혀감기

 

 

 

1

 

어제저녁에는 두부를 잔뜩 넣고 떡만둣국을 끓일 요량이었는데, 두부가 시한부라 욕심을 좀 부렸더니 정작 탄생한 건 떡이랑 만두를 넣은 두붓국이었다. 다진 마늘과 청양고추 송송이를 너무 많이 넣어서 그런가, 그 맛이 탕이라기보다는 탕약에 가까웠다. 한의원에서 순두부를 시켜 먹으면 이런 맛이 나겠지.

 

그리고 커피를 마셨는데 기이하게도 홍삼 맛이 났다. 사장님, 저희 카페인 주문했는데 사포닌이 나왔어요…….

 

오전에 도서관을 다녀왔다. 입맛이 저토록 이상한 것을 아직 몸살이 다 떨어지지 않았다는 증거로 볼 수도 있었는데, 오만방자했지. 다녀왔더니 어쩐지 또 머리가 무겁……. 으아아아 빌어먹을 영원회귀.

 

 

 

2




피차간에 없는 게 나은 사이긴 했어도, 그래도 명색이 새아버지라는 인간이 죽으면서 땡전 한 푼 안 물려줄 줄은 또 몰랐던지라 어린 아이작 뉴턴은 적잖이 당황하는 중이었다. 책은 나한테 다 물려준 걸 보면 그래도 또 생양아치는 아닌 것 같고. 어쨌든 책은 좋아. 일단 읽고 볼까 헤헤헤…….

 

그러나 남편을 잃은 뉴턴의 어머니는 아들을 양치기로 키우고 싶었던 모양이다. 처음에는 그랬는데, 아 글쎄 이 녀석이 책 읽는 데 한눈을 파느라 양을 분실하는 사태가 지속적으로 발생하자 언젠가부터는 아예 포기한 듯. 니 맘대로 살아라 임마.

 

그래서 나중에 뉴턴의 어머니는 이웃들과 함께 동네 평상에 모여앉아 콩나물 대가리를 다듬으며 이런 대화를 나누었던 것이다.

 

아니, 애가 하라는 양치기는 안 하고 맨날 독서, 독서, 아주 지겨워 죽겠어 그놈의 책 그냥 다 확 불살라 버려야지 싶다가도 쟤가 말은 안 하지만 자기도 스트레스 엄청 받겠지 싶어서 그냥 냅뒀지 아 서방 복 없는 년이 자식 복도 없다지만 그래도 에미 마음이 어디 그런가, 그래 그래 너도 답답하겠지 그냥 너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아라 에미가 삼시 세끼 고기 반찬은 못 먹여도 그 정도는 해 줘야지 그냥 쌀만 너무 많이 축내지 말고 적당히 먹고 적당히 싸면서 적당히 살다 가자 이번 생 너나 나나 아주 오지다, 그랬는데 어느 날 갑자기 얘가 그러는 거야. 어머니 제가 우주의 법칙을 발견했습니다. 나는 속으로 이게 또 쌀밥 먹고 보리방구 뀌는 소리 하네 하고 있었거든. 근데 애가 또 그러네, 어머니, 제가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했습니다. 그러니 어디 내가 참을 수 있어야지. 얘야 뉴턴아, 내 새끼 아이작 뉴턴아,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하면 돈이 나온다니 쌀이 나온다니. 어머니, 들어보세요. 그러니까 어느 날, 제가 사과나무 아래 누워 있었는데 사과가 갑자기 제 머리 위로 뚝, 아이고 뉴턴아 아이작 뉴턴아, 과수원에 갔으면 사과나 딸 일이지 그걸 그래 게을러 가지고 드러누워 있으니 사과한테도 얻어터지고 다니지, 아이고 속 터져. 아니 어머니 사람 말을 끝까지 좀 들어보세요, 하여간 그래서 제가 발견한 법칙이 세상 사람들한테 널리 인정을 받았어요. 그래 그래 그것 참 좋~겠구나. 그래서 제가 케임브리지 대학교 교수도 되고, 왕실로부터 기사 작위도 받았습니다. 어머니, 우린 이제 귀족이에요! 그러는 거야 글쎄? 아니 이게 말이 돼? 양치기도 못 하던 우리 아들놈이 글쎄 작위를 받았대 글쎄! 믿어져? 뭐 못 믿겠다고? 못 믿어? , 이놈, 감히 어느 안전이라고! 여봐라, 개작두를 대령하라…….

 

당연히 농담입니다.

 

 

 

 

 

--- 읽은 ---

 


176. 프로이트 패러다임

맹정현 지음 / 위고 / 2015

 

syo는 프로이트를, 귀여운 멍뭉이를 대하는 마음으로 읽는다. 오구오구 그래쩌여~? 성욕이 있어쩌여~? 남근선망 때문이에여~? 여긴 이미 21세기고, 세상과 사람을 설명할 수 있는 간지 나고 좋은 이론들은 잔뜩 있고, 나는 책을 몇 권 띡 읽고 말 인간이 아니고, 뭐 그러다 보니 프로이트는 치킨에 발라먹는 양념에 들어갈 70가지 갖은 식재료 가운데 한 가지- 그런 포지션이다. 그래서 뭐라고 말해도 오구오구하게 되는 것이다.

 

syo내 이론이론도 만들 생각이 없다. 세상의 다양한 이론들이 내 안에 들어와 두서없이 섞여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색을 바꿔나가는 쪽이 훨씬 좋다. 어차피 내 생각이라는 건 내 의식 안에 의식적으로, 무의식 안에 무의식적으로 쌓은 다른 생각들의 할매국밥이다. 모두가 원조이고 누구도 원조가 아닌. 이건 프로이트의 생각과 그리 멀지 않다. 프로이트의 가장 큰 업적은 무의식의 발견이고 그 업적의 가장 큰 효과는 주체성의 파괴. 내가 나라고 너무 철저히 믿지 않는 것이 좋다. 나밖에 모르는 내가 있겠지만, 다름 아닌 나라서 결코 알 수 없는 나도 있는 법. 우리 같은 범인들이 프로이트를 통해 얻어야 할 지혜는 그런 정도다. 인간에 대해서, 꿈에 대해서, 심지어 무의식에 대해서조차, 이제는 다른 철학자들의 책과 과학책을 통해 배우는 게 더 나은 시대가 왔다. 나는 프로이트가 이렇게 말하는 나를 좋아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아님 말고. 어차피 나도 그 할배 별로다.

 

그런 느낌으로 프로이트에 대해 한 권쯤 읽고 지나가려면, 혹은 프로이트에서 파생되는 다른 글들을 읽기 위한 기반이 필요하다면, 이 책 한 권 갖추는 것, 나쁘지 않다.

 

 

 

 


177. 길 잃기 안내서

리베카 솔닛 지음 / 김명남 옮김 / 반비 / 2018

 

그 문장이 높고 아름다운 것을 온 세상이 다 알고 나도 잘 아는데도, 읽는 데 쓴 날들이 짧지 않다. 아무리 노력해도 앉은 자리에서 다 소화되지 않는 책은 위대하거나, 쓰레기거나, 위대한데 내가 쓰레기라 내 눈에 쓰레기로 보이거나다. 말할 것도 없이 1.

 

 



178. 시절과 기분

김봉곤 지음 / 창비 / 2020

 

눈을 못됐게 뜨고 읽으려고 단단히 마음을 먹고 덤벼들었지만 그렇게 되지가 않았다.

 

전작 여름, 스피드를 생각해보면, 나는 그 책에 별 다섯 개를 때렸고, 이건 문장으로 보나 내용으로 보나 별로 수준 높은 작품이 아니라는 비평에 끝까지 저항했다. 이번 문자대화 인용 논란이 터지기 전부터 느낀 건데, 이게 너무 뾰족하게 구체적이라 도리어 실제로 있지 않았던 일이라고, 픽션이라고 생각하기가 더 어려울 정도의 현실감이 느껴지는 이야기가 그 책에 실려 있었다. 뾰족하다고 표현한 것은, 수록작 가운데 어떤 작품 속 이야기는 정말 과장 없이 100% 공감할 수 있는, 화자의 마음 경로를 완전히 똑같이 되짚을 수 있을 만큼 나와 연결된 이야기 같았던 반면, 또 어떤 이야기는 나와의 접점이 0%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만약 100%의 이야기가 하나도 없었다면, 그래서 이 책의 모든 작품이 그저 0%의 나열이나 기껏해야 50%도 안 되는 별세계 이야기의 집합체로 보였다면 나도 이 책을 그냥 툭 던져놓고 김봉곤의 이름을 잊었을 것이다. 그런데, 한 개의 100%가 나머지 모든 0%를 숨겨진 100%, 내겐 0이지만 세상에 반드시 이 이야기에서 100을 느끼는 누군가가 존재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로 만들어준 것이다. 그래서 사건이 터졌을 때 하나도 놀라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럼 그렇지. 100이었는데. 100은 허공에서 탄생할 수가 없지.

 

남들은 도저히 좋아할 만한 데를 찾아내기 어려워하는 작품을 나는 미친 듯이 좋아하는 상황, 그런 건 그 작품이 내가 살아온 궤적을 직접 건드리기 때문에 일어난다. 김봉곤이 다음 책을 낼 의사가 있는지, 그럴 수 있는지, 그런 건 잘 모르겠다. 차기작이 온다면, 그건 같은 잘못을 통과하지 않고 왔으면 좋겠다. 나는 또 읽을 것이다. 이건 불가항력에 가깝다. 아직은.

 

 

 

--- 읽는 ---

카운슬러 / 코맥 매카시

천년의 바람 / 박재삼

chaeg 2020. 10 / ()(월간지) 편집부

죽기 전에 알아야 할 5가지 물리법칙 / 야마구치 에이이치

작가의 뜰 / 전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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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0-10-15 18: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쇼님은 그 할배 별로라는데 이 글 읽고나니 얼른 <프로이트 패러다임> 읽고 싶네요. 잠깐! 그 전에 프로이트 읽던거 마저 읽고요. 켁!

syo 2020-10-15 18:34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ㅎ 저는 오구오구 마인드, 다락방님은 씹어주마 마인드로 읽는데, 단발님은 어떨지 궁금합니다

다락방 2020-10-15 18: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로이트 패러다임 나도 사놨지롱요- 딱 기다려요 내가 다 읽겠엇! 뽜샤!

syo 2020-10-15 18:34   좋아요 0 | URL
프로이트 페이퍼가 겁나 알차더라요.
의외로 이쪽 장르 페이퍼에 재능이?!

다락방 2020-10-15 18: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참. 카운슬러라니요! 거기에 잊을 수 없는 어마어마한 카섹스신(?)이 나오는데... 읽었나요, 그부분?? 꽥-
그 당시에 너무 충격이었는데 지금 생각하니 매카시 할아버지.. 그러면 안됐던 것 같아...

syo 2020-10-15 18:35   좋아요 0 | URL
아직 안나왔는데, +ㅁ+
역시 필립 할배랑 어깨를 나란히 하는 코맥할배인건가 후후후후.

stella.K 2020-10-15 18: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카페인을 시켰는데 사포닌이 나왔어요.ㅎㅎㅎ
못 당할 글이로군요.
백수된 거 정말 맞습니까? 오전에 도서관? 일하기전 잠깐 들린 건 아니구요?

김봉곤은 정말 묘하게도 읽는 맛이 있더군요.
지금 뭐할까 싶기도 해요.
근데 전 읽겠다고 장담은 못할 것 같아요. 다른 읽을 책이 하도 많아.
갑자기 오토픽션에 몹시 관심이 생기면 그때.

syo 2020-10-15 18:41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한 줄에 물음표 세개 연달아 얻어맞으니까 취조당하는 느낌 매콤하네요.
오토픽션에 관심이 없으세요?
스텔라님 구독서비스 하실 때 오토픽션 많이 쓰신 셈 아닐까요?

봉곤씬 아마도 회사 열심히 다니겠죠?
나만 백수네.... ㅎㅎ

stella.K 2020-10-15 19:32   좋아요 1 | URL
켁, 그러고 보니...ㅠ
그냥 스요님에 대한 관심으로 이해해 주시면...ㅋㅋ

아, 그때를 기억하십니까?
그때 저 오토픽션 아닌데.ㅋㅋㅋ

syo 2020-10-20 09:13   좋아요 1 | URL
그럼요 ㅎㅎㅎ
아, 그런 게 오토픽션이 아닙니까? ㅎ

반유행열반인 2020-10-15 2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yo님의 100퍼센트가 어떤 소설이었는지 많이 궁금합니다. 그리고 글 멀쩡하게 더하기 완전 잘 써 놓은 걸 보니 다 나은 거 같은데? 아니라면 내일쯤 다 나으실 거에요.

syo 2020-10-20 09:14   좋아요 0 | URL
아픈 건 다 나았습니다 ㅎㅎ 염려해주셔서 감사합니다!

scott 2020-10-15 2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작 프로이드 손자는 성도착증 환자였다죠. 혀감기에 얼큰한 콩나물국 추천! 환절기 몸관리 잘하세요

syo 2020-10-20 09:15   좋아요 0 | URL
손자라면 루시안 프로이트를 말씀하시는 거겠지요?
성도착증 환자였군요. 몰랐습니다 ㅎㅎㅎㅎ

추풍오장원 2020-10-15 2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도 나의 주인이 결코 아니지요..^^ 빨리 쾌차하시기를...

syo 2020-10-20 09:15   좋아요 0 | URL
간만에 고향집에 내려가 잠깐 쉬었습니다.
결국 쾌차하고 말았네요(?) ㅎㅎㅎㅎ

공쟝쟝 2020-10-15 2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의식의 발견, 주체성의 파괴.
덕분에 정수 읽고 프로이트 다 읽었다 배부르기.

syo 2020-10-20 09:16   좋아요 0 | URL
10월도 벌써 다 가고 있군요.....
허허허허....