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챙이에서 뱀장어가 나오겠냐고
1
독서가 양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한편으로 우리가 상황의 진리에 대해 말할 수 있다면, 그리고 그럴 수 있을 때, 이러한 진리는 가장 명확하게 확인 가능하고 식별적인 원소들에 관여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식별 불가능하게 또는 '모호하게 포함된' 원소들의 집단화와 관련될 것이다. 상황의 진리는, 어떠한 진리라도, 언제나 그 상황에 대해 가장 비식별적이거나 또는 '유적인' 것과 관련될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그런 군집이 소집되는 과정은 그 자체로 원소들을 모아내는 모든 통상적인 방식에 대한 위반을 통해 발생할 것이다. 참된 또는 유적인 군집은 현 상태(status quo)와의 단절로 인해 일어나는 어떤 것이다.
_ 피터 홀워드, 『알랭 바디우: 진리의 주체』
출구가 없어 뵈는 이런 문단을 놓고 지나치게 오래 싸매는가 하면,
네오 : 우리는 그 유명한 카카오프렌즈 탐정단이다. 스톤 찾으러 왔다. 문 열어.
무지 : 그런다고 열리겠냐…?
(끼이이익)
콘 : 헉, 통했다.
네오 : 거 봐!
_ 이람이, 최우빈, 『카카오프렌즈 과학탐정단 4: 놀이공원』
이런 글(그림)을 치명적으로 귀여운 애들이 등장한다는 이유만으로 들여다보고 있기도 하고.
알랭 바디우와 카카오프렌즈 과학탐정단이라니 혁신적인 조합이 아닐 수 없군. 여기 주문이요, 아이스 영지버섯 달인 물에 휘핑크림 추가해 주세요.
2
요즘은 좀 만나기 어렵지만, 한때 전형적인 드라마 대사의 대표 선수로 치는 “나다운 게 뭔데”가 있었다. 이 말은 주로 “너답지 않게 왜 그래” 따위의 말에 맞대어 등장한다. 말하는 사람은 보통 울분에 차 있다. 좀 더 냉정한 척할 때는 저 말 앞뒤로 “정말 궁금해서 그래” 같은 장식이 붙기도 하지만, 그래봤자 진짜 몰라서 물어본다기보다 어디 한번 네놈이 뭐라고 말하는지 들어 볼까- 하는 뉘앙스에 가깝고, 결국 뜨거운 울분이냐 차가운 울분이냐의 소소한 차이가 만들어질 뿐이다.
하지만 저 말을 할 현실적 기회는 쉬이 찾아오지 않는다. 어쩌다 멍석이 깔려도 정작 내 입에서 나오는 저 말은 울분 100% 착즙 쥬스가 되지 못하고, 약간의 겸연쩍음, 너도 알고 나도 아는 이 드라마적 클리셰를 지금 한 번 호들갑스럽게 내뱉어 볼 테니까 우리 같이 비웃어 보자는 공모 의식 같은 게 개입하면서, 나다운 게 뭔지에 대한 실질적 고찰로는 이어지지 않는다. 피식 웃음만 남을 뿐이다. 그래서 현실 속에서 나다운 게 뭐냐는 질문은 늘 혼자 하는 스무고개 놀이가 된다.
3
지금은 ‘알라디너’라는 게 정체성의 큰 조각이 되었지만, 처음 이곳을 기웃거리던 올챙이 syo는 나다운 게 뭔지에 대한 고민을 줄창 하고 있었드랬다. 이 동네 주민들은 좋은 리뷰를 생산하는 동시에 각자 저마다의 스타일까지 지니고 있었으니, 여기는 무슨 보고 배울 점과 내 글에 훔쳐 넣고 싶은 싱싱한 기술들이 산 채로 전시되는 수산시장 같았다. 이런 거는 이 사람 따라하고 저런 거는 저 사람 흉내 내면서 나 자신 알라딘 마을의 팔딱팔딱 활어가 되고자 몰래몰래 분투하던 시절이었다.
그러던 중에 안 건데, 뭐랄까, 안 되는 건 끝내 안 되는 법도 있다. 예를 들면, 정말 재미있는 글을 쓰는 친구를 흉내 내려고 노력해도 그건 늘 흉내에 그쳤고, 결국 나오는 건 작위적인 말장난에 절여진 뭔가 공허한 글뿐이었다. 저건 왜 저렇고 이건 왜 이럴까를 고민한 끝에 얻은 결론은 저건 저 사람이 써서 저렇고 이건 이 사람이 써서 이렇다는 것이다. 글은, 쓰는 사람이 두 팔을 뻗은 채 빙글빙글 돌면 만들어지는 양팔 너비 지름의 원 안에서 태어나는 것 같다. 그래서 재미있는 사람이 글을 쓰면 그 사람이 가진 재미를 원의 중심으로 하여 어느 영역을 채우는 재미있는 글이 만들어진다. 다정한 사람이 글을 쓰면 그 다정함을 컴퍼스의 한 꼭지점으로 하여 빙글 한 바퀴 돌린 둥그런 영토 안에 다정함을 채운 글이 생겨난다. 그러니까 syo는 늘 재미있고 웃긴 글을 쓰고 싶었지만, 실제 syo가 워낙에 엄숙하고 고요하고 근엄하고 진지하고 고절하고 숙연하고 진중하고 조용하고 우직하고 격조있고 사려깊고 묵묵하고 지조있고 청초하고 현숙하고 명철하고 웅숭깊고 품격갖춘 그런 성격이다 보니 재미있는 글을 자연스럽게 쓰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아, 원래 성격이 이런 걸 어쩌란 말인가. 깨달음이란 늘 왜 이리도 슬픈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 재미있는 사람이 자기 삶과 자기 글의 이음매를 일치시키면 매끄럽고 거부감 없이 재미있는 글이 태어나겠지. 하지만 원래 그다지 재미없는 사람은 재미있는 글을 쓰겠다고 아등바등 애써도 그만한 성과물이 나오지는 않을 거잖아. 그런 나에게 ‘나다운 글’을 써보자고 스스로 다그치기야 쉽지. 그런데 나다운 게 뭔지 나야 너는 아니? ‘재미없는 성격’이 나다운 건지, 아니면 ‘재미없는 성격에 재미있는 글을 쓰려고 악착같이 구는’ 게 나다운 건지 확실하게 말할 수 있을 만큼 내가 나를 잘 아느냐고…….
4
나 따위 이런들 저런들 세상은 노관심이겠지만 그러니까 더더욱 나라도 나한테 관심을 두자.
--- 읽은 ---
172. 꿈은, 미니멀리즘
은모든 지음 / 아방(신혜원) 그림 / 미메시스 / 2018
- 일독(1903xx)
- 재독(210523)
결국 마음을 비우기 위해서 물건을 비우는 것이다. 물건을 비우기 위해서 먼저 마음을 비워야만 하는 삶도 있겠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물건을 비우면 결국 도달하는 곳은 비워진 마음이다. 마음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저 물건만 비우고, 정형화된 스타일의 미니멀리스트 흉내에 취하면 결국 미니멀리즘 라이프 스타일이라는 힙한 이데올로기로 마음을 가득 채우는 일이 된다. 그러니까 최종적으로 가벼워지는 것은 집이 아니라 삶이어야 한다는 것, 뭐 그런 이야기인 것 같다. 비판보다는 다짐을 한 것으로 읽히는데, 읽는 입장에서도 다짐을 크게 하는 쪽이 낫겠다.
잠자리 한 마리가 소명의 시선을 가로지르며 날아갔다. 벌써 잠자리가 등장하다니. 한 해의 절반이 지나 버렸다는 사실이 실감 났다. 또래 친구가 소유한 것, 회사 동료들이 가지고 있는 것, 그러나 자신은 갖지 못한 것과 여전히 부족한 점들이 차례차례 떠올랐다.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잠시나마 머릿속을 비우는 데도 연습이 필요한 것 같았다.
「무슨 생각해요?」동우가 침묵을 깨며 소근거렸다.
「아무것도, 아무 생각도 안 해요.」
소명이 말했다. 그것은 거짓말이 아니었다. 이제부터 정말로 머릿속을 텅 비워 볼 참이었다. 자신에게 그러한 시간이 얼마나 필요한 것이었는지 소명은 지금 막 깨달았다.
_ 은모든, 아방, 『꿈은, 미니멀리즘』
173. 내 언어에 속지 않는 법
허새로미 지음 / 현암사 / 2019
다 알았다. 다른 언어를 공부하면서 얻을 수 있는 이점들에 대해 수도 없이 보고 들어서, 꼴랑 2개 언어(서울말, 대구말) 밖에 못하는 syo도 그 효용들을 나열하라고 하면 수두룩하게 읊을 수 있을 정도로 외웠다. 하지만 그것들은 syo를 다른 언어 공부로 몰아가지는 못했다. 그만한 동력은 되지 않았다. 지금껏은 그랬다. 그랬는데 완전히 설복당했다. 설복이라기보다는 감복이라는 표현이 적당하겠다.
외국어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 수만 개는 다 필요 없었다. 외국어 공부를 ‘하고 싶은 이유’ 단 한 개가 생기는 그 순간 공부가 시작된다.
언어로 그의 본모습을 전부 알아볼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나 세상의 어디가 숲이고 어디가 늪인지 아무도 말해주지 않는다면 내가 찾는 수밖에는 없다. 내 시시한 농담에 웃어주고 묻지도 않은 질문에 답해주었던 사람들, 이제 끝장이라는 선명한 감각조차 사치일 정도로 절망적인 상황에 몰렸을 때 내 장황하고 자신 없는 설명을 듣고도 나를 재워주고 내 짐을 들어주었던 사람들 덕에 나는 아주 멀리까지 갔다 왔고, 잘 지냈을 뿐 아니라 번영했고, 내가 누군지 확신하는 일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이 나의 길 찾는 능력과 주소 기억하는 능력을 대신하는, 말 찾아가는 능력에서 왔다고 생각한다.
_ 허새로미, 『내 언어에 속지 않는 법』
174. 수학이 만만해지는 책
스테판 바위스만 지음 / 강희진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0
만만해지지 않았다. 애초에 이 정도면 만만해 보이겠다 싶은 것들을 골라서 써놨다고 보는 게 맞겠다. 그래서 나쁘냐면 그렇지는 않다. 그래서 좋으냐면 그렇지도 않다. 독창적이냐면 그렇지는 않다. 수많은 그저 그런 책들 중 하나냐면 그렇지도 않다. 뭔가 많이 배웠느냐면 그렇지는 않다. 배울 게 없느냐면 그렇지도 않다. 지금 이따위 리뷰를 남기는 게 잘하는 짓이냐면 그렇지는 않다. 그렇지만 아무 의미가 없지도 않다. 이렇게밖에 리뷰할 수 없었냐면 그렇지는 않다. 하지만 다른 식으로 리뷰하고 싶었느냐면 그렇지도 않다.
수학, 그중에서도 특히 우리가 골치 아프다고 생각하는 수학 분야들에 관한 지식을 우리 뇌에 조금만 장착하면 세상을 훨씬 투명하게 조명할 수 있다. 매일 무언가를 계산할 필요는 없지만, 또 이건 열다섯 살 때의 나에게 전해주고 싶은 말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날마다 마주치는 모든 것의 기초가 바로 수학이다. 수학의 기본 원리를 이해하고 나면 기괴한 모양의 건축물이나 일기예보,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해서 나온 설문조사 결과나 각종 예측치, 검색엔진과 인공지능 등을 훨씬 제대로 통찰할 수 있다.
_ 스테판 바위스만, 『수학이 만만해지는 책』
--- 읽는 ---
은유의 도서관 / 김애령
하루 15분 명상 / 혜거 스님
물리의 구조 / 이인호
민주주의는 실패했는가? / 나이에르 다산디
중세 1: 만화로 배우는 서양사 / 플로리앙 마젤, 뱅상 소렐
이제 꿈에서 깰 시간입니다 / 김불꽃
오늘부터 부러움에 지지 않고 살기로 했다 / 지그리트 엥겔브레히트
한번은 경제 공부 / 로버트 하일브로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