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기,『세상을 뒤흔든 사상』을 읽다.
사라 밀스,『현재의 역사가 미셸 푸코』를 다시 읽다.
최종규,『말 잘하고 글 잘 쓰게 돕는 읽는 우리말 사전』을 슬슬 넘겨보다.
버지니아 울프,『자기만의 방』을 끙끙 거리며 따라가다.
빌 브라이슨,『빌 브라이슨의 발칙한 유럽산책』을 야심을 가지고 읽다가 겸손해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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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이 사라지고 있다. 작년 이맘때를 생각해 보면 시국은 상대적으로 평화로운데 마음자리는 오히려 뒤숭숭하다. 어쩐지 올해는 푹 늙은 느낌이다. 다크서클, 피부, 머리카락, 아랫배 등등, 동원할 수 있는 모든 부위와 증상을 총동원하여 syo 너는 이미 아저씨라고 윽박지르는 이 못돼쳐먹은 사지육신을 어쩐다?
아무래도 분노는 젊음의 명약이고 체념은 노화의 촉진제인 것 같다. 2016년 연말에는 하루 24시간 가운데 28시간쯤 빡친 상태를 유지한 채, 아작을 내겠다는 기세로 키보드를 두들기고 있었던 것 같은데, 2017년 연말, 그 세찬 분노는 다 어딜 가고, 사는 게 다 그렇지 인생 뭐 딴 거 있나 하는 컨셉으로 조신조신 일기를 쓰고 있다.
그리 오래지 않은 옛날, 어느 어둡고 혼란한 시절에 말야, 백스페이스를 모르는 용맹한 키보드 워리어가 있었지. 그의 이름은 s...... 뭐, 거기까지만 말해두기로 할까. 그에 관해 알려진 사실이라고는 붉고 둥근 얼굴에 걸레를 문 말솜씨와 똥 묻은 글솜씨를 갖고 있다는 것 뿐이지. 백수라는 말도 있고, 거지라는 이야기도 돌고. 정말 거지인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거지 같은 데가 있는 인간이었어. 시종일관 붉은 그의 얼굴을 대한 사람들이 넌 왜 그렇게 화가 잔뜩 나 있느냐고 물어올 때면, 그는 입을 꾹 다문 채 그저 손가락을 들어 북악산 어디께를 가리켰다고 해. 그는 허공으로 사라져 갈 말들을 입으로만 뱉어 놓는 졸장부가 아니었지. 대신 바람보다 빠르게 손가락을 놀려 벼락 같은 혐오의 말을 어딘가로 쏳아올리곤 했어. 독은 독으로, 칼은 칼로. 난국이 평정되고, 사람들이 모든 공로를 광장과 촛불에 돌릴 때, 그는 자신이 한 일을 애써 드러내지도, 어떤 대가를 바라지도 않았어. 마치 뭐 큰 일이 있었냐는 듯 묵묵히 손가락을 접고 다시 어두운 도서관으로 기어들어갔지. 세상은 조용해졌지만 그의 얼굴은 여전히 붉었어. 아직 그가 만족할 만큼 세상이 좋아지지도 않았고, 또 다른 무수한 혐오들이 뛰쳐나와 세상을 흔들어 놓을 기회만 노리고 있었거든.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은 이제 그의 얼굴을 대할 때면 넌 뭐가 그렇게 부끄럽냐고 놀려대지. 그는 역시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아. 하지만 그는 그저 때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야. 언젠가 다시 온갖 똥멍청이들이 등신경진대회판을 벌려 세상을 혼탁하게 하는 날이 오면, 그의 곱은 손가락이 다시 펼쳐질 거야. 똥멍청이들은 조심하는 게 좋겠지. 어둠 속에 그가 웅크리고 있거든. 이빨은 이빨로, 똥은 똥으로.
라는 식의, 그지 같지만 멋있는 놈이면 좋겠는데. 2018년에는 오히려 키보드 두드릴 일이 더 줄어들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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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기 선생님의 선한 얼굴을 처음 본 것은 TV 토론회였다. 대선 후보자들을 하루에 한 명씩 불러다가 정견을 듣고, 교수 두 명이 이런 저런 질의를 하는 시스템이었는데, 두 교수 중 좀 더 선한 얼굴, 좀 더 선한 말로 조곤조곤 이야기하던 사람이 김호기 선생님이었다. 뭐지 저 무골호인은,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 순박한 얼굴 뒤에 매서운 솜씨를 품고 있었다. 역시 사람이 지식인 소리를 들으려면, 가리지 않고 골고루 읽어야 돼. 멋쟁이.
빌 브라이슨을 읽으면 웃긴 글을 쓰고 싶을 때 더 웃길 수 있을까 싶어서 책 한 권 빌렸는데, 저 사람은 천재로 결론. 참 탐나는 재능이지만 그거 줄테니 저 얼굴과 배도 세트로 가져가라고 하면 좀 망설여진다...... 그냥 당신이 웃겨줘요. 전 웃을테니.
푸코를 알면 알수록 이 사람은 너무 멋있다. 머리에 든 것도 사는 것도 다. 내가 만약 푸코랑 알고 지내는데 갑자기 푸코가 자기랑 사귀든가 안 보고 지내든가 양자택일하라는 식으로 나왔다면 아마 한달은 고민했겠다. 엄마한테 푸코랑 사귀는 거 숨기는 방법 찾느라고. 그 정도로 저 사람이 좋다는 이야깁니다. 역시 대단한 천재. 참 탐나는 재능이지만 그거 줄테니 저 대머리도 세트로 가져가라고 하면 좀 망설여진다...... 그냥 당신이 가르쳐줘요. 전 배울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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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syo가 책을 읽는 것은 비밀 아닌 비밀이다. 공부에 집중하지 못하고 아직 손에 책을 들고 있다는 사실이 주변인들에게 알려지면 어떤 강력한 제재와 압박이 가해질 지 모를 일이다. 세상은 참, 읽으려는 자들에게 다정하지 못하고, 읽지 않으려는 자들에게 매혹적이지도 못하다. 얼른 시험의 시간이 끝나고, 넉넉히 읽을 수 있는 날이 다시 왔으면 좋겠다.
그럼 좋겠지만, 아마 그런 날은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이제껏 syo가 빈둥거린, 그리고 될 수 있는 한 오래 빈둥거리려 했던 이유는 한번 자본주의의 달리는 열차에 올라타면 자력으로는 내려오기 어렵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하물며 syo처럼 젓가락으로도 못 집을 만큼 멘탈이 부드러운 인간이야 더 말할 것도 없지.....
책 읽고 싶은 놈들은 책만 읽어도 살 수 있는 세상, 얼마나 좋아. 어차피 책 읽겠다는 사람도 많이 없는데.
책을 별로 읽지 않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볼 때, 독서에 지나치게 몰두하는 사람들은 멍청하거나 병든 사람처럼 보일 것이다. ......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독자는 이런 훈계를 한번 이상은 들어봤을 것이다. "집에서 책만 읽지 말고, 밖에 나가서 살 궁리를 좀 해라!" 아마도 훈계자는 독서와 삶을 별개로 간주한 듯하다. 어쩌면 훈계자는 '독자가 똥과 된장을 구별하지 못하면 어떡하지?'라고 걱정했을지도 모른다.
_ 알베르토 망구엘,『은유가 된 독자』
어느 날 몸젠이 심하게 흔들리는 마차 안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그런데 옆에 앉은 아이가 너무 시끄럽게 굴어 독서에 방해가 되었다. 몸젠은 화가 나서 물었다. "애, 넌 이름이 뭐냐?" 아이는 깜짝 놀라서 대답했다. "아빠, 전 아빠 아들 하인리히인데요."
_ 김성은,『근대인의 탄생, 프로테스탄티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책 좋아하는 분들의 얘기를.들어보면 하나같이 주변에 책 읽는 친구가 없다고 해요. 오히려 책 읽는다고 하면 이상한 사람(?)으로 보기도 한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티 내지 않고 혼자 읽는다는 분들이 많아요.
_ 땡스북스 + 퍼니플랜,『어서오세요, 오늘의 동네서점』
그는 동굴에서 나왔고, 원주민들애게 마을로 돌아가라고 명령하고는 책을 팔에 끼고 정상까지 기어올라갔다. 그러고 나서 초원에 드러누워 첫 패이지릉 펼쳤다. 그는 그 정상에서 그 책을 읽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공기가 순수했기 때문에 이야기는 공기와 같았고, 영혼을 열어주었다. 거기서, 책을 읽으면서, 마지막을 기다리는 것은 멋진 일이었다.
_ 안토니오 타부키,『꿈의 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