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구기 와 티옹오 와 가즈오 이시구로 와 노벨 문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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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 문학상 예측하는 영국의 "래드브룩스"던가 하는 도박사이트는 도대체 무슨 수를 썼길래 망하지 않는 것일까. 오르한 파묵 이후로 10년이 지났는데 맞히는 꼴을 본 적이 없을 뿐더러, 배당률 3위 안에 수상자가 있기만 해도 선방이다. 이것은 물론 스웨덴 아카데미의 "옛다, 빅엿" 전략전술의 탓도 있긴 하겠지만, 그것도 예측했었어야지. 남의 돈 먹는 일로 먹고 사는 사람들이. 매너리즘에 빠져가지고 벌써 몇 년째 1,2 위에 계속 무라카미와 응구기를 박아 놓더니, 잘 한다 잘 해.
그러나 솔직히 올해는 응구기 와 티옹오(이하 응구기, 우연히 응국이로 오타가 난다면 정다워 굳이 고치지 않아 볼까 합니다)가 받을 줄 알았다. 무라카미는 어쩐지 미운 털 박힌 느낌이고, 인종이나 대륙적 안배부터 여러 가지를 고려해 봤을 때, 이번에는 응구기다, 한두 해 깜짝 선정 했으니, 올해는 무난하게 응국이다, syo는 그렇게 믿었던 것이다. 며칠 전 책을 정리하면서 박스에 들어가 있던 여러 출판사의 세계문학 전집들을 꺼내어 책장에 주욱 꽂는데, 딱 한 권 있는 응구기의 책이 어찌나 번쩍번쩍 빛나는지, 아, 이건 징조다, 올해는 응국이가 득세할 것이야, 하는 느낌이 뽝 오는 것이다. 그리하여 <민음사 세계문학 전집> 중 가장 오른쪽(syo는 전집류를 정리할 때 번호와 무관하게 오른쪽부터 읽을 순서대로 채워나가므로, 가장 오른쪽이 제일 먼저 읽을 책, 가장 왼쪽이 제일 나중에 읽을 책이 된다)에 응구기가 당당히 꽂혔다. 노벨상 발표 나면 바로 읽는다, 응국이. 마르크스가 책상 위에 바글바글하지만, 응국이 퍼스트.
그랬는데, 가즈오 이시구로라니. 밥 딜런급 충격을 먹은 syo는, 딱 한 권, 가즈오 이시구로의 책이 내게도 있었음을 기억하고 먹던 숟가락을 내동댕이 치고는 방문을 벌컥 열어 책장을 쳐다봤는데, 있었다. 가즈오 이시구로의 <녹턴>이. 응구기의 책 바로 오른쪽에. 그러니까, <민음사 세계문학 전집>가운데 가장 먼저 읽어야 할 응국이의 책 바로 옆에, <민음사 모던 클래식> 가운데 가장 나중에 읽어도 될 녀석으로 취급받은 가즈오의 책이 찰싹 달라붙어 있었던 것이다...... 아, 어쩔거나, syo의 이 무시무시한 안목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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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노벨 문학상에 지대한 관심을 드러내고는 있지만, 사실 syo는 세계문학에 조예가 없다. 처음 응구기가 한국 언론에 이름을 드러내던 시절, 내가 처음 본 응국이 기사에서는 그의 이름을 "응구기와 시옹오"라고 적어 놓았다. 그 무자비한 띄어쓰기 덕에 무지몽매한 syo는 그만 응구기 와 티옹오가 "응구기"와 "시옹오" 듀엣이거나 그들을 주축으로 하는 문학창작집단인 줄 알았다. 철이와 미애, 김앤장.
가즈오 이시구로도 그렇다. 한동안 계속 그 이름이 귀에 오르던 때가 있어서 읽어 보겠다고 처음 집어 든 것이 저 <녹턴>이었다. 그런데, 침대에 누워 잠들기 전에 한 챕터씩 읽겠다는 전략의 문제였는지 뭔지, 너어어어어무 재미가 없어서 잠만 잘 잤다. 숙면엔 녹턴. 가즈오 이시구로의 훨씬 더 재밌는 작품이 많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벌써 색안경 착용 끝났고, 잘만큼 잤다. 결국 여지껏 그의 책은 한 권도 펼쳐보지 못한 채 여기까지 왔다.
사실 syo가 응원하는 것은 쿤데라다. 다들(syo포함) 이제 그가 받을 일은 없을 거라고 예측하지만, 쿤데라는 노벨상 받기 전에는 절대 눈을 감지 않겠다는 듯 장수하고 있다. 노벨상을 받기 전까지는 내 눈에 흙이 들어오는 것은 안 돼. 응원한다. 그에게 주거나, 사후에도 받을 수 있게 규정을 고치거나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절대 쿤데라의 장례식을 볼 수 없을 것이다! 쿤데라, 화이팅!
어쨌거나 이제 가즈오 이시구로 읽어야지, 노벨상인데. 세상에는 노벨상 띄지를 둘러 책 파는 사람들도 있고, 그들을 장사꾼이라 욕하는 사람들도 있다. 평소에는 책 한 권 안 읽다가 노벨상 받았다고 하니 꼬물꼬물 읽어보는 사람들도 있고, 그들을 속물이라 욕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렇지만, 좋은 책 읽는데 동기나 계기가 뭐 그리 중요할려고. syo는 어떤 이유에서든 한 권 더 읽는 사람들의 편이고, 누군가의 서재에 책 한 권이 더 꽂히는 과정 안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연결고리들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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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 관련해서 소소한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2015년,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노벨상 수상 소식을 로쟈님께 최초로 전한 사람이 syo였다. 특별한 친분관계가 있어서 그런 건 아니었고, 그날 그 시간 로쟈님은 남산도서관에서 강연(정확하진 않지만, 토니 모리슨의 <빌러비드>를 배운 것 같다)을 하시는 중이었으며, syo는 맨 앞자리에 앉아서 아주 총명한 눈으로 강의를 듣던 중이었다. syo가 물었다. 선생님은 노벨상, 누구로 예측하세요? 로쟈님은 즉답을 피했으나, 조심스럽게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에 관한 말씀을 하셨다. 번역된 책에 서문인지 추천사인지를 쓰셨다고 하신 것 같다. 받을 것 같다는 말씀은 아니구요,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뭐 이런 말씀도 하신 것 같고.
강연은 이어지고, 1분 단위로 검색창에 노벨문학상을 때려 넣던 syo의 시야에 마침내 기사가 잡혔다. 로쟈님의 이야기가 잠깐 멈춘 틈에 syo가 말했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그 우크라이나 작가가 수상했다고 기사가 났습니다. 로쟈님이 대답했다. 아, 기사가 났습니까? syo가 대답했다. 네. 그때 로쟈님이, 안경을 살짝 올리시며 말씀하셨다. 우크라이나 태생이지만, 벨라루스 작가입니다. 세상 그럴 수가 없이 득의양양한 눈빛이셨다. 아니, 선생님. 받을 것 같다는 말씀은 아니셨다면서요.
쉬는 시간에 전화를 받으러 나가시던 로쟈님은, 쉬는 시간이 끝나고도 5분이 더 지나고 나서야 강의실에 돌아오셨다. 말씀하시길, 사람들이 저한테 노벨문학상 축하 전화를 하는군요. 하셨다. 장내는 빵 터졌다. 밤은 늦었고, 피곤하셨을텐데도, 이어지는 강연에서 로쟈님의 목소리는 어쩐지 신이 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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