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시집 외 책세상문고 세계문학 1
장용학 지음 / 책세상 / 2002년 12월
평점 :
품절


1921년 4월 25일 함경북도 부령에서 출생하였다. 함경북도 경성의 경성중학을 졸업하고 일본에 유학하여 1942년 와세다대학교 상과에 입학하였으나 1944년 중퇴하였다. 8·15광복 후 귀국하여 청진여중 교사로 지내다가 1948년 월남하였다. 월남 후 한양여고·무학여고 교사로 있으면서 작품창작을 병행하였다. 

 1949년 12월 《연합신문》에 단편 《희화》를 발표하였으며, 1950년과 1952년에 단편소설 《지동설》과 《미련소묘》로 《문예》지에 추천되었다. 1955년 《요한시집》을 발표하면서 문제작가로서 각광을 받기 시작하였다. 

 이상(箱)이 일제의 억압으로 인한 정신적 상처를 주로 다루었다면, 장용학은 광복 후, 6·25전쟁으로 인한 의식의 상처를 주로 다루었다고 볼 수 있다. 《요한시집》은 종래의 소설양식과는 판이하게 토끼의 우화를 빌고 에세이적인 요소를 혼입시켜 인간의 실존과 자유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작품이다. 인간의 비인간화 과정을 통해서 현대인의 비극성을 부각시킨 《비인탄생(非人誕生)》(1956), 현대사회가 지닌 제도적 횡포를 다룬 《현대의 야(野)》(1960) 등을 발표하여 확고한 문단적 지위를 쌓았다. 

 1962년 소외된 인간의 군상, 즉 현대문명으로 파괴되어 가는 인간상을 그린 장편소설 《원형의 전설》을 《사상계》에 연재하였다. 1964년 주제의 해석에서 물의를 일으켰던 작품 《상립신화》를 발표하였으며, 1965년 장편 《태양의 아들》을, 1967년에는 장편 《청동기》를 각각 발표하였다.

 
장용학의 작품은 작가의 관념에 의해 다시 창조된 우화나 전설의 세계로 형상화되어 있고, 일인칭 화자의 내적 독백 형식으로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특이한 면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에세이로 오해되기도 했다. 이러한 기법 속에 숨어 있는 그의 소설적 주제는 현대의 비인간적인 상황에 대한 고발과 인간 존재에 대한 질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작품은 당시 세계적으로 유행한 실존주의의 영향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현대소설가로서는 드물게 국한문혼용체를 사용하면서 현대의 비인간적 상황을 관념적인 문장으로 서술하여 난해한 작가라는 인상을 풍기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장용학은 관념소설이라는 새로운 계보를 만들어 낸 작가로서 평가받기도 한다. 

 《무영탑》(1953), 《라마의 달》(1954), 《잔인의 계절》(1972), 《부여에 죽다》(1980), 《유역》(1982), 《하여가행》(1987) 등 여러 편의 소설과 희곡으로 《세계사의 하루》(1966)가 있다. 

 출처 : 네이버 백과사전

 

책세상문고 시리즈 중에 세계문학 문고가 있다. 그 중 첫번째 책이 장용학의 요한시집 外 중단편선이다. 장용학이라는 작가에 대해서 잘 모른다. 나는 수능첫세대인데, 우리때 시작된 논술과 수능대비로 인한 독서열풍중에 장용학은 빠져있었다. 분명히 내 기억으로는 그렇다.

우리 때는 김동리나 채만식, 김유정등이 필독작가였고, 백석은 듣도 보도 못한 시인이었다. 요한시집이라는 작품은 물론 제목만 들어보았으나 잘 알 수 없었던 작품이다. 책세상문고의 작품선정기준이 자꾸 궁금하다. 어떤 기준을 가지고 선정을 하는 것인지, 어딘가 모르게 독특해서 더 맘에 든다. 

 장용학은 1921년생으로 일제치하 이북에서 태어나 한글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고 한다. 그래서 늘 언어표현에 대해서 일종의 컴플렉스를 가지고 있었고 그로 인해 국한문 혼용체라는 독특한 문체를 만들어내었으며, 표현의 자유가 국한되어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관념주의적 소설가로 태어나기에 더 적절했다는 평가들이 있다.

 이 책에 실린 중단편들은 미련소묘(未練素苗), 육수(肉囚), 요한詩集, 오늘의 風物考, 天道是也非也등, 모두 한자어의 뜻이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제목들이다. 발표의 시기는 모두 달라  미련소묘(未練素苗)는 1952년 1월에, 육수(肉囚)는 1955년 3월에, 요한詩集은 1955년 7월, 오늘의 風物考는 1985년 6월, 天道是也非也는 미완성 유작이다. 

 작가는 1999년에 별세하였고, 책에 실린 두 편의 단편, 오늘의 풍물고와 천도시야비야 같은 경우 1980년대 이후의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시대적인 배경만 변화가 있지 작가의 문체는 하나도 변화가 없어 마치 1980년대에 타임머신을 타고 온 신소설의 작가가 주절주절 변사투의 이야기를 내놓는 것과 같은 어색함과 독특함이 있다. 아마 그 때 당시에도 누군가가 선생님 요즘은 아무도 이런 문체로 글을 쓰지 않습니다. 라고 말했을 지도 모르겠다. 1980년대 작인 두 편의 소설에서는 인격과 능력은 존재하지 않는 듯 건조한 어머니상과 그야말로 청순가련 순진무구의 여성형과 퇴폐적 악녀상이 동시에 등장해 그 독특함을 더하고 있으며, 주인공들은 내내 고뇌하나 건조하고 현실적이다. 말하자면, 신념을 위해, 대의를 위해 라기 보다 그건 싫어서 그건 너무 끔찍해서 그건 너무 무서워서, 라는 등의 인간의 공포를 가장 본능적으로 인정하고 수용하는 어찌 보면 소설에서 다루기엔 약간 비겁한 듯한 인간상을 표현한다고 할까. 

 김동리는 그의 작품중 肉囚를 명작이라 뽑았다 하는데, 나도 여기 실린 작품중엔 가장 맘에 드는 작품이었다. 마치 광염소나타를 다시 읽는 것 같기도 하면서 주인공에게 그닥 큰 애정을 표현하지 않은 작가의 담담한 묘사와 그러면서도 다시 일어나는 화염같은 삶의 욕구들이 표출되어 있다. 

 生의 使命이요 事業이다! 싸움이다! 사업 속에서 生은 結實되어 가는 것이다!

어서 내려가서 저 네거리의 揭示板에 내 얼굴을 가져가 걸어라! 이보다 더 큰 사업이 어디에 있을 것인가, 그것은 입술을 가리어 보려고 땅 속을 뒤지는 것보다 더 큰 사업이요 보다 쉬운 사업일 것이다. .................. 나의 설움은 生을 감당할 수 있을 만큼 무거웠다. 

 라는 구절들이 둥둥둥둥 가슴을 친다. 

 가장 관념적으로 꼽히는 요한시집의 경우, 한 번 읽어서는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사르트르의 구토에 영향을 받았다고 하는데, 구토가 쉽게 읽혔다 해도 장용학의 요한시집은 많이 색다르다. 우화로 시작되며 끊잆없는 상징주의적 표현, 메타포들의 나열, 내적 심리의 묘사와 대사등이 정신 바짝 차리고 읽지 않으면 내가 지금 뭘 읽고 있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는 고난이도 소설이다. 

 고뇌가 많았을 것이다. 일제 강점기에서 전후를 지나 군부독재의 시대를 지나던 작가에게 매일 매일은 힘들었지 않았을까. 

 산다는 것은 죄짓는 다는 것이다. 내가 여기에 앉아 있기 때문에 그들이 여기에 앉아 있지 못하는 것이다. 그들을 떼밀어버리고 내가 여기에 앉아 있는 것이다. 그래서 언제 그들에게 밀려 나갈지 모른다. 순간 순간, 무수의 可能性이 자기를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存在는 다음 순간에 일어날 可能性앞에 떨고 있는 戰인 것이다. 이 戰을, 잠자고 있는 세계에서는 '自由'라고 한다. 그래도 잠자고 있을 것인가? 깨어날 것인가....?"

 낯선 국한문 혼용체속에서 한자어의 뜻을 곱씹어 보는 것이 장용학 소설의 커다란 매력이 아닐까 싶다. 신소설의 문체, 앞서가는 실존주의, 그리고 한자어의 남용. 이 것이 이 책을 이루는 가장 커다란 요소들이다.

 

2006. 1.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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