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이 있어도 입이 없는 동거남
1
三은 더위를 잘 참고 syo는 추위를 잘 참는다. 이렇게 말하니 긍정적인 인간 같아 보이는군. 고쳐 말하면, 三은 추위를 잘 못 참고 syo는 더위를 잘 못 참는다. 이렇게 말하니 또 이번에는 글쓴이의 심정이 잘 드러나지 않는군. 문장을 조금 더 진실 방향으로 끌고 오면, 三은 여름만 되면 syo를 냉면집 육수 주전자 취급하고 syo는 겨울만 되면 三을 매미 유충만도 못한 놈으로 취급한다. 그리고 다시 여름이 왔고, 이제는 내가 수비할 시간. 테이블 맞은편에 앉아서, 덥긴 하지만 그 정도라고? 난 잘 모르겠는데- 이지랄 하면서 이죽거리는 꼴을 버텨낼 시간. 이틀 전에 그가 처마신 맥주캔은 아직 모니터 옆에 있다. 언제 치우나 본다, 내가.
2
열대야하고 모기는 대체 왜 존재해야 하는지, 누가 날 좀 설득해주기라도 하면 좋겠다. 납득이라도 하면 덜 빡칠 듯.
3
모든 연애가 다 이렇게 흘러간 것은 아니지만, 요즘 생각으로 연애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감각기관은 입인 것 같고, 이번에는 나름 입이 충만한 연애를 하고 있는 것 같다.
말을 하는 기관 말고, 감각기로면 따지면 입은(주로 혀는) 미각을 담당한다고 보는데, 사랑할 때 입은 촉각 기관의 역할도 한다. 오직 사랑할 때만 그렇다. 입으로 촉각할 수 있는 사이는 어떤 종류든, 어떤 형식이든, 사랑의 일종이다. 혀와, 입술, 그리고 이로 매만질 수 있는 사람은 반드시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이다(물론 역은 성립하지 않는다).
3.5
그러니까 양치를 잘하자고.
3.55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3.8
그러니까 三아 너는 대충 해도 되겠다.
3.85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4
읽고 있는 책 두 권이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알고 고른 것은 아니었는데. 병렬 독서의 맛은 이럴 때 증폭된다.
말에는 본래 국가도 없고 국경도 없다. 국경을 그어 놓은들 말들은 수시로 국경을 넘는다. 한국이라는 국가 내부의 말들도 마찬가지다. 지역이나 사회적 조건에 따라 다양한 변이들이 존재하며 이들 변이들의 경계 또한 모호하다. 심지어 어떤 변이들은 수시로 끊임없이 이쪽과 저쪽의 경계를 넘나든다. 말들은 결코 균질하지 않다.
그러나 '한국어'라는 가공품의 '발명'은 이러한 차이를 일거에 제거해 버린다. 한국어라는 말 속에는 '언어=영토=국민'이라는 성스러운 삼위일체의 구도가 숨어 있다. 그리고 이 구도를 통해 한국 영토 안에 거주하는 국민이라면 누구나 동일하고 균질한 하나의 한국어를 사용한다는 환상이 만들어진다. 이 환상을 만들어 내는 장치는 다름 아닌 표준어 제정이다.
표준어 제정 과정에는 우생학과 위생학이 개입한다. 우생학적 처리 과정은 서울 말을 우등한 것으로, 지역어를 열등한 것으로 만들어 표준어에서 지역어를 제외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다음은 위생학적 처리 과정. 이 처리 과정을통해 토착어가 아닌 외래어들은 '오염된 말'이 된다. 순수한 언어란 있을 수 없지만 만들자면 쉽게 만들 수 있다. 방법은 간단하다. 어떤 것을 오염된 것으로 지목해 제거하는 것이다. 그러면 나머지는 순수한 것이 된다. 이런 가공 과정을 거쳐 한반도라는 명확한 영토와 경계를 가진 '한국어'가 발명된다. 이 한국어는 그냥 한국어가 아니다. 우생학과 위생학으로 담금질된 '우수하고', '순수한' 한국어다.
_ 백승주, 『미끄러지는 말들』
어떤 것이 잠재적으로 순수한 것(가령, 자연, 문화적 정체성, 기원, 신)으로 간주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순간, 우리는 데리다처럼 읽기 시작한다. 아마도 우리가 어떤 것을 순수하다고 간주하게 되는 것은, 어떤 발화자 또는 작가가 순수성이라는 이상을 불러일으키고 있기 때문이거나, 또는 우리가 어떤 용어들이나 개인들을 아주 빠르게 비자연적이거나 위협적으로 간주함으로써, 오로지 그렇게 간접적인 방식으로, 그 어떤 것의 순수성을 느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데리다는 이러한 위협에 '타자(other)'라는 이름을 부여한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어떤 이상에 대해, 타자가 전혀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말과 위협이 된다는 말을 동시에 듣게 된다. 때때로 약물은 자연적인 신체에 위협이 되는 것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이런 진술은, 자신의 이름으로 [스스로 척도가 되어] 약물을 폄하시키고 있는 그 '자연적 신체'의 일관성에 의문을 붙이게 할 것이다. 다시 말해서, 자연적 신체라는 이상이 유동적인 것이라면, 자연적 신체란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닐까?
_ 페넬로페 도이치, 『HOW TO READ 데리다』
자체로 완전 신박한 내용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번에 눈여겨 읽는 포인트는, 애초에 순수한 것이 있어서 오염된 것들을 제거해서 거기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오염을 정의하고 제거하여 남은 것을 순수라 ‘상정’한다는 것. 그러니까 ‘순수’는 목적지가 아니라 ‘오염’이라 정의한 것들을 제거하기 위한 명분이고 수단으로만 동작한다. 나쁜 놈들이 순수를 악용해서 타자를 ‘오염’이라 정의하고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악용할 순수가 없고 그저 이용되기 위해 추후에 탄생한 순수만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후려치면, 권력이나 권력을 지망하는 이가 ‘오염’을 만들고, ‘오염’이 ‘순수’를 만드는 셈이다.
언젠가부터 모든 정의로움은 그 정의로움을 모두의 정의로움으로 만들 생각으로 권력을 추구하는 이들의 깃발 같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 옳고 그름이 문제가 아니라, 힘이 미치고 미치지 않음이 중요하다. 모든 역사가 그저 승자의 역사라면, 모든 정의는 고작 수긍하는 자의 정의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저마다 정의로운 사람들이 모여 사는 이 세상인데도, 여기가 정의의 세상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한참 드문 것이다.
--- 읽은 ---
1. 쓸모없는 수학
김동진 지음 / 좋은땅 / 2022
우리는 일상에서 이러한 노력을 의식하지 않고 삽니다. 분명히 활용하고 있으면서도요. 1년의 주기 속에서 계절마다 오는 변화에 미리 대비하고, 1주일의 주기 속에서 요일마다 여전히 일어날 일들을 대비하며 살아갑니다. 반복되는 사랑과 이별에 익숙해지면서도 새로운 사랑을 찾고, 잦은 실패의 경험에서도 배울 것을 찾습니다.
하지만 변화하는 세상은 우리의 감각을 통해 너무 강렬히, 그리고 직접 다가옵니다. 보이지 않는 정신 활동으로 일궈낸 우리 삶의 관성과 항상성은 뒷전으로, 또는 당연한 것으로 밀려납니다. 물에 사는 물고기가 물을 알지 못하듯이 우리는 변하지 않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 채 삽니다. 변화에 대비하기 급급하죠. 수학은 변하는 세상 속에서 변하지 않는 것을 보려는 노력입니다.
_ 김동진, 『쓸모없는 수학』
무려 올해의 첫 책이니까 이건 리뷰를 써야 한다. 그것은 사람의 도리.
2. 어느 보통 독자의 책 읽기
버지니아 울프 지음 / 최애리 옮김 / 열린책들 / 2022
가능한 한 온갖 기분을 다 맛보고, 온기를 찾아 이쪽으로 또 저쪽으로 몸을 돌리자. 그리고 해가 지기 전에 젊음의 키스를 마음껏 즐기고 카툴루스를 노래하는 아름다운 음성의 메아리를 즐기자. 모든 계절이, 궂은 날이나 화창한 날, 적포도주와 백포도주,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나 혼자 있는 것, 모든 것이 좋아할 만하다. 삶의 기쁨에 제동을 거는 잠조차도 꿈으로 가득 차 있다. 걷기, 말하기, 자기만의 뜨락에서 홀로 있기처럼 극히 평범한 행동도 정신이 뻗어 나갈 때면 고양되고 조명된다. 아름다움은 어디에나 있으며, 아름다움은 선함과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그러니 건강과 맑은 정신의 이름으로, 여행의 끝에 대해서는 길게 생각하지 말자. 죽음일랑 우리가 배추를 심는 동안이나 말을 타고 가는 동안 찾아오게 하자. 아니면 어느 시골집으로 달아나 낱선 이들이 우리 눈을 감겨 주게 하자. 누가 흐느껴 울거나 손길 닿는 것이 우리를 못 견디게 할 테니 말이다. 무엇보다도 바라기는, 죽음이 우리가 평상시처럼 하던 일을 하는 중에, 아무런 항의도 애곡도 하지 않는 소녀들이나 선량한 벗들 가운데로 찾아오게 하자. 그가 우리를 <노름, 잔치, 농담, 범상하고 속된 이야기와 음악과 사랑 노래 가운데> 찾아오게 하자.
_ 버지니아 울프, 『어느 보통 독자의 책 읽기』
나는 만연체를 사랑하고, 깐깐한 이들이 볼 때 번역투가 다 빠져나가지 않아서 고칠 데가 많아 보이는 그런 문장을 사랑하고, 어려운 말과 아름다운 말에 조금쯤 욕심을 부려 만들어 놓은 문장을 너무너무 사랑한다. 그렇지만 사실 울프의 문장을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는다. 짧은 식견이지만, 내가 읽은 에세이 속 울프의 문장은 예를 들면 소로의 문장보다 지혜롭지 않고, 리베카 솔닛의 문장보다 아름답지 않다. 그렇지만 울프의 문장에는 어떤 치열함이 있다. 특히 책을 다루는 글에서 울프는 치열한 글쓰기가 뭔지 보여준다. 이미 책과 한바탕 싸우고 난 후의 경과를 보고하는 글임에도, 가끔은 지금 이 순간도 책과 싸워내는 중이구나- 싶을 정도의 현장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말로 설명하기가 참 어려운데, 서평이나 독후감을 오래 써 본 사람은 아는, “책 읽은 글”만이 가지는 독특한 장벽 같은 것이 있다. 그것을 넘기 위해 내 독서는 책을 어르고 달래는 독서가 되어야 할지, 책을 던지고 찢으며 이겨 먹는 독서가 되어야 할지, 아니면 그저 관조하고 바람 같은 웃음을 남기며 지나치는 독서가 되어야 할지, 그런 질문과 마주하면서 우리는 “책 읽은 글”을 쓴다. 우리에게 울프가 가르쳐 줄 수 있는 부분이 그 중에 있다.
그러나 당연히 보통 독자라는 것은 기망. 친절하지도 쉽지도 않다. 어지간한 사람들을 몽땅 보통 이하로 만들어버리는 일종의 저주 같은 제목이다.
3. 질문하는 삶
류대성 지음 / 현암사 / 2019
개인의 삶은 사회적 관계 속에서 결정된다. 한 사회는 개인과 개인의 결속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공동체다. 나와 타인의 관계를 돌아보고 내 생각은 어떻게 결정되었는지, 나는 왜 이렇게 행동하는지, 그 결과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인지 고민하는 만큼 타인의 생각과 행동 그리고 우리 사회가 지향하느 목표와 가치를 깊이 고민하지 않는다면, 오늘도 내일도 같은 날의 반복이다.
얄팍한 지식과 허세, 수많은 성공 비법과 처세술 사이에서 길을 잃지 않고 두벅뚜벅 자기 길을 걷는 가장 좋은 방법은 지속적인 사유와 고민이다. 주체적인 사고가 불가능한 사람에게 행복은 저절로 주어지지 않는다. 향기 나는 삶을 원한다면 향수 대신 서가에 꽂힌 수많은 책들 사이에서 조금 더 시간을 보내야 한다. 생각의 무능함은 자기 자신뿐 아니라 인류 사회를 불행하게 할 수도 있다는 깨달음, 자기 이익을 위한 침묵과 외면은 결국 더 큰 절망으로 돌아온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면 나와 세상 사이에 놓인 외나무다리를 홀로 건널 수 있는 자신감이 생길 것이다.
_ 류대성, 『질문하는 삶』
우리는 지금 답이 부족한 시대가 아니라 질문이 부족한 시대에 살고 있다는 글을 어디선가 읽은 것 같다. 정말이다. 세상에 답은 너무도 많이 널려 있어서 키보드 몇 타만 두드려도 우리는 세상 모든 것을 다 알 수 있을 것만 같은데 정작 질문이 부족하다. 내적으로든 외적으로든 그렇다. 무얼 물어야 하는지 몰라서 묻지 않다 보니 어떻게 물어야 할지도 모르게 된다. 어떻게 물어야 할지 모르니 물을 게 생겨도 제대로 묻지 못한다. 악순환이다.
질문하는 삶이란 결국 사유하고 고민하는 삶을 말한다. 이렇게 요약하는 순간, 이 책은 범상한 책이 되어 버린다. 사유하고 고민 좀 해라 제발 좀- 하는 책들은 무수히 많고, 최소한 그런 책을 읽는 사람들은 자신만큼은 그래도 사유하고 고민하는 사람 중 한 명일 거라고 생각한다(착각일 확률도 꽤 크다). 결국 역시 이 책도, “이 책을 읽어야 할 이들은 이 책을 읽지 않고, 이 책을 읽지 않아도 되는 이들만 이 책을 읽는 그런 이 책” 중 하나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렇지만 범상함과 무가치는 전혀 다른 평면의 이야기다. 인용구의 마지막 부분 “향기 나는 삶을 원한다면 향수 대신 서가에 꽂힌 수많은 책들 사이에서 조금 더 시간을 보내야 한다. 생각의 무능함은 자기 자신뿐 아니라 인류 사회를 불행하게 할 수도 있다는 깨달음, 자기 이익을 위한 침묵과 외면은 결국 더 큰 절망으로 돌아온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면 나와 세상 사이에 놓인 외나무다리를 홀로 건널 수 있는 자신감이 생길 것이다.” 하는 이 대목은 범상하지만 정론이고, 범상하여 정론이며, 정론이어서 범상하다. 정론이지만 범상하다-는 평은 범상한 평에 불과하다. 정론은 범상함과 상관없이, 그저 곧게, 꿋꿋이 쫓아갈만 한 가치가 있다. 그래서 우리가 정론이라 부른다.
--- 읽는 ---
그러나 아름다운 / 제프 다이어
미끄러지는 말들 / 백승주
HOW TO READ 데리다 / 페넬로페 도이치
타인에 대한 연민 / 마사 누스바움
화해의 몸짓 / 장성욱
에세 / 미셸 드 몽테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