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는 한 칸, 개래 봤자 기껏 두 칸
1
성남에 올라오지 않던 요 한 달 동안, 三은 주식투자로 34만 원을 벌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몇 번이나 반복해서 하는 말이라는 게, “돈이 돈을 버는 세상이다”. 34 벌고 저 지경이니 3,400이라도 벌었다 치면 무슨 말이 나올지 모를 위험한 입이라 하겠다. 하루 지나고 나니까 감흥이 가라앉아서 이렇게 선선하게 쓰지만, 사실 34만 원, 그것은 그야말로 진한 감동이었다. “아 자본주의 만세! 롱 리브 더 캐피탈리즘!” 三의 돈돈버세 드립 직후 나온 syo의 이 외침은 우리 두 사람의 크기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있다. 우리가 또 이렇게나 작고도 잘다. 아주 그냥 꼬미꼬미 쪼꼬미들이다.
2
어제저녁 三은 뜬금없이 아, 입이 심심하네- 라며 실내용 아재룩을 벗고(그렇게는 도저히 나갈 수 없다) 청바지를 주워 입더니 편의점에 가서 캔맥주와 과자 몇 봉을 집어왔다. 에이씨, 뭐 맥주 교차 되는 게 없노! 이러면서 신경질적으로 내려놓는 봉투에는 750ml짜리 버드와이저 세 캔이 들어 있다. 버드와이저, 킹 오브 비얼스- 라고 적혀있다. 당당하군.
三이 버드와이저의 반만큼이라도 당당했으면 싶을 때가 있다. 애가 저렇게 쪼꼼해진 것이 근 20년 동안 이어진 syo의 정신지배공작 탓은 아닐까 생각할 때면 아찔하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시점(11:13 AM)에도, 삼은 안방에서 한겨울용 기모 이불을 둘둘 감고 드러누워 핸드폰으로 웹툰을 보고 있다(오늘 휴가다). syo가 방에 들어가서 잠깐 내려다보았더니, 민망한 표정으로 눈을 두어 번 깜빡거리고서는 아! 추워! 추워서 도저히 일어날 수가 없네! 라고 외친다. 그 외침을 듣기 전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듯이, 그 외침을 듣고 나서도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방을 빠져나와 조용히 방문을 닫아 주었다. 딱하도다, 三이여, 난 하나도 궁금하지 않았어. 네가 왜 이 시간까지 이불 속에 누워있는지, 언제까지 드러누워 있을 건지, 심지어 날 보는 올려다보는 표정 속에 들어 있는 너의 마음까지, 무엇 하나 궁금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다 알거든.
三은 그냥 그런 三이고, 그런 三으로서 그냥 그렇게 살아왔을 뿐인데, 같이 사는 잔소리꾼 syo는 또 원래 그냥 잔소리꾼인 녀석이어서, 지금껏 매번 야, 일어나라, 너의 게으름은 이제 용감한 수준에 도달했다, 아무리 휴일이라지만 하루에 장장 11시간을 누워있다니 대체 지금 너의 인생한테 무슨 짓을 하는 것인가, 어차피 넌 지금 자는 것도 아니고 그냥 드러누워 있을 뿐이잖아, 니 인생 누수되는 소리가 시끄러워서 독서가 안 될 지경이니까 제발 날 위해서라도 일어나라- 등등의 잔소리를 줄창 해왔고, 심지어 창의적인 잔소리를 만들어내는 데 묘한 재미까지 느끼는 지경이었다. 그러다 보니 이제 내 입이 벌어지기도 전에 변명을 선투척하는 것. 그리고 syo의 잔소리가 레벨업하는 동안 그의 회피스킬 역시 놀랍도록 향상되었다. 변명 선투척은 기본기일 뿐이고 이외에도 절묘한 화제 전환 시도, 이 공간에 없는 더 한심한 인간을 미끼로 던지기, 자아비판 멘트를 날려서 ‘나도 내가 한심하니까 너랑 나랑 같은 편’ 인식 심어주기, “그러게 나는 대체 왜 그럴까” 하는 식의 유체이탈 인법 통나무 분신술 등등, 기술들 현란하기가 아주 오월 꽃 같다. 상호 간 영향을 미치며 발전하는 때리고 막는 기술의 양상을 보고 있자면, 우리 집은 그냥 공진화 실험실 같다.
3
三은 추위에 약해서, 오늘 아침만 해도 빵빵하게 틀어놓은 보일러 덕에 실내 온도가 22도인데도 춥니 마니 하며 드러누워 있었다. 추위에 약한 말라깽이 소인배 이미지로 놀림 받을 줄 알아도 추운 건 추운 거라, 아, 너무 춥네! 젠장, 왜 이리 춥지! 아 못 살겠네! 더 호들갑을 떤다. syo 역시 마찬가지다. 치킨을 시켜도 syo가 더 많이 먹고, 마주 앉아 먹었으니 먹은 시간도 같은데, 이상하게 내 배가 금방 꺼지는 것이다. 식욕에 약한 돼지꿀꿀이 이미지로 놀림 받을 줄 알아도 먹고 싶은 건 먹고 싶은 거라, 아, 이상하네, 뭘 처먹어도 배가 고프니, 오늘날 이 시점에 내가 인간이냐 똥 만드는 기계냐, 아, 못 살겠네! 하며 호들갑을 떤다.
결국 우리는 한 놈은 달러고 한 놈은 유로라서 달라 보이지만 막상 그걸로 살 수 있는 건 너나 나나 똑같이 연필 한 자루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서로 잘 아는 것이다. 그리고 이게, 우리가 서로에게 상처내고 상처나지 않는 이유다. 이러쿵저러쿵해도 까보면 비슷한 인간이라는 걸 인정하고 있다는 것. 그 사실을 알고 서로에게 흉터가 되지 않는 놀림er/놀림ee가 되기까지 이십 년이다.
―더 투명한 쪽이 광어입니다.
―네?
―둘 중에 살점이 더 투명한 쪽이 광어다, 생각하면 구별하기 쉬울 거예요. 더 쫄깃한 쪽이 우럭.
―그럼 오늘부터 저를 우럭이라고 부르세요. 쫄깃하게.
술 취한 나는 인간도 아니다, 방금 무슨 말을 내뱉은 거야, 정말 돌았군, 하는 생각을 하는 와중에 남자가 또 진지한 얼굴로 대답했다.
―아니요, 광어라고 부르겠습니다. 속이 다 보이거든요.
_ 박상영, 「우럭 한점, 우주의 맛」
4
저놈이 아침에 저렇게 누워서 빈둥거린 이유 중에는 어젯밤 혼자서 맥주 2,250mL를 조졌다는 것도 있겠지. 그리하여 저 가련한 생명체의 해장을 위해 오늘 아점은 syo가 나섰다. 대파, 청양고추, 다진 마늘, 칵테일새우, 그리고 무엇보다 syo의 손맛이 잔뜩 들어간 해장용 필살 꼴랑 진짬뽕!
겁나 허겁지겁 면을 조지고 밥까지 말아서 국물 한 방울 남김없이 다 흡입하는 三. 네가 먹는 것만 봐도 배가 부른데 내가 먹은 것도 있어서 배가 터지겠다. 지금은 그렇다. 그렇지만, 아, 이상하네, 또 벌써 배가 고프네- 같은 말이 내 입에서 나오기 전에, 三이 빨리 오송으로 꺼졌으면 좋겠다.
역병이 퍼지면, 우리는 이미 감염되어 몸이 뜨겁게 달아오르는 사람들 가까이 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네. 그의 입김에 의해 위험을 자초할 수 있기 때문이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친구를 고를 때에도 성격에 유의하여 되도록 덜 타락한 친구들을 골라야 하네. 병은 건강한 것을 병든 것과 섞는 데서 시작된다네. 현인을 추종하고 현인만 사귀라는 뜻은 아니라네. 우리가 여러 세기 동안 찾고 있는 사람을 어디서 쉽게 찾을 수 있겠는가? 가장 덜 나쁜 사람을 가장 좋은 사람이라고 부르게나.
_ 세네카, 『인생이 왜 짧은가』
5
아 맞다, 푸코.



푸코를 읽기로 한 사람들이 푸코에 대해 말을 아끼고 있다. 그나마 나오는 말은 대부분 ‘아, 푸코를 읽어야 하는데’로 의기투합하는 분위기다. 그 기분을 너무도 잘 알겠다. 이 사안에 대해 syo가 하고 싶은 말은 이렇다.
아, 푸코를 읽어야 하는데.
요리법을 모르는 사람은 요리책에 의지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먼저 식욕이 있어야 요리책을 펼치는 법이지요. 우리는 그 식욕, 곧 관심을 알아차리고 길러 내고 갈고닦아야 합니다. 관심은 밖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안에서 생겨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무언가(좋은 와인의 맛이든 특정한 음악의 소리든 어떤 책이든)에 관심을 기울일 때 그 관심을 이식해야 할 뿐 아니라 말 그대로 마음속에 담아 두고 계속 추구해야 합니다. 이를테면 특정한 와인의 다른 종류, 특정한 작곡가의 다른 음악, 같은 저자의 다른 책 혹은 동일하거나 비슷한 주제를 다룬 또 다른 책을 찾아보는 식으로 노력해야 하지요. 그런 노력은 온갖 역경을 무릅쓰고서라도 할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_ 존 루카치, 『역사학 공부의 기초』
6
1983년에 있었던 한 인터뷰에서, 푸코는 하나의 특정한 이론적 입장을 견지하지 않는 것이 자기 작업의 가치를 손상시킬 수 있다는 지적을 받자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글쎄요! 몇 년 전에는 이렇게 생각하시더니 이번에는 전혀 다르게 이야기하시네요.'라고 사람들이 말하면 저의 대답은 이렇습니다. '글쎄요! 그럼 당신은 제가 지난 몇 년간 열심히 연구해서 변함없이 똑같은 주장만 되풀이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_ 사라 밀스, 『현재의 역사가 미셸 푸코』
푸코는 이 용어 자체를 거세게 부정했겠지만, 개론서를 읽어보면 학자들은 푸코의 ‘사상적 발전 단계’를 3단계 혹은 4단계로 보는 듯하다. 이런 모양새다.
(0. 하이데거 철학 등등) -> 1. 고고학적 단계 -> 2. 계보학적 단계 -> 3. 윤리학적 단계
푸코의 사상을 생각해보면 하이데거는 좀 뜬금포다 싶지만 그랬다고 한다.
푸코는 직접 원전을 읽기 위해 독일어 공부를 시작했다. 하이데거 강의는 그에게 매우 중요한 것이었다. 그는 말년에 자신의 철학수업기를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다.
"나는 헤겔을 읽기 시작했고 이어서 맑스를 읽었으며, 1951년 혹은 1952년에 하이데거를 읽었다. 그리고 1952년인가 1953년인가 니체도 읽었다. 하이데거를 읽을 때 해놓은 막대한 양의 메모를 나는 아직도 전부 보관하고 있다. 그것들은 헤겔이나 맑스를 읽으며 작성한 노트와는 또 다른 중요성을 갖는다. 나의 모든 철학적 형성은 하이데거의 독서에서 결정되었다. 그러나 니체가 그것을 압도했다는 것은 인정한다. 니체에 대한 나의 지식은 하이데거의 그것보다 훨씬 우수하다. 그러나 여하튼 그 두 경향의 철학은 나의 기본적인 철학 체험이다. 아마 내가 하이데거를 읽지 않았다면 니체도 읽지 않았을 것이다.“
_ 디디에 에리봉, 『미셸 푸코, 1926~1984』
성의 역사 1-4권 읽기에 도전하는 입장에서 재미있는 사실은, 2단계에서 3단계로의 변화가 성의 역사 1권과 2권 사이에서 일어난다는 점이다. 아니, 제가 읽어보니 그렇더라는 건 아니구요. 그렇다고 하더라구요. 심지어 4권은 푸코 출간이잖아.
실제로 개론서 『현재의 역사가 미셸 푸코』의 저자 사라 밀스는『성의 역사1 : 지식의 의지』가 푸코의 저작 중 제일 읽기 수월한 책이라고 하는데, 2권에 대해서는 말을 아낀다. 우리나 사라 밀스나, 푸코에 대해서 말을 아끼는 사람의 마음은 똑같을 것이다. ‘아, (내가/내가 쓴 개론서의 독자들이) 푸코를 읽어야 하는데.’
그나저나 4권 제목은 몹시 끌리는 데가 있다. 동명의 로맨스 소설이 있다. 출판사 이름이 'S로맨스'인데, S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Q. 다음 보기 중, 므흣 소설의 대가 크리스티나 로런의 소설이 아닌 것을 고르시오.
1. 낯선 살 냄새
2. 참을 수 있겠니
3. 단단한 남자
4. 육체의 고백
5. 처음 느낀 그대로
A.
--- 읽은 ---
206. 생각하는 여자는 괴물과 함께 잠을 잔다
김은주 지음 / 봄알람 / 2017
어쩌면 이렇게 한 권으로 모으면 모인다는 것 자체가 문제일지도. 모아도 모아도 한 권에는 도저히 모을 수 없어서 1,000 페이지짜리 양장 세 권이 필요할 만큼 더, 더 많이.
207. 21세기 사상의 최전선
김환석 외 지음 / 이정호 외 그림 / 이감문해력연구소 기획 / 이성과감성 / 2020
타파하고자 하는 적이 명료하다. 인간과 비인간을 나누는 이분법. 인간이라는 범주는 낡고 오래되어 어느 정도 선명한데, ‘비인간’ 쪽에 들어 있는 것들을 학자들이 하나씩 나누어 맡은 느낌이라 재밌다. 로봇에, 매체에, 사이보그에, 심지어 과학실험도구까지 부당하게 이분된 비인간들의 목록이 새롭다. 간단하고 쉽게 읽을 수 있어서 흥미를 유발하는 데 좋고, 아는 척 떠들고 다니기에도 좋을 만큼, 딱 그만큼 얕기도 하다.
--- 읽는 ---



책 Chaeg 2020. 11 / (주)책(월간지)편집부
돈지랄의 기쁨과 슬픔 / 신예희
인생학교 섹스 / 알랭 드 보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