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파트에 산다.

산속에 지어진 이 곳은 오래전 어딘가에서 밀려온 사람들이 판자로 집을 짓고 살던 곳이었다.

그곳을 밀어내고, 그 사람들을 밀어내고 여기 거대한 요새를 대한주택공사가 지었다.

아직 몇 몇 집들은 저쪽 산 내려가는 길에 조금 남아있다. 이 아파트 단지의 길 건너에 예전 집 두 채가 남아있었는데, 그 집 옆에 거대한 교회가 그 거대한 몸집을 더 불리기 위해 교육관을 신설하면서 그 두 채의 집도 쓸어버리고 말았다.

이 곳의 주민들은 아파트 동호회 사이트에 예전의 이 곳의 모습 사진을 구해 올리며 찬란한 자신들의 자본주의 경제의 성취감을 자랑한다. 그런 사진들은 아이가 다니던 초등학교에도 전시되고 있었다. 아무도, 이 전에 살던 사람들에 대해서 이해하려 하지 않는 것 같아 보인다.

산 어딘가에서 내려오던 들개들이 간혹 아파트 단지에 나타나기도 했지만, 그 개들은 자취를 감춘 지 오래되었고, 개보다 생명력이 강한 고양이들은 주차장 여기저기와 건축대상인지, 조경대상인지를 받았다는 작은 수풀들 사이에 둥지를 틀고 봄과 가을이 되면 미친 듯한 발정소리를 내어 주민들을 호령하고 있다.

이 집에서 하루종일 문을 닫고 지낸 나는 저녁이 되면서부터 여기저기가 가려워지고 머리가 무거워진다. 몸이 가렵다는 내 말을 듣고 남편은 창문을 활짝 열고 환기를 시킨다. 이 집에 이사오고 나서 우리는 새 집 증후군에 지독하게 시달렸다. 남편은 없던 알레르기 반응이 여러 음식들에게서 나타났고 나 역시 아토피 비슷한 피부소양증에 시달렸으며 출생때부터 건조성 아토피가 조금 있던 아이의 아토피가 심해졌다. 하루종일 집에 있으면 말을 못했던 아이가 내내 울고 짜증을 내기도 했다.

환기를 시키고 나자 머리가 조금 가벼워졌다.

이 따위를 집이라고 지어놓고 사람보고 살라고 하는 이 나라에 분노가 일었다.

그들이 밀어버린 집들은 이렇게 나를 괴롭히지는 않았을 것이다.

우리가 예전에 살던 집은 남편이 대학시절 건축을 하시던 아버님의 소개로 직접 자갈을 지고 날라 지었던 집이었다. 그 집은 햇빛이 들면 뜨거웠고, 보일러를 꺼도 오랫동안 훈훈했다. 나름대로 정성을 들였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남편은 신혼 첫 집으로 그 집을 선택했었다.

우리가 이 곳에 온 이유는, 적당히 갈 곳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다른 아이들보다 체중이 월등히 많이 나가는 아이를 안고 계단을 오르내리는 일이 괴롭다는 나의 요구 때문에 엘리베이터가 있는 곳, 유모차를 편히 몰 수 있는 곳으로 선택하다 보니 그 폭은 아파트로 좁혀졌고 그 중에 만만한 가격대가 여기였다.

우리는 이 곳을 나가면 집을 짓고 살기로 결심을 하였지만, 그 때까지 그럴만한 능력이 갖춰질까 하는 생각을 가끔한다. 경제적 여유가 없다면 허술한 단독주택을 사서 조금씩 고쳐가며 살아보는 것은 어떻겠냐고 나는 제의하기도 했지만, 출장이 잦은 남편이 없는 집에서 어린 아이와 함께 지내는 것에 약간의 공포심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우리는 계약기간을 더 연장해 이 집에서 꼼짝없이 2년동안 더 새집증후군에 시달려야 한다. 아늑하고 따듯하고 나의 모든 것들이 늘어져 있는 편안한 집이며, 다른 사람들은 우리가족처럼 새집 증후군에 시달리지 않는 것으로 보아 그저 이건 우리 가족이 지나치게 예민하기 때문이라는 "내 탓이오"로 넘겨버릴 수도 있겠지만, 아마 이 집을 나가게 되면 멀리 지인의 공장으로 보내버린 거대한 비글 한 마리를 다시 데려오는 한이 있더라도, 다시는 아파트에 살지 않을 것만 같다.

천변이 보이고, 산책로가 있고, 재래시장이 가까운 곳,

그런 곳에서 시멘트 콘크리트가 뿜어대는 독성을 조금이라도 덜 느끼며 살아야겠다.

+그래도 아파트를 선호하는 우리 모친은 이사 후 황토벽지를 구해 바르고 여기 저기 창호지를 덧붙여서 그나마 아파트의 악영향에서 헤어나왔다고 자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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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 소리 책세상문고 세계문학 2
미시마 유키오 지음, 이진명 옮김 / 책세상 / 2002년 12월
평점 :
절판


미시마 유키오 三島由紀夫 1925. 1. 14 - 1970. 11. 25

 본명은 히라오카 기미타케[平岡公威]이고, 도쿄[東京]에서 태어났다. 1944년 도쿄대학교 법학부를 나왔다. 재학 중에 이미 소설을 썼으나 제2차 세계대전 후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의 추천으로 문단에 데뷔했다. 

 1949년 장편소설 《가면(假面)의 고백》으로 문단에서 확고하게 지위를 굳혔다. 그는 전후세대의 니힐리즘이나 이상심리를 다룬 작품을 많이 썼는데, 그 본질은 오히려 탐미적이었다. 《사랑의 갈증》(1950) 《금색(禁色)》(1951∼1953)을 거쳐 그의 방법론이 거의 완전하게 표현된 것은 《금각사(閣寺)》(1956)에서였다.

 이단적인 미와 지성이 통합된 작풍으로 정평이 있었으나 《우국(憂國)》(1960) 무렵부터 쇼와[昭和] 사상에 대한 관심이 깊어져 점차 급진적인 민족주의자가 되었는데, 《영령(英靈)의 소리)》(1966) 등에서 낭만적 동경과 천황제의 의미를 확인하고 《풍요의 바다》(1965∼1971)를 유작으로 하여 1970년 11월 그가 주재하는 ‘다테[楯:방패]의 회’ 회원 4명을 이끌고 육상자위대 동부방면 총감부에서 총감을 감금하고 막료 8명에게 중경상을 입힌 후 자위대의 각성과 궐기를 외치며 할복자살하는 이른바 ‘미시마 사건’으로 내외에 충격을 주었다. 그 밖에 《로쿠메이칸[鹿嗚館]》(1957) 《나의 벗 히틀러》(1968) 등의 희극이 있다.

미시마 유키오에 대한 이해를 돕는 블로그 하나

http://blog.naver.com/mcm90?Redirect=Log&logNo=130001074653

 
파도소리는 목가적 연애소설인 그리스의 소설 《다프니스와 크로에》에서 아이디어를 빌려왔다고 한다. 파도소리는 극우주의자이며 할복자살로 생을 마감한 작가와 어울리지 않게 아름다운 섬의 아름다운 사랑이야기 아름다운 결말을 가지고 있다. 

섬소년에서 섬청년으로 성장하는 남자주인공 신지, 그리고 섬에 온지 얼마 되지 않은 처녀 하쓰에, 그리고 이 둘은 작가의 표현에 따르면 너무나 아름다운 육체를 가지고 있다. 비록 지적인 수준은 그에 미치지 못하지만 그렇다고 영혼이 더럽혀지지는 않은 그런 존재들이다. 파도소리의 배경이 되는 섬은 도둑도 범죄도 없는 파라다이스이고 악한 자의 악역은 그리 강렬하지 못하다. 그저 좀 게으르거나 오해가 발생하거나 하는 정도이다. 천혜의 자연을 가진 섬, 이 섬에서 이 둘의 사랑은 그리스 신화처럼 발생하고 고결하게 진행되며 아름답게 마무리된다. 

 일본적 특색이나 작가가 극우주의자라 하더라 하는 등의 부수적인 요소는 전혀 눈치챌 수 없고 그저 너무 쉽게 이루어지는 마지막 결론부분에 있어서 약간 김이 빠지는 듯한 느낌도 배제할 수 없다. 

 책세상문고 세계문학편은 작가의 글을 토대로 하여 번역자들이 가상인터뷰를 하는 기획을 해서 책 말미에 끼워넣고 있는데, 그 인터뷰와 작가의 편력을 살펴보면 미시마 유키오는 "미루야마 겐지"만큼이나 자부심이 대단한 작가라서 이런 형식의 그리스 문학의 카피본을 의도적으로 일본문학에 도입하려는 시도를 펼친 것이 아닌가 싶다. 

 확실한 것은 책세상문고는 어떤 책세상으로 가게끔 미끼를 던져주는 글들을 작게 쪼개서 출판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장용학도 그랬지만 극우주의자라는 이유로 한국에 소개되기 조차 껄끄러웠을 법한 미시마 유키오의 소설도 이 사람의 좀 더 넓은 세계를 엿보고 싶게끔 만들어주는 유혹을 던지고 있으니까. 

2006. 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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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시집 외 책세상문고 세계문학 1
장용학 지음 / 책세상 / 2002년 12월
평점 :
품절


1921년 4월 25일 함경북도 부령에서 출생하였다. 함경북도 경성의 경성중학을 졸업하고 일본에 유학하여 1942년 와세다대학교 상과에 입학하였으나 1944년 중퇴하였다. 8·15광복 후 귀국하여 청진여중 교사로 지내다가 1948년 월남하였다. 월남 후 한양여고·무학여고 교사로 있으면서 작품창작을 병행하였다. 

 1949년 12월 《연합신문》에 단편 《희화》를 발표하였으며, 1950년과 1952년에 단편소설 《지동설》과 《미련소묘》로 《문예》지에 추천되었다. 1955년 《요한시집》을 발표하면서 문제작가로서 각광을 받기 시작하였다. 

 이상(箱)이 일제의 억압으로 인한 정신적 상처를 주로 다루었다면, 장용학은 광복 후, 6·25전쟁으로 인한 의식의 상처를 주로 다루었다고 볼 수 있다. 《요한시집》은 종래의 소설양식과는 판이하게 토끼의 우화를 빌고 에세이적인 요소를 혼입시켜 인간의 실존과 자유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작품이다. 인간의 비인간화 과정을 통해서 현대인의 비극성을 부각시킨 《비인탄생(非人誕生)》(1956), 현대사회가 지닌 제도적 횡포를 다룬 《현대의 야(野)》(1960) 등을 발표하여 확고한 문단적 지위를 쌓았다. 

 1962년 소외된 인간의 군상, 즉 현대문명으로 파괴되어 가는 인간상을 그린 장편소설 《원형의 전설》을 《사상계》에 연재하였다. 1964년 주제의 해석에서 물의를 일으켰던 작품 《상립신화》를 발표하였으며, 1965년 장편 《태양의 아들》을, 1967년에는 장편 《청동기》를 각각 발표하였다.

 
장용학의 작품은 작가의 관념에 의해 다시 창조된 우화나 전설의 세계로 형상화되어 있고, 일인칭 화자의 내적 독백 형식으로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특이한 면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에세이로 오해되기도 했다. 이러한 기법 속에 숨어 있는 그의 소설적 주제는 현대의 비인간적인 상황에 대한 고발과 인간 존재에 대한 질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작품은 당시 세계적으로 유행한 실존주의의 영향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현대소설가로서는 드물게 국한문혼용체를 사용하면서 현대의 비인간적 상황을 관념적인 문장으로 서술하여 난해한 작가라는 인상을 풍기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장용학은 관념소설이라는 새로운 계보를 만들어 낸 작가로서 평가받기도 한다. 

 《무영탑》(1953), 《라마의 달》(1954), 《잔인의 계절》(1972), 《부여에 죽다》(1980), 《유역》(1982), 《하여가행》(1987) 등 여러 편의 소설과 희곡으로 《세계사의 하루》(1966)가 있다. 

 출처 : 네이버 백과사전

 

책세상문고 시리즈 중에 세계문학 문고가 있다. 그 중 첫번째 책이 장용학의 요한시집 外 중단편선이다. 장용학이라는 작가에 대해서 잘 모른다. 나는 수능첫세대인데, 우리때 시작된 논술과 수능대비로 인한 독서열풍중에 장용학은 빠져있었다. 분명히 내 기억으로는 그렇다.

우리 때는 김동리나 채만식, 김유정등이 필독작가였고, 백석은 듣도 보도 못한 시인이었다. 요한시집이라는 작품은 물론 제목만 들어보았으나 잘 알 수 없었던 작품이다. 책세상문고의 작품선정기준이 자꾸 궁금하다. 어떤 기준을 가지고 선정을 하는 것인지, 어딘가 모르게 독특해서 더 맘에 든다. 

 장용학은 1921년생으로 일제치하 이북에서 태어나 한글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고 한다. 그래서 늘 언어표현에 대해서 일종의 컴플렉스를 가지고 있었고 그로 인해 국한문 혼용체라는 독특한 문체를 만들어내었으며, 표현의 자유가 국한되어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관념주의적 소설가로 태어나기에 더 적절했다는 평가들이 있다.

 이 책에 실린 중단편들은 미련소묘(未練素苗), 육수(肉囚), 요한詩集, 오늘의 風物考, 天道是也非也등, 모두 한자어의 뜻이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제목들이다. 발표의 시기는 모두 달라  미련소묘(未練素苗)는 1952년 1월에, 육수(肉囚)는 1955년 3월에, 요한詩集은 1955년 7월, 오늘의 風物考는 1985년 6월, 天道是也非也는 미완성 유작이다. 

 작가는 1999년에 별세하였고, 책에 실린 두 편의 단편, 오늘의 풍물고와 천도시야비야 같은 경우 1980년대 이후의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시대적인 배경만 변화가 있지 작가의 문체는 하나도 변화가 없어 마치 1980년대에 타임머신을 타고 온 신소설의 작가가 주절주절 변사투의 이야기를 내놓는 것과 같은 어색함과 독특함이 있다. 아마 그 때 당시에도 누군가가 선생님 요즘은 아무도 이런 문체로 글을 쓰지 않습니다. 라고 말했을 지도 모르겠다. 1980년대 작인 두 편의 소설에서는 인격과 능력은 존재하지 않는 듯 건조한 어머니상과 그야말로 청순가련 순진무구의 여성형과 퇴폐적 악녀상이 동시에 등장해 그 독특함을 더하고 있으며, 주인공들은 내내 고뇌하나 건조하고 현실적이다. 말하자면, 신념을 위해, 대의를 위해 라기 보다 그건 싫어서 그건 너무 끔찍해서 그건 너무 무서워서, 라는 등의 인간의 공포를 가장 본능적으로 인정하고 수용하는 어찌 보면 소설에서 다루기엔 약간 비겁한 듯한 인간상을 표현한다고 할까. 

 김동리는 그의 작품중 肉囚를 명작이라 뽑았다 하는데, 나도 여기 실린 작품중엔 가장 맘에 드는 작품이었다. 마치 광염소나타를 다시 읽는 것 같기도 하면서 주인공에게 그닥 큰 애정을 표현하지 않은 작가의 담담한 묘사와 그러면서도 다시 일어나는 화염같은 삶의 욕구들이 표출되어 있다. 

 生의 使命이요 事業이다! 싸움이다! 사업 속에서 生은 結實되어 가는 것이다!

어서 내려가서 저 네거리의 揭示板에 내 얼굴을 가져가 걸어라! 이보다 더 큰 사업이 어디에 있을 것인가, 그것은 입술을 가리어 보려고 땅 속을 뒤지는 것보다 더 큰 사업이요 보다 쉬운 사업일 것이다. .................. 나의 설움은 生을 감당할 수 있을 만큼 무거웠다. 

 라는 구절들이 둥둥둥둥 가슴을 친다. 

 가장 관념적으로 꼽히는 요한시집의 경우, 한 번 읽어서는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사르트르의 구토에 영향을 받았다고 하는데, 구토가 쉽게 읽혔다 해도 장용학의 요한시집은 많이 색다르다. 우화로 시작되며 끊잆없는 상징주의적 표현, 메타포들의 나열, 내적 심리의 묘사와 대사등이 정신 바짝 차리고 읽지 않으면 내가 지금 뭘 읽고 있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는 고난이도 소설이다. 

 고뇌가 많았을 것이다. 일제 강점기에서 전후를 지나 군부독재의 시대를 지나던 작가에게 매일 매일은 힘들었지 않았을까. 

 산다는 것은 죄짓는 다는 것이다. 내가 여기에 앉아 있기 때문에 그들이 여기에 앉아 있지 못하는 것이다. 그들을 떼밀어버리고 내가 여기에 앉아 있는 것이다. 그래서 언제 그들에게 밀려 나갈지 모른다. 순간 순간, 무수의 可能性이 자기를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存在는 다음 순간에 일어날 可能性앞에 떨고 있는 戰인 것이다. 이 戰을, 잠자고 있는 세계에서는 '自由'라고 한다. 그래도 잠자고 있을 것인가? 깨어날 것인가....?"

 낯선 국한문 혼용체속에서 한자어의 뜻을 곱씹어 보는 것이 장용학 소설의 커다란 매력이 아닐까 싶다. 신소설의 문체, 앞서가는 실존주의, 그리고 한자어의 남용. 이 것이 이 책을 이루는 가장 커다란 요소들이다.

 

2006. 1.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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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실이 책내음 창작 10
이지현 지음, 김재홍 그림 / 중앙출판사(중앙미디어) / 2003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어린이 동화책이다. 부산에서 실제일어났던 일을 글로 엮은 것이라 한다.

내용은, 새끼를 잃어버린 어미개가 새끼강아지를 찾아 어미로서의 모성을 보여준다는 정말 정말 감동적인 이야기이고 (울었다;;)

그림이 정말 좋다.

연필 밑그림에 수채화로 그린 삽화가 내용과 정말 잘 어울려서 한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잡종강아지의 모습을 정말 예쁘게 표현해내었다. (사실 내가 애지중지 키우는 우리집 잡종 강아지랑 매우 닮았다 ㅎㅎ)

 책 속의 몽실이는 슈퍼에 사는 잡종개.

밤마다 가게를 지키던 몽실이가 4마리의 새끼를 혼자 낳는다.

시간이 지나면서 강아지들을 모두 기를 수 없게 된 주인아저씨가 새끼들을 여기저기로 입양보내고, 새끼를 그리워하던 몽실이는 막내 강아지를 찾아 나선다. 

 우리집에서 키우는 비글이 에미 "루"도 작년 여름 8마리의 새끼들을 낳았다.

마지막까지 입양이 되지 않던 강아지 두 마리 중에 한마리가 입양을 가자 불안해 하는 기색을 보이더니, 마지막 한 마리마저 데려가자 하루종일 울부짖었다.

결국 가장 먼저 입양나간 삼순이가 입양간 집에서 대형사고를 쳐서 집으로 돌아왔고 지금은 에미 애비 새끼 이렇게 세 마리가 가족을 이루어 행복하게 지내고 있지만.

 동물은 간혹, 본능에 충실해서 사람보다 더 훌륭할 때가 있는 것 같다.

사람은 이익에 눈이 멀어 그 본능들을 무시하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동물은 모성본능이나 방어본능에 100% 충실하기 때문에, 사람을 감동시키는 이런 이야기들도 만들어내는 것이겠지.

 초등학교 3-5학년 아이들이 보면 좋을 책. 

 2006. 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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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교육의 파시즘 - 노예도덕을 넘어서 프런티어21 1
김상봉 지음 / 길(도서출판) / 2005년 10월
평점 :
품절


TV 채널을 돌리다가 "TV, 책을 말하다"에서 우연히 이 책의 한 구절을 듣고 어이가 없어서 구입한 책이다. 

 학교다닐 때, 도덕이나 윤리, 참으로 식상하고 짜증나고 납득가지 않는 과목이었던 것을 기억할 것이다. 어떻게 이런 덕목들을 1,2,3,4로 나눠서 정답을 고르라고 하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던 것은 고등학교쯤 되어서였고, 그 과목의 선생님들은 기억조자 나지 않는 몰개성의 인물들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아마, 중학교였는지 고등학교였는지, 한 선생님은 나이가 지긋하신 여선생님이었던 거 같은데, 그 때 생각으로도 곱게 자라 세상물정 모르는 이미지가 강했던 양반이었던 것 같다.

말하자면, 윤리나 도덕은 철학이 그 근간일진대, 내가 배웠던 도덕이나 윤리선생님들에게는 철학의 냄새는 전혀 나지 않았고, 고리타분한 논어만 주구장창 외운 사람같이 느껴졌던 것이 그때의 이미지이다. 물론, 공자의 논어는 그리 고리타분하지도 않고, 논어만 잘 공부해도 사람 사는 데 별 문제는 없을 정도로 훌륭한 책이라는 것은 대학이나 가서 알게 되었지만 말이다. 

 저자인 김상봉씨는 독일에서 칸트 철학을 공부하고 한국에서는 종교철학과 교수를 지냈다 한다. 그리고 저자의 머리말에서 어떻게 이런 책을 집필하게 되었는가에 대한 이야기가 가슴에 와닿게 적혀있다. "실은 3년전까지만 해도 무엇이 문제인지 전혀 모르기는 나도 마찬가지였다"는 저자는 "인간을 자유인으로 만들지 않으면서 오직 착하게만 만들려는 것은 언제나 불온한 시도이다"라는 철학아래 이 책의 집필을 시작한다. 

 책은 제 1장, 도덕교육의 파시즘, 2장 국민윤리를 넘어서, 3장 윤리학이 철학에서 차지하는 위치에 대하여, 4장 무엇을 위한 도덕교육인가, 5장 윤리적 인간의 탄생으로 나뉘어 도덕과 윤리교육이 어디서부터 얼마나 잘못되었는지를 꼼꼼하게 비판하고 그에 대한 대안까지도 명확하게 제시하고 있어서 아주 속이 시원하다.

 제 1장 도덕교육의 파시즘에서는 노예를 기르기 위한 도덕교육으로 치닫고 있는 현행 교과서들의 문제점을 꼬박꼬박 지목한다. 타인과 공동체를 위한 도덕, 타인의 불의에 대한 침묵, 예를 들어 사회적 약자에게 예절을 강요한다면, 사회적 강자의 폭력과 횡포에 대해 어떻게 자기 자신을 지켜야 할 지 말해주지 않는 도덕교육에 대해서 비판하고 도덕적 문제 상황을 보여주고 그런 상황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에 대해 학생들이 스스로 생각하지 않게 만드는 타율적 도덕교육, 사람들 사이의 비협력자를 가려내어 제재하는 일이 국가의 가장 큰 기능중의 하나라고 가르치는 국가주의로서의 도덕교육에 대해 말한다.

우리는 도덕책을 읽어오면서 윤리책을 읽어오면서 이런 부분에 대해서 알고 있었는가?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책을 통해 도덕 윤리 교과서의 이런 부분을 대하면서 소스라치게 놀랄 것이다. 우리는 그런 교육을 받아오면서 한 번도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못할만큼 세뇌당해 있었던 것이다. 저자는 단순히 도덕교육에 대한 비판만을 하는 것이 아니고 일반인들도 정리하지 못하는 철학적 개념에 대해서도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다. 

 도덕교육이 문제가 있다면 이미 성인이 되어 학부모가 되었거나 혹은 학부모가 될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이 가치관의 정립을 해야할 것인데, 이런 고민까지도 저자는 매우 친절하게 정리해준다는 점, 그런 이유로 꼭 도덕교육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관심없는 사람들도 한 번 쯤 읽어둘만한 책이라는 것이다. 

 책을 읽는 내내 연필을 들고 밑줄을 긋느라 바빴으며 이런 철학자가 좋은 책을 펴내준 데에 대해서 감사할 정도였다. 그동안 철학자들이 어떻게 사는 것이 옳은 것인가에 대해서 고민해 왔다는 것에 대해서, 그리고 그것들을 명쾌하게 정리해 준 작가에게 감사한다. 

 가치관이 정립되지 않으면 혼돈밖에 남지 않는다. 손쉽게 남들이 정의해주는 논리에 따라가는 정신적 노예이길 자청하는 것도 쉽게 사는 법의 하나이겠지만, 한 번 사는 인생에 대해서 왜 그런지 스스로에게조차 명확하게 설명할 수 없다면, 자식은 어떻게 키우고 교육은 어떻게 시킬 것인가. 알고 싶었던 대답들을 정리해 준 좋은 책을 소개해준 KBS TV 책을 말한다에 감사한다. 

 
철학자들은 수천년 동안 어떻게 사는 것이 올바르게 사는 것인가를 학문적으로 물어왔다. 그 과정에서 그들은 인간이 삶에서 부딪히는 온갖 문제들에 대해 나름의 고민의 흔적을 남겨놓았다. 이를테면 우리는 덕에 대해서는 소크라테스에게, 정의에 대해서는 플라톤에게, 행복에 대해서는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용기와 절제에 대해서는 스토아 철학자들에게, 쾌락에 대해서는 에피쿠로스에게, 우정에 대해서는 키케로에게, 삶의 덧없음에 대해서는 세네카에게, 건전한 신앙에 대해서는 아우구스티누스와 키에르케고르에게, 정념을 다스리는 법에 대해서는 스피노자에게, 시민적 덕에 대해서는 로크와 루소에게, 타인에 대한 연민과 동정심에 대해서는 흄과 쇼펜하우어에게, 세계 평화의 이념과 세계시민적 의무에 대해서는 칸트에게, 한 국가의 국민적 도리에 대해서는 피히테와 헤겔에게, 자본주의 사회의 불의와 부도덕에 대해서는 마르크스에게, 허무주의라는 질병에 대해서는 니체에게, 과학 지상주의의 위험에 관해서는 후설에게, 죽음의 의미와 기술문명의 위험에 대해서는 하이데거에게, 파시즘의 해악에 대해서는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에게, 자유의 소중함에 대해서는 사르트르에게, 몸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서는 메를로 - 퐁티에게, 욕망의 의미에 대해서는 푸코와 들뢰즈에게, 타인의 의미에 대해서는 레비나스에게, 분배적 정의에 대해서는 롤스에게, 시민 사회의 의사소통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하버마스와 아펠에게, 생명과 환경에 대해서는 부처와 요나스에게, 말의 힘에 대해서는 비트겐슈타인과 데리다에게 겸손하게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뿐 아니라 우리는 가족의 의미에 대해서는 공자에게, 인의에 대해서는 맹자에게, 예의범절에 대해서는 주자에게 배움을 청해야 하며, 마지막으로 지나간 우리 역사의 도덕적 의미에 대해서는 함석헌에게, 앞으로 실현되어야 할 통일을 위한 지혜를 얻기 위해서는 다른 누구보다 송두율에게 배움을 청하지 않으면 안 된다.

 

- 본문중에서

 

2006. 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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