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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 도덕경과 왕필의 주 ㅣ 동양고전 슬기바다 14
노자 지음, 김학목 옮김 / 홍익 / 2000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평생의 화두처럼 따라다니는 책들이 있다.
읽어야 했는데 부담되어 미뤄두었는데, 결국은 어떤 경로를 통해서든 읽어야만 하는 상황에 처하거나, 잃어버렸거나 잊고 있었는데 결국 손에 다시 들어와 읽게 되는 책들.
나에게는 제자백가나 중국의 고전들이 그런 의미가 된다.
중국에서 한어언문학이라는 중국문학을 중국학생들 사이에서 전공으로 학부생활까지 했었지만, 나에게 중국고전은 빨리 진도를 따라가야만 하는 급한 숙제들뿐이었고, 깊이 통독하기엔 시간도 능력도 너무나 모자랐다. 현대 중국어로 풀이해놓은 것중 학교에서 배우는 강독부분만 읽어도 무릎을 탁탁치곤 했지만, 아, 이걸 읽어보고 싶다. 라는 생각을 하기 전에 그 작품은 이미 학교진도에서 지나가 있었다. 한 학기에 중국역사의 반정도에 해당하는 문학작품들을 배우다보면, 글쎄, 나와 같이 공부하던 중국학생들 중에도 통독을 한 친구는 그리 많지 않았을 법하다. 그저 그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지겹게 들어왔던 이야기라서 대강의 이야기와 중심내용들을 알고 있는 것이 아니었는지도. 우리에게 중국고전문학의 최고봉으로 알려진 논어뿐만 아니라 한비자나 좌전, 춘추정도만 읽어도 아, 이거 정말 재미있는데, 옳은 말 뿐인데, 읽어야 말텐데 읽고야 말테야 하는 욕심들은 그냥 세월속에 묻혀갈 뿐이었다. 그 때는 현대중국어로 풀이해 놓은 일부분을 따라가는 것만도 정말 벅찼으니까. 결국 지금 다시 영어영문학으로 돌아왔는데 1학기 레포트 중 하나가 동서양고전 서적을 한 권 읽고 서평을 쓰는 숙제가 주어졌고, 그 중 내가 택한 것이 노자였다. 노자의 도덕경은 사 놓은 지 거의 6년이 되어가는데 손도 대지 못했고, 논어집주나 논어금독(리저허우의 저서로 최근에 한국어로 번역되었다.)을 펴놓고 만지작거리면서 제자백가를 시작할 그 날을 기다리던 나에게 결국 평생의 화두 같은 제자백가 중의 한 권이 떨어진 셈이다.
이런 명고전들은 선뜻 시작하기에 매우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는 전공자가 아니고 고전을 읽고 논문을 쓸 것도 아니므로, 스스로 취할 부분만 취하면 그만이다. 내가 노자 도덕경과 왕필의 주를 1독한 방법은 이러하다. 일단 중국어를 전공했으므로 노자의 본문부분은 한 번 읽어주고, (사실 한국 한자의 독음보다 중국식 독음에 더 강하다. 한국식 독음은 헛갈리는 부분이 부끄럽지만 아직 많은게 사실) 왕필의 주는 넘어간다. 그리고 한국어로 된 부분만 읽어주는게지. 그러다보면 한국어로 된 번역과 해설부분중에 가슴에 팍팍 꽂히는 부분은 다시 한자부분도 같이 봐주는게다. 이렇게 하여 나는 노자 도덕경과 왕필의 주라는 어마어마한 산을 한 번 넘었다. 물론 이 책을 한 번 읽고 서평을 쓸만한 것은 아니고, 노자 도덕경에 대해서 어떤 논을 하자고 이 글을 쓰는 것도 아니다. 제자 백가나 동서양의 고전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쉽게 재미가 있다. 세상의 모든 스토리는 셰익스피어에게서 나왔다는 말도 있듯이, 세상의 모든 진리는 고전에 있다. 이것들이 왜 고전이라 칭해지는지는 읽어봐야 안다. 아니 몇 천년전에 인간들이 이런 생각을 했다니, 이렇게도 진보적일 수가 라는 생각부터, 그 때와 지금은 과학기술의 차이만 있을 뿐이지 그닥 다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드는 게다. 사람 사는 꼬라지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다 비슷비슷한지도.
노자의 도덕경을 가장 잘 해석했다는 위진남북조의 학자 왕필의 주가 가장 보편적으로 읽힌다고 한다. 그래서 이 책이 선정되었고 노자 전문가인 김학목 선생의 해설도 같이 읽을 수 있다. 한글로 풀이된 부분만 쏙쏙 뽑아읽어도 무방하며, 노자의 가장 큰 사상인, 무가 존재함으로 유가 존재한다는 것 – 즉, 쉬운 비유로 아름답다는 정의는 추한 것이 존재하고 그로 인해 비교를 하기 때문이다. 라는 간단한 중심사상만 알면 별로 어려울 것도 없다. 간혹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부분도 있지만, 그건 어느 책이나 마찬가지정도가 아닐는지. 대신 이런 고전을 읽을 때는 되도록이면 사서 밑줄을 그어가며 침을 발라가며 감탄을 해가며 한 줄 읽고 하늘보고 감동을 느껴주면서 천천히 읽어주는 것이 미덕일 것이다. 이 책의 서평을 써야하는 숙제를 하기 전에 책장에서 6년동안 먼지를 먹으며 한국에서 중국으로 다시 한국으로 비행기를 두 번이나 탄 소나무 출판의 도덕경도 다시 읽어야겠다.
2007. 4.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