한 시선을 통하여 알게 된 동물들 이야기는 물결처럼 일렁이는 감동이었다. 사람마다 존재하는 이유가 있듯 그들 역시 존재할 이유로 늘 우리 옆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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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05-11-26 1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리뷰는 원작이 주는 감동 이상의 것을 읽는 이에게 던져 줍니다. 리뷰는 이렇게 쓰는 거라는 걸 님이 잘 보여주고 계시네요. 맨 마지막 말씀 역시, 다른 데 가서 써먹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