콧대 높고 자존심 강한 중국사람 요리하기
정허하이 지음, 임희선 옮김 / 가야넷 / 2005년 9월
평점 :
품절


"체면이 밥 먹여 주냐?"

실속 없이 남에게 보이는 것에 지나치게 민감한 사람들에게 우리들은 지나가는 말처럼 예사로 체면이 밥 먹여 주느냐고 말한다. 그런데 중국인을 알고 싶은 사람들이라면 이 말 한마디를 다시 한번 유심히 살펴 볼 필요가 있겠다. 더욱이 중국으로 진출을 희망한다거나 중국 사람들과 끊임없는 거래를 해야 한다면, 중국인들의 정신적인 지주랄 수 있는 '체면'을 낱낱이 해부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콧대 높고 자존심 강한 중국사람 요리하기>는 중국인들의 심리 중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체면'을 낱낱이 해부한 책이다. 중국인은 체면 때문에 처자식을 버리기도 했으며, 목숨까지 걸기도 했다. 비단 고전 속의 이야기에 불과할까? 국제 교역이 늘면서 서서히 깨고 있다지만 저자의 이야기들을 따라가다 보면 지금도 여전히 '체면'은 중국인들의 자존심에 강력한 바탕이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중국인들에게 체면이 무엇이기에 체면을 골자로 한 권의 책이 가능할까? 저자가 낱낱이 들려주는 중국인들의 체면을 대충 보면 이렇다.

체면은 중국인들에게 자존심이자 명예며 최고의 선물이랄 수 있다. 사형수도 살려낼 수 있는 것이 체면이요. 운명보다 강한 힘을 가진 것이 바로 이 체면이다. 비록 사소한 말 한마디, 행동 하나마저도 체면이 깎인다 싶으면 물불 가리지 않고 행동하기도 하여 그야말로 눈을 멀게 만들어 버리는 게 체면이다. 체면은 중국인들의 삶의 원천이다. 그러기에 가난할지라도 이 체면만큼은 버리지 못한다. 그러기에 체면이라는 영역은 남이 절대 침범해서는 안 되는 절대적인 운명 같은 것이다.(일부 요약 발췌)

중국인들에게 체면은 절대적이다. 체면이 얼마나 중요한지 먹다가 버릴지라도 일단 음식을 맘껏, 상다리가 부러지도록 시켜야 체면이 선다. 또 아무리 가난한 사람일지라도 식당에서 남긴 음식을 싸서 집으로 가져갈 순 없다. 그야말로 체면이 깎이니까.

생활만이 아니라 국가와 국가 간 외교 협상에도 체면은 절대적으로 작용한다. 지난 일본의 교과서 왜곡 문제만 보아도 그렇다. 일본이 자신들의 체면을 깎았다고 판단을 내려 버린 그들은 집요하고도 끈질기게 일본의 사과를 받아냈다. '체면'이 그것을 가능하게 하였다.

'체면'은 눈에 보이지도 않아 잡아 볼 수도 없다. 그렇지만 중국인들에게 체면은 유전자에 인식되어 무엇이든 판단하고 받아들이는 기준이 되어버린 것으로 우리들의 체면에 대한 의식과는 차이가 있다. 우리에게는 허울 좋은 것에 불과하지만 중국인들에게는 절대적인 이 '체면'이란 것을 어떻게 살려주면서, 혹은 추켜세우면서 중국인들을 요리할 수 있을까? 한편으로는 우리의 체면도 구기지 않으면서 그들을 쥐락펴락하며 이익을 취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상대방의 체면을 살려 주고 내 체면까지 챙기면서 실속까지 챙길 수 있을까?

"중국인들과의 소통(유통)에서 어떻게 하면 우리의 밥그릇(실속)을 확실히 챙길 수 있을까?"

중국 고전을 인용해 '체면'에 대한 다양한 형태를 쉽게 들려줘

이 책은 중국인들의 오랜 정서를 쉽게 파악할 수 있는 4대 고전 '삼국지연의' '서유기' '수호지' '홍루몽' 중에서 동물을 의인화한 서유기를 제외한 3대고전의 주요장면을 인용하여 중국인들의 체면에 대한 다양한 형태를 이해하기 쉽게 들려준다. 중국 고전 작품을 읽다 보면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까지?' 하며 이해되지 않던 장면들이 저자가 말하는 대로 '체면'하나 붙여 보니 '과연 그렇다' 싶다. '천의 얼굴 중국인의 체면'이다.

저자가 비록 중국인이지만 '체면의 허와 실'까지 냉철하게 들려주고 있다. 그들과 만나서 어떻게 대처해야 원활하면서도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것까지 이 책은 싣고 있다. 우리도 이미 많이 읽은 중국 고전의 명장면을 바탕으로 하여 체면을 해부하는 이 책은 중국을, 중국인들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훌륭한 길잡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을 읽는 동안 궁금한 것이 있었다. 저자는 중국인이다. 그것도 현재 중국 방송계에 몸담고 있는 사람이다. 혹시 선수치고 먼저 내미는 배짱인가 싶었다. 말하자면 "우리 중국인들에게 체면 빼면 시체다. 그러니까 이젠 경제적으로도 함부로 무시할 수 없는 우리들을 아쉬운 너희들이 잘 알아서 대접해다오" 가 아닌가 싶기도 했다. 내게 중국은, 중국인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인간폭탄'이란 생각마저 들기 때문이다.

중국인 스스로, 이제 살만큼 살고 있으니 두둑한 배짱인 셈인가, 아니면 뼈아픈 자각인가?

"이 책은 중국에서는 아직 출판되지 않았습니다. 일본에서 먼저 출판되어 일본의 각 기업체에서 단체구입을 많이 하는 책이지요. 중국은, 중국 사람들은 이제 만만한 사람들이 절대 아닙니다. 이 책은 중국 사람들에게 오랜 세월 뿌리박혀 있는 '체면'이란 것을 낱낱이 해부하고 있습니다. <추악한 중국인>의 보양 선생처럼 이 책의 저자 역시 중국인들의 의식의 밑바탕인 '체면'의 쓸데없음을 버리자는 자각이지요. 어쨌든 우리로서는 염두에 두어야만 하는 것이 그들의 체면입니다. 이제 중국은 우리 소비물품마다 박혀 있다시피 합니다. '메이드인 차이나'. 그들 스스로의 자각이지만 우리들은 반대로 그들이 자각한 실체를 파악하여 유리한 협상 테이블을 차지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편집장과의 전화를 요약)

우리나라에서도 출간된 <추악한 중국인>이라는 책이 중국인들을 분노하게 하였다. 보양은 중국문화에 깊이 고여 있는 장독을 낱낱이 해부하고 비판함으로써 새로운 젊은 세대가 그런 '문화의 장독'에서 빠져나오기를 희망했다. 그렇다면 이번에 나온 장허하이의 이 책은 무엇인가. 중국인들의 '정신적인 허영인 체면'을 꼬집는다. 보양이든, 장허하이든 중국인 스스로 자신들의 가장 아픈 곳이며, 그래서 남에게 보여주기 싫은 치부를 낱낱이 드러냄으로써 중국의 진정한 발전을 독려하는 것이다.

중국. 이젠 우리들의 생활에서 중국은 많은 부분을 차지해 뗄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그들 스스로 버려야만 한다고 뼈아픈 자각을 하지만 하루아침에 버려지는 것은 결코 아닐 것이다. 또 스스로 드러내는 자신들의 치부라지만, 반대로 우리 스스로 그들의 코드를 읽어내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백승(百戰百勝)이라지 않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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