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올해로 서른 다섯이 된다.  그리고 가정주부이며, 아이의 엄마이고, 프리랜서 아닌 프리랜서 형태의 웹마스터 일을 종종 한다. 원격대학의 학생이기도 하고, 아직은 그래도 뭐든지 할 수 있는 나이이긴 하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런데, 서른 다섯에 내가 하고 싶다고 해서 무조건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것들이 몇가지 있다. 그런 것중에 몇 가지는 다시 스무살로 돌아가 탱탱하고 젊은 몸을 가지고 피나는 연습을 해서 가수가 되는 일뿐만이 아니다.  

서른 셋정도를 넘기면서, 나는, 아 - 내가 의사가 되었더라면 참 좋았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사람의 병을 고친다는 보람과, 그에게 옳은 길을 제시할 수 있는 지도의 역할과, 치열하고 바쁘고 긴장된 일상이 내 적성에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양한 인간군상을 현장에서 만날 수 있는 매력과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함께 공감하면서 내 인격도 함께 부쩍부쩍 살 찔 수 있는 계기가 되겠구나 하는 생각. 그리고 언젠가부터 의술이나 약물치료, 혹은 한의학계통에 대해서 내가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떤 형태의 의사이든, 내가 의사라는 직업군에 속해있었다면 이렇게 방황하고 헤매지는 않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올해로 나는 서른 다섯이 된다. 의사라는 직업은 스무살이 되기 전에 인생의 방향을 잡아 10년 이상의 정규교육을 받아야지만 자격취득이 가능한 일이다. 내가 오늘부터 수능을 준비한다고 치자. 1년만에 합격을 한다고 하면 서른 여섯에 의과대학에 입학해서 마흔여섯이 넘어 전문의가 될 수 있다. 과연 내가 10년을 투자할 만큼, 그 직업이 간절한가. - 그것은 또 그렇지 않다.  

이미 나는 의사가 아닌 삶을 삼십년 넘게 살아왔고, 의사가 아니더라도 잘 살고 있으므로, 가끔 개인적인 호기심 충족을 위해 의학관련 기사를 보고 약을 받아오면 약물검색 싸이트를 뒤져보거나 약상자의 성분들을 혼자 뜯어보고 가까운 의료계 지인들에게 이런 저런 의학 상식을 물어보고 의학이나 건강에 대한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나는 잘 살고 있다는 말이다. 하얀 거탑이나, 뉴하트 같은 의학드라마가 뜰 때 미친듯이 몰입하고 그에 관한 자료까지 섭렵하는 것으로 충분히 바쁘다.

의사와 같은 전문직종은 스무살이 되기 전에 그 꿈을 확립했어야 하는 일이다. 정규교육을 받고 그 직업으로 가는 길이 너무나 험난하기 때문에 젊은 열정이 아니라면 쉽게 시작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나는 그래서 오늘 내 주변을 살짝 원망해본다. 왜 그 때 아무도 나에게 의사가 되어볼 생각은 없냐고 묻지 않았을까. 특히, 외할아버지가 의학공부를 하셨다면서! 엄마는 왜! 나에게 단 한 번도 묻지 않았을까. 하긴, 그 때 나의 어머니는 나의 진로에 대해서 아무런 관여도 하지 않았다. 무엇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얘기도 하지 않았고 무엇이 너에게 어울린다는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그저 얼토당토 않게 수녀나 경찰이 되는 건 어떠냐고 했었다. (이건 정말 자식을 몰라도 한 참 모르는 일을 넘어서서 자식의 특성을 모두 무시해 버린 처사다. 나는 제복을 증오하는 사람이라 고등학교를 졸업한 바로 그 날 집에 돌아와 교복을 가위로 아주 잘게 쪼게 버린 사람이다.)그리고 그 때 이과반 열풍을 몰았던 선생들은 왜 아무도 나에게 너는 수학을 잘 못하긴 하지만 이과쪽 적성도 있는 것 같다고 아무도 사려깊게 관찰해주지 않았을까. 하는 원망을 해 본다.  

모든 것은 본인의 결정이다. 그러나 스무살이 되지 않은 젊은 피가 평생의 결정을 하기엔 조금 무리가 있지 않는가. 다양한 직업군을 제시하고 네가 앞으로 살아가기 위해선 돈을 벌어야 하며 밥벌이를 해야하는데, 올바른 직업관이란 이런 것이고 너 자신은 바로 이런 사람이 될 수 있으며, 너의 적성은 내가 관찰한 바로는 이러저러한 경향을 많이 띄고 있는 듯 하다. 라고, 왜 단 한 사람도 말해주지 않았을까. 루소의 에밀을 읽다보니, 에밀이 너무 부러워졌다. 이렇게 사려깊고 충실한 철학자를 (일부의 부족한 점은 일단 차치하고), 에밀이라는 학생을 교육시키는 데 온 힘과 정열을 다 바치는, (그게 그 교사의 인생의 큰 부분이기도 하지만), 이런 지도자 밑에서 성장하는, 청년의 에밀 (지금 15-20세 부분을 읽고 있다.)이, 참으로 부러웠다. 

대부분의 우리들은 그랬을 것이다. 부모들은 원치 않는 밥벌이를 의무감으로 다해왔고 자식들은 운좋으면 좋은 선생님이 멋진 진로를 방향잡아주었을 지도 모르고, 형제들은 알아서 툭탁거리며 자랐다. 부모들은 늦게 들어와 지친 육신을 잠시 누이는 데 바빴으며, 자식들은 그런 부모들에게 사랑을 받기 위해서 일찍 자고 착하게 굴어야 했다. 개성 따위는 개나 줘 버려라. 일단은 밥이 문제였다. 특히나 심한 컴플렉스로 자기 자신을 위장하며 살아왔던 나같은 부류의 인간들은 자신감과 오만으로 똘똘 뭉쳐 있었기 때문에 다들 나는 무엇을 해도 잘 할 것이니 상관하지 않겠다는 어른들이 많았다. 아니 ㅡ 그 무엇을 조금이라도 제시해 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 하고 나는, 오늘 아주 대놓고 그 때의 내 주변을 모두 타박해 보는 것이다.  

나는 이제 학부모가 될 것이고, 나의 아이는 별 다른 일이 없는 한 무럭 무럭 잘 자라날 것이다. 아이는 언젠가 나처럼 선택해야 할 것이고, 자기 자신에 대해서 알지 못한다는 것이 고통스러워질 것이다. 그 때, 내가 올바로 아이에게 어떤 길을 제시할 수 있는 능력, 그것을 배우기 위해서 어미는 오늘도 고군분투 서른 다섯 인생의 중간쯤에서 - 나 자신을 다시 후벼파고 쪼개보고 있다. 내 아들도 언젠간 나에게 물을 것이다. 엄마, 엄마는 내가 뭐가 되었으면 좋겠어? 라고. 그 때 응 엄마는 어릴 때 과학자가 되고 싶었는데, 서른이 넘어서는 의사가 되고 싶더라. 라고 하지 말고, 현명한 답변을 해 줄 수 있어야 한다. 인생은 어차피 죽음으로 완성된다는 것도 아이에게 잘 말해 줄 수 있어야겠다.  

서른 다섯에 수신(修身)이 무엇인가를 배운다. 수신을 이루지 못하면 제가(濟家)를 이루지 못하고 제가를 이룬다는 것이 바로 육아(育兒)이며 교육(敎育)이라는 것을, 내가 얻지 못했던 인생의 가이드를 내가 이루어 볼 차례가 되어버렸다. 누군가의 말대로 우리는 인생이 무엇인지 대충 알게 되면 어느새 서른 다섯을 넘겨버리고 난 다음 이다. 나도, 결국 그렇게 되었다.  

2009. 1.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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凱風 

 
凱風自南 吹彼棘心  


棘心夭夭 母氏劬勞  


凱風自南 吹彼棘薪  


母氏聖善 我無令人  


爰有寒泉 在浚之下  


有子七子 母氏勞苦  


晛睆黃鳥 載好其音  


有子七人 莫慰母心  


마파람이 남쪽으로부터 저 가시나무 끝에 불고
가시나무 끝이 야들야들, 어머니 고생하셨어요
마파람이 남쪽으로부터 저 가시나무 섶에 불고
어머니는 성스럽고 착하시거늘 우리에겐 착한 아들 없었네요
이에 맑고 시원한 샘이 준읍 아래 있네
자식을 일곱 사람이나 두었지만 어머니만 고생하셨어요
곱고도 예쁜 꾀꼬리가 비로소 그 노래를 잘하네
자식을 일곱 사람이나 두었지만 어머니의 마음을 위로하지 못했어요
 

 
詩經/邶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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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학원선생님이 책을 추천해줬다면서 대형마트에 움츠리고 있는 작은 도서코너에서 책을 고르고 있다. 여기 말고, 더 많은 책이 있고, 더 다양한 세계가 있는, 서점으로 가자고 나는 권한다.  

아이는. 

어른들이 귀찮아 할 것이니 여기서 대충 고르겠다고 한다.

아이의 요구는,  

언제나 어른들이 귀찮아하는 것들이었다. 

운동화를 빠는 일, 실내화를 빠는 일, 소풍도시락, 학부모 동의서, 부모교육 참가신청서, 자동이체가 되지 않는 학원교재비 타내기. 

아이는, 물질적으로 부족한 게 아무것도 없었지만, 아이에게 소중한 물건은 그 중 단 하나도 없다. 모두 다, 자기를 귀찮아 하는 어른들이 떠다 밀어준 것이라는 걸, 아이의 마음이 오히려 더 잘 알고 있었다. 크레파스, 메이커 가방, 계절별로 색깔별로 구비된 메이커 신발, 브랜드 교복.  

어른들은 노란 물을 들인 아이에게, 네가 도대체 무엇이 모자라서 "그런 아이들"과 어울리느냐고 다그쳤다. 아이는 아무것도 모자라지 않지만, 그 무언가가 모자라긴 하는데 그게 무엇인지 모르고 있다.  

아이는 차라리 길거리에서 전단지를 돌리거나, 주유소에서 기숙을 하는 또래 아이들처럼 그렇게 물질적으로도 궁핍하여 몸과 마음의 궁핍함을 일치시키고 싶다. 물질은 끝없이 풍요롭고, 정신은 위태롭게 곤궁하다. 아이는 그 어디에서도 합일을 찾을 수 없다.  

아이의 요구는 늘 어른들의 귀찮아 하는 표정으로 되돌아왔다. 아이보다 먼저, 아이의 일을 나서주던 어른은, 세상에 아무것도 없었다. 키우던 소라게는 아이가 미쳐버리고 싶었을 때, 그 심정을 대변하듯  그렇게 죽어버렸다.   

아이는 생각한다. 어두운 방안에서 혼자 소라게에게 뻥튀기를 뜯어주던 그 때, 아무도 너에게 말을 걸지 않고 아무도 너를 찾지 않을 때, 유일하게 네가 살려낼 수 있거나 죽일 수도 있었던 그 작고  꼬물꼬물한 생명들. 아이는 차라리 빨리 어미가 되고 싶다. 너는 그정도는 알고 있다. 어미는 너를 귀찮아했지만, 너의 아이는 너를 귀찮아하지 않으리라는 걸.  

아이에게 #1.  

2009. 1. 5.  

*당신이 알아야 한다. 당신은 왜 외면하고 살았는가. 모든 것은 당신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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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伽藍却是新羅舊  가람각시신라구
千佛皆從西竺來  천불개종서축래
終古神人迷大隗/외=阜+鬼(험할외)  종고신인미대외
至今福地似天台  지금복지사천태
春陰欲雨鳥相語  춘음욕우조상어
老樹無情風自哀  로수무정풍자애
萬事不堪供一笑  만사불감공일소
靑山閱世只浮埃  청산열세지부애 
 
   

 

 

가람()은 바로 신라의 옛 건물 그대로 이고
천개 불상은 모두 서쪽 천축(인도)에서 왔구나
옛날 신인이 대외산(大畏山)에서 길을 잃었다는 곳
지금 복지(福靈寺)가 있는 땅)는 천태산과 비슷해라
찌푸린 봄날, 비 오려나 새들은 지저귀네
늙은 나무는 무정한데 바람 홀로 슬퍼하네
세상만사 한번 웃음거리도 못되나니
푸른 산에서 세상사 굽어보면 떠있는 먼지 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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旅館寒燈獨不眠 여관한등독불면

客心何事轉凄然 객심하사전처연

故鄕今夜思千里 고향금야사천리

霜鬢明朝又一年 상빈명조우일년

여관의 차가운 등불 밑에서 홀로 잠 못 이루는데
나그네의 마음은 웬일인지 더욱 처연하다
고향에서는 오늘밤 천리 밖 나를 생각하겠지
하얗게 센 귀밑머리, 내일 아침이면 또 한해가 가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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