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델 카스트로
로버트 E. 쿼크 지음, 이나경 옮김 / 홍익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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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책장에서 정말 오랫동안 먼지만 먹고 있던 책이다. 아마 체 게바라 평전을 읽고 난 뒤 그리고 또 한참이 지나서 샀던 책인 거 같은데 700페이지나 되는 그 두툼한 두께에 자꾸 뒤로 뒤로 미뤄두고 있었다. 이 앞에 읽은 메구스타 쿠바를 전채요리 삼아, 이제 본요리를 먹어볼 요량으로, 700페이지짜리 피델 카스트로를 꺼냈다.

문제는, 이 책은 피델 카스트로의 평전이라 보긴 어려운 책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책 앞 제목에는 쿠바 YES, 양키 NO 라는 구호가 적혀있어 피델 카스트로의 영웅적인 면을 부각시킨 책이 아닐까 했던 것은 나의 오해였다. 이 책을 읽으면서 쿠바 혁명에 대한 책을 더 읽어보려고 여기저기 뒤적거리고 있는데 딱히 땡기는 책은 아직 찾지 못했다. 아무튼 이 책은 피델 카스트로에 대한 환상을 더 키워주기는커녕 그를 너무나 냉소적으로 혹은 적잖게 폄하한 듯한 평이 주를 이룬다. 저자가 바로 미국사람이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저자 소개는 다음과 같다. “인디애나대학교에서 역사학을 가르쳤으며, 라틴 아메리카 연구회 회장을 역임하였다. 라틴 아메리카 역사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멕시코 혁명>, <멕시코 혁명과 카톨릭>, <영예로운 사건>등을 발표하였으며 <아메리카 역사 리뷰>지의 편집을 맡기도 했다.” 저자는 미국인이고, 이 책을 쓰기 위해 거의 10여년동안 쿠바혁명과 카스트로에 대한 자료를 찾아 헤매었다고 서문에 밝혔다. 책의 요점은 맨 마지막 페이지에 몇 문장으로 압축되어 있다.

“어느 모로 보나 쿠바의 최고 지도자는 자신의 조국이 멸망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그가 권력과 특권을 포기하기 전에 말이다. 그리하여 역사는, 지난 50년 동안 쿠바를 이끌었던 혁명가 피델 카스트로를 심판하게 될 것이다.”

체 게바라 평전을 읽고 난 뒤 많은 사람들이 체 게바라와 쿠바 혁명에 대한 환상에 빠지게 된다. 마치 <중국의 붉은 별>을 읽고 난 뒤 중국행을 결심한 사람들처럼. 혁명에 대한 이야기와 혁명영웅들에 대한 이야기는 다분히 자극적이다. 그들이 영웅이 되지 않는다면 그 체제는 존립하기 어려워진다. 성공한 쿠데타와 성공한 혁명엔 멋진 영웅들이 필요하다. 체 게바라 평전은 분명 체 게바라를 영웅화 하는데 큰 몫을 했다. 나 역시 그러한 생각에 빠져있었다.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이 책을 읽는다면 배신감마저 들 것이다. 책의 요지는 피델 카스트로가 얼마나 어이없이 얼토당토 않게 쿠바의 수장이 되었는지, 그리고 쿠바의 수장이 된 이후에도 얼마나 멍청한 짓들을 많이 했는지, 그리하여 결국 쿠바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미국과 제 3국으로 보트를 타고 망명을 했는지, 미국은 쿠바와의 관계 개선을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가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저자에 대해서 정확히 아는 바는 없지만 책을 통해서 분명 진보좌익은 절대 아니며 보수우익은 아니더라도 중도보수내지는 온건우익 정도는 되지 않을까 싶은 사상을 가진 사람임이 분명하다. 완전히 상반된 내용의 책을 읽고 난 나는 아, 내가 이 책을 왜 읽었지 싶었다. 책을 고르는 것은 내가 가지고 있는 환상을 키울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혹은 내가 생각하고 싶은 사상을 더 단단하게 다지는 기능을 해줄 때도 있기 때문이다. 내가 믿고 싶은 것들에 대한 책을 읽으며 그래 내 생각이 옳았지. 라고 스스로의 세상을 구축해 나갈 수도 있는 것이 독서의 기능중 하나이다. 그게 순기능이든 역기능이든, 책을 통해 사람을 만나고 그 사람의 사상과 동조하면서 스스로의 기쁨을 찾는 일이 있다고 한다면 이 책은 그야말로 나의 모든 체계를 “홀딱 깨버린” 책이 되어버렸다. 어쩌면 나는 중국이라는 나라에서 받았던 그 혁명에 대한 감동을 쿠바로 전이시켜 다시 한 번 감동에 휩싸여보고 싶은 생각에서 쿠바에 접근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렇게 오리지날 양키께서 써주신 책을 읽게 되니 황망할 따름이다. 이 빌어먹을 되지도 않는 또라이 피델 카스트로. 너는 공산주의도 사회주의도 막시즘도 뭔지 모르면서 맨날 손이나 쳐들고 연설이나 길게 하면 다냐. 라고 혀를 끌끌 차고 있는 한 남자의 700페이지 10년에 걸친 대작을 통해서 정신이 혼미해져버렸다. 중국에서 늘 안타까웠던 것은 그 치열하고 아름답던 혁명이 사라져버리고 공산주의와 모택동 사상은 어디로 갔는지 없어져버린 신자본주의 악다구니 쓰던 그 세상을 접했던 것처럼 피델 카스트로라는 이 책은 혁명에 대한 모든 환상을 무너뜨려줄 수 있는 책이다. 마치 소련의 붕괴, 중국의 신자본주의화, 고립된 쿠바와 북한등 모든 공산/사회주의 체제의 실패를 보는 것처럼 내 머릿속에 지어지고 있던 쿠바혁명에 대한 환상도 모두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그러면서 이 책이 과연 객관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인가, 그래도 50년간 장기집권한 카스트로에겐 뭔가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하긴 김일성도 장기집권을 했지. 하는 생각도 드는 것이다.

역사와 역사속의 인물은 진정 역사만이 심판할 수 있을 것이다. 쿠바를 가보지도 못했고 쿠바사람들의 살아있는 증언을 들어본 적도 없는 나로서는 무엇이 옳다 그르다 감히 말 할 수 없지만, 모두가 가난한 사회를 만든 지도자는 죄인이다라는 미국식 명제하에서 카스트로는 역사속의 크나큰 죄인일 수밖에 없다. 적어도 이 책안에서는 그렇다. 아주 오랜만에 상반된 사상으로 인해 큰 타격을 받은 경험이었다. 이 책을 읽고 막시즘이나 공산주의/사회주의와 자본주의로 연결되는 내용을 읽어보려고 하는데 딱히 맘에 드는 책을 찾지 못했다. 추천해주시면 감사.

2007. 9.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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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구스타 쿠바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여행 3
이겸 지음 / 은행나무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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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수없이 많은 청년들이 붉은 책 표지로 된 실천문학사의 체 게바라 평전을 들고 다녔었다. 나도 그 청년들 중 하나였다. 나도 그 때는 청년이었으므로. 그리고 브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의 음반이 소개되고, 그들의 다큐멘터리가 빔 벤더스에 의해 제작, 전세계에 널리 퍼졌다. 쿠바는 시가와 야구만의 나라가 아니라, 체 게바라와 음악의 나라로 다시 인지되었다. 지구상에 남아있는 단 둘의 공산주의 공동체, 북한과 그리고 쿠바. 아름다운 나라, 그리고 그 음악처럼 어딘가 슬퍼보이는 나라, 강렬한 혁명의 피가 흐르는 나라 쿠바. 나에게 쿠바는 체 게바라 – 브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이 되었고 가장 가보고 싶은 나라가 되었다.

이 책은 이겸이라는 사람이 썼다. 그의 사진과 여행기가 약 300페이지를 넘는 책 내내 빼곡히 적혀있다. 그의 사진은 아마추어 이상인 사실상 작가의 사진이고 글 역시 겸손하여 읽는 재미가 있다. 여행은 하는 사람마다 다르다. 같은 지방을 가도 감동에 북받쳐 눈물을 흘리는 이가 있고 누군가는 볼 거 하나도 없다고 치부해버리는 사람도 있다. 재미있는 여행기는 마음이 열려있고 배우려는 자세가 갖추어진 사람의 것이 읽을만 하다. 그러므로, 이겸의 이 여행기 메구스타 쿠바는 매우 읽을만한 책이다.

저자는 쿠바의 전국을 돌아보리라 하는 야심찬 계획을 가지고 후배와 함께 떠난다. 그리고 산티아고 데 쿠바, 바야모, 까마구웨이, 트리니다드, 산타클라라, 플라야 히롱, 마타자스와 카데나스, 후벤투드 섬, 아바나에 이르기까지 평범한 숙소에 묵고 히치하이킹과 모토리노(스쿠터)등을 타고 여행을 계속한다. 그가 여행내내 끊임없이 걷고 사람들을 만나고 쉴 새 없이 느끼고 숨쉬고 웃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저자가 본 쿠바는, 혁명이 일어났던 근사한 나라지만, 지금은 거의 고립되다시피 해 곤궁하고 피곤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열심히 낙천적으로 살고 있는 나라다. 극심한 빈부차이, 허무해진 혁명과 사라진 영웅들, 가난한 집들, 그러나 그 안에서 웃고 있는 사람들. 우리에게 멀게만 느껴졌던 나라에 이 저자도 역시 “사람이 살고 있었네” 라고 말하고 있다.

책을 읽는 내내 저자의 열린 마음이 고맙게 느껴졌다. 성인군자 같이 굴지도 않고, 전 그저 평범한 사람입니다. 라고 얘기하는 듯한 그의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이해하려는 시선들이 쿠바를 가깝게 느껴지게 했다. 책의 종이질도 우수해 컬러 사진도 손상없이 볼 수 있다. 조금 어이가 없었던 것은, 아무리 에세이가 중심이 되고 여행안내서가 아닐지라도, 목차에도 내용에도 쿠바의 지명들이 등장하는데 어찌 지도 한 장 들어있지 않는가 하는 점이었다. 그 점만 뺀다면 추천할 만한 여행서. 쿠바에 가고 싶은 사람이라면 책으로라도 위안을 삼자.



2007. 9.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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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속에서 과학이 숨쉰다
장순근 지음 / 가람기획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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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거짓말을 하지는 않는다. 책 표지를 보면 그 책의 정체를 잘 알 수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런 것들을 간과한다. 이 책은 지질학에 대한 거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그저 기분 좋은 지질학 토크 정도이다. 머리말에 저자가 적었듯이 이 책은 그동안 저자가 대한광업진흥공사에서 발간하는 광업진흥과 학회지에 발표했던 내용들을 정리한 것이다. 그러므로, 가볍게 읽어야 한다. 이 책을 통해 지질학 전반에 대한 기초상식을 얻는다거나, 지질학 입문서는 아니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어찌 보면 이렇게 그동안 여기저기 적혔던 글들을 모아서 묶어낸 책은 두서없이 보이기도 한다. 이 책이 그렇다. 지질학에 대해서 큰 관심을 갖고 있거나 책을 통해 지질학의 긴 줄기를 찾아내려고 했던 사람들은 실망할 수도 있다. 책은 1장, 지형에 대한 이야기, 2장 화강암과 흑운모와 석영, 3장 광상과 광석 4장에서는 귀금속과 쓸모있는 금속들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니까 이 부분까지는 지질학의 기초과학적 사실이긴 한데, 그 부분이 매우 편협하다. 5장은 갑작스레 지질답사에 얽힌 이야기들이 나오고 6장은 소금과 암염에 대한 이야기, 7장은 살아있는 화석이라 불리는 실러캔스라는 물고기를 발견한 이야기가 나온다. 8장에서는 화석에 대한 이야기 9장과 10장은 극지방에 대한 이야기 11장과 12장은 지질학의 기본 법칙들, 지질학을 공부하는 자세, 20세기 지질과학의 발달에 대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가혹하게 말하면 책의 내용은 거의 난립의 수준이다. 책을 위해 조금 더 내용을 보강했거나, 아니면 일반독자들을 위한 내용만 간추렸으면 훨씬 더 모양새 좋은 책이 나오지 않았을까 한다. 어떤 내용은 지질학에 대한 상식이 필요하고 어떤 내용은 지질학 전공자들을 위한 글 같고 어떤 글들은 일반독자를 위한 글들이다. 아쉽게도 전문용어에 대한 주석조차 없다. 저자는 유려한 문체를 가진 사람은 아니나, 여기저기서 들은 이야기들에 대해서 그 출처를 꼭 명기하고 그 이야기를 해 준 지인에 대해서 고마움을 표시한 부분도, 다정하게는 느껴지지만 책이라는 매체에는 어울리지 않아보인다.

지질학이라는 낯선 분야에 대한 책을 읽게 되어 좋은 기회라고 생각이 들긴 하지만, 다 읽고 나서는 중심생각이 없는 잡다한 글들을 마구 쑤셔넣어 먹어버린 기분이 들어 그닥 유쾌하지는 않았다.



2007. 9.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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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에게 글쓰기를 배우다
박현찬, 설흔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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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인문실용소설이라고 그 장르를 특별히 적었다. 책에서 말하는 인문실용소설이란 책의 뒷 날개에 적혀있다. “이 책은 연암의 문장론을 다루는 본격 소설이면서 동시에 실용적인 글쓰기 방법을 배울 수 있다는 점에서 ‘인문실용소설’이라 부를 수 있겠다. 인문과 실용은 다르지만, 이 둘은 본래 대립적이 아니지 않을까. 연암이 법고와 창신을 대림으로 보지 않고 그 모두를 품어 안고 넘어서는 길을 택했듯이, 인문과 실용의 ‘사이’를 꿰뚫는 모험을 시도한 것이다. 여러 의미에서 이 책은 연암에 대한 오마주 (hommage)인 셈이다.

설명대로 이 책은 소설의 형태를 빌려 연암의 글쓰기 방법을 배워가는 책이다. 다른 인문서적처럼 딱딱하게 이렇게 써라 저렇게 써라 하는 것이 아니라, 혹은 연암은 다음과 같은 책에서 다음과 같은 문장을 썼다 이렇게 설명하는 것이 아니고, 한 서생이 연암의 문하로 들어가 그의 글쓰기 법을 배워나가는 소설의 형식을 채택하고 있다.

내가 연암박지원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은 그가 열하일기를 썼다는 것 뿐이다. 그 외의 것은 잘 알지 못한다. 책은 소설의 형태를 잘 살려 연암의 풍채와 성격, 그에 대한 당대의 평가까지 아우르고 있다. 그리하여, 연암의 문하로 들어간 서생의 갈등과 연암과 교류가 있었던 지인들과의 관계 (박제가등)까지 이야기 하고 있는데, 책장은 쉽게 넘어갈 정도로 아주 재미 있다. 또한 액자식 구성을 한 소설이라는 것도 이야기 해야 하는데, 화자는 연암의 아들이 연암의 문집을 읽으며 연암 밑으로 들어간 지문이라는 서생의 글쓰기 공부과정을 읽어나가는 것을 바깥구성으로 하고 안쪽구성으로는 지문이 연암의 문하로 들어가는 과정과 그 과정에서 일어난 일들을 다양하게 펼치고 있다. 연암이 벼슬을 멀리하고 칩거한 내용, 그리고 그의 기이한 행적, 당대의 형편없던 평가들이 소설의 안쪽구성을 이루고 있으며, 바깥구성을 적은 매 장 말미의 글들은 그 장에서 다룬 일종의 요점들을 정리하고 있다.

연암의 글쓰기는 다른 글쓰기와 그리 달라보이지는 않는다. 글에 진실을 담을 것, 혼신을 다해 적을 것, 등 다른 어느 책에서도 쉽게 찾아 볼 수 있을만한 말하자면 빤한 요령들인데, 그 것이 소설이라는 형태를 빌어 연암이 지문이라는 제자에게 내 준 숙제들을 예를 들면 매우 참신해진다. 붉은 까마귀에 대한 이야기나 사마천의 마음을 읽어라 같은 내용들은 가슴이 뻥 뚫리는 듯한 시원함을 전해준다.

연암에 대한 구태의연한 이야기들. 언제 태어나 무엇을 지냈고 무슨 책을 썼으며 이러저러한 평가를 받았고 그의 사상이 어떻고 하는 이야기를 떠나 소설의 형식으로 흥미롭게 풀어나간 이 책은 연암의 글쓰기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철학과 그 당시의 분위기, 그리고 독자로서 한번쯤 고찰해봐야 할만한 이야기들을 전하고 있어 읽어볼만하다.

우리가 만일 당대 글쓰기의 대가로 일컬어지는 (그러나 기이하고 품위없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 연암에게 글쓰기를 배웠다면 어땠을 것인가, 하는 질문에서 시작된 듯한 이 책은 그 내용만큼이나 참신한 시도였다. 앞으로도 우리의 과거들을 다시 즐겁게 되새김질 할 수 있는 이러한 책들은 더 많이 접할 수 있길 바란다. 
 

2007. 9.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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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아 꽃아 문 열어라 - 이윤기 우리 신화 에세이
이윤기 지음 / 열림원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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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을 잘 읽어야 하는거다. 이 책은 서양신화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던 이윤기가 썼다고 해서 한국신화를 해석한 책으로 오인하면 안되는 거다. 나는 그렇게 오해하고 이 책을 샀지만.

이 책은 이윤기 우리 신화 “에세이”다. 그러니까 신화를 읽어내는 독법에 대한 에세이인 것이지, 하나 하나의 신화를 들어 이건 이런 뜻입니다. 저건 저런 뜻입니다. 라고 명쾌하게 정의를 내려주는 이야기는 아니다. 말하자면 더 넓은 눈으로 읽어야 하는, 개방적 에세이라고 할 수 있다. 여러가지 화두를 독자에게 주고 이런식으로 풀어 읽을 수도 있습니다. 라고 말해주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선문답 같은 이야기만 늘어놓은 것은 아니다. 우리 신화에 주로 등장하는 여러가지 테마들에 대해서 주로 이런 뜻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해석을 해본다는 저자의 해설도 곁들여져 있지만, 이 책의 주된 테마는, 신화를 읽는 자세에 대한 이야기다.

이 책에 따르면 신화는 두 종류로 나뉜다 한다. 자연적으로 발생한 신화가 있고, 권력자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하여 만들어 낸 신화가 있다는 것이다. 그 중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구분해야 하는가, 그 안의 비밀들은 무엇인가에 대해서 말한다. 신화는 상징이고, 언어 역시 상징이다. 언어로 이루어진 신화를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신화에 주로 등장하는 아비 찾기 에피소드, 서양의 신화가 그렇고 한국의 유리왕이 그렇고,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한 홍길동이 그렇다. 그리고 생후 1년만에 아버지를 잃은 저자가 그렇다. 아비 없이 자란다는 것은 삶의 중심부에서 주변부로 밀려난다는 것을 말한다. 아버지가 누구인가를 말한다는 것은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근원적 질문이고, 아비를 찾아 나서는 영웅들은 큰 사람(영웅)이 되어 영웅신화를 만들어 낸다. 이윤기가 말하는 신화 읽기는 이렇듯 삶에 근접해있다. 책을 읽을 때는 이 사람은 무슨 신화얘기를 하는 건지, 계속해서 삼천포로 빠지는 건지,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러나 이윤기가 이 책에서 말하는 우리 신화 에세이는 신화를 신화로만 모셔두지 말고 삶의 방식으로 끌어들여 같이 호흡하고 두들겨보자는 것이다. 그리하여 삶의 지혜를 신화에서 찾아보자는 것이 이 책을 쓴 목적이리라. 책을 읽고 나서 삼국유사를 한 번 읽고 이 책을 다시 읽는다면 감회가 새로우리라. 나 역시 그렇게 하자고 마음을 먹었으나, 읽어야 할 책이 갑자기 생겨 삼국유사를 다시 미뤄두게 됨을 아쉽게 생각한다. 자간이 넓고 아름다운 일러스트가 들어가 가벼워 보이는 책 이윤기의 신화에세이는, 곱씹어 읽을수록 그 가치가 더하고 바라볼수록 가슴에 파문이 이는 동양화 같은 책이다.



2007. 9.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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